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85 - 그녀의 발언
서울의 도시.
테러로 인해 텅 빈 그 거리의 중앙에는, 꽤 거대한 하얀 기둥이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서 눈을 감은 채, 기둥에 손을 갖다대고 있는 검은 머리의 선글라스를 한 여자.
그리고 그 주위는, 이미 달려온 협회 직원들에 의해 포위되어 있었다.
아직까지 그 안에 들어간 스타더스가 어떤 상태일지, 저 빌런을 건들면 어떻게 될지 몰라 다들 총을 겨눈채 상부의 명령을 기다리며 경과를 지켜볼 뿐.
...중간중간 던전메이커라는 그 여자 빌런이 이상행동을 해서, 다들 움찔거릴때가 많긴 했지만.
하여튼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두두두두두두두
마침내, 그 하얀 기둥이 흔들리고.
이내 황급히 손을 땐 던전메이커가 물러난 그 순간.
쾅-
마침내 그 기둥이 폭발하며, 주위가 하얀 가루같은걸로 뒤덮혔고.
"콜록, 콜록."
이내 그 안에서, 두명의 인영이 모습을 비췄다.
그리고 그 중 한명은 당연히 나고.
"아이고..."
힘들다, 힘들어.
던전메이커가 만든 미궁 속.
그곳의 마지막 방까지 탈출한 우리는, 이내 인지의 길을 따라 다시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기묘하게 검은 공간을 하염없이 걷다, 마침내 하얀 장막을 걷고 눈을 뜨니 다시 펼쳐진 푸른색의 하늘.
서울의 도심 한복판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괜찮으십니까, 스타더스씨?"
"...으응."
그렇게 다시 돌아온 우리의 눈앞에 바로 보인건.
"하아..."
팔짱을 낀 채, 선글라스를 쓰고 한숨을 하고있는 던전메이커였다.
그런 그녀가 우리를 보자마자 바로 한 행동은.
"항복할게."
싱긋 웃으며, 두 손을 들고 투항한 것이였다.
...아니, 엄청 빠르네.
하긴, 맞는 판단이기는 했다. 이미 힘도 다 썼을테고, 나처럼 순간이동 능력이라도 없는 이상 이제와서 도망쳐도 늦었으니까. 괜히 추하게 잡히느니 이렇게 깔끔하게 잡히는게 맞지.
다만 좀 이상하긴 했다. 우리가 마지막 방을 파괴했을 때 쯤 그때 빠르게 도망쳤으면 성공했을 수도 있을텐데, 왜 포기하는거지?
...사실 오늘 처리하지 못하고 이렇게 감옥으로 넘기는게 좀 불안해서 그러는거다. 이미 투항한 빌런을 내가 또 어떻게 하기도 보기에 애매하고. 이미 스타더스가 그쪽으로 가고 있기도하고. 씁. 쟤 능력 자체가 너무 위험한데. 뭐 어쩔 수 없나.
"...그럼, 여기서 체포하겠다."
그렇게 스타더스가 나서는 동안.
나는 먼저 내 카메라부터 챙겼다. 이거 어딨냐? 아, 여기 박혀있네.
그러면서 다시 연결된 채팅창또한 띄운 순간.
...그야말로 수백개의 채팅이, 물밀듯 올라오기 시작했다.
*
[드디어 왔다 드디어 왔다 드디어 왔다]
[망끼야아아아아아악!!!]
[왜 이제야 와... 왜 이제야 와... 왜 이제야 와... 왜 이제야 와... 왜 이제야 와... 왜 이제야 와... 왜 이제야 와... 왜 이제야 와... 왜 이제야 와... 왜 이제야 와...]
[망고스틱은 당장 안에 있었던 일을 썰 풀어라!!!]
[우리가 몇시간 기다렸는지 알아? 나 추웠어...]
[아니 시발 둘이 대체 그 안에서 뭐한건데 빨리 말해 앍아아ㅐㅇ그ㅅ]
[안에서도 영상 찍었지??? 그런거지??? 방송 나중에 풀거지????]
[에고스틱_스타더스_미궁_속에서_단둘이.avi 빨리 풀라고!!!]
[스타더스 볼 살짝 붉은거같은데 뭐임??? 해 명 해. 해 명 해. 해 명 해. 해 명 해.]
*
그야말로 곱창이 나버린 채팅창.
나는 그제서야 상황을 파악했다. 아, 나 저 미궁속에 있던동안 방송이 틀어져 있었구나? 이 남은 시청자들은... 음, 대체 왜 남아있는거지? 뭘보고 있었던거야?
뭘 보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기다렸다는듯 채팅창이 활활 불타는걸 봐선 별로 재밌는걸 보고 있었진 않았나보다. 스크롤이 끝이 없어.
하여튼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동안, 스타더스는 어느새 던전메이커의 기계팔들을 때고 그녀를 붙잡은지 오래였다.
나야 뭐 스타더스도 잡으려해봤자 도망칠게 뻔할걸 알아서인지, 일단 던전메이커부터 무장해제 시키고 있는지 오래였고.
...던전메이커, 원작이랑은 다르게 그래도 쉽게 처리한 편이네. 사상자 한명 안나왔고.
이제 볼 일 없겠지..? 그렇겠지?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며 그 광경을 보고있던 나는.
나도 모르게 저 앞쪽의 던전메이커에게 툭 물었다.
아니, 그건 그거고. 이건 묻고 가야겠다.
"야. 저기, 던전메이커씨?"
"...흐응, 왜?"
내 말에, 고개를 돌리며 내쪽을 바라보는 그녀.
묘하게 협조적이여 보이는 그녀에게, 난 제일 궁금했던걸 물었다.
원작이랑 달랐던, 단 한가지 차이점을.
"그, 마지막 방의 탈출조건은 대체 왜 그렇게 둔겁니까?"
그래. 난 이게 제일 궁금했다.
아니, 누가봐도 거기선 원래처럼 서로 죽여야 나올 수 있다고 조건을 걸어야지. 대체 키...스가 왜 튀어나온단 말인가.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아니, 진짜 키스정도야 눈딱감고 했으면 어쩔껀데?
참고로 내가 그 얘기를 꺼내자, 의도치않게 스타더스또한 타격이 갔는지 잠시 움직임이 멈칫한 그녀의 볼이 붉게 물들었다.
그리고 그런 내 말을 들은 던전메이커는, 묘하게 웃더니.
"흐으음... 왤까?"
이러고 있을 뿐이였다.
에휴, 그래. 뭔가 알아내려한 내 잘못이지. 애초에 빌런들은 다 정신이 나갔으니, 뭐.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하자.
"...그래도 뭐, 이제 거의 다 온거같긴 하고. 조금만 있으면..."
뭐라뭐라 더 중얼거리고 있기는 했는데, 그런게 중요한게 아니였다.
중요한건 방금 우리의 일렬의 대화로, 채팅창이 더 불타오르기 시작했다는게 문제지.
*
[마지막 방의 탈출조건이 뭐였는데 시발!!!!!]
[스타더스 왜 얼굴 붉어짐짐? 대체 마지막방이 뭐였는데 시바라마 아앜]
[왜 우리빼고 너네들끼리만 아는 얘기해? 이러지 말자고 같이 웃자고 나한테 왜그러는데~]
[자기가 지금 무슨 대화가 오가는건지 1도 모르겠는 망붕이면 개추ㅋㅋㅋㅋㅋ 일단나부터 ㅅㅂ]
[저희 100만 별먼지 팬카페는 둘이 저 안에서 뭔짓을 한건지를 상세히 설명드리기를 간곡히 요청드립니다 제발... 제발......]
[에고스틱이 오늘 썰 더 안풀면 바지에 똥쌀거임. 경고했다.]
[위에 놈은 뭔데 ㅅㅂㅋㅋㅋㅋ]
[그래서 마지막 방이 뭐였는데!]
*
그 채팅을 본 나는 직감했다.
저기다가 저와 스타더스가 키스하지 않으면 나가지 못하는 방이였는데요?라고 말하는 순간 저 채팅창이 더 불탈것이라는. 내일 온갖 연애프로들이 나와 스타더스를 엮어댈 것이라는 미래를. 우리가 그냥 벽 박살내고 나왔다는 얘기를 해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거란걸.
...그렇기에, 난 저들에게 진실을 말해줄 수 없었다. 미안하다, 시청자들아. 다 너네를 위해서야.
하여튼 내가 그런 판단을 내리는 동안, 던전메이커는 협회 직원들에 의해 어디론가 끌려가고 있었다.
어떻게 팔을 용하게도 위로 뻗어 엄지를 치켜든 채, 난 다시 돌아올거다!-라는 말을 남기며.
...돌아오지 말아라. 수용소에서 살아줘 제발.
하여튼 그렇게 던전메이커도 신속하게 구금돼 끌려가고.
협회 직원들도 전부 다 어디론가 물러서면서.
나와 스타더스는, 텅 빈 거리에 다시 단둘이 남게됐다.
"....."
"....."
...그래, 나도 이제 슬슬 도망치면서 마지막 말을 해야지. 음, 그렇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스타더스가 있는 쪽을 바라봤다.
...나도 모르게 그녀의 입술쪽으로 시선이 간걸, 간신히 돌리며. 진짜 미쳤냐. 다인아? 정신 차리자. 너 중학생 아니라 성인이다.
그렇게 마음을 다스린 이후, 나는 입을 열어 그녀에게 말했다.
"...하하! 스타더스씨. 크흠, 음. 과정이 좀 복잡하긴 했어도 탈출하는데 성공했네요. 제 앞마당에 빌런 나왔다고해서 구경왔다가 이게 무슨 일인지. 하, 하하. 저 미궁속에 간 김에 스타더스씨와 싸웠어야 했는데, 결판을 못낸게 아쉽군요."
...안에서 그녀와 손 꼭 붙잡고 걸어다닌 내가 할 말은 아니였지만, 난 일단 그렇게 말했다. 스타더스도 그걸 알리고 싶진 않았을거 아니야.
그런 내 말에, 스타더스는, 입을 열어 말했다.
"...그래. 나야말로 아쉽군, 널 거기서 처리했었어야 했는데."
참으로 스타더스다운, 히어로다운 말이였다.
...그걸 얼굴이 붉어진 상태로 나와 눈을 못마주치면서 말하지만 않았어도 더 좋았을텐데.
*
[???]
[둘이 분위기 뭐야뭐야]
[어머머?]
*
...슬슬 채팅창도 이 이상한 분위기를 느끼는걸 보며, 나는 빠르게 방종하고 튀어야한다는 결심을 내렸다. 좋지 않아, 좋지 않아.
"...크흠. 네! 그렇다면, 이번에는 일단 저도 지쳤으니 순순히 물러가도록 하죠. 다음에 만났을때는 오늘같지 않을테니 기대하시죠!"
그렇게 슬슬 내가 클로징멘트를 하고 있을때.
내 쪽을 보던 스타더스는, 여전히 붉어진 얼굴로 머뭇거리더니.
"...그래. 그리고, 에고스틱?"
"네?"
잠시 내 손쪽을 보고있던 스타더스는, 카메라를 힐끔 보곤, 이내 무언가 결심한듯 살짝 아까보다 작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너, 손 크더라."
".....네?"
*
[?]
[???]
[??]
[응?]
[저게? 무슨? 소리죠?]
[?????]
*
음.
좋아. 뭔진 모르겠지만, 날 당황시키려고 한 작전이었다면 성공이였던 것 같다.ㅡ
튀자.
"...음, 칭찬 감사드립니다! 그럼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죠. 그럼 다들 안녕히 계시길!"
*
[?????]
[???????????아니 이걸 여기서 끝낸다고?]
[아니 시발 무친련아 마지막 스타더스 말 해명하고 가 ㅅㅂ]
[망태양이 우리 별먼지를 홀렸다!!!]
[망태양 ㅇㅈㄹ ㅅㅂㅋㅋㅋㅋ]
[스타더스가 너 손 큰걸 어떻게 아는데 둘이 뭐했는데 해명해해명해해명해해명해해명해해명해해명해해명해해명해해명해해명해]
[이걸 여기서 방종한다고? 진짜 빌런임?]
[시발 안에서 둘이 뭐했는지 영상 빨리 공개해!!!]
[아시발망고아니고 에고이스틱 줄여서 에고스틱아 우리미치는거보고싶어?빨리둘이뭐했는지말해이시발]
==[방송이 종료되었습니다]==
*
난 그렇게 방송을 끄고, 서둘러 순간이동으로 도망쳤다.
...오늘 하루는 인터넷이나 티비를 보면 안되겠다는 확신을 하며. 그래. 집에가서 푹 쉬자. 내 유일한 안식처, 나의 저택이여...
그렇게 난, 집으로 돌아갔다.
***
그리고 그 시각.
[...너, 손 크더라.]
"하아?"
에고스틱이 괜찮은가 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생방송을 보던 한서은은, 스타더스가 한 말을 듣고 차가운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저 여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