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3)
35화
부모님은 내가 아직 어릴 적에 세리아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돌아가셨다.
본래라면 살아가기 꽤 퍽퍽했겠으나 나이 차가 나는 오빠 덕분에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에반. 날 길러주고 응원해준 오빠의 이름.
영민하고 근면한 나의 오빠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 빠르게 생활을 안정시켰다.
덕분에 따뜻한 방에서 잠을 청할 수 있었고, 먹을 게 부족해 배를 곯지 않았다.
오빠는 항상 이리 말하곤 했다.
사랑하는 여동생이 바라는 꿈이 있다면 자신이 꼭 이뤄주고 싶노라고.
오빠의 손을 잡고 여기저기 쫓아다니며 다양한 경험을 했다.
오빠와 함께한 모든 경험이 즐거웠지만, 나의 마음을 가장 강렬하게 사로잡은 건 다름 아닌 검 한 자루였다.
"기사가 되고 싶어요."
오빠는 우리가 귀족이 아니기에 기사가 되기 위해선 참으로 뛰어난 재능이 필요하다고 조언하는 한편, 벌어들인 돈 대부분을 내 검술 수업을 위해 투자했다.
어린 나이였음에도 생떼를 부린다는 자각은 있었다.
어쭙잖은 재능으로 2~3년 바둥대다 현실을 깨닫고 포기할 거라고, 스스로도 그리 되뇌곤 했다.
그래도 시골 바닥에서 나는 꽤 뛰어난 편이었다.
근방의 또래 중에 적수가 없어지자 오빠는 사람이 큰물에서 놀아야 한다며 나를 황도 인근의 검술 교습소에 한 학기 다닐 수 있게 해주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러.
나는 알슈테인 공작가의 둘밖에 없는 여기사의 종자로 발탁될 수 있었다.
또래의 여아 중엔 가장 눈부신 재능을 지녔다고 인정받은 거다.
이대로 뛰어난 기사가 되어 오빠의 신세를 피게 해주겠다고 결심했다.
오빠가 진즉 자수성가하긴 했지만 공작가 기사가 된 여동생을 뒷배로 둔다면 꽤 마음이 든든할 터였다.
쭉쭉 늘어나는 실력 덕분에 기사 서임까지 약 2년가량을 남겨두었을 무렵.
오빠가 늦게나마 결혼을 한다는 소식이 도착했다. 아이가 생겼다나 뭐라나.
당연히 고향으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이번에 마스터가 중요한 임무에 투입되게 되어 종자로서 옆을 보좌해야 했다.
축하의 내용을 담은 장문의 편지를 써서 부친 후 임무 개요서를 보았다.
발레리우스 미궁 공략 작전.
약 일천 년 전 인물인 발레리우스는 전설적인 마법사이자 마나 공학자로, 특히 공간 마법에 관해서는 따라올 자가 없었던 불세출의 천재라 평가받았다.
문제가 있다면 성격이 워낙 괴짜였던지라, 인간관계가 극히 협소했고 제자 하나 들이지 않았다.
그 덕분에 발레리우스가 만들어낸 대부분의 이론과 아티팩트가 그의 사후에 유실됐다.
발레리우스의 유산을 찾기 위해 많은 이들이 노력했다.
괴짜인 발레리우스가 괴이한 안배 하나쯤은 마련해두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희망 아래 조사가 계속됐고, 모두 실패했다.
이제는 이야기 속 전설처럼 여겨지던 발레리우스의 신화는, 얼마 전 격변을 맞았다.
산이 통째로 무너지는 재해가 발생한 직후 발레리우스가 세운 미궁이 발견된 것이다.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발레리우스의 이름값만큼이나 그의 유산을 탐내는 자들이 많았다.
황실의 중재 아래 힘 있는 귀족가와 마탑이 오랜 협의를 거쳐 서로의 지분을 나누고 수하들을 파견해 공략대를 구성했다.
내로라하는 제국의 세력들이 연합해 창설한 공략대는 수많은 기사와 마법사, 그리고 경험 많은 모험가로 구성되어 있었다.
나는 미궁이 두렵지 않았다.
공략대의 위용도 막강했지만, 이미 몇 번이나 조사팀을 파견해 미궁의 정체와 구조를 파악한 후였기 때문이다.
이런 대규모 공략대가 결성된 건 미궁의 위험성을 걱정해서가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가 컸다.
그리고 과잉전력이라 판단됐던 공략대가 던전에 진입한 직후.
입구가 막혔다.
발레리우스가 공간 마법에 관해서 불세출의 재능을 지녔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간과했다.
꼬여 버린 공간이 입구를 숨겼지만 공략대의 전력이라면 힘으로라도 새로운 입구를 뚫어낼 수 있었다.
허나 시간이 부족했다.
미궁은 시시각각 조여오며 인간이 생존하는데 필수적인 요소들을 하나씩 뺏어갔다.
입구를 뚫어내기 위해 발악하자 주변의 환경은 더욱 급격히 열악해졌다.
공기가 불타오르고, 지면에서 용암이 솟구치는 꼴을 보며 모두가 알아챌 수 있었다.
미궁은 공략대에게 정해진 길을 따라 전진하라 강요하고 있었다.
창조자가 의도한 대로 미궁을 공략해, 미궁의 끝에 다다르라고 겁박하고 있었다.
결국 공략대는 미궁 깊숙한 곳으로 나아갔다.
위험한 함정들과 봉인에서 풀려난 마수들을 제거하며 전진하자 일시적으로 주변의 환경이 안정됐다.
소량의 물과 인간이 섭취 가능한 회색 분말도 찾아낼 수 있었다.
심지어 고생한 보상이라는 듯, 정교하게 제작된 아티펙트까지 하나 발견됐다.
그제야 모두가, 발레리우스란 작자가 얼마나 정신 나간 새끼였는지 깨달았다.
시간이 흘렀다.
공략대는 몇 개월이 넘도록 전진과 휴식을 반복했고, 여전히 미궁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마법사가 말했다.
"인간이 아니다."
아무리 공간 마법에 정통한 마법사라 해도 고작 수십 년 만에 이리 장대한 미궁을 건설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내부로 들어갈수록 건축물의 양식에 변화가 생겼다.
지금 눈에 보이는 작은 건축물은 마법사가 말하길 900년 전 양식이라 했다.
공략대는 결론을 내렸다.
"드래곤이다."
일천 년 전에는 아직 드래곤이 소수나마 생존해 있을 시기였다.
마법사가 이를 갈며 말했다.
"드래곤은 발레리우스라는 거짓 신분의 죽음을 위장한 뒤에도 수백 년 동안 미궁을 확장하고 다듬은 게 틀림없다. 거기다 다른 드래곤의 도움까지 받은 것 같군."
"아직까지 살아있을 리는 없다. 언제 죽은 거지?"
"마지막 순혈 드래곤은 600년 전에 삶을 마쳤다. 그보다는 먼저 수명을 다했을 거다."
"운이 나쁘다면 우리는 아주 똑똑하지만 정신 나간 말년의 드래곤이 400년 이상 공을 들여 건설한 레어이자 미궁에 발이 묶인 거군."
삶의 끝자락에 도달한 드래곤이 마지막 유희를 위해 모든 역량을 동원해 건설한 최후의 역작.
그게 이 미궁의 정체였다.
우린 계속 전진했다. 어쩌면 같은 공간을 빙빙 돌며 새로운 적을 맞이하는지도 몰랐다.
한정된 공간을 왜곡시켜봤자 한계가 존재하니, 같은 자리를 맴돈다는 가설은 꽤 설득력이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아. 다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기사의 주장에 마법사가 고개를 저었다.
"왜곡된 공간에 함부로 힘을 가하면 하나 남은 출구도 잃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을 해결하라고 마법사를 동행시킨 거다."
"그 태도가 문제다. 마법사는 신뢰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공략대의 주력은 기사로 구성됐다. 미궁의 마법적 보안을 뚫고 공간 왜곡을 해제하려면 현재 마법사 전력으로는 어림도 없다. 대마법사라도 한 명 모셔왔으면 모를까."
"정말 불가능한가?"
"미궁을 붕괴시킬 수단이야 얼마든지 있다. 기사들만으로도 그건 가능하겠지. 허나 공략대 또한 몰살당할 거다."
"그럼 이대로 수백 년 전 뒈진 드래곤의 장난질에 어울려줘야 한다는 소리군."
2년이 지났다.
사람이 꽤 죽었고 나는 검기를 다룰 수 있게 되었다.
기뻐할 틈도 없이 죽음의 위기가 찾아왔다.
죽음을 확신했는데, 날카로운 화살 하나가 폭풍을 일으키며 키메라의 핵을 박살 냈다.
모두의 시선이 화살의 주인에게 돌아갔다.
경험 많은 모험가라며 공략대에 고용되었던 용병이었다. 무력 자체는 형편없다고 평가받았었다.
"너... 정체가 뭐야?"
"울트. 가디 자작가의 울트라고 합니다."
실력과 신분을 숨기고 있던 모험가.
몇몇은 강하게 화를 냈지만, 그게 무력 충돌로 번지지는 않았다.
손 하나가 아쉬운 시점이었다. 울트가 스스로의 실력과 정체를 드러낸 이유도 더 이상 병력 손실이 늘어나면 미궁 공략을 장담할 수 없다고 판단해서였다.
애초에 모험가로 고용되어 모험가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으니 화를 낼 명분도 적었다.
시간이 계속 흘렀다.
극한의 상황이 주는 스트레스 탓에 입을 열어봤자 불화만 짙어졌으므로 다들 묵묵히 미궁을 전진하는 데 집중했다.
허나 공략대가 열 명 남짓하게 줄어들었을 즈음에, 다시 분위기가 변했다.
우리는 전투가 끝날 때마다 자리에 주저앉아 왁자지껄 떠들며 숨겨왔던 사연을 풀어놓고는 했다.
살아남은 자들은 대부분 신체가 강건한 기사였기에, 대단히 독특하고 재밌는 사연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 빌어먹을 미궁의 공략대에 소속되었던 이유도 다들 명쾌했다.
위에서 시켰으니까.
지식을 탐한 마법사도 한 명 있었고, 명예와 재화를 노리고 자원한 케이스도 한 명 있긴 했으나 단지 그뿐이었다.
자연히 모두의 시선이 울트에게 쏠렸다.
침묵하던 울트가 답했다.
"지인 중 한 명이 강력한 저주에 고통받고 있습니다. 저주를 해주할 방법을 찾기 위해 모험가 신분을 만들어 미궁과 유적을 돌아다니는 중입니다."
"여자냐?"
"여자군."
"여자네."
"남자일 수도 있지."
울트가 실소를 터뜨렸다.
나는 검에 기댄 채 물었다.
"왜 미궁에서 찾아요? 해주 방법을? 마법사를 안 찾아가고?"
"기원과 관련된 저주입니다."
사람이 죽어도 덤덤하던 우리의 분위기가 드물게 가라앉았다.
마법사가 고개를 저었다.
"네가 지닌 썩은 나뭇가지가 이제 이해가는군. 사정은 안 됐지만 기원과 관련된 저주는 해주가 불가능해."
"방법이 있을 겁니다. 그래요, 사람의 시간을 되돌리는 아티펙트 정도면 희망이 있지 않겠습니까? 저주가 육신에 깃든 시간대 이전으로 상태를 되돌리는 겁니다."
우리는 서로를 돌아보았다.
현재 공략대의 리더 격인 콜체스터가 미약하게 웃었다.
"좋다. 네 애인의 저주를 해결할만한 아티펙트를 발견한다면, 이 미궁을 벗어난 후 다 같이 네 애인부터 찾아가도록 하지."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이러나저러나 여기 모두가 울트에게 목숨 한 번씩은 빚진 경험이 있었다.
시간은 계속 흘렀고 마침내 공략대는 셋만 남게 되었다.
경지가 낮은 내가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운이 좋았던 덕분이라 말해도 될 것이다.
굳이 이유를 하나 덧붙이자면, 나는 아티펙트를 조종하는 실력이 뛰어났다.
다수의 아티펙트를 동시에 컨트롤해 전투에 활용하는 능력만은 공략대의 선두라 할만 했다.
어쨌든 우리는 셋이 되었고, 내가 다음 경지로 나아갈 때쯤 이 빌어먹을 미궁의 마지막 관문을 돌파할 수 있었다.
근 10년 만에, 우리는 미궁을 벗어났다.
쏴아아아아
바람이 분다. 햇살이 피부를 데운다.
웃음을 잃어버린 우리는 미궁을 벗어난 후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얻은 게 별로 없군."
콜체스터가 말했다.
그의 말대로, 무수히 많은 아티펙트를 미궁에서 얻었지만 그 대부분이 미궁을 돌파하는 과정에서 소실됐다.
발레리우스가 남긴 마지막 아티펙트는 가히 드래곤이 남긴 최후의 역작이라 부를만 했지만 저주의 해주에 사용할만한 아티펙트는 아니었다.
마지막 아티펙트를 받은 울트가 이빨을 갈아내며 중얼거렸다.
"...내겐 필요 없는 물건입니다, 콜체스터 경."
"그냥 자네가 가져가. 굳이 공략대의 최대 공로자를 따지면 바로 자네니까. 그보다 이제 다들 어떻게 할 생각이지?"
"갈래요."
"..."
"보고 싶어요. 오빠가. 너무 그리워서, 가슴이 아파. 집에 갈래요. 고향으로 갈 거예요."
"알슈테인 가로 귀환하지 않겠다고? 혹시 숨어 지낼 생각이냐?"
고개를 저었다.
많은 희생이 있었기에 미궁에서 살아나올 수 있었다.
갚아야 할 빚이 많았다. 적어도 공략대의 가족에게 마지막 유언쯤은 전해주어야 했다.
염치 없게 숨어살 생각은 없었다.
"돌아갈 거예요. 오빠 보러 갔다가, 그다음에. 돌아갈 거예요. 알슈테인으로."
"그럼 부탁 하나 하겠습니다."
울트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
"제겐 시간이 없습니다. 물색해두었던 미궁과 유적을 확인해야 합니다. 세리아의 고향은 제 영지의 근처이니, 저 대신 피에트로를 만나 티티가 무사한지 확인해줄 수 있겠습니까?"
"알겠어요. 내게 맡겨요."
"좋다. 둘 다 잘 들어."
콜체스터가 상황을 정리했다.
"울트, 모험가 신분의 자네는 미궁에서 죽었다. 모험가 노릇할 거면 신분을 새로 만들어. 세리아, 일 보고 돌아와. 공작가에 연락하지는 말고. 지금 어설프게 정체를 드러내면 칼 맞아 죽기 딱 좋으니까."
콜체스터는 두 달가량 숨어있다가 공략대와 연관된 모든 귀족에게 미궁 공략 사실을 서신으로 알릴 것이라 했다.
한동안 시끄러워지겠지만 그게 우리를 보호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콜체스터는 강조했다.
"폭풍을 피할 수 없다면 폭풍의 한가운데로 들어가야 한다. 알아듣나?"
"알겠어요."
"그래. 그리고 이건 네 몫이다."
학술적 가치가 있는 아티펙트를 챙긴 콜체스터는 전투용 아티펙트를 내게 건네주었다. 전부 내가 애용하던 아티펙트였다.
"고마워요."
"고마워할 필요 없다. 알슈테인에 귀환하게 되면 아티펙트를 내놓아야 할 거야. 알고는 있어라."
우리는 헤어질 때까지 자잘하게 의견을 조율했다.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가 태반이었기에, 조율 자체는 콜체스터와 울트가 하고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이틀 후 우리는 각기 다른 방향으로 떠났다.
그리고 오빠를 그리워하며 고향에 돌아온 내가 확인할 수 있었던 건.
잘 정돈된 차가운 묘비와.
비가 쏟아지는 날 묘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던 한 소년이었다.
*
전투가 잠시 멈췄다.
남자와 세리아가 서로를 응시하며 차분히 상황을 분석했다.
이대로 전투가 계속되면 세리아가 유리하다.
아티펙트 두 개면 흑마법사 셋의 화력을 상쇄시킬 수 있었다.
검술의 경지만 따지면 남자가 확실히 높았다. 허나 방심한 탓에 큰 부상을 입었고, 세리아에겐 아티펙트가 다수 존재했다.
물론 판을 뒤집을 요소가 없는 건 아니었다.
세리아는 남자에게 부상을 입히고도 바로 몰아붙이지 않았다. 지켜야 할 것이 있다는 뜻이었다.
남자는 레이와 피에트로를 집중적으로 공격해 방어전 양상을 만들면 승률을 높일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허나 굳이 여기서 목숨을 걸어야할 필요가 있는가?
남자는 회의적이었다. 일은 이미 꼬인 듯 했고 차라리 힘을 온전해 로드와 합류하는 게 나아보였다.
세리아도 고민에 빠졌다.
저들이 '티티'를 납치했다면 여기서 놓아주면 안 된다.
허나 이대로 전투를 속행하기엔 뒤에 서 있는 조카의 안위가 너무나도 걱정됐다.
울트에겐 미안했으나 하나 남은 가족인 조카의 목숨까지 위태롭게 하며 티티를 우선할 수는 없었다.
이대로 물러나는 게 좋지 않을까? 서로의 의견이 맞았다.
그 순간 레이가 앞으로 나섰다.
"길면 한 8초?"
"?"
물러서려던 세리아가 당황해서 휘청였다.
레이는 고심하며 손가락 두 개를 접었다.
"8초는 너무 긴가? 한 6초는 붙들 수 있을 것 같네요."
레이는 그래듀에이트의 검속을 눈앞에서 확인했다.
오버드라이브까지 활용하면 얼추 몇 합은 버틸 수 있겠다 싶었다.
검강을 검기로 버틴다는 게 어불성설이긴 했지만 레이는 하르시아의 이름 값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래듀에이트를 제가 붙드는 사이 마법사를 처리해 주실래요? 이 지역은 지금 저놈들 본거지예요. 지원이 더 오기 전에 빠르게 결판을 내야해요. 시간이 없어요."
"..."
세리아는 안타까웠다.
하나 남은 가족이자 소중한 존재인 조카는 면전에서 벌어진 전투 탓에 머리에 큰 충격을 받은 듯 했다.
그게 아니면 저런 헛소리를 하는 이유가 설명이 안 됐다.
세리아는 다급해졌다.
"해야 해. 응급처치."
세리아가 품을 뒤적이더니 미궁에서 얻은 포션을 꺼내들었다.
세리아는 강인한 완력을 십분 발휘해 레이의 머리를 포션병으로 후려쳤다.
깡!
"푸흑?!"
포션병이 깨지며 푸른 포션이 레이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난데없이 정수리를 가격당한 레이가 머리카락에서 포션을 뚝뚝 흘리며 세리아를 돌아봤다.
얼이 빠진 레이를 향해 세리아는 흡족하게 웃었다.
"이제 괜찮아."
미궁에서도 잠깐 정신이 나간 동료들을 이런 식으로 치료하곤 했다.
소중한 조카에게도 효과가 좋을 게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