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41
바닷 속 깊은 곳에 위치한 도시, 라티스 시티.
그곳 한가운데 위치한 하얀 신전. 라티스의 수장 아틀라스가 머무는 그곳에서, 우리는 만남을 갖고 있었다.
"하하하! 오랜만에 에고스틱 자네 얼굴 보니까 좋구만. 그래, 그리고 이쪽이 카타나인가?"
"네. 안녕하십니까."
"그래 그래. 말 편하게 하게나 편하게! 아 그리고 이쪽은 우리 딸 아리엘이라네. 카타나 자네와는 초면이지? 서로 인사나 나누게나. 카타나, 이쪽이 아리엘. 아리엘, 이쪽이 카타나."
"안녕하십니까."
"네. 안녕하세요..."
격식있게 정적인 어조로 아리엘에게 손을 건낸 카타나와, 그에 맞추어 자신도 약간 붉어진 볼로 손을 건낸채 악수한 아리엘.
그렇게 둘의 인사도 끝나자, 아틀라스는 다시한번 껄껄 웃더니 말했다.
"그래, 그래. 그럼 이제 서로 인사도 나눴으니, 날 따라오게나. 아직 카테달이 열리기까지 시간도 많이 남았으니."
그렇게 아틀라스가 우리를 손님 응접실로 대리고 가려고 등을 뒤돌리던 그때.
"아, 아빠...!"
내내 조용히 아틀라스 뒤에 서있던 그의 딸 아리엘이, 약간 다급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흐음? 왜그러니, 딸아."
그제서야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보는 아틀라스.
그러다 자신의 아버지를 향해 다급히 눈짓을 하더니, 슬쩍 내쪽을 바라보는 그녀였다.
그제서야 뭔가를 기억해냈는지, 아아-하는 목소리와 함께 껄껄 웃는 그.
그러더니 아틀라스는 나를 향해 말했다.
"크흠. 에고스틱 자네. 아직 시간도 좀 있으니 그동안 난 카타나에게 신전 소개나 시켜주고있겠네. 그동안 내 딸과, 함께 이 근처나 한번 산책하고 오는게 어떤가?
나를 향해 그렇게 말하는 그.
내가 그 말을 듣고 아리엘쪽을 돌아보자, 약간 더 볼이 붉어지는 그녀였다.
...어떻게 돌아가는건지 대충 알거같네.
상황을 어느정도 파악한 나는, 씨익 웃으며 아틀라스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러도록 하죠."
"껄껄, 알겠네."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덧붙이는 그.
"들어줘서 고맙네. 어휴, 자네 오기 전부터 내 딸이 자네와 단둘이 시간을 내달라고 어찌나 나한테 칭얼거리던지, 만약 안들어줬으면 끝나고 나한테 얼마나 땍땍..."
"아... 아빠아!!!"
"어이쿠, 난 빨리 가봐야겠네. 카타나 이쪽으로 따라오게나."
자신을 향해 두 손을 쥔채 눈을 감고 붉어진 얼굴로 빼액 소리친 아리엘의 눈을 피하며, 짖궂은 미소를 지어보이더니 그렇게 카타나를 데리고 바람처럼 사라져버린 그였다.
그렇게 텅 빈 중앙에 나와 아리엘만 남은 상황.
"으으으..."
순간 나에게 그런 모습을 보인게 부끄러웠는지, 얼굴을 붙잡은채 터질듯이 새빨게진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아리엘.
나는 그런 그녀에게 자상한 미소를 지어준 뒤,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아리엘, 안내해줄래요?"
"네, 네에..."
그녀는 붉어진 얼굴로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게 난, 오랜만에 아리엘과 단 둘이 걷기 시작했다.
***
아리엘.
바닷빛처럼 맑고 푸른 머리카락과, 보석처럼 빛나는 하늘하늘한 수정빛 눈을 가진.
아틀라스가 누구보다 아끼는 외동딸이자, 대외적으로 한번도 공개되지 않은 그녀.
그리고, 원작에선 저주로 이 세상을 떠나 존재하지 않았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 그녀를 내가 원작을 뒤틀어 살려냈고.
'...그게 벌써 몇년 전이네.'
난 아틀라스와 손을 잡기 위해, 힘들게 그와 만난 이후 그의 딸을 구해내겠다는 약속을 했었다.
원작을 통해 무슨 종류의 저주인지, 해주법까지도 어느정도 알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 물론 어디까지나 대략적으로만 알던것이기에 해주가 쉽진 않았었지만.
그당시엔 아리엘의 상태가 심각했었다.
이미 저주로 인해 숨만 쉴뿐, 의식을 잃어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있기만 하고 있었으니. 그리고 그런 딸을 살리겠다고 발악하다보니, 아틀라스는 갈수록 폭력적이 되었고.
다만 다행히도 내가 난입한 덕분에, 아리엘은 기적적으로 살아날 수 있었다.
'당신이... 절 구해주신 건가요?'
...처음으로 눈을 뜬 아리엘이, 나와 눈을 마주쳤던 날이 떠오르네.
아리엘이 깨어난 그 이후로도 난 한동안 저주의 완전한 해주를 위해 아틀라스의 도시에 자주 방문했었다.
물론 그 이후론 나도 바빠져 한동안 못갔었지만.
하여튼, 그건 그렇고...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옆에서 여전히 약간 붉어진 볼로 말없이 걷고 있는 아리엘을 바라보았다.
"아리엘?"
"...! 네, 넷! 악, 으으..."
내 말에 순간 놀랐는지, 혀를 깨문 그녀.
나는 아리엘이 수치심으로 눈물까지 글썽이는 모습을 보곤, 빠르게 말을 돌렸다.
"오랜만에 얼굴보니까 반갑네요."
"네... 네. 저도 반가워요..."
"그동안 뭐하시고 지내셨어요?"
여전히 처음 만났을때처럼 수줍음이 많은 그녀를 향해 내가 그렇게 말하자, 더듬으면서도 대답하는 그녀.
"저, 저야 늘 똑같죠. 이 도시에서 그냥 산책한다던가, 아니면 바깥에서 해엄친다던가... 그런 것들이요. 아버지가 몸이 약하다고 못나가게 하니..."
그렇게 말하면서 약간 어두운 표정으로 말끝을 흐리는 그녀.
그러나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약간 미소짓는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도 뭐. 나름 재밌게 살고 있었어요. 아버지가 물려준 능력 덕인지 바다에서도 숨을 쉴 수 있으니까..."
그렇게 자신이 지금까지 뭘 하며 지냈는지를 설명하는 그녀.
역시나 말을 시작하자, 부끄러움이 덜해졌는지 아까의 부끄럼많던 모습과 다르게 웃으며 잘 얘기하는 그녀였다.
하긴, 예전에 아틀라스의 말에 의하면 집에서는 성격이 밝고 몸쓰는걸 좋아하는 천방지축인 느낌이라니까. 이상하게도 내 앞에선 뭔가 늘 급격히 부끄럼이 많아져서 그러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아리엘이 하는 말을 호응해주며 함께 도시의 외곽을 따라 길을 걸었다.
미소지은채 눈을 반짝이며, 저쪽 물속에서 거북이 인간과 함께 놀았던 일을 얘기해주는 그녀.
...그리고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볼때마다 느끼는건데, 아틀라스의 유전자가 대체 어디간건가 싶다. 분명 아틀라스 아재는 산적처럼 수염이난 험상굳은 인상인데, 그의 딸인 아리엘은 그냥 순수하게 미인이다. 어느정도냐면, 그냥 얼굴이 조각같은 느낌?
또 옷도 여리여리한, 마치 그리스 시대 복장처럼 하얀색의 얇은 천같은 걸 입고있어서 그런지 더 가냘파 보이는 느낌. 이또한 우락부락한 근육질의 아틀라스랑은 완전히 정반대이다. 그나마 둘의 공통점이라면 둘다 바다 복장이라 그런지 살색 노출이 많다는 정도..? 아, 그리고 아리엘또한 아팠던 몸임에도 불구하고 물속에서 뛰어노는걸 즐기는 활동적인 성격이란거 정도.
...사실, 이것도 억지로 끼워맞춘거지 사실상 푸른 빛깔의 눈동자색 말고는 같은점이 거의 없다봐도 된다. 아리엘이 아빠따라 바닷속에서 숨쉬는 능력과 물을 조종하는 능력을 가지지 않았으면 친자식이 맞는지 의심했을 정도. ...사별한 아내분의 외모가 쉬이 짐작이 된다.
하여튼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아리엘은 그제서야 자기혼자서만 떠들고있단걸 깨달았는지 말을 멈추곤 다시 약간 붉어진 얼굴로 말했다.
"앗... 죄송해요. 너무 저 혼자서만 말했죠?"
"하하. 아니에요. 저도 들으면서 재밌었습니다."
"으으응... 에고스틱씨는 뭐하고 지내셨어요?"
"네? 저야 뭐."
...테러하고, 다른 빌런 죽이고, 스타더스 성장 플랜 짜면서..?
순간 뭐라고 말할지 내가 고민하던 그때, 아리엘은 다 안다는듯 내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실 저도 방송 봤어요. 에고스트림인가... 거기 세워서 활동하시는거 맞죠? 테러하면서. 저희 아버지처럼."
"음, 네. 맞아요."
나는 순간 당황해 볼을 긁적이며 그렇게 답했다.
...맞다. 저번에 아틀라스가 나한테 자기 딸이 나에대해 막 찾아보고 있다고 말했었지. 그러면 다 알겠네.
'스읍...'
뭔가 부끄러운 사생활이 까발려진 기분에 약간 자괴감이 드는 느낌. 아무래도 아리엘은 깨어난 이후로도 오랫동안 환자여서 한동안 누워있었으니, 그러는동안 내가 때때로 찾아가 최대한 자상하게 돌봐주곤 했다. 약간 의사 빙의해서.
그런데 의사가 총들고 미친놈처럼 웃으면서 테러하는걸 환자가 라이브로 봤단 소리 아닌가? 이정도면 내가 진짜 의사였으면 의료면허 박탈급이다...
그렇게 내가 생각을 이어나가 대체 심해에서 어떻게 인터넷이 터지는거냐고 애꿎은 라티스단의 첨단 과학기술력을 원망하던 그때.
내 옆에서 함께 걷던 아리엘은, 세상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걸 보면서... 정말 부러웠어요."
"...네?"
부러워? 뭐가 부럽다는거지.
내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말을 잇는 그녀.
"저도 에고스틱씨처럼 밖에서 그렇게 뛰어놀고 싶거든요. 여기 바다 깊숙히 한가운데에 새장 속 새처럼 갇혀있는게 아니라..."
푸른 바다가 투명한 돔 밖으로 빛을 내고 있는 위를 올려다보며, 그렇게 중얼거리는 그녀.
내가 그런 그녀에게 뭐라고 답할지 고민하고 있을때.
그녀는 숨을 들이마쉬더니, 이내 결심했다는 듯 나를 휙 돌아보곤 말했다.
"그래서 에고스틱씨. 오빠에게 부탁이 있어요."
"....뭔가요?"
"저, 저도 오빠 파티의 멤버로 끼워주시면 안돼요? 에고스트림에요."
이내 두손으로 주먹을 쥔 채, 내게 약간 몸을 떨며 그렇게 말하는 그녀.
...아마, 오늘 이 얘기를 하고 싶었어서 날 부른거겠지. 이 말을 내게 하는게, 그녀가 용기를 최대로 낸거겠지.
그리고 난,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그녀에게.
미안한 말투로 답해줄 수밖에 없었다.
"...아쉽지만. 안돼요."
"...."
'....'
내 말에, 큰 충격을 받은 듯 몸이 굳은 그녀.
...그래도, 안되는건 안되는거였다. 아니. 몸도 아직 다 안나은 애를 데리고 테러를 하라고? 말도 안되는 소리다. 아틀라스가 나를 죽일수도 있다고.
거기에 그녀의 능력도 스타더스를 상대할 수 있을진 의문이다. 육안으론 본적이 없어 얼마나 강할진 모르지만, 어쨌든 하루종일 누워있다 깨어난 그녀가 스타더스를 상대할 수 있을거같지도 않고.
난 그래서 그 말을 잘 풀어서, 아리엘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게 잘 설명했다.
그러자 고개를 푹 숙인채 내 말을 듣다가, 이내 허망한 목소리로 잘 안들리는 말을 혼자 중얼거리는 그녀.
"...아하하. 그렇구나. 내가 약해서... 약해보여서..."
이내 그러더니 그녀는 고개를 번쩍 들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알겠어요. 에고스틱 오빠가 그런거라면 어쩔 수 없죠."
"이해해줘서 고마워."
"아니에요. 헤헤."
그리고 밝은 목소리로 말하는 그녀의 눈은.
어딘가, 약간 텅 비어있어 보였다.
...뭔가 좀 으시시한 기분이 들긴 하는데, 어쨌든간에 잘 풀린거겠지?
안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