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가 집착하는 악당이 되었다-258화 (258/328)

ep.261

"벌써 슬슬 날씨가 쌀쌀해진단 말이지..."

불타도록 덥던 여름이 지나고, 슬슬 가을이 되던 날.

우리 에고스트림 멤버들은 다들 언제나처럼 분주히 일하고 있었다.

주로 하는 것은 능력 강화 훈련 및 대련.

"....아니, 우리가 히어로야? 무슨 나라 지킨다고 이 난리를 쳐야해..."

물론, 툴툴거리는 우리 서자영같은 애도 있었긴 했다.

나무 위에 눕듯이 걸터 앉은 채, 허공에 보라색 도깨비불을 둥둥 띄우곤 나른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는 그녀.

"어허. 빌런도 테러할 땅이 있어야 빌런일을 하지. 다 테러의 일환이야 일환."

"...헤. 스타더스 때문에 그러는게 아니라?"

"...허?"

눈을 가늘게 뜬 채 미소지으며 난데없이 일침을 날리는 그녀의 모습.

그렇게 당황...이 아니라 황당했던 내가 항변을 하려고 막 할때.

저쪽편에서, 최세희가 땀을 닦으며 걸어왔다.

"뭐야? 서자영 또 징징거리고 있었어?"

"...징징거린게 아니라, 합리적인 의문을..."

그렇게 서자영이 뭐라하기도 전에, 최세희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야, 막상 지구에 괴물들 쏟아져서 걔네 다 쓸어버리면 재밌지 않겠냐? 생각해봐, 손짓 한번에 번개에 튀겨 휩쓸려나가는 놈들의 모습을..."

흥분된다는 듯 한손은 올린 채 그렇게 말하는 최세희의 손에는, 자기도 모르게 노란 전기가 지직거리고 있었다.

"...확실히, 그건 재밌을거 같기도 하고."

그리고 그제서야, 살짝 흥미가 간다는 듯 흐느적 거리는 그녀.

그리고 그런 서자영을, 최세희가 번개를 번쩍이며 나무 위로 올라가 그녀의 후드를 붙잡고 일으켜세웠다.

"그러니까, 쩨지말고 가자."

"으에에에에에..."

"다인아, 얘 다시 데려간다?"

"어. 빨리 데려가줘..."

그렇게 훈련장을 탈주한 서자영은 다시 최세희에게 잡혀 끌려갔다고 한다.

이제 월광교 종말 시나리오도 머지 안남은 상황.

서은이의 원수인 한은그룹을 박살냈듯, 은월이의 원수인 월광교도 박살낼 때가 온 것이였다. 그런만큼 우리 에고스트림 멤버들도 만전을 가하고 있고.

그중에서도 역시 제일은, 스타더스를 잡겠다며 혼자 기계공학을 극한까지 연구해 파괴병기를 벌써 만들어버린 서은이였다.

"서은아, 뭐하고 있었어?"

"오빠!"

새하얀 인간형 로봇의 머리부분 조종석에서부터 하얀 단발머리를 휘날리며 내려오다, 날 보더니 그렇게 말하는 그녀.

그렇게 지상에 착지한 서은이는, 날 향해 달려왔다.

"어때요. 생일에도 훈련을 하는 제 모습!"

"대견하지, 대견해."

"에헤헤..."

그렇게 내가 자연스럽게 쓰다듬어주자, 웃으며 위를 올려다보더니 핫- 하고 놀라며 떨어지는 그녀.

"흐음, 흐음. 이번 한번만 봐주도록 할게요. 어른의 마음가짐으로. 이젠 저도 어른이니까!"

당당하게 말하는 우리 서은이.

그래. 오늘부로 생일이 지나서, 서은이는 당당하게 법적으로 성인이 되었다.

...처음 만났을때, 그때는 애였는데. 지금 벌써 그 꼬맹이가 어른이라고 하니 뭔가 좀 감격스러운 기분. 뭔가 뿌듯하기도 하고, 복잡미묘한 기분이였다.

...이 세계에서, 내가 처음으로 인연을 맺은 사람이 서은이기도 하니까.

"그래. 서은아, 이제 슬슬 끝났으면 밥먹으러 가자. 오늘의 주인공인데."

비록 요즘 바쁘지만, 서은이가 그토록 기다리던 성인이 되는 첫 생일인데. 당연히 저녁 정도는 시끌벅적하게 성대히 열어야지. 나도 수빈씨와 함께 요리를 도왔다. 거의 다 서은이가 좋아하는 메뉴로.

"네 오빠. 헤헤."

하여튼, 나를 향해 방실방실 웃으며 그렇게 답하는 그녀에겐.

...처음 만났을때 차가운 표정으로 적대하며 경계하던, 자기를 남자라 우기던 그 상처받은 아이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서은이를 찾아가기로 결심해서. 참 다행이다...라고, 난 늘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나와 서은이는, 뻥 뚫린 커다란 연구 공장을 단 둘이 가로질러 걸어갔다.

...거리가 얼마 안되긴 하네. 그냥 같이 순간이동 할까?

내가 그런 생각을 하던 그때.

"오빠."

문득, 서은이가 빙그레 웃으며 내게 말을 걸었다.

"왜?"

내가 그렇게 말하며 힐끗 옆을 보자, 여전히 미소지으며. 내 눈을 안마주진 채 걸으며, 그녀는 입을 열었다.

"그냥... 저도 이제 미성년자도 끝났고. 어른이고 하니까, 이렇게 둘만 있을때 오빠한테 꼭 말하고 싶은게 있어서요.

"뭐가?"

"지금까지... 키워주셔서 감사해요."

나를 향해 싱긋 웃으며 그렇게 말하는 그녀.

"...내가 뭘 한게 있다고. 너가 혼자 알아서 잘큰거지."

내가 피식 웃으며 그렇게 말하자, 뜻밖에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하는 서은이.

"아니요. 전 오빠가 없었으면... 아마 지금이랑은 많이 달랐을거예요. 분명."

쓴 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순간 원작의 서은이가 오버랩 된 내가, 쉬이 할 말을 찾지 못할때.

서은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웃는 얼굴로 돌아와 나를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오빠. 고마워요. 저와 함께해주셔서. 그토록 오빠를 밀어내던 저를, 끝까지 함께 붙잡고 가주셔서. 오빠가 없었다면, 아마 지금의 저도 없었을거에요."

...이제 어른이 되었다고 작심한듯, 지금까지 그녀가 가슴속에 담아뒀던 걸 털어놓는 서은이의 모습.

진심을 담아, 내게 그렇게 말해주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

내 표정이, 순간 흔들렸다.

"...."

투명한 눈동자로, 나를 향해 똑바로 부딪치며 말해주는 서은이를 보자.

스치는, 예전에 기억들.

잠시 예전에 추억에 잠긴 나는.

...나는, 나도모르게. 아마도 처음으로.

내 진심을, 그녀에게 말했다.

"...나도, 고마워. 서은아."

"네?"

"사실, 너랑 처음 만나기 전에. 나도 많이 힘들었었거든."

나는 공장의 한 쪽 벽면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래. 그때, 힘들었었지.

이 세계에 떨어지고. 아는 사람은 한명도 없지. 받은 능력은 쓰레기같지. 세계관은 개판이지. 그냥 다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였다.

"근데... 널 만나고, 친해지면서. 나도 큰 힘이 됐었어. 너랑 친해지려고 노력하고... 같이 대화하고. 그러면서."

그런 내가, 억지로라도 무엇을 해보기 위해.

마음을 다잡고 제일 처음으로 한게, 서은이와 친해지는 거였다.

처음부터 공략 난이도가 거의 최상급인 서은이부터 설득하려고 해서인지, 문전박대도 많이 당하고. 고심도 많이 했지만.

오히려 그 일에 몰두해서인지, 다른 생각을 지운 채 점차 이 세계에 적응할 수 있었고.

이내 조금씩 그녀와 친해지며.

서로 점점 마음을 터놓으여, 겉으로는 츤츤거리면서도. 은근 내 마음을 살피며, 점차 조금씩 다가와주는 그녀가. 얼마나 큰 위안이 됐는지 모른다.

...내가 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빌런을 죽이고. 그러니까. 사람을 죽이고.

나도 모르게 충격과 약간의 우울함에 빠져있을때, 슬며시 다가와서 진심으로 걱정하며 아닌척 조용히 위로해주던 그녀가. 얼마나 큰 힘이 됐는지 모른다.

그리고 늘, 내 곁에서 지지해주던 서은이덕에.

그렇기에 나 또한, 여기 이렇게 서있을 수 있었다.

"나도 고마웠어."

내 그런 말에, 서은이는 웃으며 말했다.

"그럼 저희는, 서로 고마워하는 사이인거네요?"

"그렇네. 하하."

...뭔가 말하고 나니 좀 부끄럽네.

갑자기 그 꼬맹이같던 서은이가 어른이 됐다는 느낌에, 그녀의 진심어린 말을 듣고 너무 감성에 젖었었나.

그렇게 내가 뒷목을 긁적이며 이제 그만 갈까?라고 말하려던 와중.

서은이는, 그렇게 앞으로 걸어가려던 내 소매를 살짝 붙잡았다.

"오빠."

"응..?"

그렇게 잠시 나를 붙잡은 뒤, 뒤를 돌아본 내 눈을 빤히 미소지으며 올려보는 그녀.

...서은이, 키가 정말 생각보다 많이 컸구나. 내 턱 밑까지 쫓아오려 할 정도로.

내가 새삼스럽게 그렇게 생각하던 그때.

잠시 고민하던 표정을 짓더니, 이내 씨익 웃은 그녀는 내게 툭 말했다.

"...됐어요. 원래는 성인 되자마자 말하려 했는데... 오빠가 당황할 수도 있으니, 이건 나중에 말할게요."

"뭔데?"

"아무것도 아니예요. 하여튼, 이것만 기억해 주세요."

거기까지 말한 그녀는. 잡고있던 내 팔을 놓고 뒤로 한걸음 물러서더니, 뒷짐을 진 채 상채를 내쪽으로 기울이며 속삭이듯 말했다.

"...뭐가 됐든 절대 포기 안할거니까."

"전 늘, 오빠의 곁에 있을거라는 걸요."

그렇게  하얀 단발머리를 뒤로 넘기며 눈웃음치며 말하는 서은이의 모습은.

내 기억보다, 훨씬 어른스러워서.

나는 나도 모르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자! 어쨌든 이제 그만 가요! 제 생일상이 위에 있다는거죠?"

거기까지 말한 그녀는, 혀를 내밀고 메롱을 날리더니 신난 표정으로 먼저 앞장서서 걸으며 말했다.

"....하하. 그래. 빨리 가자. 늦겠다."

"네!"

그렇게 밝은 표정을 짓는 서은이를 보며, 나는 피식 웃곤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내 곁에, 늘 있을거다라...

'과연, 내가 끝에서 가서도 서은이의 곁을 지켜줄 수 있을까.'

나는 나도 모르게 씁슬한 미소를 삼키며, 발을 내디뎠다.

지키기 위해선.

곁에 없어지는게,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될 수도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겠지만, 과연. 마지막 순간까지 그녀의 곁에 있어줄 수 있을지. 그런 의문을 가진 채.

그런 생각을 하며, 난 서은이와 함께 자택으로 걸어갔다.

***

그렇게 서은이 케이크 커팅식도 하던, 성년기념 생일도 막을 내리고.

이제는 어른이라며 잠도 안자고 일을 2배로 하고있는 그녀 덕에, 계획의 준비는 점차 완성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전에.

"...."

이제는, 재앙 전 스타더스의 마지막 실력 점검을 위한 테러를 할 차례.

테러는 재앙 이후에도 계속 하겠지만 일단은.

아마도, 올해의 마지막 테러를 하기위해 난 발걸음을 옮겼다.

그를 만나고.

방송을 키고

가자.

그렇게, 나는 밖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테러를 하러.

****

"스타더스씨!"

"네. 무슨일이죠?"

"서, 서울 상공에 거대한 불타는 붉은 용이 나타났습니다!"

"...또 용이요?"

거기까지 말한 그녀는, 순간 무언가 스치는 생각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그와 동시에.

지직.

그녀의 사무실에 벽면에 걸려있는 티비가 켜지며.

그립고도 익숙했던, 그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안녕하십니까 대한민국의 시민 여러분. 에고스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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