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38
서은이.
우리 에고스트림의 정보 통신 및 해킹 담당이자 각종 도구들을 전부 책임지고 만드는 그녀.
지금이야 그저 귀여운 우리 에고스트림 막내이지만, 원작에서는 상당히 달랐다.
애초에 이미지도 굉장히 차갑고 냉소적인 악역이었으니까. 키도 꽤 컸고, 은빛의 머리카락도 단발인 지금과는 다르게 장발이였으니.
원작에서 첫 등장이 지금 시점으로부터도 몇년 뒤인만큼, 어른으로 등장한 그녀는 막을 수가 없었다. 이미 해킹능력이 정점에 다다른 덕분에 빌런 수용소 보안을 뚫어 대탈옥을 일으키질 않나, 무슨 병기들을 수십체 끌고 나타나질 않나.
특히 대탈옥 이벤트는 원작에서는 이때까지 나왔던 모든 빌런들이 다시한번 얼굴을 비추는, 독자들에게는 올스타전같은 느낌일진 몰라도 그걸 다 처리해야하는 스타더스에겐 그저 재앙이었을 뿐.
...물론 지금의 서은이는, 원작의 그 우울한 모습과는 많이 달라졌지만.
"응? 오빠, 왜그래요?"
"어. 아무것도 아니야. 잘만들었네."
"헤헤."
내가 그렇게 말하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자기도 모르게 헤실헤실 웃는 서은이.
...아 맞다. 바로 아까전에 이러지 말라고 했었는데.
근데 뭐, 막상 지금은 별말없이 좋아하니 상관없나.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서은이가 만들었다는 거대한 전투병기를 올려다봤다.
표면이 매끈하니, 반사돼서 빛나고 있는 거대한 하얀색의 로봇. 서은이가 일명 스타컨쿼러라고 이름붙인 그것.
그래. 서은이가 자랑스럽다는 듯 나에게 소개한 이게, 내 고민의 시작이였다.
...이거, 원작에서 S급 빌런으로 활동하던 서은이가 전투에 내보냈던 병기랑 너무 닮았거든.
물론 원작에서의 모습이랑은 좀 다르긴 했다. 원작은 이것보다 조금 더 마감이 깔끔했고, 컸고, 기능도 더 많았었으니까. 거기에 양산화에 성공했는지 여러대이기도 했고.
그래도 전체적인 모습은 완전히 같으니, 뭔가 좀 기분이 이상했다. 애초에 저걸 지금 시점에 벌써 만들었다는게 대단하기도 했고. 원작과는 달리 서은이 기분도 더 좋고, 우리 에고스트림 동료들도 있어서 그런가. 원작보다 심지어 더 똑똑한 느낌이다. 더 성장할 여지가 남아있다는건가.
"오빠, 뭔 일 있어요?"
내가 그렇게 로봇을 올려다보며 조용히 생각하고 있던 그때.
내 그런모습에 이상함을 느꼈는지, 서은이가 내 옷을 붙잡곤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그렇게 물어봤다.
....그래.
지금의 서은이는 원작의 서은이랑 다르니, 큰 걱정할거 없겠지. 그때와는 달리 가족이 있으니까. 나랑 서은이가 같이 지낸 세월만 벌써 3년이다. 원작이랑은 다르다, 원작이랑은.
나는 그래서 서은이에게 살짝 웃으며, 아무일도 없다는 듯 말했다.
"아, 별거아니야. 잠깐 다른 생각이 들어서. 그럼 이제 이것 좀 소개시켜줄래?"
"네! 오빠, 이거 봐봐요. 이건 세희 언니랑 같이 만든건데..."
그렇게 신이 난 서은이를 따라, 나는 그 기체에 가까이 다가갔다.
...아니, 진짜 보면 볼수록 신기하네. 이런건 대체 어떻게 만드는거야.
하여튼 이정도면 이제 스타더스를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하는 서은이에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응원해줬다.
...원작에서도 서은이가 만든 저 로봇이 결국 스타더스에 의해 박살났다는건, 음, 모르는척 하도록 하자.
그리고 그렇게 서은이의 병기를 소개받은 이후로부터 며칠후.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나는 달력을 바라보곤, 문득 그렇게 말했다.
...빌런 회의 카테달이 열린날이, 곧 다가오고 있었다.
***
저택 한쪽편에 위치한 내 방.
그곳 책상에 앉은 나는, 곰곰히 생각에 잠겨있었다.
"흠..."
톡. 톡.
[최근 프랑스의 S급 빌런 모르테가 영국에 출몰해 유럽 사회의 공포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모르테는 유럽 최대 빌런조직에 속한 인물로, '기계왕국 영국의 동력원을 박살내겠다'라는 선전포고와 함께 영국 어딘가에 숨어있다고 밝혀졌는데요. 이에 프랑스 협회가 영국에 아무런 도움을 제공하지 않겠다고 밝혀 큰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이에 영국 협회는 큰 불쾌감을 밝히며 '이기적인 바보들(idiots)'라는 강한 표현을 쓰며 두 나라의 관계가 악화일로를...]
한편 그러는동안 모니터에 나오고있는, 세계 정세를 알려주고있는 영상.
그곳에선 오늘도 다이나믹하게 돌아가고있는 다른 나라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음."
그리고 그걸 보며 내가 집중하고 있는건, 바로 다른게 아닌 빌런들.
특히 다른 나라 빌런들이 자국에 침입해오는 경우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그래. 원작 후반부가면 빈번하게 일어나는 상황이다.
세계가 개판이 되면서, 슬슬 자국은 질렸는지 다른 나라에 가서 깽판을 치는 빌런들이 많아지기 시작한것.
그리고 이건 나한테 굉장히 곤란한 경우다.
아니, 나비효과로 내가 아예 모르는 다른나라 빌런이 우리나라 쳐들어오면 어떡해. 안그래도 이미 한국에는 빌런이 가득한데, 다른 나라 빌런들까지 투하되면 감당이 안된다.
...물론.
그럴까봐, 내가 카테달 회의에 꼬박꼬박 참여하고 있기는 하다. 거기서 나름 의미심장한 짓도 하면서 영향력을 넓혀, 다른 나라 빌런들의 침입을 어느정도 막고 있기도 하고.
근데 어째, 이것만으론 좀 부족한 느낌.
"..."
딸깍. 딸깍.
나는 볼펜 끝을 누르며, 생각에 잠겼다.
그래.
월광게이트 뿐만이 아닌, 최후반부를 생각하면 이정도로는 부족하다. 특히 그쯤되면 드디어 진정한 의미의 '국제적 위협'이 닥치며, 다른 나라들끼리 이제 서로 싸우기 시작하거든. 너때문에 우리나라가 망했니 뭐 어쩌니 하며 심지어 전쟁까지 난다. 빌런들이랑 싸우기도 힘든데 히어로들끼리 싸우고 있으니 그야말로 개판.
그리고 더 무서운건,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라는거다. 특히 월광교사건 이후론 더더욱.
그렇기에 내가 지금 하고있는 생각은 하나다.
'아무래도... 다른 나라와도 연합하는게 맞겠지.'
특히 이웃나라들과는 더더욱.
일본이야 뭐, 이미 실세인 카타나와 꽤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저번에도 같이 얘기 나눴었으니까. 대충 조직을 운영하는게 얼마나 힘든지에 대한 푸념을 서로 했던거같다. 거기에 카타나는 이설아와 좋은 사이기도 하고.
하지만 아직 부족한 느낌.
"흐음..."
그래. 내가 지금 하고있는 생각은 단 하나.
"이거 어떻게... 잘 하면."
동아시아 빌런 연합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런 계획을 하고 있었다.
어지러운 국제사회, 협회가 반목한다면 빌런들이라도 서로 뭉쳐야 되지 않을까. 특히 앞으로의 혼란을 생각하면.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지도를 살펴봤다.
그럼 결국 저 대륙의 빌런을 꼬드겨야 하는데...
"리 샤오펑이라..."
중국 최대 빌런조직인 화룡의 수장이자, 무려 불타는 화염으로 이루어진 동양 용을 소환하는 능력을 가진 빌런.
대충 얘도 어떻게 하면...
"흐음..."
내가 그렇게 아시아 최대의 빌런 연합 모임을 꿈꾸며 머리를 끙끙거리고 있을 때.
때마침 모니터에 띄워논 영상에선, 내 얘기가 나오고 있었다.
[네. 이번에 전해드릴 소식은 바로! 대한민국의 A급 빌런 에고스틱이 전세계 빌런 랭킹 탑 100에 이름을 올렸다는 소식인데요...]
"...?"
나는 뜬금없이 들려온 얘기에 고개를 들었다.
무슨 빌런 랭킹. 애초에 빌런에 랭킹이 있었어?
[이는 무력이 약한 빌런들 중 거의 최초에 가깝다고 하는데요. 특히 선정과정에서 '대중의 지지를 받아 히어로들도 처리하기 껄끄럽다'라는 점과 '특유의 친화력과 리더쉽으로 휘하에 수많은, 그보다 강한 빌런들이 따르고 있다는 것'을 주요 사항으로 삼았습니다. 대한민국 빌런이 HVC 랭킹에 이름을 올린 것은 이번이 최근 10년간 최초라고도 합니다...]
아, 거긴가.
나는 HVC라 이름을 듣고서야 기억해냈다. 세계 최대 규모의 히어로-빌런 연구기관이자, 매년 랭킹을 발표하는 곳. 협회가 모든 히어로와 빌런을 대충 일정기준 이상이면 S급으로 퉁치기에, 이들의 능력의 강함정도를 세세하게 나누겠다는 의미에서 출범한 곳이다.
내가 이곳을 알고있는 이유는 당연히 스타더스 때문.
원작에선 저 HVC인가 뭔가의 히어로 랭킹에 아예 끼지도 못한 스타더스였던만큼, 그걸로 공격받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지금은? 당연히 랭킹에 이름을 올린지 오래. 그것도 꽤나 예전에 올라왔었다. 내가 그때 참 뿌듯했었지. 비공식이긴 해도, 나름의 권위가 있는 곳에서 스타더스가 인정받았단 소리 아닌가.
근데 여기서 빌런 랭킹까지 매긴다는 소리는 몰랐었는데. 이게 영향력이 있나? 아니, 애초에 나 협회에선 A급밖에 안되는데. 하긴 그건 스타더스도 그렇긴 하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검색을 해봤다.
...어, 꽤나 있나보다. 검색하자마자 무슨 내가 그곳 랭킹에 들어갔다는 얘기밖에 없네.
그렇게 검색해본 결과 뜨는 전체 랭킹.
나는 이중에 이번에 랭킹에 처음 들어온 것 치곤, 무려 50위라는 반절은 재치는 쪽에 위치해 있었다.
"....?"
아니, 그전까지는 랭킹에 아예 없다고 하지 않았나? 생각보다 높네?
그런 생각을 하며 난 심심해진김에 전체 빌런랭킹을 훑어봤다.
1위는 당연히 셀레스트. 카테달의 수장인 그녀고...
내 위에 카타나와 리샤오펑이 위치해 있는 모습이였다. 카타나는 당연히 지금 일본을 먹었으니까 높은 등수겠지. 랭킹자체가 영향력 및 위험성으로 매겨진다고 하니까.
우리나라의 다른 빌런들은 안보이는 모습. 뭐, 월광교가 곧 일치면 순식간에 들어올거 같긴 한데...
결과적으로 이걸보니 세계에 참 미친능력자들이 많다는 결론만이 나왔다. 대부분 미국에 있긴 한데, 무슨 화산 폭발 능력을 가진 빌런은 뭐야.
"뭐 재밌네..."
나는 그정도로 가볍게 생각하고 넘겼다. 뭐 내가 50위든 500위든 뭐가 중요하겠어. 어차피 저게 협회 공식도 아니고.
...그래. 그때는 몰랐었다.
이 일이 불러일으킬 파장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