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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등가의 소드마스터-39화 (39/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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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화

로커스트.

그를 사냥하기 위해 백작령 내의 기사급 전력이 전부 결집했다.

필립스 백작과 백작의 휘하 기사 아홉, 지미와 매튜, 그리고 세리아까지.

검을 휘둘러 바위를 박살 낼 수 있는 초인만 열셋이었기에, 그들은 내심 자신만만하게 산맥을 올랐다.

허나 일백이 넘어가는 암흑 정령들을 눈앞에서 마주하니 분명히 깨달을 수 있었다.

이건 목숨을 걸어도 승리를 장담하기 힘든 전투였다.

모하메드가 백작을 바라봤다.

백작은 선대부터 내려온 군사 교리에 따라 얼굴이 보이지 않는 투구를 쓴 채 평범한 기사 흉내를 내고 있었다.

백작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저 강인한 눈으로 정면을 응시했다.

백작의 의중을 확인한 모하메드가 로커스트를 향해 검을 겨누었다.

"제국의 적을 섬멸하라!!!"

검기를 줄기줄기 뽑아낸 기사들이 물결치는 정령들을 향해 돌진했다.

정령들 또한 아무렇게나 붙어있는 입꼬리를 길게 찢더니 기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파가가가가각!!!

사방에서 섬광이 빗발쳤다.

기사들은 날카로운 검기로 어렵지 않게 정령을 양단했다.

허나 하나의 정령을 베어내는 순간 다섯이 넘어가는 정령들이 아가리를 벌리고 덤벼들었다.

사지가 잘려나간 정령조차 얼마 지나지 않아 몸을 붙이고 달려드니, 기사들은 계속해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화르륵!

"이런 젠장!"

매튜와 등을 맞대고 검을 휘두르던 지미가 정령이 뱉어내는 화염을 보고 기겁하며 검기를 방출했다.

화염을 가르고 날아간 검기가 정령으로부터 뻗어나온 촉수 두 가닥을 잘라냈다.

촉수가 잘려나간 정령은 제법이라는 듯 아가리를 길게 찢더니 금세 새로운 촉수를 만들어냈다.

"시발! 왜 하필 정령이야?!"

죽이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고, 무력화시키기도 만만치가 않다.

용병 시절에도 상대하기 가장 난해했던 적이 정령을 부리는 정령사였다.

"정령사를 빨리 처리해야 해!"

"대장, 입 다물고 힘 좀 아껴. 저쪽도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으니까."

크아아-!!

검은 거인의 형상을 한 최고위 암흑 정령, 탄탈로스가 아가리를 찢어져라 벌렸다.

질척한 어둠이 탄탈로스의 목구멍에서부터 뭉쳐져 검은 불꽃으로 변하더니, 아가리를 통해 레이저처럼 쏘아졌다.

촤아악!!

엑스퍼트 급은 막아낼 수 없는 공격이다.

곧장 정면으로 나선 세리아가 정팔면체 형태의 방어 아티펙트, 샤를의 장막을 기동했다.

으드드득!

허공에 생겨난 푸른 장막이 검은 불꽃을 빗겨낸다.

세리아는 곧장 탄탈로스의 아가리를 향해 검강을 방출했다.

탄탈로스가 손아귀를 뻗어 빛살처럼 짓쳐들어오는 검강을 움켜쥐었다.

콰드드득!!

거대한 손아귀가 통째로 터져나간다.

탄탈로스는 개의치 않고 반대 팔을 휘둘렀다.

단단한 금속처럼 보였던 탄탈로스의 팔뚝이 파도처럼 너울지더니 거대한 불꽃으로 변해 통째로 떨어져 나왔다.

하늘을 뒤덮은 불꽃이 수백 갈래로 나뉘어 지면을 폭격한다.

세리아 또한 헤일로를 발동시켜 탄탈로스의 화력을 아슬아슬하게 상쇄시켰다.

콰가가가가가가강!!

한편 모하메드는 아군이 정령들을 상대하는 사이 로커스트를 향해 일직선으로 질주했다.

로커스트가 우습다는 듯 손을 뻗자 모하메드를 둘러싼 공간이 전부 검게 물들며 날카로운 가시를 뱉어냈다.

허나 모하메드는 엑스퍼트의 경지를 초월한 기사.

파괴적인 검강이 칼날에서 솟구치며 주변을 잠식한 어둠을 단번에 부수었다.

파가가각!!

공격을 실패한 로커스트가 인상을 찌푸리며 본격적으로 마법을 구현했다.

모든 마법적 현상이 검게 물들어 있는 탓에 육안으로 그 정체를 파악하기 힘들었다.

모하메드는 맞아줄 공격은 맞아주며 무식하게 돌진했다.

로커스트의 마나엔 그와 계약한 악마의 권능이 깃들어 있었다.

검은 불꽃을 막아낸 갑옷이 금세 녹이 슬어 삐걱거렸고, 생채기를 하나 허용했더니 상처 입은 부위가 통째로 괴사하기 시작했다.

허나 모하메드는 개의치 않았다. 여기서 망설이면 패배는 자명했다.

로커스트는 꽤나 당황한 채 모하메드의 추격을 피해 자리를 옮겨갔다.

'이게 제국 변방의 촌구석에서 키워낸 기사단이라고?'

세리아와 모하메드를 제외하고도 전체적인 기사들의 수준이 너무 뛰어났다.

기사들 전부가 검기를 다룰 줄 아는데다 연계도 뛰어났고, 무엇보다 죽음을 불사할 각오까지 지니고 있었다.

이만한 수준의 기사들은 권세 좋은 귀족가에서도 어지간하면 만나보기 힘들었다.

허나 그게 무슨 상관인가.

로커스트는 7서클에 이른 고위 마법사이자, 제국이 두려워하는 최강의 암흑정령사였다.

"당신의 권능을 나누겠습니다."

로커스트가 자기 손아귀를 깊게 그었다.

막대한 마나를 머금은 핏물이 허공에서 사라지더니, 이내 로커스트와 계약한 모든 정령의 머리 위에 검붉은 오망성이 떠올랐다.

악마의 권능이 잠시나마 정령들에게 전이된다.

"무슨...?!"

기사들이 경악했다.

정령들의 공격을 막아낸 갑옷이 녹슬고, 가벼운 마음으로 허용했던 상처가 검게 썩어들어가기 시작한다.

공포스러운 광경이었으나 기사들은 물러서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지미와 매튜조차 고함을 내지르며 정령들을 계속 베어냈다.

허나 급격히 깎여나가는 체력을 의지만으로 메워낼 수는 없었다.

기사들이 점점 더 밀려나기 시작한다.

세리아 또한 아티펙트를 침범하기 시작한 악마의 권능에 눈살을 찌푸렸다.

아군이 버텨주지 못하자 모하메드를 향해 점점 더 많은 정령들이 몰려들었다.

간신히 좁혔던 로커스트와의 거리가 다시 벌어진다.

이대로는 패배한다.

급격히 일그러지는 모하메드의 얼굴을 보며 로커스트가 조소했다.

"나는 제국이 두려워하는 불사의 군단...?"

끼에에에에에에에엑!!

비명이.

울렸다.

전장이란 본디 비명이 빗발치는 공간이다.

이 자리에 선 모두가 비명 소리는 익숙했다.

허나.

무언가가 달랐다.

콕 집어 말하긴 힘들었지만.

지금 울려퍼지는 비명 소리는, 이제껏 들어왔던 그 어떤 비명보다도 괴이하고 소름 끼쳤다.

전장이 얼어붙었다.

정령조차도 공격을 멈추고 비명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모두의 시선이 쏠린 곳에서.

레이가 웃고 있었다.

"이봐, 로커스트. 혹시 모랄빵이란 단어 들어본 적 있나?"

레이는 가장 만만하고 약해 보이는 정령을 하나 찾아서 칼을 꽂아넣고 있었다.

허나 칼침을 맞은 정령이 위계가 높은지 낮은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비명 지를 아가리는 다들 뚫려 있었으니까.

"내가 참 궁금한 게 하나 있어."

레이가 검을 비틀자 암흑 정령이 온몸을 바들바들 떨며 고통스럽게 비명을 질러댔다.

"불사(不死)를 믿어 의심치 않는 군단에 첫 번째 죽음이 찾아왔을 때."

검이 위로 솟구쳐 정령을 양단한다.

"그때도 과연 군단이 군율과 전의를 유지할 수 있을까?"

양단된 정령에게서 검은 물이 줄줄줄 쏟아졌다.

침묵은 잠깐이었다.

정령의 죽음을 목도한 정령들이.

찢어져라 비명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끼에에에에에에에엑-!!!

로커스트는 시모네와 같은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다.

역류하는 정령들의 감정에 먹혀 자리에 주저앉지는 않았다.

허나 정령들을 통제할 수는 없었다.

죽음의 공포가 정령들 사이에 들불처럼 번져나간다.

암흑 정령들은 소름 끼치는 비명을 질러내며 막대한 대가를 감수하고 로커스트와의 계약을 파기하기 시작했다.

너무 강력한 계약에 묶여 계약 파기에 실패한 정령들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멋대로 날뛰어댔다.

레이가 낄낄거렸다.

정령들에게 이곳은 전장이 아니라 놀이터였다.

전쟁을 하러 온 것이 아니라 그저 유희를 즐기기 위해 땅을 디뎠을 뿐이었다.

허나 이제는 아니다.

이제 정령들에게도, 이곳은 전장이었다.

불멸이 벗겨지고 목숨을 걸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자 그 공포를 이겨내지 못하고 자멸하기 시작했다.

레이가 로커스트를 향해 검을 겨누며 소리쳤다.

"당장 죽여버려!!"

정신을 차린 기사들이 눈을 번뜩이며 검기를 뽑아냈다.

전의를 상실한 정령들은 더는 기사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삽시간에 정령들을 뚫어낸 기사들이 로커스트를 향해 쏟아져 들어왔다.

로커스트가 검은 핏덩이를 게워냈다.

수십이 넘는 정령과의 계약이 동시에 파기되자 어마어마한 반동이 밀려왔다.

"이, 이, 말도 안 되는...!!"

로커스트가 제자리에서 휘청이는 사이.

탄탈로스가 공포와 분노가 뒤죽박죽된 비명을 토해냈다.

크아아아-!!

탄탈로스는 깨달았다.

한때 모든 정령들을 끔찍한 공포에 몰아넣었던 정령 참살자가 600년 만에 다시 귀환했다는 것을.

크아아아아아-!!!

여기서 죽여야 한다. 여기서 반드시 죽여야 했다.

탄탈로스의 의지에 로커스트가 감응했다.

정령을 죽인 저 이해 불가의 존재만 죽일 수 있다면, 겁에 질려 날뛰는 정령들을 안정시킬 수 있을지도 몰랐다.

"탄탈로스!! 놈을 죽여!!"

로커스트는 서클의 영구적인 손상까지 감수해가며 자신의 마나 대부분을 탄탈로스에게 전이시켰다.

탄탈로스 또한 정령으로서 격을 희생하면서까지 흘러넘치는 마나를 억지로 응축시켜 레이에게 쏘아낼 준비를 마쳤다.

막대한 에너지 파동을 감지한 세리아가 돌진하다 말고 레이의 앞을 가로막았다.

탄탈로스는 개의치 않았다.

사선의 모든 것을 지워버릴 것이다.

마나를 응축시키느라 턱이 떨어져 나간 탄탈로스는 레이를 향해 악마의 권능과 마법, 정령의 힘이 뒤죽박죽 섞인 검은 광선을 토해냈다.

세리아는 광선이 쏘아지기 직전 명령했다.

"멸리의 빛, 최종 형태 변환."

멸리의 빛을 두르고 있던 외장이 벗겨지며 동력부가 노출된다.

멸리의 빛은 발레리우스가 남긴 가장 강력한 아티펙트 중 하나.

동력원은, 드래곤 하트의 조각이다.

"허큘러스, 헤일로, 샤를의 장막, 라벨라 에로우, 프로키온, 보조 시작."

세리아가 지닌 모든 아티펙트가 멸리의 빛을 감싸듯이 회전하며 날뛰어대는 드래곤 하트의 마나를 통제, 증폭시킨다.

드래곤이 남긴 아티펙트가 재현하는 것은.

드래곤이 지녔던 가장 강력한 공격기.

"브레스."

황금색으로 빛나는 광선이 검은 광선을 향해 마주 쏘아졌다.

일개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막대한 에너지 광선이 허공에서 충돌했다.

콰가가가가가가가각!!!

그 후폭풍만으로 시그니 산맥 다섯 군데에서 산사태가 발생했다.

도저히 눈을 뜨기 힘들 만큼 강렬한 빛 무리가 한동안 전장을 잠식했다.

서로의 사력을 다했던 충돌의 결과는, 상쇄.

양쪽 모두 유효한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치이익!

멸리의 빛이 검은 연기를 뿜어내며 기능을 정지했다.

다른 아티펙트 또한 마찬가지였다.

세리아의 전력이 절반 이하로 떨어진 격이었으나, 로커스트는 최후의 도박에 실패했다.

기사들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짓쳐들어왔다.

로커스트가 핏물을 뱉어내며 계속해서 고함쳤다.

"이럴 리가 없다!! 이럴 리가!! 제국의 변방에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사방에서 검기가 빗발친다.

팔이 하나 잘려나간 로커스트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탄탈로스가 정면에 나서 잠시 잠깐 기사들의 추격을 제지한다.

허나.

푸욱!

탄탈로스는 느껴지면 안 될 고통을 느끼고 다리 아래를 내려다봤다.

레이가 검기가 맺힌 검으로 탄탈로스의 다리를 푹푹 찔러보고 있었다.

"어이, 고위 정령. 그거 알아? 나는 원래 나서지 않을 생각이었어. 정령들 사이에서도 소문은 돌 테니까."

오늘 일백이 넘는 정령들이 도망쳤다.

무사히 모습을 감춘 정령들에게 소통 수단이 있다면, 분명 이렇게 떠들 것이다. 정령을 죽일 수 있는 인간이 나타났다고.

"내 정보가 새어봤자 좋을 게 뭐가 있겠어. 그래서 욕 좀 먹더라도 루나만 얌전히 보호하려 했는데, 일이 참 마음 대로 안 되더라고."

레이가 검기가 서린 검을 좌우로 흔들며 경고했다.

"기사들 싹 다 불러 너부터 족치기 전에 가만히 있어. 피차 힘들잖아?"

탄탈로스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계약을 완전히 반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타협한 것 같았다.

마지막 방패를 잃은 로커스트는 얼마 못 가 모하메드에게 두 다리가 잘렸다.

다른 기사들도 달려들어 로커스트의 몸뚱이에 검을 꽂아넣기 시작했다.

"크악!! 안 돼!! 안- 커걱!"

로커스트는 내장을 쏟아내면서도 지면을 기어 도망가려 했다.

역류했던 정령들의 감정이 뒤늦게 로커스트의 정신을 잠식했다.

그는 더 이상 냉철한 마법사가 아니라, 공포에 미쳐버린 광인이었다.

촤악!

투구를 벗은 백작이 검을 휘둘렀다.

깔끔하게 잘린 로커스트의 목이 바닥을 굴렀다.

고위 정령 탄탈로스도 계약이 끊어지자 삽시간에 모습을 감췄다.

침묵이 찾아온 전장 한가운데서.

백작이 검을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

기사들의 환호가 터졌다.

"우아아아아아아아!!!"

제국을 두려움에 빠뜨렸던 최강의 암흑정령사를 해치웠다.

벅차오르는 환희와 미처 해소하지 못한 전장의 열기를 기사들은 환호성을 내지르며 해소했다.

레이는 천천히 얼굴을 쓸어내렸다.

검을 내려놓은 레이가 루나를 챙긴 채 백작의 곁으로 다가갔다.

백작이 가늘게 떨리는 손으로 레이의 어깨를 붙잡았다.

"고맙네. 다 그대 덕분이야."

"다들 무사하십니까?"

"걱정하지 말게. 회복 못 할 상처를 입은 자는 아무도 없어."

"다비드님께서 전사하셨다고요? 이런,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

잠시 얼을 탄 백작이 혹시 발음이 안 좋았나 싶어 또박또박 다시 말했다.

"레이, 전부 다 무사하네. 애초에 다비드는 이 전투에 참여하지도 않았네."

"정말 슬픈 일입니다. 다비드님께서 전사하시다니. 하지만 이상한 일은 아니죠. 왜냐하면 상대가 존나 존나 강력한 흑마법사였으니까요."

"..."

백작은 슬슬 눈치챘다.

이 새끼가 또 뭔 개수작을 부리려고 밑밥을 까는구나.

한편 세리아는 슬그머니 레이의 뒤로 돌아가 포션병을 꺼내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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