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98 - 마지막 일기
이설아와 한 통화.
...내 말을 쭉 듣고 난 뒤 한숨을 쉬며 일단은 알겠다고 한 그녀의 말을 마지막으로, 나중에 더 얘기를 하기로 한 뒤에 나는 통화를 끊었다.
'저도 일단 최대한 노력은 해보겠지만... 아마 다인씨 말대로 수용소 내부로 몰래 침입하는건 힘들거같긴 해요.'
내게 그렇게 말하는 그녀였다.
다만.
'...그래도, 일단 꼭 붙잡혀 들어가신다고 하면 약식재판 과정에서 제가 카르케아스 최심층 쪽으로 배치시키게 할 수는 있을거같네요.'
그정도는 자신이 해줄 수 있다고- 말하는 그녀.
나는 그런 설아의 말에 그래주면 고맙다고 답했다. 그렇게 끝나기 전에 덧붙이던 그녀의 말
'...그리고, 조심해요 좀. 몸생각도 하고. 맨날 사람 걱정시켜.'
'하하. 미안, 그래도 이 방법밖에 없는걸?'
'...알겠어요. 일단 제가 더 알아볼테니까.'
그 뒤로 전화를 끝낸 뒤, 나는 펜을 손에 들고 고민하고 있었다.
소원을 이루어주는 자. 놈을 4페이즈 시작하기 전에 미리 없애버리는게 맞긴 한데...
'...이걸 지금 하는게 맞는건가?'
그래. 내가 고민중인게 그거였다.
놈과 관련된 메인 이벤트는 3페이즈의 최종장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아직은 3페이즈 전반인 만큼, 상당히 애매한 상황. 그러니까 원작과 다르게 벌써 놈을 없애는게 맞냐는건데...
'하긴. 내가 언제 원작대로 했다고.'
...물론 3페이즈 최종장의 하이라이트 이벤트를 초반에 후딱 없애버리는게 웃기긴 했지만, 뭐 어쩔 수 없었다. 미리미리 안해뒀다가 또 틀어지면 답이 없거든.
그렇게 나는 내 계획을 다시한번 점검했다.
스타더스에게 잡혀 카르케아스에 들어간 후 소원을 이루어주는 자, 보텀 인플렌스 놈을 물리친다. 이론상 참 아름다운 계획.
그리고, 놈이 3페이즈의 최종보스 중 하나인만큼.
한은그룹을 막기위해, 월광교를 막기위해 지금까지 늘 예전부터 다 대비를 해왔던 것처럼.
나는 지금까지, 이놈또한 대비를 해놨다.
"....휴우."
소원을 이루어주는 자.
자신에게 제일 소중한 어떤것을 바치면, 그 가치에 따라 소원을 이루어주는 놈. 다만, 아주 끔찍한 방식으로.
놈은 태양신의 피조물 중 하나인만큼, 굉장히 기묘한 생명체다. 일단 하얀 굵은 촉수들 사이에 앉아있는 전신이 그림자에 가려진 5살 어린아이 크기의 검은 생명체라는 설명부터 인간이 아니어 보이는 것처럼, 실제로도 우리와는 다른 차원에 존재한 것같이 보여서 처리하기 굉장히 까다롭다.
그런만큼, 나도 이미 이 세계에 떨어진 초반부에 머리를 굴려 놈을 물리칠 방법을 미리미리 떠올려놨다.
그리고 내가 준비했던게.
주기적으로 계속 써오던, 이 일기장이고.
"...자."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책장에 꽂혀있던 일기장을 꺼내 펼쳐봤다.
그러자 쫙 나오는, 이 세계에 떨어진 첫날부터 이때까지의 행적이 정리된 일기들.
...워낙 사적인 내용도 많이. 그러니까 원작이 이렇고 저렇고까지 구구절절 담았어가지고 아예 덩굴마녀에게 부탁해 나 외에는 열리지 않게 봉인한 책.
그리고 드디어, 이게 쓰일 때가 왔다.
"...이제 이거 쓰는것도 며칠 안남았겠네."
나는 그렇게 일기장을 쭉 훑어읽은 뒤, 그렇게 중얼거렸다.
대충 읽어봐도 이때까지의 행적이 머릿속으로 새록새록 떠오르는 느낌. 그래, 이정도면 충분하다.
그럼 이것도 됐고.
이제 남은건, 어떻게 잡혀서 카르케아스에 들어가는 거냐는데.
"...테러를 해야겠네. 오랜만에."
나는 펜을 빙그르 돌리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래. 테러, 생각해보니까 안한지 벌써 한참됐다. 마지막으로 한게 언제야? 생각해보니 월광교 이후로는 사실상 한번도 안했고, 월광교 전에 미사일 날려서 스타더스 훈련시킨게 마지막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잠시 멈칫했다.
'...잠깐.'
빌런인데, 테러를 거의 몇개월넘게 안하고 월광교 막고 던전메이커로부터 스타더스 지키는 등 이상한 짓들만 했는데...?
이거 위험한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스친 나는, 황급히 컴퓨터를 켜서 내 팬카페에 들어가봤다.
그러자 바로 나오는, 인기글 리스트들.
*
[바다망고 팬들은 대체 왜 많은건지 모르겠으면 개추ㅋㅋㅋㅋ]
[에고스타 << 물로켓 같으면 개추ㅋㅋㅋㅋㅋ]
[망붕이... 에고스틱 피규어 만들어왔다]
[Xxxxxx!!!던전메이커를 석방해라!!!xxxxxX]
[아리엘이 정실인 31가지 이유]
[데스망고 < 바다망고보다 더 근본 조합인데 왜 인기없음? 허어...]
[아리엘 음해하는 별첩들 필독.factpunch]
[아쿠아망고 = 걍 억지커플링 같으면 개추ㅋㅋㅋ라고 글쓰고있는 별첩이면 개추ㅋㅋㅋ]
[아리엘 <= 에고스틱 하나 보겠다고 라티스 버리고 온 정실 GOAT]
[아리엘 미모짤 모음.jpg]
[이새끼들 걍 오랜만에 새로운 커플링 나와서 신난듯ㅋㅋㅋ]
*
"...."
오늘도 늘 그렇듯 어질어질한 게시글들의 모습에, 나는 그냥 어이가 없었다.
...대체 바다망고는 또 뭐야? 아니, 그리고 부산 테러 일어난뒤로 벌써 며칠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이러고있다는 말이야? 그전에 내가 그때 카메라 가져가지도 않았어서 얘들이 아리엘 얼굴도 본적조차 몇번 없을텐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일단 이 사이트에 들어온 이유부터 떠올렸다. 그래, 테러. 내가 너무 오래 안일으켜서 사람들 반응이 어떤지 알아보려 했던거지.
나는 그렇게 사이트에 테러라고 쳐봤다.
그러자, 쭉 뜨는 게시글들.
[카페 이지랄난거 에고스틱이 다 테러 안해서인거 같으면 개추ㅋㅋㅋㅋ]
...첫글부터 그런 식이었지만, 난 일단 다른 게시글들도 읽어봤다.
*
[에고스틱 얘 왜 테러 안함???]
[망고 테러 기원 113일차]
[에고스틱 이젠 빌런 아닌거 대놓고 인정했는지 테러 하지도않네ㅋㅋㅋㅋㅋㅋ]
[(충격)최근 반년동안 테러는 하나도 안하고 선행밖에 안저지른 빌런이 있다?]
[에고스틱 테러 기다리는 망붕이들 < 이미 사망함]
[아 ㅋㅋ 그냥 방송이라도 꼬박꼬박 해주는걸로 만족하라고ㅋㅋㅋㅋ 요즘 뉴비들은 배가 불렀어ㅉㅉ]
[망틀딱들이 겪은 6개월의 노방송에 비하면 테러 안하는건 별거 아님ㅋㅋㅋㅋㅋ]
[소신발언)대체 왜 히어로한테 테러하라고 요구하는거임? 진짜모름.]
*
"...쓰읍."
거기까지 읽은 나는 깨달았다. 이거, 조금만 더나가면 큰일날 삘이라고.
애초에 내가 뭔짓을 하던 빌런으로 취급받을 수 있는 이유가 테러덕분. 살인 저질렀으면 뭘 해도 살인자인 것처럼, 내가 빌런으로써의 정체성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이유가 테러덕분이다. 너희들이 아무리 뭐라고 해도 얘는 테러 저지르고 다니는 나쁜 빌런이다! 이렇게.
그런데 이렇게되면 상당히 곤란해진다. 테러를 안하면 안할수록 점점 날 억빠하는 이들의 힘이 커지거든.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난 상관없지만, 문제는 다른 이들이다. 특히 카테달 이런쪽이 의심하기 시작하면 그야말로 큰일.
그러니까 지금이, 여러모로 테러를 해야할 때라는 것이다. 사실 건물 하나만 뿌셔도 테러는 성립해서 큰 문제가 없긴 하지만...
'그래...'
이 기회에 테러 큰거 하나 딱 일으키고 그대로 스타더스한테 잡혀서 감방 들어가면 되겠네.
난 그런 결론을 내렸다.
참 쉽죠?
"좋아. 그렇게 하자."
결심이 선 나는, 자리에 일어나서 방을 떠나 거실로 향했다.
그러자 마침 보이는, 오종종 모여있는 이들.
서은이가 앉아있는 아리엘한테 은월이랑 같이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는 모습이였다.
셋이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에 흐뭇하게 웃으며, 무슨말을 하나 가까이 가보니...
"그러니까, 스타더스의 약점은 다른 것도 아니고 멘탈이야. 일단 말로 정신을 뒤흔든뒤에 공격해야돼. 일단 아줌마라고 선공을 박고... 주먹공격이 특히 매서우니 절대 맞으면 안돼고..."
...무슨 스타더스 레이드 공략방법을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서은이였다.
그때, 그 옆에 서서 입을 여는 은월이.
난 은월이가 서은이를 말리려고 하는줄 알았으나.
"그리고 다인 오빠 건들려하면 빨리 도망쳐야해. 못건드리게."
...진지한 목소리로 오히려 거들고있는 은월이였다.
그걸 애매하게 웃으며 듣고있는 아리엘. 하긴, 아리엘은 그녀가 막 병에서 치유돼어 허약하던 시절... 내가 스타더스 일화를 침대 옆에 앉아 떠들어주며 칭찬을 막 해줬다. 그러니 수상할정도로 스타더스를 싫어하는 에고스트림 멤버들과는 다르게, 그녀에게 별다른 악감정이 없다는 소리.
하여튼 저 둘이 아리엘 괴롭히는 것도 멈추게 하기 위해, 나는 빨리 다가가서 그들을 불렀다.
"어, 오빠!"
나를 보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활짝 웃으며 반겨주는 서은이.
...스타더스한테도 저래주면 안될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포기하기로 했다. 하여튼, 중요한 말부터 빨리 전해야지.
"서은아, 너한테 할말이 있어."
"뭔데요?"
"우리 테러 한번하자."
"네? 진짜요? 드디어!"
내 말에 기뻐하는 서은이.
...그리고 나는 그런 그녀한테 제일 중요한걸 덧붙였다.
"아, 그리고. 이번에 난 일부러 스타더스한테 잡힐 생각이야."
"...네?"
그리고 그러자, 언제 그랬냐는듯 빠르게 굳는 서은이의 표정.
음, 이거 또 설명이 길어지겠구만.
난 조용히, 한숨을 쉬며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