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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등가의 소드마스터-133화 (133/446)

133화

"레, 레이...?"

로브가 벗겨지며 드러난 레이의 얼굴은 절반 가까이가 보기 힘들 정도로 손상되어 있었다.

화상 탓에 반쯤 일그러진 안면 위로 진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레이의 모습은 요하나의 심장을 덜컹 내려앉게 만들었다.

옷이 타들어 간 바람에 밖으로 훤히 드러난 상체 또한 화상이 가득했다.

왼팔의 경우, 고위 섬멸 마법을 정면에서 상쇄시킬 때 가장 앞서 있던 탓에 특히 상태가 심각했다.

흡사 비쩍 마른 고목마냥 살가죽이 들러붙어 검게 변색된 왼팔은 움직이긴 할까 의아할 지경이었다.

"어으아... 어, 어떡해..."

요하나는 만지면 바스러질까 봐 레이의 몸에 손도 대지 못한 채 패닉에 빠져 눈물만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디디에가 몸으로 요하나의 앞을 가리며 다시 레이의 상처를 살폈다.

디디에는 왼쪽 눈 근처까지 번져있는 레이의 화상 자국을 보고 더욱 심각하게 표정을 굳혔다.

"여기서 이러고 있을 게 아니다. 당장 움직여야 해."

현재 위치에서 더 가까운 영지는 오시리스 백작령이었다.

또한 오시리스 백작령엔 필립스 백작령보다 더 많은 수의 성직자와 더 수준 높은 치료사가 머물고 있었다.

설령 의심을 받는 일이 생긴다고 해도 지금은 레이의 치료가 더 중요했다.

"당장 말에 타라, 레이. 오시리스 백작령으로 간다."

"아뇨, 아뇨. 괜찮습니다. 그러실 거 없어요."

"레이, 눈처럼 민감한 부위는 빠르게 치료하지 않으면 제 기능을 회복하기 힘들다."

"두 눈 모두 잘 보여요. 왼쪽 안구는 치료를 받고 왔어요."

템플러, 알베르트는 레이의 호흡 기관과 왼쪽 안구를 가장 우선해서 치료했다.

왼쪽 팔의 주요 혈관과 근육 또한 알베르트가 심혈을 기울여 복구시켜 놓았기에, 당장 괴사를 면할 수준은 되었다.

레이가 템플러 이야기를 하자 디디에가 답답한 심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응급처치를 받았다고 해도 치료가 시급한 부상이라는 사실은 변치 않았다.

허나 오시리스 백작령으로 가자고 해도 레이가 말을 들을 것 같지 않았다.

"레이... 대체 어쩌다 그리 다친 거냐?"

"플레어라는 마법에 직격당해서요. 어떻게든 상쇄해보려 했는데 마음처럼 안 되더라고요."

"플레어? 8서클 섬멸 마법 말하는 거냐?"

"아마 그거 맞을 거예요."

"맙소사..."

8서클 섬멸 마법이라면 디디에도 동화책에서나 접해본 수준이었다.

8서클 마법 중에서도 구현하기 특히 어렵다고 평가받으며 작은 마을 수준의 면적은 통째로 증발시킬 수 있는 마법이 플레어였다.

그걸 정면에서 맞고 살아남았다는 게 도리어 이해가 안 갈 지경이었다.

눈을 질끈 감았던 디디에가 말을 끌고 다가왔다.

"휴식을 취할 시간이 없다. 필립스 백작령까지 가려면 지금 바로 출발해야 해."

한시가 급했다.

레이가 고개를 끄덕이곤 어쩔 줄 몰라하는 요하나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미안해, 요하나."

"흑! 흐윽...?"

"내가 좀 더 다쳐서라도 요하나의 검만큼은 지켜냈어야 했는데."

질 나쁜 레이의 농담에 잠시 얼을 탄 요하나의 얼굴이 종잇장처럼 일그러졌다.

요하나는 곧장 제플린의 X 시리즈를 들어 바닥에 내팽개쳤다.

쇳소리가 공기를 울리며, 요하나가 울먹임이 가득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다쳤으면 다쳤다고 얘기하라고!! 그럼 그런 말도 안 했을 거 아니야!! 나는,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흐윽!!"

씩씩댄 요하나가 타들어간 레이의 상처를 마주보곤 다시 눈물을 펑펑 흘리기 시작했다.

예상보다 거친 요하나의 반응에 당황한 레이가 어물거리고 있자, 디디에가 정색하며 레이의 몸 위에 로브를 덮어씌워 주었다.

"레이, 오는 길에 거울을 볼 기회가 한 번이라도 있었나?"

"어... 아니요?"

"그럼 얌전히 입 다물고 있어라. 헛소리 말고."

네놈 몰골이 불구덩이에서 막 건져낸 생선과 다를 바 없다고 혀를 찬 디디에가 클레멘스를 자기 말 위로 옮겼다.

요하나가 비척대며 말 위에 오르는 걸 확인한 디디에가 레이에게 턱짓했다.

"빨리 돌아가자."

*

젠킨슨은 레이, 디디에, 요하나와 떨어진 후 알레시아와 함께 영지에 복귀했다.

영지에 복귀한 직후 알레시아는 필립스 백작과 면담하는 시간을 가졌고, 그 잠깐 사이 젠킨슨은 모하메드에게 불려 가 갈굼을 당했다.

오시리스 백작령에서 그 깽판을 쳐 놓았으니 며칠이고 갈굼을 먹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오랜만에 대차게 깨진 젠킨슨이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문을 열었다.

그때 문앞에서 옹기종기 모여있던 기사들이 젠킨슨을 보자마자 동시에 환호성을 질렀다.

"우와아아아아아아!!!"

남의 귀족가 기사들을 박살냈다는 소식이 그리 통쾌할 수가 없었다.

젠킨슨은 웃음을 터뜨렸고, 모하메드는 골치 아프다는 듯 미간을 잡고 고개를 저었다.

이후 집무실 들어가서 백작과 마주 앉은 젠킨슨이 오시리스 백작령에서 있었던 일을 보고하기 시작했다.

대략적인 상황을 전해 들은 백작이 복잡한 감정을 내비쳤다.

백작은 젠킨슨과 디디에가 레이를 지원할 수 있도록 이번 일정 동안 제한적인 작전권을 허가했다.

헌데 막상 일을 벌였다는 소식을 들으니 마음이 참 불편했다.

레이가 벌인 일의 여파가 필립스 백작령에 해가 될 수도 있다는 불안과, 세상을 위해 검을 든 소년을 제대로 지원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상충했다.

필립스 백작은 필립스 백작령의 주인으로서 영지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었다.

때문에 레이와 거리를 두고자 하는 건 영주로서 지당한 판단이었지만 그럼에도 종종 부끄러운 감정이 찾아오곤 했다.

백작은 상념을 뒤로 미룬 채 입을 열었다.

"그럼 레이는 지금 배에 잠입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건가?"

"예, 도움을 줄 내부자를 확보했다고 했습니다."

레이의 작전 목적은 두 가지.

유물의 확보 혹은 파괴.

그리고 일종의 이간질을 통해 악신을 숭배한다고 의심되는 왕국의 가문이 제국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게 만드는 것.

고개를 끄덕인 백작은 곧 지시를 내렸다.

기사들에게 경계 근무를 강화하라 명령했으며,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지원 병력을 편성해 대기시켰다.

또한 젠킨슨이 저지른 무례에 대해 사과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는 핑계를 들어, 고용인 몇 명을 오시리스 백작령으로 파견해 상황을 정확히 파악해 전달할 수 있도록 안배했다.

허나 다행히도, 레이를 비롯해 디디에와 요하나는 클레멘스를 데리고 약속했던 일정에 맞춰서 복귀에 성공했다.

은밀하게 백작령으로 복귀한 디디에는 영주성에 들어서자마자 다급하게 백작을 찾았다.

"백작님, 지금 당장 치료사와 성직자를 전부 데려와야 합니다."

"디디에 경?"

백작이 당황해서 되묻는데 옆에 서 있던 레이가 손을 휘저었다.

"그리 급한 일은 아닌... 크읍!"

레이가 말을 하다 말고 무릎을 꿇고 구역질을 시작했다.

중상을 입은 채 말을 타고 필립스 백작령까지 달려왔으니 온몸에서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디디에는 설명 대신 레이에게 덮어주었던 겉옷과 로브를 벗겨냈다.

레이의 몰골을 확인한 백작이 곧장 고함쳤다.

"당장 치료사와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는 성직자를 불러오게! 어서!"

백작 곁을 지키던 기사가 뛰어나갔고, 디디에는 레이를 들쳐 업고 급히 준비된 병상 위로 옮겼다.

난데없이 소집된 치료사와 성직자가 기절한 레이의 상태를 보더니 전부 달라붙었다.

대체 어쩌다 이렇게까지 다친 거냐.

그런 질문에 기사들은 레이가 마법사와 대련을 하다 사고가 있었다고 답변했다.

치료사와 성직자들은 적당히 수긍했다.

설마 레이가 8서클 섬멸 마법에 직격당해 이 꼴이 났으리라곤 그들 중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몇 시간에 걸친 치료 도중 레이는 잠깐 잠깐 깨어나 몇 가지 문답을 주고받았다.

기절과 각성을 반복하던 레이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치료사와 성직자들은 휴식을 취하기 위해 자리를 비우고 있었다.

레이는 옆에 있던 손거울을 들어 자기 얼굴을 살폈다.

아까도 잠깐 보았지만, 정말 얼굴이 완전히 박살 나 있었다.

"아이고..."

요하나가 보고 기겁할 만했다.

레이가 얼굴을 뒤덮은 상처를 보며 자기 혼자 감탄하고 있는데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하고 봤더니 지미였다.

레이는 고통이 온몸을 쿡쿡 찔러대는 와중에도 지미를 향해 입꼬리를 올렸다.

"여기까진 뭐 하러 찾아왔어요?"

"네놈이 죽다 살았다고 해서 구경하러 왔다."

툴툴거리며 다가온 지미가 레이를 보자마자 한숨부터 쉬었다.

미리 듣기는 했는데 직접 보니 진짜 죽다 살아서 기어온 것 같았다.

"이거 뭐 온몸을 다 태워 먹었네. 멀쩡한 곳이 남아있긴 하냐?"

"머리카락은 지켰잖아요. 이거 보세요."

레이가 자기 머리카락을 비비 꼬자 지미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미친놈. 머리카락 많아서 좋겠다."

의자를 질질 끌고 와 레이 곁에 앉은 지미가 보기 흉한 레이의 상처를 천천히 살폈다.

용병 시절에도 이만한 부상을 입고 살아남은 놈은 못 봤다.

"...이거 회복은 다 가능한 거냐?"

"움직이는 데 지장은 없을 거예요. 아, 그리고 이번 기회에 얼굴 흉터도 지우기로 했어요."

화상이 얼굴 흉터 위를 덮어서 기왕 치료할 거 예전 흉터를 째기로 했다.

다만 왼쪽 팔과 상체 일부를 덮은 화상은 고스란히 흉터로 남을 확률이 높았다.

우선적으로 치료받아야 할 곳이 너무 많아 얼굴을 제외한 피부 위의 상흔이 뒷순위로 밀린 탓이었다.

지미는 자기 얼굴을 연거푸 쓸어내리더니 콧잔등을 쥔 채 한숨을 내쉬었다.

"레이, 널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

"얼굴 치료가 끝나면 만날게요. 거울 보니까 끔찍하더라고요."

"그래... 그게 좋겠지."

지미 또한 벨라나 레아, 그리고 다른 아이들에게 지금 레이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진 않았다.

지미는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레이의 오른팔을 조심히 잡고선, 착잡한 목소리로 말했다.

"레이... 제발 다치지 마라. 이렇게 다쳐오지 마. 널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아파하니까."

"징그럽게 갑자기 왜 이래요?"

"농담하는 거 아니야."

"..."

반쯤 뜨인 눈으로 지미를 마주보던 레이가 다시 눈을 감았다.

아프고, 피곤하고, 졸려왔다.

얼굴을 그나마 사람처럼 복구할 때까지 며칠은 걸릴 것이다.

그때까지 조용히 휴식을 취할 생각이었다.

*

필립스 백작은 치료사와 성직자들에게 레이의 부상에 대해 함구하길 요구했다.

백작령의 주인이 직접 나서서 한 요구인 만큼, 치료사와 성직자들도 함부로 입을 놀릴 생각은 못했다.

몇 주 지나면 소문은 좀 돌겠지만 그때는 레이의 상처가 어느 정도 회복되었을 시기였다.

허나 카렌과 루나는 훨씬 일찍 레이의 부상을 알게 되었다.

야밤에 요하나가 눈이 퉁퉁 부은 채 돌아왔기 때문이다.

요하나도 입단속을 당하긴 했지만, 오랜 시간 함께했던 친구들을 보는 순간 쏟아져 나오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우에에에에에엥!"

요하나가 눈물을 펑펑 흘리며 다가오자 카렌과 루나가 식겁했다.

요하나는 둘 사이에 둘러싸여 연신 눈물을 쏟아냈다.

"나는 레이가 다쳤는 줄도 모르고...! 막 따졌는데...! 흐아앙!"

앞뒤 사정도 설명 안 하고 눈물 콧물부터 짜내는 요하나를 보고 루나의 눈동자가 차갑게 식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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