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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등가의 소드마스터-194화 (194/446)

194화

오메가 시리즈의 은색 검신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와 동시에.

황제가 에른스트를 치하하며 직접 하사했던, 제국의 상징이 깊게 각인된 보검이 레이의 손에 쥐여 뽑혀 나왔다.

레이가 코어와 서클을 회전시키며 전진하자 아공간에서 나타난 갑주가 레이의 몸을 뒤덮기 시작했다.

갑주가 완전히 몸을 뒤덮기 전, 레이는 눈앞의 환영을 바라보며 작게 당부했다.

"아프텔, 루나를 보조해."

[알겠습니다.]

트득!

레이의 팔목을 감고 있던 팔찌가 스스로 떨어져 나갔다.

비어있는 팔목을 완전히 전개된 갑주가 둘러쌌다.

갑주에 이어, 아공간에서 나타난 십여 개의 신기가 레이의 정신과 순차적으로 연동됐다.

그 모든 신기들이 제국, 혹은 제국에 속한 가문들을 상징하는 문양으로 뒤덮여 있었다.

두 팔을 길게 늘어뜨린 마족이 레이의 모습을 지켜보며 주먹을 말아쥐었다.

레이의 시건방을 마족은 용납할 수 없었다.

제국, 그 이름이 가져다주는 위압감은 분명 만만치 않았다.

허나 그게 대체 어쨌단 말인가.

이곳은 제국의 영토 위가 아니었다.

위대한 분의 권능이 서린 축복받은 대지 위였다.

고작 한 명의 인간이 제국 따위를 내세우며 기고만장할 수 있는 장소가 결코 아니었다.

"저놈의 팔다리를 내가 찢어 놓을 것이다."

마족이 흥분을 드러내며 위대한 분의 권능을 받아들였다.

잘려나갔던 팔 하나와 헤집어졌던 눈동자가 급격히 복원됐다.

이처럼, 지금 서 있는 대지 위에선 모든 악마 숭배자가 손쉽게 기적을 행한다.

전율감에 몸을 떤 마족이 다리를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레이를 향해 폭발적으로 속도를 높였다.

콰앙!!!

땅을 박차며 삽시간에 레이의 코앞에 도착한 마족이 주먹을 휘둘렀다.

널 짓이길 것이다. 그러한 의지가 담겨 있는 일격이었다.

레이는 면전의 공기가 짓눌리는 걸 느끼며 검을 움직였다.

다가오는 주먹을 향해 검이 휘둘러졌지만, 너무 느렸다.

검이 주먹을 막아내는 것보다 주먹이 레이의 얼굴을 뭉개는 게 훨씬 빠를 것이라고 마족은 생각했다.

허나, 느릿하게 전진하던 한 자루의 검이 어느샌가 모습을 감추고 섬광이 되었다.

마족은 섬광이 되어버린 검격의 궤적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우드드득!!!

무언가가 으깨지는 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마족은 주먹을 힘껏 휘두른 후에야 흥분 탓에 흐트러졌던 시야를 바로잡았다.

두 팔이 허전했다. 어디선가 핏물이 쏟아져 나와 땅을 적셨다.

마족이 자기 몸을 내려다봤다.

강맹한 위력을 자랑하던 두 팔은 어느새 모두 바스러져 있었고 가슴은 길게 찢어져 있었다.

마족은 자신이 크게 오판했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서 황급히 뒤로 물러서려 했다.

눈앞의 존재는 결코 마족이 홀로 대적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때마침 다른 악마 숭배자가 부리는 암흑 정령이 마족이 물러서는 걸 돕기 위해 레이를 향해 몸을 던졌다.

암흑 정령은 몸을 아끼지 않았다. 몸을 아낄 필요가 없다고 암흑 정령은 생각했다.

레이는 일단 검을 놓은 오른손으로 마족의 턱을 움켜잡고 끌어당겼다.

그리고, 옆구리를 들이받을 것처럼 뛰어드는 암흑 정령을 향해 왼손에 쥔 검을 휘둘렀다.

검강이 검을 둘러싼다.

하르시아가 창조한, 차원 너머의 존재를 벨 수 있는 공간검이 정령을 파고들었다.

푸욱!!

[끼에에에에엑!!!}

레이가 검을 뒤틀어 잡아당겼다.

정령이 공간검에 의해 양단되어 가며 괴이한 비명을 내질렀다.

검은 피가 땅을 흐르다 레이로부터 흘러나온 냉기에 의해 얼어붙었다.

마족의 붉은 눈동자에 그제야 공포의 감정이 떠올랐다. 공포에 젖은 마족의 눈동자는, 마치 인간 같았다.

레이가 조소를 머금었다.

이곳은 적진 한복판이었다.

소수의 인원으로 싸움을 유리하게 이어가려면 무엇보다 기세가 중요했다.

그렇기에 레이는 마족의 눈에 깃든 공포가 대단히 기꺼웠다.

"네놈도 인간과 똑같은 공포를 느끼는가?"

마족은 공포를 숨기지 못하고 몸을 벌벌 떨었다.

벌벌 떨며, 레이를 공격할 생각도 못하고 뒷걸음질만 자꾸 치려고 했다.

레이는 그 떨림이 부디 다른 악마 숭배자들에게 전염되길 바라며, 로필렌이 '이런 때'를 대비한다고 흥얼거리던 문구를 입에 담았다.

"마음껏 울부짖어라."

레이가 검을 들어올렸다.

검을 둘러싼 공간이 일그러지며 눈부시게 푸른 섬광이 뻗어나왔다.

"네놈들이 두려워했던 가장 끔찍한 악몽이 돌아왔으니."

하르시아의 염원이 담긴, 영혼을 베어내는 검이 마족에게 휘둘러진다.

레이는 검이 나아가는 속도를 굳이 늦춰서 천천히 마족을 양단했다.

마족은 영혼이 붕괴되어가는 걸 느끼며 끔찍한 비명을 사방으로 내질렀다.

얼마 안 가 반으로 나누어진 마족의 몸뚱이가 잿가루를 휘날리며 땅에 널브러졌다.

그 광경을 두 눈으로 지켜보던 악마 숭배자들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선다.

공포에 잠식된 그들의 눈동자엔, 더는 길란트에게 향했던 조소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들을 향해 레이가 전진했다.

레이를 바라보던 그림자가 당혹감을 완전히 숨기지 못하고 다급히 외쳤다.

"죽여라!!!!!"

계약의 의거한 강제된 힘이 지하도시에 존재하는 악마 숭배자들을 억지로 움직이게 만들었다.

두려움에 떨면서도 다가오는 적들을 보며 레이는 아쉽다는 듯 피식 웃었다.

사방에서 적들이 몰려왔으나 그럼에도 레이는 멈추지 않고 다음 발을 내디뎠다.

그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던 길란트를 레오니가 잡아챘다.

"뭐해요?!! 당장 뛰어요!!!"

레오니가 승강기가 있을 방향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길란트가 당황해서 입을 뻐끔거렸다.

"하, 하지만...!"

지금 사태는 왕국에 책임이 있고, 또한 왕국이 해결해야 했다.

제국의 기사에게 모든 걸 맡기고 마음 편히 물러설 수는 없었다. 그래서는 안 됐다.

허나 지금 그딴 정론을 펼칠 때가 아니라는 걸 레오니가 다시 상기시켰다.

"하지만이고 나발이고 그냥 닥치고 뛰라고요!!! 우리가 뭐 큰 도움이나 되겠어요?!!!"

도움이 되기야 할 터다.

그 대가로 목숨을 잃겠지만 말이다.

길란트가 단원들을 돌아봤다.

단원들이 길란트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사방에서 마물들이 몰려오고 있었기에, 지금 당장 탈출을 위해 움직인다 해도 몇 명이나 무사할지 장담할 수 없었다.

"...퇴각한다."

길란트가 레이로부터 등을 돌렸다.

지하도시에서 벌어진 사태를 누군가는 살아 나가서 왕국과 제국에 알려야 했다.

또한, 저 제국의 기사라면 모든 마족을 찢어발기고 홀로 목적을 이뤄내 귀환할 수 있을 지 몰랐다.

그러니 우리는 퇴각해야한다고, 그런 비겁한 합리화를 곱씹은 길란트가 터져나올 것 같은 감정을 꾹꾹 누르며 기사단의 선두에 섰다.

길란트가 퇴로를 열기 위해 검강을 발현해 마물들을 향해 휘둘렀다.

길란트의 등 뒤에서 굉음이 울렸으나, 길란트는 돌아보지 않았다.

쿠웅-!!!

레이가 흑마법을 회피하며 악마 숭배자들을 향해 마주 돌진했다.

악신의 권능을 깊게 받아들여 신체가 변형된, 흔히 마족이라 불리는 타락한 자들의 숫자가 점점 더 늘어났다.

레이는 정신에 연결된 신기들을 제어하기 시작하며 검을 휘둘렀다.

카가가각!!!

감히 값을 매길 수 없는 제국의 보검 위에 발현된 검강이 월등한 절삭력으로 마족의 신체를 양단했다.

삽시간에 마족 하나가 조각나서 핏물로 변하는 순간 거대한 덩치를 지닌 마물이 레이를 위에서 덮쳤다.

그 찰나 황금색으로 빛나는 창이 음속을 초월한 속도로 홀로 쏘아져 마물의 머리를 꿰뚫었다.

쩌억!!!!

뒤늦게 창이 지나간 충격파가 몰아치고, 머리를 잃은 마물이 뒤로 구르다가 폭발을 일으켰다.

콰아아앙!!!

정직한 정면 대결은 답이 없다는 걸 몇 번이나 확인한 마족들이 사방을 포위한 채 동시에 레이에게 달려들었다.

그들 하나하나가 금지된 숲의 심부에서라면 그래듀에이트의 검격조차 어느 정도 받아낼 수 있는 전력이었다.

하지만 레이는 전진을 멈추지 않고 담담하게 검강에 둘러싸인 두 자루의 검을 휘둘렀다.

콰가가각!!!

섬광이 번쩍일 때마다 마족의 살점들이 으깨지며 땅을 질퍽하게 적신다.

팔다리를 잃은 마족들이 땅을 기었다.

인간이라면 가만히 방치해도 죽었겠지만, 상대는 마족이었다.

아예 확실히 끝내지 않으면 금방 회복해서 다시 덤벼들었다.

레이는 아직 숨이 붙은 마족들을 완전히 절단내기 위해 더욱 깊게 파고들었다.

그 찰나 뚱뚱한 형체를 지니고 있는 마족이 몸을 더욱 크게 부풀리더니 하나 있는 눈동자를 빛냈다.

눈동자로부터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광선 형태로 쏘아진다.

그때 레이의 후방을 지키던 방패 형태의 아티펙트가 에너지 광선을 가로막았다.

철컥!

방패의 장갑이 여덟 조각으로 나누어져 개방되며 안쪽의 핵이 드러났다.

마족이 쏘아낸 에너지 광선이 방패의 핵에 흡수되어 넘실거리다 다시 집약됐다.

쫘악!!!

집약된 에너지 다시 빛줄기로 환원되어 마족에게 쏘아졌다.

마족은 자기가 방출한 에너지로 이루어진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머리가 날아갔다.

콰가각!!

레이가 또다른 마족의 사지를 조각낸 후 검강이 서린 오메가 시리즈를 빙글 돌렸다.

잠시 모습을 감춘 검기 다발이 후방에서 마법을 준비하던 흑마법사의 머리 위에서 공간을 찢고 모습을 드러냈다.

도약 검기가 지면을 폭격한다.

콰가가가각!!!!

여기저기서 비명이 울렸다.

도약 검기에 요격당한 흑마법사 하나가 상처를 부여잡은 채 생체 장갑이 단단한 마물들을 불러들였다.

마물을 고기 방패로 삼은 흑마법사가 마법진을 다시 그려가기 시작했다.

도약 검기가 재차 떨어졌지만, 마물들은 훌륭하게 고기 방패 역할을 수행했다.

흑마법사의 마법진이 완성되어 간다.

지하도시에 이미 새겨져 있던 거대한 마법진과 연동되어 더욱 위력을 증폭시킨 마법이 발현되려 했다.

그 찰나, 대검 형태의 아티펙트가 흑마법사를 향해 쏘아졌다.

촤악!!!

흑마법사는 이번에도 마물을 방패로 활용해 몸을 지켰다.

아니, 지켰다고 생각했다.

쩌적!

"?!"

대검의 표적은, 처음부터 흑마법사가 아닌 마법진이었다.

완성되기 직전이었던 마법진의 술식이 흐트러진다.

레이가 쏘아낸 대검 형상을 한 아티펙트의 이름은 '알리드로'.

몸체 대부분이 극한의 항마력을 부여한 금속으로 제작된 알리드로의 별칭은, '술식을 베는 검'이었다.

마나가 역류한 흑마법사가 피를 울컥 토했다.

흑마법사가 뒤틀린 마법진을 간신히 붙잡고 복구하려 하는데 섬뜩한 감각이 등을 타고 흘렀다.

촤악!!!

마물의 사체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레이가 곧장 검을 휘둘렀다.

제대로 대응도 못하고 허리가 깊게 베인 흑마법사가 땅을 기었다.

레이는 거칠어진 호흡을 몰아쉬며 이를 악물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다수의 아티펙트를 동시에 다룬다는 게 정말이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 고모처럼은 안 되는군."

대여섯 개의 아티펙트를 자기 수족처럼 다루던 세리아에 비하면, 레이는 여러모로 모자랐다.

으드득!!

레이가 기어가던 흑마법사의 머리를 발로 짓눌러 으깼다.

삽시간에 악마 숭배자 다섯이 목숨을 잃었다.

허나 그보다 더 많은 숫자의 악마 숭배자가 새롭게 나타나 기세를 가다듬고 있었다.

"바퀴벌레 같은 새끼들."

퇴각하고 있는 길란트 쪽으로 전력이 일부 나뉘었는데도 계속해서 레이를 향해 기어나오고 있었다.

레이가 아무리 강자라고 해도, 혼자였다면 말라 죽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레이는 히죽 웃었다.

공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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