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56화
히어로 만화.
히어로 만화 속 세계가, 초능력자들이 있다는거 말고는 내가 전에 살던 현실이랑 다른 점은 뭘까?
굳이 하나를 꼽자면 나는 매번, 뉴스가 재밌는걸 꼽는다. 티비만 키면 온갖 기상천외한 능력자들의 테러가 다 나오는데, 이게 재미없을 수가 있겠어?
[오늘 아랍 에미리트의 한 빌런이 낫을 들고 건물을 잘라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다행히 폐건물이라 사상자는 얼마 안나왔다고 하지만...]
그래. 예를 들어 저런거. 아랍의 낫 슬레이어 무스크다 알 미스네드씨(37세)를 봐라. 저 아저씨한테 칼 쥐어주면 카타나랑도 비비겠어.
"...."
무슨 하루에 일어난 각국 테러들만 모아 봐도 히어로 만화 한달치 분량이 되는 듯한 느낌.
사실 이게 내가 이 세계에 떨어졌을때 초반만 하더라도 이정도까지는 아니였는데, 갈수록 테러의 빈도가 많아지고 있다.
어제만 하더라도 이스라엘에 별을 떨어트리는 빌런, 인도네시아의 바나나를 총에서 발사하는 빌런등 온갖 테러들이 벌어졌었다. 물론 저런 기상천외한 능력들은 어지간하면 담백하고 순수하게 강한 히어로들에게 털리긴 하지만. 쟤들도 중력을 다루는 S급 히어로와 눈에서 레이져가 나가는 히어로한테 첫 테러 시도만에 붙잡혔다.
어쨌든 내가 하고싶은 말은, 요즘들어 테러도 많고 정국이 불안정한다는 것. 거기에 또 국가단위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는게 각국의 현실이다.
[속보)프랑스의 S급 빌런, 또 영국 습격 예고. 런던시민들 '긴장'. 영국 협회측 '프랑스 협회가 막지 않으면 분명한 보복이 있을 것.']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남미 빌런들 단체 봉기... 협회가 오기도 전에 S급 빌런연합 에테리아에 의해 조기 종결. 남미측 정부 '미국 빌런이 자국민을 죽였으니 배상해라.' 입장 밝혀 논란.]
[중동을 감싼 전란의 기류... 이라크 히어로들 전부 국경선에 배치 (종합 1보)]
[이탈리아의 A급 히어로 네위즈, 독일에서 국가교란죄로 검거. 이탈리아측 '송환해라' 대 독일측의 '해명해라' 팽배히 맞서.]
그래.
점점 강해지는 빌런들을 맞서기 위해 자기들끼리 힘을 합쳐도 모자랄 마당에, 지들끼리 싸우고 있는 모습. 이러니까 원작에서 다 망했지-라는 생각밖에 안드는 모습이다.
물론 이와중에 동아시아 나라들의 분란소식은 전혀 안뜨는게 또 재밌는 요소. 우리나라는 급증하는 빌런들 잡느라, 일본은 카타나가 정권 휘어잡느라, 중국쪽은 반란군들 제압하느라 바쁘다.
다들 이미 할게 많아서, 각자 다른 나라 신경쓸 틈이 없는 상황.
특히 중국쪽은 요즘 아주 난리가 아니다.
[중국정부, 대륙 최대규모 빌런연합이자 반란세력 '화룡'에 휴전 제안했다... 전 중국 군사담당자의 폭로. 정부측, '말도안되는 망상속 헛소리.' 분노.]
우리 리 샤오펑이 이끄는 빌런조직이자, 사실상 반-정부 세력인 화룡에 의해 영토가 조금씩 갈리고있는 중국이 결국 반군한테 휴전 제안까지 한 것. 물론 이건 새빨간 거짓말이라며 화내고 있지만, 난 안다. 저게 진짜라는걸...
'생각보다 빨리 됐네.'
그리고 한가지 재밌는점은, 원작보다 그 시기가 빠르다는거다.
원래는 월광교 재앙 일어나기 바로 직전에 저 얘기가 나왔는데, 이제는 지금 나온걸보면 아무래도 내가 리 샤오펑에게 건내줬던 정보가 유효했던 모양.
'어쨌든...'
내가 하고싶은 결론은 하나다.
세계가 혼란스러워 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럴수록 아군을 늘려야 한다는 것.
특히 이제 월광교부터 그 이후의 빌런 파티들을 생각하면, 우리나라 신경쓰기도 바쁜데 다른 나라에서 불똥튄게 한국까지 오면 상당히 곤란해진다. 우리 스타더스 지금도 힘들어하는데, 더 힘겹게 만들 순 없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바로 나라도 아군을 만들자는 것.
그리고 그 타겟은 당연히 우라나라 옆에 붙어있는 나라면서도, 영향력이 큰 나와 같은 빌런들이였다.
그리고 당연히 그 타겟의 첫번째는, 일본의 카타나였고.
"저와, 에고스틱씨와, 중국의 빌런까지 해서. 하나의 동맹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도쿄.
일본 최대 빌럴 조직 삼협파의 신본부, 수장 카타나의 집무실에서 난 그녀와 만나 차를 한잔 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이 제안을 하기 위해서.
'동아시아 빌런 연맹.'
나와 카타나, 리 샤오펑까지. 하나의 동맹을 맺어 서로 세력을 공고히 하는거다. 각자가 각자의 나라에서 제일 덩치가 큰 빌런들이라는 걸 재확인하는 용도도 있고...
'사실상 이게 말이 빌런 연맹이지, 세 나라의 연맹이랑 다를게 없으니까.'
그래.
카타나와 리 샤오펑 모두, 평범한 빌런이 아니다.
카타나는 사실상 일본을 장악한, 일본 열도 전체의 수장이라고 봐도 된다. 이미 정부의 인선에서 그녀의 입김이 안닿은 곳이 없고, 협회도 슬슬 그녀의 사람들로 차고 있으니까. 유능한 인재들이 전부 모인 삼협파답게, 원작과는 다른 상황이라 은근 걱정했는데 잘하고 있다고 들었다.
리 샤오펑도 지금은 중국을 절반넘게 먹으려 들고있는 반군이지만, 원작을 통해 나는 안다. 여러 세계규모급 재앙들을 통해 중국 정부의 힘이 점차 약해져, 끝내 리 샤오펑의 화룡이 중국의 패권을 장악한다는 것을. 심지어 내 정보까지 있으니 그 속도는 더 빠르겠지.
'그리고 나는...'
대한민국의 흑막인 이설아와 동맹관계다. 이설아또한 다른 나라들과 다르게 협회를 못먹었을 뿐이지, 정부, 국회부터 언론까지 다 먹은 그림과도 같은 흑막이기 때문. 그리고 이설아는 어지간하면 내 말을 따를것이기 때문에, 내가 저 둘과 동맹을 맺으면 자동적으로 대한민국 정부또한 동맹을 맺는단 소리.
거기에 협회에서 제일 강한 히어로인 스타더스또한 이설아의 친구니 말 다했지 뭐.
그러니까 한마디로 요약하면.
우리 세 나라의 빌런이 동맹을 맺는 그 순간, 자연스럽게 그게 세 나라 정부들의 동맹과 같아진다는 거다.
그렇기에 내가 더더욱, 카타나와 리 샤오펑과 친분을 유지하려 했던거고.
"으으음... 동맹이라."
그리고 다시 돌아와서, 일본. 카타나의 앞.
검은 묶은 머리를 뒤로 늘어트린 채, 내 제안에 침착한 얼굴로 잠시 하얀 일본식 도복을 입은 가슴에 손을 올린 채 고민하던 카타나는, 이내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알겠습니다. 에고스틱씨의 제안이니, 다 생각이 있으시겠죠."
상당히 쿨하게 그렇게 답변해준 그녀였다.
그렇게 난 감사인사를 전하고, 그녀가 온김에 밥먹고 가라며 오미카세를 대접받은 뒤, 자고 가라는건 웃으며 사양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하룻밤 자고오면 집에 와서 의심의 눈초리가...
하여튼 그렇게 카타나쪽을 설득하고 온 나는.
리 샤오펑에게 전화를 걸어, 약속을 잡고 다다음날 바로 중국으로 출국했다.
빌런이 하는 일. 해외 출장을 밥먹듯이 하기. 빌런으로 살기도 쉽지 않군...
***
"하하하! 아이고, 에고스틱씨. 어서 오시지요."
중국의 커다란 자색빛 기와가 깔린 탑의 꼭대기.
빌런조직 화룡의 수장, 리 샤오펑의 집무실.
그곳에서 머리를 변발로 시원하게 깐 리 샤오펑을 만난 나는, 그의 환대를 받으며 자리에 앉았다.
"에고스틱씨가 주신 도움 덕분에, 요즘 저희 조직이 참으로 부흥하고 있습니다. 감사의 말씀을 뭐라 전해야할지 모르겠군요."
"하하, 아닙니다. 약소한 거였는데요 뭐."
그렇게 여기서도 차... 아니, 빌런 수장들은 왜이렇게 차를 좋아해? 하여튼 또 녹색 이파리가 든 차를 마시며, 난 그에게 안부인사를 하며 덕담을 나눴다.
역시나 내 도움이 컸다고, 고맙다고 말하는 리 샤오펑. 수상할정도로 의와 협에 집착하는 그이기에, 역시나 받은 은혜를 잊기는 커녕 오히려 더 과대해석하는 그였다. 내가 이래서 리 샤오펑에게 준거기도 하다만.
하여튼 나는 그렇게 말을 하다가, 동맹 제안을 했다.
그러자 역시나.
"하하! 그거 좋은 생각이군요."
그렇게 호쾌하게 웃으며 긍정하는 그였다.
그래. 우리 샤오펑은 바로 수락할 줄 알았다. 내게 은혜를 입은 입장에서 거절하기도 뭐한것도 있겠지만, 머리도 계산적이게 돌아가는 그인만큼 순식간에 계산을 내리고 판단을 내린거겠지. 실보다 득이 많다고.
"한중일 세력 세명의 합작... 흠. 마치 촉나라의 유관장..."
혼자 흐뭇한 미소를 지은채 한중일이 뭐라고 중얼거리는 그였으나, 잘 들리진 않았다. 뭐 보나마나 또 손익계산 한번 더 따지고 있는거겠지. 저 순박한 표정 또한 연기인건, 나만 알고 있을거다.
"좋습니다. 그럼 며칠후에 시간되시면 저와 리 샤오펑씨, 카타나씨까지 함께 만나 더 자세한 얘기 나눠봅시다."
"하하. 좋군요."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답한 그였다.
그렇게 며칠 후. 나는 모두의 비는 시간을 찾아 시간을 잡았고.
이내 어쩌다보니 대한민국에서, 셋이 함께 만나 동맹 결성 회의를 하게 되었다.
"안녕하십니까, 카타나씨. 저희는 구면이죠."
"..안녕하십니까, 리 샤오펑씨."
...물론 카타나와 리 샤오펑이 서로 어색해하며, 둘다 나만 껌뻑껌뻑 바라보았다는 사소한 문제가 있긴 하지만, 어쨌든 우리는 이날 세부사항들까지 다 조정하였다.
그렇게.
"자, 한중일 빌런 연합 탄생을 축하하며 건배한잔 하죠."
"건배."
"건배!"
작은 원탁에서, 우리 세사람의 잔이 동시에 짠-하고 부딪히며.
한중일 빌런 연합이, 공식적으로 출범하였다.
"하하! 이것이 도원결의 아니겠습니까!"
...혼자 취한 리 샤오펑은 제쳐두고.
나는 술을 한잔 더 마시며, 집에 돌아가 글이나 쓸 준비를 했다.
에고스트림. 삼협파. 화룡. 한중일 세 나라의 최대 규모의 빌런 연합끼리의 동맹을, 모두에게 알릴 준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