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홍등가의 소드마스터-27화 (27/446)

디디에 (4)

27화

경험도 경지도 디디에가 우세하다.

허나 결국은 엑스퍼트. 압도적이진 못하다.

레이가 완연하게 밀리는 것은 단 하나. 완력.

이미 완성된 기사의 육체에 마나가 깃들자 그 파괴력은 감히 저항하기 힘들었다.

콰앙!!

"...!!"

충돌 직후 지면을 재차 구른 레이가 손아귀를 풀었다.

정면에서 힘 싸움은 아예 성립이 안 된다. 9살의 육체에 마나를 쏟아부어 봤자 기껏해야 몸 좋은 성인보다 조금 나은 정도였다.

'검기를 맺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긴 하는데...'

일단은 보류.

검기를 내보일 환경도 아닐뿐더러, 우세를 점하고 있는 적과의 전투를 제대로 경험해보고 싶었다.

검을 빙글빙글 돌린 레이가 자세를 새로 잡았다.

레이가 디디에보다 우위인 것. 작은 몸뚱이에서 나오는 순간 가속과 민첩성.

하르시아 류 공간검의 보법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레이의 몸이 좌우로 흔들렸다.

카각!!

재차 서로의 검이 맞부딪친다.

레이가 검을 타고 흐르는 반동을 활용해 횡으로 몸을 이동시켰다.

허리를 내준 디디에가 앞발을 좌측으로 빼며 발목을 돌렸다.

간신히 잡은 기회가 삽시간에 날아간다.

카캉! 카가가각!

레이가 자꾸만 반동을 타고 횡으로 움직이자 디디에가 레이의 진행 반향과 반대로 검을 휘둘렀다.

레이가 공격을 흘리려 해봤지만, 페이크였다.

어설프게 주춤거린 레이를 향해 디디에가 명치 아래로 검을 찔러넣는다.

"윽!"

허리를 비틀어 공격을 피한 레이가 구르다시피 몸을 낮춰 뒤로 물러났다.

슬쩍 거리를 좁힌 디디에가 반 박자 빠르게 검을 찔렀다.

일직선으로 다가오는 공격을 흘릴 방법이야 수없이 넘쳐난다.

허나 레이가 공격을 받아내려 할 때마다 디디에의 손목이 낭창거리며 삽시간의 검의 경로를 뒤바꿨다.

수싸움으로 가니 노련한 디디에에게 아예 상대가 안 됐다.

크게 물러난 레이가 무게중심을 낮춘 채 사방을 어지럽게 뛰어다녔다.

허나 디디에의 눈은 레이의 잔상을 지워냈고, 디디에의 몸은 눈이 향하는 방향을 귀신같이 따라잡았다.

레이가 보법을 활용해 아무리 목책 안을 헤집고 다녀도 디디에는 제자리에서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레이를 압박했다.

제대로 된 기사는 이토록 철벽과 같았다.

카가가가강!!

폭풍 같은 검격이 몇 차례나 이어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레이가 밟아가는 지면의 면적이 줄어들었다.

지친걸까?

입을 헤 벌린 채 레이를 지켜보던 아이들은 그리 생각했지만.

정작 레이의 검격을 받아내는 디디에의 이마에는 서서히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빠르게... 적응한다고?'

경험 부족.

레이는 기사급 강자와의 전투 경험이 극도로 부족했다.

때문에 나아가야 할 때 두 발자국 더 나아갔고, 물러서야 할 때 세 발자국 더 물러섰다.

미친 개마냥 사방을 뛰어다녔던 건 체력이 남아돌아서가 아니라 불필요한 움직임이 많아서였다.

허나 레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움직이는 반경을 좁혀갔다.

끊임 없이 회전하되, 서서히 디디에의 곁에 머물기 시작했다.

이론만 숙지했던 검술이 실전을 거치며 체화된다.

당연한 과정이지만, 그 속도가 예상을 훨씬 상회했다.

'가히 영광이로다.'

사방에서 휘몰아치는 레이의 검격에 디디에는 숨이 턱턱 막혀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강한 희열을 느꼈다.

현 시점에서 레이는 분명 디디에보다 약하다.

디디에는 계속해서 손속에 사정을 두고 있었다.

허나 이만한 발전 속도라면.

오래 걸리지 않아 역전될 거다.

이 아이라면 분명 정점에 닿는다. 디디에는 확신했다.

서로의 검격이 강하게 충돌했다.

콰앙!!

더 이상은 날붙이가 버티질 못한다.

레이와 디디에가 반동을 이겨내고 자세를 고정한 채 서로를 마주 봤다.

자연스레 뜻이 통한다.

마나가 휘몰아치며 찰나 간 검이 번뜩였다.

카각-! 터엉!!

"?!"

디디에의 손아귀가 검을 놓쳤다.

디디에가 경악했다.

혹시 몰라 검기의 출력을 줄이고 손아귀에 일부러 힘을 빼긴 했다.

허나 그를 감안해도 설마 손에서 검을 놓칠 줄은 몰랐다.

디디에는 튕겨져 나가는 자기의 검을 눈으로 쫓다 다시 한번 경악했다.

검이 날아가는 경로에 알레시아가 고개를 빼꼼 내민 채 두 팔을 파닥이고 있었다.

"무슨?!"

다행히도 검과 부딪치기 직전 알레시아의 몸이 목책 아래로 쑥 내려갔다.

자기 머리 위를 휙휙 날아가는 검을 바라본 알레시아가 얼을 타다 기함했다.

"디디에 경이 나를 암살하려고 하였다!"

모하메드가 콧잔등을 쥐었다.

"...오해입니다. 디디에 경은 충직한 기사입니다."

"그러한가?"

"그렇습니다."

"믿어보도록 하겠다!"

마음을 가다듬은 알레시아가 옷을 한 번 정리하더니 목책 문을 열었다.

예상치 못한 인물의 등장에 목책 안의 모두가 잠시 눈을 깜박였다.

"니가 여긴 웬일이십니까?"

어설프게 말이 꼬인 레이를 향해 알레시아가 환하게 웃었다.

"레이! 오랜만이로구나! 근데 여기 이상한 냄새가 좀 나는구나아아..."

"오랜만은 아니지요."

"너는 천민 주제에 항상 말이 많구나. 내가 그렇다고 하면 그런 줄 알거라."

"그래서, 여기까진 정말 무슨 일이십니까?"

잠시 주변의 눈치를 보던 알레시아가 작게 중얼거렸다.

"내가 만나주지 않으니 레이가 섭섭하다고 하지 않았느냐? 천민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여기까지 온 것이니 고맙게 여기거라."

"...뭐, 기왕 오셨으니 편히 놀다 가세요."

알레시아와 둘만 있는 것도 아니고, 이 자리에서 성질을 긁어봤자 좋을 게 없다.

레이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니 알레시아의 얼굴이 활짝 폈다.

"대련은 잘 보았다. 디디에 경이 검을 놓치게 하다니, 참으로 훌륭했도다!"

한편 알레시아를 확인하고 눈치를 살피던 카렌이 고개를 푹 숙인 채 슬금슬금 다가왔다.

레이에게 한 소리 들은 게 있어 잘못을 빌 생각이었다.

카렌이 다가가는 사이에도 알레시아는 레이에게 눈을 떼지 않았다.

"부디 계속 정진하거라, 레이. 꼭 기사가 되도록 하여라. 기사가 되는 날 나의 옆자리를 내어줄 것이라 약조하겠다!"

"옆자리?"

레이가 되묻자 알레시아가 당황하여 말을 더듬었다.

"어, 그, 호, 호위 말이다! 호위! 혹시나 오해 말거라!"

대화를 듣던 카렌이 눈가를 좁혔다.

문득 알레시아가 옆에 끼고 있는 분홍색 책이 눈에 들어왔다.

[귀축 기사와 악당 영애님]

빠득!

제목을 읽어낸 카렌의 미간이 급격히 좁아졌다.

"안녕하세요, 알레시아 님."

"음?"

"저번에는 제가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카렌의 사과에 알레시아가 흡족하게 웃었다.

"용서해주도록 하마. 오해가 있었다고 하니 깊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나는 관대한 귀족이니라!"

"정말 죄송합니다. 알레시아 님이 진짜 귀족이실 줄 몰랐어요. 두 번이나 졌으니까... 그래도 마법은 정말 신비로웠어요."

빠득!

이번엔 알레시아의 미간이 좁아졌다.

바들바들 떤 알레시아가 레이에게 소리쳤다.

"당장 목검을 가져오거라! 내 그때의 실수를 오늘 만회해야겠다!"

*

탁! 타닥!

아이들의 목검을 휘두르며 실력을 겨루는 모습을 지켜보며 모하메드가 웃었다.

"아가씨가 즐거워 보이는군."

"또래와 교류할 기회가 많지는 않으니 말입니다."

디디에는 살피려던 검을 내려놓은 채 아이들의 대련에 집중했다.

"잠시 둘러봤을 뿐이지만, 보육원에서 자랐다기엔 믿기지 않을 만큼 많이 사랑받고 많이 배운 아이들입니다."

"아가씨께서 나쁜 물이 들 걱정은 없겠군."

"다만 걱정됩니다. 제국을 둘러봐도 백작님과 아가씨처럼 관대한 귀족은 찾기 힘들 겁니다. 지금의 거리감이 익숙해지면, 나중에 문제가 될 겁니다."

"그 말이 옳다. 허나 우리가 참견할 문제는 아니다. 더군다나 길어봤자 20년이다."

"예?"

"20년 뒤면 저 아이들이 누구의 식구가 될 것 같으냐?"

"..."

타닥! 탁!

목검이 부딪친다.

알레시아가 요하나를 밀어붙이며 다짐했다.

'이번엔 절대 지지 않을 것이다!'

알레시아는 요하나와 겨루다가 검을 한 번 놓친 후에 잘 때마다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족보 없는 요하나의 검술을 어떻게 파훼해야 하는가?

답은 어렵지 않았다. 당황만 하지 않으면 된다.

요하나가 기이한 행각을 벌이면 한발 물러서서 동작을 살피면 되는 일이다.

변수만 제대로 통제하면 고급 검술을 익힌 알레시아가 요하나에게 패배할 일은 없었다.

"이야압!"

"우왁!"

요하나를 구석까지 밀어붙여 제압한 알레시아가 목검을 들어 올리며 환호했다.

"그날의 굴욕을 갚았구나!"

요하나는 비틀대며 물러나더니 다시 봉투를 잡고 입을 헤 벌렸다.

"우에에엑..."

속이 뒤집어진 지 얼마 안 돼 몸을 거칠게 놀렸더니 반동이 온 듯싶었다.

"졌어요에엑..."

"어, 어디 안 좋은 것이냐?"

"괜찮아여에엑..."

"으음, 그, 그렇구나. 몸을 잘 추스르거라."

알레시아가 찝찝한 얼굴로 다음 상대를 지목했다. 카렌이었다.

자리에서 일어선 카렌이 꽉 잡은 목검으로 알레시아를 겨누었다.

탁다닥!

목검이 부딪치는 소리를 들으며 모하메드가 물었다.

"아들아, 그래서 어찌 보느냐."

잠시 고민하던 디디에가 답했다.

"집중적으로 가르치면 두 달... 속성으로 교육하면 몇 주 안에도 어떻게든 될 것 같군요."

요하나가 검술로 알레시아에게 승리를 쟁취하기까지.

디디에는 길어봤자 두 달이면 충분하리라고 말하고 있었다.

"경이로운 거리 감각입니다. 신체 밸런스도 굉장히 좋아보이는군요."

"그렇다면 머리카락이 붉은 여아는 얼마나 걸릴 것 같으냐?"

"열심히 노력하면 반년이 넘어가진 않을 것 같습니다."

"혹시 보육원의 아이들이 전부 다 저만한 수준의 재능을 지니고 있는 거냐?"

모하메드가 세상 심각해져서 묻자 디디에가 고개를 저었다.

"저들이 보육원에서 가장 재능 있는 아이들이라 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설마... 마나 감응력까지 타고난 건 아니겠지?"

입을 뻐끔거리던 디디에가 웃음을 터뜨렸다.

"임무와 관련된 사안인지라. 아버지께도 비밀입니다."

모하메드가 따라서 껄껄 웃었다.

"공사 구분은 명확히 해야 하는 법이지. 기사답구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부자를 향해 레이가 다가갔다.

레이의 접근을 눈치챈 디디에가 먼저 말을 꺼냈다.

"믿기지 않을 만큼 훌륭했다. 계속 정진한다면 네 이름을 역사에 새길 수 있을 거다. 내기에서 이겼으니, 내게 할 부탁이 생기면 개의치 않고 요청하면 된다."

"지금 바로 부탁을 드려도 될까요?"

"지금 바로? 일단 들어보지."

"오늘부터 한 달 동안 보육원 안에서만 머물며, 숙식 또한 보육원 안에서 해결해 주십시오."

"한 달이라."

디디에는 레이의 의도를 알겠다는 듯 웃음 지었다.

한 달 동안 숙식을 보육원에서 해결하면서까지 아이들의 수업에 성의를 다하길 원한다는 거다.

거부할 이유가 없었기에, 디디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그 부탁을 들어주마. 보육원을 벗어나지 않도록 하겠다."

"감사해요."

레이가 꾸벅 고개를 숙인 후 몸을 돌렸다.

'기회를 잡았다.'

혼자 설치고 다니기엔 보육원의 안전이 걱정되던 참이었다.

어지간한 침입자는 짓밟을 수 있는 훌륭한 방어 포탑을 보육원에 박아놨으니 이제 마음 놓고 움직일 생각이었다.

*

"크읍!! 으으읍!!"

디나르 지역의 음습한 뒷골목.

어깨와 쇄골 사이에 쇠붙이가 박힌 칼이 비명을 지르려 했으나 그조차도 쉽지 않았다.

자꾸만 바둥거리는 칼의 아가리를 틀어막은 레이가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뒤지기 싫으면 내가 묻는 말에만 대답해."

"크흡! 으읍! 으으..."

"루나를 눈독 들이고 너희 패밀리를 사주한 새끼가 누군지, 아는 건 전부 다 불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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