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남자가 그렇겠지만. '혹시?'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혹시 정말, 스타더스가 날 좋아하는 거라면..? 기억을 잃은 내가 개쩌는 통찰력으로 엄청난 자기객관화를 통해 진실을 도출해 낸 것이라면? 그게 미인계가 아니라 진짜 날 좋아해서 그런거라면..?
당연히 아니겠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어쩐지 가끔씩 자다가 벌떡벌떡 드는 생각.
그렇다고 이걸 서은이나 수빈씨한테 상담하기에는 좀 그래서 내가 고민하고 있을 때.
마침 건강 확인 겸 하율이를 찾아갔을 때, 나는 문득 하율이한테 말해보는건 어떨까 싶었다. 하율이라면 믿을 수 있으니까.
"오빠, 딱히 몸에 큰 이상은 없어보여요. 부정맥..?같은건 당연히 없고요. 그래도! 요즘 너무 무리하시는데, 그러면 장기적으로 안좋으니까 제발 무리하지 마세요. 아셨죠?"
"그래. 고마워 하율아."
나는 그렇게 말하며, 벗어두었던 상의를 입었다. 어째서인지 하율이의 건강 검진을 받을때는 윗옷을 벗어야 한다더라고..?
하여튼 더운지 약간 붉어진 눈으로 내 얼굴을 힐끔거리는 하율이한테, 나는 은근슬쩍 기회를 틈타다 물었다.
"그보다 하율아, 내가 요즘 인터넷을 보다가 재밌는 소리를 들었는데 말이야..."
"네 뭔데요?"
"...스타더스가 알고보니 나를 좋아한다는 소리가 있더라고. 하하, 당연히 말도 안되는 소리겠지만 말이야. 그래도 막 그렇게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도 있더라고. 하율이 넌 어떻게 생각해...?"
그리고 내가 뒷통수를 긁으며 가벼운 어투로 물은 말에.
여전히 싱긋 웃는 그 표정 그대로, 잠시 가만히 있던 그녀는.
이내 어투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오빠, 절대 아니에요."
"...그래?"
"네 당연하죠. 저도 대학교에서 다른 애들 연애하고 썸타는거 봐서 아는데, 그건 절대. 절대로 아니에요."
"음... 그렇단 말이지?"
"네."
나는 하율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하율이가 보기에도 그런걸보면 내 말이 맞겠지. 나만 아니라는게 아니라니까?
...그보다 어째서인지 하율이가 아까부터 여전히 싱긋 웃던 그 얼굴에서 표정 하나 안바뀌고 있는게 좀 무섭긴 했지만, 하여튼 그랬다. 왜 저러지..?
아무튼 그렇게, 나는 내가 기억을 잃은 2주간의 일을 하나하나 정리해 나갔다.
전체적으로 평하자면, 3페이즈의 최종보스인 소원을 이루는 자를 훌륭하게 처치한만큼 성공이었다 할 수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던전메이커랑 크로커다일맨을 비롯한 빌런들 몇명이 탈주했다는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뭐, 걔네야 다시 테러 일으킬 때 잡으면 되니까.
물론 나 없는동안 밖이 좀 개판나긴 했다. 그리고 그 부작용으로...
[다인씨? 저 지금 너무 바쁘니까... 나중에, 나중에 얘기해요...]
"어 그래... 힘내라 설아야. 미안하다."
[아니예요 이게 다 나라를 위해서니까... 하하... 하하하하하...]
...지나친 과로에 시달린 나머지 거의 정신을 놓은 것 같은 설아에게, 나는 힘내라는 말말고 별달리 해줄 수 있는게 없었다. 국제 협회가 카르케아스 관련해 쪼는거부터 경제 좀 휘청인거까지 설아가 다 책임져야하는 상황이니... 씁. 나중에 갈때 한약이래도 다려가야하나.
하여튼 그렇게 해서.
이제는 사실 따지고보면, 스타더스가 문제가 아니였다.
"오빠, 그래서 은퇴는 언제 해요?"
이젠 슬슬 내 은퇴를 정말 진지하게, 구체적으로 생각할 때가 왔다는 것.
사실 스타더스도 다 키웠겠다. 거기에 이번에 드디어 3페이즈의 최종보스도 해치우는데 성공했겠다. 이제야말로 은퇴를 해도 별 상관이 없는 때였다.
...사실 은퇴라는게 별게 아니기도 했고. 사실상 테러만 안하는 거니까. 그러니까 주기적으로 3달에 한번씩 스타더스 만나는 일만 없다는 소리.
어차피 이제 3페이즈 대탈옥의 주범인 서은이도 착해졌고, 최종보스인 소원을 이루는 자도 저기 요단강 넘어로 관광 보내드렸으니까 이제 좀 쉬어도 되긴 했다. 이제는 슬슬 계획대로 원작의 마지막이자 최후의 시나리오, 4페이즈를 준비해야 할 때였으니까.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았지만은.
"그래, 이제 슬슬 해야지."
"언제요?"
"...곧?"
나는 그렇게 나보고 대체 언제 은퇴할거냐고 슬슬 압박을 넣기 시작하는 우리 에고스트림 멤버들을 피해, 방으로 들어갔다. 아니, 왜 이렇게 내가 은퇴하길 바라는거지? 너무 다치고 돌아와서 그런가.
일단 그래. 은퇴를 해야지. 스타더스도 다 키웠으니까... 해도 되는데...
'.....'
어쩐지, 좀 아쉬운 느낌은 뭘까.
나는 그런 마음을 애써 떨치며, 지금 당장 해야할 것에 주목했다.
바로...
[최근 빌런 테러율 5배 증가... 왜? 전문가들, '에고스틱 이상설'때문.]
그래. 이거 때문이였다.
나는 스마트폰에 나오는 뉴스를 그렇게 집중해서 바라봤다.
[이달들어 빌런들의 테러가 지나치게 많이 일어나는 것을 두고, 히어로 전문가들은 이를 에고스틱 때문인 것 같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3일 카르케아스에 잡힌 이후 탈옥한 에고스틱은 현재 자취를 감추고 있는데, 이를두고 그의 몸에 큰 이상이 생긴게 아니냐는 소문이 돌고있는게 문제라는 겁니다.]
[에고스틱이 약해졌다는 소문에 그가 두려워 숨어있던 빌런들이 나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하며, 전문가들은 '속히 에고스틱이 테러를 일으켜야 할 것'이라고 해결책을 제시했습니다.]
"...."
언론이 빌런보고 테러를 일으켜야 된다고 말하는 상황... 이게 맞나?
뭐, 그림이 이상한걸 자처하고라도... 난 저게 맞는말이라 생각했다. 애초에 내 빌런 제거 활동에는 나름의 그런 노림수도 담겨있었으니까.
"그래. 테러를 바로 일으켜야겠네."
그리고 그게,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너무 모습을 안 비추는것도 좋지 않으니까. 나때문에 우리 하루가 고생한다? 절대 안될 일이지.
...잠깐, 정확히는 우리 하루가 아니라 스타더스. 순간적 왜 이리 친근하게 부른거지..?
하여튼.
그렇게 테러를 일으킨다면 문제가, 스타더스를 만나게 된다는건데...
"..."
뭔가 좀 꺼림직하긴 했다.
스타더스를 마지막으로 만난 기억이 카르케아스 전에 나 잡을때였고, 그 이후로는 모르겠는 상황.
다만 내가 감옥에 있었을 때 그녀가 분명 나서서, 기억잃은 나를 만나긴 했을텐데... 무슨 말을 할지, 무슨 반응을 보일지 모르겠네.
뭐 그래도 히어로와 빌런으로 다시 만나는거니, 별 일 없겠지. 그냥 추격전좀 하다 끝나지 않을까?
'...생각해보니, 이렇게 스타더스를 만날 일도 얼마 안남았구나.'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우리 에고스트림 동료들에게 테러 소식을 알리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퇴까지, 몇달 안남은 시점의 일이였다.
***
스타더스, 신하루.
그녀는 최근들어 매일같이 어딘가 멍한 표정으로 살고 있었다.
기계적으로 빌런들을 격파하고, 기계적으로 잠에 들며.
'...에고스틱.'
그런 그녀의 머릿속에 든 생각은, 에고스틱에 대한 걱정뿐.
에고스틱이 사라진지 일주일이 넘게 지나며, 그녀의 걱정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에고스틱은 뭐하고 있을까. 기억은 다시 찾았겠지?
...설마, 못찾았으면. 어떡하지...
그래.
그녀는, 그런 생각만을 하고 있었다.
빌런이, 기억을 잃어봤자 좋은거 아니냐고. 오히려 전처럼 노련하게 테러를 못할테니 잘된거 아니냐고. 진정한 히어로 스타더스라면 그리 생각해야겠지만...
그 안의 신하루는.
어째서인지, 전혀 반대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기억을 잃은 에고스틱을 생각할때면, 가슴 한구석이 아릿할 정도로.
...이제야 서로의 마음을 어느정도 파악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대로 다 잃는건... 너무. 너무나도 싫었다.
"에고스틱..."
그렇게 그녀가 이제는 예전에 얻었던 에고스틱의 망토를 멍하니 바라보며, 그걸 자기도 모르게 만지작 거릴 지경에 이르렀을 때.
마침내.
[속보입니다! S급 빌런 에고스틱이 마침내 오랜 공백을 깨고 테러를 일으켰습니다!]
그의 테러 소식이 들려왔고.
그 즉시, 그녀는 이미 슈트를 갈아입고 뛰어 날아가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입가가 지금까지 그 어떤 때보다 올라간 채로.
에고스틱과는 달리.
스타더스. 그녀에게는, 에고스틱과 감옥 안에서 나눈 추억들이 전부 생생히 살아 숨쉬고 있었기에.
에고스틱이 탈옥한 이후, 에고스틱 팬카페는 완전히 축제분위기 였었다.
애초에 당연한 일. 그들이 원하던건 결국 에고스틱의 석방이였던만큼, 자신들이 염원하던 바가 이루어진 이들은 아주 잔치 그자체였다.
그러나 그것도 어디까지나 잠시일뿐.
행복한 분위기속에는 꼭 초치는 이들이 있기 마련.
*
[그런데 에고스틱 탈옥하고 나서 얼굴한번 안비추는거 좀 이상하지않음?]
*
주로 이렇게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자들은 멍석말이를 당하고 묻혀버리기 마련이지만, 사실. 그 말이 모두가 속으론 한번씩 생각하던 바여서일까, 아니면 언론이 이걸 물어서일까.
슬슬, 음모론이 하나 둘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
[에고스틱 감옥에서 어디 몸 다치고 복귀한거 아님?]
[ㄹㅇ 애초에 탈옥과정도 방송 나간것도 아니고 알고보니 협회에서 주작친거 아니냐?]
[렉카)망고 건강이상설 이거 뭐냐...?]
[[충격]협회 관련인 S씨 인터뷰... '에고스틱은 시한부일 수도 있어' 밝혀 논란]
[마따끄... 또 망들갑이 시작됐잖아?]
[애써 괜찮을거라 하지만 좀 불안하면 개추ㅋㅋ]
*
특히 팬카페의 분위기는 갈수록 어째 위태로운 분위기. 무슨 에고스틱 로봇 대체설같은 황당한 얘기마저 돌아다니며.
그렇게 슬슬 에고스틱에 대한 걱정이 일어나는 타이밍에.
때마침, 그가 나타난 것이다.
*
[떴다!!!!!!!!!!]
*
그리고 그날.
에고스틱 방송의 시청자수는, 그 해 최고치를 기록했고.
그렇게 진행되는 방송 속 화면에서는, 모두의 불안을 잠식시키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