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03 - 동거 시작
협회 지하에 위치한 심문실.
그곳에서 꽤 오래 앉아있던 나는, 마침내 이동할 수 있었다.
아마도 약식 재판 결과가 드디어 나온 모양.
"그... 저, 에고스틱씨는 이제부터 카르케아스로 이동하셔야 합니다. 그 일단 일어서주시면..."
...어째 잡힌 빌런을 상대하는거 치고는 묘하게 공손한 협회 직원에 안내를 받아, 나는 심문실을 나올 수 있었다.
물론 이동하는 과정 내내, 나는 미소지으며 순순히 협력했다. 오히려 속으로는 왜이렇게 빨리 안가나 툴툴거릴 지경.
하여튼 그렇게 심문실 밖, 사방이 새하연 협회 지하연구실로 나오자 나는 그곳에 있는 수많은 직원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다들 나를 보고는 움찔하는게 특징. 아니, 수갑까지 차고있는데 왜 그러는거야. 전 안전한 빌런이에요. 해치지 않아요.
'그보다...'
잠시 주위를 둘러본 나는, 조용히 생각했다.
'...스타더스가 안보이네?'
몇시간 전까지만 해도 내 앞에 앉아서 압박을 하다가 나간 그녀였는데, 지금은 대체 어디갔는지 보이지 않는 모습.
...물론, 오히려 다행인 일이였다. 그녀가 있으면 내가 상당히 곤란했거든... 지금 여기서 무슨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여튼 그렇게 직원들에 인솔하에 굉장히 정중하게 나간 나는, 무슨 빌런 이송용 트럭같은 곳에 탑승해서 카르케아스로 떠나기 위해 지하주차장 쪽으로 갔다.
참고로 그 과정에서 협회 요원들이 나를 굉장히 조심조심 다루는게 인상적이였다. 누가보면 회장님 모시는줄 알겠어. 빌런을 감옥으로 끌고가는 거면서.
물론 이때까지만 해도 난 별 생각 없었다.
다만, 호송차에 탄 후 지상으로 나가자...
갑자기 들려오는, 천둥같은 소리.
"""에고스틱을 석방하라!!!"""
"...?"
사면이 다 막혀있는 호송차라 밖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들려오는 사람들의 거대한 시위하는 것같은 고함소리에 나는 당황했다.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그렇게 그 뒤로도 비슷한 류의 소리가 계속 밖에서 들려왔고, 이는 차가 한참을 더 간 이후에나 사라졌다.
...아마도 내 팬들이 내가 잡혔다는 말에 단체행동을 하고있는 모양. 음, 이럴수도 있을거 같다고 생각을 해보긴 했는데 설마 진짜 이러고 있을줄은 몰랐다. 그래도 뭐, 어차피 소수일테니까. ...근데 생각해보니, 목소리가 좀 크던데... 소수 맞겠지? 몰라. 신경쓰지 말자. 설마 빌런을 두둔하는 사람들이 많겠어? 그런 현실은 있을 수 없다.
하여튼 그 뒤로 좀 더 달린뒤, 나는 드디어 내릴 수 있었다.
그렇게 수갑을 찬 채 드디어 땅을 다시 밟은 내 눈앞에 펼쳐진 것은.
휘이이이이이잉
탁 트인 푸른 바다가 펼쳐져있는, 찬 바람이 세차게 부는 바닷가의 모습이었다.
"이제 배로 갈아타야합니다...!"
그렇게 우리를 향해 손짓하는 요원을 보며, 나는 피식 웃은뒤 양 옆에 서있는 협회 직원들과 함께 죄수 이송선으로 향했다.
드디어, 카르케아스로 향할 순간이였다.
***
어느세 밤이 된 시각.
바다위, 세차게 흔들리는 배 안에서.
그곳에 앉아있던 나는, 창문 사이로 보이는 파도를 보며 뒤에 앉아있었다.
마치 좀 큰 모터 보트같은 배 뒤에서, 쇠창살을 마주하고 앉아있는 나.
밖에 검은 파도가 위협적이게 치고, 배 주위가 슬슬 안개로 자욱해지는 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드디어 곧 도착하겠구나.
그리고 몇십분이 더 지나 마침내.
그게, 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구우우우우우웅-
안개가 자욱한 검은 바다 뒤로 보이는, 거대한 회색 성같은 무언가의 구조물.
무섭게 파도치는 바다 한가운데에 있는 커다란 외딴 섬, 그 위에 어마무시한 크기로 펼쳐져있는 저 성이 바로.
빌런들의 무덤이라 불리는 감옥섬.
동부 카르케아스.
그 어떤 외부의 침입도, 도주도 허락하지 않겠다는듯 굳건한 기세로 서있는 그 모습을 창 너머로 보며 나는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역시, 이 세계에 와서 사진으로는 본적 있었지만. 실물로 보니 더욱 위협적인 비쥬얼. 역시 최악의 빌런들을 가두어놓는 카르케아스다운 모습이였다. 마치 중세시대 성과 회색빛깔의 최신식 건물이 뒤얽혀 있어 더욱 기묘해보이는 모습.
존재 자체로 위험한 초상 능력자들을 수감하기 위해, 인류의 지혜가 집대성한 최고의 요새인 이곳. 스타더스가 지금까지 잡은 빌런들이 전부 모여있을 이 카르케아스.
모든 빌런들이 두려워 마지않는 그곳을 향해, 나는 스스로 들어가고 있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저기서 탈옥하는 것보다 들어가는게 더 힘들어서 이러고 있는 거였긴 했다.
어쨌든 그렇게 배는 마침내 섬 앞에 멈췄고.
나는 지시에 따라 순순히 내려, 감옥 섬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뚜벅. 뚜벅.
온갖 귀찮은 검증작업과, 보안 프로토콜을 거친 끝에.
나는 마침내 그 거대한 감옥의 성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온 사방이 회색인 카르케아스 안 복도.
협회 직원을 양 옆으로 대동한 채, 나는 이 복도를 걷고있었다.
바깥의 기묘한 모습과는 다르게, 안은 상당히 최신식의 깔끔한 이곳.
그러나, 이 구역은 신축지역이라 그런거고... 내가 이 감옥에 이런식으로 잠입한 이유이자 목표인 태양신의 피조물, '소원을 이루어주는 자'가 가둬져 있는 곳은 아니다. 그곳은 이 카르케아스 설립과 함께 만들어져있기에, 상당히 낡은 곳이겠지.
이 카르케아스의 지하쪽에 위치해있을 그곳.
그리고 아마도 내 감방은 그 근처일 것이다. 빌런의 위험도에 따라 감옥 내에 가두는 곳이 달라지는데, 지금 대한민국에서 제일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나를 격리하는 곳은 이곳 심층부일게 당연.
그리고 그건 당연히도 내게 좋은 일이었다.
소원을 이루어주는 자. 놈이 있는 곳까지 가야하는데 가까울수록 좋지. 안그래도 이곳이 너무 크고, 위험한만큼 더욱 그렇다. 대신 아마 엄청 낡고 더러울거 같긴 한데... 어차피 여기 며칠 안있을거라 상관없는 일이였다.
그렇게 난 수갑을 찬 채, 망토를 휘날리며 계속 걸었다.
...사실 말이 수갑을 찼다는거지, 이건 별 의미도없긴 했다. 이게 능력 발동을 억제시키는 수갑인데, 지금은 이게 통하는 척 가만히 차고있지만 통할리가 만무. 물론 약한 순간이동은 잘 안되는게 맞지만, 힘을 축적해 그에 비례한만큼 염동력과 순간이동이 강해지는 나에겐 별 의미없는 일이였다. 그래도 차고 있어야 의심없이 이 감옥 안으로 들어오니까.
특히 나는 이곳에 들어왔어도, 가면에 모자에 망토에 외투까지 전부 그대로 착용하고 있는 상태. 약식재판 자체가 일단 위험한 빌런을 카르케아스에 격리해두고, 정식 재판 자체는 나중에 진행될거라 그런지 일단 한시라도 빠르게 카르케아스에 빌런을 집어넣는거에 열중하는 덕이였다 할 수 있다. 옷이 안벗겨지는 마법을 건것 만으로도 일단 다른 조치없이 감옥에 넣어버리니.
물론 이 모든건, 협회가 이 카르케아스의 보안에 대해 절대적인 자신감이 있기에 가능한 일.
'한번 들어오면 절대 나갈 수 없다'... 라는 말이 있기도 하니까. 물론 나에게는 해당사항 없는 말이지만.
"죄수 에고스틱. 이곳이 너의 방이다."
"...예, 알겠습니다."
하여튼 그렇게 마침내, 이 카르케아스 교도관의 안내에 따라 나는 내 감방에 도착했다. 안에서 밖이, 밖에서 안이 전혀 보이지 않는 완벽한 밀실.
이내 그곳에 들어간 뒤, 날 홀로 남긴채 방문이 쿵하고 잠기자.
지르륵. 탁.
드디어 저절로 풀린 수갑을 뒤로하고.
나는 그곳에 서, 마침내 큰 한숨을 내뱉을 수 있었다.
"하아..."
드디어 도착했다.
S급 빌런들의 무덤이라 불리는 이곳, 카르케아스에.
나는 수갑에 묶여있던 손을 탁탁 털며 미소를 지었다.
...과정이 좀 복잡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이곳에 들어왔다는거에서 이미 절반의 성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요새 그자체인만큼, 들어올 방법이 이거밖에 없었다고.
거기에...
"...휴우."
외투 주머니에 손을 넣고 몇가지 조작을 하자, 자연스럽게 손에 잡히는 물체를 느끼며 나는 한숨을 쉬었다.
...마법으로 숨겨, 녹음기 반입도 성공했다. 이제는 정말 다 계획대로 됐다고 할 수 있는 일.
그러던 나는, 문득 든 생각에 천장쪽을 봤다.
역시나 시시티비 따위는 없는, 텅 비어있는 모습.
빌런들의 인권을 생각해서...는 당연히 아니고. 원래 높은 등급의 빌런을 가두는 방일수록 그런게 없었다. 특이한 능력을 지닌 몇몇 놈들이 그걸 통해 시시티비를 보고있는 직원에게 최면을 건다는등 개짓거리를 해서 없애버린 것.
하여튼 이곳에 잠시 머물며 존버를 하다가, 적당한 때에 계획대로 탈주하면 되겠지.
...같은 생각을 하며, 나는 내 감옥 독방안을 둘러보았고.
"...?"
그제서야 나는, 무언가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방이 왜 이렇게 좋아?"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니, 분명 한참을 걸어서 온만큼 지하의 밀실 근처 낡은 방일줄 알았더니, 상당히 쾌적하고 커다란 방.
능력억제 장치들이 잔뜩 있긴 했지만, 무슨 샤워시설도 따로있고 방들도 크고 넓직넓직한 좋은 방이었다.
그리고... 제일 이상한건.
'...왜 침대가 2개지?'
나는 붙어있는 2개의 침대를 보며, 의아함에 속으로 중얼거렸다.
...대체 뭐지? 무슨 착오가 있었던게 아닐까?
내가 그런 생각을 하던 그때.
띠 띠 띠 띠.
띠리링.
갑자기 감옥 문 앞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며.
누군가, 내 감옥방 안으로 들어왔고.
대체 누군가하고 그곳으로 다시 나간 내가 보게 된 것은.
"...어?"
"안녕. 에고스틱."
금빛의 머리를 번쩍이며, 나를 향해 미소짓고 있는 스타더스의 모습이였다.
...무슨 캐리어를 들고.
그리고 그때쯤.
이미, 내 정신은 아득해졌다.
"아니..."
...대체, 이게 무슨 일이예요.
그렇게.
예상치 못한, 내 감금 생활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