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강 (2)
6화
"개새끼가!!"
조직원 하나가 명치를 향해 단검을 찔러 온다.
슬쩍 허리를 틀며 조직원의 팔을 어깨 사이에 끼운 레이가 관절의 역방향으로 힘을 실었다.
뿌득!!
"끄아아아악!!"
팔이 완전히 꺾여버린 조직원이 비명을 지르며 자지러졌다.
직후 사방에서 주먹과 흉기가 무질서하게 휘둘러졌다.
레이는 곧장 바닥을 굴렀다. 원을 그리듯 가게 안을 데굴데굴 구르자 조직원들 간의 동선이 꼬여 우왕좌왕했다.
기회를 포착한 레이가 허리를 낮춘 채 몸을 쏘아내 어설프게 주먹을 휘두르던 조직원의 다리를 붙잡고 넘어뜨렸다.
'이렇게 잡고 꺾는 거였나?'
전생에 종합격투기 프로그램에서 보고 기억해둔 관절기 '힐 훅'.
우악스러운 레이의 손길에 여지없이 다리가 돌아간 조직원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토해냈다.
"아악!! 아아악!!"
'검술이 좋긴 하네.'
마나량이 낮은 레이가 정면에서 성인 다수를 상대하긴 힘들었다.
허나 가벼운 몸뚱이의 이점과 검술에 속한 보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자 어렵지 않게 1대1 상황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실수 한 번이 벗어날 수 없는 매타작으로 이어지겠지만, 레이는 침착하고 치밀했다.
"잠깐마으아아아악!!!"
다섯 번째 조직원의 다리가 '앞으로' 접혔다.
이쯤되니 팔다리가 멀쩡한 조직원들도 기세가 꺾여 의견이 나뉘었다.
"뭐, 뭐야?! 저 새끼 완전 괴물이잖아!!"
"도망쳐! 도망치라고!"
"지랄하지 마! 한꺼번에 덮치면 돼!!"
투쟁을 선언한 조직원의 몽둥이가 횡으로 휘둘러진다.
고양이마냥 몽둥이를 타고 넘은 레이가 조직원의 팔에 다리를 감고 매달렸다.
마나에 의해 일시적으로 증폭된 근력에 레이의 몸무게까지 더해지자 팔꿈치가 쉽사리 꺾였다.
비명이 울리고, 입구에서 서성이던 조직원 두 명이 하얗게 질린 안색으로 가게 밖으로 도망쳤다.
"후욱! 후욱!"
숨을 몰아쉰 레이가 다시 한 번 호흡을 골랐다.
최대한 효율적으로 싸운다고 싸웠지만 체력도 마나도 거덜 나기 직전이었다.
그냥 놓아줄까 고민이 들었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뒷처리는 확실하게 해야지."
레이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단검 두 자루를 양손에 움켜쥐었다.
투척술은 만약을 대비해 틈틈이 연습해놓았던 참이었다.
거리를 잰 후 팔을 휘둘렀다.
쐐액- 퍽퍽!!
엉덩이 바로 아래 허벅지에 단검을 맞은 양아치들이 길바닥에 고꾸라졌다.
금세 지면이 붉게 물든다. 해당 부위 근방으로 두꺼운 동맥이 지나간다고 배운 것 같긴 한데, 레이는 과다출혈로 뒤지는 거까지 신경 써줄 생각은 없었다.
"크흡! 후욱! 후우..."
벽에 등을 기댄 채 호흡을 안정시켰다.
너무 무리했다. 원하는 결과를 얻긴 했지만 명백히 위험한 도박이었다.
상대가 조금이라도 합을 맞출 줄 알았다면 싸움이 이렇게 쉽게 풀리진 않았을 것이다.
'깡패랍시고 가오만 잡을 줄 알지 별 볼 일 없는 양아치라는 건 알고 들이댔다만.'
예상보다 체력이 따라주지 않았다.
쥐꼬리만한 마나 아끼겠다고 근육에 마나를 넣었다 뺐다 반복한 게 원인이었다.
급격한 강화와 탈력의 반복이 근육에 엄청난 부하를 가했다.
'주의 좀 해야겠어.'
물을 한 컵 따라 마신 레이가 녹슨 검을 회수했다.
'후환은 제거한다.'
레이가 생각하기에 팔 병신은 다리 병신보다 위협적이었다.
때문에 가게 안을 돌아다니며 팔만 꺾어놓았던 조직원들의 아킬레스건을 하나씩 베어주었다.
초장부터 다리가 돌아갔던 조직원들은 운이 좋았다.
다시 한번 자지러지는 비명이 가게 안을 울린 후.
빈 잔에 물을 채운 레이가 의자를 끌고 와 필립 맞은 편에 앉았다.
"필립."
"..."
"눈 내리깔지 말고 날 쳐다봐."
필립은 제가 칼에 베이기라도 한 듯 끅끅댔다.
사색이 된 필립의 고개를 슬쩍 들어 올린 레이가 입을 열었다.
"보육원은 울타리야. 내가 만든 울타리지. 걸음마 떼고 난 후 개처럼 굴러가며 만든 빌어먹을 울타리라고."
"..."
"자랑은 아니지만 잘 만들어 놓긴 했어. 홍등가 맞은편이라는 끝내주는 생활 여건까지 감안하면 기적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
"..."
"울타리 안에서 생활하고 싶으면 울타리 내부의 문화와 규칙을 존중하고 따라야 해. 그게 좆같아서 울타리를 뛰쳐나가는 것까지는 말릴 생각 없어."
"..."
"하지만, 하지만 말이지."
레이의 안면이 거칠게 일그러졌다.
"울타리를 부수려는 새끼는 지옥 끝까지라도 쫓아가서 사지를 찢어 놓을 거야. 필립, 알아들어?"
"..."
"알아 듣냐고 묻잖아 이 새끼야!!"
필립의 바지 아래로 노란 물이 질질 새었다.
얼어붙은 필립을 앞에 두고 물컵을 비운 레이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할 말은 많았지만 머리가 핑핑 돌아대서 더는 아가리를 놀리기가 힘들었다.
"사춘기인 거 감안해서 딱 한 번 더 기회를 줄게. 보육원이 마음에 안 들면 분위기 씹창내지 말고 이 마을에서 조용히 꺼져. 그게 싫으면 얌전히 살고."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돌리자, 삐걱거리는 가게 문 너머로 황망하게 서 있는 잭의 모습이 보였다.
레이는 잭에게 론의 품에 들었던 돈주머니를 건네주며 당부했다.
"뒷정리 좀 부탁할게요. 보복 걱정은 마시고요. 이게 다 지미가 시켜서 한 겁니다. 테이블 몇 개 박살 낸 건 외상으로 달아둘게요."
"레, 레이..."
"제가 좀 피곤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가게를 나온 레이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평소보다 몇 배는 소란스러웠던 거리의 소음이 뚝 멈추었다.
온전히 레이를 향해 쏠려 있는 거리의 시선에 담겨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 레이는 알 수 없었다.
굳이 신경 쓰지 않았다.
내일이 되면 모두가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 오늘의 작은 소란은 금세 잊을 테니까.
물론 예외는 있었다.
"며칠 귀찮겠군."
한동안 지미에게 시달릴 걸 생각하니 두통이 조금 더 강해졌다.
*
다음날.
날씨가 화창했다.
레이가 쑤시는 근육을 끌고서 홍등가를 찾아갔다. 아르바이트하는 날이었다.
레이는 매춘부들을 좋아했다. 오해를 덜기 위해 설명을 덧붙이자면, 인간적으로 좋아한다는 의미였다.
그녀들은 대개 실없는 소리에도 쉽게 웃어 주고 낙천적이었다.
직업병이라면 직업병이겠다만.
감정 없는 웃음을 내보여야 하는 그녀들은, 만만하고 부담 없는 상대인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을 꽤 좋아했다.
"우리 귀염둥이 왔엉?"
리사가 꺅꺅거리며 레이를 안아주었다.
레이와 리사는 홍등가의 거리를 걸으면서 잡담을 나누었다.
"사고 쳤다며!"
"벌써 소문 퍼졌어요?"
"벌써라니? 이미 어젯밤부터 모르는 사람이 없었는데. 몸은 괜찮아?"
"예, 뭐. 크게 상한 곳은 없어요."
"우와! 우리 레이 무서운 사람이었네?"
"크앙크앙."
"꺄악! 살려주세요, 레이님!"
누가 누굴 놀아주는지 모를 대화가 지나간 후.
며칠 전 보육원에 들렀던 리오에 관해서 이야기하던 레이가 서서히 표정을 구겼다.
매번 아르바이트의 내용물을 받아가던 건물에 도착한 것이다.
종종 걸음으로 건물 안으로 들어섰던 리사는 금세 바구니 두 개를 들고 레이 앞에 나타났다.
"짜잔! 이번에도 잘 부탁해!"
"네, 뭐..."
표정이 썩어가는 레이를 향해 리사가 깔깔거렸다.
"레이가 있어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우리가 일일이 가져가서 세척하기는 귀찮은데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그렇다고 남한테 맡기자니 불안하고!"
"역시 저밖에 없죠?"
"그럼. 아! 그리고 오른쪽 바구니에 들어있는 건 좀 더 신경 써서 세척해줘!"
"어, 왜요?"
대답을 들은 레이는 괜히 물어봤다 싶었다.
"엉덩이에 들어갔던 거거든!"
아니 미친련아 엉덩이 옵션 있다는 이야기는 나한테 안 했잖아.
*
냇가로 가는 길에 맞바람이 불었다.
이게 무슨 의미냐. 바구니에서 올라오던 냄새가 내 콧구멍으로 몰아쳤단 뜻이다.
"아 좆같네 진짜."
뭐? 입이 너무 거칠다고?
그리 점잔 떠는 새끼한테는 똥 묻은 몬스터 창자 조각을 아가리에 쑤셔 넣은 후 똑같은 소리가 나오는지 지켜봐야 한다.
"사는 게 만만치가 않다."
사실 내가 먹고 살기가 어려워 이 짓을 하는 건 아니었다.
이런 극한 알바 안 뛰어도 보육원에서 밥 자체는 꼬박꼬박 나왔다.
보육원이 아니더라도 용주골 에이스인 엄마가 내 의식주는 충분히 해결해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내가 알바를 뛰는 이유는 애들 간식 사기 위해서였다.
한 주에 두 번씩 먹이는 애들 간식. 애들 숫자가 100명 가까이 되니 한 주에 200명분 간식이 필요하다.
그런 보상이라도 있어야 애들이 수업을 잘 따라왔다.
물론 지미를 뒷배로 끼고서 반협박으로 제과점에서 간식을 제공받을 수도 있었다.
허나 그래선 안 됐다.
아이들에겐 내가 모범이 되어야 했으니까. 정직한 대가, 정직한 노동의 가치를 알려줘야 했다.
"근데 이게... 정직한 노동에 부합하는 일감이 맞나?"
일단 21세기 대한민국 기준으로 아동학대다.
"신경 쓰지 말자."
냇가 하류에 도착해 와일드호그의 창자 조각에 물을 채웠다.
여담인데 평범한 가축의 창자로도 피임구는 만들 수 있었다. 다만 쉽게 찢어지는 탓에 두께가 굉장히 두꺼웠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무지하게 질긴 와일드호그의 창자 조각으로 피임구를 만들었는데, 이건 엄청 비쌌다.
상대가 몬스터(마물)이기도 하고, 피임구 생산 과정에서 마법적인 처리도 필요해서 고급 물품으로 취급받았다.
그래서 재활용해서 써먹는다.
허나 밤에 일한 매춘부가 아침에 나와 이걸 닦는 것도 귀찮은 일이고, 남에게 맡겼다가 세척을 대충하면 대형사고가 터지니, 일 처리가 꼼꼼한 레이에게까지 순서가 돌아왔다.
"뭐, 고집부리는 꼬맹이한테 굳이 목돈까지 쥐여주며 일거리 양보해 준 거니 내가 감사해야 할..."
찍!
와일드호그의 창자로 만든 고급 피임구라 해도 안 찢어지는 건 아니었다.
때문에 물을 채워서 찢어진 부분이 있는지 확인 과정을 거쳐야 했는데, 마침 손상된 피임구에서 묽은 액체가 쭉 뿜어져 나왔다.
가끔 있는 일이었다. 피임구에 구멍이 뚫리는 일도, 그 구멍 사이로 뿜어져 나온 액체가 하필 얼굴에 튀는 일도.
"..."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액체의 촉감에 몸이 돌처럼 굳었다.
흘러내린 액체가 입술을 지나쳐 지면에 떨어진 후 슬쩍 한쪽 눈을 떠 방금 피임구를 꺼냈던 바구니의 위치를 확인했다.
오른쪽.
"빌어먹을 엠생."
곧장 냇가에 얼굴을 담갔다.
*
작은 불상사가 있었지만 피임구의 세척을 무사히 끝낸 후 건조대에 늘어놨다.
이제부터는 훈련 시간이다.
검을 한참 휘두르다 검기를 맺었다. 직후 쏘아낸다.
"...이게 왜 안 되지?"
검기가 또 제자리에서 증발했다.
이건 확실히 이상했다.
일단 검기를 검에 두를 수만 있다면 쏘아내는 건 아무나 한다.
대개의 경우 검기를 맺기까지 개고생을 하거나, 혹은 검기를 쏘아낼 때 조준점 잡느라 개고생을 하지, 검에 맺힌 검기를 못 날려서 고생을 하지는 않았다.
근데... 검기를 못 쏘아내?
"내가 재능이 존나 없긴 하구나..."
지미에게 도움을 좀 요청해야겠다.
은퇴 전 지미는 검기를 구사할 수 있는 실력 좋은 용병이었다. 검기를 쏘아내는 노하우 쯤은 충분히 전수해줄 수 있을 거다.
내가 검기를 구사할 수 있다는 것도 지미에게만은 밝힐 생각이었으니 거리낄 것 없었다.
"...응?"
마음을 다잡으며 주변을 돌다가 위화감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평소보다 태양 빛의 눈 부심이 조금 강렬했다.
내리쬐는 무지개 사이로 나뭇잎이 잘려나간 흔적이 눈에 띈다.
"저건 뭐야?"
그제야 자세히 지면을 살피자 무언가에 잘린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져 있었다.
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검으로 잘랐다기엔 말이 안 되고 검기가 지나간 흔적이라기엔 지나치게 거친 감이 있었다.
뭐지? 혹시 마법의 흔적인가?
소름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내가 항상 훈련을 진행하던 주변에서 검기나 마법을 구사할 수 있는 누군가가 머문 흔적이 있다?
"곤란한데."
내가 숨기고 있던 밑천이 얼굴도 모르는 인간에게 털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앓는 소리가 나왔다.
이 근방에서 검기나 마법 사용자가 흔하지는 않을 텐데 대체 누구지?
고민이 깊어지던 와중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검 자루에 손을 올렸다가 이내 긴장을 풀었다.
"오랜만이에요."
"그래. 오랜만이다, 레이."
"저 데리러 온 거죠? 지미가 불렀나요?"
"잘 알고 있구나. 사고를 친 자각은 있는 것 같네."
"미안하게 생각하긴 해요, 매튜."
용병 시절부터 지미와 오랜 시간을 함께한 믿음직한 부하이자 친우, 매튜.
그가 나를 찾아왔다.
"날 따라와라."
"아, 잠시만요. 널어놨던 피임구 좀 회수하고요."
잠시 언짢은 기색으로 나를 바라보던 매튜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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