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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등가의 소드마스터-163화 (163/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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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화

마르도니스는 영주성 홀에 배치된 의자에 앉은 채 문밖의 광경을 쳐다봤다.

거대한 바위 같던 기사들이 피투성이가 되어 뒹굴고 있었고 광택이 어렸던 갑옷들은 종잇장처럼 뜯겨 나가 지면에 박혀 있었다.

"..."

다수의 귀족들이 이곳에 모여있는 만큼, 그들을 호위하기 위해 집결된 병력의 위세는 대단했다.

전부가 최정예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기사라고 목에 힘 좀 주던 작자들만 일백 명이 넘었다.

거기에 병사들도 있었고 마법사들도 있었고 성직자들도 있었다.

허나 창과 방패를 든 병사들은 절대권역이 펼쳐지자마자 저항도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절대권역에서 움직일 수 있는 고급 병종들은 지금 7할 이상 박살나서 영주성의 장식품이 되어 있었다.

아직 무사한 병력이 일시에 달려든다 해도 결과가 변하진 않을 터다.

천운이 따르고 따른다면 에른스트의 팔 하나쯤 베어낼 수도 있겠지만... 그래 봤자 무엇을 얻겠는가.

더군다나 이곳에 에른스트가 혼자 왔을 리가 없었다.

그래듀에이트와 고위 마법사가 소수나마 동행했을 게 분명했다.

상황이 이상하게 흐르면 그들까지 합류할 것이다.

저벅 저벅

더는 다가오지 않는 군사들 사이를 에른스트가 홀로 걸었다.

마르도니스는 술잔을 들어 한 모금 머금었다.

기록만으로는 쉽사리 체감하기 힘들었던 소드마스터의 위용이 이제야 제대로 다가왔다.

제국의 황제조차도 어째서 소드마스터란 존재를 껄끄러워하는지 십분 이해됐다.

마르도니스는 머금었던 술을 삼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런 상황에서 무얼 더 어떻게 버티겠는가.

"황제 폐하의 명을 거역하려던 게 아니오. 사정이 있어서 출발이 좀 늦었소. 에른스트 경께서 굳이 먼 길을 찾아와 주었으니..."

함께 황도로 돌아가자.

마르도니스는 그런 얘기를 하려고 했다.

허나 마르도니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에른스트가 검을 휘둘렀다.

촤악!

마르도니스의 목 위가 분리되어 떨어졌다.

당혹이 서려 있는 마르도니스의 머리를 잡은 에른스트는 마르도니스의 몸을 누인 채 다시 한 번 검을 휘둘렀다.

촥!

갈라진 가슴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가슴 사이를 파고든 에른스트의 손이 드래곤하트를 잡아 쥐었다.

미리 준비해둔 상자에 드래곤하트를 수납하는 에른스트를 보며, 벌레 씹은 표정을 한 마티아스 후작이 다가왔다.

"이게 황제 폐하의 뜻이오?"

"그렇소."

마티아스 후작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성벽이 통째로 무너져내리는 등 난리는 났지만 정작 죽은 사람은 없었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죽거나 반병신이 될 자들이 우수수 쏟아질지 모르지만 어쨌든 에른스트가 직접 죽인 자는 마르도니스 한 명이었다.

이것도 암살이라 불러야 하나.

속으로 중얼거린 마티아스 후작이 테이블 위의 술병을 신경질적으로 옆으로 쳐냈다.

마티아스 후작은 유리 깨지는 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가라앉히려 노력했다.

이게 정녕 황제의 뜻이라면, 황제는 이리 말하고 있었다.

너희들 까분 거 눈 감아줄 테니, 앞으로 내 계승 작업에 적극적으로 협조 좀 해라.

황제가 소드마스터를 보낸 이유는 최대한 빠른 시간에 최대한 피를 덜 보고 일을 마치기 위해서였다.

황제는 황권 싸움 때문에 분열되고 혼란해진 제국을 차근차근 다잡을 시간이 없었다.

그러니 황권 싸움의 중심인 황족만 죽이고 귀족들은 건드리지 않은 것이다.

건드리지 않았다기엔 어폐가 심하지만, 하여튼 목숨은 다들 무사하지 않은가.

이번 충돌에서 귀족들이 우수수 죽었다면 황위 계승 문제와 별개로 내전에 가까운 사태가 터졌겠지만 황제가 그리 멍청한 선택을 하진 않았다.

마티아스 후작은 무너져 내린 성벽과 무력화된 병력들을 돌아봤다.

손해가 참 막심했다.

허나 여기서 더 황실과 엇나가 봤자 얻을 게 없었다.

나이 지긋한 황제가 괜히 더 일 키우지 말고 적당히 덮어버리자고 먼저 손을 내밀었는데, 이걸 쳐내면 진짜 전쟁이었다.

전쟁이 터지면 제국은 쪼그라들고 마티아스 후작은 목이 잘리는 것으로 끝이었다.

"...황제 폐하께서는 포이보스에게 황위를 물려주실 생각이시오?"

"그렇소."

"알겠소. 제국의 신하로서 황제 폐하의 결정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포이보스 님을 충직히 보필하도록 하겠소. 만족하오?"

에른스트가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마티아스 후작은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밖으로 나서려다, 자신을 에른스트가 계속해서 주시하고 있자 미간을 찌푸렸다.

"내게 더 바라는 게 있으시오?"

"집무실을 좀 빌려줄 수 있으시오?"

에른스트를 위아래로 훑어본 마티아스 후작이 한숨을 쉬었다.

"피 좀 닦아내고 오시오."

*

황명에 따라 제국의 수도로 귀환하지 않고 버티고 있던 황족은 총 두 명이었다.

둘중 더 거대한 세력을 배경으로 지니고 있던 마르도니스를 에른스트가 직접 베었다.

이 소식은 금방 제국 전역으로 퍼질 것이다.

아직까지 버티고 있던 황족도 마르도니스의 소식을 듣는다면 알아서 황도로 출발할 것이다.

본인이 가기 싫다고 해도 그의 지지 세력들이 억지로 황족을 보낼 게 분명했다.

그들은 황제의 진노를 버텨낼 만큼 강하거나 결집된 무리가 아니었다.

혹시라도 그들이 끝까지 버티거나 수작을 부린다면 그땐 에른스트가 제국의 군단을 이끌고 풀 한 포기 남기지 않고 짓밟을 예정이었다.

"흠..."

마티아스 후작의 집무실에 방문한 에른스트가 통신 아티펙트를 작동시켰다.

눈앞의 풍경이 덧씌워지며 궁궐을 닮은 웅장한 장내가 새롭게 그려졌다.

귀족 혹은 황실과의 직통 연락을 위한 아티펙트였으므로 귀족의 품위와 예법을 지킨답시고 이런 까탈스러운 기능이 첨가되어 있었다.

물론 공간을 이동한 건 아니었고, 어디까지 환영에 가까웠다.

황실과 먼저 통신을 연결해 상황을 보고한 에른스트는 차분하게 수하의 소식을 기다렸다.

시간이 꽤 흐른 끝에, 아도이아의 보고가 도착했다.

*

아도이아는 가문의 기사 둘과 로얄가드 한 명, 그리고 마법사 둘의 협조를 받아 빠르게 이동했다.

현재 황족 두 명이 지지세력과 황실이 보낸 군사들의 보호를 받으며 황도로 향하고 있었다.

아도이아가 지금 찾아가는 황족의 이름은 브랜틀리였다.

황제의 먼 친척되는 황족이었으며 기반이 꽤 탄탄했지만 황제의 명령을 거부하지 않고 황도로 출발한 자였다.

마침내 황도로 향하는 길목에서 브랜틀리의 마차를 발견한 아도이아가 마차를 향해 성큼성큼 접근했다.

마차를 호위하던 병력들이 곧장 무기를 뽑았으나 아도이아의 견장에 새겨진 가문의 상징과 아도이아와 함께하는 로얄가드를 보고 기세를 죽였다.

아도이아는 브랜틀리의 호위 책임자인 로얄가드에게 문서를 하나 턱 건네고는 병사 사이를 헤쳐 걸었다.

호위 책임자인 로얄가드가 문서를 확인했다.

문서에는 국새가 찍혀 있었다.

국새가 찍혀 있었다고 아무 절차 없이 아도이아를 브랜틀리에게 접근시킬 수은 없었기에 약간의 기 싸움 끝에 신원 확인 작업이 끝났다.

다시 마차로 나아간 아도이아가 마차 문을 벌컥 열었다.

무례한 행동에 마차에 타고 있던 브랜틀리가 눈을 찌푸렸다.

아니, 찌푸리는 척을 했다.

뭐라 단정키 힘든 이질을 느낀 아도이아가 곧장 브랜틀리의 멱살을 잡고 마차에서 끌어내렸다.

다들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무기를 뽑아든 순간.

아도이아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돌조각을 브랜틀리의 뺨에 박아넣었다.

돌조각의 정체는 일종의 과충전된 마석이었다.

아무리 정교하게 은폐된 마법으로 위장했다 해도 과충전 된 마석을 얼굴에 꽂아넣으면 마나가 요동치며 위장이 풀릴 수밖에 없었다.

물리적 위장을 했다고 해도 마나가 피부를 타고 흘러넘치며 불순물을 죄다 밀어낼 터였다.

방법이 거친 만큼 후유증도 따랐지만, 실력 출중한 성직자들이 이곳에 많았기에 아도이아는 신경 쓰지 않았다.

브랜틀리가 비명을 지름과 동시에 수십 개가 넘는 칼날이 아도이아를 향했다.

허나, 이내 모두가 브랜틀리를 다시 바라봤다.

흘러넘치는 은발과 적안이 사라지고 갈색 머리와 검은 눈동자가 나타났다.

드래곤하트로부터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황족의 기세 또한 씻은 듯이 사라지고 없었다.

아도이아는 목에 겨눠진 검을 신경질적으로 쳐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황실의 군사들도 브랜틀리를 지지하던 세력의 병력들도 다들 당황하고 있었다.

하긴, 대역을 내세웠다는 사실을 그리 많은 이들에게 공유했을 리는 없었다.

이 자리에서 아주 극소수만이 브랜틀리가 대역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황실의 군사들을 제외하고 전부 무기를 버려라. 그리고 이 자의 신원을 직접 확인한 자들을 당장 포박해. 따르지 않으면 반역죄를 피하지 못할 것이다."

아도이아는 수십의 칼날 사이에서 홀로 섬뜩한 기세를 뿜어내며 명령했다.

*

"워프 게이트요?"

레이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되물었다.

"이게 워프 게이트의 열쇠라도 되나요?"

"워프 게이트에 대해 잘 아나요?"

"잘 모르죠. 거의 모릅니다."

게이트에 관한 정보는 아무나 쉽사리 구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레이에겐 아프텔이 있기에 찾아보려면 찾아볼 수는 있겠지만, 어쨌든 당장은 무지했다.

스페라는 레이에게 게이트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게이트의 용도는 당연히 사람이나 물자의 운송이었다.

다만 게이트를 하나 만들기 위해선 반영구적인 동력원도 필요했고 자금도 어마어마하게 들었으며 고위 마법사 다수가 오랜 기간 게이트 건설에 매달려야 했다.

그러고도 유지관리 비용이 계속해서 깨졌으며 안전하게 가동하는 데 고위 마법사의 도움이 필요했다.

때문에 제국조차 게이트는 요충지 근방에 적은 숫자만 건설해서 운용했다.

"황도는 마나 농도가 너무 높아 게이트를 운용하기가 힘들다고 해요. 또 역으로 침입의 위험성도 있어서 황도 안에는 게이트가 없고 인근에 하나 존재해요."

그밖에 국경이나 군사적 요충지에 게이트가 배치되어 있었다.

워프 게이트를 타고 이동하기 위해선, 반대쪽에도 워프 게이트가 존재해야 했다.

건설된 워프 게이트 없이 먼 거리를 워프 하기 위해선 대마법사라 해도 오랜 준비가 필요했다.

"레이, 프리슬란 가문의 영지는 여기저기 쪼개져 있어요. 그중 한 곳이 알베미나 지역이고요. 비교적 남동부와 가깝죠. 황제 폐하께서 프리슬란 가문에 그 지역을 하사하신 이유는..."

마경, 혹은 변경백.

그들을 견제하려는 의도였다.

레이는 스페라의 말을 듣다 말고 불쑥 물었다.

"혹시 알베미나 지역에 게이트가 있나요?"

"아주 작은 사이즈라 대규모로 이동은 불가능하지만 존재해요. 프리슬란 가문의 관계자들이 수호하고 있죠."

"..."

머리를 굴려보던 레이가 심각한 얼굴을 했다.

"아가씨, 그럼 황족이 워프게이트를 사용해 남동부로 탈출하려 한다면 어떡하죠?"

"워프 게이트는 미리 인증된 자가 아니면 가동시키기도 힘들고 황실에 충성하는 병력들이 그곳을 지키고 있어요. 만약 그들을 제압할 수 있을 만큼 대규모 병력을 동원했다면 들켰을 거예요. 그럼 대처할 수 있고요."

"아뇨."

레이는 고개를 저었다.

우발적으로 계획을 세워 병력을 움직였다면 분명 들켰을 터다.

황제의 권위가 예전과 같고 제국이 혼란스럽지 않았다면 역시나 들켰을 터다.

허나 제국이 혼란스러운 가운데 미리 계획을 세워 철저히 위장해 일을 벌였다면 과연 어떨까.

더군다나 황제는 늙었고, 다들 줄을 타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었기에 황제의 판단과 명령은 실시간으로 다른 이들의 귀에 흘러들어 갔을 확률이 높았다.

"아가씨, 저였다면 워프 게이트를 노렸을 거예요."

"그건..."

"근데 그냥 노리진 않았을 거예요. 워프 게이트 쪽도 대비가 충분히 되어 있을 테니... 저 같으면 지금 아가씨를 기습해 포로로 잡았을 것 같아요."

"...?"

"에른스트님의 사랑을 받고 있으니, 아가씨만 손에 넣으면 프리슬란 가문 관계자들을 겁박해 길도 열 수 있고, 남동부로 넘어간 후에도 아가씨를 인질 삼아 에른스트 님의 움직임도 제약시킬 수 있으니까요."

"..."

스페라는 무언가 반론을 하고 싶었다.

레이의 말은 그럴듯했지만 제국의 행정을 하나하나 고려하면 그런 식의 은밀한 군사 작전은 굉장히 난도가 높았다.

더군다나 이동 중인 스페라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기습하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스페라가 고개를 젓자 레이가 한숨을 푹 쉬었다.

"에른스트 님을 제외하면 프리슬란 가문 사람들이 아가씨를 별로 좋아하진 않을 것 같은데, 그들 중 누군가가 아가씨 위치가 노출되는 걸 실수인 척 묵인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레이가 비약된 추측과 모욕을 계속 입에 담자 결국 스페라의 표정이 나빠졌다.

프리슬란 가문의 저택에 도착하고 난 다음에 얘기하자.

스페라가 불쾌함을 내비치며 그리 말하려던 순간 마차가 덜컹 멈췄다.

이후 여기저기서 검 뽑히는 소리가 들렸다.

레이와 스페라의 눈동자가 똑 마주쳤다.

잠깐의 침묵 후.

레이가 자신을 가리키며 조심스레 물었다.

"그...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주실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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