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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등가의 소드마스터-13화 (13/446)

알레시아 (3)

13화

내리막길을 뛰어 내려가던 알레시아는 뒤에서부터 들려오는 끔찍한 소리에 머리털이 쭈뼛 섰다.

나무가 바스러지고 지면이 파여대는 굉음 사이로 짐승의 울음소리가 섞여 들렸다.

삽시간에 울음소리의 근원이 가까워지자 알레시아는 눈물을 펑펑 쏟아내며 빽빽한 나무 사이로 방향을 틀었다.

'어찌 저리 바로 쫓아오는 것이냐. 레이는 괜찮은 것인가?'

어차피 상황이 이리되었다면 알레시아는 레이라도 무사하길 바랐다.

레이가 반항도 못하고 와일드호그의 송곳니에 꿰뚫린 것이 아닐까, 그런 두려운 생각도 들었지만 애써 그러한 가능성을 잊었다.

'짐승은 내리막길을 달리는 걸 어려워한다고 들었다.'

알레시아는 책에서 본 정보에 의지해 내리막길을 달림과 동시에 계속해서 방향을 틀었다.

알레시아의 판단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실제로 와일드호그는 오르막보다 내리막에서 느렸고, 한 번 가속이 붙은 뒤로는 방향전환에 능숙하지 못했다.

허나 그러한 불리함을 모두 감수하고도.

와일드호그는 알레시아보다 월등히 빠르고 민첩했다.

"크르르륵!!"

"히이익!!"

등뒤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에 알레시아가 경기를 일으키며 뒤를 돌아보았다.

길게 뻗어난 송곳니를 앞세운 와일드호그가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알레시아는 반사적으로 몸을 옆으로 굴렸다.

알레시아가 달리던 경로를 직선으로 휩쓸고 간 와일드호그가 굵은 나무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콰가각!!

성인 남자가 팔을 벌려야 간신히 감쌀 수 있을 크기의 나무가 단번에 박살 나 옆으로 쓰러졌다.

자리에서 일어난 알레시아가 휘청이는 다리를 붙잡았다.

도망갈 수 없다.

운이 좋아 충돌을 몇 번 피한다고 해도.

이 연약한 육체로는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저 짐승의 송곳니에 허리를 꿰뚫릴 게 틀림없었다.

"흑! 흐윽!"

도망도 치지 못한다면, 그럼 내게 남은 것이 대체 무엇이냐.

기껏해야 모닥불을 피워낼 수 있는 마법 하나가 남아 있었다.

그 보잘것없는 화염 마법으로 저 거대한 짐승을 내쫓을 수 있을까?

모른다. 모르겠다.

산을 달려 내려가던 알레시아는 짐승이 토해내는 뜨거운 호흡이 두피를 간지럽힐 지경이 되어서야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깨달았다.

마나가 진동한다.

알레시아는 눈앞이 하얗게 변할 만큼 혈압이 치솟은 와중에도 극한의 상황이 내려주는 집중력으로 마법을 완성했다.

뒤를 돌아서, 자신에게 돌진해오는 짐승을 마주한다.

"파이어!"

"크륵?"

좌측 뒤통수에 불이 붙은 와일드호그가 검은 털이 타들어 가는 감각을 느끼며 고개를 신경질적으로 털었다.

그 작은 움직임이 와일드호그가 돌진하던 경로를 살짝 비틀었다.

와일드호그의 거체가 알레시아의 연약한 몸뚱이를 옆으로 비껴 치고 지나갔다.

투웅!

"꺄악!!"

고작 스쳤을 뿐이나, 알레시아에겐 어마어마한 충격량이 전달됐다.

허공을 날아간 알레시아는 지면을 데굴데굴 구르다 나무에 몸을 부딪친 후 더는 일어서지 못했다.

온몸을 찌르르 울리는 격통 탓에 몸을 말아낸 알레시아가 얼굴을 무릎에 파묻은 채 신음을 흘렸다.

"으으... 으윽..."

무력화된 사냥감의 호소를 들으며 와일드호그가 천천히 접근했다.

참으로 매혹적인 사냥감의 냄새에 와일드호그는 계속해서 코를 벌름거렸다.

쿵쿵 울리는 땅과, 귓가에 들리는 와일드호그의 숨소리에 알레시아가 두 귀를 틀어막으며 중얼거렸다.

"레이... 날 두고 어디로 간 것이냐..."

"크르르..."

와일드호그가 입을 쩍 벌리며 거대하고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동시에.

와일드 호그를 둘러싼 공간에 얇은 실금 두 개가 새겨졌다.

"크륵?"

콰가가가각!!!!

허공에서 검기가 떨어져 내렸다.

와일드호그가 이상을 눈치챘을 때는 이미 제가 디뎠던 지면이 사방으로 터져나가는 중이었다.

어마어마한 검기의 위력에 와일드호그의 뱃가죽이 갈려나가며 내장의 절반이 밖으로 터져나왔다.

격통을 느낀 와일드호그가 산이 떠나가라 비명을 질렀다.

"크라라락!!"

"사냥감에 눈을 뺏긴 포식자만큼 무방비한 상대가 또 없지."

두 번째 검을 검집으로 회수한 레이가 하나 남은 검을 양손으로 붙잡고 와일드호그를 겨누었다.

"마물이라 해봐야 결국은 짐승이군."

*

산속에서 알레시아를 찾아낸 시점에서 레이는 많이 지쳐있었다.

늦기 전에 와일드호그의 흔적을 쫓아 알레시아에게 도달하기 위해 얼마 없는 마나까지 끌어 쓴 상태였다.

검기를 몇 번이나 날려대며 와일드호그를 상대할 여력은, 이미 그 시점에서 존재하지 않았다.

도약 검기의 위력과 은밀성은 대단했지만 레이는 검기가 공간을 도약하기까지 딜레이를 조절할 수 없었다.

마나에 민감한 와일드호그는 검기를 뽑아내는 순간 레이의 존재에 반응할 터였다.

검기를 눈치챈 와일드호그가 어떻게 행동할지 레이는 예측할 수 없었고, 이리저리 날뛰어대는 적을 상대로 도약 검기를 적중시킬 자신도 없었다.

그래서 알레시아를 미끼로 사용했다.

리스크가 컸지만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나쁘지 않게 풀렸군."

알레시아가 안 죽었고 와일드호그에게 검기를 명중시켰다.

레이는 내심, 와일드호그가 그대로 도주해주길 바랐다. 물론 흉포한 마물이 레이의 바람을 들어줄 가능성은 극히 희박했다.

"올 거면 빨리 와라."

레이의 검신에 푸른 빛이 흘러나왔다.

아직까지도 알레시아에게 관심을 거두지 못했던 와일드호그가, 드디어 레이에게 온전히 정신을 집중했다.

"크륵, 크라락!!"

돌진.

와일드호그는 내장을 줄줄 흘리면서도 눈을 붉게 빛내며 지면을 박찼다.

레이 또한 지쳐서 잘 떨어지지 않는 다리를 움직였다.

검기를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앞으로 30초.

어차피 죽을 놈이 상대라지만, 그 안에 목숨을 끊어놔야 안전했다.

'흥분하지 마. 놈의 동선은 단순하고 가장 까다로운 질긴 가죽은 이미 터뜨려 놨다.'

정면에서 짓쳐들어오는 와일드호그를 바라보며 레이가 타이밍을 쟀다.

서로의 거리가 2 m도 남지 않은 순간.

레이가 우아하게 몸을 회전시켰다.

스르륵

제자리에서 도는 듯했으나 어느새 레이는 와일드호그의 돌진 경로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었다.

뒤늦게 옆구리를 내준 걸 알아 챈 와일드호그가 방향을 틀기 위해 지면을 걷어찼으나 그보다 앞서 레이의 검이 갈라진 가죽 사이로 박혀 들었다.

푸욱!

"크르르륵!!"

와일드호그가 피거품을 물며 날뛰어대기 시작했다.

레이는 와일드호그의 억센 털을 붙잡고 매달린 채 남은 한 손으로 검을 역수로 바꿔잡았다.

발악하는 와일드호그 탓에 나무와 바위에 계속 몸을 부딪쳤지만, 레이는 기계적으로 와일드 호그의 상흔 사이로 검을 쑤셔넣었다.

푹! 푹! 푹! 푹! 푹!

처음에 탱탱했던 촉감의 내장들이 갈수록 묽어진다.

레이는 검기의 빛이 꺼질 때까지 팔을 쉬지 않았다.

그렇게 30초가 지나.

몸에 남아있는 내장보다 밖으로 흘린 내장이 훨씬 많을 지경이 되어서야.

"크륵..."

힘이 빠진 와일드호그가 지면에 쓰러진 채 숨을 거두었다.

쿠웅!!

거체가 옆으로 쓰러지고 나서야 레이는 지면과 맞닿을 수 있었다.

몸을 한 바퀴 굴린 레이가 그대로 대(大)자로 엎어졌다.

"흡! 흐읍! 흡...!"

레이는 한참 동안 호흡을 몰아쉬었다.

승리했다는 안도감 탓에 의식이 금방이라도 흩어질 것 같았지만 혀를 씹으며 버텼다.

"일어나자. 일어나야 된다."

들썩이는 가슴이 조금씩 진정된다.

핏물을 뱉어내며 몸을 일으킨 레이가 죽은 와일드호그의 뱃가죽을 다시 쑤시기 시작했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검기에 베인 상흔'을 좀 지워보려는 의도였다.

당장의 시체 회수가 불가한 탓에 추후 패밀리의 도움을 받아 시체를 처리할 생각이었지만, 혹시나 제삼자에게 발견되는 경우를 염두에 두고 한 행동이었다.

'효과가 있을는지는 모르겠다만.'

전신에 온통 핏물을 뒤집어쓴 레이가 검을 수납했다.

전투는 잘 끝났다. 이겼으니 됐고, 살렸으니 된 거다.

레이가 알레시아가 몸을 웅크리고 있던 장소로 걸어갔다.

온몸에 흙을 뒤집어쓰고 있던 알레시아가 새롭게 들려오는 소리에 깜짝 놀라 어깨를 벌벌 떨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가 마물이 아닌 사람의 것임을 깨달은 알레시아가 슬그머니 눈을 떴다.

아른거리는 시야 너머로, 익숙한 인영이 절뚝이며 다가오고 있었다.

잠시 말을 잃은 알레시아가 이내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으으으... 으에에... 으에에에엥..."

엉망이 된 알레시아의 얼굴을 보고 레이가 웃었다.

"알레시아, 내가 누구?"

"으아앙... 못 배운 천미인..."

"이년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딱밤을 한 대 때린 레이가 알레시아에게 묻은 흙을 털어주었다.

좀 다친 것 같긴 한데, 다행히 어디가 부러진 것 같진 않았다.

잠시 고민한 레이가 한숨과 함께 등을 내주었다.

"업혀봐."

"으에에... 으에에엥...."

레이의 목과 허리를 꽉 움켜쥔 알레시아가 레이의 등에 얼굴을 부비며 계속 울었다.

레이 또한 체력이 떨어져 죽을 맛이었지만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여기서 다른 마물이 더 꼬였다간 레이 본인은 몰라도 알레시아까지 지킬 수는 없었다.

"디나르 방향으로 갈 거야. 진짜 디나르로 가겠다는 게 아니고, 여기서는 영주성보다 보육원이 있는 마을이 더 가까워. 산에서 최대한 빠르게 벗어나야 해."

"우에에엥..."

"야, 말 듣고 있냐?"

"못 배운 천민이이... 날 미끼로 쓰다니이이... 귀족을 미끼로 쓰는 천민이 어디 있느냐아..."

뭐야, 들켰었나.

어깨를 흠칫 떤 레이가 헛기침과 함께 괜히 알레시아를 타박했다.

"그러게 누가 함부로 까불고 다니래?"

"천민은 다 거짓말쟁이다아..."

"야, 너 진짜 여기다 버리고 간다."

"그건 안 된다아..."

알레시아가 훌쩍이며 레이의 등에 더욱 몸을 밀착했다.

*

동이 텄다.

잭은 오늘도 과일을 판매하기 위해 판매대를 정리하다 말고 멀리서 걸어오는 피떡 둘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처음엔 웬 귀신이 나타난 건가 했으나 피떡을 업고 있는 피떡의 얼굴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잭이 사과를 던져주며 물었다.

"그거 혹시 네 피냐?"

"후욱, 후욱... 짐승 피입니다. 대부분은."

과일 가게에 도착한 레이가 알레시아를 내려놨다.

알레시아는 지면에 두 발을 딛고도 여전히 레이의 등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레이가 손짓했다.

"사과 주스."

"미친놈."

잭은 투덜대면서도 사과 주스 한 컵을 내주었다.

레이가 고아를 주워올 때마다 여기서 주스 한 잔씩 먹이고 가는 게 이젠 일과처럼 되어버렸다.

알레시아를 달래며 주스를 먹이는 레이를 바라보며, 잭이 턱을 괸 채 물었다

"근데 그건 또 어디서 주워 온 거냐?"

듣던 알레시아가 발끈했다.

"말조심 하거라, 평민. 나는 필립스가의 하나뿐인 영애 알레시아다!"

"..."

여전히 턱을 괴고 있는 잭에게 레이가 한마디 했다.

"얘가 머리를 좀 다쳐서, 지가 어디 귀족인 줄 알아요. 그냥 웃고 넘어가 주세요."

잭은 잠깐 고민했다.

저 거지보다 못한 행색을 한 소녀가 진짜 필립스 가의 영애일 확률이 얼마나 될까.

길가다 벼락을 두 번 정도 맞고 다시 살아날 확률쯤 되지 않을까.

허나 저걸 주워온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레이다.

직감적으로 이 새끼는 필립스 가의 영애를 주워오고도 남을 새끼라는 걸 알아챈 잭이 판매대를 나와 무릎 한쪽을 꿇었다.

"제가 평민이라 예법에 무지한 걸 용서해주십시오, 아가씨."

"흠, 흐음. 되었다. 눈이 아주 삐뚤어지지는 않은 모양이로구나."

알레시아는 스스로가 '귀족 아우라'를 발산하고 있다고 굳게 믿으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레이가 똥 씹은 표정으로 당부했다.

"일단 비밀로 좀 해주세요."

"뭐... 그래. 아가씨를 납치라도 해 온 것은 아닌 것 같으니. 근데 어떻게 된 일이냐?"

"멋대로 산에 올랐다가 죽을 뻔한 걸 살려 왔죠. 주스 잘 마셨습니다."

"그래. 그리고 이거 가져가라. 내 마누라가 양아치들 족쳐준 거 고맙다고 건네주라 하더라."

사과잼이었다. 레이가 꾸벅 고개를 숙인 후 다시 알레시아를 업었다.

*

레이는 알레시아를 보육원에 데려다 놨다.

아델은 잭과 달리 '얘가 머리를 다쳐서 지가 귀족인 줄 안다'는 레이의 주장을 의심 없이 믿었다.

알레시아는 레이와 떨어지지 않겠다고 떼를 썼지만 부상 치료를 위해서라도 아델을 따라가라는 레이의 타박에 풀이 죽은 채 보육원으로 들어갔다.

알레시아를 안내하려던 아델이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레이는 괜찮니? 적지 않게 다친 것 같은데."

"당장 할 일이 있어서요. 이따가 오후에 치료받겠습니다."

핏물 아래, 옆으로 길게 찢어진 레이의 얼굴을 바라본 아델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후에는 들리도록 하렴. 더 방치하면 흉이 질 테니."

레이는 감사 인사를 하고 보육원을 나섰다.

곧장 홍등가 안에서 지미가 사용하던 사무실을 방문한 레이는 푸른 깃털을 지닌 새를 찾아냈다.

브릿지라 불리는 푸른 깃털을 지닌 새는 평범한 조류보다 훨씬 똑똑해 영물로 분류됐다.

사람 얼굴과 복장까지 정확히 구분할 줄 알아 이쪽 세상에서 전서구로 활용됐다.

지미에게 브릿지를 선물한 사람이 다름 아닌 필립스 백작임을 감안하면, 지미가 괜히 백작령 암흑가의 거두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백작에게 보낼 편지... 뭐라고 써야... 아으, 눈에 초점이 안 잡히네."

그냥 간단하게 쓰자.

가출한 딸 보호하고 있다는 앞뒤 맥락이야 백작이 어련히 이해할 것이다.

여담이지만 레이는 하루종일 산 속을 수색했고, 마나와 체력을 극한까지 소비해가며 마물을 죽였고, 밤을 새가며 알레시아를 보육원까지 옮겼다.

도저히 제대로 된 문장을 길게 쓸 자신이 없었던 레이는 몽롱한 상태에서 최대한 간결하게 문장을 만들었다.

[집 나간 알레시아는 제가 데리고 있습니다.]

"..."

뉘앙스가 살짝 이상하지 않나 싶었지만 레이는 꿋꿋이 다음 줄을 썼다.

지금도 글씨가 하나로 보였다 두 개로 보였다 하는데 펜을 오래 붙잡고 있을 수가 없었다.

어차피 앞의 사정은 샐롯이 전달해 주었을 터다.

[지미 보육원으로 찾으러 오시면 됩니다. 혹시 직접 방문하시게 되면, 마법사 한 번 대동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기왕 일이 이렇게 된 거, 마법사를 보육원에 초대해서 혹시 마법사 눈에 띄는 애가 없나 간 좀 볼 생각이었다.

가출한 딸내미를 찾아주었으니 무리한 요구는 아니었지만, 백작을 대면한 뒤 부탁해도 될 걸 굳이 편지에 적어넣는 시점에서 레이는 영 제정신이 아니었다.

[지미 드림.]

평소처럼 지미의 이름을 팔아먹은 레이가 브릿지의 다리에 편지를 매달았다.

브릿지를 날려보내는 순간 아르노가 사무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아르노는 지미 곁에 꽤 오래 머물렀던 조직원인 만큼 레이를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오, 레이. 얼굴이 박살이 났구나. 원래부터 더러운 인상이 더 안 좋아졌어."

"별 거... 아니에요. 그보다 입 무거운 패밀리 몇 명... 붙여줄 수 있나요? 회수해야 할 인간... 아니아니, 마물 사체... 있어요."

"그건 힘들 것 같구나."

아르노가 자기 허리춤에 묶어둔 장비들을 툭툭 두들기며 말을 이었다.

"지금 비상사태야."

"비상...?"

"어제 저녁쯤에 온 지미의 연락으로 필수 인력을 제외한 패밀리 전원이 영주성으로 향했어. 병사들도 마찬가지고. 소문을 듣기로는 수색 작업을 해야 한다던데, 일이 잘 안 풀렸는지 마지막 남은 간부인 나까지 부르네."

움직임을 멈춘 레이가 길게 앓는 소리를 냈다.

"수색 작업?"

"그래, 수색 작업. 누구를 찾는지는 모르겠지만 시그니 산맥을 수색한다는 이야기가 있어. 위험한 곳이지."

"안 가보셔도 될 것 같네요."

"뭐라고?"

아르노의 반문에 답하지 않은 레이가 의자에 앉아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브릿지는 이미 하늘을 훨훨 날아 시야를 벗어나 있었다.

"끄응, 그냥 내 이름을 써넣을 걸 그랬나."

지미를 비롯해 패밀리까지 전부 동원될 걸 보니 생각보다 일이 많이 커진 것 같았다.

시그니 산맥을 뒤지다 말고 백작에게 불려가게 생긴 지미를 생각하며, 레이가 고개를 떨구었다.

쿠웅!

"어? 레이? 레이! 정신 차려!"

책상 위에 쓰러진 레이를 향해 아르노가 곧장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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