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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등가의 소드마스터-23화 (23/446)

23화

다비드가 위화감을 느꼈을 때는 이미.

갈라져 나간 허공에서 찬란히 빛나는 검기가 아가리를 들이밀고 있었다.

우웅-!

아티펙트가 재차 실드를 전개했으나 앞서 한 번 실드가 부서지며 과부하가 걸린 아티펙트로는 공간검을 완전히 막아낼 수 없었다.

실드가 바스러진다.

뿌드드드득!

무방비하게 노출된 다비드의 쇄골이 검기와 맞닿아 주저앉기 시작한다.

다비드는 그제야, 레이에게 일격을 허용했을 때 어째서 자신의 실드가 그리 손쉽게 관통당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하르시아...!!"

뒤늦은 경악과 분노가 얼굴을 뒤덮었다.

다비드는 발악하려 했지만 허공을 부수고 튀어나온 두 번째 검기에 깊은 절망을 느꼈다.

촤악!!

다비드의 남은 팔이 잘려나간다.

쇄골을 무너뜨리고 심장 근처까지 파고든 검기가 서클 대부분을 망가뜨린 후 사그라졌다.

그리고 레이는, 허공에 실금이 새겨진 순간부터 이미 다비드를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콱!

다비드를 향해 던졌던 검을 주운 레이가 마지막 마나를 쥐어짜 검기를 생성했다.

레이는 마법사란 존재를 잘 몰랐다.

그들의 성격도, 생리도, 또한 그들이 일으킬 수 있는 기적에 대해서도 무지했다.

이를 한 번 간과했기에 오늘과 같은 위기를 초래했다.

때문에 레이는 이번엔 변수를 만들 생각이 없었다.

"아쉽게 됐군."

푸욱!!

다비드의 심장에 검을 꽂아넣은 레이가, 갈피를 못 잡고 흔들리는 다비드의 눈동자를 마주 보며 웃었다.

"내가 마법사였다면, 네 심장을 꺼내 가공할 수 있었을 텐데."

촤악!!

레이가 하나 남은 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툭! 투둑!

저항하지 못하고 잘려나간 다비드의 머리가 지면을 굴렀다.

머리를 잃고 휘청거린 다비드의 몸뚱이가 무릎을 꿇었다.

전투가, 끝났다.

"후우, 빌어먹을."

레이는 다비드의 가슴에 박혀 있는 검을 뽑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관절 사이사이 고인 피가 찢어진 상처로 흘러나왔다.

우웅-!

다비드의 서클과 다비드가 발현하려던 마법에 깃들었던 마나가 통제를 잃고 팽창했다.

공기가 뜨거워진다.

몸이 멀쩡했다면 괜찮겠지만, 아무래도 지금 상태로는 산발적으로 폭주하는 마나를 막아내기 어려웠다.

레이는 혹시나 해서 물었다.

"이거 혹시 제어 가능하냐?"

"..."

서클이 빛난다.

불규칙하게 응집되어 공기를 데우던 마나가 서서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레이가 제자리에 선 채 보육원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비드가 전투 직전 펼쳐 놓았던 보조 마법들이 증발하며 비를 맞고 있는 루나의 모습이 장막 너머로 드러났다.

푸른 머리카락이 푹 젖은 채 얼굴을 덮고 있어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루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아요?"

"괜찮아. 그리고 고맙긴 한데, 앞으로 이런 일 있으면 이불 밑에 꼭꼭 숨어 있어. 나중에 마법 좀 배우면 같이 나서주고."

"나 때문... 인가요?"

"내가 이놈이랑 싸운 거? 너 때문이긴 하지."

자리에서 비틀거리던 레이가 픽 쓰러졌다가 낑낑대며 다시 일어났다.

"근데 단어 선택은 똑바로 해야지. 네가 원인이긴 한데, 네게 잘못이 있는 건 아니야. 여기 목 떨어진 놈이 미친놈인 거지. 너 안 쫓아낼 테니까 걱정하지 마."

검을 지팡이 삼아 균형을 잡은 레이는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여전히 비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레이는 비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오늘만큼은 꽤 기꺼웠다.

자잘한 흔적이 빗물과 함께 씻겨져 나갈 테니.

검에 의지한 레이는 뜯어져 나갈 것 같은 무릎을 이끌며 보육원 울타리 근처로 다가갔다.

간간히 활용하던 수레가 있던 장소였다.

천을 들추니, 지미에게 삥 뜯어 놨던 포션 한 병이 보였다.

극적인 효과는 없었지만 일단 입에 물고 들이켰다.

용병들이 애용하는 포션답게 마취 성분과 마약 성분이 좀 포함되어 있어 기분이 나아졌다.

"그만 들어가. 가서 빗물 닦고 자. 감기 걸리겠다. 오늘 일은 당연히 비밀이고."

레이는 계속해서 자신을 따라오는 루나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었다.

잠시 제자리에 서 있던 루나가 머리에 얹어져 있는 레이의 손을 붙잡았다.

"...왜, 날 지켜줘요?"

"흠."

레이는 잠시 고민했다.

레이가 루나를 지키고자 하는 이유야 꽤 명쾌했지만, 그걸 남에게 설명하긴 좀 껄끄러웠다.

약 기운 탓에 비실비실 웃은 레이가 답했다.

"나중에 호강하려고 그러는 거지."

"...호강?"

"그래. 나중에 루나가 뛰어난 마법사가 되면 나한테 떡고물이라도 떨어지지 않겠냐."

대마법사를 지인으로 두면 마음이 아주 든든할 터다.

루나가 다비드와 같이 인성이 변질돼버리지만 않으면 말이다.

"마음 착하게 먹고, 나중에 나한테 잘해라."

"...네. 꼭 잘할게요."

"오냐."

낄낄거린 레이는 수레를 끌고 가려다 말고 도끼눈을 했다.

"아, 그런데 루나. 다른 건 다 괜찮은데."

"...?"

"나중에 나보고 키 작다고 놀리면 대가리를 깨버릴 거야."

환생하고도 170따리 호빗 인생이라니.

레이는 삐걱거리는 관절을 느끼며 고개를 저었다.

*

다비드의 떨어져 나간 목을 주워들며 간절히 바랐다.

내가 모르는 기능의 아티펙트, 예컨대 주인의 심장이 멈추면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내게 설계된 아티펙트를 다비드가 가지고 있지 않기를 말이다.

"보육원 오는데 자기 목 날아갈 걱정을 했을 것 같지는 않다만."

천으로 다비드의 시체를 둘둘 말은 뒤 수레 위에 고정했다.

그 위를 한 번 더 천으로 덮었고, 그 위에 다시 지푸라기를 얹었다.

이 정도면 사람 시체를 실은 것처럼 보이진 않을 거다.

지금은 야밤이고 비가 장대처럼 내리니 사람 마주칠 일도 거의 없을 것이다.

설령 마주친다 해도, 현시점에서 내게 시비를 건 후 수레를 수색할 수 있는 인간은 백작령 내에서도 기사 정도는 되어야 했다.

"일단... 숨겨놓고, 고민하자고."

한 달 정도는 여유가 있으니까 말이다.

나는 수레를 끌고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산 깊숙이 들어가 시체를 버린 후 짐승에게 뜯어먹게 하는 것도 일견 나쁜 생각은 아닌 것 같았으나, 다비드는 결코 '실종'이 되어서는 안 됐다.

고위 마법사가 실종됐다고 판단되면 무조건 마법사 여럿이 조사를 위해 파견될 거고, 백작령을 전부 들쑤시고 다닐 거다.

게다가 나는 마법에 대해 무지했기에 마법사의 시야를 벗어날 방법을 몰랐다.

그러니 실종 처리는 안 됐다.

한 달 뒤에는 무조건 다비드의 시체를 내보여야 했다.

내가 죽였다고 고백하든, 남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든 말이다.

"케냐의 저장고가 이쯤이었는데."

케냐는 과거 백작령 암흑가를 이끌던 여자 중 하나로, 손속이 꽤 잔인했다.

덕분에 필립스 백작의 눈 밖에 나 꽤 수월하게 처형대에 올릴 수 있었다.

아무튼 과거, 케냐는 사람을 죽여놓고 추적을 피하기 위해 자기만의 시체 저장고를 만들었다.

산 속에 굴을 파고 적절한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공을 들였다고 들었는데, 케냐의 저장고 내부는 일정한 습기와 낮은 온도가 유지되고 있어 시체의 부패를 아주 자연스럽게 늦춰주었다.

케냐는 저장고에 시체를 몇 달 보관해 사망 시점을 특정짓기 어렵게 만든 후 다른 장소에 가져다 놓아 알리바이를 챙기고 수사에 혼란을 주곤 했다.

"지미가 사용할 일이 없어서 닫아놓긴 했는데, 결국 내가 사용하는구먼."

입 안이 텁텁해지는 걸 느끼며, 시체 냄새가 배어있는 케냐의 저장고에 다비드를 던져 놓았다.

시체의 습기가 증발해 미라처럼 되지 않게 방수천을 덮은 후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온몸이 젖은 채로 영하에 가까운 저장고에 들어갔다 나오니 몸이 꽤 추웠다.

잠시 제자리에 서 있었다.

오늘은 꽤 힘든 날이었다.

포션을 한 병 정도 더 마시고 싶었다.

"다들 이렇게 중독되어 가는 거지."

고개를 저은 후 마차를 끌었다. 오늘처럼 일이 좀 꼬여, 기분이 울적해질 때마다 습관적으로 찾아가는 곳이 있었다.

마침 이곳과 가까우니 들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흠, 술과 꽃이 필요하겠는데."

오랜만에 아버지를 뵙고 싶었다.

*

지미가 보호하는 가게의 술을 하나 털어온 레이는 다시 비를 맞으면서 공동묘지로 향했다.

지나가는 길에 피어 있는 수수한 꽃을 꺾어 손에 쥐었다.

공동묘지에 도착한 레이는 작은 묘비 앞에 섰다.

이 세계에선 성묘 예절이 좀 다르긴 하다만, 레이는 술을 묘비 앞에 둔 채 절을 두 번 하고 살짝 고개를 숙였다.

"반가워하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버지."

술 병을 딴 레이가 묘비 주변에 술을 세 번에 나눠서 부었다.

"어차피 여기 찾아와 관리하는 사람이 저밖에 없으니 기왕이면 반가워해 주셨으면 싶네요."

낄낄 웃으며 술병을 탈탈 털던 레이가 위화감을 느꼈다.

근래 몇 주 정도 묘비에 찾아온 적이 없었는데, 묘비의 풀이 한 번 다듬어져 있었다.

레이가 주변을 한 번 돌아봤다.

야밤에 장대비까지 쏟아지는지라 설령 사람이 있다고 해도 인기척을 느끼기가 쉽지 않았다.

딱히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아버지 묘비에 손님이 늘어났다는 건 좋은 소식이었다.

"아이고."

묘비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은 레이가 하늘을 보았다.

참 많이 힘들었다.

피부는 난자당하고 관절은 박살 나고 장신의 꿈은 무너졌다.

당장이라도 교단에 찾아가 자고 있는 아델을 깨워 치료를 받고 싶었지만 이번만은 불가능했다.

현재 레이의 몸에 새겨진 상처들은 명백히 마법에 의한 상흔이었다.

이걸 남에게 보일 수는 없었다. 이건 홀로 가지고 가야 하는 고통이었다.

"아버지께 드릴 말씀은 아닙니다만, 세상 구해본다고 설치는 게 생각보다도 참 좆 같습니다."

기껏 레전드리 고아 하나 뽑아놨더니 6서클 마법사가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앞으로는 레어와 유니크 위주로 나왔으면 싶다. 고아 가챠 돌려보면 노멀 비율이 너무 높았다. 개창렬 가챠 같으니라고.

낄낄거린 레이가 호흡을 줄이며 눈을 감았다.

"앞으로 일이 더 잘 풀리길 바라주십시오. 내키지 않으시더라도."

*

김독자 컨샙질 하던 친구 새끼 대신 판타지 세계에 갓난아기로 환생했다.

미치고 돌아버릴 일이긴 했지만, 나름 두근거리고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는 없었다.

문제는 내가 활약하지 않으면 이 세계가 멸망한다는 점이다.

근데 굳이... 세계의 구원에 집착할 필요가 있을까? 세계가 멸망한다면 그 이유는 일 처리 똑바로 안 한 초월자 새끼 탓이었다.

내가 죄책감이나 책임감을 느낄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쨌든, 나는 지금 갓난아기였고, 행동방침을 정하기엔 시기가 일렀다.

심지어 난 지금 앞도 제대로 안 보였다.

신생아는 눈을 제대로 뜨기까지 몇 개월 걸린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있는데, 설마 그걸 직접 체험하게 될 줄은 몰랐다.

"~~~"

"$$$"

그나마 소리는 잘 들렸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였지만, 시간이 지나며 해독 권능이 빛을 발했다.

어제까지는 부모님이 떠드는 문장 중에 단어 몇 개만 해석이 됐는데, 이제 슬슬 문장 전체가 해석되기 시작했다.

누군가 귓가에 대고 익숙한 언어로 더빙해주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부모님의 대화를 들으며 보이지 않는 눈을 감았다. 갓난아기는 잠이 많았다.

"♡"

음, 시발.

신음 소리가 들렸다.

부모님 금슬이 좋다는 건 긍정적인 소식이다.

눈도 못 뜬 갓난아기 옆에서 떡... 사랑을 나누는 건... 뭐, 지혜로운 행동이라 생각했다.

무슨 사고를 칠지 모르는 갓난아기잖는가. 뭘 하든 옆에 두고 있는 게 현명했다.

근데 뭐 이리 대낮부터 몸에 열을 내고 있는가. 지나치게 금슬이 좋은 것도 생각해볼 문제였다.

"~~~%$?"

부모님이 몸을 겹치며 뭐라 떠들어 댔다.

무슨 뜻인지 전혀 알고 싶지 않았지만, 내가 아직 해독 권능을 끄고 켜는 게 익숙지가 않았다. 언어에 있어서는 거의 반 자동적으로 권능이 발동되기도 했고.

남자가 헉헉 거리며 말했다.

어때, 남편보다 좋아?

여자가 앙앙 거리며 답했다.

자기 너무 좋아.

"?"

권능이 고장나기라도 했나, 시발 이거 더빙이 좀 이상한데.

아니 시발 더빙이 존나 이상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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