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그래도 이제라도 알았으니 됐다. 기억을 되찾으면, 다 깨닫게 되겠지. 내 지금 기억이 날아가지는 않을테니까 말이야.
어쨌든, 이정도면 나름의 성찰도 끝났다. 슬슬 서은이로부터 일기장 받고, 기억을 되찾아야지. 사실 일기장을 읽는게 제일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텐데, 도중에 기억이 돌아와서 내 성찰이 끝날까봐 못열어봤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습관적으로 노트에 내가 깨달은 바를 휘갈겨 적기 시작했다.
[스타더스가 나를 좋아하는 것 같다.]
"...이정도면 됐겠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노트북을 덮었다.
좋아, 며칠뒤에 이제 일기장을 읽고 돌아가자. 원래의 나로.
그렇게 다짐하며 팔을 뻗던 나는, 문득 든 생각에 멈칫했다.
...잠깐, 나. 태양신의 피조물을 하나 더 죽였는데.
이거 셀레스트 쪽은 괜찮으려나?
***
한편, 미국.
에고스틱이 소원을 비는 자를 제거한 그날.
휘익.
"....."
셀레스트. 그녀가 기도를 하는 그곳의 촛불이 하나 더 꺼진걸 보고는.
그녀는 한숨을 쉬며, 기도실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들려오는, 해외의 소식.
[현재 대한민국 협회가 담당하는 카르케아스가 붕괴중이라 합니다! 이는 S급 빌런 에고스틱이 일으킨 짓으로...]
"...."
그렇게 티비 속 영상을 멍하니 보던 그녀는.
오랜만에 눈을 뜬 채, 은빛의 머리를 휘두르며 뒤를 돌아 조용히 그곳을 떠났다.
다음 카테달이 열릴 시간이,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오빠가 기억을 잃은지도,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오빠?"
한낮의 집의 거실.
그곳으로 온 서은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인을 찾았다. 여기 없네, 오빠가 어디갔을까..?
그러고 있을때, 저 소파 밑쪽에서 들려오는 소리.
"다인이... 베란다 가있어."
그 말에 서은이가 고개를 휙 돌리니, 그곳에는 소파에 누워있는 서자영 언니가 보였다.
보라색 단발머리를 방석에 기댄채, 언제나처럼 거실 바닥에 누워있는 그녀.
거실이랑 동화된 채 멍하니 천장을 보고있는 그녀를 볼때면, 저 언니는 보호색이 있는게 아닐까하고 의심이 들 지경이었다.
"고마워요 언니."
"고마우면... 올때 트위스트 아이스크림 좀..."
"그거 안사놨어요."
"...아."
그렇게 '왜 나에게 이런 비극이...'같은 말을 중얼거리는 서자영을 내버려둔 채, 그녀는 총총총 베란다쪽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창 밖의 베란다쪽에 보이는, 오빠의 모습.
난간에 기대, 바람을 맞으며 앞의 탁 트인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다인을 본 그녀는.
"아..."
잠시, 베란다 문을 열고 다가가려다가 자기도 모르게 멈추었다.
'...오빠.'
다인 오빠는 기억을 잃은 이후 때때로, 이렇게 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혼자 무언가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이곤 했다.
사실 원래도 밖에 서서 생각을 자주 하던 오빠지만, 기억을 잃은 직후 더욱 그러는 모습. 그걸 보면 그런 습관은 예전부터 있던 모양이다.
"...."
그렇게 한서은은, 잠시 멍한 눈길로 깊은 생각에 잠긴 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저런 오빠도 멋있... 이게 아니라! 으으음, 어쨌든간에.
한서은은 고개를 털며, 자기도 모르게 최근 다인 오빠에 대해 다시 떠올려보았다.
최근 일주일. 기억을 잃은 오빠는, 평소랑은 느낌이 달랐다.
물론 똑같이 친절하고, 자상했지만...
'어쩐지, 좀 차가웠지...'
기억을 잃어서 차갑게 대했다는 뜻이 아니다.
어색해하기는 해도, 그녀를 비롯한 에고스트림 식구가 동료라는 말을 듣고는 친절하게 대한 그였으니까. ...물론 평소보다 선을 긋는 모습은 있었긴 하지만.
다만, 그녀가 말하고 싶었던건 보다 근본적인 것.
그러니까, 평소처럼 웃음과 장난이 많고 진중할땐 진중하던 평소의 오빠보다는 좀 더 웃음이 없는 모습이었더. 뭔가 냉철하고, 다가가기 힘든 느낌..?
'우리를 만나기 전에 오빠는, 원래 저랬었구나...'
한서은. 그녀는 몰랐다. 왜냐하면 그녀가 아는 다인은, 첫 만남부터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왔으니까. 자신이 아무리 차갑게 밀어낼지언정, 계속.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녀는 그렇게 잘 웃는 오빠가 지금보다 좋았다.
'그리고 보면...'
오빠도 성격이 참 많이 변한 것 같기도 했다. 자신들과 함께 지내면서.
물론 그런 오빠나, 지금 기억을 잃은 오빠나 둘 다 공통점을 꼽자면 죽어도 과거의 일을 안 알려준다는 것.
자신을 만나기전, 대체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절대 말해주지 않는 그였다. 그나마 예전부터 말하던 평범한 대학생이었다는 아무도 안믿을 말만 반복할뿐.
사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예전에 다인오빠가 대체 뭘 하던 사람인지 궁금해서 해킹으로 따로 조사해본 적이 있다.
그렇게 알게된건.
'...기록이 없어.'
바로 대한민국 어디에도 오빠의 기록이 없다는 것.
몇번이나 걸쳐 알아보았지만, 그 어디에서도 오빠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한은그룹의 실험체로써 살아와 기록이 없던 자신처럼.
...그렇기에, 이 기회에 평소에 늘 무언가를 숨기고 다니는 것 같은 다인 오빠의 비밀을 알 수 있을까 생각도 해봤지만.
'어림도 없지.'
역시나, 기억을 잃어도 오빠는 오빠였다.
아무리 은근히 물어도 절대로 과거 얘기는 입을 꾹 닫는 모습은 거의 철벽과도 같은 모습.
대체 과거에 무슨 일을 했길레 그렇게나 아는게 많은지 그녀는 때때로 궁금했었지만, 이번에 알게되기는 요원해 보였다.
그래도 이번에 소득이 아예 없던건 아니였으니.
'...히히.'
바로바로! 오빠가 이쪽을 의식하게 되었다는 말씀!
평소와는 다르게 자신이 가까이 붙으면 얼굴을 붉히는 그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계속 올라가는 그녀였다.
특히 자신을 어른으로 대하며 존댓말을 해주는 그의 모습은 굉장히 색달랐다. 그래. 지금까지 너무 오빠랑 붙어있던 바람에 오빠가 자신한테 익숙해져서 그렇지, 그녀도 이제 다 큰 성인이었다...!!!
하여튼 그렇게 희망을 본 그녀이기에, 앞으로 더욱 힘을 내기로 결심했다. 원래 남자는 쟁취하는 거라고 나은언니가 생전에 말해주지 않았나. 물론 그때는 너무 어려서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지만, 이제는 알 것같은 기분.
하여튼 그건 그렇고...
"....."
이제 슬슬, 약속한 일주일이 다 되가기도 했다.
바로 이젠 다시 일기장을 돌려주어 기억을 되찾고, 다시 평소의 오빠를 보게 될 순간이 왔다는 소리.
"오빠!"
"...응? 서은씨?"
그런 생각을 하며, 한서은은 활짝 웃으며 다인에게 다가갔다.
아마 오늘이 기억을 잃은 다인을 보게 될 마지막 순간이니만큼.
그에 대해, 더 알기 위해서.
***
내가 기억을 잃은지도 어느덧 일주일이 넘은 그날 밤.
마침내 오늘, 기억을 되찾기로 한 나는 내 방에 일기장을 들고 앉아있었다.
'...오빠, 그리고 이게 전 안열리더라고요? 아마 오빠만 열 수 있는거 같아요.'
아쉽다는듯 내려다보며 내게 일기장을 건내던 서은이로부터 그걸 받은 이후.
나는 내 방에서, 조용히 일기장을 손에 든 채 바라보고 있었다.
현재 우리 에고스트림 멤버들은 전부 결과를 기다리며 거실에 앉아있는 상황.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곁에 있겠다는걸 한사코 거부한 끝에야, 나는 홀로 이걸 열어볼 수 있었다. 당연하지. 이 일기장에는 내 비밀이 전부 들어있을텐데.
"...휴우, 그럼 읽어볼까."
대체 어떻게 기억이 돌아온다는건진 모르겠지만, 내가 해놓은 방법이니 분명 제대로 돌아오는 거겠지. 설마 일기장만 읽고 땡이겠어?
지난 일주일간 자아성찰도 충분히 했으니, 이제는 일기를 읽어도 될 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일기장에 손을 댔다.
그러자, 표지에 그려진 마법진이 빛나며 일기장이 열렸고.
"좋아..."
나는 그렇게, 일기를 처음부터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음....."
마침내 일기장을 끝까지 다 읽은 나는, 책을 다시 덮었다.
일기에는 꽤나 상세하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과 그때 느낀 내 감정들이 전부 기록되어있었다. 이 세계에 떨어진 첫날부터, 월광교주를 죽이고 카르케아스에 들어갈 계획을 짜던 그날까지.
읽으면서 느낀건 내가 이 세계에 떨어진 몇년간 서은이를 만나기 전까지 정말 고생이란 고생은 다했다는 것과, 스타더스와 관련되면 약간 이성적인 사고를 못한다는 건? 아직도 그녀의 마음을 모르고 있으니까.
그것과는 별개로, 일기를 읽는 중간중간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과 예전의 기억들 몇개가 어렴풋이 떠오른 것 말고는 별다른게 있진 않았다. 설마 이대로 끝은 아니겠지..?
내가 그런 생각을 하던 그 순간.
두근.
"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