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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등가의 소드마스터-112화 (112/446)

부전 (3)

112화

쫄리냐. 자신 없냐. 거기 작냐.

사내로서의 긍지를 사정없이 헤집는 연속되는 도발에 레이가 날 선 시선으로 요하나를 쳐다봤다.

허나 요하나는 더더욱 기세가 등등해져 도발을 이어갔다.

"흐흥, 여, 역시 쫄리나봐?"

"아니, 쫄리긴 뭐가 쫄..."

"어, 억울하면 남자답게 한 번 까보든가? 못 까지? 못 보여 주지?"

계속되는 요하나의 빈정거림에 혈압이 치솟은 레이가 뒷목을 붙잡았다.

'아, 시발.'

10년 넘게 업어 키운 녀석한테 이런 모멸을 당하고 있자니 가히 형용키 힘든 좆 같음이 몰려왔다.

'생물학적 애비 새끼야, 보고 있냐?'

너는 거시기를 거시기처럼 놀리다가 대가리가 깨졌는데, 나는 거시기를 너무 조신하게 다뤄서 이딴 모멸을 당하고 있구나.

레이가 자괴감에 휩싸여 몸부림치는 사이 요하나는 입꼬리를 한쪽만 추켜올린 채 쐐기를 꽂았다.

"흐흥, 역시 자신 없구나? 레, 레이는 허접 번데기였구나?"

"아니 미친년아."

레이의 이성을 지탱하던 미약한 끈이 뚝 끊어졌다.

결국 머리가 돈 레이가 요하나의 팔을 움켜쥐고 벽 뒤로 끌고 갔다.

요하나가 어어 하다 레이에게 붙잡혀 벽 뒤로 사라지는 걸 카렌과 루나가 눈을 깜빡이며 지켜봤다.

잠시 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벽 뒤에서 걸어나온 요하나가 입을 크게 벌린 채 중얼거렸다.

"자... 자..."

"자?"

머리 위로 물음표를 떠올리는 카렌을 향해 요하나가 외쳤다.

"작은 것 같지는 않아...!"

거리 감각의 천재, 요하나.

요하나는 자기 재능을 십분 발휘해 방금 보았던 것의 길이를 재현해보려 노력했다.

양 손을 쫙 펴서 서로를 마주보게 한 요하나가 양 손의 거리를 줄였다 늘였다 하다가 뚝 멈추었다.

완벽하게 조금 전 보았던 것의 길이를 재현한 요하나가 당황해서 중얼거렸다.

"여, 여기서 얼마나 더 커지는 거지?"

슬그머니 두 손을 세로로 세워 자기 배 위에 가져다 대보려는 요하나의 뒤통수를 레이가 후려쳤다.

퍽!

"아얏!"

"헛짓거리 말고 그만 좀 가라. 벌써 해 다져간다."

"해 지는 게 무슨 상관인데!"

"해 지면 위험하잖아."

"나 엑스퍼트거든!!"

참으로 옳은 소리에 레이가 잠깐 할 말을 잃었다.

요하나에 루나까지 더해지면 레인저라도 우르르 몰려오지 않는 이상 어찌하기 힘들었다.

요하나가 애 취급하지 말라고 레이에게 투덜대는 사이.

그제야 요하나가 뭘 보고 온 건지 깨달은 카렌이 빽 소리쳤다.

"나, 나도 보여줘!"

"뭘 또 보여 달래?!"

"왜 요하나만 보여주는데?! 나도 보여줘!!"

카렌은 세상 억울한 얼굴로 레이의 팔을 붙잡고 늘어졌다.

요하나의 도발 탓에 대단히 충동적으로 일을 벌였던 레이가 기겁하며 카렌을 뜯어말렸다.

"안 돼! 못 보여줘!"

"왜 자꾸 나만 차별하는데에!"

카렌은 쉽게 물러서지 않고 계속해서 바지를 까보라고 칭얼댔다.

레이가 어떻게든 카렌을 달래보려고 아무 말이나 던져대자 카렌은 붉은 눈동자를 더욱 붉게 물들이며 눈물을 글썽였다.

"대체 왜 그러는데. 알레시아 님 때문에 그래? 알레시아 님도 첩 정도는 몇 명 들여도 된다고 하셨잖아."

카렌도 자기가 지금 이러는 게 되게 없어 보인다는 건 알고 있었다.

허나 카렌도 매번 레이에게 이런 식으로 들이댄 건 아니었다.

남들 다 그러듯이 우회적으로 호감을 나타내 보기도 했고, 연인들이 자주 간다는 풍경 좋은 곳으로 레이를 데려가 분위기를 잡아보려고도 했고, 또 조금 노골적으로 유혹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레이는 그런 카렌의 노력을 전부 외면했다.

어떤 수를 써봐도 레이가 자꾸만 벽을 치자 카렌도 결국 자존심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자존심을 내려놓고 한다는 짓이 어린 애 떼쓰는 것과 다를 바 없어, 카렌도 적잖이 자괴감을 느끼는 중이었다.

"레이도 나 예쁘다고 했잖아. 근데 왜 만날 애 취급인데..."

"아이고..."

레이는 세상 복잡한 감정을 느끼며 한숨을 푹 쉬었다.

카렌이 아예 여자로 안 보였다면 차라리 편했겠지만.

카렌은 레이가 보기에도 충분히 매력적으로 자랐고, 때문에 카렌에게 이성적인 호감을 못 느끼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딸내미 보는 듯한 심정도 없잖아 있었으나, 18살의 건장한 남자의 신체는 성적인 자극에 대단히 적극적으로 반응했다.

결국 레이는 자기가 생각하기에도 답답한 변명을 입에 담아야 했다.

"조금만 더 크면 이야기하자."

"여기서 뭐 얼마나 더 커야 하는데!"

카렌이 누가 봐도 충분히 부풀어 오른 가슴을 부각시키며 항변했다.

레이도 대꾸할 말이 없는 탓에 억지로 억지로 카렌을 달래며 등을 돌리게 만들어야 했다.

카렌은 씩씩대면서도 레이가 한 번 꽉 안아주자 감정이 조금 풀려서는 입꼬리를 실룩이며 고집을 꺾었다.

완전히 헤어지는 분위기가 되자, 루나가 마지막으로 레이의 팔뚝을 잡고서 고저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레이는 고자예요?"

참 직설적인 한 마디에 레이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아랫 도리에 아무 문제 없다니까."

"..."

루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카렌이 사 왔던 선물을 레이에게 내밀었다.

그 무언의 압박에 레이는 결국 카렌의 선물을 품에 안았다.

카렌, 요하나, 루나는 그렇게 한바탕 난리를 치고 레이의 집을 떠났다.

멀어지는 셋에게 손을 흔들어 준 레이는 집에 들어와서 앓는 소리를 냈다.

"아이고야."

소파에 앉은 레이가 턱을 괸 채 눈살을 찌푸렸다.

카렌, 요하나, 루나 셋 모두 격차는 있었으나 좋은 재능을 타고났고, 레이 또한 셋을 많이 아꼈다.

그래서 더욱 그들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고 싶었다.

남녀로서 관계를 가졌다가 삐끗하면 원상 복귀가 힘들었으니까.

더군다나 레이는 오래 못 산다.

장담할 수는 없었지만, 초월자가 던져준 능력들만 보면 짧고 굵게 자기 역할 하고 뒈지라는 의도가 빤히 보였다.

'뭐, 거기다가...'

레아라는 존재가 마음에 걸렸다.

그 폭탄 덩어리가 언제 문제가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누군가와 연인 관계, 더 나아가 가족 관계를 맺는 것이 꽤나 껄끄럽게 다가왔다.

필립스 백작이 레이와 알레시아의 혼약을 진행하지 않은 것도 그래서였다.

이런 걸 싹 다 고려 안 하고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여자들이야 꽤 많았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여자를 만나야 할 필요성을 레이는 느끼지 못했다.

이건 아무래도 뇌가 말랑말랑할 때 겪은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스트레스 장애에 가까웠다.

"에휴, 내가 지금 무슨 고민을 하고 있냐."

꼬맹이었던 아이들이 머리가 많이 굵었다.

예전처럼 쿠키 한두 개로 회유하거나 말이나 힘으로 찍어눌러 따르게 하기가 영 쉽지 않았다.

그래도 딱히 엇나가는 아이 없이 다들 나름대로 정진하고 있다는 것이, 레이에겐 꽤 만족스러웠다.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운 레이가 노곤함을 느끼며 눈을 감으려 했다.

허나 잠에 들기 직전.

레이가 발작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아프텔, 결계 좀 쳐 봐."

[...루나를 막아내긴 힘들 겁니다.]

"어떻게든 감지만 가능하게 좀 해봐."

[시도는 해보겠습니다.]

이것들이 아침에 또 방까지 기어들어와 모닝 텐트를 치는지 확인하려 들까 두려웠던 레이가 아프텔을 재촉했다.

아프텔은 곤란해하면서 결계를 방 안에 펼쳤다.

한편.

멀리서 레이의 집을 바라보던 루나가 오늘은 일이 텄다는 걸 깨닫고 친구들과 같이 발길을 돌렸다.

*

지미와 매튜는 여전히 기사들과 자주 검술을 나누었다.

기사들은 이미 예전에 지미와 매튜의 의기(義氣)를 인정했고, 백작의 허가 아래 고급 기술을 여럿 전수했다.

이제 와서는 신뢰가 굳건하여 기사들이 베풀 수 있는 대부분의 노하우를 지미와 매튜는 익혀볼 수 있었다.

본래 지미와 매튜의 신분으로는 꿈도 못 꿀 일이었다.

때문에 지미와 매튜는 한동안 싱글벙글하며 기사들과 교류하는 데 집중했다.

시간이 흘러 매튜는 여전히 검술을 익히는데 대단한 열정을 보이고 있었다.

허나 지미는, 시간이 갈수록 무언가 초탈한 얼굴로 설렁설렁 검을 휘두르곤 했다.

오늘 오전에 시작된 기사들과의 대련에서 그 초탈함이 더욱 두드러졌는데, 누가봐도 지미의 검엔 맥아리가 없었다.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지미의 검을 받아본 기사들이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지미를 잠시 구석으로 보냈다.

지미는 허공에다 무기력하게 검을 휘두르며 하늘을 바라봤다.

'부질없구나, 부질없어...'

지미는 한때 오직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쳤다.

살만 해지니 좀 더 편하게 살기 위해 칼을 휘둘렀다.

권력을 갖기 위해 더 큰 권력에 아양을 떨어보기도 했다.

모든 걸 포기하고 낙향해 손에 닿는 아이들이나 굶어 죽지 않게 하기 위해 보육원을 차려도 봤다.

허나 지미는 어느새 암흑가의 지배자가 되어버렸고.

생각도 못 했던 토끼 같은 마누라(아님)와 독사 같은 아들(아님), 그리고 여우 같은 딸(아님)을 슬하에 두게 됐다.

한때는 내가 왜 이 꼴이 됐나 한탄하기도 했다.

허나 세상 잘났다고 생각했던 레이조차 발기부전으로 고생하며 여자도 마음대로 후리지 못하는 걸 보며 지미는 깨달았다.

전부 부질 없구나.

세상 만사 모든 것이 부질 없구나.

인생이란 그저 강물처럼 흘러가는 것.

내 손에 닿는 것이 내 것도 아니었고 내 손에 닿지 않는 것이 남의 것도 아니었다.

인간이 고통받는 건 사사로운 아집 때문이니, 집착을 버리니 그제야 번민을 벗어난 본연의 '나'가 보였다.

지미는 속된 감정을 잊고서 그저 마음이 이끄는 대로 검을 휘둘렀다.

흐름이 검을 이끌고, 검이 흐름을 만든다.

지미로부터 뻗어나온 마나가 흐름과 동화되어 검 위를 잔잔하게 흐르기 시작한다.

그 일련의 과정이 너무나 고요하여, 기사들조차 샛별처럼 반짝이는 지미의 검을 우연찮게 목격하고 나서야 헛숨을 삼켰다.

"어엇? 저, 저거...!"

젠킨슨이 입을 가린 채 기함하자 그제야 검을 나누던 자들이 지미를 돌아봤다.

매튜 또한 뒤늦게 지미를 돌아보고서 입을 쩍 벌렸다.

지미의 검을 타고 흐르는 마나의 기류가 서로를 휘감고 융화되며 잔잔하고 거대한 빛 무리를 발하기 시작했다.

600년 전 전쟁영웅 클라위스 필립스가 발현했던 무아의 검강이 다시 한 번 아침을 밝혔다.

*

"네? 지미가 그래듀에이트의 경지에 들었다고요?"

레이가 어처구니없는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매튜에게 되물었다.

그래듀에이트가 어디 집구석 애완동물 이름도 아니고, 평생 족보 없는 검술을 익혔던 지미가 그래듀에이트의 경지에 들었다는 게 대단히 놀라웠다.

물론 레이도 그래듀에이트의 경지에 이르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초월자가 내린 특혜를 기반 삼아 수명 갉아 먹는 짓을 잔뜩 했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성과였다.

"이야, 지미도 대단하네요. 아무리 기사한테 검을 새로 배웠다지만 그 나이에 경지가 오르네요?"

"그러게 말이다."

"아니, 근데... 진짜 어떻게 된 일이에요? 너무 갑작스러운데요?"

그래듀에이트에 오를 시기가 되면 전조를 보이는 게 일반적이다.

허나 지미는 그 어떤 전조도 없이 갑작스레 경지가 올랐다.

목을 가다듬은 매튜가 목소리를 낮춘 채 레이에게 속삭였다.

"그... 결혼 생활을 하다 보니 깨달음을 하나 얻게 됐단다."

"...결혼 생활요?"

"그래, 결혼 생활."

"이야, 결혼 한 번 더 하면 소드마스터 되겠네!"

재혼 후 소드마스터.

지미가 써나갈 일대기의 제목이 될 것이다.

레이가 손뼉을 쫙쫙 치며 다른 여자를 찾아봐야겠다고 헛소리를 지껄이자 매튜가 곧장 레이의 팔목을 움켜쥐었다.

"농담이라도 지미 앞에서 그런 말은 하지 마라."

그래듀에이트 간에 칼부림 났다가는 수습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매튜가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레이를 뜯어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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