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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등가의 소드마스터-110화 (110/446)

부전 (1)

110화

이 세계는 '연 나이'로 나이를 계산했다.

태어났을 때를 0살로 치고 한 해가 지날 때마다 1살씩 덧붙인다는 소리였다.

이번 겨울이 지나면서 나는 18살이 되었다.

다행히도 근 3년 동안 필립스 백작령에 대단한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폭풍전야일 게 분명했으나 함부로 움직이기보단 내 사람을 지키고 끌어주는 데 집중했다.

많은 아이들이 앞으로 나아갔지만, 특히 요하나와 루나의 발전이 눈부셨다.

요하나는 기사들도 간간이 식겁하게 할 만큼 검술이 발전했고 루나는 3서클의 경지에 이르렀다.

한편 동생 녀석은 4살이 되었다.

개월수로는 40개월 정도였는데, 하루가 다르게 활동량이 늘어나 벨라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을 고생시키고 있었다.

더군다나 비슷한 개월 수의 아이들보다 여러모로 발전이 빨라 사람을 당황하게 만들고는 했다.

뭐, 어쨌든.

사각사각

나는 세리아에게 요청해서 받은 라푸마를 갈아내며 벽에 새겨진 눈금을 보았다.

한달 전에 내 키에 맞춰 선을 그어 놓은 눈금이었다.

그 높이는 대략.

174 cm.

"아, 좆같네 진짜."

반사적으로 욕설이 튀어나왔다.

뭐, 174 cm도 전생에나 현생에나 작은 키는 아니다만.

환생한 후 세웠던 몇 없는 목표 중 하나가 좌초될 위기에 처하니 절로 입이 거칠어졌다.

괜히 입술을 잘근거리다 억지로 마음을 가라앉혔다.

현재 성장이 아예 멈춘 건 아니므로 아직 희망은 남아있었다.

어떻게든 6 cm만 더 키워볼 요량으로 라푸마를 쭉쭉 갈아서 물에 타 마셨다.

"잘 좀 해보자, 성장판아."

몇 번이나 관절을 갈아댄 업보가 꽤 크긴 했지만 그래도 고지가 코앞이었다.

무릎을 괜히 툭툭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벨라는 오늘 오랜만에 지인들과 약속을 잡았고 지미는 업무를 보기 위해 사무실로 출근했다.

오늘 레아를 돌보는 건 매튜와 레이의 몫이었다.

매튜는 레이와 약속을 잡고 영주성 근처로 레아와 함께 나들이를 나왔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영주성 근처에 도착한 매튜는 이유 없이 칭얼거리는 레아를 달래보기 위해 이리저리 노력했다.

물론 쉽지는 않았고, 레아가 칭얼거리는 소리는 계속해서 커졌다.

알레시아가 지나가다 그 모습을 보고 레아와 매튜를 영주성 울타리 안으로 초대했다.

"너는 갈수록 귀여워지는구나!"

한참 통통하게 젖살이 올라 있는 레아는 알레시아가 느끼기에도 썩 사랑스러워 보였다.

레아가 정원을 이리저리 쏘다니는 걸 알레시아가 어울려주고 있자니 영주성 울타리 너머로 익숙한 얼굴이 다가왔다.

알레시아가 레이를 향해 해맑게 웃었다.

"나의 기사가 왔구나!"

알레시아가 말하는 '나의 기사'가 누구를 칭하는지 알고 있던 레아가 곧장 고개를 돌렸다.

알레시아에 이어 레이를 발견한 레아가 두 손을 번쩍 든 채 레이를 향해 쪼르르 달려갔다.

"오빠!"

레이는 레아가 다가오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젖살이 가득 올라 귀엽기 그지없는 외모 사이로, 선명한 붉은 눈동자가 레이를 응시한다.

떫은 표정을 한 레이가 슬쩍 몸을 돌린 후 달려오던 레아에게 발을 걸어 버렸다.

"아극!"

발이 걸린 레아가 잔디 위로 풀썩 쓰러졌다.

레아는 연신 눈을 깜박이다가, 대충 상황을 파악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빼애애애액!!!"

"울지 마라, 동생아. 고작 넘어졌다고 눈물을 보여선 안 된다. 네가 앞으로 헤쳐나갈 미래는 이것보다 훨씬 고통스러울..."

"엄마한테 이를 거야!!!"

"아이고, 그건 안 되지."

레이가 얼른 레아를 안아 든 후 목마를 태워주었다.

눈높이가 확 높아지자 레아는 금세 울음을 그치고 꺄악꺄악 즐거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알레시아가 그런 둘에게 다가와 고개를 갸웃거렸다.

"레이, 묘하게 동생에게는 심술궂게 구는구나."

보육원의 다른 아이들에게는 그리 따뜻하게 대해주더니.

뒷말을 생략한 알레시아의 물음에 레이가 낄낄 웃었다.

"사춘기 와서 대들기 전에 미리 기강 잡아야죠."

"나의 기사는 동생에게 유달리 엄격하구나."

레이와 알레시아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 레이 위에 올라탔던 레아가 자기를 무시하지 말라는 듯 레이의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잡아당겼다.

"오빠, 사춘기가 뭐야?"

"사춘기가 뭐냐고?"

"사춘기!"

"레아가 12살쯤 되면 어른처럼 변하기 시작할 거야. 키도 크고 가슴도 커지고 골반도 넓어질 거야. 그때를 사춘기라고 해."

"카렌 언니도 가슴 커!"

거기서 카렌이 왜 나오냐...고 따지려던 레이가 최근 더욱 성장한 카렌을 흉부를 떠올려보곤 대충 납득했다.

"그래, 카렌도 크지."

"대드는 건 뭐야?"

"오빠 말 안 듣는 거."

레이는 대화를 나누면서도 레아와 그럭저럭 소통이 된다는 것에 꽤나 위화감을 느꼈다.

40개월 정도 된 대다수의 아이는 말은 할 줄 알지만 그렇다고 정상적인 소통이 가능한 수준에 이르지는 못한다.

지금 레아와 하는 수준의 대화가 가능하려면 적게 잡아도 50개월은 넘겨야 했다.

'용혈 때문에 언어 발달이 빠른 건가?'

아니면 그저 좋은 재능을 타고났을 뿐인가.

'이 정도면 레어 등급은 충분히 넘겠는데.'

레이가 냉철하게 동생의 등급을 매기고 있자니 알레시아가 슬쩍 곁으로 다가왔다.

"나의 기사여, 레아는 내가 잘 돌봐주고 있었느니라. 내 어깨 위에도 올라가게 해주었다!"

신분을 가리지 않고 잘 어울리는 알레시아라 해도 핏줄 천한 레아를 어깨 위로 올려가면서까지 상대해준 건 오직 레이 때문이었다.

생색을 몇 번 낸 알레시아가 슬그머니 레이의 팔뚝을 잡아왔다.

"레이, 너와 함께 가보고 싶은 곳이..."

"오빠, 아빠 보러 가요. 아빠, 아빠 보러 가요."

레아가 알레시아의 말을 끊으며 레이의 머리카락을 힘껏 잡아당겼다.

고개가 뒤로 젖혀진 레이가 레아를 억지로 떼놓으며 알레시아를 향해 곤란한 얼굴을 했다.

"죄송해요, 알레시아님. 오늘은 이만 물러나도 될까요?"

"으음..."

레아가 있는 이상 분위기 잡기는 글렀다는 걸 알아챈 알레시아가 풀 죽은 얼굴로 답했다.

"가 보거라."

"다음에 또 찾아뵐게요."

레아와 함께 멀어지는 레이의 뒷모습을 보고 알레시아가 투덜댔다.

"나의 기사는 튕겨도 너무 튕기는구나!"

어째 분위기 좀 잡아보려 하면 이런저런 이유로 빠져나가는 레이였다.

*

레이는 레아를 데려왔던 매튜와 헤어진 후 지미의 사무실을 찾아 걷기 시작했다.

아무 말이나 막 던져대는 레아를 어깨 위에 태웠다가 지면에 내려놓길 반복하다 보니 금방 지미가 머무는 사무실에 도착했다.

지미는 사무실에서 서류 업무를 보고 있었다.

대놓고 양지로 나올 수 없는 몇 가지 사업과 자잘한 치안 업무를 패밀리가 담당하다 보니 지미가 점검해야 할 서류가 생각보다 많았다.

지미는 용병일을 할 때 뒤통수를 맞지 않기 위해 이 악물고 글을 배웠다.

그걸 설마 이런 식으로 사용하게 되는 날이 올 줄은, 예전엔 정말 상상도 못했다.

어쨌든 이제는 지미도 서류를 살피는 일이 익숙했다.

빠르게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노크 소리와 함께 레이가 레아와 함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지미는 레아 몰래 한숨을 푹 쉬었다.

레아의 힘을 빼놓을 때까지 상대해주려면 또 고생을 꽤 해야 했다.

시간이 흘러.

지미와 레이가 함께 노력한 끝에 마침내 레아의 체력을 방전시킬 수 있었다.

레아가 옆 방에 누워 잠든 사이, 지미와 레이가 각자의 의자에 몸을 뉘이고 숨을 골랐다.

서랍을 뒤적여서 연초를 꺼내 무는 지미를 보고 레이가 고개를 기울였다.

"어라, 끊은 거 아니었어요?"

"네 얼굴 보면 이것부터 생각나더라."

낄낄 웃은 지미가 연초를 다시 책상에 내려놓고는 레이를 쳐다봤다.

"야, 궁금한 게 있는데."

"말해봐요, '아빠'."

"..."

지미가 눈을 질끈 감았다.

여기서 고함이라도 쳤다간 레아가 다시 깨어나서 방금했던 고생을 또 해야 했다.

마음을 간신히 가라앉힌 지미가 실실 웃는 레이를 향해 물었다.

"넌 근데 여자한테는 관심이 없냐?"

지미는 꽤 오랜 시간 궁금했던 물음을 레이에게 던졌다.

이런저런 갈등이 봉합되고 필립스 백작령이 안정된 지도 3년이 흘렀다.

제국의 정세가 여전히 불안하긴 했지만 백작령은 겉으로 보기엔 평화로웠다.

여유를 되찾았으니 연애 정도는 즐겨도 될 텐데, 어째 눈앞의 놈은 여색에 영 관심이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게다가 레이는 여자에게 인기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너 좋다고 따라다니는 여자가 수두룩한데 왜 그렇게 벽을 치고 다녀?"

처음에 지미는 레이가 무슨 종교적인 이유 때문에 순결이라도 지키려는 줄 알았다.

허나 '초월적인 존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나 경기를 일으키며 쌍욕을 하던 레이가 종교에 충실할 것 같진 않았다.

"한참 여자한테 껄떡대고 다닐 나이인데... 어디 문제 있냐?"

농담 섞인 지미의 물음에 레이는 턱을 괴었다.

지미가 이리 대놓고 물어보니 레이도 자신을 한 번 되돌아보게 됐다.

'성욕이 없는 건 아닌데...'

성욕은 분명 있었다.

또래 여자들을 보고 설레는 감정이 아주 안 드는 것도 아니었다.

환생해놓고 선비마냥 아랫도리를 조신하게 놀려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근데 뭔가... 뭔가 좀 남녀 간의 신체적 교류를 생각하면 알 수 없는 껄끄러움이 찾아오곤 했다.

'나 쫓아다니는 애들을 너무 어릴 때부터 싸고돌며 키워서 그런가?'

그다지 납득가는 이유는 아니었다.

보육원 출신의 아이들 말고도 레이가 마음에 든다고 들이대는 여자들은 많았다.

외부에 알려진 것만으로도 레이는 굉장히 출중한 재능을 지닌 남자였고, 때문에 많은 여자들이 레이를 탐냈다.

허나 레이는 사적으로 여자와 만나는 걸 대단히 멀리했다.

'내가 생각해도 좀 이상하긴 한데...'

레이는 과거를 돌아보았다.

환생한 후 처음 이 세상을 접한 날.

레이는 생물학적 애미애비가 앙앙 대는 소리를 들었다.

거의 몇 달 동안 생물학적 애미애비가 내뱉는 신음 소리에 무방비로 노출됐다.

그 후엔 생물학적 애미애비가 서로 물고 빨다가 대가리가 깨지는 장면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했다.

벨라에게 거두어진 뒤에는 홍등가에서 일거리를 찾아 뛰었고, 피임구 세척 알바를 포함해 이런 저런 험한 일을 경험했다.

그리고 3년 전엔 산파를 쫓아다니며 산모가 아이를 낳는 광경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체험했다.

그 체험을 바탕으로 벨라가 출산할 때 레아를 두 손으로 직접 받기까지 했다.

"음..."

생각을 정리한 레이가 자기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뇌가 말랑말랑할 때부터 못 볼 꼴을 너무 많이 봤다.

간간이 가슴을 흐르는 껄끄러움이 어디서 기인됐는지 알 것 같았다.

레이는 지미를 바라보며, 어디까지나 농담으로 그리 말했다.

"지미, 사실은..."

"사실은?"

"제가 약간 심인성..."

"심인성?"

"발기부전이 있어요."

"?!"

지미가 경악했다.

발기부전? 18살에 발기부전이라니?!

여자를 멀리했던 게 그래서였나?

물론 레이는 농담으로 한 소리였다.

레이의 거시기 자체는 18살의 신체답게 재깍재깍 주인의 의지에 충실히 반응했다.

레이가 곧장 낄낄 웃으며 농담이었다고 사실을 밝히려 했지만.

그보다 한발 앞서 둔탁한 소리가 방을 울렸다.

쿵!

지미와 레이의 사이에 있던 탁자 아래에서, 나무판에 머리를 부딪치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지미와 레이의 눈동자가 동시에 탁자를 향해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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