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가 집착하는 악당이 되었다-271화 (271/328)

ep.274

멸망한 세계.

그곳의 붉은 하늘 아래, 자신과 똑같이 금발 머리를 한 여자를 스타더스는 떨리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어..."

자신보다 조금 더 탁한 금발의 머리를 한, 훨씬 성숙해보이는 모습으로 이쪽을 차가운 표정으로 보고 있는 저 여자가...

아마, 이 세계의 자신. 미래의 스타더스겠지.

...이렇게 자기 자신과 우연히 마주칠거라곤 상상도 못했던 그녀가 당황하던 사이.

이쪽을 조용히 바라보던 여자는, 별로 당황스럽지도 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환각계 마물의 잔재인가. 이 구역은 전부 처리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였네."

그렇게 혼자에게 말하듯 조용히 중얼거리더니, 이내 팔을 뻗고 주먹을 쥐는 이 세계의 자신.

그러자.

쿠우우우우웅-

그녀의 손과 팔을 중심으로, 강렬한 노란 빛으로 빛나는 엄청난 에너지가 마치 건틀렛마냥 팔 주위를 감싸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공격할 기세.

그리고 그런 그녀의 모습에 화들짝 놀란 스타더스는 황급히 입을 열었다.

"자, 잠시만요! 전 마물 같은거 아니예요."

"흐음..?"

여전히 피곤한 눈빛을 한 채, 폐건물의 산 위에서 팔에 빛을 뿜으며 그녀쪽을 올려다보는 미래의 자신.

그런 그녀 앞쪽에서 하늘을 날고있던 스타더스는, 그녀가 갑자기 공격하기 전에 서둘러 입을 열었다.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침착하게 설명해보자.

"전... 다른 세계에서 온 당신입니다! 싸우고 싶지 않아요, 전 그냥..."

그렇게 그녀가 설명을 시작하자, 잠시 공격을 멈춘 채 조용히 서 이쪽을 바라보며 그녀의 말을 듣고있는 이 세계의 스타더스.

...그렇게 스타더스는, 현재 그녀의 상황을 열심히 설명했다. 어쩌다보니 차원의 문 같은 곳에 빠져서, 이 세계에 떨어지게 되었다. 뭐 그런 이야기.

"..."

그리고 그 얘기를 듣고 있는 이 세계의 자신의 모습을, 스타더스는 조심스럽게 살폈다.

나이가 있어서인지 지금의 자신보다도 훨씬 성숙해 보이고, 어딘가 피곤하면서도 날카로운 인상으로 보이는 그녀의 모습.

무언가 삶에 지친듯하면서도... 위험한 분위기가 풍기는 현재의 자신보다 나이가 확실히 많아보이는 이 세계의 자신의 모습은 마치 남처럼 느껴졌고.

그래서인지, 스타더스는 그녀도 모르게 존댓말을 써가며 설명하고 있었다.

"...그래서. 눈을 떠보니 여기였던 거예요."

그렇게 그녀의 설명이 끝났고.

지금까지 조용히 그녀의 말을 들으며 이쪽을 탁한 눈빛으로 보던 이 미래 세계의 스타더스는.

그녀가 말한 내용에는 별 관심을 가지진 않은듯 보였다.

다만.

"...하하. 재밌네.""

"완전 옛날의 내 모습을 빼다 박았잖아?"

어쩐지 씁쓸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할 뿐이였다.

그 말을 들은 스타더스가 여전히 혼란스러워 할때, 고개를 돌린 뒤 조용히 말하는 그녀.

"...다른 차원이라. 응. 그럴리는 없겠지.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그래도, 너가 무슨 존재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받아줄게. 어차피 끝나버린 이곳에서 더 할것도 없고..."

인과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을 것 같으니까.

그렇게 중얼거린 그녀는 다시 고개를 돌려 처음처럼 멍하니 지평선 너머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였다.

마치 자신에게는 별 관심이 없는 듯한, 그녀의 태도.

...아직까지 자신을 환각 취급하는게 아닌지 스타더스는 순간 그런 의문이 들었으나, 어쨌든 더이상 공격하지는 않고 일단 받아주겠다고 말한걸 다행이라 생각하기로 결정했다.

붉은 하늘 아래.

자신과 똑 닮았으나 분명히 다른 자신을 마주한, 기묘한 순간.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도, 현실인지도 슬슬 애매하긴 했으나.

스타더스는 자신의 뒤를 보곤 일단 자신이 가장 궁금했던 것부터 묻기로 했다.

"저..."

"말 편하게 해."

"어... 응. 알았어. 그래서 여기는... 대체 어떻게 된거야?"

그래.

그녀는 제일 궁금한 그것을 먼저 물었다.

어째서 사방이 폐허이고, 사람은 전혀 보이지 않는건가. 왜 이 근방 모든 곳이 다 무너져 있는가.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굉장히 무덤덤하게 돌아왔다.

"멸망했어."

"....."

역시나.

예상은 했지만, 직접 들으니 다시금 충격적인 말이였다.

"...왜?"

떨리는 눈으로 주위의 횡량한 모습을 보며 그렇게 이어서 질문하자, 또다른 자신은 조용히 침묵하더니 이내 지친 표정으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마지막에 이기긴 했는데, 결국 세계가 끝났으니 이긴건 아니겠지. 묻는 말에 답해주자면... 글쎄. 어쩌면 처음부터 이렇게 될 운명이였는지도 모르겠지."

그녀는 그렇게 지친 목소리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말했다.

"너무 많았어. 빌런이, 그냥 너무나도 많았어. 적들은 강하고 수도 많은데, 그에 맞서는 히어로들의 수는 한없이 부족했지..."

마치 과거를 회상하듯, 그렇게 계속해서 중얼거리는 그녀.

"결국 간신히 어떻게든 균형을 이루고는 있었지만. 한은그룹이 병기로 서울을 쳐들어와 수도의 반쯤이 파괴되었을 때, 그때부터 몰락이 시작됐었지..."

그렇게 또다른 스타더스는 자신한테 하는건지, 아니면 스스로 기억을 반추하는 건지. 그녀는 그렇게 담담히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온갖 빌런들의 침공으로 인해 무너진 서울, 그리고 부산으로 수도를 옮긴 이야기. 그 이후 다시 무너진 서울의 도심을 새로 지은 후, 신서울을 만들었으나 그마저도 빌런들의 손에 무너졌다는 이야기까지.

그리고 그렇게 중얼거리는 미래의 자신의 이야기를. 아니, 이 세계의 자신의 이야기를 스타더스는 조용히 침묵하며 들었다. 갑자기 좀 어지러운 머리로 바쁘게, 그녀의 세계가 겪어온 길과 비교해보며.

'...전체적인 흐름은 비슷해. 내 과거랑.'

빌런들의 이름도, 그들이 벌인 테러와 시기도. 거의 전부 다 똑같았다.

다만 차이점이라면, 그 테러들을 최대한 사상자를 덜 내고 막아냈던 이쪽과는 다르게 여기는 하나하나가 상당히 큰 타격을 입었다는 것.

월광무녀 사건도, 한은그룹 사건도, 전부 막아낸 그녀와는 다르게, 이 세계는 막아내지 못했다.

그리고 그녀의 세계에서는 쉽게 처리했던 빌런들조차, 이 세계에서는 흉악범이 되어있었고.

...그리고 그런 모든 차이점은, 단 한명의 인물과 엮여있었다.

이 세계에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스타더스. 그녀의 아치에너미이자, A급 빌런인 남자 빌런. 빌런집단의 대장이자, 늘 웃는 얼굴로 자신을 상대하던 그.

그래.

에고스틱.

그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는게, 이 세계와 자신의 세계의 제일 큰 차이점이였다.

그렇기에 그것이, 현재 스타더스가 제일 궁금했던 것이였고.

그녀는 그렇기에, 이걸 먼저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때 월광교주가 일으킨 테러로. 세상이 더욱 멸망의 가속화를 겪었지. 온 지구에 게이트란게 생기고, 그 괴수들이 몇년동안 계속해서 이 세계로 넘어왔거든. 도시는 멸망하고, 사람들은 다들 지하에 숨어 살았어. 우리나라 뿐만이 아닌 거의 모든 나라가..."

"잠깐..."

"...?"

머리를 짚은 상태로, 이 세계의 자신이 덤덤히 설명하고 있는걸 끊은 그녀.

...아까부터 이상하게, 계속해서 머리가 아프고 속이 울렁거렸으나. 이건 확실히 물어봐야했다.

아마 이 모든 것과 근본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것같은.

그의 존재를.

그렇게 스타더스는 조용히 숨을 들이킨 뒤, 그녀에게 물었다.

"혹시. 에고스틱이라고 아세요?"

기록에는 없지만, 혹시 모르니까. 눈앞의 자신은 그녀와 같은 신하루, 스타더스였으니까. 그리고 그녀라면 그를 모를 수 없으니까.

그녀는 막연한 희망을 갖고, 그렇게 물었고.

돌아온 대답은.

"...아니? 그게 누군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는 듯, 얼굴을 찡그리며 그렇게 답하는 그녀의 모습이였다.

그리고, 그 대답을 듣고서야.

스타더스는, 마침내 깨달았다.

그녀가 살던 세계와, 이 세계와의 가장 큰 차이점.

그것은 바로...

이 세계에는 에고스틱이 없다는 것이였다.

"...잠시만요."

잠시 현기증을 느낀 그녀는 미래의 자신에게 그렇게 양해를 구한 뒤, 근처의 바위처럼 쌓인 벽돌에 손을 기댔다.

그래.

이 세계에는 에고스틱이 없었다. 방금 또다른 자신의 말로 확실해 보인다.

그리고 아마도, 그녀가 추측컨데.

그 하나의 차이가, 세계의 기로를 바꿨다.

...에고스틱이 탈취했던 한은그룹의 거대 병기는, 이 세계에선 그 누구도 막지 못한 채 그대로 서울의 절반 가까이를 무너트렸으며.

분명 에고스틱 그의 곁에 있었을 데스나이트는, 다른 이의 손에 넘어가 민간인을 학살하는 병기로 살았다.

거기에 에고스틱이 테러 도중 난입해 동료로 맞이해 멈춘 월광무녀의 테러. 그것은 이 세계에서는 결국에는 아무도 막지 못해 서울 전체를 파괴한 뒤, 무녀는 끝내 이 세계의 자신에 손에 죽고 말았다. 그 결과 수도가 부산으로 바뀌고, 무너진 서울에 신서울이 생긴거고.

그 외에도 라이노, 웨폰 마스터, 스크림 메이커등... 그가 사적으로 제재했던 이들은 이 세계에서 살아남아 수백명을 죽이는 학살자로 버젓이 행동했고.

그가 동료로 맞이한 하얀마녀... 사우스 실버, 아틀라스 등 또한 그가 없는 이 세계에서는 나라를 거의 멸망까지 이끌뻔했던 이들이였다.

즉, 자신의 세계가 이 세계와는 다르게 평온했던 이유는 단 하나.

"...에고스틱, 때문에?"

그렇게 아까보다 어지러워진 머리로 난간을 짚은 스타더스가, 비틀거리고 있을 때.

"야... 너, 잠깐."

그런 그녀의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이 세계의 스타더스는, 순간 얼굴을 굳힌 뒤 그렇게 물었다.

"너.. 몸이 왜그러냐?"

"응? 내 몸이 왜..."

그렇게 아래를 내려다본 스타더스는, 깜짝 놀라고 말았나.

자신의 몸이 마치 노이즈가 낀 티비의 화면처럼, 부분 부분이 지직거리며 이상하게 굴절되어 보이고 있었기 때문.

마치, 또다른 차원이 그녀를 끌어들이는 것처럼.

"어라..? 왜 이러지?"

그런 자신의 몸을 본 스타더스가, 어지러움의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음을 이제서야 깨달았을때.

"...잠깐. 너는 설마... 아. 역시, 그런거였나. 하하."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던 이 세계의 자신이 그리 말하던 그 순간.

또다시 그녀의 몸 주위에 처음으로 차원문을 탔을때처럼 하얀 빛에 둘러쌓였고.

"...뭔진 모...지만, 잘... 아마도, 미..... 너가 말하...한테....주고."

이내 그런 자신을, 여전히 무덤덤한 표정으로 약간의 미소를 띄운 채 보는 이 세계의 자신의 모습을 끝으로.

스타더스. 그녀의 의식은, 다시 어딘가 우주같이 어지러운 공간 속으로 빠졌다.

***

그렇게 스타더스가 다른 세계의 자신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던 그 시각.

"으아아아아아."

월광교주에 의해 이상한 차원운 너머로 사라진 스타더스를 쫓아 갔던 나는, 이상한 의식의 공간 속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에고스틱 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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