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나는 냉정하게 사태를 파악했다.
예전부터 위기상황에서 차가워지는 머리가 빛을 발하는 상황. 패닉을 하기 전에, 일단 살고 봐야지
그렇게 뒤에서 나를 안고 하늘을 날고있는 스타더스를 힐끗 돌아본 내가 내린 결론은...
'...아무래도.'
'나는 이 세계에서 히어로였나보군.'
바로 그것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스타더스가 나를 이렇게 필사적으로 구해내려 할 리가 없겠지. 표정이 아주 나를 향한 걱정으로 물들어있는데. 최소한 사이드킥은 되는 모양. 히어로 에고스틱이라, 뭔가 히어로답지는 않은 이름인데.
갑작스러운 상황에 침착함을 가장했지만, 사실상 거의 정신을 반쯤 놓은 내가 그렇게 태평하게 생각할때.
나와 스타더스는 마침내, 무너지는 감옥 밖으로 빠져나왔고.
그렇게 마침내 푸른 하늘 아래로 나온 우리는, 구름 옆에 떠서 아래의 거대한 감옥을 내려다보았다.
...정확히는, 이상한 굵은 검은 촉수들에 휘감긴 채 무너지려 하고있는 감옥 성을.
아니, 저거 괜찮은건가?
내가 그런 생각을 하던 그때.
때마침, 이어폰에서 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자, 일단 빠져나왔지? 아무일도 없을테면 좋을건데, 아마 분명 뭔 일이 터지긴 했을거야. 하얀 촉수를 든 놈이 난리를 친다던가.]
[그럴때는, 답은 스타더스야. 아마 이정도 사건이 났으면 금방 달려왔을거니까, 그녀한테 말해. 저놈은 그녀가 때려잡을 수 있다고. 몸에서 빛이 나는 그 별의 힘으로 공격하면 잡을 수 있을거라고.]
담담하게, 해결책을 제시하는 그 목소리.
그렇게 난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 말을 따랐다.
"스타더스씨. 제 말을 잘 들어주세요. 지금 저 밑에 괴물 보이시죠? 저 놈을 스타더스씨가 잡아주셔야 합니다. 일이 더 커지기 전에요."
"...알았어. 근데 그럼 넌 어디있게?"
나한테 흔들리는 목소리로 묻는 그녀의 말에, 난 침착하게 답했다.
[저쪽에 빨간 깃발 세워져있는 성 꼭대기에 내려달라고 해.]
"저쪽에 빨간 깃발있는 성 옥상에 내려주세요."
"...알았어."
그런 내 말에, 스타더스는 일단 떨리는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나를 들고 그쪽으로 향했다.
그렇게 그곳에 도착해, 마침내 스타더스로부터 내려서 다시 지면에 발을 내딛게 된 나.
그렇게 찬 바닷바람이 불어오고 있는, 낡은 마천루같은 성 위에서.
망토를 펄럭이고 있는 나를 보며, 스타더스는 여전히 걱정 가득한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금발 머리를 휘날리며, 푸른 눈으로 나를 관찰하듯 보던 그녀가 뭐라고 입을 열던 그때.
콰아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건물 한쪽이 또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 모습에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힐끔 돌리는 그녀.
그러나 내가 계속 눈에 밟히는 모양인지 머뭇거리는 그녀에게.
나는 최대한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전 괜찮을겁니다 스타더스씨. 얼른 가세요."
"...그래도."
그렇게,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보는 그녀에게.
나는, 숨을 한번 들이키고는.
안심시키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스타더스씨. 당신이 누구였는지도, 저한테 어떤 의미였는지도... 곧, 기억해낼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다녀오세요."
"다음에 만날때는, 모든게 예전과 같을테니까."
"...아."
그렇게 말하는 내 말에, 순간 멍한 얼굴을 지은 그녀는.
이내 마음을 굳게 먹은 듯, 고개를 끄덕이곤 내게 말했다.
"...알았어. 약속이야..?"
그리고 날 보며, 거의 약간 울먹이며 그렇게 묻는 내말에.
나는, 어떤 방법이 있는 건지도 모른 채.
"네. 당연하죠. 약속해요."
어쩌면 지키지 못할, 약속을 했다.
***
그렇게 스타더스를 떠나보낸 뒤.
"휴우..."
그녀가 떠나 시야 저 멀리 사라진걸 확인한 나는, 이내 자리에 주저앉듯 기대 깊은 한숨을 쉬었다.
"...하아."
스타더스에게, 다음번에 만나자고 말을 한 나.
[그렇게 그쪽에 가있으면, 곧 일행이 데리러 올꺼야. 그때까지 거기서 기다리고 있어.]
...그 이유인즉슨, 이어폰에 있는 내 목소리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일행이 데리러 온다라... 누구를 말하는거지? 아니, 애초에 내 일행은 스타더스 아니였나? 협회 직원들을 의미하는걸까?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어쩌면 내가 히어로가 아닐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용병같은, PMC에서 일하는 능력자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능력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런게 중요한게 아니였다.
쿵. 쿵. 쿵. 쿵. 쿵.
"...아니, 진짜 뭔데."
그렇게 홀로 남은 나는 터질듯이 붉은 얼굴을 한 채, 가슴속에 손을 올린 채 내 심장박동을 들으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스타더스를 처음 본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미친듯이 뛰기 시작하는 심장.
솔직히 스타더스를 처음 봤을 때, 만화보다 실물이 훨씬 이쁜 그녀를 보고 깜짝 놀라기는 했다. 거기에 내 최애캐였던 그녀인만큼 더더욱.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그뿐일뿐.
자고 일어났다가 하루아침에 히어로 만화 속에서 기억을 잃고 눈을 뜬 내 입장에서는, 그런게 중요한게 아니었다. 최애캐가 문제야? 지금 내 인생이 좆된거 같은데.
다만, 몸은 그렇지 않았다.
...스타더스를 처음 본 그 순간부터, 미친듯이 두근거리는 몸.
정확히는, 마치 머릿속 기억은 지워졌지만 감정만은 남았다는 듯. 몸이 그녀를 기억하는 느낌이였다. 조건반사적으로.
...대체 이 세계에서의 난, 스타더스를 얼마나 좋아한거야? 이걸 티 안내고 살았다고?
거기에 스타더스의 반응도 이상했다.
...대충 내가 기억을 잃은걸 처음부터 눈치챈 것 같은데, 그 눈에 담긴 걱정과 염려가... 아주 넘치는 수준.
"..."
나는 원작에서도, 스타더스가 그정도로 신경쓰는 인물은 본 적이 없다. 늘 사실상 독고다이인 그녀였으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랑 그녀가 뭔가 특별한 사이였던건 맞는거 같은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탑의 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콰아아아아아앙.
찬 바람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밑에 보이는 거대한 검은색 촉수들이 지하에서 올라와 지상의 감옥을 아주 개판으로 만들고 있는 모습.
그리고 그 가운데에, 노란 빛이 번쩍번쩍 하는게 보였다.
아마도 저게 스타더스겠지.
...근데 나도 뭐 유사 히어로같은거 아닌가? 안 도와주고 이렇게 구경만해도 되는건가?
나는 그런 SF 영화에나 나올법한 광경을 내려다보며, 깊은 한숨을 쉬던 그때.
때마침, 이어폰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 그리고, 이걸 말을 안했는데.]
[너는 빌런이다.]
"...?"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잠시, 머리가 멍해졌다.
...뭐, 빌런? 내가?
이건 뭐 만우절 농담인가?
순간 내 머리에 그 말에 반박할 말들이 수십개는 떠올랐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아니야, 지랄하지마. 그러면 스타더스가 저런 반응을 보일리가 없잖아. 저건 거의 사선을 함께한 동료한테나 나올 반응이었다고.
그런 생각을 하던 나는, 그제서야 내 몸을 돌아봤고.
"....."
그때에서야, 검은 모자에 온몸을 검게 하고 망토를 두른 채, 눈쪽에 하얀 가면을 쓴 내 자신을 발견했다.
누가봐도 빌런스러운 올블랙 패션.
거기에 생각해보니, 에고스틱이란 이름도 이기적인을 뜻하는 에고이스틱(Egistic)에서 스타더스 따라 한글자 뺀거 같기도 하고...
뭐지 시발.
그렇게 내가 혼란스러움을 느끼던 그때.
[그러니까, 내 동료들도 전부 빌런이란 소리야. 보고 당황하지 말라고.]
그 말과 함께.
"오빠!!!"
"야, 에고스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