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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등가의 소드마스터-136화 (136/446)

선물 (2)

136화

레아는 계속해서 세상 서럽다는 듯 울어 재꼈다.

물론 듣는 입장에선 세상 시끄러웠을 뿐이기에, 레이가 인상을 찌푸리며 타박했다.

"레아, 자꾸 울면 선물 안 줄 거야."

레이의 한 마디에 레아가 금방 울음을 그쳤다.

눈물을 쓱쓱 닦아낸 레아가 해맑게 웃으며 기대에 찬 눈빛을 보냈다.

"안 울면 선물 줘? 레아 안 울거야! 레아 안 울어! 선물 줘!"

"이미 한 번 울어서 안 줄 건데?"

"빼애애애애애애애애액!!!!!"

세상 떠나가라 울어 째끼는 레아를 보고 레이가 턱을 쓰다듬었다.

레아의 울음 소리를 듣고 있자니 옛날 생각이 자꾸 떠올랐다.

"우리 레아, 아빠 닮아서 목소리가 참 우렁차구나..."

느그 아빠도 나한테 이렇게 빽빽 대다 하늘나라로 갔는데 말이다...

레이가 속으로 뒷말을 중얼거리는 사이 레아가 레이의 다리에 앙증맞은 주먹을 휘둘렀다.

레아는 자기 것만 쏙 빼놓고 선물을 가져온 오빠가 세상 원망스러웠다.

"오빠 싫어!! 오빠 미워!! 오빠랑 결혼 안 할 거야!!!"

"누가 해준대?"

"빼애애액!!!"

쉬지 않고 울어 재끼는 레아를 보고 벨라가 한숨 쉬었다.

레아를 울리는 게 레이 일이라면 레아를 달래는 건 벨라의 몫이었다.

레이가 열심히 레아의 기강을 잡는 사이 벨라는 방에 들어가서 장신구 함을 열었다.

장신구 함에서 고리가 달린 은줄을 찾아낸 벨라가 선물 받은 귀걸이 한 쪽을 은줄에다 걸었다.

임시방편으로 완성한 목걸이를 손에 쥔 벨라가 레아를 불렀다.

"우리 딸! 일로 와 봐!"

벨라가 부르니 레아는 빽빽 울면서도 벨라에게 쪼르르 걸어갔다.

벨라가 목걸이를 내보이며 활짝 웃었다.

"우리 딸 선물 여기 있었네?"

레아는 선물이 있다는 말을 듣고 우는 걸 잠시 미루고 눈을 닦았다.

레아가 눈을 비비느라 바쁜 사이 벨라가 얼른 레아의 목에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우리 딸 목걸이 너무 예쁘다!"

"목걸이?"

레아가 평소보다 더욱 빨갛게 변한 눈동자로 목에 걸린 목걸이를 내려봤다.

푸르게 반짝이는 목걸이가 어린 아이의 눈에도 참 예뻐 보여, 단숨에 시선을 앗아갔다.

레아가 깜짝 놀라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다 벨라에게 물었다.

"선물? 이거 레아 선물이야?"

레아가 감정을 주체 못하고 입꼬리를 실룩이자 벨라가 얼른 설명을 덧붙였다.

"그럼. 이거 오빠가 주는 선물이야."

"진짜로?"

"진짜로!"

"오빠 최고!"

눈가에서 물기를 완전히 털어낸 레아가 두 팔을 들고 집 안을 방방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보는 사람이 다 정신 없었던 탓에, 벨라는 열심히 레아를 진정시킨 후 잠시 방에 데려다 앉혀 놨다.

아이 다루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던지라 땀을 뻘뻘 흘린 벨라가 방에서 나오며 한숨을 쉬었다.

"아들."

짐짓 화난 듯한 벨라의 목소리에 레이는 동생 녀석의 기강을 너무 열심히 잡았나 고민했다.

허나 벨라는 레아 이야기는 입에 담지도 않고 다가와 휠체어에 앉은 레이를 꼭 안아주었다.

"아들, 내 둘도 없는 아들."

벨라는 천진난만한 레아 앞이었기에 잠시 미뤄놓았던 감정을 레이에게 전했다.

"넌 내 아들이야. 알고 있지?"

몇 번이고 그 사실을 확인한 벨라가 레이의 뺨에 입을 맞췄다.

"그러니 엄마 좀 걱정 끼치지 마렴. 부탁이야."

벨라의 목소리는 착잡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레이는 벨라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채 호흡을 골랐다.

언제나 그리운 온기였고, 언제나 그리운 체취가 레이를 맞아주었다.

잠시 동안 가만히 벨라에게 기대고 있던 레이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 엄마. 아들이 얼마나 튼튼한데. 앞으로 다치지도 않을 거고, 다쳐도 며칠이면 자리 털고 일어날 거야."

"대답만 잘해?"

"대답이라도 잘 해야죠, 어머니."

레이가 낄낄 웃었다.

벨라는 어린 시절부터 고통을 숨기는데 익숙했던 레이의 얼굴을 만지작거렸다.

레이가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게 자기 탓인 것 같아서 이럴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우리 아들 더 잘생겨졌네."

레이의 몸을 가린 붕대 안의 상처가 얼마나 심각한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얼굴만큼은 과거의 흉터가 사라져 있어 훨씬 보기 좋았다.

"흉터 좀 진즉 지우지 그랬니."

"지금도 인기가 많은데 더 잘생겨지면 감당을 어떻게 하라고."

레이는 능글맞은 답변을 중얼거리며 벨라의 눈동자를 바라봤다.

아름다운 벨라의 눈동자는 과거보다는 조금 낯선 느낌을 주었다.

새로운 가족과 진짜 자신의 아이가 생긴 벨라는 레이에게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고, 레이 또한 그러기를 바랐다.

허나 조금 섭섭한 감정이 드는 것도 당연한지라 레이는 벨라의 손을 가져와 한 번 더 얼굴에 맞댔다.

레이가 보여주는 오랜만의 응석에 벨라가 다시 입을 열었지만, 그보다 살짝 앞서서 레아가 울음을 터뜨렸다.

"빼애애애액!!!"

선물 받았다고 신나서 방 안에서 혼자 난리치다가 넘어진 모양이었다.

벨라가 허겁지겁 방으로 달려갔고, 레이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그 광경을 지켜봤다.

*

클레멘스는 필립스 백작령에 도착한 후 거의 갇혀 지냈다.

클레멘스는 갇혀 지내는 건 불만이 없었지만, 언제 목이 떨어질지 몰라 불안에 떨어야 했다.

보안 때문에 직접 음식을 가져다주곤 했던 기사들은 예상 밖으로 친절한 편이었지만 언제 돌변할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날 수록 감금 생활에 조금씩 적응하며 여유를 찾았다.

기사들과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거리가 좁혀졌을 때쯤, 레이가 찾아왔다.

"잘 지냈어?"

"예, 덕분에... 그, 몸은 괜찮으십니까?"

클레멘스는 이런 질문을 자기가 해도 괜찮나 싶었다. 허나 쓸 데 없는 걱정이었다.

자기 휠체어를 툭툭 친 레이가 어깨를 으쓱였다.

"만약을 위해 한두 달만 더 타고 다니면 될 것 같아."

10분 정도 가벼운 잡담이 이어진 후, 레이가 본론을 꺼냈다.

"사실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널 거둬야 할 이유가 없었어. 그건 알지?"

"...네, 알고 있습니다."

신분이라도 편하게 숨길 수 있다면 모르겠는데, 반신이 굳어있다는 특징이 워낙 분명하니 꽤나 껄끄러웠다.

그걸 몇 번 더 강조한 레이가 덤덤하게 말했다.

"수작질만 안 부리면 사람 대접 해줄 거지만, 밥값 하려고 노력은 해야 할 거야."

"알겠습니다. 근데 제가 할만한 일이..."

"별로 없긴 해."

레이가 피식 웃었다.

클레멘스가 지닌 상인으로서 능력은 뛰어난 편이었지만, 변방에 위치한 필립스 백작령에선 적극적으로 써먹을 곳이 마땅치 않았다.

"뭐, 간간히 대형 상단들과 거래할 때 조언 좀 해 주고, 영지 재정 관리도 도울 수 있으면 도와. 장사 관심 있는 애들 수업도 좀 해 주고."

어쨌든 금전 감각은 필립스 백작령에서 가장 우수할 게 분명했다.

레이 말을 알아 들은 클레멘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레이는 그밖의 주의점 몇 가지를 클레멘스에게 전달했다.

일단 외부인 눈에 띄지 않아야 하니 행동 반경이 제한됐다.

외모도 위장해야 했고 특히 걸음 걸이가 타인에게 드러나면 안 됐다.

종종 바깥바람을 쐴 때는 마차를 이용하거나 휠체어에 앉아 고개 위만 움직여야 했다.

듣기엔 답답했지만 이것도 충분히 클레멘스를 배려한 조건이었다.

클레멘스는 부담감 탓에 속이 쓰렸다.

클레멘스가 생각하기에도, 자신이 레이였다면 클레멘스 같은 존재는 그냥 땅에 묻어버렸을 것이다.

이렇게 배려를 해준다는 건 결국 기대하는 바가 있다는 것이니, 없는 능력도 발휘해 존재 가치를 증명해야 할 것 같았다.

물론 레이는 클레멘스에게 밥 값하라 까탈스럽게 굴 계획은 아니었지만 너무 무기력하게 굴면 생각을 바꿀 용의는 있었다.

상인답게 눈치가 있어 전반적인 이야기는 쉽게 풀렸다.

물을 한 잔 마시며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진 레이가 클레멘스의 가슴을 가리켰다.

"정령과 이별할 준비는 됐어?"

"..."

이번만큼은 클레멘스도 바로 확답하지 못했다.

힘든 세월을 친구처럼 함께한 정령이니 만큼 정이 많이 들어 있었다.

허나 클레멘스가 계약한 정령의 모습을 아는 사람이 꽤 되는 이상, 레이의 계약 해지 요구는 타당했다.

클레멘스는 한숨을 길게 쉰 후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 됐습니다."

"그럼 바로 진행하지."

레이는 클레멘스가 감내해야 할 우울함을 조금이나마 이해했기에, 클레멘스가 정령과 계약을 해지하면 다른 정령과 계약을 맺어줄 생각이었다.

바람 정령이라면 거동하는 데 도움이 좀 될 터다.

레이가 또다른 바람 정령을 겁박할 생각에 신나서 홀로 히죽였다.

그 사이 클레멘스가 얼음 정령을 불러냈다.

도마뱀 형상을 한 정령은 계약자의 의지를 느끼곤 안타까운 감정을 전달하다니, 잠깐 모습을 감췄다.

이내 얼음 정령이 또 다른 정령을 데려왔다.

클레멘스는 오랜 기간 함께했던 정령이 마지막으로 새로운 친구를 소개해줬다는 걸 깨닫고 눈물을 흘렸다.

결국 클레멘스는 본래 정령과 계약을 해제하고 새로운 정령과 계약했다.

도마뱀 형태의 얼음 정령은 클레멘스의 눈물을 핥아 떨어트리는 것으로 작별 인사를 끝내고 사라졌다.

참으로 훈훈한 광경을 보고 레이는 크게 실망했다.

정령 배때끼 쑤실 생각에 신나서 마나를 순환시키고 있었는데 일이 이렇게 풀려 버리니 허탈함이 밀려왔다.

결국 공간검이 다시 정령 배때기를 쑤신 것은 그로부터 시간이 좀 지나서였다.

*

엘프는 긴 수명을 지닌다.

몇몇 종류의 엘프는 일천 년의 시간도 살다보니 강자가 썩어 넘칠 것 같았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않았다.

엘프라는 종족은 인간에 비해 활동력이 떨어졌고, 마나 친화력 또한 낮은 편이었다.

사실 활동력이 떨어지고 마나 친화력이 낮았기에 긴 수명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다.

육체란 게 쓰면 쓸수록 쉽게 닳아빠지곤 했으니 말이다.

물론 엘프는 다른 종족에 비해 확실한 강점 또한 존재했다.

신체의 감각이 월등히 뛰어난 편이었으며 이를 활용한 감지와 은신 기술은 인간으로선 따라잡기 힘들었다.

엘프, 미네르는 필립스 백작령에 도착한 후 여유롭게 몸을 풀었다.

엑스퍼트의 경지에 오른 인간 기사라 해봐야 미네르의 은신을 간파하긴 힘들었다.

이 변방에 그래듀에이트가 있지도 않을 테지만, 설령 존재한다 해도 아주 가까이 접근하지 않으면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마법 결계 같은 건 해결하기 까다로웠지만 영주성에 잠입하는 임무도 아니니 상관 없었다.

'움직일까.'

따지자면 미네르가 여기까지 온 것은 전력 낭비였다.

납치 임무도 아닌 단순 신변 조사이지 않은가.

본래 이런 임무는 별다른 능력 없는 첩자 몇 명 보내서 해결해도 됐다. 만약 필립스 백작령이 거대한 도시였다면 마티아스 후작 또한 그렇게 했을 것이다.

허나 변방에 위치한 자그마한 땅인 필립스 백작령에 얼굴도 모르는 외부인이 여럿 나타나면 당연히 의심을 샀다.

그 때문에 미네르를 보낸 것인데, 미네르 입장에서도 쉬운 일을 맡은 것이니 나쁠 건 없었다.

분명 그리 생각했지만, 미네르는 얼마 못 가 자신이 대단히 잘못된 판단을 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정말 대단히 잘못된 판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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