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83 - 조건부 밀실
던전메이커가 만든 이차원의 미궁.
그 안의 한치 앞이 안보이는 어두운 복도에서 나는 걷고있었다.
"...."
스타더스와, 손을 꼭 붙잡은 채로.
'...대체, 이게 어떻게 된거지?'
그렇게 그녀의 손을 잡고 어두운 길을 걸으며, 나는 혼자 그런 생각을 했다.
서로의 손을 잡고, 그녀의 체온을 느끼며 걷고 있으니 기분이 묘해지는 상황.
스타더스는 손도 참 부드러웠다. ...아니, 이게 아니라.
'...대체, 무슨 생각인건지 모르겠네.'
나는 그렇게 스타더스에 의해 손을 꽉 붙잡힌 채 걸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분명, 위험하니 붙어있어야 한다는 내말에 '그럼 이게 제일 확실하니까'라고 말하며 내 손을 잡은 그녀.
'설마 날 이렇게 붙잡은 뒤 이곳을 빠져나갈때쯤 잡은 내 팔을 확 꺾어서 기절시키고 감옥에 끌고가려고 이런 계획을 생각한건 아니겠지..?'
난 그런 생각까지 해봤다. 어차피 순간이동이 있어서 상관없지만... 이런게 아니고서야 그녀의 행동은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하여튼 이유가 어찌됐건.
그렇게 지금 난, 그녀와 손을 맞잡고 이 어두운 복도를 걷고 있었던 것이다.
대체 복도 주변에 안보이는 곳에서 뭔 일이 일어나는지, 시끄러운 소리만 울리는 이 어두운 공간을 같이 지나고있는 우리.
...그리고, 시야가 제한되어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서일까. 시각 대신, 다른 감각들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예를들어 나와 살결이 맞닿을 정도로 꼭 맞잡은 스타더스의 손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온기와, 희미하게 느껴지는 맥박이라던가.
시끄러운 소음 사이로 들려오는, 그녀가 조용히 숨을 내뱉는 소리라던가.
...그래.
한마디로 지금, 앞에 있는 위험보다 내 옆에 손을 잡고있는 스타더스가 더 신경쓰였다는 것이다.
지금 아까부터 계속 스타더스 생각만 하고 있는게 그 증거고. 다인아, 정신차려. 무슨 첫 사랑에빠진 중학생도 아니고. 뭘 손 좀 잡는걸가지고 이렇게 유난이야.
"...."
물론, 스타더스와 손을 잡고 거리를 걷는건 또 다른 얘기긴 했다. 약간 아이돌과 손잡은 팬 느낌이랄까. 다른 여자들과 손을 잡는거와는 완전 다른 얘기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내가 그런 생각을 하며 정처없이 걸을 때.
"야, 에고스틱."
나와 손을 맞잡고 조용히 걷고 있던 스타더스의 쪽에서, 그런 말이 들려왔다.
"...네? 왜 그러십니까."
그렇게 아까부터 스타더스 생각을 하던 내가 지래 찔끔해서 그렇게 답하고 있을 때.
이내 잠시 그 말을 하곤 침묵하던 그녀는, 다시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날, 계속 도와주는 이유가 뭐야?"
".....?"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칫할 뻔했다.
"...하하. 무슨 소리십니까. 제가 뭘 도와드렸다고 그러시죠?"
나는 그렇게 최대한 자연스럽게 웃으며 답했다.
...뭐지? 왜 빌런한테 그런 이상한걸 묻는거지? 들킨건가? 그럴리가 없다. 내가 요즘 좀 이상한 짓을 많이해도 테러는 늘 충실히 해왔는걸... 생각해보니 요즘은 안했나?
내가 그렇게 조용히 혼란스러워하던 그때.
그녀는 다시, 덤덤한 기색으로 입을 열어 말했다.
"저번 월광교때도... 너네 동료들 다 불러서 날 도와줬잖아. 내가 교주의 습격에 당했을때도, 너가 날 구해줬었고."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말을 듣고.
난 속으로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아! 최근에 너무 막나갔구나. 그래도, 이러면 변명거리가 확실하지.
"그거야, 한국에서 테러를 해야하는 제게 한국이 다른 놈의 손에 의해 박살나는건 별로 즐거운 일이 아니니까 그런거죠. 저번에도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거말고."
그리고 내가 그렇게 답하던 찰나, 그녀는 내 말을 끊고 다시 입을 열었다.
"날 구해준건, 왜 그런건데. 이번만을 얘기하는게 아니야. 예전에 한은그룹 지하에서 몸을 날려 막아준 것도 그렇고, 지금까지도 그렇고... 넌 스스로를 빌런이라고 하면서, 왜 그렇게까지 하는건데?"
...마치 누가들으면, 날 질책하는 것같은 말.
그러나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말에는, 진지한 의문이 담겨있다는 것을. 지금까지 의심이 있었고, 이번 기회에 그걸 해소하겠다는 의지가.
어떻게 답해야할까.
사실 전 빌런 할 생각도 없었는데 당신을 구하고 세상도 구하기 위해 빌런이 됐습니다...라고 말할수는 당연히 없다. 제 아치에너미니까 그러죠~라는 평소에 늘 하는 변명은, 딱봐도 안통할 직감이 느껴졌고.
그러면 해결책은 단 하나.
진실과 거짓을 섞어, 모호하게 답하는 것.
그렇게 생각을 끝낸 나는, 여전히 그녀의 손을 잡은 채 앞을보며 말했다.
"그거야, 당신이 제 아치에너미니까요."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그리고."
거기까지 말한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당신이, 저한테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응?"
순간 내 말에 그리 답하는 그녀.
좋아, 당황했다. 지금이 기회다.
나는 그렇게 그 기세를 몰아, 여전히 앞을 보며 웃는 채로 말했다.
"제 아치에너미인 당신이 없으면, 제 테러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아무리 완벽한 쇼라고 해도, 배우가 없고 관객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겠죠."
"...그렇기에, 당신이 저에게 소중하다는 겁니다. 예전에 말씀드렸듯이, 스타더스씨 당신이 결국 절 완성시키니까요."
"저에겐, 당신이 그 무엇보다 소중합니다. 그러니 전 스타더스씨가 다치는걸 원하지 않는겁니다."
나는 그렇게,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래. 바로 이게 정공법이지. 걍 대놓고 널 소중히 여긴다고 말하는거다. 그러면 히어로인 그녀가 뭐라고 반응하겠어. '뭔 개소리야?'거나 '빌런이 나를 소중하게 생각한다고? 역겨워. 극혐.'이거나 둘 중 하나겠지.
...그녀가 내게 그렇게 말하는걸 생각하니 상상만으로 내상이 오는 기분이였지만, 하여튼 둘 중 무슨 반응이여도 좋았다. 일단 그녀가 나한테 가진 의심..?을 푸는게 중요하니까.
그리고, 그런 내 말에 그녀가 보인 반응을.
"으... 으응. 그렇구나...."
내 말에 그렇게 작게 답하더니, 내 손 안에서 자신의 손을 잠시 꼼직락 거리는 것일 뿐이였다.
...뭐지, 이 애매모호한 반응은?
뭔가 좀 더 극적인 반응이 올 줄 알았는데...
"...."
"...."
그렇게 우리는 그 이후 침묵하며 걸었다.
어째 내 얼굴이 점점 붉어지는 기분. 아니, 그렇게 반응하면 어떡해. 괜히 내가 히어로한테 고백한 정신나간 빌런처럼 보이잖아. 왜 그러는거야.
괜히 그녀와 맞닿고 있는 손이 더 신경쓰이는 기분이였다.
...서로의 손을 꼭 붙잡고 그녀의 따뜻한 체온을 느끼며, 내 손 안에서 가끔 꼼지락거리는 그녀의 손을 잡고 걷고있는게 이상한 기분이기도 했고.
하여튼 그렇게 어두운 복도를 걷다보니, 역시나 별별 괴물들이 다 튀어나왔다. 던전메이커가 자신의 힘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인지로 만들어낸 괴수들.
당연히 서로 손을 잡은 채 괴물들과 싸울 수는 없기 때문에, 나는 놓으려 했었지만.
"흥."
콰아아아아아아앙.
꽤애애애애액!
...유령 괴물같은게 등장할 때마다 스타더스가 오른손 주먹 한방으로 나오는 괴수들을 족족 다 처리해서, 그럴 수가 없었다.
결국 그렇게 끝까지 그녀와 손을 잡고 걸었다는 소리.
그렇게 등장하는 괴물들을 다 무찌르며 어두운 복도를 걸은지 얼마나 지났을까.
"...아, 드디어 저기 빛이 보이네요."
마침내, 우리는 복도의 끝에서 하얀 빛이 바깥쪽에서 나고있는 열린 문을 발견할 수 있었다.
즉, 저게 마지막 방이란 소리.
"들어가볼까요?"
"응..."
그렇게 마침내.
우리는, 사방이 하얀 밝은 방안에 들어올 수 있었다.
들어오자마자 내가 슬쩍 확인한 건, 바로 내 옆에 붙어있는 스타더스의 얼굴.
그리고 그런 내게 보인 그녀의 모습은, 꽤나 평온해 보이는 얼굴이였다.
...나만 오바한건가.
난 그런 생각을 하며, 헛기침을 하며 그녀에게 말했다.
"자, 여기는 일단 안전해 보이는군요."
그렇게 말하며 난 드디어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을 놓을 수 있었다.
...어째 마지막에 놓을 때 약간 그녀가 날 안놓아주려 한거같은데, 기분탓이겠지.
"...여긴 뭐하는 방일까?"
하여튼 그렇게 스타더스가 주위를 둘러보며 그렇게 말하던 순간.
쾅.
우리가 들어왔던 문이, 갑자기 내려온 하얀색 문에 의해 닫혀버렸다.
그렇게 밀실 속에 갇혀버리게 된 우리.
그리고 그 순간, 앞쪽 벽에 전광판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난 원작을 통해 알고있었다. 저기서 무슨 말이 뜰지.
던전메이커가 2인 이상이 이 미궁에 들어올때 준비해놓은 마지막 방.
이름하여, '서로 죽이지 않으면 못나가는 방.'
어째 그녀의 미궁이 묘하게 허접해보이던 이유는, 이 마지막 방에 그녀의 모든 힘을 쏟아부었기 때문.
둘 중 하나가 죽지 않는 이상 절대로 열리지 않는, 상당히 악질적인 방이다. 그녀의 최종 병기기도 하고.
난 그렇게 전광판에 그 말이 뜨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 순간, 전광판에 핏하고 떠오른 글귀.
당연히 그 내용을 미리 알고있었던 나는, 큰 긴장을 하지 않고 보고 있었으나.
"...어?"
막상 전광판안의 글자들이 떠오른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당황함에 그런 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
[서로 키스하지 않으면 못나가는 방]
*
".....?"
"잠깐, 저거 뭐야...?"
그렇게.
나와 스타더스는, 서로 당황해서 그 글귀를 보며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갑자기...? 뜬금없이?
나야 뭐가됐던 상관없는 이야기였지만.
"...?"
나는 옆에서 고장나버린 스타더스를 보며 황당함에 나도 모르게 생각했다.
던전메이커. 얘... 대체 뭐하는 여자야?
***
*
[뭐야 왜 웃는데!]
[네가 보고 있는걸 우리에게도 보여줘라!!!]
[같이봐 같이봐 같이봐 같이봐 같이봐 같이봐 같이봐 같이봐 같이봐 같이봐 같이봐 같이봐]
[던전메이커 << 얘 왜 대체 기둥에 손대고 눈감은채 흐뭇하게 웃고있음?]
[진짜 안에 둘이서 뭐하고 있는건지 궁금해 죽겠으면 개추ㅋㅋㅋㅋㅋㅋ ㅅㅂ]
[이걸 보고있는 수많은 시청자들이 고통을 느끼고 있으니... 이게 저 빌런의 진정한 테러가 아닐까?]
[시바 문열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