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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등가의 소드마스터-30화 (30/446)

완전범죄 (3)

30화

칼에겐 다른 선택권이 없었다.

레이는 마나를 각성한 게 분명해 보였다.

칼은 쇄골에 검이 박히기 직전 머리 위에 짙은 그림자가 지는 것을 느꼈다.

레이는 분명 자기 키보다 높게 뛰어올라 칼을 기습했다.

아무리 대단한 신체능력을 타고 났다 해도 마나 없이 그딴 묘기가 가능할 리 없었다.

칼은 가쁘게 호흡하며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아, 안내해 줄 테니까 진정해."

"난 아주 차분한 상태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네가 쓸데없는 행동만 안 하면 우린 아주 행복할 거야. 자자, 내 어깨에 손도 올려도 돼. 자꾸 떨어지려 하지 말고 옆에 딱 붙어."

"큽, 크읍!"

"숨 좀 가라앉혀. 나도 지금 상황이 썩 유쾌하진 않아."

"크흡, 젠장..."

호흡을 고른 칼이 레이를 옆구리에 끼운 채 골목을 벗어났다.

옷을 찢어내 여민 상처에서 피가 새어나왔지만, 갱들끼리 술을 마시다 보면 으레 싸움질을 하곤 했기에 칼의 부상에 대해 깊이 신경 쓰는 자들은 없었다.

칼과 안면이 있는 양아치들의 관심사는 대개 레이를 향했다.

"칼 형님, 그새 여자 취향이 변하신 겁니까? 좀... 많이 작습니다?"

"나이가 어린 겁니까, 몸집이 작은 겁니까?"

"쓰읍... 저 몸집에 제 물건이 들어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은데."

"어? 이 새끼 이거, 지금 칼 형님 물건이 작다고 쪽 주는 거냐?"

"시발놈이 뭐라는 거야? 형님, 오해십니다! 크크큭!!"

눈치없는 양아치들의 헛소리에 얼굴이 시퍼렇게 질린 칼이 다리를 부들부들 떨었다.

레이가 허리춤을 가볍게 쳐주며 속삭였다.

"미안하게 됐어, 칼. 의도치 않게 네 사회적 명성에 누를 끼쳐 버렸네."

칼은 대꾸도 안 한 채 그저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칼의 반응을 확인한 양아치들이 다시 한 번 낄낄거리더니 저들끼리 뭐라 떠들어댔다.

칼은 고개를 푹 숙인 채 계속해서 거리를 걸었다.

"...이쪽이다."

인기척이 적은 구역으로 들어가자 어두운 거리 가운데 홀로 빛이 새어나오는 건물이 보였다.

건물의 정문에는 덩치 좋은 남자 하나가 짝다리를 짚은 채 연초를 태우고 있었다.

인기척을 느낀 문지기가 칼을 돌아보더니 대놓고 눈살을 찌푸렸다.

"칼? 칼 맞지?"

"어어."

"무슨 일이야?"

"보고해야 할 문제가 있어서 왔다."

"여자까지 끼우고?"

"큼, 금방이라도 도망갈 것처럼 굴어서 말이야."

"간부들한테 들키면 재미 없을 걸. 일단 내가 데리고 있을 테니, 보고하고 나와."

"그래."

레이는 잠시 문지기 옆에 나란히 서게 됐다.

칼이 정문을 쿵쿵 두드리며 안쪽의 패밀리에게 자기 신원을 밝히는 동안 문지기가 슬그머니 레이를 위아래로 훑었다.

"너... 참 작구나?"

"그러게요. 얼른 키가 컸으면 좋겠어요."

"뭐? 키가 커? 너 지금 몇 살인데?"

"이제 9살인걸요."

"허억!"

기함을 한 문지기가 칼에게 고개를 돌렸다.

칼은 초조해 하며 안에서 문을 열어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문지기는 큰 충격을 받은 듯 입을 뻐금거리다 두 눈을 번뜩이며 분노했다.

"9살? 맙소사, 칼! 그렇게 안 봤는데 취향이 아주 고약하군! 딸까지 있는 놈이 말이야! 어떻게 9살을!"

레이가 거들었다.

"괜찮아요. 저는 남자인걸요."

"제기랄! 저거 아주 짐승 새끼였구먼!!"

뒷목을 붙잡은 문지기가 바닥에 침을 뱉었다.

"카악, 퉤!! 내가 저런 새끼랑 어제저녁에도 술을 처먹었다니! 칼, 나는 네가 게이인 줄 몰랐다고! 술 먹고 꼴았을 때 내 몸을 더듬거나 한 건 아니겠지?"

덜컹!

문이 열렸다.

문지기의 목구멍에 단검이 박혀든 것과 칼이 건물 안쪽으로 몸을 던진 것은 거의 동시였다.

"커억...!"

무릎을 걷어차 문지기를 넘어뜨린 레이가 문지기의 멱살을 붙들고 건물 안으로 끌고 갔다.

술잔을 쥐고 있던 조르지아 패밀리의 간부 중 하나가 레이의 몰골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크크큭. 깜찍한 손님이군!"

허리밖에 안 오는 꼬맹이가 시체를 붙들고 어둠 속에서 걸어나온다.

온갖 험악한 꼴을 자주 본 갱들에게 있어서도 충분히 이질적인 광경이었다.

술에 취해서일까. 다들 훌륭한 안줏거리를 본 것처럼 손뼉을 치며 레이를 환영했다.

숨이 끊어진 문지기를 구석으로 밀친 레이는 다시 빗장을 걸어 잠갔다.

그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여기저기서 폭소가 터졌다.

바닥에 나둥그러진 칼이 소리쳤다.

"지미의 수하입니다! 고아 수집가 녀석이에요! 마나를 각성했습니다!"

"뭐야, 설마 진짜 저놈 하나한테 쫓겨 온 거냐?"

"혼자라해도 마나를 사용할 줄 압니다! 여기서 죽여버려야...!"

"이봐, 이봐, 칼!"

우락부락한 근육을 가진 간부가 혀를 끌끌 차며 칼을 타박했다.

"저런 꼬맹이한테 쫄아서 여기까지 기어들어 와 놓고 왜 이리 목소리가 커? 응?"

"죄, 죄송합니다. 대가를 치를 테니, 부디 저 악귀 같은 놈을 처리해주십쇼."

"쯧쯧, 일단 거기서 얌전히 무릎 꿇고 있어."

촥!

허리춤의 낫을 뽑아든 채 홀로 걸어나가는 간부를 보고 칼이 경악해서 소리쳤다.

"같이 쳐야 합니다!"

"이런 멍청한 새끼가. 우리가 너 같은 병신인 줄 알아?!"

근육질 간부가 눈은 칼을 향한 채로 재빠르게 디딤발을 내딛어 낫을 투척했다.

가만히 서 있던 레이가 간발의 차로 허리를 꺾어 미간을 향하던 낫을 피했다.

콰악!!

레이를 스쳐간 낫이 나무로 된 정문을 그대로 꿰뚫었다.

사방에서 탄식이 흘렀다.

"아이고~ 아까워라. 꼬맹아, 운이 좋았네?"

레이가 태평하게 되물었다.

"어... 이 중에 브랙이라는 간부님 계신가요? 아니면 조르지아님? 여기 계시나요?"

잠시 얼을 탄 근육질 간부가 고개를 치켜든 채 폭소했다.

"하하하하!! 아~ 시발, 진짜 골 때리는 꼬맹이가 찾아왔네."

"브랙님? 정말 안 계신가요? 칼이 여기있다고 했는데?"

"큭큭, 꼬맹아. 브랙은 여기 지하에 있어."

웃음기를 지우지 못한 근육질 간부가 구석에 떨어져 있는 탁자를 가리켰다.

"저~기 탁자 치우고 지하로 내려가면 돼."

"지하 말이죠."

거짓말을 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목표한 대상을 찾았다.

'이제 어쩐다.'

브랙과 대면하기 전에 주변을 깔끔하게 정리해야 했다.

목격자를 남기면 안 되었기에 건물 안의 인원을 정확히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기감을 넓게 퍼뜨려 사방을 찔러보는 짓은 마나가 부족해 하지 못한다.

레이는 신체의 오감을 최대한 강화해 보았다.

지하에서 인기척이 몇 개 느껴진다.

건물 주변에 인기척은 없었다.

다행히도, 건물 안의 양아치들만 처리하면 될 듯 싶었다.

레이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뱉었다.

"브랙에게 볼일이 있어서요. 혹시 비켜줄 수 있나요?"

말장난에 물렸는지 근육질 간부가 쿵쿵거리며 돌진해와 레이의 목젖을 노리고 낫을 휘둘렀다.

제 아무리 상대가 하수라도 9살 몸뚱이로 힘 싸움은 비효율적이다.

대각 방향으로 발을 뻗은 레이가 자연스레 발검 자세를 취했다.

촤악!

깔끔하게 뽑혀나온 검이 낫을 쥐고 있던 팔을 잘라냈다.

근육질 간부가 균형을 잡지 못하고 바닥을 굴렀다.

곧장 비명을 지르려 했으나 그보다 앞서 레이의 단검이 목에 박혀 들었다.

"컥!!"

"덮쳐!!"

지역 하나를 주름잡는 갱단의 간부들이니만큼 상황 판단과 움직임은 나름 기민했다.

대충이나마 마나 다루는 흉내를 낼 줄 아는 숫자가 무려 다섯이었다.

마나를 어떻게 써먹어야 적에게 칼침을 놓을 수 있을지, 나름의 노하우는 갖추고 있는 자들이었다.

레이는 검을 한 바퀴 돌려 피를 털었다.

되도록 힘을 아껴야했지만, 안타깝게도 저들의 사체에 반드시 검기의 상흔이 필요했다.

검기를 발현한 레이가 정신을 집중했다.

구름처럼 흐르던 빛 무리가 검신을 타고 올라 검봉에 집약됐다.

검봉에서 뿜어져 나온 검기가 찰나 간 길게 늘어난다.

시푸르게 발광하는 검기가 채찍처럼 휘둘러졌다.

촤아아악!!

일시적으로 얇게 늘어난 검기의 길이만 3 m.

레이의 팔과 검신의 길이까지 더해지자 반경 4 m에 달하는 공간이 푸른 궤적에 휩쓸렸다.

밀도를 낮춘 검기인지라 강철까지는 자르지 못하겠지만, 조르지아 패밀리 중 금속으로 된 갑옷을 챙겨 입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억...?"

"커억?"

"크륵?!"

궤적에 들어섰던 살덩이가 여지없이 반으로 양단됐다.

일순간 눈앞의 풍경이 온통 붉게 물들었다.

투두두두둑!

절단난 살덩이가 바닥에 쏟아진다.

끔찍한 광경을 앞에 두고 칼은 여전히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었다. 그 덕분에 목숨을 구했다.

"크아...!!"

사람의 생명은 질겼다.

하체가 통째로 떨어져 나가고도 쇼크사를 피한 간부 중 하나가 비명을 지르려 했다.

레이는 곧장 간부의 아가리를 짓밟으며 앞으로 돌진했다.

살아남은 이들 중 간부가 옆에 끼고 있던 여자들도 있었다.

그들 모두가 근육질 간부가 던진 낫이 레이의 대가리를 터뜨리지 못한 걸 아쉬워했다.

레이가 무력한 어린아이였다면 그대로 대가리가 터져 그들의 웃음거리가 되었을 터다.

그러니 저들은 전부 악인이었다.

아니, 아니다.

이건 자기 합리화다.

그들의 죄악을 낱낱이 파헤쳐 죽여야할 할 이유를 강구하는 것은 방어기제의 발현에 불과했다.

레이는 디나르에 들어서기 전에 무고한 피조차 감수하겠다고 결심했다.

물론, 그렇다 해도.

"너희가 수많은 범죄를 저지르고 방관하며 죄악을 쌓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지."

레이는 기꺼이 자기 합리화를 받아들였다.

"자, 잠까...!!"

"으아...!!"

"꺄아악...!!"

촥!! 촤악!!

휘둘러지는 검에 망설임은 없었다.

비명을 지르려는 놈부터 차근차근 해치웠다.

칼은 이 모든 게 꿈처럼 느껴졌다.

"허억! 허억!"

칼은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누구보다 레이를 경계하고 있었기에, 학살이 벌어져도 눈치껏 입을 다물 수가 있었다.

덕분에 목숨을 조금 더 부지할 수 있었다.

주르륵

피가 물처럼 흘러내렸다.

칼은 차라리 비명이 더 오래 울려퍼지길 바랐다.

허나 얼마 안 가, 소름 끼치는 침묵이 사방에 내려앉았다.

자기 차례가 왔음을 직감한 칼이 황급히 입을 열었다.

"자, 잠깐! 잠깐만, 잠깐만."

"칼? 브랙이 지하에 있는 거 맞지?"

"맞아! 맞고말고! 브랙은 지하에 있어! 내가 제대로 안내해 줬잖아. 그치? 그러니까 제발 살려줘. 제발, 제발 한 번만 살려줘. 오늘 일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게."

"이미 한 번 뒤통수를 맞았는데 너를 어떻게 믿고?"

"혀를 잘라도 좋아. 아니 잘라버려! 목숨만 살려줘 제발. 난 가족이 있어! 아이가 있다고! 가족에겐 내가 필요해!"

절절한 칼의 호소에 레이가 앓는 소리를 냈다.

"아이가 아직 어린가?"

"11살밖에 안 됐어. 내가 돌봐줘야 한다고!"

일말의 가능성을 본 칼이 곧장 무릎을 꿇고 계속해서 자비를 호소했다.

검을 치켜든 레이의 입가에 따뜻한 웃음이 걸렸다.

"어리다니 잘 됐네. 걱정하지 마."

"어? 그, 그럼 살려주는...?"

"너 죽고 마누라가 다른 남자랑 도망가면, 네 소중한 자식은 우리 보육원에서 잘 길러줄게."

"...뭐, 뭐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해. 너 같이 애들이나 팔아먹는 쓰레기 밑에서 커봤자 양아치밖에 더 되겠어. 자식의 미래를 위해 네 한 몸 희생한다고 생각해."

"이런 개새-!!"

촤악!!

잘려나간 칼의 목이 바닥을 굴렀다.

사방으로 번져가는 핏물이 바닥을 덮어간다.

레이는 핏물을 피해 걸으며 담담하게 중얼거렸다.

"칼, 너도 알고 있었잖아. 난 성자가 아니야."

얼마나 많은 아이들을 구하든.

얼마나 성의를 다해 아이들을 가르치든.

그 누구도 레이를 어린 성자 따위로 부르지는 않았다.

레이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상기했다.

"나는 필립스 백작령의..."

재차 피어오른 검기가 공기를 울린다.

레이가 나무로 된 계산대를 향해 검을 내려쳤다.

계산대 아래에 숨어 있던 여자의 머리가 같이 쪼개졌다.

"고아 수집가, 레이다."

고아를 수집하고, 또한 그들을 보호하며 인도한다.

자잘한 희생에 목 매달며 얼을 탈 생각은 없었다.

차갑게 빛나는 레이의 눈이 지하실 입구로 돌아갔다.

브랙을 만나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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