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아..."
내 방, 그 의자 위.
그곳에 등을 기대 천장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쉰 채, 나는 팔걸이를 톡톡 두들겼다.
테러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끝났지만...
지금 내가 신경쓰고 있는건 다른 것.
'...그때, 스타더스를 보고.'
내가 왜 그렇게 반응했을까?
늘 말하지만, 나는 굉장히 공과 사가 철저한 사람이다.
즉, 일을 하는데에 있어서는 결코 감정을 섞지 않는다는 소리. 특히 스타더스와의 관계가 그랬다. 나는 어디까지나 팬으로써 그녀를 위해 살아갈뿐, 그 이상은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 한번도.
하지만 어제, 스타더스를 봤을때 내가 느낀 감정은...
'...이상했지.'
무슨 첫사랑을 깨달은 중학생마냥 미친듯이 뛰는 가슴.
그녀의 눈에서 눈을 땔 수가 없고, 조금이라도 곁에 더 있고싶은 느낌.
나는 그렇게 기억을 잃기전에는 결코 느끼지 않았던... 정확히는 느꼈더라도 꾹꾹 가슴속에 묻어놓았던 그 감정이 수면위로 통제되지 못한 채 올라오는걸 보고 화들짝 놀랐다.
이건 아무리봐도.
'...기억을 잃었을때, 무슨 일이 있었다는 소리겠지.'
나는 냉정하게 얼굴을 굳힌 채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남긴 '스타더스가 나를 좋아하는 것같다'라는 메세지도 그렇고, 모든게 다 이어진느낌.
애초에 나름 상황판단은 빠르다고 자부하는 나인만큼, 거기까지 생각을 하고 결론을 내렸다.
'...기억을 잃은 내가, 스타더스한테 반한건가.'
그리고 내가 내린 결론은 그것이었다.
일단 감옥에 갇혀있던 일주일간, 스타더스가 어떤 방법으로도 엮였을 것 같다고는 그동안 생각했다. 내가 일주일동안 감옥에 있었는데, 스타더스도 일주일동안 두문불출했다는 얘기가 있는걸보면 아마 그녀가 내 면회라도 계속 온거 아닐까.
거기까지는 감옥에 갇히기도 전에 다 대비해 둔 바이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었을거다. 자세한건 요즘 3시간만 자며 일하고있다는 이설아가 한가해지면 뭐 알고있냐고 물으면 되고.
그러니 자연스럽게 나온 결론은, 기억을 잃은 내가 그녀에게 반했고... 그 감정은 사라지지 않아 아직도 남아있다는 가설.
사실 이게 제일 굉장히 그럴듯한 소리였다.
일단, 기억을 잃은 나와 스타더스가 무언가의 교류가 있었다는건 틀림없는 사실. 내가 기억을 잃은 날 위해 남긴 녹음기에 뭔 일 생기면 스타더스에게 부탁하라고 말해놓기도 했고... 애초에 어제 그녀가 날 만나자마자 한 말이 '기억은 되찾았어?' 였으니까.
그리고 이 추측은.
[스타더스가 나를 좋아하는 것 같다.]
기억을 잃은 내가 남긴 메세지로, 확증으로 변했다.
'이 새끼... 니가 스타더스를 좋아하니까 그렇게 믿고 싶겠지.'
뭐, 기억을 잃은 나를 욕할건 아니다. 애초에 내 최애캐가 스타더스였던만큼, 그녀를 실물로 만나게 되면 살짝 이성적 판단이 안될수도 있긴 하지. ...다만 히어로 만화에 빙의한 자신을 보고 놀라느라 그럴줄 몰랐는데, 음. 요즘 스타더스가 나를 낚겠다고 나한테 미인계를 쓰고있는걸 보면... 뭐 기억을 잃은 나한테도 스타더스가 그랬다면 그럴만 했다.
'...솔직히.'
지금의 나도.
만약 스타더스랑 계속 붙어있고, 그녀가 계속 예전 미궁에서 그랬던 것처럼 들이댄다면.
그게 미인계라는걸 비록 알지라도.
...달콤한 환상에 취해, 넘어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니까.
뭐 아직까지는 그런일이 없어서 다행이긴 하다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니.
그렇게 나는 기억을 잃은 내가 남긴 멘트를 생각해보고는, 피식 웃었다.
"...스타더스가, 나를 좋아한다라."
하긴.
기억을 잃은 나는 그 사건을 겪은적이 없으니, 그렇게 생각할만도 하다. 스타더스를 만화로만 접했을뿐, 그녀에 대해서는 제대로 모르니까.
하지만 나는 다르다. 나는 안다. 그녀가 나를 좋아할리는 없다는 것을. 나만은, 스타더스 전문가인 나만은 알고있었다.
그녀에게 빌런과 히어로는 그만큼의 간극이 있으니까.
'...근데 지금 스타더스가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문제가 아니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사실 그런게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내가 지금 그녀를 좋아하게 생겼다는거지.
지금이야 도망치듯 빠르게 끝냈지만, 나중에는? 내 마음을 억제하지 못할수도 있다.
그러니까 사고치게 생겼다는 소리지. 물론 내가 뭘해봐야 스타더스가 손가락 튕기면 끝이지만... 문제는 우리 에고스트림이었다. 지금도, 음, 저런데. 내가 스타더스를 이성적으로 좋아하는걸 들킨다?
'.....'
...그런 끔찍한 생각을 하던 나는 이내 빠르게 결론을 내렸다.
그래. 더 늦기 전에 이제는 진짜 하는게 맞는거같다.
나의 은퇴를.
"...슬슬, 더이상 테러를 할 이유는 없기는 하니까."
나는 노트북을 키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제는 총 4페이즈로 이루어진 원작중 3페이즈의 최종보스도 일찍 손쉽게 잡았으니, 슬슬 엔딩이 보이는 상황.
특히 스타더스도 이미 충분히 강해진 상황에서, 더이상 내가 테러를 계속하는게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계속 해오고 있었다. 특히 이제 온갖 능력을지닌 빌런들이 슬슬 쏟아져나올테니. 거기에 에고스트림 멤버들을 돌리면, 능력 성장은 문제없겠지. 에고스틱없는 에고스쿼드의 완성인 것이다.
원래라면 조금 더 늦출수도 있겠지만, 슬슬 원작도 끝나가는 상황에서 스타더스에게 지금처럼 흔들린다면... 굳이 그녀와 더 엮이는게 좋을게 있을까라는 생각.
사실 이미 원작 전개를 다 파괴한 내가 하기엔 좀 뭣하지만, 이미 중요한 것들은 다 끝난 마당에 내가 더 전면에 나설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있었다. 박수칠때 떠나라고, 이제는 테러 일선에서 물러날때가 맞다는 생각. 내가 스타더스랑 엮이면 좋은게 있는게 아니니까.
"그래, 슬슬 그녀를 위해서라도 빠져주는게 맞겠지."
나는 책상 위에 있는 내 가면을 만지작거리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사실 생각해보면, 나는 그녀에게 너무 큰 의미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아치에너미를 자처하며 계속 신경쓰이게 했으니. 결국 그녀가 미인계(...)라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게했고. 원작에선 한번도 그런적 없는데.
앞으로 이제 4페이즈. 즉, 최종장에 펼쳐질 많은 이야기를 생각하면 내가 계속 그녀를 신경쓰게 하는건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는 더이상 나서지 않는게 맞겠지. ...물론, 테러만 안할뿐 계속 외부활동은 해야겠지만. 스타더스랑 엮일일은 확 줄어들거다. ...라고, 나는 예측했다.
어쨌든 그리고 나는 그 시간동안 4페이즈를 계속 준비할거다. 아마 외부활동도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겠지. 그런만큼 이제 테러할 시간도 없으니, 어차피 안할거 그녀에게 선포하는게 맞을거다.
...제일 큰 이유는, 역시 좀 쉬고싶은 마음도 있고. 솔직히 3페이즈 막았으면 할일은 다했잖아.
"은퇴하자, 은퇴~"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노트북을 두들겼다.
한은그룹, 월광교, 대탈옥까지 굵직한건 다 끝냈다. 이제는 가야지. 내 나이에 무슨 테러냐.
...물론, 떠나기 직전 테러는 몇번 더 하고 갈 생각이었다. 아쉬우니까.
그리고 아직, 그 이벤트들이 남기도 했고. 그거까지 처리하고 은퇴하면 딱 맞겠네.
마지막 테러는 어떻게 할까.
역시 지금까지중 제일 큰 규모에, 성대하게 하고... 마지막에는 전국민과 스타더스한테 딱 이제 은퇴한다고 밝히고 끝내면 되겠지. 좋아. 완벽하다.
나는 그렇게, 슬슬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내 은퇴 계획을, 이제야말로 본격적으로.
...슬슬, 스타더스랑 멀어질 준비를 해야겠구만.
그리고 며칠뒤.
"오빠, 카테달에서 연락왔는데요?"
"....."
내 은퇴따위가 중요해지지 않는 순간이 왔다.
바로, 빌런회의 카테달이 또 한번 열리게 된 것.
'...쓰읍, 아무리 생각해봐도 셀레스트가 눈치챈거 같은데.'
왠지 가면 또 뭔가 사건이 있을거같지만, 그래도 가기는 해야됐다.
왜냐하면 4페이즈의 핵심이 셀레스트와 카테달이었으니까.
사실상 카테달은 이 전까지는 한국을 배경으로하는 원작에서 거의 존재감도 없던 조직. 마지막 페이즈에서 존재감을 보이는 곳이었다.
즉 지금까지 카테달에서 빌드업을 한것은, 사실상 이번을 위해서.
"좋아, 가자."
나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막나갈 시점이었다.
***
그렇게 며칠 뒤.
"...어이, 에고스틱씨! 반갑습니다. 오랜만에 보네요."
"에고스틱. 여기에요..."
카테달 원탁회의에 참여한 나는, 먼저 앉아서 내게 손을 흔드는 리 샤오평과 카타나에게 인사한 뒤 걸어갔다.
특히 리 샤오펑은 얼굴에 웃음꽃이 만연한모습.
듣기로는 마침내, 드디어 그의 조직인 화룡이 중국을 완전히 정복했다고 한다. 역시나 원작대로 된 모습.
저번에 나한테 전화와서는 중국정부 기밀 정보를 건내준 내 덕분이라고 그랬지. ...사실 나 없었어도 될거였기는 한데, 걍 웃으며 들었다. 그가 그렇게 생각하면 좋지 뭐.
하여튼 이제 슬슬 우리 한중일 빌런 연합도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해야될 때였던만큼, 이들과 더 자주 만남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나였다.
"아틀라스씨는..?"
"아, 오늘은 못오신다네요."
참고로 아틀라스는 바다에 뭔 일이 생겨서 못온다고 한다. 무슨 크롤링? 크룰루?인가 뭔가하는 괴생명체를 때려잡고 온다는 모양. 내가 잘 몰라서 그렇지 바다에도 뭔가 할게 많은 듯했다.
"다들 와주셨군요."
하여튼 그렇게 하얀 성녀복을 입은 채 눈을 감고 등장한 셀레스트에 의해, 회의는 마침내 시작되었고.
"...그럼 다음은 제가 말하겠습니다."
나는 그러는 와중에,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아니.'
셀레스트가, 너무 대놓고 나만 빤히 쳐다보는데...
씁. 큰일났군.
카테달이 시작된 이후.
빌런회의는 여태까지 그랬듯이 평온하게 흘러갔다. 사실, 따지고보면 굉장히 이상한 광경이다. 전세계를 내로라하는 S급 빌런들이 전부 다 모여있는데 자기들끼리 치고박고 안싸우고 순탄하게 흘러간다? 뭔가 생각만해도 미스터리한 이야기.
그리고 사실, 그런것에도 다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여기 모여있는 빌런들은 단순한 S급 빌런들이 아닌 전부 자기 아래 다른 부하들을 둔, 빌런 조직의 보스들이기 때문. 즉 어느정도 사회화가 되어있다는 소리다.
두번째. 그리고 제일 큰 이유는.
"...."
바로 저기, 눈을 감고도 모든게 보인다는듯 다소곳하면서도 신비한 기색으로 앉아있는 은발의 여인.
바로 모든 빌런들 중에서도 제일 강하다고 불리는 이, 셀레스트가 있기 때문.
아메리카 대륙 전체에 지하 왕국을 건설해, 지구의 붕괴를 노린다는 테스테우스. 모든 바다 생명체들을 지배하고, 북대서양 전체를 통치하는 아틀라스. 흔히 제일 강한 빌런을 꼽으라 하면 꼭 세손가락에 드는 이 둘. ...그리고 이런 둘이 합쳐서 공격한다 해도, 이길 수 없을거라 불리는게 셀레스트였다.
그만큼 빌런들의 역사에 새로운 신화를 쓴 인물이며, 현시점 그 어느 누구보다도 더 강하다고 평가받는 여자.
"...커흠."
그리고 그런 그녀가, 회의 내내 노골적으로 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계속, 빤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