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66
밤.
분명 태양을 마주하고 있지 않은, 지구의 절반만이 겪고있어야 할 밤이.
"....어?"
그날, 한 해의 마지막이 되어가는 날.
지구상의 모든 푸른색의 하늘이, 순식간에 짙은 검은색에 사로잡히고.
그 어느때보다 밝게 빛나던 태양이.
갑작스럽게, 자취를 감추며.
"....이게, 뭐야?"
지구 전체가.
온 세상이, 공평하게 어둠에 물들었다.
"...여보, 밖에 봐봐요."
"신이시여..."
그리고 그 위에는.
이 시각에는 보여서는 안될. 거대한 밝은 달이.
하늘에, 언제보다 크게 빛나고 있었다.
대한민국 뿐만 아닌, 모든 나라가 순식간에 어둠에 잠겨버린 상황.
"...이게 무슨 일일까."
"그러게. 또 어디서 빌런이라도 나타났나?"
늘 평소와 같은 하루를 보내며, 연말의 분위기를 만끽하고 있던 이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의아해했고.
"잠깐. 이게 여기만 이런게 아니라, 지금 나라 전체가... 아니, 전 지구가 다 이렇다고?"
"라디오에서 그렇다는데요?"
"...젠장!"
"야, 야! 잠깐, 왜그래?"
이 현상이 어느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닌, 전 지구 공통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에 무언가 불길한 미래를 깨닫은 이들은 어두운 밤하늘 아래에서 황급히 도망치고 있었으며.
"....."
"이게, 그가 말했던 일인가..."
어느 누구로부터 미리 경고를 들은 이들이.
조용히. 자신의 부대원들과 함께 밤의 하늘을 올려다보던 그때.
그 목소리는.
모두의 귓가에, 불현듯 들려왔다.
[강녕하시옵니까... 아해들이여.]
"...?!"
"으악! 누구야!"
끼이이이이익. 펑.
어둠에 물든 서울의 도시.
수많은 도로 위에서, 갑자기 캄캄해진 시야를 뚫고 운전을 하고 있는 차들로 가득한 그 대도시들에서.
운전대를 잡고있는 사람에게도, 길을 걷고있던 사람에게도, 카페에 앉아 무슨 일인지 알아보던 사람들에게도. 높은 자리에 앉아서 심각한 얼굴로 상황을 보고있던 권력자들에게도, 침대에 누워 잠을 자고 있던 이들에게도.
그 기괴한 목소리는, 갑작스럽게 모두의 귀에 들려왔다.
[지금까지 다들, 평온한 삶들을 보내고 계셨는지요...?]
언어와 인지를 초월해.
주술적으로.
마치 뇌속으로 직접적으로 꽂히듯 들리는 늙은 누군가의 목소리.
인간이란 모든 종에게 들리는 그 목소리에, 잠들어있는 사람들마저 깨며.
모든 지구인들이 이내 사태를 파악하고, 의문의 목소리에 공포에 질린 채 귀 기울이던 그때.
쇳소리가 섞인 목소리는 담담하게, 그러나 어쩐지 광적인 희열이 섞여있는 목소리로.
이내, 말을 이었다,
[그래요, 그래. 지금까지 참 평온하게 사셨지요.]
[썩어빠진 자네들이]
[그 역겨운 숨결로 이 세계를 오염시켜가며.]
[잘도 살지 않으셨습니까... 껄껄껄.]
어느순간 창백하게 차가워진 말투로, 시리듯이 꽂히는 그 목소리.
순간 그 안에 담겨있는 진심어린 혐오와 일렁이는 분노를 직격으로 머릿속에 받은 이들이 비틀거리는 그 순간.
목소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여튼 이제는, 그것도 끝낼때가 됐지요....]
[미천한 소인이, 이제야 자기소개 올립니다. 월광교주(月光敎主)천월황이라고 합니다. 껄껄...]
그리고 그의 말이 끝난 그 순간.
모든 전자제품들의 화면이, 한순간에 꺼지고.
마침내.
어두운 대한민국의 도시를 등진, 하얀 소복을 입은 한 노인의 모습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높디 높은 건물 위에서.
지팡이를 짚은 채 서있는, 그의 모습.
그리고 그제서야 사람들은 볼 수 있었다.
그 월광교주란 남자의 눈에 어린, 광기어린 모습을.
[..껄껄. 역겨운 위선도 이제 질리는군.]
[더 이상 말해 뭐하겠느뇨. 이제는 자네들이 심판당할 차례 아니겠는가?]
[멸망의 순간이 도래했도다 인간들이여.]
어두운 밤하늘.
바람이 세차게 부는 높디 높은 그곳에서, 수백 수천만명의 시선을 받아가며.
월광교주는 살을 아리는 바람을 느끼며, 마침내 자신이 그토록 오랫동안 기다려오던 날이 옴을 느꼈다.
오늘을 끝으로, 필히 이 역겨운 세계는 무너지리.
그리고 그 자리에는, 월광의 신(神)과 그의 피조물들이 신세계를 창조할 것이다.
그 누구도, 이제는 막을 수 없다.
모든 것은 이미 끝났도다.
그렇게 잠시 숨을 들이킨 기는.
차가운 숨을 내뱉으며, 손에 잡힌 지팡이를 든 뒤.
선포하듯, 입을 열었다.
[아해들이여.]
[너희들의 세계는 이제 끝났도다.]
그리고 그 말과 함께, 그는 지팡이를 쿵 하고 바닥에 내리쳤고.
그와 동시에.
수많은, 정말 수많은 보라빛의 기호들이 적힌 마법진들이.
그의 발 밑과 뒤에, 복잡하게 얽혀들어 무수히 많게 생겨나며.
끼 이 이 이 이 이 이 이 이 이 이
-퍼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엉.
하늘이 찢어지는 소리가 온 사방세 울려퍼지며.
형형 색상의 포탈, 게이트, 일명 차원의 문들이.
그의 등 뒤의 하늘에서 수십, 수백개가 생겨났고
마침내.
[아해들이여, 안녕히.]
그의 말을 끝으로.
수많은 게이트들이.
전 지구상에 수없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파리.
[여러분, 보이십니까? 저 하늘에..]
에펠탑을 배경으로 한 어두운 밤하늘 위에.
이질적으로 떠있는수많은 하늘색, 푸른색, 보라색 게이트들.
일본, 도쿄.
웅성웅성 보고있는 사람들의 위에, 검은 하늘에 홀로 빛나는 수많은 포탈들.
마찬가지로.
중국, 베이징.
미국, 뉴욕.
인도, 뉴델리.
러시아, 모스크바.
영국, 런던.
그리고.
[여러분! 지금 서울 주위에 수많은 기묘한 포탈들이 떠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부산, 인천, 대구, 광주를 비롯해 주요 도시에 이 기묘한 것들이...]
대한민국, 서울.
높이 세워진 건물들 위 어두운 밤하늘을 배경으로 갑작스럽게 등장한, 수많은 원형의 게이트들.
그리고 이내.
그것들이 생겨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끼에에에에에에엑.]
[끄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괴물들.
몸이 검보라색의 촉수로 이루어져있으며, 이 세계의 것으로 보이지않는 괴수들이.
그 게이트 너머에서 하나, 둘. 수십, 수백, 수천마리가.
지상으로 툭, 툭, 떨어지며.
도시를 향해, 사람들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꺄아아아아아아악!"""
그렇게 압도적인 괴수들의 군세가, 도시를 집어삼키며.
세계는 멸망했다.
...아니, 그래보였다.
"자, 다들 계획대로 하시고 계시죠?"
[그래! 오랜만에 몸 좀 풀어보자고.]
[다인씨. 군대 배치랑 미사일들 다 요격준비 끝났어요. 이제 발포할게요.]
[협회장일세. 지금 비상방송 시작하고 벙커들 다 열었다네. 히어로들 다 내보냈고.]
[하아. 오빠, 이제 시작이네요. 저도 도착했어요. 일단 이 지역에 있는 것부터 처리하고 올게요.]
[다인선생님! 이제 전투 들어갑니다. 이후에 연락하겠습니다!]
[에고스틱씨, 카타나입니다. 저희 일본지역도 1차전선 준비 완료했습니다. 그쪽은 괜찮으시죠?]
....하.
세계가 멸망했다? 그럴리가 있겠는가.
이렇게 쉽게 무너지려고, 내가 지금까지 지켜온 나라가. 세계가 아니다.
보여주지. 완벽한 준비는 재앙을 막아낼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그렇게 씨익 웃은 뒤, 은월이와 함께 행동으로 나섰다.
우리 에고스트림 멤버들이, 나서는 동안.
***
"히, 히이이익!"
[끼에에에에에에에에엑!]
서울의 도심 한복판.
수많은 괴수들이 날뛰며 난장판을 이루고있는 그곳에서, 한 소년은 무너진 건물뒤에 숨어 숨을 죽였다.
[다시한번 안내드립니다. 모든 시민들은 지금 당장 지하 벙커로 대피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위치는...]
도심에 계속해서 울려퍼지는 협회 안내방송의 기계음.
사태가 발생하자마자 시작된 이 방송과, 협회 요원들의 인도하에.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들 지하 벙커로 대피한 뒤였지만.
소년은 채 도망치지 못한 채, 홀로 어두운 도심 사이에 숨어 덜덜 떨고있었다.
'제발 들키지마라, 제발 들키지마라, 제발 들키지마라...'
그렇게 그는 자신의 입을 부여잡은 채 떨며 기도했지만.
애석하게도, 그의 바람은 들어지지 못했다.
[키에에에에에에엑?]
무언가를 느낀, 사족보행하는 보라빛 촉수로 이루어진 여우처럼 보이는 괴수가.
이내 으르렁 거리며, 그가 있는 곳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던 것.
"흐, 흐아아아아아!"
그렇게 이내 자신의 눈앞에서, 그를 향해 뛰어드는 괴수를 보며 소년이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운명을 직감한 순간.
번쩍.
콰가가가가가강
[-끼에에에에에엑!]
그 괴수가 있던 곳에, 거대한 번개가 쳤고.
연기가 걷히며, 이내 단말마와 함께 먼지로 변해버린 괴수의 위로.
주황색 머리를 한 한 여인이, 번개가 있던 자리에 주먹을 바닥으로 쥔 채.
자신의 손을 만지며,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으음... 이렇게 하는거구나? 오케이, 한놈 잡았고."
태연하게 팔을 휘두르고 일어나며, 그렇게 말하는 여자.
그렇게 갑작스럽게 살아난 소년이, 눈을 꿈뻑꿈뻑 뜨며 엎어진 채 그 여자를 올려다보다.
"음?"
그 여자와 눈이 마주치자, 이내 정신을 차리곤 서둘러 입을 열었다.
"가, 가 감사합니다...!"
"응? 아, 아아. 별거아니야. 감사할 필요 없어."
"네, 네..?"
"그야, 난 빌런이거든."
"네...?"
"음, 그럼 이만!"
그렇게 어안이 벙벙한 재 앉아있는 소년을 뒤로하고.
여자, 일렉트라는 씨익 웃어준 뒤 번개같은 속도로 다른 빌런을 향해 날아갔다.
그렇게.
대한민국은.
"자! 스타 컨쿼러의 맛이 어떠냐!"
[끼에에에엑!]
한서은.
"흐응... 전부 태우면 되겠지? 아하하."
[끄아아악!]
미스트, 서자영.
[끼에에에-] [끼에-] [끼에에-]
"휴우, 그래. 이거지! 열다섯, 열여섯..."
홀로 무쌍을 찍고있는 섀도우워커와.
"허다희, 엄호좀!"
"으이! 수아야 버프해줘!"
"네엥..."
[끼야아아아악!]
강한 몇몇 괴수들을 상대로 다구리를 하며 맞서고 있는 PMC 멤버들.
협회에 안전방송으로 빠르게 도망친 시민들과.
괴수들로만 가득 찬 거의 텅 빈 전국 주요 도시들 사이에서, 거점을 잡고 괴수들의 웨이브를 막아내고 있는. 에고스틱이 준비해둔 이들.
그리고.
"크윽... 어. 잠깐, 칼립소. 네놈이 여기 왜 있는거냐!"
"하. 이번만 네놈을 도와주기로 했으니 닥치고 엄호나 하라고. 다 개죽음당하기 싫으면."
전세계 곳곳에서, 카테달 출신의 수많은 빌런연합들의 빌런들이. 히어로들과 함께.
밤하늘에서 떨어지는 괴수의 무리들을, 자신들의 모든 능력을 다해 막아서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두가 아무 준비도 없이 무력하게 무너질거라고 여겼던 월광교주의 생각과는 다르게.
모두들 생각보다, 버티기 시작했고.
"....뭔가, 이상하군. 아해야, 준비는 아직이느뇨?"
"넷! 지금 일정규모 이상의 게이트들은 사전 준비가 필요해서, 소환진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교주님, 조금만 기다려주십쇼."
"...이상해. 무언가. 이상하군."
그렇게 기묘한 감각을 느끼고있는 월광교주가 있는.
그 어느곳보다 거대한 괴수들과 분홍빛 연기로 둘러싸인.
월광교가 점거한, 서울 중심부의 도심을 향해.
붉은색과 푸른색이 섞인, 가운데에 별모양의 표식이 있는 히어로 슈트를 입은 여자가 금발 머리를 휘날리며 날아가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스타더스.
대한민국의 A급 히어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