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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등가의 소드마스터-75화 (75/446)

귀환 (5)

75화

브리즈가 로필렌의 분노에 답할 새도 없이 세리아가 짓쳐 들었다.

아랑검의 사용자에게 거리를 내주면 안 됐다.

콰가강!!!

검이 맞닿는 순간 그 후폭풍만으로 절벽 일부가 무너졌다.

본격적으로 아랑검을 구사하기 시작한 브리즈의 검강은 한층 강맹해졌다.

서로의 검격이 충돌할 때마다 사방에 구멍이 패였다.

세리아의 갑주가 종잇장처럼 찢겨나가기 시작하자 허큘러스가 조각조각 나누어져 세리아의 몸을 뒤덮었다.

브리즈는 그제야 허큘러스의 숨겨진 기능 중 능동 방어 시스템이 존재함을 파악할 수 있었다.

까가가가가각!!!

서로의 호흡이 피부를 간질일 지경까지 거리가 좁혀졌다.

제 아무리 그래듀에이트라 해도 이 거리에서 검강을 휘둘러대는 건 미친 짓이었다.

브리즈는 위압을 느꼈다.

'내가... 밀린다고.'

로얄가드.

황실이 만들어낸 최정예 무력 집단.

익힌 검술의 우수성과 검술을 구사하는 정교함에 있어 브리즈는 분명 세리아를 앞섰다.

허나 '투쟁'의 영역에 한해 세리아는 브리즈를 한참 앞서 있었다.

찰나의 실수가 온몸을 찢어발길 폭풍 속에서 망설임 없이 한발을 더 내디딜 수 있는 그 지독함이 브리즈에겐 모자랐다.

파가각!!

서로의 검이 뒤엉켜 비산한다.

브리즈는 검을 놓치는 순간 유도 검기를 쏘아냈다.

세리아의 몸을 감쌌던 허큘러스가 벗겨져 나가며 유도 검기를 상쇄한다.

세리아의 무릎이 브리즈의 허리를 찍어 올렸다.

하늘로 붕 떴던 브리즈가 세리아에게 흉갑이 잡혀 지면에 내동댕이쳐졌다.

세리아의 주먹에 마나가 가득 깃들며 빛을 토해낸다.

콰앙!!

주먹이 내리꽂히는 순간 브리즈의 갑주가 번쩍이며 실드를 발생시켰다.

빗겨나간 주먹이 브리즈의 귀를 찢고 지면에 박힌다.

브리즈가 갑주의 동력을 활용해 황급히 옆으로 몸을 굴리자 가까이서 대기하던 젠킨슨과 멘데스가 검기를 방출했다.

콰앙!!

검기를 막아낸 브리즈의 갑주가 기능을 정지했다.

허리춤에서 호신용 단검을 뽑아낸 브리즈가 중얼거렸다.

"지겠군."

브리즈 혼자만 이곳을 찾아왔다면, 분명 그랬을 터다.

콰아앙!!!

"?!"

세리아가 눈을 돌렸다.

폭발은 마법사들을 폭격하던 헤일로에서 일어났다.

무언가에 직격당한 헤일로가 스파크를 일으키며 절벽에 추락했다.

공중에 있던 피닉스가 뒤늦게 위기를 감지했으나, 미처 대응하기도 전에 강렬한 섬광에 휩쓸렸다.

헤일로와 피닉스를 무력화시킨 마우스가 절벽에서 떨어져 내렸다.

쿠웅!!

아벤시오 앞에 착지한 마우스가 다짜고짜 오른손의 검을 옆으로 그었다.

검푸른 검강이 통째로 방출된다.

촤악!!

대부분의 검강은 방출 과정에서 형태를 유지 못 하고 검기로 분해된다.

아벤시오는 저리 온전한 형태로 방출되는 검강을 생전 처음 보았다.

아벤시오의 눈동자에 핏발이 섰다.

뒤에는 아가씨들이 있다. 저건 몸으로라도 막아야 했다.

아벤시오가 검기에 휩싸인 검을 휘둘렀다.

파각!!

검강과 맞닿은 아벤시오의 검이 모래처럼 바스러졌다.

아벤시오는 검강을 향해 도리어 몸을 들이댔다.

그 찰나 투명한 막이 아벤시오 앞에 전개됐다.

끼기긱!!!

로필렌이 펼친 실드였다.

공간 왜곡장이 중첩된 실드가 검푸른 검강을 이리저리 뒤흔들었다.

결국 형태를 유지 못 한 검푸른 검강이 검기의 폭풍이 되어 쏟아졌다.

종자들과 정령까지 나서서 방어를 해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콰가가가가강!!

검기의 폭풍이 몰아치며 협곡 일대가 주저앉았다.

그 자리에 남아있던 모두가 피를 흩뿌리며 널브러졌다.

검강의 위력을 분산시키지 못했다면 시체도 찾지 못했을 것이다.

마우스는 확인 사살을 하겠다는 듯 왼손에 쥔 검에 검강을 덮어씌웠다.

검강이 쏘아지기 직전 젠킨슨과 멘데스가 들개처럼 달려들었다.

쩌엉!!

굉음을 들으며 세리아는 허큘러스를 뒤집어썼다.

로얄가드가 두 명.

발레리우스의 아티펙트 여섯 개를 전부 갖춰도 동시에 대적하기 힘든 전력이었다.

젠킨슨과 멘데스가 단 몇 초라도 시간을 끌어주는 사이 브리즈를 무력화시켜야 했다.

세리아는 허큘러스의 동력을 전부 추진을 위해 돌렸다.

콰앙!!!

폭발에 가까운 가속과 함께 세리아가 빛줄기처럼 쏘아졌다.

그 찰나 땅이 흔들리더니 바위로 이루어진 거대한 손이 튀어나와 세리아를 내리쳤다.

세리아의 행동을 예측한 마법사들의 방해 공작이었다.

세리아는 곧장 바위를 뚫고 나왔지만 이번엔 지면 일부가 통째로 융기했다.

융기한 지면 위에 올라 서 있던 브리즈는 세리아를 피해 도주하기 시작했다.

마법사들은 계속해서 지면을 움직여 세리아의 가속을 방해하거나 화염 마법을 뿌려 시야를 가렸다.

세리아에게 피해를 끼칠 순 없지만 발목을 잡기엔 효율적인 선택이었다.

꽈앙!!

세리아는 제멋대로 날뛰는 지면을 힘으로 찍어누르며 다시 한 번 브리즈를 향해 가속했다.

삽시간에 가까워지는 세리아를 보고 브리즈는 도주를 포기했다.

마법사들의 방해 공작은 기껏해야 몇 초를 벌었을 뿐이다. 허나 그 정도면 충분했다.

"듣던 위명에 비해 좀 실망스럽군."

카가각!!

세리아의 돌진을 막아 세운 마우스가 양손의 검을 동시에 휘둘렀다.

"로커스트의 악명이 과장되었었나?"

쩌엉!!!!

튕겨져 나가 절벽에 박힌 세리아가 이를 갈아내며 몸을 일으켰다.

몸을 뒤덮은 허큘러스의 이음새가 삐걱대고 있었다.

황실 특임대의 최고 무력 중 한 명인 마우스.

제국 검술 중에서도 특히 익히기 난해하다는 리에스테 류 분해검의 사용자다.

거기에 로얄가드인 브리즈까지 합류했다.

세리아는 마우스와 브리즈의 정확한 정체까지는 알지 못했지만, 이 싸움이 승산 없음은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다.

피를 뱉어낸 세리아가 검강을 뽑아냈다.

마우스와 브리즈가 사양 없이 동시에 움직였다.

까가가각!!

유도 검기가 날아오는 와중 분해검이 휘둘러진다.

세리아는 격렬하게 검을 휘둘렀지만 3초도 지나지 못해 허벅지를 깊게 베였다.

철컥!

허큘러스가 대검 형태로 변형되어 크게 휘둘러진다.

브리즈가 허큘러스를 받아내는 사이 마우스가 세리아의 뒤를 잡아 허리를 노렸다.

세리아는 허큘러스를 놓아버리고 뒤를 향해 팔꿈치를 휘둘렀다.

콰앙!!

팔꿈치에 검면을 얻어맞은 마우스의 일격이 허공을 가른다.

허나 검강에 맞닿은 세리아의 팔꿈치 또한 안쪽으로 꺾였다.

다음 순간 안쪽으로 파고든 마우스의 무릎이 세리아의 명치 아래를 찍어눌렀다.

뻐억!!

땅을 거칠게 구른 세리아가 절벽에 처박혔다.

입가에서 피가 주르륵 쏟아졌다.

팔다리 하나씩은 박살 났고 내장까지 파열됐다.

당장 기절해도 이상치 않았으나 세리아는 덤덤하게 포션병을 꺼내 들이켰다.

마우스가 재차 검강이 서린 검을 들어 올리자 브리즈가 제지했다.

"그만."

"...?"

의아함을 내비치는 마우스를 브리즈는 무시했다.

'지금부터 상황을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이번 임무에서 세리아의 정보가 누락됐다.

황실 특임대 정보부에 대단한 혼선이 생겼거나, 아니면 누군가 수작질을 부렸음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세리아 정도의 거물을 고려 못 할 리가 없었다.

귀족가 영애 몇을 정리하는 것과 세리아 알슈테인을 제거하는 건 일의 경중이 까마득히 차이 났다.

여기서 함부로 칼을 휘둘렀다간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일단 암살 임무는 보류한다. 간단한 응급 처치 후 가까운 곳에 전부 비밀리에 구금하고... 그리고 누구를 찾아가야 하지?'

상황 돌아가는 꼴이 명백하게 이상했다.

작전 결과를 황실 특임대에 곧이곧대로 보고해도 될지조차 의심스러웠다.

브리즈의 고민이 깊어지던 찰나 세리아가 중얼거렸다.

"뒤."

"?!"

오랜 기간 갈고 닦은 감이 브리즈의 허리를 비틀게 했다.

허나 한 발 늦었다.

마우스의 검이 뒤에서부터 브리즈의 명치를 꿰뚫었다.

"커억!!"

"망설이면 안 되지. 왜 이렇게 생각이 많아?"

브리즈가 피 끓는 소리를 냈다.

동료라고 방심한데다 전투 중 갑주의 기능이 정지한 탓에 너무 쉽게 일격을 내주었다.

마우스는 검을 비틀며 중얼거렸다.

"지금 그림도 나쁘지 않군."

황태자 직위를 박탈하기 위해 이번 일을 꾸몄다.

황태자를 끌어내리기 위해선 확실한 명분이 필요했다.

황태자의 외가를 포함해 이미 황태자에게 줄을 댄 이들이 다수였다.

어쭙잖게 수작을 부렸다간 친 황태자 파의 성질만 자극해 정쟁이 심화될 거다.

황실의 정쟁은 혼란을 가중시키고, 그 과정에서 무고한 희생자들을 무수히 쏟아낼 거다.

그렇기에, 그 누구도 감히 항의 못할, 황태자를 끌어내릴 강력한 명분이 필요했다.

황태자의 월권행위 탓에 로얄가드와 세리아 알슈테인이 정면에서 충돌하고 둘 모두 사망했다.

이 정도 그림이라면, 황태자는 스스로를 변호할 새도 없이 직위를 박탈당할 터다.

황실의 권위는 잠시 추락하겠지만, 황제는 그러한 피해를 감수할 생각이었다.

"크윽..."

브리즈가 가슴을 뚫고 나온 검을 붙들며 숨을 몰아쉬었다.

"네놈... 제국을... 배신한 거냐?"

"유감이군."

마우스는 제국에 충성했던 기사를 향한 예의와 동정을 담아 진실을 전해주었다.

"폐하의 명이시다. 황제 폐하께서 황태자를 버리셨다."

"...!"

경직됐던 브리즈의 몸에서 천천히 힘이 빠졌다.

진실을 듣고 나니 어렵지 않게 사건의 전말을 파악할 수 있었다.

"젠장..."

브리즈의 얼굴에 체념이 내려앉았다.

몹시 낙담한 브리즈가 고통도 잊고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처음부터... 줄을 잘못 섰군."

황태자, 그 빌어먹을 망나니 새끼 같으니.

그러게 진작 잘 좀 할 것이지.

가문에 남아 있는 가족들을 걱정한 브리즈가 의식을 잃었다.

퍼억!!

브리즈의 상체 절반이 풍선처럼 터져나갔다.

가슴에 남겨진 검흔 때문에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한 마우스의 조치였다.

브리즈의 검을 들어 올린 마우스가 세리아를 향해 다가갔다.

포션을 병째로 씹어먹은 세리아가 몸을 일으켰다.

그 마지막 발악을 보며 마우스가 한숨 쉬었다.

"받아들여라."

권력 구조가 개편될 때면 작든 크든 피바람이 분다.

그건 일종의 천재지변과 마찬가지였다. 운이 없어 맞닥뜨리면 얌전히 목을 내밀어야 하는, 그런 천재지변.

"억울하고 분하다고 해도, 그게 아랫것들의 운명 아니겠나."

"닥쳐!!!"

로필렌이 고함쳤다.

로필렌의 밑에선 알레시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로필렌은 알레시아의 배에 새겨진 자상을 손으로 틀어막으며 이를 갈았다.

"이 잡것들이...!!! 이, 이 빌어먹을 잡것들이 우리가 누구를 모시는지 알고...!!!"

"하, 나는 제국의 의지를 대변한다."

네놈이 모시는 주인 따위가 누구인지는 알 바가 아니다.

그런 의미가 담긴 마우스의 비웃음에 로필렌이 광분했다.

"닥쳐!! 닥치라고!! 이 버러지야!! 우리는...! 우리는...!! 우리는...?"

악귀처럼 일그러진 얼굴로 고함치던 로필렌이 문득 깨달았다.

지면과 맞닿은 무릎에서, 냉기가 느껴진다.

찬 바람이 불어와, 머리카락을 간질인다.

그 근원을 찾아 헤맨 로필렌의 눈동자가 무너진 절벽에서 멈추었다.

로필렌의 입꼬리가, 천천히 찢어졌다.

"으히히히... 으흐흐..."

살을 저미는 듯한 전율이 등골을 타고 오른다.

허상일 게 분명한 전능감이 심장을 뒤흔들었다.

로필렌은 결국 자기감정을 주체 못하고 미친년처럼 웃어 재끼기 시작했다.

"으하하하하하!! 으하하하하!!!"

"공포에 미쳤나."

고개를 저은 마우스가 검을 들어 올렸다.

그 순간, 로필렌의 웃음이 뚝 그쳤다.

"경배하라, 버러지야."

쿠궁-!

무너졌던 절벽이 다시 흔들렸다.

의식이 남아 있던 모두의 시선이 살얼음이 끼기 시작한 절벽으로 향했다.

로필렌이 두 팔을 넓게 벌린 채 속삭였다.

"제국 역사의 정점이 귀환하셨다."

콰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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