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가 집착하는 악당이 되었다-284화 (284/328)

Chapter 288 - 오래동안 보지 못한

카테달이 열리는 대성당.

창이라고는 스스로 빛을내 밖이 보이지 않는 스테인글라스밖에 없는, 이 텅 빈 원탁의 방에서.

나는, 셀레스트와 독대하고 있었다.

'...흐음, 우리 에고스틱을 왜 부르는거지? 나도 같이 있어도 되냐?'

'죄송합니다 아틀라스. 둘만이 나눠야 할 대화가 있어 어려울 것 같네요.'

'하아. 그럴 순 없...'

'아틀라스, 걱정하지 마시고 먼저 가세요. 대화하는게 어려운 것도 아니고...'

'어허! 그래도...'

...끝까지 안가려고 버티는 아틀라스와, 나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던 카타나를 겨우 보내고 마침내 성사된 자리.

그렇게 모두가 우리를 흥미로운 시선으로 보더니 떠난 원탁에서.

난, 셀레스트와 마주 앉아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좆됐군.'

평온하게 차를 한잔 내온 셀레스트를 보며, 난 그런 생각을 했다.

월광교 사건을 내가 막은 이후, 셀레스트에게 관련한 언급이 있을거라 생각은 했다. 내가 신과 차원의 존재를 언급하기도 했고, 월광교때 은월이 시켜 마법도 쓰고 다른 차원도 왔다 갔다하고 했으니까.

...그렇다고 이렇게 노골적으로 단둘이 보자고 말할줄은 생각도 못했다.

어딘지도 모를 셀레스트의 홈그라운드에서, 내 편 하나 없이 원작에서 제일 강하다고 평가받는 그녀와 함께 있으니 입에 침이 마르는 기분.

물론.

겉으로는, 절대로 그런 티를 내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여유롭게, 마치 당신이 나를 왜 불렀는지 안다는 것처럼.

나는 입가에 미소를 띄운 채, 그녀가 내온 차를 마시며 자연스럽게 셀레스트를 관찰하고 있었다.

하얀 백발을 늘어트린 채, 성스러워 보이는 성녀복을 입고 눈을 감은 채 조용히 미소지으며 앉아있는 여성.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빨려들어 갈듯 신비로운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그녀의 얼굴을 내가 관찰하고 있던 그때.

셀레스트는, 이내 찾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에고스틱. 이렇게 남아주셔서 기쁘네요."

"저야말로 셀레스트씨가 불러주셔서 영광입니다. 이렇게 절 부르신 이유가..?"

"음..."

그렇게 잠시 눈을 감은 채 싱긋 웃으며 내쪽을 바라보던 그 순간.

훅-

갑자기, 이곳의 기온이 몇도는 떨어진 듯한 한기와 함께.

여전히 싱긋 웃고있지만, 확연히 차가워진 기운으로.

셀레스트는, 내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에고스틱."

"당신은, 신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있죠?"

그렇게.

갑자기 엄숙해진, 차가운 분위기 속에서.

"하하."

나는, 그저 여유롭게 피식 웃으며.

손에 깍지를 끼곤 미소지은채 답할 뿐이였다.

"...알만큼은 압니다. 태초에 세 신이 이 세계를 창조했고, 그들이 지금은 자취를 감췄다는건요."

난 거기까지 말하고는 여전히 생글생글 미소를 지으며 셀레스트의 쪽을 바라봤다.

저쪽이 먼저 싸가지없게 했으니 이정도는 괜찮겠지.

여전히 무언가 기묘한 감각이 내 몸을 감싸기는 했지만, 그와는 별개로 난 미소만 지을뿐 다른 대답은 하지 않았다. 응, 백날 니 능력 써봐라. 나한테 통하나.

그렇게 내가 꿈쩍도 안하고 버티고 있자.

이내 그녀는 빙그래 미소짓더니, 여전히 천사같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혹시 신들의 존재를 어떻게 알았는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뭐 저도 잘 모르겠네요. 어쩌다보니 알게된거라."

난 웃으며 그렇게 답했다.

좀 돌려말하긴 했지만, 그냥 대놓고 응 안알려줘~라고 한것과 동일.

그렇게 여유롭게 웃고 있었지만.

속으론, 나는 이미 잔뜩 긴장한 채 머리를 미친듯이 굴리고 있었다.

내 앞에서 눈을 감은채 미소짓고 있는 가련해보이는 아름다운 백발의 여인의 정체가 무엇인가.

셀레스트. 전세계에서 제일 위험한 빌런을 한명 꼽으라하면 거의 무조건 1위로 꼽히는 인물.

미국쪽에서 거의 절대적 공포로 군림하는 그녀는, 그 날고기는 히어로들조차 건들지도 못할만큼 위협적인 빌런이다. 남들이 능력 하나에서 두개, 많으면 3개 가질때 혼자 몇십개나 가졌는지 모르니까. 그녀의 예전 영상을 살펴보면 거의 걸어다니는 재앙 수준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나는 오히려 뻥카를 쳐야했다. 그런 그녀의 앞에서도 당당하게 웃으며, 마치 뭔가 엄청난 비밀을 아는 것처럼. 나도 너처럼 강하다는 식으로.

지금까지 내가 해온 일들로 충분히 가능한 일이였다.

태양 신의 추종자인 그녀인만큼, 달의 신과 관련된 월광교는 잘 모를테니. 그리고 난 그걸 정확히 알고있었고.

그리고 그런 내 반응을 조용히 눈을 감은 채 보던 그녀는.

이내 잠시 미소짓더니, 차를 한잔 더 마시며 내게 입을 열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오늘일은 다른 물어볼게 있어서 부른거니까요. 그럼, 에고스틱."

"네."

"당신이 어떻게 월광교와 관련된 일들을 안건지, 묻지는 않겠습니다. 사람은 자기마다 비밀이 있는 법이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나는 순간 멈칫했다.

...뭐야, 그거 물으려고 부른거 아니였어? 그쪽은 다 변명 생각해놨는데.

내가 그런 생각을 하던 그때.

그녀는 따스한 웃음을 머금은 채 입을 열어, 내게 말했다.

"다만, 저는 앞으로도 당신과 협력하며 지내고 싶어한다는걸 알아줬으면 하네요. 전 당신의 적이 아닙니다."

"하하. 저희 카테달의 수장이신 셀레스트를 제가 적으로 생각할 리 있겠습니까."

나는 그녀와같이 웃으며 그렇게 회답했다.

너도 웃고, 나도 웃고... 아까까지 여기 기온을 뚝 털어트리면서 날 겁박하려 한건 깔끔하게 잊은 모양.

일단 대충 그녀의 말을 알아들었다.

저건 일종의 경고. 이번에 내가 한게 뭐였는지는 몰라도, 그녀를 제외하고 이렇게 신에대해 잘 아는 사람에게 하는 경고였다.

아마 오늘 부른게 이것때문이겠지. 나와 대화를 해 내 생각을 떠보고, 이 말을하기 위해서. 내가 뭔짓을 하던간에, 그녀를 화나게 할 짓을 하지 말라는.

...그녀또한, 내게 꽤나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모습이였다. 아마 내가 어디까지 알고있고, 얼마나 큰 힘이 있는건지 모르니까.

그나마 나쁘지않은 얘기였다.

여기서 노골적으로 날 들이박았으면 상당히 곤란하게 전개될 뻔했거든.

난 그렇게 차를 한잔 더 마시며 빙긋 웃었다.

...여기에 약을 타진 않았을지 걱정이 되니, 집가서 하율이한테 해독시켜 달라고 해야겠다.

하여튼 그 이후, 나는 셀레스트와 몇마디 대화를 더 나눴다.

물론 거의 쓸데없는 이야기긴 했지만, 뭐. 서로 웃으면서 마음에도 없는 이야기를 하는건 익숙하니까.

그리고 그렇게 몇분이나 지났을까.

"아. 이런, 시간이 벌써 이렇게나 많이 흘렀네요."

다행히 셀레스트 쪽에서 먼저 슬슬 자리를 끝내자는그런 말을 해줬다.

"그렇군요. 저도 슬슬 가봐야겠네요. 동료들이 기다려서. 하하."

"예. 조심히 가세요."

그렇게 난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대로 웃으며 인사를 한 뒤, 뒤도 안돌아보고 런했다.

...몇마디 나누지도 않았는데 정신력이 소모되는 기분. 그저 침대에 눕고싶을 따름이였다.

늘 말하지만, 빌런으로 사는게 결코 쉬운일이 아니였다...

그렇게 원탁을 빠져나온 이후.

혹시 무슨 일 있나하고 걱정하던 아틀라스와 동아시아 빌런연맹 일원들에게 괜찮다는 연락을 남긴 나는, 그대로 집에 돌아갔다.

...그리고보니 최근들어 아틀라스네 도시에 못갔네. 나중에 가야겠지.

***

아틀라스가 세운 도시, 라티스 시티.

그곳에 신전 옥좌에 앉아있던 아틀라스는, 자신의 딸을 잠재우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에고스틱 오빠가 오늘도 못오신다고요?"

"그래. 이번에 그 셀레스트와 대화를 한 후 생각할 거리가 많다고 하더구만. 그 허허 웃기만 하는 하얀 여자와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는 모르겠구만 그려. 다음에 물어..."

그렇게 아틀라스가 하는 말은, 그녀의 딸 아리엘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그렇구나. 오늘도 못오시는구나."

푸른 머리카락을 축 늘어트린 채, 어두운 힘없는 표정으로 있는 아리엘.

저번에 그의 빌런연합 에고스트림에 들어가고 싶다고 그에게 부탁했으나, 몸이 약하다는 이유로 거절당한게 벌써 오랜 시간 전의 이야기다.

그이후 열심히 단련한 아리엘은, 자신의 능력을 에고스틱에게 입증받고 다시 그에게 부탁하는 꿈을 꿨으나...

그건 일단 그가 이곳에 와야 가능한 이야기.

월광교 재앙부터 여러 일들때문에 계속해서 바빠 이곳에 오지 않던 에고스틱에 의해 그녀는 그를 계속 기다렸으나... 결국 그는 그녀의 아버지와 함께한 빌런 연합 회의를 한 날조차 오지 못했다.

그러는동안...

[에고스틱. 너 손 크더라...]

"...윽."

이미 티비와 인터넷을 통해 한국이 돌아가는 상황을 빠삭하게 알고있는 아리엘이였기에,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가 어떤 일들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대로가면 자신이 잊혀진다는 것도.

그렇게 오래 고민하던 아리엘은.

"...그래."

이내 눈에 빛을 잃고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분이 오지 않는다면, 내가 직접 찾아가면 되지."

그녀는 이미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했다.

대한민국으로 가자. 그가 결코 자신을 무시할 수 없는 방법으로. 그녀가 이제 강해졌다는 것도 보여줄 수 있게.

그렇게 아리엘은, 자신의 푸른 머리를 휘날리며 어디론가 사라졌고.

"...우리 딸이 뒤늦은 사춘기인가."

혼자 중얼거리다 어디론가 성큼성큼 걷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아틀라스는 한숨을 쉴 뿐이였다.

...자신의 딸이, 나중에 어떤 일을 벌일지도 모른 채.

***

"...왜 또 한기가."

"한기요? 오빠 괜찮은거 맞아요? 한번 더 치유해드릴까요?"

에고스트림 저택 침대.

그곳에서 때아닌 한기를 느낀 나는, 몸에 타오르는 불길한 감각에 나도 모르게 떨었다.

...셀레스트, 그 여자가 진짜 차에 뭐 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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