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가 집착하는 악당이 되었다-321화 (321/328)

   

   셀레스트는 조용히 생각하며, 원탁을 빠져나갔다.

   

   

   오늘은 풀어주었다. 그가 무엇을 할지 모르니, 그가 그 당당한 태도 뒤에 어떤 수를 숨기고 있을지 모르니. ...그리고, 자신이 무언가를 보여준 뒤. 그 뒤에 죽이라는 그의 말에.

   

   그러나.

   이제는, 슬슬 그를 본격적으로 마주할 준비를 해야겠다고... 그녀는 조용히 생각했다.

   벌레만도 못한 자들을 즈려밟는건, 그녀에게 익숙한 일이였으니까.

   그렇게 셀레스트와 담판을 짓고 나온 후.

   

   "에고스틱! 괜찮아요?"

   

   "네, 네.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회의 이후 따로 만나기로 한 우리 동아시아 빌런연맹 동료들, 카타나와 리 샤오펑과 뒤늦게 합류했다.

   

   아까있던 원탁보다는 작지만, 그래도 꽤 아늑한 이곳 회의장.

   ...정확히는, 이곳은 일본 정부의 비상시 대응을 위한 벙커이다. 어째서인지 지금은 빌런들이 점거하고 있는 모양세인데... 뭐. 그럴수도 있지, 아마.

   

   "일단 차 한잔 드세요."

   

   그렇게 내게 차를 건내는, 일본 정부를 조종하는 흑막이자 S급 빌런(진)인 그녀. 카타나.

   검은 머리를 뒤로 묶고, 하얀 도복을 입은채 내게 소탈하게 차를 건내는 단아한 그녀의 모습은 도무지 이 일본 열도의 실질적 지배자로 보이지 않는 모습이였다.

   

   ...뭐, 물론 겉모습과는 다르게 썩어빠진 일본 정부를 무력으로 박살내고 왕좌에 앉은 그녀긴 하지만. 원래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 하지 않는가. 애초에 그녀의 빌런집단 삼협회가 빌런임에도 마치 나처럼 국민들의 지지가 높았고, (겉보기에는)자신들은 뒤로 물러나고 허수아비...가 아니라 정치인들을 세워 놨기에 국제사회와 협회가 결국 눈감게 만드는데 성공한 이들이였다. 사실 말이 빌런이지 능력쓰는 반란군들과 다를게 없었으니까. 

   

   물론 그 과정에서 배신자 및 주요 정보를 내가 제공해줬기에, 원작과는 다르게 이리 될 수 있던거기는 했다. 실제로 원작에선 지금쯤 일본이 월광교 게이트 사태때 박살나고, 열도가 몬스터랜드가 돼서 우리나라에서 저쪽 괴수들이 물을 넘어올까 늘 걱정하는 처지였는데... 지금은 멀쩡한 나라가 돼서 다행. 물론 카타나도 그걸 알았기에 나에게 늘 호의적인 편이었다.

   

   물론 빌런 집단이 나라를 차지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컨트롤해야할지 몰라 우왕좌왕할때, 이 흑막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이설아를 내가 소개해줘서 더 도움을 준 것도 있다. 그덕에 이설아와 카타나도 친해졌고, 양국간의 관계도 서로 친해진 상황. 애초에 윗대가리들끼리 친해졌으니...

   

   "아이고, 네. 감사합니다."

   

   하여튼 그렇게 나는 그런 카타나로부터 차를 한잔 대접받아, 꿀꺽 마셨다. 안그래도 목이 탔었거든. ...좀 뜨거웠다는 문제가 있지만, 괜찮았다.

   

   그리고 그런 내 맞은편에는.

   

   "하하하! 에고스틱 동무, 이제는 셀레스트와도 담판을 짓다니. 정말 보통내기가 아니시군요."

   

   껄껄 웃으며 그렇게 말하는 리 샤오펑이 있었다.

   머리를 뒤로 꽇은 채, 넉살좋게 웃으며 말하는 리 샤오펑의 모습.

   ...최근에 중국 대륙을 통일하고서 완전히 기분이 째진듯한 모습이었다. 하긴, 평생의 숙원이니 그럴만도 하지.

   

   그의 빌런집단인 화룡이 마침내 중국을 집어삼키긴 했지만, 카타나와는 다르게 아직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지는 못했다. 다만 어차피 결국은 인정할 수밖에 없을거라 그또한 크게 신경쓰지 않는 모습.

   

   특히 그의 중국 정복에, 내가 중국 정부의 정보를 싸그리 준 탓에 그또한 내 덕이라며 나한테 꽤 고마워하고는 했다. ...사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원작에서는 월광교 게이트 사태때 중국이 풍비박산난 틈을 타 아주 쉽게 중국을 먹었었는데... 이 세계에서는 내가 게이트를 일찍 닫은바람에 나라가 비교적 멀쩡해서 그의 정복계획이 더 늦어졌다. 다만 이건 리 샤오펑이 영원히 모를 평행세계의 이야기니 다행이랄까...

   

   

   하여튼 그렇게 우리 셋이 모였다.

   일본의 카타나, 중국의 리 샤오펑, 그리고 한국의 나까지.

   이름하여 동아시아 빌런 연맹을 맺은 우리들.

   오늘은 카테달 오는 김에 겸사겸사 다같이 만나 회의를 하기로 한 날이기에 이렇게 만났다.

   

   "하하, 과찬이시네요. 하여튼 다들 이렇게 오랜만에 만나뵙게 돼서 참 반갑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리 샤오펑도 중국의 수장이 되셨으니... 사실상 저빼고 두 나라의 수장이 모여계시네요. 크흠, 저 혼자 일개 빌런이니 굉장히 민망하군요."

   

   "무슨 소리세요 에고스틱."

   

   그런 내 말에, 피식 웃으며 손사래치는 카타나.

   그런 그녀처럼 리 샤오펑또한 어이없다는듯 웃더니 말했다.

   

   "...하하, 에고스틱. 참 재밌는 농담도. 저희를 여기까지 올라오는데 제일 큰 도움을 준것도, 그리고 애초에 당신은 대한민국의 실세인 이설아와 거의 영혼의 파트너 아닙니까? 애초에 전 당신이 어디까지 내려다보고 있는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그의 말에 나또한 농담말라는 듯 웃을 뿐이었다. 저번에 월광교 사태가 일어날 것임을 이 둘에게만 알려주었기 때문에, 미리 대비하여 둘다 위기를 무사히 넘기고 이득까지 보아서인지 나에대한 신뢰가 더욱 돈독해진듯한 느낌.

   

   하여튼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회담은 진행되었다.

   동아시아 빌런 연맹이라는 이름과 다르게...

   

   "그럼 그쪽은 저희가 지원을 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어차피 금리를 생각하면... 그럼 그건 저희가 처리할테니. 아, 수교를..."

   

   사실상 동아시아 삼국 정상들의 회담과 비슷한 느낌이였다. 이들은 빌런인 동시에, 한 나라를 차지한 수장. 그런만큼 온갖 물밑 계약이 이 자리에서 진행되는 상황.

   ...나또한 이설아한테 몇개의 서류를 받아 이를 대신 하고있는 판국이었다. 

   

   하여튼 그렇거 중요한 얘기는 끝나고.

   이제는 좀 더 가벼운 이야기를 할 차례.

   

   뭐, 간단한 신변잡기였다. 요즘 뭐 먹는지, 능력자들중에 주목한 이들이 없는지. 유럽 상황이 우리 동아시아에 미칠 영향이 있을지.친구들끼리 카페에서 할만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들.

   

   물론, 나와 셀레스트가 대체 무슨 관계인지를 묻기도 했다. 그래서 대충 친해지고 있는 단계라고 두리뭉술하게 답했고. 그러자 다들 납득하는 분위기. ...말한 나도 왜 납득하는지 모르겠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계속 떠들었고.

   그리고 이 둘은, 지금 이런 시간이 굉장히 소중한 듯 했다.

   

   "...그냥. 에고스틱과, 리 샤오펑씨와 이렇게 떠들기만 해도 시간이 금방 가네요. 하아, 자리가 자리인지라 눈치볼 일이 많으니."

   

   차를 한모금 더 마시며, 미소를 띄운 채 그렇게 말하는 카타나.

   하긴. 저 둘은 모두 한 나라의 최종결정권자다. 그런만큼, 지위가 같은, 이렇게 편하게 떠들만한 사람이 별로 없다는 소리. 서로 허물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적다는 소리다. 사실상 전부 다 자기보다 아랫사람이니까. 그래서 이설아가 나를 좋아하기도 하는거고...

   

   어쨌든 그렇게 편안하게 풀린 분위기 속에서.

   때마침 생각이 나는.

   

   "아, 참고로 저는 빌런 활동을 이제 그만둘 생각입니다. 이제 은퇴하고, 딴 일 하려고요"

   

   아무 생각없이, 그렇게 말을 던졌고.

   그 말을 들은 둘은.

   

   

   "...네?"

   

   "뭐라고했습니까?!'

   

   

   갑자기 난리가 났다.

   ...생각해보니까 명목상 빌런 회의에서 할말은 아니긴했나보다.

   

   

   

   ***

   

   

   

   그렇게 카테달에 이어 열린 동아시아 빌런 연맹 회의도 끝난 이후.

   

   "아이고, 힘들다..."

   

   나는 집에 돌아와 소파에 드러누워 쉬고있었다.

   ...둘이 내가 은퇴한다니까 놀라가지고, 막 계속 묻는거 대답해주는게 쉽지 않았다. 테러를 중지할 뿐 물밑으로는 계속 일한다고 하니까 그제서야 안심했을뿐.

   

   

   그래도, 일단 테러를 안하는 것만해도 큰 변화였다. 당장 내 정체성중 하나를 버리는거니까.

   물론 에고스트림도 살아있고, 나는 상왕처럼 나서지만 않지 뒤에서 계속 무언갈 하겠지만... 그래도 결국 관심에서는 멀어질거다. 아마 시간이 좀 지나면 에고스틱이라는 이름도 잊혀지지 않을까?

   

   

   제일 아쉬운건 역시, 더이상 스타더스를 만날 일이 없다는거.

   

   

   "...."

   

   

   오랜 시간 그녀의 아치에너미를 자청해가며, 꽤 긴 시간을 함께했기에 섭섭한 점이 분명 있었다.

   하지만, 이제든 멀어져야 할 때. 뒤에서 숨어 그녀를 조용히 도와주는게, 팬으로써의 진정한 역할 아닐까.

   

   

   생각해보면, 꽤 긴 시간이였다.

   빌런으로 활동한지 벌써 5년이 다되가니까. 그 시간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지. 

   ...그래도 이제는 떠날 때였다. 제일 중요한 월광교도 막았고, 남은건 스타더스에게 달려있으니까.

   

   나는 그 시간동안 카테달이나 계속 출석하며 마지막을 준비해야지. 

   그리고 좀 쉬고, 그리고...

   

   "....."

   

   어쩌면.

   엔딩 이후의 삶도, 슬슬 생각해 봐야할 때일수도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이 세계의 엔딩을 보는것에만 온 힘을 쓰고, 그러면서도 내가 여기까지 살아 올 거라곤 확신하지 못해 생각한 적이 없는데... 이제는 슬슬 고민해야될지도 모른다 느꼈다. 최종결전을 살아남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된다면 작은 카페라도 차리는게 어떨까.

   

   에고스트림 멤버들은... 글쌔. 좋은 친구로 남고 각자 갈 길을 가는게 맞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순간 들었으나, 어쩐지 이 말을 들은 우리 에고스트림 멤버들의 반응이 예상이 돼서 잠시 멈추기로 했다. 씁.

   

   몰라. 일단 은퇴하고 나면 멤버들이랑 다같이 여행이라도 갈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눈을 감았다.

   일단은, 셀레스트와의 내기를 신경써야지.

   

   아마 내가 은퇴 전에 마지막으로 펼칠, 테러가 아닌 거대한 쇼가 될.

   

   

   "천사라..."

   

   

   3페이즈의 쿠기영상같은 개념이자, 4페이즈의 예고편인.

   '천사 강림' 이벤트가 펼쳐지려하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카테달에서 셀레스트와의 담판이 끝난 이후.

   

   나는 한동안 마음을 좀 놓고 쉬고있었다.

   정확히는, 소파에 누워 팝콘을 와그작 먹으며.

   

   "으으음..."

   

   역시 쉬는게 최고다. 이게 인생이지. 지금까지 너무 바쁘게 달려온게 아닐까?

   이제 3페이즈 보스인 소원을 이루는 자까지 너무 빠르게 죽여버린 바람에, 아직 4페이즈 시작 전까지는 좀 시간이 많이 남은 상황.

   

   ...물론, 그래도 해야할게 여전히 많기는 했지만. 그래도 전보다 훨씬 여유로운건 사실이었다. 

   

   "이 팝콘 맛있네요."

   

   "그치?"

   

   이렇게 서은이와 함께 여유롭게 누워 티비를 보고 있어도 될 정도로. 

   

   "...나도 줘."

   

   "자."

   

   소파 아래에서 보라색 단발머리를 늘어트린 채 대자로 누워 그렇게 말하는 서자영. 무슨 아기새처럼 입을 아벌린 그녀에게 팝콘을 한움큼 넣어준 나는 다시 티비로 눈길을 돌렸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말이 튀어나왔거든.

   

   [최근 조사에 따르면, 해외 부호들이 이민가고 싶어하는 나라 1위에 우리 대한민국이 뽑혔다고 하는데요.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유승엽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쓰읍. 국뽕티비가 드디어 지상파까지 집어삼킨건가? 

   또 무슨 설문조사(표본 3명) 이런거겠지 뭐. 뻔하다 뻔해.

   

   

   그렇게 큰 기대를 안하고 티비를 보던 나는, 거기서 의외로 진지하게 말을 하길래 좀 놀랐다.

   

   

   [대한민국의 테러율은 현재 협회 소속 국가중 하위권에 속하며, 그 중에서도 상위 10개국 중에서는 테러율이 제일 낮습니다. 특히 치안의 안전성은 전체 나라들 중에서도 최상위권인데요. 연간 테러로 인한 사망률이 압도적으로 낮습니다. 요즘 해외에서는 대한민국이 GDP가 높은 나라중 제일 안전한 나라로 불리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가 그렇게 살기 좋았나? 저번에 월광교때 그 난리가 났는데."

   

   

   "그러게요."

   

   

   우리가 의아하게 생각하거나 말거나, 앵커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특히 해외 이민자는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로... 전문가들은 이를 한국을 밤에 안전한 나라로 만드는 히어로 섀도우 워커와, 테러 진압 성공률이 한 빌런을 제외하면 100프로에 달하는 S급 히어로 스타더스의 활약, 그리고 특히 대규모 테러를 거의 다 저지하고 존재만으로 다른 빌런들의 테러를 막고 빌런 에고스틱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기자의 말은 다음과 같았다.

   그러니까, 요즘 해외에서 대한민국의 인식이 어느정도 잘사는 나라들 중에서 제일 안전하다고 꼽힌다고 한다. 실제로 테러율과 사망률이 굉장히 낮다는 점이 포인트.

   

   실제로 뉴스에 나오는 자료를 보니, 확실히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봤을 때 치안이 좋기는 했다. 하긴, 내가 지금까지 대규모 살상을 일으키는 빌런들을 쥐잡듯 잡기는 했지. 사실 원작을 생각하면 대한민국은 지금쯤 개판이었어야 됐다. 웨폰 마스터는 기계 군단으로 학살하고, 스크림 메이커는 독가스 뿌려서 몇천명 동시에 다 죽이고...

   

   물론 그런것들을 내가 다 미리 처치해 막았고, 스타더스또한 원작과 비교해 말도 안되게 강해졌기에 가능했던 것.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스마트폰을 꺼내 이에 대해 조금 더 찾아봤고.

   

   "...진짜네?"

   

   해외 커뮤니티를 좀 둘러본 결과, 한국에 대한 인식이 굉장히 우호적인걸 찾아볼 수 있었다. 

   하긴, 이제 3페이즈 쯤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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