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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등가의 소드마스터-197화 (197/446)

197화

금지된 숲 내부의 지하 도시를 악마 숭배자들이 점거했고 활용했다.

이 진실은 결코 부정될 수 없었지만, 레이가 지하도시에 진입했을 땐 이미 대부분의 시설이 버려져 있었다.

또한 지하도시에 머물던 악마 숭배자들의 핵심 전력도 레이와 루나가 괴멸시키다시피 했다.

이 단편적인 정보만 가지고 돌아간다면 제국이나 왕국이 상황을 안이하게 판단할 수 있었다.

'추후 토벌을 위해서라도, 다른 지하 도시의 위치 정보는 꼭 필요해.'

아무 정보도 없이 금지된 숲을 뒤지면서 지하 도시의 흔적을 찾는 건 미친 짓이었다.

관련 정보를 확보할 수 있다면 확보하는 게 맞았다.

생각을 한 번 더 정리한 레이가 앞으로 나아가다 울트의 가명을 불렀다.

"호프, 이곳에서 티티의 저주를 해결할 수 있는 단서를 찾았나요?"

"...진전이 있었다."

울트가 짧게 답했다.

레이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며 과거를 입에 담았다.

"10년 가까이 된 일입니다만, 달빛 아래서 그녀는 자책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가디 자작님의 방황이 부디 가치가 있었기를 바랍니다."

레이는 말을 내뱉고 나서야 그 안에 빈정거림이 섞였음을 자각했다.

적진 한가운데서 울트를 동요시킬 말을 뱉어봤자 자기 무덤 파는 꼴이었다.

레이는 괜히 한 번 혀를 차고는 화제를 돌렸다.

"자세한 건 무사히 돌아가서 이야기합시다."

"그래."

울트가 담담한 어조로 답했다.

아프텔이, 자신의 원본을 끝까지 포기하지 못한 최후의 수호자를 잠시 눈에 담았다가 사라졌다.

쿠웅!

땅이 울렸다.

중앙의 거대한 탑으로 나아갈수록 잔존해 있는 마물이나 악마 숭배자들의 실험체와 마주치는 횟수가 늘어났다.

이번엔 온갖 마물이 뒤섞인 키메라가 출현해 검은 침을 뚝뚝 흘리며 앞을 막아섰다.

지금 레이 일행은 속전속결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적진 한가운데서 시간 끌어봤자 불리해지면 불리해졌지 결코 유리해질 수 없었다.

그렇기에 레이는 곧장 도약 검기를 키메라에게 쏘아냈다.

콰가가각!!

허공을 찢고 나타난 검기의 폭격에 키메라가 산산이 조각났다.

감흥 없는 얼굴로 계속 전진하려던 레이가 울트와 눈이 마주쳤다.

울트의 눈빛엔 혼란이 가득 깃들어 있었다.

레이가 눈을 깜박이다 퉁명스레 물었다.

"도약 검기 처음 봐요?"

"...처음 본다."

"아... 생각해보니 그렇긴 하겠네요."

서로 이름을 듣기야 자주 들었는데 울트와 레이가 대면한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납득한 레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빨리 가죠."

"..."

울트는 도약 검기까지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나자 아직까지 버리지 못했던 레이의 신원을 향한 의심이 다 부질 없게 느껴졌다.

따지고 들 게 한두 가지여야지, 비상식적인 광경을 계속 마주하자 도리어 마음이 무던해졌다.

복잡한 생각을 깔끔히 밀어버린 울트가 썩은 나뭇가지처럼 보이는 게네시스를 꺼내 들었다.

츠즈즉!

울트가 게네시스를 손에 쥠과 동시에 검은 물결이 울트를 뒤덮었다.

검게 변한 시야 속에서 게네시스를 활처럼 잡은 울트가, 저 위에서 강습을 가하기 위해 날갯짓하는 와이번 형태의 키메라를 향해 시위를 당겼다.

쩌엉!!!

본래 아무것도 존재치 않았던 울트의 손아귀로부터 빛살이 맺혀 쏘아졌다.

폭력적으로 공기를 밀어내며 나아간 빛살이 날갯짓하던 키메라를 풍선처럼 터뜨려 버렸다.

투두둑!

핏물이 땅을 향해 쏟아졌다.

레이가 핏물로 이루어진 웅덩이를 흘깃 바라본 후 울트에게 물었다.

"그거 저주 받아서 사용 못 하는 거 아니었어요? 대체 어떻게 쓰는 거예요, 지금?"

"간단히 축약하자면... 내 육체가 '저주'를 대신 덮어쓴 사이 무기의 기능을 일부 회복시켜 사용하는 거야."

울트가 대단히 정신 나간 소리를 담담하게 하자 레이가 감탄했다.

"오, 대체 어떻게 아직 살아계십니까? 진즉 땅에 묻히셨어야 할 것 같은데."

"내 몸이 내 생각보다 튼튼하더군."

나도 내가 지금까지 살아있는 게 놀랍다고 중얼거린 울트가 실소를 터뜨렸다.

레이도 울트를 따라 낄낄 웃었다.

자기 생명 갉아먹는 데는 특출난 재능을 타고난 두 남자가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

루나가 소환한 바람 정령이 어쭙잖은 마물을 전부 정리해준 덕분에 레이 일행은 도시 중앙의 탑까지 빠르게 접근할 수 있었다.

"이제 코앞이네."

레이가 가볍게 걸음을 옮겼다.

레이는 현 시점에서 기껏해야 잔챙이나 지하 도시에 남아 있으리라 생각했다.

허나 그건 착각이었다.

트득!

악마 숭배자들에게 있어, 현재 레이가 발을 디디고 있는 지하 도시는 용도가 거의 다한 시설이 맞았다.

하지만 지하 도시는 여전히 악마 숭배자들의 주요 거점 중 하나였고, 결코 탈환 당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었다.

그렇기에 도시의 시스템에 간섭 가능한 중앙의 탑엔 강력한 수호자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쿠웅!!!

먼 과거, '참살하는 자'라고 불리었던 마족이 눈을 떴다.

도시에 흐르고 있던 악신의 축복이 단 하나의 마족에게 집약되어 힘을 불어넣었다.

꿀렁!

축복에 이어, 오래 전 결손되었던 특이 기관이 키메라 연구를 통해 대체되어 마족의 육체를 극한까지 활성화시켰다.

거인과 같은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마족이 저주가 축성된 강력한 무구들을 세 개의 손아귀로 움켜쥐었다.

침입자를 제거하고 도시를 수호하기 위해.

끔찍하게 강대한 마족이 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못 가.

철퍽!

감히 전능함을 입에 담던 마족은 육신이 갈기갈기 찢긴 채 땅을 기었다.

"이럴... 리가...!!"

마족은 오판했다.

마족이 대적해야 했던 존재는 600년 신화의 파편을 품은 영웅의 후계들이었다.

단 세 명이 협력했을 뿐이지만 조합을 갖춘 그들의 전력은 로드 급에 필적했다.

레이가 무력화된 마족의 영혼을 베어내자 루나가 타락한 마족의 육신을 불길로 정화했다.

뒤늦은 마족의 외마디 비명이 메아리치다 사라졌다.

레이가 방금 전 짧았던 전투로 인해 외벽이 손상된 중앙 탑을 보며 혀를 찼다.

"조금 더 조심히 싸워야겠는데. 건물 다 무너지겠어."

"이제 와서 그런 걱정은 새삼스럽지 않나?"

울트가 피식 웃으며 반문했다.

중앙 탑은 레이 일행이 당도하기 한참 전부터 이미 충분히 오염되고 부서져 있었다.

과연 내부 시스템이 일부라도 제대로 작동할지 의아한 광경이었다.

레이가 한숨을 푹 쉬었다.

"데이터 베이스라도 멀쩡하길 바라야죠."

레이가 앞장서서 탑 내부로 진입했다.

탑 내부는 그야말로 개판이었다.

꾸물거리는 생체 조직으로 내부가 아예 덮여 있어 어디서부터 건드려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이걸 전부 태울 수도 없고..."

낡아 빠진 건축물 내부를 불길로 정화하려 했다간 남아나는 게 없을 터다.

모두가 발걸음을 멈추고 고민에 빠진 찰나.

울트가 지니고 있던 열쇠 형태의 아티펙트가 스스로 빛을 내며 떠올랐다.

우웅!

탑이 작게 진동하더니, 열쇠가 발하는 빛을 따라 탑 내부의 중앙 기둥이 공명하기 시작했다.

쿠웅-!

멈춰있던 도시의 중앙 시스템이 재활성화된다.

하지만 도시에 동력을 공급하던 시설이 거의 다 침식되거나 망가져 있어 시스템을 활성화할 에너지가 부족했다.

비상 상황임을 확인한 중앙 시스템이 비상 동력원을 향해 신호를 보냈다.

지하 도시보다 더욱 깊은 곳에 은폐되어 있던 드래곤 하트의 조각이 시스템의 신호를 받고 반응했다.

화악!!!

시스템의 정상 가동을 위한 최소한의 동력이 확보되자 탑의 중앙 기둥으로부터 빛이 뿜어져 나왔다.

2000년 전 드래곤의 황금기, 그 기록도 제대로 남지 않은 잊혀졌던 역사의 광명이 오랜 시간을 건너 다시 뻗어 나왔다.

드드드득!!

탑 내부를 침식하고 있던 저주가 깃든 생체 조직들이 빛에 닿는 순간 일시에 산화했다.

레이의 일행을 열기를 느끼면서 가만히 자리를 지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이 부시도록 밝게 빛나던 중앙 기둥이 천천히 광도를 줄였다.

"...?"

레이가 눈가를 좁혔다.

은은하게 변한 빛무리가 기둥 주변을 유영하다가 서로 뭉치기 시작했다.

허공에 그려져 나가는 홀로그램을 향해 레이가 권능을 사용했다.

'큭...'

근래 권능을 너무 자주 사용했던지라 두통이 강하게 찾아왔다.

레이가 앓는 소리를 삼키며 홀로그램을 살폈다.

홀로그램에 적힌 언어까지는 절대 해석이 불가능했지만, 그 옆에 떠오른 도식에 담긴 뉘앙스 쯤은 알아낼 수 있었다.

도시의 파손율이 심각하다. 대충 그런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천장 열면 바로 붕괴할 건 확실하네."

다만 지금은 그것보다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다른 지하 도시의 존재와 위치를 파악해야 했다.

울트가 레이를 지나쳐 걸어가 허공에 떠오른 열쇠를 잡아보았다.

도시의 중앙 시스템이 열쇠를 통해 울트의 생각을 읽어내기라도 한 건지 홀로그램에 변화를 일으켰다.

츠즈즉!

홀로그램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더니 도식화된 지형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레이가 서 있는 지하 도시를 중심으로, 과거에는 존재했으나 지금은 사라진 지상과 지하의 건축물들을 홀로그램이 그려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레이는 이곳 말고도 금지된 숲 내부에 지하 도시가 두 군데 더 존재한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땅을 열심히도 파헤쳐 놨네..."

레이가 궁시렁거렸다.

다행인 점이라면, 새롭게 발견한 지하 도시 두 곳이 레이가 발을 디디고 있는 지하 도시에 비해 규모가 훨씬 작다는 점이었다.

그때.

홀로그램이 그려낸 지면 위에서 붉은 점이 하나 깜박이더니 지하를 뚫고 쭉 내려가기 시작했다.

붉은 점은 한참을 내려가고 나서야 수백 갈래로 나뉘며 새로운 지하 도시의 형상을 그려냈다.

레이는 홀로그램이 그려나가는 도시의 구조에 기시감을 느꼈다.

'설마...'

은십자 기사단의 레오니가 보여주었던 도면 중 가장 거대한 도면.

그 도면에서 보았던 도시가 홀로그램에서 재현되고 있었다.

레이는 기가 차서 헛웃음만 나왔다.

저곳이 바로 악마 숭배자들의 본거지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흑마법사, 마물, 그리고 마경에서 넘어온 마족 또한 저곳에서 득실거리고 있을 터다.

"어디서 그렇게 기어나왔나 했더니, 저기 다 있었군."

레이가 발을 디디고 있는 지하 도시보다도 더 거대한 규모를 가진 지하 도시였다.

당장 공략할 수는 없으니 위치라도 정확히 알아가야 했다.

레이는 지하 도시가 존재하는 지면 위의 좌표값을 우선 확인한 후 지하 도시가 얼마나 깊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지 살폈다.

"..."

레이는 순간 자신이 잘못 봤나 싶어 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홀로그램에 사용되는 단위는 레이에게 생소했지만 대략적인 환산은 가능했다.

레이가 몇 번이고 홀로그램에 표기된 수치를 다시 환산했다.

허나 결과 값은 달라지지 않았다.

단단한 암석층 아래 존재하는 지하 도시의 깊이는...

대략 2 km.

"이 도마뱀 새끼들이 무슨 짓을 저질러 놓은 거야?"

레이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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