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91 - 얼어붙은 바다
"쓰읍..."
부산, 바다 위 파도가 치는 하늘.
그곳에서 이설아를 품에 안은 나는 혀를 차며 하늘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슴이 웅장해지네..."
거친 파도들과 회오리같은 것들이 가득한 환장의 콜라보.
이젠 바다 저쪽에 소용돌이 같은것마저 요동치고 있는게, 이게 부산인지 캐리비안 베이인지 슬슬 헷갈릴 지경이였다. 대한민국은 오늘도 시원합니다 여러분.
"다... 에고스틱씨. 왔어요?"
그리고 내 앞에서 안긴채 씨익 웃고있는 이설아.
긴 하늘색 머리카락을 내 가슴에 비비고있는 그녀한테,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예 아이시클씨. 뭐하고 계셨습니까?"
"보면 몰라요? 테러를 막고있었죠."
그런 내 말에 당연하다는 듯 웃으며 답하는 그녀였다.
...빌런이 히어로와 공중에서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는 이 상황이 황당해보일만도 하지만, 사실 이미 스타더스와도 비슷한 상황이 꽤 있었어서 꽤나 익숙한 기분. 어차피 카메라도 안챙겼으니 남 눈치볼껀 없지.
어쨌든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잠시 아이시클을 놓아주고 상황을 살폈다.
쿠구구궁-
상황은 겉보기에는 매우 좋지 않았다.
하늘쪽에선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무슨 번개까지 치는 상황. 거기에 바다는 무슨 회오리에 소용돌이에 해일에 대충 물관련 모든 재난은 다 모아져있는 것 같았다. 겉보기에는 거의 무슨 부산 멸망의 현장.
...그러나, 잘 보면. 압도적인 비쥬얼에 지래 쫄지않고 찬찬히 상황을 잘 봐보면 뭔갈 알 수 있었다.
바로 이 모든 재해들이 살벌한 비쥬얼과는 다르게, 딱히 도시를 박살내고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소용돌이도, 회오리도, 폭풍같은 것들도.
다 바다 위에서 엄청난 기세로 맴돌고만 있지, 딱히 도시쪽으로 오지는 않았다. 쓰나미도 계속 막혀서 해안선만 때리고 있었고.
물론 저게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다만, 지금은 그렇다는 소리.
그렇게 현장에서 보이는 모습을 통해, 나는 아리엘이 왜 이런 일을 일으켰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무력시위인가?'
저번에 아리엘이 내게 에고스트림에 들어가고 싶다고 했을 때, 내가 그녀가 약하다는 이유로 거절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 굉장히 침울하게 돌아갔어서 단념한 줄 알았는데, 아니였나보다. 이렇게 서프라이즈로 돌아온 걸 보면.
아마 이 테러는 내게 스스로가 강하다는걸 증명하기위해 벌인 일같다. 특히 내 스타일대로 사상자가 안나오게 살벌한 스케일의 테러와는 다르게 그렇지 못한 소극적 공격을 보면.
그래, 저 바다 위쪽에 있을 아리엘과 대화를 더 나눠보면 알 수 있겠지. 내가 몇마디 더하면 멈출 것 같기도 하다.
다만, 내게 더이상 그건 문제가 아니였다.
오히려 다른 생각이 있었지.
"하아, 에고스틱씨. 어때요? 이제 그만 끝내러 같이 갈까요?"
비오는 바다 위.
물에 젖어 옷에 달라붙은 티셔츠를 말리기 위해 얼음을 만들며 나를 올려다보고있는 아이시클을 보며, 난 그런 생각을 했다.
이설아.
이명은 A급 히어로 아이시클.
한국에서 제일 큰 대기업 유성그룹의 사장이자, 스타더스의 제일 친한 친구. 그리고 원작에서도 지금도 대한민국을 뒤에서 지배하는 흑막.
그렇게 정재계를 손에넣고 뒤흔들며 한 나라를 가지고 노는 압도적인 뒤의 모습과는 다르게.
사실, 그녀의 히어로써의 능력은 다른 A급들에 비해 상당히 부족한 편이었다.
너무 강해 혼자서 S급 히어로로 상향된 스타더스와, 밤시간에 한정해 S급을 넘어서는 능력을 내는 섀도우워커와는 다르게... 그저 평범한 얼음 생성 능력으로 A급일뿐인 그녀. 그렇기에 그녀는 원작에서도 히어로로써는 딱히 큰 활약을 보여주진 않았다. 본인마저도 스스로의 능력을 셀프PR용으로 여겼고.
그러나, 원작에서는 그런 히어로 아이시클에게도 엄청난 위기가 찾아왔었다.
바로 한은기업이 만든 재앙. 베헤모스를 처치해야하는 막중한 사태가 벌어졌던 것.
한은기업이 생체실험을 통해 만든, 거대한 검은 지렁이같은 그것. 원작에서 홀로 서울을 망가트린 후, 그대로 북한까지 직진해 이북에 똬리를 틀어놓은 그 괴수.
이에 니들이 만든 똥이 국경선 넘어 우리 땅을 개판냈다고 진노한 북한측의 엄청난 항의와 협박과 전쟁이라 낼 기색에, 결국 이설아가 대표로 북한에 자리잡은 그 괴수를 처치하러 갔다. 그 괴수가 물에 약했기에. 얼음을 만들 수 있는 그녀는 나름 상성이 나쁘지 않다는 논리로... 사실 스타더스가 그때 바빴고 섀도우워커는 북측이 절대 오지말라고 엄포를 놓아서기도 하지만.
하여튼 그게 이설아 인생 최대 위기였었다. 머리로 모든걸 해결했던 전과는 다르게, 순수하게 자신의 능력으로 상황을 극복해야 했으니까.
그래도 결국 그녀는 자신의 힘을 그 괴수와의 전투에서 100프로 활용해 승리하는데 성공했고.
그 과정에서 그 지역 근처 바다 전체를 완전히 얼려버리는 엄청난 광경을 연출해, 그 이후 북해빙녀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된다.
원작에서 유일하게 있었던, 히어로 아이시클로써의 이설아의 성장 에피소드였던 베헤모스 퇴치.
...물론, 이건 원작에서만 일어났던 일이되었다. 내가 다리를 박살내 베헤모스를 한강에 빠트려 죽여서 그 북한과 엮인 일이 아예 없게 됐거든. 그 결과 아이시클이 북해빙녀라는 별명을 얻게 된 일도, 그녀의 능력이 성장할 기회도 없어지게 됐지만.
그래서 사실 이 부분이 좀 찜찜했었지만, 그래도 그냥 당장 아이시클 그녀의 능력을 성장시키는게 급한건 아니니 참아왔었다. 은퇴 후에 아이시클만 좀 봐줄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그때되면 또 4페이즈에 내가 따로 손봐줘야 할 애가 있기도 했고.
그렇게 그냥 아이시클은 성장기회없이 넘어가나 생각했었는데...
어라? 이렇게 생겼네?
"...뭘 그리 빤히봐요?"
내가 조용히 이설아를 내려다보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그런 내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이설아는 약간 귀가 붉어진채로 팔짱을 껴 몸을 가린 채 고개를 살짝 돌렸다. 아니, 그런게 아닌데... 뭐 됐나.
"아이시클씨."
"...네?"
난 그렇게 폭풍우치는 바다를 보며, 씨익 웃고는 그녀에게 말했다.
그렇게 미소짓는 나를 보며 뭔가 불길함을 느꼈는지 살짝 떠는 그녀.
나는 그런 그녀의 어깨를 잡은 채 저 해일을 가리키며, 그녀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저 빌런을 제가 설득하기는 하겠습니다만... 그전에, 아이시클씨가 저 파도와 소용돌이를 다 멈추는게 어떨까요?"
"...하하, 에고스틱씨이..? 그게 무슨 말씀이예요. 그냥 순간이동하시면 되는게... 아니, 다인씨. 제가 저걸 어떻게 멈춰요."
"어떻게 멈추긴요. 다 얼리면 되죠."
"...? 아니, 네? 저걸, 제가 얼리라고요?"
"네. 이번 기회가 생각해보니 아이시클씨를 성장시키기에 제일 좋은 기회같더라고요. 저기 봐봐요."
나는 그렇게 이설아에게 저 해일이 도심쪽에는 딱히 별 영향을 안미친다는 점을 상기시켜준 뒤, 그녀의 등을 두들기며 말했다.
"자! 아이시클 파이팅!"
"...다인씨! 잠깐만요 전 스타더스가 아니라고요... 아니 야 에고스틱!!!"
난 그렇게 순간이동을 해서 뒤에서 날 붙잡으려드는 이설아로부터 빠져나왔다.
그렇게 내가 이동한 곳은 저 위의 하늘.
그중에서도 거대한 폭풍이 치고있는 곳이었다.
아마 딱봐도 저기에 아리엘이 있을거같구만.
"...미리 위치는 파악해놓는게 좋겠지?"
난 그런 생각과 함께, 일단 주위를 날아다녔다.
...곁눈질로는, 내 아래 끙끙거리고 있는 아이시클을 살펴보며.
***
"이런 나쁜...."
부산 앞 바다.
그곳의 얼음을 마치 어릴적 하루랑 같이보던 얼음여왕마냥 바다 위를 얼리며 걸은채, 이설아는 하늘색 머리카락을 질끈 묻고 파도를 향해 가고있었다.
...이걸 어떻게 얼려. 아무래도 다인씨가 스타더스랑만 놀다보니 히어로들의 능력이 다 그정도 되는줄로 착각한거 아닐까. 애초에 능력이 성장하는 히어로는 스타더스말고 듣지도 않았는데, 이게 되겠냐고..!
똑똑한 기업가답게 자기 자신에 대한 객관화도 뛰어난 그녀였기에, 스스로의 한계를 잘 알았다. 이걸 할 수 있을리가 없을거라는걸.
그렇게 앞에서 거세게 파도치는 물방울을 보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던 그녀는.
'...아이시클 파이팅!'
자신이 할 수 있을거라 굳게 믿는 표정으로 응원하던 다인의 모습을 상상하며, 살짝 흔들렸다.
...그래. 그래도 다른 누구도 아니고 그 에고스틱이 한 말인데. 당연히 그녀가 할 수 있을거란 근거가 있으니 그런 말을 한게 아닐까.
.....힘을 최대로 주면, 될려나?
아, 씨 몰라. 하다가 쓰러지면 에고스틱이 구해주겠지.
내가 진짜 이성적인 사람인데, 에고스틱이랑만 엮이면 그게 안돼... 하아. 진짜 책임져야해...
그런 생각을 하며, 그녀는 티셔츠를 걷고 숨을 들이마쉬었다.
그래. 한번 해보자. 지금까지 내 능력을 전부 쓸 기회가 없었으니까 그런걸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화아아아아악. 화아아아아아악.
굉음을 내며 그녀를 그림자지게 할 정도로 크게 오는 쓰나미같은 두번째 파도를 보며.
"흐아아아아!"
이설아는 마음을 다잡고, 지금까지 없던 힘으로 손에 얼음 결정들을 만들어냈고.
쏴아아아아아아아
그렇게 그녀를 중심으로, 일렁이던 바다들이 엄청난 기세의 하늘색의 얼음으로 전부 얼어붙기 시작했다파도도, 소용돌이도.
"으으으으으....!!!"
그리고 이때까지 한번도 해보지 않은, 이를 악물고 전력을 다해 쏟아붇는 이설아의 노력에.
마침내, 하늘로 솟아있는 회오리마저.
쩌저저저저적
끝내, 얼어붙는데 성공했고.
그렇게, 어느새 마치 얼음 왕국마냥 얼어붙은 바다 위에서.
모든 힘을 다 쏟은 이설아는, 빙판위에 털썩 쓰러졌다.
"하아, 하아. ...성공했나?"
"네. 성공하셨습니다 아이시클씨. 역시, 하면 되잖아요."
그때. 박수를 치며 하늘에서 검은 망토를 펄럭인채 내려오는 한 남자.
미소를 지은채 다시 돌아와 자신을 향해 팔을 내미는 에고스틱을 보며, 아이시클은 자신도 모르게 힘겹게 피식 웃으며 그 팔을 잡고는 말했다.
"에고스틱씨. 역시 전 사무직이 어올리는거 같네요."
너무 힘들었다.
*
그리고 그시각.
"....어라?"
막 도착해, 웃으며 손을 잡고있는 에고스틱과 아이시클의 모습을 보게 된 스타더스는 얼어붙었다.
...둘이, 언제 저렇게 친해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