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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등가의 소드마스터-184화 (184/446)

리오슈코 (4)

184화

레이가 일대를 뒤덮는 거무스름한 장막을 응시했다.

팔찌에 깃든 아프텔이 레이에게 조언했다.

[외부와의 간섭을 차단하는 종류의 결계입니다. 제 성능도 일부 제한될 겁니다.]

"그래?"

레이가 조소를 억지로 삼켰다.

리폴이라 스스로를 소개한 적은 숲을 돌아다니는 용병들의 시선을 차단해 일을 깔끔히 끝내려던 것 같았지만, 레이가 보기에 그리 우스울 수도 없었다.

외부와의 차단은 레이 또한 바라던 바였다.

장막이 완전히 전개되자 더욱 극심히 변형된 마물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레이가 쉽사리 형용키 힘든 마물들의 외관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곳도 결국 마경은 마경이군..."

평범한 대지 위에서 저런 극단적인 형태의 변형이 붕괴되지 않고 유지될 리 없었다.

금지된 숲을 타고 흐르는 악신의 축복이 변형된 마물들의 삶을 용인해주고 있었다.

"레온."

루나의 부름에 레이가 고개를 돌렸다.

고요히 가라앉은 은색 눈동자가 레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레이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인 후 고개를 저였다.

만약 이곳에 제트가 없다고 해도 루나가 굳이 전력을 드러낼 필요는 없었다.

루나의 전력을 보여주기엔, 상대가 너무나 하찮았다.

저놈 뒤에 누가 더 있을지 모르는데 괜히 흔적을 남길 필요는 없었다.

"끼에헤에엑!!!"

마물의 가죽을 뚫고 나온 내장이 제멋대로 날뛰며 채찍처럼 휘둘러졌다.

제트는 자기도 모르게 욕설을 중얼거렸다.

맨정신으로 보기엔, 실로 좆 같은 광경이었다.

콰가가가각!!!

"!!"

지면을 파고든 내장이 제트의 발아래를 뚫고 나와 기습했다.

제트가 뒤로 물러서며 내장을 베어내는 순간 내장 조각이 꿀렁거리더니 굉음과 함께 폭발했다.

콰앙!!

"큭...!"

제트는 에른스트가 특별히 하사한 갑주의 방호력으로 폭발을 견뎠지만 뒤로 연거푸 물러나야 했다.

사방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마물의 몸뚱이가 제멋대로 터져대니 냉정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리폴은 전장과 한 걸음 떨어진 거리에서 바짝 마른 손아귀를 움직이며 마물들을 조율했다.

흑마법을 통해 개조되고 강화된 마물들은 악신의 축복이 흐르는 마경 위에서 쉽사리 죽지 않았다.

치명상을 입었다 해도 내장 한 조각까지 폭발을 일으켜 상대를 위협했다.

마물을 확실히 처치하기 위해선 아까 전 '바위 악어'를 불태웠던 수준의 화력이 필요했다.

허나 어쭙잖은 수준의 마법사 두 명이 그런 고위력의 마법을 연거푸 사용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리폴이 그리 생각하며 입꼬리를 찢더니 레이를 가리키며 중얼거렸다.

"날 귀찮게 한 만큼 쉽게 죽이진 않을 거다. 실험체로 사용해 마물들과 뒤섞어주마."

"..."

레이가 잠시 전장에서 고개를 돌렸다.

사람의 고기조각으로 만들어진 피웅덩이가 바로 뒤에 있었다.

마음을 가라앉히듯 숨을 길게 내쉰 레이가 루나를 불렀다.

"룬, 정령은 좀 써야겠다."

루나가 곧장 고위 정령 칼가를 제외한 계약한 모든 정령을 실체화시켰다.

중급 정령 하나, 중상급 정령 둘, 상급 정령 하나가 실체화되며 강풍을 일으켰다.

차원 너머의 육체가 손상될 걱정이 없는 정령들은 과감하게 나아가 마물을 찢어발겼다.

여기저기서 폭발이 일었지만 태풍처럼 휘몰아치는 공기의 흐름이 폭발의 위력을 반감시켰다.

리폴이 그 광경을 보며 갈라진 목소리로 웃었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패가 정령이었더냐?"

정령과 계약을 맺고 있던 건 루나만이 아니었다.

리폴 또한 정령을 실체화시켰다.

상급 암흑 정령 두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각각 와이번과 도마뱀 형상을 지닌 정령이 검게 물든 불과 얼음을 토해내며 전장에 뛰어들었다.

"좌절하고 절망해라."

이곳은 축복이 서린 대지 위다.

검게 물든 모든 존재가 절대적으로 유지한 고지를 점한다.

너희들은 부질없이 스러질 것이라고 리폴이 조소하는 순간.

레이가 스태프를 뒤틀어 검날을 뽑아냈다.

"제트, 검 한 자루."

제트가 예비로 가지고 있던 검을 레이에게 던졌다.

값비싼 아티펙트는 아니지만 높은 완성도를 지닌 철검을 뽑아낸 레이가 차가운 눈으로 암흑 정령을 응시했다.

"와이번처럼 생긴 놈, 잠깐 붙들어봐."

[크륵!]

루나의 정령이 검은 불꽃을 내뿜는 암흑 정령을 포위한 채 몸을 붙들고 늘어졌다.

레이가 와이번의 형상을 한 암흑 정령에게 홀로 접근했다.

리폴은 레이가 이곳을 탈출하기 위해 안달이 나서 진형을 이탈했다고 여기고 마물들을 레이에게 돌진시키려 했다.

"부질없는 발악을 하는구나."

어지간한 수준의 마법사가 상급 암흑 정령에게 실체화가 해제될 만큼 치명적인 손상을 입히기 위해선 시간이 적지 않게 걸린다.

그 사이 마물들이 레이를 씹어먹을 것이다.

리폴이 그리 생각하던 찰나 레이가 무감정하게 암흑 정령의 목에 검을 박아 넣었다.

푸욱!!

"?!"

갑작스러운 충격에 심장이 크게 뛴다.

계약을 맺은 암흑정령으로부터 막대한 공포와 고통이 역류해 리폴의 뇌리를 뒤흔들었다.

리폴이 자기 목을 붙잡고 꺽꺽거리며 무릎을 꿇었다.

리폴은 어떻게든 정신을 다잡기 위해 노력했지만, 레이는 정령의 목 아래에 박아넣은 두 자루의 검을 양옆으로 뒤틀어 끌어당겼다.

뿌드드드드득!!!

와이번 형상을 한 암흑 정령의 목이 거칠게 절단되기 시작했다.

정령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괴성을 지르려 했으나 목이 거의 다 잘려나가 목소리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이윽고 검은 핏물을 뒤집어쓴 레이가 정령의 목을 완전히 절단해버렸다.

그꼴을 본 도마뱀 형상의 암흑 정령이 황급히 뒷걸음질치다 몸을 돌렸다.

공포에 질린 암흑 정령이 계약을 파기하고 실체화를 해제하려 했으나 그보다 빠르게 눈앞의 공간이 찢어졌다.

파가각!!!

도약 검기가 떨어져 내리며 정령의 뺨을 길게 찢어냈다.

옆으로 휙 뒤집어진 정령의 목에 레이가 검기가 서린 검을 박아넣었다.

[끼에에에엑!!!!!]

소름끼치는 정령의 비명소리는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레이가 다시 한 번 검은 핏물을 뒤집어썼다.

상급 암흑 정령 둘이 삽시간에 목이 잘려나간 채 서서히 사라졌다.

리폴이 자기 머리를 쥐어뜯는 사이 통제되지 않은 마물들이 제멋대로 날뛰었다.

루나가 정령에게 명령했다.

"한곳으로 모아."

정령들이 강력한 바람을 일으켜 마물을 한곳으로 몰았다.

좁은 공간에 우글거리게 된 마물들이 다시 흉폭한 기세를 일으키며 정령에게 돌진하려 했으나, 그보다 루나가 만들어낸 주먹만한 크기의 화염구가 떨어지는 게 빨랐다.

콰아아아아앙!!!!!!!!!

부채꼴 형태로 터져나간 화염이 마물들을 통째로 녹였다.

마물들은 열기 속에서 녹아내리며 서로 들러붙은 채 괴성을 지르다 결국 침묵했다.

루나가 괜히 헉헉 숨을 내뱉는 사이.

레이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려는 리폴의 심장 옆에 검기가 서린 검을 박아넣었다.

푸욱!!

"크아아아악!!!"

리폴이 비명을 지르며 발악했다.

레이는 검날이 뽑혀나온 스태프로 리폴의 손목을 잘라내고는 무릎을 굽혀 리폴의 목 아래를 짓눌렀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꺽꺽대는 리폴을 보며, 레이가 덤덤하게 물었다.

"숲에 처박혀 용병 놈들이나 상대하다 보니 왕이라도 된 것 같았나?"

"끄윽...!! 크륵...!!"

"개잡놈이 악마의 힘 좀 나눠 받았다고 실성했구나."

리폴이 그렇게까지 폄하될 만큼 약자는 아니었다.

허나 레이에게 함부로 혀를 놀릴 수 있는 위치는 더더욱 아니었다. 리폴은 그것을 몰랐다.

레이가 리폴의 턱을 으스러뜨려가며 씹어 말했다.

"너 같은 벌레가 여기 얼마나 드글드글..."

레이가 말을 하다말고 눈가를 좁혔다.

리폴의 눈가에서 핏물이 줄줄 쏟아지기 시작했다.

레이가 욕설을 입에 담았다.

"이 빌어먹을 놈이 진짜..."

콰앙!!!

리폴의 신체가 터졌다.

루나가 펼친 배리어가 레이에게 향했던 육편 조각들을 막아냈다.

레이가 입안을 맴도는 거친 욕설을 삼키며 일어섰다.

본래는 리폴을 심문해 정보를 얻으려 했는데 이리 죽어버리니 더 얻을 게 없었다.

제트가 일대에 내려앉았던 거무스름한 장막이 걷혀가는 모습을 바라보다 레이에게 다가와 물었다.

"어찌하실 겁니까?"

"어쩌긴. 잡것들이 꼬리를 자르기 전에 길드장 놈이라도 빠르게 잡아와서 족쳐야지."

이번 사태의 유이한 끈이 '라스커'란 용병과 용병 길드 길드장이었다.

제트가 조언했다.

"길드장 급 인사를 납치하거나 해치면 뒷수습이 힘들 겁니다. 왕국의 고위층과 무력적인 충돌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

레이가 잠시 침묵하다 주머니를 뒤졌다.

레이는 사람을 해치는 것이 그리 즐겁지 않았다.

하지만...

팅!

레이가 손가락으로 튕긴 왕국의 은화가 허공을 날았다.

빙글빙글 돌던 은화가 올다의 육편이 만들어낸 피웅덩이 위로 퐁당 떨어졌다.

찐득한 핏물 사이로 천천히 가라앉은 은화를 바라보며, 레이가 물었다.

"악마 숭배자와 야합한 자들에게 자비가 필요한가?"

"뜻대로 하명해주십시오."

제트가 깊게 고개를 숙였다.

*

용병 길드의 길드장이라고 하면 혹자는 거칠고 천박하며 무식한 이미지를 말하고는 한다.

그러한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리오슈코의 용병 길드 길드장은 달랐다.

금지된 숲은 알리모 왕국에게 있어서도 굉장히 중요한 장소다.

왕국의 고위층은 용병들이 금지된 숲에서 제멋대로 문제를 일으키길 원치 않았고, 반대로 용병들은 통제를 싫어했다.

이들을 중재하기 위해선 양쪽 모두의 입장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자가 필요했다.

베렛은 그 조건에 어느 정도 부합하는 자였다.

그가 성인이 되기 전에 쫓겨난, 알리모 왕국 유력 귀족의 사생아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어쨌든 베렛은 용병 길드의 길드장 직을 수행하며 나름 단단한 입지를 다졌다.

약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베렛은 어딜 가든 목에 힘을 줄 수 있었다.

허나 지금은 아니었다.

입이 막힌 채 밧줄에 거꾸로 매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으읍...! 읍...!!"

베렛은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베렛은 밀려있던 업무를 새벽까지 처리하고 잠에 들려고 할 때쯤 인기척을 느끼고 검을 휘둘렀었다.

가문에 있을 때 얻어 배운 연공법과 검술 덕분에 실력이 괜찮았음에도 불구하고, 베렛은 곧장 제압당해 이곳으로 끌려왔다.

문을 지키는 수하들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레이가 차가운 밤 공기를 느끼다가 창문을 닫고 말했다.

"입 좀 열어줘 봐."

제트가 베렛의 입에 쑤셔 넣었던 밧줄을 빼냈다.

베렛이 입이 열리자마자 소리쳤다.

"내, 내가 누구인 줄 알고...!! 읍읍!!"

곧장 다시 베렛의 입을 막은 제트가 쇠막대기를 들었다.

레이가 친히 마법으로 끝 부분을 벌겋게 달궈준 쇠막대기였다.

제트가 넓게 핀 쇠막대기의 끝 부분으로 베렛의 흉부를 지그시 눌렀다.

치이이익!

"끄으으으읍!!!!!!!!!"

제트가 쇠막대기를 떼었다 눌렀다 하는 사이.

레이가 루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나가 있어도 돼."

"..."

루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레이는 잠시 루나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이런 광경을 대놓고 보여주는 게 레이도 그리 유쾌하진 않았다. 허나 필요한 과정이었다.

레이는 고아들을 세상물정 모르는 천사처럼 키우려고 수집한 게 아니었다.

미래에 중요한 역할을 할 루나인 만큼 세상의 어두운 면도 직시해야 했다.

"끄으읍!!!"

베렛이 연거푸 비명을 질러대는 걸 보고도 루나는 차분했다.

아까 전, 평범한 사람이 보았으면 까무러쳤을 마물들을 보고도 루나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었다.

레이는 언제나 차분함을 유지하는 루나가 믿음직스러웠다.

'잘 키운 레전드리 하나 열 유니크 안 부럽다더니.'

레이가 아직도 정신 못차리고 그딴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충분히 베렛을 조진 제트가 다시 입을 열게 해주었다.

신음을 흘리는 베렛에게 레이가 물었다.

"금지된 숲의 흑마법사와 무슨 관계야?"

"무... 무슨 말을 하는...!"

제트가 재차 베렛의 입을 막았다.

레이가 식어가는 쇠막대를 보다가, 그 옆에 있는 커다란 쇠못을 들어 베렛의 오른쪽 무릎에 박았다.

베렛이 억눌린 비명을 질렀으나 레이는 거기서 끝낼 생각이 없었다.

"마법이 좋긴 좋아."

레이가 스태프를 들어 올렸다.

스태프의 끝에서 시푸른 전기가 번져 나왔다.

레이는 제트에게 물러서라고 손짓한 후 베렛의 무릎에 박힌 쇠못에 스태프를 가져다 댔다.

베렛이 경련하기 시작했다.

한 10초 정도 지났을 때 스태프를 때어낸 레이가 핏발이 줄기줄기 선 베렛의 눈을 바라봤다.

"어디 계속 까불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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