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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등가의 소드마스터-69화 (69/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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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화

하무스는 마음을 비우고 레이가 길길이 날뛰는 꼴을 바라봤다.

레이는 알레시아를 입에 담은 놈들에게 돌멩이를 던져 가며 검을 뽑으라고 소리쳤는데, 일종의 결투 신청이나 마찬가지였다.

가장 먼저 욕을 먹은 루블이 실소를 참지 못하고 공터를 가리켰다.

"따라와라."

공터는 본래 아티펙트의 성능 실험을 위해 마련된 장소였다.

쓰고 싶다고 쓸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으나, 주변에 있던 구경꾼들은 다들 흥미진진한 얼굴로 자리를 비켜주었다.

본디 완숙한 엑스퍼트 급 기사보다 스콰이어 간의 결투가 인기가 많은 편이다.

미숙함이 돌발 상황으로 이어져 여러 재밌는 상황을 연출했기 때문이다.

하무스와 빅토르는 벌레 씹은 얼굴로 구경꾼들 틈에 끼어들었다.

수군거리는 구경꾼 사이로 레이의 방자함을 비웃는 목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루블 또한 혀를 차며 레이를 도발했다.

"과분한 무기를 손에 쥐었다고 네놈이 뭐라도 된 것 같으냐?"

목소리를 낮춘 루블이 낮게 속삭였다.

"까불지 말고 네 주인에게 가서 엉덩이나 열심히 흔들거라."

레이가 말없이 하무스를 향해 손가락을 까닥였다.

요하나에게 선물할 검을 하무스에게 맡긴 레이가 평소에 쓰던 싸구려 검을 뽑았다.

그 꼴을 보고 루블이 고개를 저었다.

"같잖은 새끼가 꼴에 자존심은."

계속되는 도발에 분위기가 한층 더 달아오른다.

하무스는 은색 검을 품에 안은 채 과거의 일을 떠올렸다.

마나를 잔뜩 집어넣었던 자신의 검이 레이에게 양단된 그 순간을.

'아마도 미궁에서도...'

미궁에서 젠킨슨이 오시리스 가 기사 두 명을 동시에 제압했다고 했지만.

하무스가 생각하기엔 거짓이었다.

쿵!

레이가 검을 아래로 내린 채 몸을 날렸다.

루블은 빠르게 다가오는 레이를 향해 마주 검을 휘둘렀다.

그게 끝이었다.

꽈앙!!

예기치 못한 반동이 루블의 손아귀를 헤집었다.

루블은 한발 늦게 본인이 검을 놓쳤음을 깨달았다.

"어?"

루블이 당혹을 즐길 새도 없이 레이가 검을 버렸다.

레이는 상대의 목에 검을 가져다 대는 것으로 깔끔하게 싸움을 끝맺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레이의 주먹이 루블의 턱에 꽂혔다.

쩌억!!

"컥?!"

"이 씹새가 어디 아가리를 함부로 놀려?"

쩌억!!

다시 한 번 턱주가리가 돌아간 루블이 휘청거리며 두 손을 앞으로 뻗었다.

"자, 잠깐...!"

"잠깐은 시발아."

파각!!

레이가 루블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그 자리에서 반 바퀴 회전한 루블이 머리부터 바닥에 떨어졌다.

"어억!!"

"이게! 어디서! 우리 아가씨를! 우습게 보고!"

퍽!퍽!퍽!퍽!퍽!

레이의 발길질이 이어졌다.

루블은 지면을 데굴데굴 굴러가며 레이의 발길질에 얻어맞아야 했다.

흙먼지가 잔뜩 올라올 정도로 루블을 걷어찬 레이가 씩씩거리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다음. 너 이 새끼 일로 와봐."

레이의 손가락이 함부로 알레시아의 이름을 입에 담았던 다른 녀석을 향했다.

레이에게 지목된 스콰이어, 쿠단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하...!"

루블이 방심한 탓에 망신을 당했다만.

쿠단은 엑스퍼트의 경지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루블보다는 확실히 윗줄의 강자였다.

쿠단은 가슴을 넓게 펴고 당당한 걸음으로 레이 앞에 섰다.

그리고 레이의 검격을 딱 세 번 받아내고 개처럼 처맞기 시작했다.

퍽!퍽!퍽!퍽!퍽!

"엎드려! 빌지는! 못할망정! 누구 앞에서! 목에 힘을 줘?!"

"끼에에엑!!"

쿠단이 짐승 같은 비명을 내지르며 지면을 데굴데굴 굴렀다.

그 꼴을 보며 하무스는 확신을 얻었다.

'저 새끼 엑스퍼트 급이다.'

레이가 정확히 어느 수준의 경지에 이르렀는지는 모른다.

허나 엑스퍼트 급 기사와 비견되는 무력을 갖췄음은 확신할 수 있었다.

결국 쿠단 이후로도 스콰이어만 세 명이 더 레이에게 처맞았다.

구경꾼들 중에선 스콰이어들의 마스터도 있었지만, 직접 나서서 싸움을 중재하거나 레이를 압박하지는 않았다.

자존심 상할 일이기도 하고 명분 문제도 있었다.

결국 레이는 기절한 스콰이어 다섯을 남겨둔 채 공터를 떠났다.

하무스는 은색 검을 돌려주며 눈살을 찌푸렸다.

"어쩌려고 이래?"

당장은 괜찮아 보여도 추후 갈등의 원인이 될 것이다.

레이 본인이 아닌 필립스 백작가에 문제가 갈 소지가 있는 행동이었다.

레이가 어깨를 으쓱였다.

"고모가 여기 오신다니까."

"네 고모가 누군데?"

"세리아."

"...제국 영웅 세리아?"

"어."

"제발 말이 되는 소리를..."

하무스가 따지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젊은 나이에 로커스트를 토벌하고 엄청난 위명을 얻은 세리아.

그리고 열셋의 나이에 웬만한 스콰이어는 찍어 누를 실력을 지닌 레이.

둘이 고모 조카 사이라고?

그게 말이...

"되네?"

하무스와 빅토르가 동시에 눈을 크게 떴다.

어디서 저런 놈이 튀어나왔나 했더니 세리아의 혈육이라면, 또한 세리아가 직접 지도했다면 저런 실력도 납득이 갔다.

하무스와 빅토르가 황급히 레이의 팔을 붙잡고 늘어졌다.

세리아에 관해 듣고 싶은 이야기가 넘쳐났다.

*

숙소로 돌아온 레이가 짐을 정리하며 은색 검을 젠킨슨에게 보여주었다.

젠킨슨은 역시나 감탄하며 찬찬히 검을 살폈다.

"제플린의 위명이 헛된 게 아니군..."

"탐나요?"

"흐흐... 탐이야 나지. 하지만 내게 필요한 물건은 아니다."

그래듀에이트 정도 되면 확실히 검의 품질이 중요해진다.

검기를 수십 가닥 꼬아 검강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검의 품질이 바쳐주지 않으면 퍼포먼스에 제한이 생긴다.

그것도 일정 품질 이상만 되면 거기서 거기긴 하다만, 무기에 집착하는 건 무인의 본능과 마찬가지였다.

"너라면 얼마 안 가 이 검의 가치를 십분 발휘할 수 있겠지."

"제가 쓸 거 아닌데요?"

"...?"

"요하나 줄 거예요."

"아니..."

레이를 바라보던 젠킨슨이 별말 없이 검을 꽂아 넣었다.

요하나 또한 정말 훌륭한 재능을 타고났으니 이 정도 투자쯤이야 전혀 낭비가 아니었다.

다만 레이가 가끔 보여주는 저 초탈한 성정의 근원과 이유가 무엇인지, 젠킨슨은 궁금해지고는 했다.

레이는 은색 검을 옆으로 치운 후 검집에 일자 무늬가 두 줄 새겨진 검을 뽑아보았다.

12,000 골드를 주고 구매한 이 회색 검도 꽤 훌륭한 물건이었다.

허공에 몇 번 검을 휘둘러본 레이가 화제를 돌렸다.

"알레시아는 오늘도 계속 숙소에 있었나요?"

"그도 모자라 수석 교수가 숙소에 찾아왔다. 조사할 게 있다며 알레시아 님을 찾았는데, 알레시아 님이 응하지 않으셨다."

"크크큭..."

음침하게 웃은 레이가 미간을 짚었다.

"또 뭔 사고 치셨네."

"그래."

"아니! 대체! 황실 마탑까지 와서! 왜 또 사고를 칩니까?!"

"...그러게 말이다."

젠키슨 또한 골치 아프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사고를 쳤답니까?"

"그걸 아무래도 네가 한 번 여쭤봐야 할 것 같다. 이야기를 안 하시는군."

*

"소환에 응하지 않더군요."

황실 마탑 수석 교수 디오리카가 주변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디오리카 앞엔 쟁쟁한 귀족가의 관계자들이 뚱한 얼굴을 한 채 앉아 있었다.

열흘이 조금 넘는 조사 끝에 '타락한 문화'가 유학을 왔던 귀족가 영애들 사이에 범람하고 있음을 밝혀낼 수 있었다.

외설적인 소설을 돌려봤던 귀족 영애들을 조사한 끝에 이번 사태의 주동자라 여겨지는 인물을 색출할 수 있었다.

알레시아.

외설적인 소설로 또래 영애들을 끌어들여 세력을 구축하고 방만을 떤 악의 중심.

"당장 그년을 마탑에서 내쫓지 않고 무엇을 하는 거요? 그, 그 빌어먹을 년이 내 동생을...! 내 동생을...!"

안젤로가 가슴을 텅텅 치며 분노를 드러냈다.

꽤 민망한 이야기였기에 다들 눈치를 보는 중이었지만, 대개 알젤로의 의견에 동의하는 편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이번 일을 조용히 처리해야 한다는 거다.

혼인도 하지 않은 귀족 영애들끼리 외설스러운 소설을 돌려보다 문제가 생겼다는 소문이 퍼지면 개쪽도 그런 개쪽이 없었다.

디오리카는 처음에 알레시아를 소환해 입을 맞춘 후 야설 공유가 아닌 적당한 핑계를 대어 알레시아를 마탑 밖으로 내보내려 했다.

허나 분노한 안젤로를 비롯해 다른 귀족 영애들의 보호자는 이 사달을 낸 알레시아를 확실히 망신 주기를 원했다.

"황실 마탑에 이런 불온 서적을 반입해 문제를 일으킨 대가는 확실히 치르게 해야 할 것이오!"

사실 이번 사태를 접한 귀족가 관계자들은 처음에 안젤로가 과민 반응을 한다고 생각하곤 했다.

허나 직접 그 '불온 서적'을 읽어보고 난 후.

다들 적극적으로 안젤로의 주장에 동의했다.

헛기침을 한 번 한 디오리카가 물었다.

"이번 사건이 밖으로 드러나면 그... 다른 영애들의 평판에도 피해가 있지 않겠습니까?"

"어째서?"

"?"

"이 불온 서적은 알레시아 혼자 반입하고 혼자 즐기다가 다른 영애들에게 들킨 것이오! 그렇지 않소?"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디오리카가 주변을 둘러보고는 짧게 혀를 찼다.

사실 이 사안이 이렇게까지 심각해질 사안이냐 하면 또 애매했다만.

엮인 자들이 워낙 많은 탓에 누군가는 책임을 물어야 했다.

거기에 이 사달을 낸 알레시아는 비교적 한미한 가문에 속해 있었다.

알레시아 혼자 창피를 당하고 마탑에서 내보내는 정도로 마무리해도, 감히 항의하긴 힘들었다.

*

컨퍼런스 이후에도 알레시아는 최소한의 커리큘럼만 마치고 잽싸게 숙소로 도망치길 반복했다.

레이는 알레시아와 플로리아 둘이서 듣는 수업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교수가 강당을 나오자마자 곧장 안으로 쳐들어갔다.

가방을 싸매고 도망치려던 알레시아가 레이를 보고 흠칫 몸을 굳혔다.

레이가 외부와 통하는 강당의 문고리를 으스러뜨렸다.

"알레시아 님, 앉으세요."

"..."

알레시아가 뺀질거리며 눈치를 보자 대번 레이의 인상이 험악해졌다.

"야, 앉아."

"나의 기사가 오늘따라 박력이 넘치는구나아..."

알레시아가 마지 못해 자리에 앉았다.

레이가 플로리아에게도 손가락을 까닥였다.

"플로리아 님도 앉으세요."

"으음..."

도저히 귀족한테 보일 행태는 아니었으나 플로리아도 못 이기는 척 자리를 찾아 앉았다.

레이는 크게 숨을 내쉰 후 알레시아를 마주 봤다.

"야, 대체 무슨 사고를 친 거야?"

"무, 무슨 말인지 모르겠구나아..."

알레시아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린다.

레이는 제발 별 볼 일 없는 사고이길 바라며 이번엔 플로리아를 바라봤다.

알레시아가 사고를 쳤다면,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하는 플로리아 또한 무언가를 알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레이가 입을 열려는 순간, 문을 쾅쾅 치는 소리가 교실을 울렸다.

"레이, 나와봐야 할 것 같다."

젠킨슨의 목소리였다.

레이가 무슨 일인가 싶어 부서진 문고리 사이로 손가락을 집어넣고 잡아당겼다.

밖을 나와보니 마법사 둘과 기사 다수, 그리고 귀족처럼 보이는 인간이 여럿 진 치고 있었다.

수석 교수 디오리카가 먼저 입을 열었다.

"큼... 알레시아 님이 황실 마탑에 외설적인 소설을 반입하셨다는 의혹이 있어 찾아왔네."

"...?"

이게 무슨 소리야?

레이가 눈을 깜박이며 얼을 타자 디오리카가 설명을 덧붙였다.

"그 외설적인 소설을...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감상하다 다른 학생들의 눈에 띄어... 신고가 접수됐네."

혈압이 오른 레이가 뒷목을 붙잡았다.

"이런 씨...! 돌아버리겠네."

욕설이 목구멍까지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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