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가 집착하는 악당이 되었다-257화 (257/328)

ep.260

각 나라에서 제일 영향력이 큰 빌런연합.

그리고 그런 빌런연합들의 수장들끼리만 모여 개최하는, S급 빌런 회의 카테달.

시간이 지나고, 또 개최의 날이 다시 찾아왔고.

셀레스트의 주도하에 거룩한 상당에서, 거대한 샹들리에 아래 원탁에서 이루어지는 정보 공유의 회의. 그것또한 언제나처럼 이루어졌다.

여느때와 다름없는 평범하다면 평범한 회의였다.

내 차례가 오기 전까진.

화르르

거대한 원탁의 중앙.

그곳에서는, 수많은 도시들이 불길과 괴수들에 사로잡혀 멸망하는 모습이. 홀로그램으로 떠있었다.

"...그리고 여기까지가, 제 얘기입니다."

그렇게 영사기로 띄운 재앙의 관측도를 멈춘 나는, 거기까지 말한 뒤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회의장은 이내, 또다시 갑작스런 무거운 침묵으로 가라앉았다.

......

이내 모두가, 생각을 갈무리 할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무렵.

"이해가 안되는군."

저쪽 한쪽편에서, 그런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누군가 하고 보니, 금빛으로 빛나는 단안경을 낀 노신사의 말.

이탈리아의 S급 빌런이었나.

이해가 안된다며 중얼거린 그는, 이내 내쪽으로 눈을 똑바로 한 채 말했다.

"그깟 괴수들 때문에 도시가, 아니 나라들이 멸망한다고? 협회가 그렇게까지 밀릴 것 같지도 않고. 자네, 너무 큰 비약을 한게 아닌가?"

진심으로 이해가 안간다는 듯, 내게 그렇게 묻는 그.

충분히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여기있는 이들 모두, 한 나라에서 제일 강한 빌런들.

산을 베고, 전력을 다하면 도시 하나는 쉽게 멸망시킬 수 있으며, 무력으로 따지면 나따위보단 훨씬 강한 그들.

그렇기에 이들은 모두, 스스로의 강함에 대한 절대적인 자신감을 가지고 있으며.

그런 자신들과 맞서 싸울정도로 강한 히어로들의 능력을, 결코 과소평가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그들은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던 것이다.

그런 히어로들이 떡하니 버티고 있을텐데, 뭐? 나라가 망하고 지구가 멸망 수준까지 가? 무슨 음모론이 아닌가.

내가 말한대로 괴수들이 쳐들어와도, 히어로들이 이기지 않을까. 이런 이야기.

그리고 나는, 그런 희망적인 이야기 따위는.

미소를 지으며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닙니다."

"...."

"제가 말씀드렸다시피, 이 괴수들이 무서운건 단순히 이들이 강력해서가 아닙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한번 영사기를 틀었다.

그렇게 하얗고 동그란 영사기가, 원탁 중앙에 홀로그램을 쐈고.

그 중앙엔, 수많은 괴수들이 개미때처럼 줄지어 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이 괴수들이 위협적인 이유는 크게 세가지입니다."

"첫번째는 물량. 제일 큰 문젭니다. 정말 압도적인 숫자의 괴수들이, 한번에 한날한시에 튀어나올겁니다."

"아무리 뛰어난 히어로들이여도, 이들로부터 많은 지역들을 전부 막아서긴 힘들겠지요. 특히 이 게이트는, 사람이 많은 지역일수록 더욱 많이 생성된다 하니까요."

"그리고 두번째는, 이들의 연속성입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영사기의 영상을 바꿨다.

그러자 보이는, 침공당하는 도시들.

그리고 마치 시간이 가속하듯,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의 모습. 그러나 한쪽 구석에 계속 보이는 불길한 게이트들.

"이 괴수들의 공격은, 하루만에 끝나진 않을겁니다. 아마 3일, 일주일. 길면 한달까지 계속. 저 게이트란 통로로 이계의 침공자들이 넘어오겠죠."

"그리고 인간들과 달리, 저들은 지치지도 않을겁니다. 전부 끝없는, 새로운 개체들일테니."

이미 거기까지 말했을때, 원탁에 둘러앉은 이들의 표정은 별로 좋지 않았다.

당연하지. 제 아무리 빌런들이여도 멀쩡히 잘 살다가 세계가 망하게 생겼다는데 좋아하게 생겼나. 다들 어느 연합의 지도자이고 가장일텐데.

"세번째는 바로, 이들중 몇몇 특수한 개체들. 제가 붙이길, 보스급 괴수들의 문제입니다. 개중에는 영혼을 빨아드리는 이부터 모든 능력을 무효화하는 놈등, 일반적인 능력자들과는 다른 특이한 괴수들이 있답니다. 역시나 또 문제는 이들의 수도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

"...알겠다. 알겠네."

그렇게 내 말을 듣던 노신사는, 그만 얼굴을 찡그린 채 자신의 이마에 손을 짚고 기댔다.

아무래도 슬슬 머리가 아파오는 모양.

그리고 그건, 원탁 내 모두의 표정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듣고 넘기기에는, 지금까지 내가 풀었던 정보들을 전부 맞췄던 전적이 있기에.

시간여행 능력자의 존재부터, 프랑스에 처음으로 생긴 포탈도 내가 이미 예측했었다.

특히 그 포탈건이 이어지고 이어져, 지금의 일이 된거고.

이미 내가 말을 해줬기에 슬슬 대비중이던 카타나와 리 샤오펑, 아틀라스는 다 덤덤한 표정이었지만. 남들은 당황스럽겠지. 갑자기 몇개월후에 지구 거의 망할듯 이러고 있으니까.

물론 몇몇은 여전히 믿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다들 얼굴 속에 희미하게 불안감이 엿보였다. 지금까지 내가 했던 말이 다 그랬듯, 저 구라같은 말이 진짜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이.

"그래서..."

그리고 그때.

내게 처음으로 의문을 제시한 노신사는, 나를 보며 탁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뭐 어떡하자는건가? 망하는걸 구경하자는건가."

그래. 이런걸 물어줘야지. 고맙다.

"글쎄요. 뭐... 각자가 알아서 판단할 일이겠습니다만."

거기까지 말한 나는, 잠시 목을 축인 뒤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일이 잘 풀린다면 3일. 또는 일주일 안에, 이 일이 끝날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아마 사건이 일어나면, 지금은 보이지 않는 대책이 나오겠지요. 저도... 그리고 아마 다른 분들도, 생각이 있을테니까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셀레스트 쪽을 힐끗 봤다.

여전히, 눈을 감은채 표정에 미동하나 없는 그녀.

딱히 셀레스트의 반응이 궁금해서 본건 아니였다.

그냥 다른 이들에게, 셀레스트의 존재를 상기시키는 메세지일뿐.

"하여튼, 그렇게 된다면 결국 제일 큰 타격은 재앙 발생 첫날 입게될 겁니다. 미처 대비하기도 전, 갑작스럽게 대규모 침공을 받게 되면 각 나라들의 주요 대도시들이 뭘 하기도 전에 폐허가 될테니까요."

"그러니, 결국 중요한건 첫날 이들의 공습을 막는게 아니겠습니까?"

그래.

내 말은 두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첫번째. 좆되고 싶지 않으면 각국 협회나 히어로들에 게 침공사실을 넌지시 알려라. 물론 비밀리에. 배후가 누구일지 모르니.

두번째. 니들도 공습 첫날 좀 도와라. 테러도 할 도시와 상대할 시민들이 있어야 하지, 다 박살나고 죽었는데 뭘 할래?

"...."

그런 내 말에, 다들 굳은 표정으로 고심하는 얼굴이 되었다.

그래.

사실 내가 이렇게 나설 수 있는 것도, 이곳이 카테달이기 때문.

카테달. 세계 각국의 빌런 연합들 중 제일 세력이 큰 곳의 수장들이 모인 곳.

그런만큼, 다들 머리가 돌아가는 이기도 하고..

제일 큰건, 이들의 목적은 '멸망'이 아닌 '정복'이다.

세계멸망을 바라는 또라이들이면 오히려 이 상황을 즐길수도 있겠지만, 여기 있는 빌런들 모두는 각자의 나라를 지배하고 싶은거지 망하고 하게 싶어하는게 아니기 때문.

당장 카타나만 해도 자국 정복이 목표였고, 리 샤오펑도 마찬가지. 다른 이들도 거의 비슷하다. 특히 아틀라스나 셀레스트 급이 되면 세계 정복으로 꿈이 커진다.

그리고 이들은, 멀쩡한 세계를 갖고싶은거지. 반쯤 망해서 폐허가 된 세계를 갖고 싶은게 아니다. 그거 가져서 뭐하게.

원작에서도 실제로 월광교 재앙 이후 많은 나라들을 빌런이 먹었지만. 그들은 딱히 행복하지 않았다. 그랬으니까 원작에서도 재앙 이후 중반부터 협회랑 카테달이랑 협력해서 괴수 청소 나섰지. 너무 늦었지만.

어쨌든, 모두의 고뇌에 찬 표정을 보며. 마지막 입을 열었다.

"그럼."

"제 얘기는 여기까지 입니다."

남은 것들은... 니들 알아서 해라!

그렇게 내 발언시간이 끝났고.

대단히 우연히도 내가 셀레스트 쪽 가까이, 옆자리에 앉아있던 덕에. 내 정보공유 이후 회의는 금방 끝났다.

그리고 나는, 셀레스트가 회의를 파하자는 말이 나오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빠르게 사라지기 위해.

"...."

그리고 그러던 중.

내 옆쪽에 앉아있던 셀레스트와, 눈이 마주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기분 탓이겠지. 그녀가 눈을 뜰리가 없으니.

하여튼 그렇게, 나는 다시 내가 온 복도로 걸어갔고.

그런 내 곁을, 어느새 따라온 리 샤오펑과 카타나가 각자 내 오른쪽과 왼쪽편에 서서 따라왔다. 그리고 아틀라스는, 그런 내 뒤에서 다른 이들을 막듯 따라왔고.

그리고 우리는 이내, 각자의 편지를 찢고 다시 원래 집회 장소로 돌아갔다.

좋아. 카테달의 건도 끝났다.

이제 우리나라 말고도, 어느정도 대비가 되겠지.

이걸 위해서 카테달에 들어온 것도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내가 그런 생각을 하던 그때.

옆에 서있던 카타나가, 내게 묻는 소리를 들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에고스틱씨. 그런데..."

"네?"

"어째서, 저들에게는 재앙이 사흘에서 한주정도 걸린다고 말하신 건가요? 저희에겐 아마 하루면, 그 재앙도 끝날 수 있을거라 하셨으면서."

"아 그거야, 당연히..."

만약 하루만에 끝난다고 하면,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거든.

어차피 하루면, 나라가 좀 무너져도 복구시키기 쉬울테니까. 이 기회에 히어로들을 전부 담궈버리자... 라는 그런 큰일날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힘의 균형은 유지되어야 한다고. 좀 오래걸린다고 해야, 협력을 할 생각을 하겠지. 적어도 원작에선 그랬다.

"하여튼, 이제 다들 알아서 준비하겠죠."

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래, 이정도면 빌런 신분으로 최선을 다했다. 카테달에 들어가, 여러 정보로 신뢰를 쌓은뒤. 그 신뢰를 기반으로 재앙을 예측해, 모두가 내 말을 믿게 하였다.

이제는 정말, 일이 일어난 후에 하늘에 달렸다.

"...슬슬 가을이군요."

나는 옆에 의자에 앉으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가을이 지나, 겨울이 오고.

한 해가 끝날 때 쯤이 되면.

원작을 송두리 채 바꾸었던, 그 날이 오겠지.

모두가 죽어나가고 세계가 무너지던 그 날이.

내가 이 세계에 떨어진 순간부터, 제일 경계했던 그 날이.

"이제 기다립시다."

준비가 끝났으면, 기다려야지.

아마 이제부터는 시간이 정말 훅훅 갈거다. 원래 시험도 임박했을때 시간이 잘가듯, 이것 또한 그렇겠지.

...내가 스타더스한테 할 다음 테러가, 재앙 전 마지막이겠구만.

나는 조용히, 그런 생각을 했다.

월광교 재앙의 날.

사건 발생까지 남은 시간, 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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