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홍등가의 소드마스터-195화 (195/446)

195화

에른스트가 레이에게 내어준 무구들.

그것들은 제국에서도 '신기'라 칭해지며 외부 반출이 쉽게 허가되지 않았다.

제국에서조차 그리 취급된다는 건 그 무구들이 인류가 제작 가능한 정상급 아티펙트란 뜻이었다.

사용자의 수준에 비례해 효율이 증폭되는 모로스와 달리, 현재 레이가 사용하는 무구들은 자체적인 성능을 최대한 끌어올리는데 치중된 아티펙트였다.

섬세한 기교가 개입될 틈은 적지만 위력 자체는 발군이었다.

트득!

레이는 불쾌한 기세가 점점 더 늘어나는 걸 느끼며 아티펙트를 제어했다.

황금색 창이 마족의 허리를 꿰뚫는 것을 시작으로, 잠깐 잦아들었던 굉음이 재차 지하도시를 메아리쳤다.

콰가가가각!!!

갑주를 뒤집어쓴 소년이 쏟아져 들어오는 악마 숭배자들과 홀로 격돌했다.

오버드라이브로 가속된 신체가 갑주의 보조 아래 한 번 더 가속되며 섬광으로 변한다.

악취나는 마물의 내장을 헤집고 나아간 레이가 마족인지 마물인지 모를 괴상한 생물의 머리를 일격에 깨부수었다.

'...아티펙트 덕분에 그럭저럭 할 만하긴 한데, 정말 손해 보는 싸움이군.'

레이가 혀를 찼다.

밖에선 기껏해야 엑스퍼트 급 수준일 놈들이 이곳에선 검강을 받아내려 한다.

전반적인 능력이 향상된데다 결손된 신체가 회복되는 속도도 빨라져서 단번에 확실하게 처리하지 않으면 굉장히 귀찮아졌다.

더군다나, 물량이 상상 이상이었다.

악마 숭배자의 숫자도 적지 않은데다 무리 지어 몰려오는 마물이 레이를 상당히 곤란하게 했다.

마족이나 마물이나 대가리를 양단해야 끝장낼 수 있었기에 잡아 죽이는데 소모되는 체력은 비슷하게 들었다.

'징글징글하네.'

이런 물량전은 결코 레이의 특기가 아니었다.

레이가 사용하는 기술의 기반이 하르시아의 공간검인 이상 아무리 신체를 단련해도 장기적인 전투는 버티기 힘들었다.

아티펙트 덕분에 체력을 안배하고는 있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아티펙트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은 결코 무한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티펙트 중 충전된 동력을 전부 소모해 기동이 멈추거나 적에게 공략되어 무력화되는 숫자가 늘어났다.

물론 갈갈이 찢겨나가는 악마 숭배자의 숫자도 적지 않았지만 죽어나가는 것보다 더 많은 숫자가 보충되고 있었다.

쿠웅!!!

레이의 사각에서 이족보행을 하는 거대한 덩치의 마물이 달려들었다.

레이는 뒤를 보지도 않고 대충 고개를 까닥였다.

직후 황금색 창이 레이의 귓가를 스치고 쏘아져 마물을 꿰뚫었다.

뻐어억!!!

마물을 꿰뚫은 황금색 창이 허공을 빙글빙글 돌다 지면에 쿡 박혀 정지했다.

재기동을 하기 위해선 코어를 냉각하고 에너지를 재충전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때 위협적인 마나의 격류가 레이의 감각에 잡혔다.

흑마법사 한 명이 대놓고 강력한 마법을 전개하려 했다.

레이는 그것이 일종의 공갈에 가깝다는 걸 알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에 곧바로 알리드로를 쏘아냈다.

촤악!!!

'술식을 베는 검'이 흑마법사의 마법진을 완전히 헝클어버렸다.

임무를 완수한 알리드로는 지면을 긁으며 속도를 줄이다 레이에게 돌아가기 위해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 찰나 육탄전에 특화된 마족들이 알리드로를 노리고 떼거리로 달려들었다.

가만히 두면 파괴당한다.

대마법전에 특화된 아티펙트를 잃을 순 없었기에 레이도 곧장 대응했다.

"필드 전개."

레이의 명령이 내려지자 구체 형태의 아티펙트, '루모아'가 알리드로를 둘러싼 적들의 한가운데 낙하했다.

쿵- 소리와 함께 지면에 박힌 루모아가 유리처럼 깨져나가며 사방으로 펼쳐졌다.

루모아로부터 유사 결계가 전개되며 일정 반경이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츠즉-!

직후 아직 기동하는 아티펙트들이 루모아의 유사 결계 안으로 진입했다.

결계 내부에 자색의 전격이 이리저리 튀더니 결계 안에 진입한 아티펙트들을 급격히 가속시켰다.

촤자자자작!!!

날붙이의 형태를 취한 아티펙트가 좁은 공간에서 삽시간에 각도를 꺾어가며 휘몰아쳤다.

검강이 깃들지 않아 마족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건 불가능했지만 팔다리를 반쯤 곤죽으로 만들기엔 충분한 위력이었다.

예기치 못한 요격을 당한 마족들이 황급히 결계의 범위를 벗어나 상처를 회복하려 했다.

허나 루모아의 결계를 벗어나는 순간 허공에 실금이 새겨졌다.

코앞에서 찬란히 빛나는 검기가 허공을 찢고 터져나오는 걸 마주하며 마족들은 무력감을 느꼈다.

콰아앙!!!!

도약 검기가 떨어져내렸다.

신체가 여기저끼 떨어져 나가 땅을 기는 마족들을 향해 레이가 다가갔다.

마족들이 몸을 떨었다.

인간이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그들은 레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레이가 마족의 머리에 검을 박아넣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알리드로가 움직이지 않았다.

알리드로의 가장 큰 취약점은 외부로 노출된 추진기관이었는데, 득달같이 달려들었던 마족들에게 결국 손상을 입었다.

큰 손상은 아니었기에 수복이 가능했지만 재기동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가장 성가신 아티펙트가 침묵하자, 그제야 저 멀리 떨어져있던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네놈은 오만 때문에 죽는 것이다."

방금까지 숨어서 기회만 노리던 그림자가 퍽 떳떳하게 입을 놀렸다.

"고작 하르시아의 기술을 일부 계승했다고 네놈이 악몽을 논하는가?"

그림자는 분노하고 있었다.

하르시아가 악마 숭배자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또한 하르시아가 이룩한 신화가 역사에 어떤 변곡점을 만들어냈는지.

레이가 그것을 편린이나마 이해했다면 감히 그따위 망발을 지껄일 수는 없었다.

"아티펙트 따위에 의존하는 반푼이가 감히...!!"

그림자는 이를 가는 시늉을 하며 본격적으로 마나를 운용했다.

미리 준비된 위치에서 얌전히 대기하던 마물들이 폭탄처럼 터져나갔다.

퍼버버벅!!

마물의 사체로부터 쏟아져 나온 내장이 서로를 엮더니 땅 위로 거대한 마법진을 그려가기 시작했다.

그림자가 조소했다.

이 지하도시엔 간단한 절차만 거치면 발동 가능한 강력한 마법진이 몇 개나 존재하고 있었다.

거기에 제물까지 바치면 그 위력은 어지간한 고서클 마법보다 월등했다.

"이곳에 발을 들였을 때부터 네놈의 죽음은 확정되어 있었다."

이제 곧 마법이 발현된다.

흑마법사들이 그림자 곁에 모여 마법의 발현을 가속시켰다.

마물과 마족들이 그들을 둘러싸고 마법진을 보호했다.

우우웅-!!

지하 도시의 대기가 요동친다.

마법진으로부터 변질된 마나가 검붉은 안개처럼 번져 나왔다.

레이는 치솟는 악의가 공간을 잠식하는 걸 느끼고 호흡을 멈춘 채 양 손에 쥔 검을 땅으로 향했다.

그 모습은 일견, 모든 걸 포기한 사람처럼 보였다.

타락한 존재가 이끌어낸 강대한 마법이 발현되기 직전.

레이는 혹시나 싶어 뒤를 돌아봤다.

"...안 보이는군."

은십자 기사단이 더는 시야에서 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구경꾼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는 걸 확인한 레이가 피식 웃었다.

"확실히 내가 하르시아 그 양반에 비해선 많이 부족하긴 하지."

그림자의 말이 백 번 옳았다.

하르시아의 이름을 입에 담으며 끔찍한 악몽을 자처하기엔, 분명 레이는 반푼이가 맞았다.

그의 천재성과 상징성을 대체하기엔 레이는 부족한 점이 많았다.

하지만 레이는 굳이 마족들에게 실언을 했다고 사과하지 않았다.

사과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이제 그녀가 너희의..."

새로운 악몽이 될 테니까.

쿠웅!!!

고위 정령인 칼가가 실체화되어 악마 숭배자들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땅에 착지한 칼가가 작정하고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태풍 같은 바람이 휘몰아치며 악마 숭배자들을 밀어냈다.

칼가의 난동은 다수의 악마 숭배자들에 의해 빠르게 제압됐지만 약간이나마 마법의 발현이 지연됐다.

긴 시간은 아니었으나 그 정도면 충분했다.

"...?"

가장 먼저 변화를 감지한 건 그림자였다.

그림자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섬찟함을 느끼고 고개를 위로 쳐들었다.

아무것도 존재치 말아야 할 천장과 맞닿은 곳에서.

마나가 집약되기 시작했다.

그림자가 대응하려 했으니 이미 한참 늦은 판단이었다.

루나가 전개했던 은폐장이 벗겨지며, 찬란히 빛나는 마법진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 허공을 뒤덮었다.

별자리처럼 천장을 수놓아가는 마법진을 바라보며 그림자가 중얼거렸다.

"그럴 리가..."

저만한 대규모 마법진을 발현 직전까지 은폐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저만한 수준의 고서클 술식을 전투가 벌어졌던 짧은 시간 안에 전개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건 다분히 상식에 가까웠다.

아무리 많은 마법사를 대동한다 해도, 또한 마법사 개개인의 수준이 아무리 높다고 해도 불가능한 일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허나, 그림자가 가지고 있던 상식은 지금 이 순간 통용되지 않았다.

"..."

루나가 가까이 모여 있는 악마 숭배자들과 마물들을 내려봤다.

붕괴 위험이 있는 지하도시에서 마냥 위력이 높은 마법을 전개하는 건 무식한 짓이었다.

한정된 공간만 확실하게 파괴해야 했다.

그렇기에 루나는, 8서클 섬멸 마법 '플레어'의 술식을 기반 삼아 자체적으로 재조합해 2차 피해를 최소화한 범위 소멸 마법으로 개량했다.

개량된 술식의 최소 난도는 7서클 이상.

예상되는 화력은 일반적인 7서클 마법을 확실히 상회했다.

[술식 완성. 마법진 완전 전개. 표적 지정 시작.]

루나의 팔목을 감고 있는 팔찌에 깃든 아프텔이 루나의 최종 연산을 도왔다.

아프텔 또한 지금 벌어지는 현상이 상식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허나, 그럼에도.

모두의 고정관념을 부수고 마법이 발현된다.

화악!!

삽시간에 지하도시가 밝아졌다.

루나가 빚어낸 초고온의 플라스마 덩어리가 태양처럼 지하도시를 밝게 비추었다.

발광하던 플라스마 덩어리가 주위를 둘러싼 마법진과 맞닿는다.

직후.

마법진을 통과하며 수천수만 가닥으로 나누어진 플라스마 덩어리가 땅 위로 강하하기 시작했다.

"...!"

마족 하나가 빗물처럼 떨어지는 초고온의 플라스마 덩어리를 향해 무심코 팔을 들어 올렸다.

플라스마 덩어리가 팔목 위에 똑 떨어졌다.

주륵...!

고통보다 먼저, 고열 탓에 걸쭉하게 녹아내린 살점이 팔뚝을 타고 뚝뚝 흘러내렸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마족이 고개를 다시 위로 쳐들었다.

초고온의 플라스마로 이루어진 빗줄기가 시야를 가득 메운 채 쏟아지고 있었다.

투둑!

세 번째 방울이 닿았을 때 마족의 어깨와 다리 하나가 완전히 녹아내렸고.

투두두둑!

일곱 번째 방울이 닿았을 땐 장기 대부분이 녹아내려 땅 위로 쏟아졌으며.

투두둑!

그리고 열 번째 방울이 닿았을 때.

홀로 굴러가던 마족의 머리가 검붉은 스푸처럼 녹아내려 형체를 잃었다.

빗줄기는 쉬지 않고 쏟아져 내렸다.

사방에서 울리는 끔찍한 괴성조차 얼마 가지 못하고 열기와 함께 녹아내렸다.

흑마법사들이 다급히 배리어를 펼쳤다.

허나 마나가 뒤섞인 초고온의 플라스마 덩어리는 배리어를 침식해 그 안으로 파고들었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광경이었으나, 흑마법사는 항변하지 못했다.

방금 전 녹아내린 턱이 얼굴에서 떨어져 나가 땅을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플라스마 레인(Plasma Rain).

그 범위 소멸 마법의 표적이 된 지대가 통째로 녹아내려 더욱 깊은 지하를 향해 주저앉는다.

미리 준비되어 있던 악마 숭배자들의 마법진은 이미 파괴된 지 오래였다.

용암이 들끓는 호수처럼 변해가는 지대 위에서 마물이고 마족이고 흑마법사고 공평하게 녹아내려 형태를 잃었다.

그 한가운데서.

흐릿해져 가는 그림자가 최후의 괴성을 질렀다.

"이 미친 제국 놈들이 대체 무엇을 보낸 거냐!!!!!!!"

닿을 리 없는 분노와 함께 그림자가 땅으로 꺼졌다.

파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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