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52
"여기야?"
[네. 맞습니다.]
에고스틱의 연락을 받은 그날 이후, 다음날.
긴장감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인지 뭔지 모를 감정속에서 잠에 든 그녀는, 아침부터 그의 연락을 받으며 일어났고.
그렇게 그녀는 히어로 슈트를 챙겨입은 뒤, 그가 불러준대로 이 폐허 비슷한 곳으로 오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 지하에 빌런이 있다고?"
[네. 그것도 아주 무시무시한 녀석이 말이죠.]
스타더스는 자신의 귓가에 들려오는 그의 말을 들으며, 자기도 모르게 귀를 매만졌다.
에고스틱이 통신기와 함께 준, 무선 이어폰을 닮은 이 장치를 통해 서로 대화하고 있는 상황.
그렇게 에고스틱 그가 원한 것은, 이 지하에 숨어있는 빌런을 처리해달라는 거였다.
[정확히는 빌런이라기보다는 살인 병기긴 한데... 아무튼 직접 보시면 아실겁니다.]
그렇게 설명하는 그였다.
그 자신이 처리하기엔 너무 강력하기에, 스타더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한 것.
...그 에고스트림 동료들로도 무리인가보지? 스타더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알겠어. 그래서 정확한 위치가 어디야?"
[거의 다 오셨습니다. 어디보다... 네, 그쯤이네요.]
서울도 아닌, 경기도 어딘가의 폐허.
분명 위치상은 숲이라고 되어있었으나, 예전에 빌런이 날뛰면서 모든걸 불태운 덕인지 이제는 무슨 사막처럼 황폐해진 곳이었다. 사방에 모래같은게 가득한게 정말 사막처럼 보일 정도로.
[이쯤인데... 근처에 마법진이 있을겁니다. 보이십니까?]
"마법진?"
[네. 제가 미리 표시해뒀거든요.]
"잠깐만..."
그렇게 중얼거린 그녀는, 이내 폐허 한쪽에 거대한 황색 바위앞에 그려진, 보라색의 마법진을 발견했다.
"찾았어."
[네, 잘하셨습니다. 그럼 이제 그 바위를 주먹으로 힘껏 차보세요.]
"바위를? ...알았어. 기다려봐봐."
이내 잠시 숨을 들이킨 뒤, 그의 말대로 바위를 주먹으로 때린 그녀.
그러자.
콰아아아아아앙.
"...?!"
바위만을 때렸을 뿐인데, 마치 땅을 폭발시킨 것 마냥 나는 엄청난 굉음과 충격파 그녀가 당황하던 그때.
"어라..?"
무언가, 보이지않는 유리가 깨지는 느낌과 함께.
산산히 조각나 가루가 되어버린 바위 뒤로, 무언가의 땅굴같은 통로가 들어났다.
"이거야?"
[네 맞습니다. 이 안에 그놈이 있을겁니다.]
"...알았어."
그렇게 그녀는 그곳으로 들어가기 전에, 숨을 한번 들이마쉬었다.
처음에 에고스틱의 연락을 받을때만 해도 약간 감정이 오락가락했지만, 그녀는 프로.
이곳에 사람들을 위협하는 빌런이 있다는 말에, 그녀는 그 이후로 시종일관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적을 상대할때는, 늘 냉정한 그녀였으니까.
그렇게 그녀가 그 안으로 들어가기전 마음을 가라앉힐 무렵, 문득 에고스틱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어왔다.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뭐가?"
[...저는 빌런이고, 당신은 히어로입니다. 이게 제가 당신을 처리하기 위해 준비해놓은 함정일 수도 있잖습니까? 여기가 어딘지도, 뭐하는 곳인지도 모르시지 않습니까.]
그녀가 지하로 들어가기 직전, 그렇게 겁주듯 말하는 그.
...그러나 오히려, 충고와 걱정의 기색이 더 읽히는 그 말에.
스타더스는 피식 웃으며, 에고스틱한테 말했다.
"...너가 날 처리하려 했다면, 기회도 많았는데 진작 했겠지. 이제와서 너가 그런다고?"
[그래도...]
"난 널 믿어."
그녀는 그렇게, 딱 잘라 말했다.
그래. 그녀가 에고스틱, 그를 못믿겠는가. 지금까지 자신을 살린적이 몇번이나 되는 그가? 그녀가 위기에 처한 순간, 늘 달려와서, 씨익 웃으며, 이제 괜찮다고 말하며, 자신을 구해준 그가?
그녀는 그런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았다.
믿는다는 말에, 순간 멈칫하는 그의 목소리.
그렇게 그녀가 들어가기 직전, 그가 걱정스럽다는 말투로 다시 입을 열었다.
[...저야 그렇다치고, 다른 빌런들 말도 이렇게 믿으시는건 아니시죠? 빌런들은 대부분 사악합니다. 그들의 말은 거의 다 기만이거나 함정이에요. 막 어디로 오라고 한다고 해서 들어가면 안되는거 아시죠?]
아무래도, 그는 그녀가 다른 빌런들 말도 이렇게 덮석 믿고 쫄래쫄래 따라가는줄 아는 모양이다.
...그럴리가 있겠는가.
그녀도 산전수전 다겪은 히어로고, 빌런의 말이라면 일단 의심부터 하고 경계하는 프로이다.
하지만.
그렇게 그녀는, 피식 웃으며.
에고스틱, 그만 들리게. 속삭이듯, 귀에 대고 말했다.
"다른 것들한텐 안그래."
"에고스틱, 너니까. 믿고 들어가는거야."
알겠어?
[......]
그녀의 말에 말문이 막힌듯 입을 다문 그.
그리고 그런 그의 침묵을 듣곤 피식 웃으며.
스타더스는, 거침없이 지하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와..."
지하 안.
어두운 땅굴 사이를 얼마나 걸었을까.
어느덧 주위에 하얀 대리석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그녀는 어느새 사람 수십명이 들어갈정도로 큰 뻥 뚫린 실내에 진입했다.
정확히는 마치 신전처럼 보이는, 그곳에.
"...여기가 어디야?"
마치 고대의 유적처럼 보이는 이곳.
황색의 등불들이 은은하게 빛을 내며, 정체불명의 기호와 도형들이 벽에 그려져있는 것들을 비추고 있는, 땅에 파묻히고 시간이 한참 흐른듯 빛바래있는 지하 신전 속에서.
그녀는 당황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이곳은 신전입니다. 정확히는 태양의 신전이라고 할 수 있죠.]
"신전? 잠깐만..."
그녀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확실히, 신전같기는 했다. 뭔가 제사에 쓰일법한 물건들이 널려있었고 기하학적인 그림들이 그려져 있는 모습을 보면.
다만 황토색 모래들에 파묻혀 오랜세월 방치된 것 처럼 보이는 이곳은, 너무 컸다.
겉보기에는 한 1000년은 넘게 침식된 것처럼 보이는 모습. 정확히는, 한국적이기보다는 이집트나 유럽풍에 가까운 곳이었다.
"...이정도 규모의 유적이, 어떻게 아직까지 발견이 안된거지?"
그렇게 중얼거린 그녀.
그리고 에고스틱은 통신기로 그 말을 듣고 있었는지,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아까전에 보셨듯이 결계로 계속 막혀있었으니까요.]
당연하다는 듯 답하는 그.
...대체 왜 결계가 쳐진 고대 신전이 땅아래에 묻혀있는건데. 그것도 뜬금없이 한국에. 이걸 에고스틱 그는 어떻게 알았고.
물론 그걸 묻는다고 그가 딱히 대답해줄것 같진 않았지만, 그녀는 일단 전진하기로 했다.
"그래서 대체 여기가 어딘데?"
그렇게 황토색 신전 사이를 걸으며, 그녀는 투덜거리듯 그렇게 물었다. 뭐하는 곳인지는 알려줄 수 있지 않는가.
그러자 에고스틱은 의외로 순순히 답변해주었다.
[이곳은 고대 태양 신의 신전입니다. 정확히는, 태양신이 미리 안배해놓은 자신의 신전이지요. 아주 오래전, 이 세상에 이능이라는게 처음 발현되기 시작할때쯤에 만들어졌을겁니다.]
마치 옛날 이야기를 해주듯 말해주는 그.
그러나 스타더스는, 대체 그가 무슨말을 하는건지 잘 이해되지 않았다. 태양 신? 이능? 무슨 신화를 말하는건가.
[뭐, 별빛인 당신에게는 상관없는 이야기입니다. 일단은, 이 태양신의 신전 아래에 있는 놈이 나쁜놈이라는 것만 알면 돼요.]
신의 기사.
-라고, 에고스틱은 설명했다.
고대부터 이루어진, 파괴만을 위해 움직이는 태양 빛의 병기. 언젠가 깨어나면 대한민국을 불태울, 지금이 아니면 해치우기 어려울 재앙덩어리.
"...어쨌든간에, 놈을 쓰러트리면 된다는거지?"
그녀는 혼란스러운 머리를 누르며, 그렇게 물었다.
...태양 신이니, 왜 한국에 뜬금없는 유적이 있는건지, 그곳 아래에 살인병기는 또 왜있는지 묻고싶은게 많았지만. 거기에 대체 에고스틱 그는 이것들을 어떻게 다 알고있는건지, 정말로 묻고싶었지만.
일단 그녀는, 현재 눈앞에 닥쳐온 위협부터 쓰러트린뒤 생각하기로 했다.
뭔지는 몰라도, 에고스틱 그가 이렇게까지 경고한 일이니 분명 뭔가 있긴 하겠지.
그렇게 그녀는 담담히 이 기묘한 유적을 걸어 내려갔고.
그러는동안 에고스틱은, 곧 있을 전투를 대비해 설명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스타더스씨, 귀에 꽂은 인이어 통신기 한번 툭툭 두들겨 보세요.]
"이거?"
그의 지시에 귀에 꽂은 둥그런 이어폰 같은것을 한번 손으로 두들긴 그녀.
그러자.
"...?"
갑자기 눈앞에 홀로그램 안경 같은 것이 통신기를 중심으로 튀어나와, 그녀의 눈앞에 둥둥 떠다녔다.
마치 SF영화에서나 볼법한 홀로그램 글라스.
그렇게 홀로그램을 통과해서 그녀의 시야에는, 둥둥거리며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됐다... 자, 이게 바로 제가 만든 차세대 히어로 보조장치입니다. 시야가 어느정도 넓어지고, 공격받는 즉시 오른쪽에서 날아오면 게임처럼 오른쪽에 붉은 빛이 번쩍이며, 적의 표적이 자동으로 뜨게 설계되었습니다.]
덤으로 저한테도 당신의 시야가 공유되고요.
-그는 덧붙이듯 그렇게 말했다.
"...신기하긴 하네. 그런데 이게 꼭 필요한거야?"
눈앞에 주먹을 쥐었다 펴보며 흥미롭게 그걸 지켜보던 그녀가 그렇게 말하자, 에고스틱은 마치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보이는 것처럼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네. 스타더스씨. 당신이 이제 만나게 될 적은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정확한 공략법과, 놈의 공격 패턴을 모르면 결코 무찌를 수 없어요.]
[그러니, 이번엔 제 말을 따라야합니다. 제가 지시하고, 알려드리겠습니다. 어디를 때려야하고, 어떻게 피해야 하는지.]
진지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는 그.
그 목소리를 듣고서, 그녀는 깨달았다. 이 일이 굉장히 그에게있어 중요한 사항임을.
...그리고, 혹시나 하는 자신에 대한 걱정 또한 그 안에 섞여있음을.
그렇기에 스타더스는, 걱정 말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답할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 네 말대로 할께.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된다고?"
[네. 이제 곧...]
그렇게 그녀는 작전을 논의하며, 유적 맨 끝에 계단을 걸어 내려갔고.
그 끝에서, 기묘한 문자들과 주술이 새겨져있는 거대한 황토색의 문을 지나 끝내 볼 수 있었다.
"...이거구나."
거대한, 수백명은 들어갈 수 있을것같은 성당과도 같은 곳.
벽에 붙은 스테인글라스들이, 지하에 있을 리 없는 기묘한 빛을 내뿜으며 은은하게 그곳을 밝히고 있는 가운데.
[...역시 있네요, 신의 기사.]
그 가운데, 커다란 관 같은 곳에서.
'.....'
은빛의 중장갑옷을 입은, 거대한 성기사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손을 교차시킨 채, 그 안에 고요히 누워있었다.
"...이제 어쩌지?"
그걸 본 그녀가, 작게 속삭이듯 에고스틱에게 귀를 대고 묻자.
그는 담담하게, 당연하다는듯 대답했다.
[일단 치면 깨어나겠죠. 전력을 다해 때려보세요.]
-선빵필승 아니겠습니까.
"....."
이래도 되는건가?
그녀는 가만히 고요하게 누워있는 성기사를 보며 잠시 고민했으나, 이내 결심을 굳히고 주먹을 쥐었다.
...그래, 뭐. 치면 뭐라도 반응을 보이겠지.
그렇게 스타더스는 주먹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