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홍등가의 소드마스터-67화 (67/446)

컨퍼런스 (1)

67화

컨퍼런스가 열리는 날짜가 다가왔다.

몸을 가볍게 푼 레이가 외출할 채비를 했다.

최근 며칠은 꽤 여유로웠다.

아프텔이 언급한 백도어를 구하기 위해선 황실 마탑 밖으로 나가야 했기에, 유학 기간이 끝나길 기다려야 했다.

로필렌의 교수 직위 사임 건은 아직 진행 중이었다.

계약 각인 내용을 조율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걸리는 듯했지만, 불온한 움직임은 없었다.

레이는 남는 시간 동안 마법서를 둘러보며 난해한 부분을 플로리아에게 물어보곤 했다.

물론 플로리아의 설명을 들어도 이해가 안 갔다.

서클을 만든다 해도 마법을 적극적으로 써먹기는 영 글러 보였다.

"어디 보자..."

레이가 책상을 뒤져 황실 마탑이 보증한 수표를 꺼냈다.

와일드호그 탈출 건으로 황실 마탑이 건넨 보상금이었다.

2만 골드 쯤 되었는데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물가가 천지 차이라 전생의 화폐 가치로 환산하기엔 이래저래 부적절했으나, 굳이 따지자면 2억 원 정도 되는 금액이었다.

알레시아는 젠킨슨과 레이에게 수표를 통째로 넘겼다.

젠킨슨 또한 와일드호그를 사냥한 사람이 가져가라며 자기 몫을 조금도 떼지 않았다.

덕분에 레이는 나름의 거금을 들고 컨퍼런스에 참가할 수 있었다.

숙소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빅토르가 레이를 보고 손을 들어 올렸다.

"나왔냐? 빨리 출발하자."

"그래."

레이는 빅토르와 하무스를 따라 컨퍼런스가 열리는 거리로 이동했다.

컨퍼런스에 참가하기 위한 신원 확인 절차를 받으며 스콰이어 간의 들뜬 대화가 이어졌다.

여러 잡담이 지나가다 빅토르의 입에서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왔다.

"요즘 재밌는 소문이 돌더라?"

"무슨 소문인데?"

"귀족 영애님이 외설스러운 소설을 반입해 보다가 걸렸다는데."

"하하."

레이가 몇 년 전 알레시아를 생각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뭐, 그럴 수도 있지."

"근데 외설스러운 책을 영애님들끼리 돌려봤다는 이야기가 있더라고."

"잘못하면 줄줄이 엮여 나오겠네."

그게 설마 우리 아가씨겠어.

낄낄거린 세 명의 스콰이어가 절차를 마치고 컨퍼런스 거리로 들어섰다.

수많은 마법사와 장인이 거리에 부스를 마련해 자신들의 작품을 전시한 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컨퍼런스 거리 사이사이 존재하는 공터에선, 컨퍼런스에 출품된 장비들의 성능 실험이 이어지는 중이었다.

콰앙!

기사가 쥔 검의 폼멜이 번쩍이더니 검신에서 불꽃이 흘러나와 바위를 강타했다.

그밖에도 얼음 방벽을 전개하거나 전류를 흘릴 수 있는 도검류 아티펙트도 성능을 선보였다.

꽤 위력적인 광경이라, 아직 엑스퍼트의 경지에 오르지 못한 하무스와 빅토르는 흥미롭게 성능 실험을 지켜봤다.

레이가 둘을 향해 물었다.

"저런 건 얼마나 해?"

"기능이 반영구적이라면 최소 몇만 골드부터 시작할걸?"

"쓸모도 없는 게 비싸긴 더럽게 비싸네."

"하하, 쥐여주면 쓸 거면서."

"에이, 기사가 저걸 어디다 써?"

저런 아티펙트보다 검기가 차라리 더 위력적이었다.

상대의 허를 한 번쯤은 찌를 수 있겠다만.

구조가 복잡한 아티펙트는 도검으로써 성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갑주에 저런 기능을 장비시키는 게 더 효율적일 것 같은데."

"누가 그걸 모르겠냐. 대신 훨씬 비싸."

빅토르가 툴툴거리자 하무스가 거들었다.

"가장 급 높은 건 무선 유도 병기인데, 이쪽은 수천만 골드도 가뿐히 넘어가는 물건이 수두룩하다. 자체 동력원을 가진 아티펙트는 거기서 더 비싸지고."

"헤일로나 멸리의 빛 같은 걸 말하는 거지?"

"..."

빅토르와 하무스가 일순 침묵했다.

레이가 영웅의 무구를 입에 담는 걸 보고 깨달을 수 있었다.

세리아와 로커스트의 전투는 필립스 영지 근방에서 이루어졌다.

레이가 운이 좋았다면 그 전투를 목격하거나 세리아와 마주쳤을 수도 있었다.

빅토르와 하무스가 흥분해서 레이의 팔을 붙들었다.

"그러고 보니 너라면 세리아님을 직접 뵈었을 수도 있겠네!"

"와! 이걸 왜 생각 못 했지?"

"어, 뭐... 몇 번 만났지."

레이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하무스가 탄식을 흘렸다.

"이야, 무지하게 부럽네. 혹시 세리아 님이랑 대화도 해 봤냐?"

"응."

"크으...!"

레이는, 빅토르와 하무스의 반응을 보고 새삼스레 세리아의 위명을 체감할 수 있었다.

빅토르와 하무스가 흥분에 겨워 호들갑을 떨었다.

"세리아님은 검강을 몇 미터씩 뽑아내신다며! 혹시 직접 봤어?"

"만났을 때 무섭지는 않았냐? 굉장히 과묵하고 냉철한 분이시라는데."

레이가 손을 휘저었다.

"아이 그거 헛소문이야. 던전에 오래 있었던 탓인지 사람이 좀 맹해. 그래도 나름 귀여운 면이 있더라."

이야기를 듣던 하무스가 정색을 했다.

"야."

"응?"

"세리아 님이 니 친구냐?"

뭐라는 거야 미친놈이.

레이가 어처구니가 없어 얼을 타는 사이 하무스가 어깨를 떨며 분노했다.

"예의를 지키라고, 예의를. 어디 감히 제국의 위대한 영웅 세리아 님께 맹하다느니 귀엽다느니...!"

"...그래, 내가 잘못했다."

여기서 고모니 조카니 밝혀봤자 더 귀찮아진다.

대충 사과한 레이가 손을 휘휘 저으며 앞서 걸었다.

컨퍼런스 거리 안쪽으로 들어가니 대장간처럼 도검류를 주렁주렁 전시해 놓은 부스도 발견할 수 있었다.

마법적인 기능이 없는 순수한 무구였으나, 레이는 이쪽이 더 관심이 갔다.

"흠..."

수십이 넘는 부스들 중 유난히 기사들의 발걸음이 잦은 부스가 하나 있었다.

기사들의 구경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쇠 냄새가 나는 부스로 다가간 레이가 가장 좌측에 전시되어 있는 검을 살폈다.

"이야..."

맑고 깨끗하다.

얼굴이 선명하게 비칠 만큼 매끄럽게 뻗어 나온 은색 검신을 보며 레이는 그리 느꼈다.

바라보기만 해도 검이 내뿜는 예기에 압도될 것만 같았다.

"어디..."

손가락을 검에 가져다 댄 레이가 마나를 살짝 흘렸다.

마나가, 완벽한 균일함을 자랑하는 금속을 타고 부드럽게 흐르다 증발했다.

절로 탄성이 나왔다.

"...이건 진짜 물건이네."

미스릴 합금으로 제작한 검 같은데, 사실 소재가 문제가 아니었다.

기사가 무기를 고를 때 가장 중요시하는 건 바로 균일함이었다.

'손꼽히는 장인이라 해도 금속을 제련할 때는 불순물이 섞이고, 망치질과 열처리를 하는 과정에서 크랙이 발생하는 법인데...'

마법을 적절히 사용함으로써 이렇게까지 품질을 높일 수 있단 말인가.

레이가 연거푸 감탄하며 검을 살폈다.

꽤 욕심이 일었다.

이 검이라면 마나를 과격하게 운용해도 어지간하면 버텨줄 터였다.

요새 넘쳐 나는 재능을 주체 못해 검을 깨먹는 일이 많아진 요하나에게 선물해주면 딱 알맞을 것 같았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고.'

레이가 피식 웃었다.

요하나가 사춘기에 들어선 후 계속 틱틱거리긴 한다만.

그와 별개로 요하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검을 휘두르며 실력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기사들의 훈련 중에는 더럽고 위험한 것도 참 많았지만, 요하나는 불평하지 않고 충실히 훈련에 임했다.

보고 있자면 자주 흐뭇해지고는 했다.

"어이."

옆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정신 없이 검을 구경하고 있던 스콰이어 셋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우락부락한 근육을 자랑하는 남자가 팔짱을 낀 채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덩치만 보면 기사나 대장장이처럼 보였는데, 입고 있는 로브를 보면 마법사였다.

"꼬맹이들이 눈독 들일 만한 물건이 아니니 저리 꺼져."

꽤 날서 있는 반응이었으나 검에 빠져 있던 레이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직접 제작하신 겁니까?"

"그래."

"실력이 대단하시군요. 정말 훌륭한 검이네요."

"꼬맹이가 입만 살았군."

말과는 다르게 썩 싫어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레이는 햇살이 흘러내리는 은색 검신을 바라보며 주머니에 넣은 손을 만지작거렸다.

"얼마쯤 합니까? 이런 물건은."

"경매에 내놓을 물건이다. 적게 잡아도 20만 골드는 훌쩍 넘겠지."

레이의 표정이 떫어지자 남자가 실소를 흘렸다.

"그 검을 제작하는데 달려든 마법사만 나를 포함해서 열 명이 넘는다. 아티펙트가 아니라고 우습게 보였나?"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너희 같은 꼬맹이들에겐 저 오른쪽 검들도 과분하다. 일만 골드쯤 하니 확인해 보던가."

앓는 소리를 낸 레이가 우측에 전시되어 있는 검을 하나 잡았다.

이건 가격표가 붙어있었는데, 12,000 골드 짜리 검이었다.

마나를 슬쩍 흘려본 레이가 고개를 저었다.

"훌륭하지만, 못 쓰겠네요."

"뭐?"

남자의 미간이 대번 찌푸려졌다.

우측에 있는 검들도 어지간한 기사들에게 과분한 수준의 검이었다.

헌데 아직 스콰이어처럼 보이는 애새끼가 시원찮다는 반응을 보이니, 불쾌함을 숨길 수가 없었다.

레이가 검을 내려놓고 아쉬운 발걸음을 옮기려 하자 남자가 앞을 가로막았다.

"이 빌어먹을 꼬맹이가 날 우습게 봤군."

남자는 황실 마탑에서도 금속 제련 쪽으로는 알아주는 장인이자 마법사였다.

기사도 못된 애새끼들한테 희롱당할 위치가 결코 아니었다.

분노하는 남자를 앞에 두고 잠시 곤란해한 레이가 솔직히 말했다.

"다른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닙니다. 하지만 우측의 검은 아무래도 제 마나 운용을 길게 버티지는 못할 것 같아..."

"증명해라."

남자가 검을 바닥에 던졌다.

"어디 한 번 검을 쥐고 마음껏 마나를 운용해 봐라."

"..."

"검에 반드시 하자가 생겨야 할 거야. 아니면 내 물건을 모욕한 대가를 치르게 해주지."

"...하자가 생기면, 어쩌실 겁니까?"

레이가 뚱한 얼굴로 묻자 남자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네가 처음 보았던 검을 일만 이천 골드에 팔아주마."

레이가 되도 않는 허세를 부린다 판단한 남자는 판돈을 크게 걸었다.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

레이에게 남은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당장 무릎을 꿇거나. 아니면 내기에 응해 크게 망신을 당하고 대가를 치르던가.

레이가 고른 선택지는 후자였다.

"후우."

한숨을 쉰 레이가 바닥에 떨어진 검을 붙잡았다.

남자의 입가에 조소가 드러나는 순간 레이가 검에 마나를 주입했다.

'확실히 좋은 검이긴 한데...'

과거 필립스 백작에게 받은 검과 얼추 품질이 비슷했다.

공간을 변질시키는 마나를 거칠게 회전시켜도 비교적 잘 버터 주었다.

옆에 있던 하무스와 빅토르가 안절부절하며 입술을 씹었다.

'그냥 무릎 한 번 꿇고 말지 왜 자존심을 부려선...!'

'잘못하면 우리까지 싸잡혀서 책임을 물어야겠는데...'

쏟아지는 시건을 느낀 레이가 검에 마나를 더욱 집중시켰다.

검에 미약한 광채가 어린다.

검기를 방출할 생각이 없었음에도, 금속을 따라 요동치는 마나가 그 존재감을 드러냈다.

검은 여전히 잘 버텨주었다.

허나 시간이 지날수록.

작게나마 밀도 차이가 나던 부근에서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빅토르와 하무스는, 심지어 레이조차 눈치채지 못했으나.

남자는 들을 수 있었다.

금속에서 발생하기 시작한 미미하기 짝이 없는 파열음을.

남자의 표정이 급격히 굳었다.

"그만."

"..."

레이가 고개를 들어 빤히 남자를 쳐다봤다.

한동안 침묵하던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일만 이천 골드다."

"..."

레이가 순순히 주머니에서 수표를 꺼내 내밀었다.

수표를 받아든 남자가 부스로 걸어가더니 가장 우측에 있던 검에 검집을 씌워 레이에게 던졌다.

"서비스다."

"괜찮습니다."

"소문내기 전에 받아라."

"...감사합니다."

"이름이 뭐냐."

한 박자 쉰 레이가 답했다.

"레이입니다. 필립스 백작가의 기사, 젠킨슨 경을 마스터로 모시고 있습니다."

신분을 숨기는 건 소용이 없다. 때문에 솔직히 답했다.

만약 남자가 딴생각을 품는다면, 아프텔이 경고해줄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도 있었다.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 이름은 제플린이다. 네 이름이 어서 빨리 내 귀에 들려오길 기대해보지."

"그때가 되면 꼭 한 번 더 찾아뵙겠습니다."

고개를 꾸벅 숙인 레이가 멀어졌다.

제플린은 잠시 제자리를 서성이다, 웃음을 한 번 터뜨리곤 부스로 돌아갔다.

오늘의 손해는 개인 자산으로 메워야 했다.

*

"오우오오오...!"

"우아아아아...!"

레이에게 건네받은 은색 검을 구경하며 하무스와 빅토르가 탄성을 흘렸다.

아티펙트는 아니었으나, 그에 비견될 만큼 참으로 매혹적인 검이었다.

둘은 감탄하면서도 슬금슬금 레이의 눈치를 보았다.

'대체 뭐하는 새끼야?'

둘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무슨 수작을 부렸기에 제플린이 순순히 검을 넘겨주었나 이해가 안 갔다.

처음엔 사기 당한 게 아닐까 싶었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검은 진짜 명품이었다.

한편 레이는 다른 고민에 빠져 있었다.

검 한 자루 사는데 예산의 60퍼센트를 태웠다.

서비스까지 해 총 두 자루의 검을 받긴 했으나, 하나는 이미 균열이 갔기에 선물로 주긴 뭐했다.

'그냥 내가 써야지.'

여튼 남은 예산으로 일백이 넘어가는 아이들의 선물을 구매해야 했는데, 아무래도 볼멘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카렌이 많이 실망할 텐데...'

여전히 카렌은 아이들의 중심이자 보육원의 기둥이었다.

카렌이 평소 하는 노력을 감안하면 요하나보다 못한 선물을 준비할 수는 없었다.

허나 이미 일만 이천 골드를 태웠으니, 카렌에게 할당할 수 있는 예산은 기껏해야 일천 골드 아래였다.

"으음..."

길을 걷던 레이 눈에 장신구를 판매하는 부스가 눈에 띄었다.

다가가서 구경하자 여자 직원이 친절히 응대해주었다.

"어떤 물건을 찾으시나요?"

"여기 있는 게 전부 아티펙트인가요?"

"아티펙트인 것도 있고, 평범한 장신구도 있습니다."

직원이 푸른 보석이 박힌 장신구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이건 약한 강도의 실드를 전개할 수 있는 아티펙트입니다."

"그건 가격이..."

"20,000 골드입니다."

단념한 레이가 평범한 장신구를 찾았다.

아티펙트는 아니더라도 마법을 활용한 가공을 거쳐 매혹적으로 반짝이는 장신구가 많았다.

"선물할 건데... 붉은 머리에는 어떤 색이 어울릴까요?"

"여성분이시죠?"

"예."

"그럼 이건 어떠신가요?"

여자가 서랍에서 목걸이를 하나 꺼내 보여주었다.

황금색으로 빛나는 작은 보석과 은색 체인으로 이루어진 목걸이였다.

아름답게 가공된 목걸이에 시선을 빼앗긴 레이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이건 얼마인가요?"

"후후. 특별히, 일천 골드에 드릴게요."

바가지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으나.

이 목걸이가 카렌에게 썩 어울릴 거란 확신은 분명히 들었다.

레이는 일천 골드를 지불하고는 잘 포장된 목걸이를 받아들었다.

부스를 나온 레이가 턱을 매만지며 고민했다.

"이래도 괜찮으려나 모르겠네."

"무슨 말이야?"

"그러니까..."

레이가 하무스와 빅토르에게 자기 고민을 털어놨다.

"은색 검은 요하나에게 선물할 생각이거든?"

"근데?"

"카렌에겐 이 목걸이를 선물할 생각이야."

"..."

하무스와 빅토르가 서로 눈을 마주 보는 사이 레이가 혀를 찼다.

"카렌이 삐치지 않을까 걱정이네."

잠시 눈을 깜박이던 하무스가 혹시나 싶어 되물었다.

"레이, 잠깐만. 요하나에겐 검을 선물할 생각이라고?"

"응."

"카렌에겐 그 아름다운 목걸이를 선물하고?"

"응."

"근데 누가 삐칠까봐 걱정된다고?"

"카렌이."

"왜?"

"검이 목걸이보다 열 배는 더 비싸니까."

정확히 따지자면 백 배 더 비싼 물건이었다.

레이의 완벽한 논리에 콧잔등을 매만진 하무스가 정색하며 쏘아붙였다.

"너 이 새끼 사실 기사 아니고 마법사지?"

"아니 왜 욕을 하고 그래?"

"아오...!"

하무스가 자기 가슴을 두들겼다.

"레이, 잘 생각해봐. 넌 좀 더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거야."

"더 비싼 목걸이를 준비하라고? 미안한데 예산이 부족해서 안 돼."

"..."

뒷목을 붙잡은 하무스가 새삼스레 레이를 내려봤다.

워낙 잘난 놈이라 까먹고는 했지만 레이는 13살이었다.

'그래, 여자 마음을 모를만한 나이긴 하지.'

사실 육체에 비해 정신 연령이 높은 레이가 13살 아이들을 '여자'라고 고려하지 못한 거지만.

어쨌든 결과는 같았다.

충고를 이어가려던 하무스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꼬라지를 보니 한 번 크게 데어봐야 정신을 차릴 기세였다.

"그래, 한번 잘 달래봐."

달래야 될 대상이 카렌이 될지 요하나가 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무래도 요하나의 사춘기는, 더 길어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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