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홍등가의 소드마스터-34화 (34/446)

인연 (2)

34화

"시모네!! 시모네!! 시모네!!"

시모네는 지하실에 도착하자마자 피에트로의 괴성을 마주해야 했다.

철창 안 아이들의 모습을 제대로 살피지 않고 지나친 시모네가 곧장 지하실의 가장 깊은 곳에 설치된 감옥으로 향했다.

피에트로가 사슬을 들썩이며 연신 소리쳤다.

"네가, 네가 어찌 아비에게 이럴 수가 있느냐!!"

"아직 정정하시군. 앞으로 일주일은 더 매달려 있으셔야겠어."

자백을 받아낼 수단이야 많았지만 그 대부분이 표적의 정신력이 약화되었을 때 더욱 효과를 발한다.

때문에 피에트로의 정신력이 적당한 수준까지 떨어져 내릴 때까지 시모네와 마법사들은 지속적인 고문을 가했다.

시모네가 혀를 끌끌 차며 끝이 넓적한 쇠막대기를 잡았다.

화롯불에 저절로 불이 붙으며 쇠막대기를 달구기 시작했다.

"아직 버틸만 하신가봅니다?"

시모네가 낄낄거리며 쇠막대기를 들어 올린 순간.

레이가 반대편 감옥에서 은밀하게 땅을 박찼다.

크르륵!

시모네와 계약한 암흑 정령이 레이에게 반응했다.

눈깔이 어디 달렸는지도 모를 정령이 아가리를 쩍 벌리고 다가온다.

검은 덩어리가 울렁이는 광경을 보고 레이는 짙은 혐오감을 느꼈다.

'하여튼 빌어먹을 정령들.'

전생에도, 레이는 소설 속 정령을 향해 종종 불쾌한 감정을 느끼곤 했다.

죽음에서 자유로운 존재들.

무엇하나 처절하지 않고, 모든 게 장난 같지만, 힘을 빌려줄 때는 더럽게 까탈스러운 새끼들.

소설 속 존재라 해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더군다나 지금은 현실이었다.

츠즈즉

레이가 검과 도끼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어차피 정령은 못 죽이니, 단번에 정령을 돌파해 시모네의 목을 벨 생각이었다.

퍼억!

암흑 정령에게 검기가 서린 병기가 박혀든다.

살을 찢어내는 촉감이 손가락 끝을 내달렸다.

병기가 박힌 틈 사이로 검은 무언가가 정령에게서 쏟아졌다.

"...?"

본래 망설이지 않고 시모네의 목을 치려 했던 레이가 걸음을 멈췄다.

정령의 감정이 정령사에게 역류한다.

휘몰아치는 당혹과 공포의 감정이 정령사를 잠식했다.

시모네는 새파랗게 질린 채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커걱...! 컥! 커헉...!"

"?"

암흑 정령이 어둠 속에서 꿀렁인다.

레이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촉수를 닮은 팔다리를 휘두르며 발악한다.

레이는 잠시 고민했다.

극단적인 예외를 제외하면 정령을 죽일 수 없다고 여겨지는 이유.

현실에 나타난 건 허상이고 본체는 다른 차원에 중첩되어 있다든가.

본체는 아공간에 머물고 그 일부만을 현실에 구현한다든가.

아무래도 뜬구름 잡는 소리이긴 했으나, 요지는 이거다.

정령의 불멸성은 결국 공간과 연관되어 있고.

하르시아 류 공간검의 검기는.

공간을 변질시킨다.

"말해 봐."

레이는 상황이 상황인지라 웬만하면 참으려고 했지만.

워낙 입이 근질거리는 통에 결국 머리에서 맴돌던 대사를 내뱉고 말았다.

"정령도 피를 흘리나?"

[크르르가각...! 하르, 하르시...!]

레이의 입가에 진한 웃음이 피어남과 동시에.

촤악!!

검과 도끼가 암흑 정령을 양단했다.

레이는 정령에게서 흘러나오는 검은 무언가를 뒤로 한 채 시모네에게 다가갔다.

마음 같아선 이 불속성 효자에게 불속성 고문이라도 좀 가해보고 싶었으나 시종장의 앞이니만큼 자제했다.

"영감님, 물어봐야 하는 거라도 있습니까."

"...엘프, 엘프의 행방."

"시모네, 엘프를 어디로 데려갔지?"

"어, 허억! 허어억! 엘프?"

"그래, 엘프 어딨어?"

역류한 공포 탓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 시모네가 꺽꺽거리며 답했다.

"아지트, 우리 아지트. 커컥!"

"아지트의 위치는?"

"크억! 컥!"

"아지트 어디 있냐고 묻잖아."

"도, 동쪽 강줄기 갈라지는 곳...!"

"흑마법사는 몇이나 있지?'"

"모, 몰라! 커거걱."

들어야 될 정보는 얼추 들었다.

더는 시간이 없었기에 레이는 시모네의 가슴에 검을 박아넣고 입을 막았다.

레이의 손아귀 안에서 시모네의 비명이 맴돌았다.

"크륵..."

잠시 부들거리던 시모네의 몸이 축 늘어졌다.

뒤로 물러선 레이가 피에트로를 바라봤다.

자식 죽였다는 이야기를 길게 해봤자 좋을 게 뭐가 있을까.

그저 덤덤하게 인사했다.

"그만 가보겠습니다. 다시 뵙게 되었으면 좋겠군요."

"...날 풀어주게."

"영감님까지 모실 여력이 없습니다."

"그게 아니야. 영주성 내에 쉘터가 있네. 몇 시간쯤은 농성할 수 있을 거야. 내가 미끼가 되겠네."

시모네를 죽인 게 들키게 되면 대신 관심을 끌어 시간을 벌겠다는 소리였다.

잠시 피에트로를 바라본 레이가 검을 휘둘렀다.

피에트로의 팔을 묶었던 사슬이 잘려 나갔다.

"큭!"

너무도 오랜만에 바닥을 디딘 피에트로가 후들거리는 다리로 비틀대다 벽을 짚었다.

철창을 나와 아들을 한 번 바라본 피에트로는 일그러진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뒷문까지 안내해주겠네."

"알겠습니다."

뒷문이라면 정문보다는 눈에 덜 띌 터다.

레이가 앞서 걸어가 지하실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여전히 영주성 내부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피에트로를 실각시키는 과정에서 인력을 대부분 정리한 것 같았다.

피에트로는 간간히 비틀거리면서도 등허리를 곧게 핀 채 앞서 걸었다.

레이가 최대한 감각을 강화해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강요하는 건 아닙니다만."

"...?"

"목숨을 끊으실 거면 기간을 좀 넉넉히 잡으시면 좋겠습니다. 자작령 정상화를 위해선 영감님 도움이 필요할 것 같군요."

"...내 아들이 지은 죄가 너무 깊네. 나라도 살아서 갚아야지."

"그거 다행이군요. 삶에 목표가 생겼다는 건 좋은 일입니다. 백작님께 잘 말씀 드려 영감님을 빠르게 구출할 수 있도록 해보겠습니다."

"자네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군."

정신나간 화법과 암흑 정령 두 기를 단번에 베어내는 기사급 무력.

그리고 지하를 벗어나며 드러난 너무나도 어린 외견.

피에트로는 지금 귀신에 홀린 기분이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산더미다. 그럼에도 피에트로는 침묵을 지켰다.

쓸데 없는 정보를 많이 알아봤자, 흑마법사에게 유출될 확률만 높아졌다.

피에트로와 레이는 서로 아무것도 모르는 관계여야 했다.

"다 왔군."

뒷문에 도착했다.

레이는 뒷문 너머로 아무 인기척이 없음을 확인한 후 문을 열었다.

끼이익

그림자 두 개가 레이 머리 위로 진다.

레이는 고개를 들지 않고 검자루부터 잡았다.

감각을 최대한 강화했는데도 그 어떤 인기척도 느끼지 못했다.

그럼에도 머리 위에 사람의 그림자가 진다.

레이는 검을 뽑아내면서도 좆 됐다는 걸 깨달았다.

얇은 목소리가 울렸다.

"조카? 조카야?"

"?"

뽑혀나오던 검이 멈췄다.

*

여자는 울트와의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디나르를 찾아왔다.

울트는 영주성으로 찾아가 시종장 피에트로를 만나보라고 했다.

영주성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지만 정문에 손님을 받는 사용인이 없었다.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소리를 질러도 답변할 사람이 없을 것 같기에, 영주성을 크게 돌며 다른 입구를 찾았다.

"여긴...가?"

영주성 뒷편에 작은 쪽문 하나를 발견했다.

마침 인기척 두 개가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여자는 얌전히 자리를 지키고 기다렸다.

그때 갑옷을 차려입은 남자 한 명이 영주성 정문으로 향하다말고 여자를 발견하곤 곁으로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아름다운 레이디. 여기는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있어."

"?"

"만나야 될 사람."

"아하. 저도 볼일이 있어 들렀습니다. 시간이 겹쳤군요."

남자가 인기척이 다가오는 방향으로 손가락을 들었다.

"마중이 나오는군요."

끼이익

문이 열렸다.

반쯤 열린 문틈으로 레이의 얼굴을 확인한 여자가 깜짝 놀라 물었다.

"조카? 조카야?"

"?"

검을 뽑다 멈춘 레이가 자기 기준으로 우측에 서 있던 여자를 보았다.

잠시 침묵이 흐르자 갑옷을 입은 남자가 사람 좋은 웃음을 내보이며 한 발짝 물러났다.

"서로 면식이 있나 보군요. 먼저 오셨으니 먼저 볼일을 끝내시죠."

골몰하던 레이가 간신히 얼마 전 기억을 떠올렸다.

아버지 무덤에서 마주쳤던 여자. 목소리와 실루엣이 비슷했다.

"아, 설마 묘비?"

"아니야."

"네?"

"내 이름 묘비 아니야. 이름 세리아야."

"그렇군요."

레이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저랑 관계가 어떻게 되시기에... 절 조카라고 부르시죠?"

"아빠 동생. 아빠 동생이야."

"어, 음."

레이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제가 애비라 부를 수 있는 분만 셋이라서요."

생물학적 애비.

호적상 아버지.

마지막으로 보육원을 운영하는 지미가 레이의 대부로 등록되어 있었다.

"셋 중 누구신지... 물론 앞뒤 정황으로 예상은 갑니다만."

"에반."

레이의 호적상 아버지의 이름이다.

레이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고모. 제대로 인사드리는 건 처음이네요."

세리아의 말을 온전히 믿는 건 아니었다.

다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레이는 꽤 조심스러웠다.

고모는 왜 여기있고 곁에 서 있는 남자는 누구란 말인가.

"여기까진 어쩐 일로 오셨나요?"

"부탁했어. 울트가 말이야."

한 발 물러나 있던 피에트로가 다급히 앞으로 나섰다.

"울트...? 영주님의 지인이십니까?"

드러난 피부에 온통 화상 자국이 새겨진 피에트로를 보며, 세리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피에트로를 만나라 했어. 혹시 당신이?"

"제가 가디 자작가의 시종장 피에트로입니다."

"울트가 당신을 찾아가 물어보라 했어. 티티가 무사한지. 문제가 있다면, 해결해달라 했고."

"티티는... 그보다, 그보다 영주님은 무사하신 겁니까? 아니면 혹시...!!"

"잠시만요."

말을 자른 레이가 옆에서 흥미롭게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남자를 가리켰다.

"고모, 저분이랑 일행은 아니죠?"

"아니야."

"그, 무슨 일로 오셨나요?"

레이의 질문에 남자가 시원스레 답해주었다.

"시모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왔습니다. 물론 두 눈으로 확인한 건 아닙니다만."

레이가 피에트로를 뒤로 밀었다.

레이의 손이 검자루로 향한다. 남자의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원리는 잘 모르겠지만 심장이 멈추면 연락이 가는 특별한 마법을 마법사 친구들이 심어놨었다고 합니다."

허리춤에 머물렀던 남자의 손이 사라졌다. 레이는 마주 검을 뽑아내면서도 늦었다는 걸 직감했다.

"여러분이 죽였나요?"

쩌엉---!!!

레이의 코앞에서 섬광이 터져 나왔다.

후끈한 열기가 뺨을 데우고 충격파가 고막을 뒤흔들었다.

휘청이는 몸을 다잡은 레이가 억지로 눈을 치켜떴다.

검을 휘둘렀던 남자가 어느새 수십 미터 가까이 밀려나 있었다.

"이런."

남자가 불에 그슬린 망토를 툭툭 털어내며 아쉬워했다.

"기척을 지우는 솜씨를 보고 검사인 줄 알았는데."

세리아를 중심으로 전개된 푸른빛의 실드가 균열을 일으키며 불똥을 튀기고 있었다.

남자의 공격에 가격당한 흔적이었다.

"폼 잡다가 괜히 거리만 내주었군. 로드가 봤다면 한마디 했겠어."

남자의 검에 맺힌 검기가 실처럼 압축된다.

수십 개의 검기 가닥이 동시에 치솟아 오르더니 서로를 옭아매고 회전하고 반발하며 눈 부신 빛을 토해냈다.

검강. 엑스퍼트의 경지를 초월한 규격 외의 강자의 상징.

한술 더 떠 검은 로브를 입은 마법사가 셋이나 모습을 드러내 남자를 보좌하듯 진형을 잡는다.

휘몰아치는 불쾌한 마나를 보고 레이는 확신했다.

흑마법사들이다.

'어설픈 동정심 탓에 내 무덤을 팠네.'

시모네가 죽자마자 적들이 움직일 거라곤 생각 못했지만 시모네를 암살하는 게 그냥 도망치는 것보다 리스크가 크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 시모네를 죽였던 건, 암흑 정령에게 씹혀나갈 아이들이 눈에 밟힌 탓이 컸다.

'그래듀에이트를 수하로 부리는 걸 보니 로커스트나 그에 준하는 거물이 이번 일에 개입하긴 했나보군.'

정보를 얻은 건 좋은데 저만한 전력이면 정말 반항도 못해보고 목이 떨어질 거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믿을 건 결국 혈육뿐이다.

물론 세리아와 레이는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이었지만, 레이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세리아를 바라봤다.

"귀여운 조카 좀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쟤들 누구야?"

바닥에 쓰러져 몸을 가누지 못하던 피에트로가 고변했다.

"저자들이 티티를 끌고갔습니다."

순간 세리아의 안색이 바뀌었다.

"...그래? 그러면 안 되는데."

콰앙!!

세리아가 잠시 한눈을 판 사이 남자가 지면을 찍어누르며 폭발적으로 가속했다.

남자의 모습을 놓칠 뻔한 레이가 붉게 충혈된 눈으로 잔상을 뒤쫓았다.

'세리아가 정말 고모라면 나이가 그리 많지는 않을 텐데.'

그래듀에이트를 상대 가능한가?

한껏 긴장한 채 검을 다잡는 레이를 세리아가 뒤로 밀었다.

그래듀에이트를 앞에 둔 세리아는, 물러서는 대신 한 발 앞으로 나섰다.

"헤일로 기동."

[헤일로 60초 과부하. 폭격 준비.]

은폐 장막이 벗겨지며 황금색으로 빛나는 직경 1 m의 원환면(도넛 모양) 형태의 아티펙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허공에서 회전하기 시작한 헤일로의 중앙으로부터 짙푸른 녹빛이 터져 나온다.

"폭격."

원반 형태의 빛 무리 수십 개가 헤일로로부터 쏟아져 나왔다.

지상을 향해 떨어지는 녹빛의 원반을 확인한 흑마법사들이 공격 마법을 포기하고 다급히 실드를 전개했다.

콰가가가가강!!!

굉음과 함께 땅이 뒤집힌다.

충분히 놀라운 위력이었지만, 그래듀에이트는 웃음을 잃지 않고 폭격의 한가운데를 유유히 돌파했다.

"멸리의 빛."

이번엔 세로로 갈라져 있는 은색의 병기가 세리아의 곁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적을 꿰뚫어라."

은색 병기의 끝이 시뻘겋게 빛나더니 붉은 광선을 전방으로 조사했다.

광선이 쏘아지는 궤적을 따라 지면이 삽시간에 타올랐다.

촤아악!!

남자가 갑옷의 성능을 믿고 팔로 상체를 가렸다.

허나 마나를 뒤집어쓴 값비싼 갑옷조차 초고열의 광선이 맞닿자 삽시간에 녹아내렸다.

"이런. 어디 돈 많은 마탑주의 자식이라도 되나."

아티펙트 하나하나가 고위 마법에 필적할 만큼 고강하다.

어지간한 마탑에선 외부로 반출 자체가 불가능한 등급의 아티펙트다.

그걸 몇 개씩이나 두르고도 검사 상대로 전진하는 멍청함까지 갖추고 있다.

남자는 여러 의미로 감탄했다.

"산책 나온 공주님 같네. 후환이 걱정될 지경인데."

콱!!

남자가 지면에 다리를 꽂아넣은 채 검을 휘둘렀다.

찬란히 빛나는 검강이 전방으로 방출됐다.

사아아아악!!

검강과 맞닿은 초고열의 열선이 수십 갈래로 나누어져 휘몰아친다.

사방이 불바다로 변함과 동시에 방출된 검강이 푸른빛의 실드와 격돌했다.

콰가가각!!!

방어엔 성공했으나 여기저기 균열이 간 실드가 스파크를 쏟아냈다.

그 찰나 시야를 가렸던 불길 사이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남자가 검강에 휩싸인 검을 횡으로 휘두른다.

가가가가각!!

실드가 바스라져 나간다.

실드를 전개했던 정팔면체 형태의 아티펙트가 주인에게 경고하듯 점멸했다.

검사와의 지근거리 전투는 마법사에게 반드시 피해야 할 상황이었다.

헌데.

정작 검이 맞닿을 만큼 거리를 좁히는데 성공한 남자가 급격히 표정을 굳혔다.

남자는 세리아를 코앞에서 마주 보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세리아는 지금까지 한톨의 마나도 운용하지 않았다.

말인즉슨, 모든 아티펙트가 자체 출력만으로 지금과 같은 위력을 쏟아냈다는 거다.

남자는 세리아를 마법사로 판단했었다.

정제된 코어의 마나는 아티펙트를 기동하는데 굉장히 부적합했기 때문이다.

허나 아티펙트를 기동하는데 애초에 사용자의 마나가 필요하지 않았다면.

모든 추측이 무의미했다.

"허큘러스, 모습을 드러내라."

세리아의 아티펙트에 은폐장을 부여하던 거대한 검이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세리아가 대검을 붙잡는다.

극도로 압축된 검기가 수십개 결집되어 대검을 뒤덮었다.

남자가 실드를 베기 위해 횡으로 휘둘렀던 검을 재빨리 회수했다.

허나 세리아가 조금 더 빨랐다.

콰아앙!!!!

"크윽...!!"

세리아의 검격을 간신히 상쇄한 남자가 멀찍이 물러섰다.

방어가 늦은 탓에 검강에 어깨가 갈렸다. 아예 잘려나간 건 아니지만, 피가 분수처럼 터져나왔다.

세리아의 곁을 지키는 아티펙트를 바라보며 남자가 의문을 토했다.

"황제 직속 친위대도 무장이 이렇게 화려하지는 않을 텐데. 3대 마탑 중 하나를 통째로 털기라도 했냐?"

"주웠어, 미궁에서."

세리아의 얼굴이 잠시 음울하게 변했다.

"10년 가까이 갇혀 있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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