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회장님! 현재 국제 협회 위원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대체 무슨 짓을 한거냐고...!"
"외신들이 지금 카르케아스가 뚫린 것을 대대적으로 보고하고 있습니다!"
"협회장님, 지금 당장 A급 이하 히어로들을 다 출동시킬까요?"
"그아아아아악..."
그렇게 개판난 상황 속에서, 협회장은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그의 얼마남지 않은 머리카락은, 한주 전보다 더 빠져있었다고 한다...
빌런들의 감옥,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그 섬. 감옥섬 카르케아스.
그곳 한가운데에서, 스타더스는 솟구치는 검은 촉수들을 피하며 거친 땀을 흘렸다.
"하아, 하아..."
건물의 재가 휘날리고, 폐허가 된 감옥들 사이에서.
그녀는 금발의 머리를 휘날리며,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검은 촉수를 향해 주먹에 노란 빛을 내며 달려들었다.
"흐읍!"
쾅-.
그녀의 빛이 담긴 주먹을 맞자, 이내 끈적하게 녹으며 가루로 날아가버리는 거대한 촉수.
주변에 비상사태에 막 달려온 교도관들이 총기와 첨단 무기를 사용해도 꿈쩍도 하지 않는 촉수였지만, 어째서인지 스타더스의 주먹에는 맥없이 녹아버리는 촉수들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다른게 아닌 그녀의 '노란 빛'이 나는 주먹에만 마치 약점에 찔린듯 무너지는 그것들이었다. 그녀의 다른 공격에는 똑같이 전혀 피해를 입지 않았다. 오로지, 그녀 자신도 어떻게 쓰는건지 모른채 감각적으로 사용한. 팬들이 일명 스타펀치라 부른 그 빛이나는 주먹에만 맥없이 무너지는 그것.
사실 생각해보면 신기한 일이였지만, 그녀에게 그런건 별로 중요한게 아니었다.
"하아..."
퍼억.
마치 죽순이 자라난 것 마냥, 섬 여기저기 솟아올라와있는 거대힐 검은 촉수의 탑.
그녀는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놈들을 없애며, 심란한 표정으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바로 당연하게도 에고스틱. 기억을 잃은 그에 대해서.
"..."
자신을 보고 처음 본다는 듯이,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올려다보던 그를 떠올리고는 스타더스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가 소원을 비는 자와 거래를 한 이후, 쓰러지고 다시 일어났을때의 그의 얼굴을 보고 그녀는 직감적으로 알아차렸었다. 그가 기억을 완전히 잃어버렸다는 것을.
그리고 어째서일까.
자신이 누군지 전혀 모르겠다는 듯이, 완전 남을 본다는 듯 올려다본 그의 얼굴을 보고는.
쿵-
그녀의 가슴이, 순간 시큰거리며 아팠던 것은.
'....'
...아니, 사실 이유를 어렴풋이 알았지만 그녀는 이 악물고 무시하고 있었다. 그럴리가 없을거라면서.
하여튼 그녀는 지금 심기가 매우, 매우 안좋은 상태였다.
"하아..."
퍼억.
...오랜만에, 처음으로. 에고스틱과 더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다.
그와 감옥에서 함께 일주일간 있으며, 그녀는 많은 일들을 겪었다. 그와 함께 밥을 먹고, 같이 영화를 보기도 하고, 아니면 별 일 아닌걸로 떠들며 손을 잡고 산책을 하기도 하며.
그렇게 마치 친한 친구처럼 평범한 일상을 보내다가.
그녀는, 문득 깨달았다.
'나는...'
다른게 아니라, 그냥 에고스틱 그의 옆에만 있어도 행복하다는걸.
그와 떠들고, 그가 웃는 모습만 봐도 그녀또한 웃음이 나온다는걸.
그가 잠에 덜 깼을때 그녀를 낮은 목소리로 부르는 것도, 어떤 요리를 해줘도 맛있다고 웃으며 먹는 것도, 자신에게 하는 사소한 배려 하나 하나가 모두 그녀를 미소짓게 만든다는걸.
에고스틱이, 빌런이였다는걸 잊을 정도로.
...그가. 그녀에게 큰 의미였다는 걸.
그렇게 그녀는 에고스틱에게 더욱 다가갔다.
...그리고 그또한, 넘어오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를 보고 때때로 얼굴을 붉히며 의식하는 모습을 보일때부터 더더욱.
물론, 그보다는 자신이 얼굴을 붉힌적이 더 많기는 했지만... 어쨌든. 그렇게 점차 계획대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생각했다. 솔직히 에고스틱이 빌런인건 말건 안의 마음씨만은 착하다는걸 모두가 아니, 그가 빌런인건 따로 고치면 되는 문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리고, 잘 기억은 안나지만. 전날 밤 분명 같이 무언갈 한 것 같기도 했고.
에고스틱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가 기억을 잃기 전까진.
"하아..."
그렇게 또다른 검은 촉수를 파괴하며, 스타더스는 한숨을 삼켰다.
사실 에고스틱이 이해되기는 했다.
만약 그녀한테 그가 기억을 담보로 저 괴이와 거래해 해치우겠다 했으면, 그녀는 분명 반대했겠지. 너무 위험하다고.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퍼억.
또다른 촉수를 파괴한 후, 그녀는 곧바로 멀리 떨어진 다른 촉수로 날아갔다.
이제 촉수의 탑도 몇개 남지있지 않은 상황.
물론 감옥 몇몇부분이 붕괴되어, 운좋게 그 건물안에 있던 몇몇 빌런이 비상 보안장치마저 뚫고 탈옥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지만...
"야 보라돌이야, 누가 더 많이 잡는지 내기 콜?"
"하아... 힘의 차이를 보여줘야 하는건가..?"
번개와 보라빛 불을 쓰며 날아다니는 에고스트림 소속 빌런들이 갑자기 튀어나와서 그들을 막고 있어서, 사태는 어느정도 진정된 편이었다.
...아마 저들도, 다 에고스틱이 미리 불러놓은 이들이겠지. 비슷한 사태가 터질걸 예측하고.
에고스틱은, 이 모든걸 다 계획해 놓았을거다. 뭐든지 계획대로 처리하는건 그의 특기니까.
그러니 분명 기억을 되찾는 것도 다 준비를 해놓았겠지. 그의 방식대로.
그러니, 분명 걱정할건 없을거다.
에고스틱이니까. 다른 누구도 아닌, 늘 웃으며 모든 사건을 여유롭게 처리하는 그니까.
"...."
그렇게 마지막 촉수도 끝끝내 파괴했을 무렵.
마침내 죽기전에 발악하던 소원을 이루어주는 자의 공격도 그렇게 끝이 났다.
그리고.
"야, 야. 가자!"
모든걸 끝낸 이후, 잠시 근처의 탑에 선 그녀는 저 멀리 비행선이 떠나는걸 지켜봤다.
...아마도 저게, 에고스트림 멤버들이 타고있을 비행선. 그리고 분명 에고스틱도 저기 타 있겠지.
"...."
그녀는 굳이, 쫓을 마음은 들지 않았다.
에고스트림 멤버들이 여기 와서 다른 빌런들 탈옥도 막아줬는데, 그렇게 도와준 이들을 잡아넣는게 양심상 찔려서? 그런건 아니었다.
다만, 저들의 도움이 있어야 에고스틱의 기억이 돌아올 수 있을거라는건 직감적으로 알았기에.
그리고. 저들을 잡으면 기억을 되찾은 에고스틱이 슬퍼할 가능성이 있기에. ...또 그녀를 싫어할 수도 있기에, 그러지 않았을뿐.
그렇게 그녀는 잠시 멍하니, 떠나가는 그 비행선을 푸른 눈으로 하염없이 바라보고았다.
그리고.
"..."
어쩐지, 그녀는 에고스틱과 눈이 마주친 것 같기도 했다.
"...일이나 하자."
이내 에고스틱이 탄 비행선도 떠나간 이후.
그녀는 고개를 돌려, 감옥섬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검은 촉수들이 난장판을 큰거 치곤, 생각보다 멀쩡해 보이는 감옥 성들의 모습. 애초에 규모가 너무 컸어서인지, 피해를 입은 부분은 꽤 적은 편이었다.
물론 그래도, 비상 보안장치들과 에고스트림 멤버들의 저지도 뚫고 탈옥한 빌런들이 있을 순 있겠지만...
그녀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어차피 에고스틱이 다시 그녀의 곁을 떠난 순간, 시간은 많았으니까.
다시 혼자니까. 일할 시간은 많을거다...
"..."
그렇게 홀로 조용히 생각하며, 그녀는 밑으로 내려갔다.
그래. 어차피 상관없다. 제 아무리 다른 이들이 설쳐도, 에고스틱이 그녀의 빌런이란건 변하지 않을 사실이다.
그리고, 에고스틱이 기억만 되찾는다면...
이제는 더욱, 전진할 수 있겠지.
"...하아."
스타더스는 그런 생각을 하며, 자신의 가슴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녀는 더이상, 그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이제는 그가 빌런이란것도 점차 중요해지지 않았다.
에고스틱은, 그 누구에게도 넘겨주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에고스틱은.
그녀의 빌런이니까.
그녀의, 것이니까.
"...가자."
스타더스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시 탈옥을 시도하는 몇몇 빌런을 향해 날아갔다.
어쩐지 평소보다 서늘한, 푸른 눈을 한 채로.
***
"오빠, 왜 이렇게 흠칫 떨어요?"
"...응? 아, 어쩐지 불길한 기분이 들어서요."
하늘을 날고있는 비행선 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