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홍등가의 소드마스터-1화 (1/446)

프롤로그

판타지 세계에 환생했다.

시간이 흘러 9살이 된 나는 냇가에서 와일드호그의 창자 조각을 열심히 닦고 있었다.

멧돼지를 닮은 몬스터인 와일드호그의 창자는 탄성이 뛰어나 이쪽 세계에선 피임기구로 애용됐다.

창자 조각을 잡아당기니 누릿하고 묽은 액체가 손 위로 주르륵 새어 나왔다.

자연히 입이 걸어졌다.

"하. 돌아버리겠네."

나는 판타지 세계에서.

매춘부 아들로 환생했다.

내가 아니야

1화

가끔씩 구멍 방향을 착각하면 이런 불상사가 생긴다.

손가락을 살며시 비비자 끈적이는 액체가 손아귀에 눌어붙었다.

참으로 좆같은 촉감에 어깨가 치솟으며 안면에 경기가 인다. 당장이라도 때려치고 싶었지만 이를 악물고 세척을 계속했다.

시간이 지나, 냇가 한켠에 마련해둔 간이 건조대에 와일드호그의 창자 조각을 늘어놓고 나서야 부들대는 입꼬리가 멈췄다.

평평한 바위에 걸터앉은 채 줄줄 흘러가는 냇가를 바라본다.

"경치는 좋아."

이 세상의 나뭇잎은 반투명한 경우가 다수다.

낱개로 보면 지구 것과 크게 다를 게 없다만 이리 수목이 우거진 공간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수백 장의 나뭇잎이 하나의 프리즘처럼 작용해 햇살을 쪼갠다.

무지갯빛으로 나누어진 햇살이 이리저리 뒤섞여 지면에 내려앉는 풍경은, 지구에서보다 다채롭고 운치 있었다.

어둑어둑한 내 얼굴과는 정반대로 말이다.

"왜 이렇게 됐더라."

전생. 그러니까 이 몸뚱어리로 환생하기 이전에 말이다.

전생의 나는 눈이 나쁜 탓인지 작은 글자를 읽다 보면 제자리에서도 멀미를 했다.

때문에 남들 다 스마트폰 보고 문화생활 즐길 때 모니터 큰 데스크톱 컴퓨터를 불가피하게 고집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불알 친구놈 하나와 여러 플랫폼의 아이디를 공유하게 됐다.

그 새끼는 스마트폰, 나는 컴퓨터. 대개의 경우 스마트폰과 컴퓨터는 중복 로그인과 동시 사용이 가능했기에 불편함 없이 반값으로 유료 컨탠츠를 즐길 수 있었다.

물론 부적절한 행위이긴 하다.

허나 이 정도 수위의 편법은... 다들 사용하며 살지 않나.

하여튼 그 새끼는 소설 읽는 걸 참 좋아하는 녀석이었고 더해서 힙스터 기질까지 갖춘 오타쿠였다.

'내가 이 소설의 김독자다!!'

시발년이 진짜.

'김독자'는 장르 소설계의 슈퍼 메가 히트작 '전지적 시점'의 주인공 이름이다.

특정 소설이 현실이 되어버린 세계관에서, 유일하게 특정 소설을 결말까지 읽었던 캐릭터다.

이 망할 자식은 본인 또한 김독자가 되고 싶다며 컨샙질을 시작했다.

70화를 넘어섰을 때 독자수가 한 자리로 떨어졌고, 150화부터는 그 새끼가 혼자 결제하며 보던 소설, '제국멸망기'.

이름부터 개쌉노잼처럼 보이는 그 소설을 그 새끼는 1000화가 넘게 따라갔다. 재밌어서 본 것도 아니고 컨샙질을 유지한다고 시간과 돈을 투자한 거다.

소설 회차만 1000화가 넘어가니 김독자 노릇만 3년 가까이 한 꼴이다.

그리 오래도 컨샙질을 했으니 소설 빙의 형벌 정도는 달게 받아야지.

문제는 그 대가를 그 새끼가 아니라 내가 대신 받았다는 거다.

"좆 돼버렸쥬?"

지구에서의 마지막 기억이 굉장히 흐릿한 탓에, 내가 소설 캐릭터에 '빙의'를 한 건지 이쪽 세계관에 '환생'을 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어찌 됐든 나는, 지구에서의 기억을 지닌 채 판타지 세계에서 비교적 유복한 가정집의 갓난아기로 태어났었다.

태어났'었'다고.

"시발."

어쩌지. 입에서 욕설이 떨어지지 않아.

듣는 사람은 천박하다 한 소리 하겠다만 나랑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누구든 비슷한 반응을 보일 터다.

한숨을 푹푹 내쉬며 용돈 모아 시장 바닥에서 산 녹슨 검을 손에 쥐었다.

내 키에 맞지도 않을뿐더러 폼멜이 낡아 덜그럭거리지만 이게 내가 구할 수 있는 최고의 검이었다.

검을 빙글 돌리다 무게 중심이 흐트러져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허리를 굽혔다.

"역시 재능이 없어."

우울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

전생의 이름은 한시현. 현생의 이름은 레이.

레이는 환생 직전 초월적인 존재와의 만남을 떠올렸다.

초월적인 존재는 당시 장르 소설 클리셰마냥 밉살맞게 아가리를 털어대지는 않았다.

단지 레이를 의식했고, 그 찰나의 마주침만으로 본인의 의지를 레이의 대가리에 강제로 쑤셔 넣었다.

문제는 격의 차이 때문에 상호교류가 불가능했다는 점이다.

레이는 속으로 '김독자는 내가 아니라 그 새끼라고 머저리 새끼야!'라고 외쳤지만 초월적인 존재에겐 뜻이 전달되지 않았다.

레이는 뒤늦게 웹소설 플랫폼 회원가입을 본인 명의로 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후회했지만 너무도 뒤늦은 후회였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전생의 기억을 지닌 갓난아기가 되어 있었다.

초월적인 존재가 환생에 개입해 레이의 기억을 보존시킨 이유는 실로 전형적이었다.

세계의 구원.

"응~ 이 세계는 좆됐어, 병신아."

뭐 쥐뿔이라도 아는 게 있어야 움직여보든 말든 하지.

레이는 김독자가 아니었다. 이 세계에 대해서 딱 쥐톨만큼 알았다.

김독자 컨샙의 불알친구가 옆에서 떠들었던 파편적인 지식이 끝이다. 정말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을 정보였다.

멸망한 세계를 구하긴 개뿔, 제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처지였다.

대충 살다 대충 죽자.

레이는 그리 마음먹었으면서도 다 녹슨 검을 쥐고 냇가 가까이에 서 있었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근본이 성실했던 한시현-레이-이었기에, 처음 각오처럼 대충만은 살지 못하고 있었다.

'날 이꼴로 만든 머저리 새끼가 환생 특전이라고 준 것들은...'

상태창 같은 건 없다.

대신 초월적 존재는 레이의 머리에 '기술' 혹은 '권능' 네 가지를 박아넣었다.

이름 모를 검술.

이름 모를 마나 정제법.

'해독'이라는 권능에 가까운 능력.

그리고 자살 방법 하나.

해독의 기초적인 쓰임새 중 하나는 자동 통역이다. 허나 응용 영역이 단순 통역만이 아님을 레이는 인지하고 있었다.

해독 덕분에 레이는 환생하자마자 한국어와 전혀 다른 언어를 이해할 수 있었다.

허나 쓸만한 건 해독 하나뿐, 검술과 마나 정제법은 계륵이었다.

"마나 연공법을 빼먹으면 나더러 어쩌라는 거야?"

마나 연공법으로 마나를 쌓고, 검술에 맞는 마나 정제법으로 마나를 제련하고, 검술로 발현한다.

이중 첫 스탭이 꼬여버렸으니 실력이 발전할 수가 없다.

초월적 존재가 쥐여준 검술 또한 고강한 무술이긴 했다만, 너무 고강해서 문제였다.

이도류를 기반으로 한 이 검술은 동작 대부분이 발재간과 구르기에 치중된, 검술이라기보단 회피술 혹은 도주술에 가까웠다.

그리 도망다니다 허공에 칼질을 촥촥하는 게 동작의 전부.

레이는 이 검술의 의도를 대충은 눈치챘다.

이건 마나를 무식하게 쌓은 숙련된 검사를 위한 검술이었다.

허공에서 행해지는 칼질은 검기를 뿌리라는 뜻일 터다. 적들의 공격을 일방적으로 회피하며 소나기처럼 검기를 뿌려댄다면 그야 무적의 검술이라 할만했다.

전제 조건부터가 말이 안 돼서 문제지.

게다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상호 간의 경지가 비슷하면 필연적으로 접근을 허용하게 될 터다.

그러니 이 검술은 일대일이 아닌 일대 다수를 상정한 양민학살용에 가까웠다.

"끄응... 구원자 흉내라도 내보려면 그 머저리 새끼가 날 이곳에 환생시킨 이유를 파악해야 하는데..."

초월자가 굳이 김독자-라고 착각한 레이-를 이 동네에 환생시킨 이유.

그걸 알아내야 행동 방침을 정할 수 있었다.

"혹시라도 내가 용사일 경우는..."

본인이 인류 무력의 정수인 용사로 환생했다는 가설은-

"말도 안 되지."

곧바로 폐기했다.

용사라기엔 재능이 일천했다.

육체 능력 자체는 '한시현'의 육체보다 '레이'의 육체가 훨씬 뛰어나긴 했지만 범인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 이야기다.

동체시력, 근력, 반사신경, etc.

수재 수준은 되는 것 같았지만 초인을 바라볼 재능은 아니다.

진정 일인군단 역할을 할 용사의 재능을 타고났다면 마나쯤은 연공법 없이도 빨아들여야 했고 초월자가 쥐여준 검술의 묘리쯤은 몇 년 전에 파악이 끝났어야 한다.

"역시 인재 발굴하라고 환생시킨 건가?"

설득력 있는 가설이었다.

이거라면 이리 병신 같은 가정사와 열악한 환경을 지닌 인물의 육체로 환생시킨 이유가 설명된다.

인류를 구원할 주요한 인재가 이 시골 바닥에서 재능을 피우지 못하고 썩고 있다는 걸 환생한 김독자가 알았다면 반드시 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아니면 미래의 악당이라도 죽여버리라고?"

두 번째 가설과 반대되면서도 본질적으로 유사한 역할이다.

이 시골 바닥에서 장차 거악으로 성장할 씨앗이 존재한다면 구원을 부탁받은 입장에서 당연히 제거해야 했다.

미래를 아는 자라면 발굴자 역할과 암살자 역할을 복합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을 터다.

"근데 난 김독자가 아니네?"

효율적인 헤드 헌팅은 불가능했다.

"아이 싯팔 진짜."

불평불만을 하면서도 체력단련이랍시고 검을 계속 휘둘렀다.

녹슨 검병이 삐그덕거리는 소음과 냇물이 줄줄 흘러가는 소리가 불협화음을 만들어 낸다.

횡베기와 종베기를 각각 오백 개씩 채운 레이는 자세를 바꾸었다.

머리에 새겨진 검술에 따라 스탭을 밟으며 몸을 지면 위로 굴린다.

한참을 데굴데굴 구른 후, 품 속에 가두어덨던 검을 예리하게 앞으로 쏘아냈다.

후욱!

작은 바람이 검에서부터 흘러나왔다.

무지갯빛 햇살이 어지럽게 섞여 있는 풍경 속에서, 보일 듯 말 듯 한 흐릿한 빛무리가 녹슨 검신을 따라 맺혀 있었다.

"걸음마 시작하고 근 8년을 투자해서 겨우 검기 한 번 반짝이라."

그동안의 개고생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간다.

생전 처음 맺어보는 검기에 환호성이 터져 나올 만도 했지만 레이는 이마부터 붙잡고 비틀댔다.

마나가 부족한 탓에 머리가 핑 돌았다. 이게 다 마나 연공을 할 줄 몰라서였다.

가까스로 자세를 유지하며 허공에 검을 휘둘렀지만 검기가 쏘아지긴커녕 제자리에서 증발해버렸다.

"역시 검에는 썩 재능이 없어."

그래도 날붙이를 든 건장한 성인 남성의 위협 정도는 대응 가능한 최소한의 무력을 갖추게 됐다.

그동안은 몸을 사렸지만, 이제 슬슬 활동 영역을 넓혀도 될듯싶었다.

"헤드 헌팅이 불가능하니 물량 쓸어모으며 얻어걸리기라도 바라야지."

레이가 환생하고 계속해왔던 일.

"옆 도시엔 비범한 고아 좀 있으려나?"

쓸만해 보이는 고아 수집이었다.

조금이라도 쓸만해 보이면 죄다 데려와서 영웅으로서 자질이 있나 간을 보고 있었다.

물론 레이는 9살이었기에 밥벌이도 못 하는 어린 고아를 품어줄 여력은 없었다.

그렇다고 길에다 다시 유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뒤처리는 항상 다른 사람의 몫이었다.

"지미가 지랄할테지만 어쩔 수 있나."

낄낄 웃으며 몸을 씻은 레이는 와일드호그의 창자 조각을 회수해 냇가를 떠났다.

"오늘도 고아 가챠 돌리러 가 보자!"

남들이 들으면 기겁을 할 인성 터진 발언이었지만 불행히도 레이는 스스로의 비정함을 인지하지 못했다.

환생 9년차. 고달픈 삶이었다.

*

스스스슥!

레이가 사라지고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세된 바람이 숲을 한 차례 휩쓸었다.

단단한 목피(木皮)에 감싸인 나무들은 평소와 같이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그들 사이로 수백 장의 나뭇잎들이 절삭되어 허공에 흩날렸다.

숲 한가운데 난데없이 무지개가 피어났다.

반원을 그리는 무지개는 중간이 뚝 끊겨있었다.

600년 전 완전히 실전되었다고 알려진 제국검술의 정점, 하르시아 류 공간검.

검기 조각이 터져나왔던 공간의 균열이 이내 맞붙어 아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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