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97 - 소원
"오빠. 다인 오빠, 뭐해요?"
에고스트림 대저택.
그곳의 앞, 정원의 호수 옆에 놓여있는 썬베드에 누워서 일을 하고 있던 나는 앞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보이는 호수 안에서 고개만 빼꼼 내민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푸른 머리카락의 아리엘.
이곳에서 생활하던 이후, 물에 있는게 편하다고 때때로 호수에 들어가 이렇게 수영을 즐기는 아리엘이었다.
"나 일하지. 조금 걱정거리가 있어서 말이야."
"흑... 오빠는 너무 일만 하시는거 같아요. 제 아버지도 이렇게까진 안했는데."
"어푸푸... 으, 맞아요 오빠! 막 온 아리엘이 그렇게 말할 정도면 오빠가 일중독이라는 뜻 아니겠어요?"
아리엘이 그렇게 말하던 그때, 뒤에서 허우적 헤엄치며 따라온 서은이가 물을 뱉으며 그렇게 말했다.
아리엘이 호수 앞에서 수영하는걸 보더니, 그녀를 따라 자신도 수영을 배워보겠다며 따라나온 그녀.
처음에는 얇아보이는 수영복 하나 입고 자신있게 나오더니, 아직 차가운 물과 자신의 수영실력의 한계를 깨닫고 아리엘이 입은것과 닮은 무슨 수영슈트같은걸 만들어 입고나온 그녀였다. 아직 완성판은 아닌 것 같았지만.
하여튼 그렇게 내가 일만한다고 투덜거리는 두 소녀에게, 뭐라 반박할 말이 없어 애매하게 웃기만 했다. 특히 서은이는 저렇게 말해도 날 도와 제일 오래 작업하기에 더더욱.
하여튼 내가 그러고 있을때.
내 옆 썬베드에서 같이 누워있던 신룡씨가, 나른하면서도 엄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서라. 다인은 세상을 구한다는 막중한 임무가 있지 않느냐. 그를 방해하지 말고 응원하는게 어떻겠느냐."
이 집의 최고 연장자다운, 어른스러운 말이었다.
...썬베드에 선글라스 끼고 누워서 한손에 얼음 든 모히또를 든 채 말하지만 않았어도, 더 멋졌을텐데.
대한민국 한곳의 수호룡이었던 신룡씨.
검은 머리카락을 뒤로 묶고 비녀를 꽂은 채 삼배옷을 입고있는 모습만 봐도 영락없는 옛사람의 모습이였지만... 최근 그녀는 현대문명에 빠르게 잠식된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몇백년간 봉인되어있던 그녀에게, 현대 과학이 선물해준 온갖 것들은 하나하나가 새롭고 좋기 마련.
그래도 거부감과 옛것과 자연을 중요시하는 그녀의 마음가짐에 의해 꽤 오래 버티던 신룡씨였으나... 딱히 우리가 별다른 시키는 것도 없고, 집 앞 숲에서만 머물다가 결국 수빈씨의 맛집기행에 의해 타락하고 만 모습이였다.
자연속에 운치있게 있겠다는 취지는 좋았지만, 그게 비녀를 낀 채 썬베드에 누워 얼음동동 모히또로 나타날 줄은 몰랐다...
"힝..."
하여튼 겉모습은 그래도, 신룡씨의 말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생각했는지 거품을 보글보글 내며 호수에 잠수하는 서은이.
...그래도 저 둘이 잘 놀고 있어서 다행이네, 뭐.
난 그렇게 서은이랑 아리엘에게 조금만 있다가 같이 놀자고 말을 덧붙인 뒤, 다시 노트북으로 시선을 돌렸다.
내가 보고 있는건, 몇주전부터 알아보던. 대한민국 유일 능력자 수용소 카르케아스안에 잠들어있는 '그것'.
그렇게 며칠간에 걸쳐 해외에서 정보도 구해가며 알아낸 결과.
나는, 지금 상황이 상당히 문제가 있다는걸 깨달았다.
"...쓰읍."
...이새끼를 어떻게 조지지?
나는 그렇게 잠시 노트북에서 눈을 땐 뒤, 멍하니 석양이 비치는 호수를 바라보며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내가 지금 대비하려 하고 있는 것은, 바로 3페이즈 안에 있는 그것.
빌런으로 취급돼 잡혀, 동부 카르케아스 최심층 제일 깊은 곳에 잠들고있는 고대의 존재였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3페이즈 마지막 이벤트 대탈옥에서 서은이 다음으로 제일 위험하던 적이자, 애초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잠재적인 위험을 끼치는 존재.
이계의 신과 관련이 있어보이는, 4페이즈의 예고편 역할을 하는 고대의 생명체.
카르케아스 수감번호 002.
소원을 이루어주는 자(votum implens)라고 불리는 놈.
"....."
요즘 빌런명과는 다르게 문장형식으로 되어있는 이름만 봐도, 놈이 얼마나 예전에 활동하던 놈인지 알 수가 있다. 영원히 탈출할 수 없다는 감옥의 성, 동부 카르케아스가 막 건립된 시절 제일 먼저 쳐넣은게 이놈이니까.
...아니, 사실 놈이라고 할 수 있나? 애초에 인간이 아니라 신적 존재인데.
"...쓰읍."
소원을 이루어주는 자. 국제협회 정식 명칭은 보툼 인플레스.
기묘한 하얀색의 굵은 촉수들 가운데 앉아있는, 5살 아이 크기의 검은색의 인영.
사실 놈은 빌런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애초에 먼저 사람을 해치지는 않으니까.
다만, 만약 자신에게 다가온 사람이 있다면. 놈은 그 사람에게 입을 열어 조용히 제안할 뿐이다.
너의 소원을... 내가 들어주마.
그래. 그렇게 '소원을 들어주겠다'라고 제안하는 놈.
그리고 당연히, 놈은 그에 대한 대가를 요구한다. 소중한 것을, 귀중한 것을 대가로 내놓으라는 요구를.
그리고 대가를 지불한다면, 놈은 소원을 이루어주기는 한다.
그걸 아주, 끔찍하고 잔인한. 결코 소원을 빈 이가 상상도 하지 못했을 방법으로 들어줘서 문제지.
...예를 들어 비가 내리게 해달라고 불면 폭풍이 불고, 저 여자가 나를 사랑하게 해달라고 빌면 소원을 빈 남자를 그 여자가 좋아하는 고양이로 변신시켜버리는 식이다.
딱 봐도 말도 안되고, 인간이 할 수 없어 보이는 일.
그렇기에 놈이 신적 존재라는거다. 정확히는, 예전에 스타더스와 함께 물리쳤던 그 기사처럼 태양신의 창조물들 중 하나지.
하여튼 그놈은, 원작 3페이즈 대탈옥 후반부에 등장한다.
놈이 잠들고 있는 감옥의 봉인이 풀려, 그것이 카르케아스 밖으로 빠져나가게 된 것.
그리고 감옥을 탈출한 한 빌런이 놈을 발견하며, 3페이즈 후반이 흑화한 서은이와 함께 2페이즈의 월광교 게이트 사건을 뛰어넘는 막장이 되는데 일조한다. 그때 독자들은 다들 실성해 이제 어디까지 막나가나 보자고 실실 웃으며 봤었지. 세계의 상황이 더 추락할 곳도 없어보였거든. ...참고로, 있었지만.
물론 원작과는 다르게 대탈옥은 일어나지 않을거고, 서은이도 흑화하지 않았으니 3페이즈는 무사할거라고 생각했었지만...
"..."
그래도, 대한민국 영토안에 저런 끔찍한 생명체가 있다는걸 알면서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특히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소원을 이루어지게는 하는 놈한테 '한국을 멸망시켜줘' 라던가, '스타더스를 죽여줘'라는 소원을 빈다고 생각하면...
"...그건 안되지."
그래. 가만히 있을수는 없었다.
특히 놈이 태양신의 창조물인만큼, 4페이즈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걸 생각하면 말이지. 원작에서는 놈을 3페이즈에서 없애버렸기에, 그놈이 4페이즈까지 살아있으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상이 안된다. 다른 태양신의 창조물들과 무슨 작용을 일으킬지 모르겠거든.
그렇기에 사실 난, 미리 놈을 없애려고 예전부터 마음먹었다. 미리 최소한의 준비는 해놨고.
'...슬슬 일기도 그만 적어도 되겠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다만 다른 급한 일들이 많았고, 놈이 딱히 도망가는 것도 아니었기에 구체적인 계획 자체는 지금까지 미루고 또 미루었기에.
그리고 그렇게 미룬 결과, 지금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서은이 힘으로도 카르케아스를 뚫지 못한다라."
톡. 톡.
나는 썬베드의 팔걸이 부분을 손으로 치며,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일단 카르케아스. 그곳에 들어가는게 지금 문제였다.
국제 협회가 지금의 위상을 가지게 해준, 전세계에 하나씩 있는 현대의 모든 능력, 기술이 집대성해진 초능력을 가진 빌런전용 수용소. 겉에서 딱봐도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어보이는 엄청난 위압감을 풍기는 안개낀 바다 위 그 거대한 감옥섬.
당연히 그곳의 보안은, 세계 최고 수준. 당장 월광 게이트를 넘어온 이계의 괴수들이 흠집하나 안낸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런만큼 나같은 순간이동자에 대한 대책도 확실하게 되어있는 그곳이고. 억지로 들어가봤자 자동화된 보안시스템에 의해 송장돼서 나올게 확실.
그렇다고, 무력으로 감옥을 박살내고 들어가는 것도 기각이었다. 그랬다가 다른 빌런들 방도 부숴서 탈옥시키면 그게 재앙이지.
거기에 이번에는 대한민국 뒷세계의 지배자 이설아의 도움도 받을 수 없다. 그쪽은 협회 관할에 치외법권이거든. 특히 아직까지는 협회장이 협회를 꽉 잡고있는 만큼 더더욱.
그나마 남은 선택지는 협회장이랑 거래를 하는건데... 그렇다고 구조 자체가 몰래 들어가기는 불가능한 구조였다. 엄격한 보안을 요구하는 만큼, 실시간으로 전부 감시가 있었거든.
그렇다면 역시.
이제 남은 방법은 하나였다.
"내가, 잡혀서 감방에 들어가야겠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혼자 씨익 웃었다.
...스스로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어서.
***
"하아..."
신하루를 떠나보낸 이후.
홀로 남은 이설아는, 며칠동안 고민을 많이 해서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대한민국의 경제, 법, 인선을 생각하는 것보다 친구 연애고민이 더 힘들다니, 남들이 들으면 웃을 얘기였지만 그녀에게는 심각한 문제였다.
특히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니 더더욱.
"흐응..."
그렇게 그녀가 펜을 돌리며 생각을 하고 있을때, 때마침 걸려온 전화.
"다인씨...?"
그게 에고스틱에게 온 전화라는걸 깨달았을 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활짝 미소지었다. 무슨 일일까?하고.
그리고.
"...네? 뭐라고요?"
...전화를 받고 나서, 그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스타더스에게 잡혀서, 감방에 들어가시겠다고요?"
대체 자신이 들은 말이 맞는 말인건가.
재차 확인한 그녀는, 휴대폰을 잡은 채 이내 깊은 한숨을 쉬며 자리에 허물어지듯 등을 기대 누웠다.
'...대체 이 둘은.'
왜 쌍으로, 나한테 이러는거야......
이설아는 울고싶은 심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