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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가 집착하는 악당이 되었다-306화 (306/328)

    나와 스타더스는 마침내 그곳에 도착했다.

   

   "....."

   

   한눈에 보아도 윗층들과는 다르게, 낡고 오래된 느낌이 팍팍드는 이곳.

   새하얬던 주위 벽들은 어느새 거무튀튀하게 부식되어 있었고, 몇군데에는 심지어 나무뿌리 같은 것들도 있는 모습이였다.

   

   그리고 어쩐지 익숙한 미로같은 곳을 해매자.

   마침내 등장한, 심층부의 거대한 검은 문.

   

   "...나 이런거 예전에 본 것 같은데?"

   

   그 모습에 기시감을 느끼는듯 스타더스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는걸 보고, 나는 황급히 그녀한테 말했다.

   

   "그냥 이런 거대한 문은 흔하니까 그런거 아닐까요?"

   

   "그런가..."

   

   그렇게 대충 넘기고 나서.

   그 문을 열기 전, 나는 스타더스한테 다시한번 진지한 얼굴로 경고했다.

   

   "스타더스씨. 저 안에 있는 놈은 제가 어떻게 처리할지 방법을 아니까, 믿고 따라주세요. 너무 위험하니, 함부로 나서시면 안됩니다."

   

   "...알았어. 난 너 곁에 있을게."

   

   "..그게, 곁에 있는 것도 위험할 수 있으니 들어오고는 문 앞에서 기다려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그 말에 스타더스의 얼굴은 불통한 표정이 됐지만, 내 애절한 눈빛에 끝내 마지못해 승낙했다.

   

   "...그럼, 갑시다."

   

   "그래."

   

   그 말과함께, 나와 스타더스는 그 거대한 검은 문을 열었고.

   

   그러자.

   

   휘익.

   

   불길한, 찬 바람이 그곳으로부터 불어나왔다.

   그렇게 지하 속 한치 없도 보이지 않는 거대한 어둠속으로 우리는 들어왔고.

   

   

   그렇게 문이 닫히고 완전히 들어오자, 우리는 저 끝에서 무언가를 볼 수 있었다.

   

   "저기..."

   

   지하 속 거대한 공동의 맨 끝.

   희미하게 보이는, 벽에 붙어있는 커다란 하얀 촉수들 사이.

   그 가운데 있는 것으로 보이는, 흐릿한 인영.

   

   그래.

   저놈이 바로 3페이즈의 최종 보스중 하나인 그놈이겠지.

   

   "...에고스틱."

   

   "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날 채근하는 듯한 그녀의 말에, 내가 곧장 발걸음을 옮겨 놈이 있는 곳으로 향하라고 했으나.

   그전에, 내 손목이 그녀에 의해 붙잡혔다.

   

   무엇인가 하고 돌아보자 보이는.

   약간 흔들거리는, 걱정에 찬 그녀의 눈동자.

   

   "아니... 조심하라고. 알았지?"

   

   "...네."

   

   너무나도 진지하게, 간절하게 하는 말에.

   나는 차마 '히어로가 빌런을 걱정하는 겁니까?'라는 농담도 던지지 못했다.

   그래, 조심해야지.

   계획대로, 계획대로만 하면 된다.

   

   '...그게 조심하는건지는 딱히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외투 속에 녹음기와 함께 있던 이어폰 한쪽을 꺼내 귀에 꽂았다.

   좋아. 모든 준비는 끝났다.

   가자.

   

   

   나는 그 생각과 함께, 어두운 공동 속에서 발을 옮겼다.

   

   자. 한번 소원을 빌어보자고.

   놈이 예상하지 못할 소원을.

   어두운 실내.

   마치 어지간한 종합 운동장보다 크고, 위로는 천장이 보이지 않을 지경인 그 어두컴컴한 커다란 공동에서.

   

   나는 조용히, 그 끝에 있는 '무언가'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

   

   굵은 하얀 촉수들에 둘러쌓인채, 그 가운데에 앉아있는 5살짜리 아이정도 되어보이는 체형의 무언가.

   다만 평범한 아이와 다른점은, 놈은 온몸이 시커멓다는 것였다. 얼굴도, 몸도 정확히 알 수 없게 까만 모습.

   

   그리고 저놈이.

   옛 히어로들이 이렇게 거대한 공간을 만들어서까지 봉인하려고 했던 무언가.

   

   전세계에 존재하는 태양신의 피조물들 중 하나.

   소원을 이루어준 자이다.

   

   "..."

   

   겉보기에는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나는 알았다. 저 놈이 가진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을.

   

   신의 능력을 받았을 뿐인 일개 인간들과는 달리, 저놈은 태양신이 직접 만든 생명체.

   그런만큼, 저놈의 힘은 신과도 닿아있다. 인과를 바꾸고, 섭리를 바꾸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소리.

   

   다만 그렇기에, 놈은 큰 제약을 가지고 있다.

   바로 다른 누군가가 그에게 대가를 지불하고 소원을 말할때, 그 소원을 들어주는 과정에서만 그 힘을 쓸 수 있다는 소리.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놈의 힘은 초월적인 것이였다. 대가만 충분하다면, 그 어떤 소원도 들어줄 수 있으니까. 나라를 멸망하게 해달라는 소원도, 자신이 부자가 되게 해달라는 소원도, 이미 죽은 이를 부활시켜달라는 소원도.

   

   그러나, 대가를 맞추기가 굉장히 힘들고.

   그 소원을 너무나도 괴상한 방식으로 이루어준다는게 문제지.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걸어갔고.

   마침내, 놈의 가까이에 도착했다.

   

   탁.

   

   발걸음을 멈추자 보이는, 내 앞에 앉아있는 작은 검은색 아이. 

   그것은 전신이 깊은 어둠에 잠겨있었으나, 예외적으로 입만은 새하얗게 미소짓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가까이서 보니 더 꺼림직하게 생긴 검은색의 작은 인영과, 그 주위에 깔려있는 굵은 하얀 촉수들.

   

   그리고 그 가운데서.

   마침내, 그것이 입을 열었다.

   

   "...오랜만에 보는 인간이구나."

   

   

   하얀 입을 움직여 말하는 그 목소리는 마치 작은 남자아이의 웃음소리 같기도 했고, 지지직거리는 기계음 같기도 했다.

   무엇이든간에, 이때까지는 들어본 적 없는 기괴하면서도 꺼림직한 목소리.

   마치 내 귀속에 직접 파고드는 듯한 그 목소리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소원을 이루어주는 자(votum implens)여."

   

   

   "....."

   

   

   그런 내 말에, 말없이 미소만 짓고 있는 그 검은색의 인영.

   

   놈을 보며, 나는 이놈의 특징을 다시한번 생각해봤다.

   

   소원을 이루어주는 자.

   대가를 바치고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을 이루어줌.

   단, 소원을 굉장히 잘못된. 소원을 빈 사람을 포함한 최대다수가 최대로 불행할 수 있는 방법으로 소원을 들어준다.

   

   자신이 부자가 되게 해달라는 소원을 빌면, 그의 피붙이를 전부 죽여 상속으로 부자가 되게 만들어주고.

   이미 죽은 이를 부활시켜달라는 소원을 빌면, 저주를 건 상태로 부활시켜 둘 모두를 결국 파멸에 이르게 한다.

   

   

   소원의 스케일이 커지면 커질수록 엮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이에 나라를 넘어 세계를 멸망에 이르게 할 수도 있는 녀석.

   

   

   놈은 수십년전 이미 수많은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며 세계를 깽판 내놓았다가, 히어로들의 희생끝에 겨우 겨우 놈을 잡는데에 성공한다.

   정확히는 '대가'를 지불해 스스로를 봉인하게 한 것이지만, 어쨌든.

   

   

   그렇게 잠들어있는 이놈의 문제는...

   

   

   '원작에선, 결국 재등장한다는거지.'

   

   

   원작의 흑화한 서은이가 일으킨 대탈옥.

   그곳에서 한 빌런이 이놈을 발견하며, 상황은 완전히 개판이 된다. 

   그야말로 최종보스 중 하나로서, 또 원작에서는 최초로 등장한 태양신의 피조물로서 처음으로 태양신에 대한 떡밥을 남긴 놈이기도 하고.

   

   물론 이제 서은이가 나의 편이 되며 세계가 개변돼, 더이상 원작같은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놈이 이미 위험하다는건 파악된 만큼, 난 얘를 살린채로 4부에 진입할 생각이 없었다. 특히 4부에서 온갖 태양신의 피조물이 깽판을 치는데, 얘가 접촉하면 어떻게 될 지도 모르겠고.

   

   물론, 사실 따지고보면 내가 얘를 잡는건 불가능하다. 애초에 어떤 물리적인 공격도 안통하는 놈인걸.

   

   

   사실, 이 놈과 전투가 가능한 사람이 있기는 했다.

   

   

   "..."

   

   바로 저 뒤에서,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우리의 스타더스.

   별의 신의 화신인 그녀는, 유일하게 저놈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원작에서도 실제로 놈을 때려잡았고.

   

   ...다만, 그 과정이 심히 끔찍하고 처절했다.

   애초에 '소원'을 이루어주는 놈인데, 얼마나 강하겠어. 결국 스타더스는 수많은 대가를 지불해가며 놈을 약화시켜 싸웠고, 끝내 쓰러트릴 수 있었다.

   

   물론 전투씬 자체는, 3부를 통틀어 제일 큰 명장면이기는 했다.

   

   

   '...를 대가로 바치겠다. 그 대신, 3초간 멈춰라.'

   

   

   계속해서 치열한 싸움을 해가며, 하나 하나 자신의 소중한 것들을 대가로 포기해가며 놈을 잡아내던 그녀의 모습은 그야말로 거룩한 장면 그 자체. 진정한 히어로란 무엇인지, 그녀의 희생정신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던 장면이었다.

   

   그리고 물론 난 늘 그랬듯이.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볼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아니, 차라리 내가 조금 더 고생하고 말지. 스타더스 그렇게 개고생하는걸 내가 보고만 있겠어?

   

   

   하여튼 그런 생각을 하며, 난 그놈 앞에 섰고.

   

   이내 그런 나를 올려다보는 놈은, 어쩐지 소름끼치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서, 소원을 빌려고 온건가? 대가를 내게 바쳐라. 그럼 내가 소원을 이루어주마."

   

   

   그런 그의 말이 끝나자 내 귀에 울리는 기묘한 웃음소리들.

   난 그 말과 함께, 숨을 들이키며 마지막으로 내 계획을 점검했다.

   

   그래, 대가.

   소원을 이루어주는 자는, 모든 소원을 대가의 크기에 따라 이루어준다. 큰 소원을 빌려면, 정말 엄청난 대가가 있어야 하는법. 엄청난 부자가 되고 싶으면 수명 몇십년정도는 넘겨야하고, 그마저도 없으면 스스로의 팔 다리를 건다. 또는 물질적인 것을 대가로 바치려면 거의 수십억에 달하는 걸 바쳐야하고.

   

   그리고 나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걸 바칠 생각이였다.

   

   그렇게 숨을 들이킨 나는.

   담담한 목소리로, 그러나 그 어느때보다도 정확하게.

   

   내가 바칠 대가를 말했다.

   

   

   "...저는."

   

   "제 이 세계에서의 모든 기억을, 대가로 바치겠습니다."

   

   

   나는, 조용히 그렇게 말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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