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무나도 노골적인 모습에, 다른 빌런들도 괜사리 눈치를 보고있는 상황.
"...에고스틱, 이거 괜찮은거에요..?"
어찌나 그 시선이 느껴졌는지, 내 옆에 앉은 카타나가 내 옷을 살풋이 잡아당기며 식은땀을 흘린채 그렇게 속삭일 정도였다.
그리고 난 그런 그녀를 향해.
"...걱정하지 마세요. 별거 아닙니다."
안심시켜주듯, 평온한 미소를 지어줄 뿐이었다.
...사실 나도 쫄렸지만, 그걸 대놓고 티내면 하수인법. 어디까지나 평온하게, 익숙하다는 듯. 그렇게 날 빤히 바라보는 셀레스트와 눈이 마주칠때면 빵긋 미소지는 것도 잊지않았다. 물론 별 반응은 없었지만.
하여튼, 그렇게 불안한 느낌 속에서 회의도 끝났고.
"...그리고, 에고스틱. 당신은 잠깐 남아서 저랑 대화 좀 할까요?"
마침내. 자리에 선 셀레스트에게서 그 말이 나오고야 말았다.
셀레스트가 그런 말을 하자, 역시나 그런건가하고 나와 그녀를 힐끔대는 다른 빌런들. 다들 그녀가 오늘 왜 이러는건지 모르기에 궁금증이 있어보이는 얼굴이었다. 내 동료들만이 걱정된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기는 했지만.
"걱정하지 마시고, 먼저 가있으세요."
그렇게 등떠미는 내 말에, 다들 불안해하면서도 돌아갔다. ...저 둘이 있어봤자, 어차피 셀레스트가 마음먹으면 절대 못막는다.
하여튼 그렇게 모든 빌런들이 자취를 감추고.
드디어 둘만 남은 그곳, 카테달 대성당.
회색빛이 도는, 하얀 성당의 안.
색색깔의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해 비춰오는, 그 원탁이 놓인 방 앞쪽에서.
옆에 의자에 살짝 기댄채 미소를 짓고는 서서 기다리고있던 나를 보며.
그녀는.
차갑게, 입을 열었다.
"...에고스틱. 당신, 대체 원하는게 뭔가요."
아주 그냥 한기가 풀풀 풍기며, 나를 향해 지금껏 보여준적 없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그렇게 묻는 그녀.
나는 그런 그녀를 향해, 무엇이 문제냐는듯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건지 모르겠네요."
"모르다니요."
기가 차다는 듯, 대답하는 그녀.
그러더니 셀레스트는, 나를 향해 차갑게 내뱉었다.
"당신이, 왜 인플레스를 해쳤는지 묻는겁니다. 모르는 척 할생각 아니겠지요. 일부러 그럴려고 거기까지 가놓고는."
아주 대놓고 나오는 그녀.
그래. 그녀가 나를 부를 이유는 바로 그것. 내가 어째서 소원을 이루는 자, 태양신의 피조물인 놈을 해쳤냐는 것. 태양신의 헌신인 그녀로써는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겠지. ...그보다, 역시나 태양신 관련은 늘 신경쓰고 있었구나.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있을 때, 셀레스트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자신이 앉아있던 고풍스러운 의자의 등받이 윗부분을 살살 만지며 입을 열었다.
"인플레스. 그는 우리 신의 충성스러운 사자로써, 이스트 카르케아스에서 안전하게 힘을 보존중이었습니다. 애초에 그곳이, 그를 위한 요새였으니."
"그런데 에고스틱 당신은 그를 기어코 쳐들어가서 끔찍한 방법으로 살해하셨죠. 마치 원한이 있다는 건마냥."
"그러니, 에고스틱. 이 자리에서 묻겠습니다."
"당신은, 저의 적입니까?"
그리고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처음으로, 그녀의 눈이 띄였고.
그렇게.
"....."
아마 이 세계에서 본 사람이 몇 안될, 그녀의 타오르는 금빛의 눈을 나는 마주치고 말았다.
그럼과 동시에, 순식간에 느껴지는 강한 살기와 죽음의 공포. 얼어붙는 회의장.
...이렇게 공포 분위기가 조성되는 건 저번과 똑같았지만, 전보다 훨씬 압박이 빡쎄졌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그야말로, 잘못 대답했다가는 죽을 분위기. 애초에 셀레스트 그녀와 나의 힘차이를 생각하면, 그녀의 손가락 하나에도 난 죽을 수 있었다.
그렇게 범인이라면 울면서 도망가고, 어지간한 담력있는 자라도 달달달 떨면서 입을 열만한 자리에서.
나는, 마치 그런 압박이 전혀 느껴지지 않다는 듯.
자연스럽게 몸을 움직이며, 어깨를 끄덕이고는 피식 웃으며 답했다.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말하고는 나는 여전히 씨익 웃은채 그녀에게 다가갔다. 어디까지나 여유롭다는 듯, 나는 전혀 긴장 안했다는 듯 휘적휘적 웃으며.
"오히려, 저번에 말씀드렸듯이 제가 당신의 동료였으면 동료였죠."
"으음. 그렇군요. 제 동료여서, 태양 신님의 사자를 죽이셨다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개소리하지 말라는듯, 금빛으로 타오르고있는 눈으로 나를 똑바로 응시하며 그렇게 말하는 그녀.
나는 그런 신비로운 그녀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치며.
담담하게, 다시 입을 열었다.
"...그것또한, 신의 뜻이였습니다."
"지금. 당신이, 저보다 신의 생각을 더 잘아신다는 말씀인가?"
...이제는 슬슬 인내심이 바닥났는지, 더욱 차갑게 말하는 그녀.
아니, 말그대로 다시보니 원탁이 얼어붙는 중이었다. 진짜 차가워지고 있다는 소리. 일부러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거던가... 아니면 진짜 빡쳐서 힘의 컨트롤이 안되던가 둘 중 하나로 보였다. 문제는 후자일 가능성이 더 컸다는거지...
그렇게 내 목숨이 끝나게 생긴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짝.
나는 가볍게 박수를 치며, 분위기를 환기하고는 입을 열었다.
"셀레스트씨. 그러면 이렇게 하죠."
"뭘요?"
"누가 더 신앙심이 높은지 내기하자는 겁니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냐는 듯 눈을 찌푸리는 그녀에게, 나는 씨익 미소지으며 입을 열었다.
"다음 카테달이 열리기 전까지. 제가 당신보다 신과 더 가깝다는걸 증명해 내겠습니다. 못하면 뭐, 저를 죽이던지 고문하시던지 마음대로 하세요. 저는 자신 있습니다. 자신 없으시면, 뭐. 이 자리에서 죽이시던가요."
팔을 활짝 벌리며 그렇게 말하는 나.
그런 날, 셀레스트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는 아름다운 황금색 눈동자로 빤히 바라보았다.
시발. 죽여봐. 죽이고 싶으면 죽여보라고.
...사실 진짜 그럴려하면 바로 튈 비상 플랜이 있기는 했다. 뭐든지 돌발상황을 대비해야하는 법.
하지만.
그녀의 성격을 아는 나는 자신 있었다.
그녀가, 지금 나한테 그럴리 없다는걸.
그렇게.
잠시 침묵하던 그녀는.
이내 조용히,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요.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단, 제가 납득하지 못한 경우. 당신이 알고있는걸 모두 토해내는 조건으로."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이어지는 말에, 나는 냉큼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답했다.
랭킹 1위의 빌런이 나를 찢으려는 상황에서도, 씨익 웃으며 전혀 쫄지않는 이 담대함. 이런 것들이 나를 더욱 무언가 있어보이게, 비밀이 있는것처럼 보이게 하는 법이다. 제 아무리 누구보다 강한 셀레스트일지라도, 마음을 읽을 수는 없으니까.
"그럼 전 바빠서,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그녀의 생각이 바뀌기 전에, 홀라당 줄행량을 치기로 결정했다. 바쁘다, 바빠.
그렇게.
"...."
유유히 떠나는 내 뒷모습을, 셀레스트는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좋았어. 어머니, 오늘도 살아남았습니다.
야호.
***
그렇게 에고스틱이 떠난 이후.
텅 비어있는 카테달 원탁의 회의장.
그곳에 잠시 가만히 서있던 셀레스트는, 이내 에고스틱이 간 통로쪽에 눈을 때지 않은 채 입을 열고는 조용히 말했다.
"아서. 거기 있나요."
"네. 셀레스트님."
그녀의 말이 끝나자, 조용히 암막 뒤에서 나오는 갑옷을 입은 한 기사복의 남자.
그런 그의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그녀는 담담히 물었다.
"...그래서. 오늘보니 어땠나요. 에고스틱. 그는 여전히 위험해 보였나요?"
그런 그녀의 질문에.
잠시 침묵하던 아서는, 다시 입을 열었다.
"...네. 셀레스트님. 그는, 여전히 제가 이제까지 본 그 어떤 인물보다도 더욱 위험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아... 알았어요, 이만 가봐요."
그렇게 셀레스트가 말하자, 다시 그림자처럼 장막 뒤로 사라진 그.
다시 텅 빈 원탁에 홀로 남은 그녀는, 스테인드 글라스에 비치는 자신의 은발 머리카락을 조용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역시, 좀 더 알아볼 필요가 있겠네."
에고스틱.
미래를 아는 것처럼 행동하고, 달의 신을 추종하는 이들의 계획을 막았으며, 한 히어로에게 비정상적으로 집착하는 인물.
그러면서도 그녀 다음으로 강한 아틀라스와 친하며, 신의 피조물을 직접적으로 제거한 인물.
즉.
자신만큼이나, 신들에 대해 자세히 알고있는 이상한 인물.
'...아무래도, 그녀를 찾아가야 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