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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등가의 소드마스터-123화 (123/446)

123화

알레시아가 간간이 모자라 보이는 행동을 하고는 했다. 허나 알레시아가 눈치가 없는 건 아니었다.

도리어 상황 파악을 상당히 잘하는 편이었고, 세태와 야합하는 속도도 굉장히 빨랐다.

때문에 알레시아는 자기 혼자선 레이를 곁에 붙드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도리어 열심히 첩질을 권했다.

자신과 보육원 멤버들을 세트 메뉴로 묶은 것이다.

허나 첩질을 허락했다고 해도 이건 아니었다.

"나의 기사여! 아무리 그래도 첩과 먼저 눈이 맞는 건 경우가 아니지 않느냐!"

나랑 먼저 할 거 다하고 저러면 말을 안 해, 들이댈 때마다 튕겼던 주제에 요하나랑은 침대에서 뒹굴고 있었다니.

충격이 말이 아니었다.

알레시아가 툴툴대자 레이가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가씨, 그, 오해입니다, 오해."

"오해라고 했느냐?"

알레시아가 풀 죽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대놓고 침대 위에서 뒤엉켜 있으면서 빈궁한 변명을 하는구나아..."

요하나는 갑작스러운 알레시아의 등장에 당황해서 굳어있다가, 알레시아의 말을 듣고 뒤늦게 자기 몰골을 깨달았다.

레이의 품에 폭 안겨 있던 요하나가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놔, 놔 줘! 이거 놓으라고, 이 변태야...!"

"아니 넌 좀 얌전하게 있어봐."

"귀에 대고 말하지 마아!!"

요하나가 기겁을 하며 레이의 복부를 팔꿈치로 퍽퍽 찍었다.

레이가 앓는 소리를 내며 요하나를 침대 위로 뒤집어엎었고, 알레시아는 그 모습을 퍽 흥미롭고도 분한 시선으로 지켜보았다.

결국 레이는 한참의 시간을 들여 어떻게든 요하나를 진정시킨 후 빌고 빌어서 부탁 좀 들어달라고 설득했고, 그 후 알레시아의 오해를 푸는데 또 한참의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모든 일이 끝나고 침대에 털썩 주저앉은 레이가 미간을 찌푸린 채 앓는 소리를 냈다.

"아오, 애들 다루기가 왜 이렇게 힘들지?"

"네놈이 할 소리냐?"

알레시아를 따라 방에 들어왔던 젠킨슨이 세상 떫은 얼굴로 되물었다.

*

오시리스 백작가의 영주성엔 무역과 관계된 일로 귀족이나 젠트리 계층이 자주 들린다.

때문에 그들이 이용할 수 있는 여러 편의시설이 마련되어 있었고, 그중엔 대화와 식사를 같이 할 수 있는 술집 또한 존재했다.

젠킨슨과 레이는 단둘이 영주성의 술집을 찾았다.

연무장과 마찬가지로, 귀족들도 머물 수 있는 공간인 만큼 썩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여러 교류가 오가는 술집의 분위기는 자유로웠지만 그렇다고 시정잡배가 이용하는 창관마냥 떠들썩하지도 않았다.

젠킨슨과 레이는 술과 식사를 주문하고는 중앙에 위치한 테이블에 앉았다.

주변의 시선이 젠킨슨과 레이를 한 번씩 훑고 지나갔다.

저번 대련에서 꽤 활약한 두 사람이다 보니 자연히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젠킨슨과 레이는 주변의 시선을 모른 척한 채 흰소리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잠시 후 식사가 나오자 젠킨슨은 자기 혼자 술잔을 들었다.

기사와 종자가 같이 술을 나누는 경우도 있었지만,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장소에선 종자가 정신을 바르게 하고 주변을 경계하는 게 원칙이었다.

무엇보다 오늘은 식사 외에 다른 목적이 있었기에 취하는 건 젠킨슨 한 명이어야 했다.

식사가 진행되며 젠킨슨의 얼굴에 점점 취기가 올랐다.

분위기가 적당히 무르익은 것 같자, 젠킨슨과 잡담을 나누던 레이가 슬그머니 물었다.

"마스터, 마티아스 후작가 기사님의 실력은 어떻던가요?"

주변의 이목이 급격히 집중됐다.

다들 흥미롭다는 표정을 했지만, 사실 젠킨슨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이야기는 한정되어 있었다.

내가 조금 더 우세했지만 상대도 훌륭했다, 뭐 그렇게 겸양 좀 떨고 말 게 분명했다.

시선을 느낀 젠킨슨이 입꼬리를 찢으며 술잔을 비웠다.

"흐흐... 후작가 기사 실력이 어땠냐고? 겉만 번지르르하지, 별거 없더군."

주변의 식기 다루던 소리가 일시에 멈추었다.

모두가 경악이 서린 얼굴로 젠킨슨을 쳐다봤다.

허나 젠킨슨을 술에 취한 탓인지 자신이 실언했음을 깨닫지 못하고 연거푸 중얼거렸다.

"번쩍이는 갑옷을 입고 여기저기 위세나 부리고 다니는 놈들이 무슨 기사라고..."

젠킨슨이 술을 몇 잔 더 들이켰다.

어지간한 장정이라면 바로 고꾸라져도 이상치 않을 양이었다.

"목에 힘이나 줄줄 아는... 제 놈들이 모시는 가문의 권세가 지들 실력이라 착각하는 머저리들..."

젠킨슨의 실언은, 본래 계획된 실언이었다.

허나 술잔을 비울수록 젠킨슨의 주정에는 연기가 아닌 진심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취기가 번지며 억눌러두었던 과거의 상처가 되살아난다.

젠킨슨은 평생을 기사의 의무에 충실했다.

의무에 충실했기에, 젊은 날의 호기를 만방에 떨치지 못했고, 잡지 않고 놓아준 기회도 여러 번이었다.

아무리 아름답게 포장한다 해도... 젠킨슨이라는 기사의 역사는 체념과 희생으로 범벅되어 있었다.

허나 젠킨슨은 후회하지 않았다.

"나는 필립스 백작가의 기사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되새긴 젠킨슨이 주먹을 말아쥐었다.

"그것이 나의 명예고... 고결이다. 난 스스로를 자랑스러워 했고... 내 선택을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

일부러 술기운을 억누르지 않은 탓에 만취한 젠킨슨이 떠듬떠듬 중얼거렸다.

"우리는 단지 내보이지 않았을 뿐..."

그 누구와 비교해도 뒤떨이지지 않는...

"가장 기사다운 기사들이다."

거기까지 이야기한 젠킨슨의 상체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젠킨슨은 그 지경이 되고도 속이 다 풀리지 않은 듯 술을 계속해서 들이켰다.

워낙 빠르고 대처 없이 술을 흡입한 탓에, 결국 젠킨슨은 자기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탁자 위로 엎어졌다.

쿵!

레이가 젠킨슨이 엎어지는 타이밍에 맞춰 접시를 옆으로 치웠다.

코를 고는 젠킨슨을 앞에 두고 레이는 접시에 남은 고기를 질겅질겅 씹었다.

기사가 만취한 꼴은 보기 드문 구경거리였다.

접시를 비운 레이가 입을 열었다.

"뭐, 그러니까..."

젠킨슨의 반복된 실언 탓에 이미 공기가 차갑게 굳어 버린 술집의 한가운데서.

레이가 홀로 낄낄거렸다.

"다른 귀족 가문 기사들은 다 조빱이라는 거군요."

여기저기서 포크 휘는 소리가 들려왔다.

레이는 칼자루 매만지는 소리를 배경 삼아 젠킨슨을 들쳐업었다.

한편.

요하나는 요하나 대로 레이의 부탁을 이행하고 있었다.

레이가 요하나에게 어려운 부탁을 한 것은 아니었다.

도리어 간단한 부탁이었기에 요하나는 부담 없이 스콰이어들이 자주 모이는 장소를 찾아갔다.

요하나가 그 장소를 찾아갔을 땐 각기 다른 가문의 스콰이어 넷이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요하나는 오시리스 영주성에서 주목받는 존재였기에, 요하나가 찾아오자 스콰이어들이 먼저 접근해 친한 척을 했다.

요하나는 대화를 나누다가 이리 말했다.

최근 배움에 갈증을 느끼고 있다. 좀 더 수준 높은 검술을 접해보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다른 기사님에게도 가르침을 받아보고 싶다.

그런 뉘앙스의 이야기를 하며 요하나는 불만족스러운 얼굴을 했다.

다음 날.

술집에서 있었던 일과 요하나 했던 발언이 영주성에 머물고 있던 대부분의 이들에게 전해졌다.

해리스 마티아스와 마티아스 후작가의 기사들은 술집에서 젠킨슨이 실언한 내용을 듣고 격분했다.

"이런 시건방진 새끼가...!!"

취했든 안 취했든 젠킨슨이 입에 담은 실언은 참고 넘길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기사들은 본디 엘리트 계층이자 자존심이 굉장히 강한 족속들이었다.

조빱이라고 무시당한 이상 자신들이 조빱이 아님을 상대의 아가리를 부숴서라도 증명해야 했다.

이는 다른 가문의 기사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더군다나 젠킨슨을 실력으로 때려눕힌다면, 대단한 가치를 지닌 인재인 요하나를 손쉽게 등용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젠킨슨에게 무수한 대련 요청이 쏟아졌다.

말이 대련 요청이지 결투 요청이나 다름없었고, 만약 대련을 거부한다면 뒷수작을 부려서라도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다들 이를 갈고 있었다.

"계획대로 되긴 했는데..."

레이가 중얼거렸다.

며칠 전, 레이와 기사들은 긴 회의 끝에 유물을 빼돌리기 위해 어느 시점을 노려야 할지 결정했다.

유물이 창고 안에 있을 때는 안 된다. 타라니스 가문에 유물이 넘어가고 나면 일이 더 어려워진다.

결국 마티아스 후작가가 유물을 반출한 후 거래를 위해 항구로 옮기는 시점을 노려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사실 레이가 작정하고 밀어붙이면 어떤 타이밍이든 유물을 강탈하는 건 가능했다.

현재 레이를 정면에서 막아 세우려면 평균적인 수준의 그래듀에이트가 분대 단위로 필요했다.

일대일을 상정했을 때 레이를 확실히 찍어 누르려면 로드 급을 불러와야 했는데, 그 수준의 강자는 제국에서도 손에 꼽혔다.

허나 레이가 본 실력을 드러냈다가 일이 조금이라도 수틀리면 뒷수습은 물 건너간다. 죄 없는 피해자 또한 양산될 터다.

더군다나 신체가 성장하며 조금은 안정됐지만, 레이는 여전히 제 실력을 내기 위해선 심장에 막대한 부하를 가해야 했다.

때문에 레이는 마법사 흉내를 내며 빠르게 유물만 빼돌리는 쪽으로 작전 계획을 잡았다.

마티아스 후작가가 유물 자체는 그리 귀중히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모로 해볼 만한 시도였다.

허나 작전을 원활히 성공시키기 위해선, 항구로 가는 마차를 호위할 마티아스 후작가의 기사급 전력을 약화시켜 둘 필요가 있었다.

그런 이유로 레이와 젠킨슨은 의도적으로 마티아스 후작가의 기사들을 도발했고, 요하나라는 미끼까지 걸어두었다.

현재 해리스 마티아스와 동행한 후작가의 기사들은 총 여섯.

그중 하나는 이미 젠킨슨과 대련에서 부상을 입어 한동안 휴식을 취해야 했다.

마티아스 후작가의 기사가 젠킨슨의 도발에 꼭지가 돌아 덤벼들었다가 두셋만 더 고꾸라지면, 마차를 호위할 기사 전력은 반절로 줄어든다.

물론 이를 위해선 젠킨슨이 대련을 신청해오는 기사들을 상대로 반드시 승리해야 했다.

"엄청나게 모였군."

젠킨슨과 레이가 연무장을 찾았을 때는 이미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젠킨슨이 연무장에 오르자 마티아스 후작가의 기사가 말없이 검부터 뽑아들었다.

이건 말이 대련이지, 기실 기사들의 자존심 싸움이었으며 피가 낭자할 결투였다.

물론 그들은 기사였기에 필요 이상의 잔혹한 행위를 하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상대의 부상을 걱정해 손속에 사정을 두지도 않을 터였다.

인사도 없이 서로의 검 위에 검기가 발현된다.

레이의 부탁 때문에 중상을 각오해야 하는 자리에 오른 젠킨슨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젠킨슨은 지금 이 상황이 싫지 않았다.

이곳은 증명의 자리였다.

젠킨슨은 마티아스 후작가의 기사들을 꺾고, 또한 연거푸 도전해오는 모든 가문들의 기사들을 꺾을 것이다.

그럼으로서 필립스 가문의 기사들이 결코 나약해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게 아니었음을, 확실하게 증명할 것이다.

"흐압!!"

서로를 향해 내질러지는 기합 소리와 함께 시푸르게 빛나는 검기가 거쎄게 충돌했다.

도둑질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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