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37
협회장을 만나고 온 이후.
나는 집 방안에서, 잠시 생각에 잠겨있었다.
"...."
사실 다 잘풀렸긴 했다. 잘풀렸긴 했는데...
뭐랄까. 좀 찜찜한 기분. 그러니까 생각보다 너무 잘 풀려서 문제였다. 협회장이 내 말을 한방에 믿더라고.
그래서 좀 당황하긴 했는데, 아무튼.
협회장이 원작에서 보여준 모습을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뭐랄까, 좀 단순해...
그래도 분명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애초에 매년 갈려나가던 협회장 자리를 꽤 오래 유지한 것만봐도 능력이 있단 소리겠지. 좀 겉보기에 많이 무능해보이긴 해도.
'....어쨌든, 뭐. 날 완전히 믿은게 아닐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일단 곧 다가올 위험에 대한 경고는 확실히 알아들은 것 같다.
그래, 그거면 된거지 뭐. 협회장은 그정도만 해줘도 1인분 해주는거다. 월광교 막으려면 협회쪽 협력이 필수거든.
참고로 바로 그날, 나는 이설아와 통화해서 얘기해줬다.
[네, 다인씨. 결국 협회장과 접촉하셨다고요?.
"어. 어느정도 협력도 받아냈어."
[다행이네요. 뭐, 협회장이라면 충분히 그럴만하죠. 저도 따로 얘기해 봐야겠네요. 다만...]
"응?"
[다인씨. 어디까지 말하신거예요? 미리 말을 맞춰야죠."
그렇게 묻는 이설아의 말에, 나는 솔직히 대답해줬다.
"음... 대충 난 뭐 국가를 위한다는거랑, 스타더스 키울려고 테러 일으켰다정도?"
[...꽤 많이 말하셨네요. 그럼 제 얘기는요?]
"아, 네 얘기도 나왔지. 그냥 아는 사이다... 이정도만 말해줬어. 같은 편이라고."
[으음....]
내 그런말에 잠시 조용히 생각하던 이설아는, 이내 입장을 정리해서 입을 열었다.
[그럼... 대충 제가 에고스틱씨랑 우연히 만난 이후로 에고스틱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그냥 어느정도 아는 사이다. 그 정도로만 말해둘께요. 일단 협회장을 믿을 수가 없어서...]
"그래. 일단은 그렇게 하자."
...내가 아이시클이랑 아는 사이라고만 말했는데도 그런 반응이었는데, 이미 밥도먹고 술도먹고 같이 테러도 조작해 했다는걸 알면 무슨 반응을 보일지 모른다.
거기에, 이설아가 나한테 협회 기밀정보 넘겨준게 은근 많아서.
[네. 그러면 그건 그렇고...]
그 이후로도 우리는 여러 사업적인 대화를 나누고, 이내 전화를 끊었다. 전화로 나누기에는 무리가 있으니, 나중에 와서 오랜만에 밥도 먹고 직접 만나자는 이설아에 말에 알겠다고 하며.
휴.
뭔가 이러고 있으니, 진짜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기분이 확연히 드네.
나는 그런 감상을 한채 방 밖으로 나왔다.
...뭔가 복잡미묘한 기분이다. 내가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고.
뭐, 아직 시간은 조금 있으니 지금 너무 고민하지 말자.
어차피 계획은 차근차근 잘 진행되고 있으니까.
내가 그런 생각을 하며 거실로 돌아왔을 때쯤.
"....음?"
나는 무언가를 열중해서 바라보고 있는 서은이를 발견했다.
막 노트북을 두들기며 뭔가를 하고 있는데, 아주 집중하고 있는듯한 모습.
거기에 주위에 은월이나 최세희, 심지어 서자영까지 전부 지하 아래로 내려가 훈련인가 무언갈 하고 있는 상황에서, 서은이 혼자 이러고 있는걸 보게된 건 굉장히 의외였다.
"서은아, 뭐하니?"
"아 오빠. 잠시만요."
나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열중한 채 계속 무언갈 다닥이는 그녀.
나는 그런 서은이의 뒤에 서서, 서은이가 하고 있는걸 지켜봤다.
대충 보니 뭔가 이번에 만드는 뭔가 코딩 비슷한걸 하고 있는 모양. 또 뭔갈 만들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열심히 일하고 있는 서은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뒤 소파에 앉아 티비의 뉴스 채널을 키자, 곧바로 내가 주목할 수밖에 없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바로 한국에서 생긴 월광교 게이트 하나에, 그것에 대한 해외 반응을 소개해주고 있었던 것.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단순히 빌런의 소행이라고 판단하지만, 일부는 이것이 무슨 불길한 징조가 아니냐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본적없는 형태라는 것과, 전세계 각국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들어...]
그런 기자의 말 뒤로는, 검푸르게 일렁이고 있는 여기같은 포탈의 모습이 보였다.
하긴, 저런게 생겨서 괴물들이 튀어나오는게 좀 이상하긴 하지. 그런데 세상이 더 이상해서 주목을 못받고 있는거고.
사실 저게 불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설마 저게 전세계 모든 주요 도시에 빽빽하게 생겨나 수십만마리의 괴물들을 쏟아부으며 인류를 멸망으로 이끌거라곤 생각하지 못하고 있을거다.
...그래, 생각해보면 이제 슬슬 카테달 쪽에도 정보를 흘려야 되는데. 곧 소집일이 다가오고 있긴 하다. 다만 그때 그것보다 더 중요한게 있을거 같아서 말이지.
우리나라야 뭐. 나도 있고, 이설아도 있고, PMC도 있고, 스타더스도 있고...
그렇게 스타더스 생각을 무의식중에 하던 나는, 문득 또 내가 저번 스크림 메이커 사건때 그녀에게 남기고 온 편지가 떠올랐다.
"....."
...내가 왜 그랬지.
진짜 갈수록 시간이 지날때마다 느끼는건데, 진짜 왜 그걸 적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내 뛰어난 직감으로 봤을때 스타더스가 보고 표정을 찡그리며 편지를 갈기갈기 찢어버렸을 확률이 99퍼센트. 다행히 협회쪽에 건내질 않은걸 보아 역시나 찢거나 불태웠을 확률이 제일 크다고 본다.
내가 티비를 보며 혼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그리고 이거까지 하면, 다했다!"
옆에서 서은이가 뿌듯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는게 들려왔다.
"다했어?"
"네. 하아, 힘들었어요..."
"수고했어."
나는 그렇게 말하며 노트북 앞에 엎어진 서은이의 머리를 격려의 의미로 쓰다듬어 주었다.
"에헤헤..."
그리고 그게 좋은지, 한동안 엎어져서 내 쓰다듬을 받던 그녀.
"...헛. 잠깐!"
그러더니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든 서은이였다.
그리곤 내 눈을 마주치며, 말하는 그녀.
"오빠. 이제 저 안쓰다듬어 주셔도 되요."
"응? 싫어?"
"아니... 그건 아닌데. 큼, 저도 이제 몇달 뒤면 어른이잖아요. 그러니 어른스럽게 행동해야죠!"
허리에 손을 올리곤, 내게 그렇게 말하는 서은이.
...어쩐지 갈수록 성인 되는거에 큰 신경을 쓰는 서은이였다. 아니, 어차피 지금도 이미 미성년자가 겪는 제약은 아무것도 안받지 않나? 사실상 성인이랑 다를게 없는데, 왜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뭐, 본인이 그러겠다면 그런거겠지.
"그래. 우리 서은이 이제 어른이지. 알았어. 안그럴게."
"맞죠 어른이죠! 근데 음... 큼, 큼. 그런데 가끔씩은 또 괜찮을지도요?"
내 빠른 대답에, 또 마지막에 애매한 미소로 덧붙이는 서은이였다.
...본심을 말해 서은아...!
이미 처음 만날때보다 커서 전보다 훨씬 어른스러워지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내눈엔 예전의 서은이의 모습 그대로 였다. 아, 완전 예전은 아니고 적당히 예전. 서은이 첫 만남땐 좀 무서웠었어...
내가 그런 생각을 하던 그때. 갑자기 내 손을 덥석 잡는 서은이.
"맞아요 오빠. 이제 거의 완성도 됐겠다. 보여드릴게 있어요. 따라와요!"
"응?"
그렇게 난 갑자기 텐션이 업된 서은이에게 잡혀 난 지하실로 끌려갔다.
그렇게 순식간에 맨 밑으로 도착한 우리.
"뭐길래 그래 서은아?"
"뭐겠어요. 바로 제 새로운 스타버스터 5호가 완성됐으니까죠!"
사실 아까부터 나한테 이거 보여줄려고 거실에서 기다렸다고 웃으며 덧붙이는 그녀.
...오, 이번엔 확실히 자신있는 모습이였다. 하긴, 서은이 기술력도 갈수록 발전하니. 이제 거의 정점에 다달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저번에 협회장 사무실 침입할때, 서은이가 잠시 협회 보안망을 셧다운하지 않았는가. 초반엔 협회쪽 전산망은 독자적인 내부 라인을 써서 거의 건들지도 못했다는걸 생각하면 놀라운 발전이였다.
아무튼 그렇게 서은이의 비밀 창고에 도착하자, 그제서야 난 다른 이들을 볼 수 있었다.
"어, 다인 너 왔어?"
커다랗게 뻥 뚫린 지하실.
그 앞쪽에서 무언가 일을 하고 있다가, 막 도착한 날 보더니 땀을 흘리며 그렇게 말하는 최세희.
아마 이때까지 전기 능력으로 서은이를 도운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밑엔.
"살... 려... 줘."
지하 바닥에 엎어진 채, 손을 이쪽으로 내밀며 파들파들 떨고있는 서자영이 보였다.
"...얜 왜이래?"
"몰라. 서은이 로봇 내구력 테스트 좀 하게 불 좀 소환하라고 했더니, 그거 하나 하고 이렇게 엎어졌더라."
그렇게 말하는 최세희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음. 평소처럼 꾀병이었구나.
"아니! 야, 내가 그 큰거 다 불 바른다고 얼마나 고생을..."
물론 서자영의 항변이 있었으나, 애석하게도 잘 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하여튼 거대한 지하실 한쪽편에 커다란 커튼같은 무언가로 가려져있는 그쪽.
그곳의 앞에서, 서은이는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외쳤다.
"어쨌든! 이게 제 역작이에요. 일명 스타컨쿼러!"
그렇게 말하는 서은이가 버튼을 꾹 누르자.
한쪽편의 커튼같은게 차르륵하고 걷히며.
거대한, 인간형 로봇같은게 모습을 드러냈다.
"어때요 오빠? 가동성을 위해 최대한 인간의 모습을 재현했어요! 그러나 파괴력은 지금까지 것들중에서도 몇배!"
내 앞에서 자랑스럽다는 듯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서은이.
실제로, 이때까지 서은이가 만들었던 것들중 제일 멋있어 보이는 모습이였다.
이때까지 그녀가 만든것들이 다 좀 투박한 병기같은 느낌이었다면, 이건 마치 예술 작품같은 느낌. 새하얀 색으로 도색되어, 날씬하고 우아한 로봇형 슈트를 몇배로 키운듯이 생겼었다. 이 큰 지하 공간 천장을 찍을 정도로 거대하기도 했고.
종합적으로, 첫인상은 약간 미래지향적이게 생기고 크기도 큰게 그냥 강해보이는 느낌.
"어때요? 대단하죠?"
그리고.
"....어. 멋지네."
난, 그걸 보며 서은이에게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차마 웃을 수 없었다.
'.....'
...저게.
지금이랑 달리.
원작에서 타락해 S급 빌런이자 페이즈 최종보스이던 서은이. 일명 '하얀마녀' 한서은.
그녀가 최종 전투에서 썼던 전투 병기와, 너무나도 똑같이 생겼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