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36
협회장을 꼬시자.
월광교를 대비해 무엇을 해야할까. 그것에 대해 내가 고민하다 내린 결론이었다.
협회의 초당적 협력을 이끌어내려면 무엇을 해야할까. 당연히 협회장을 설득해야지. 그리고 일단 그럴려면 협회장을 만나야하고.
결심을 마친 나는, 망설이지 않고 계획을 행동으로 옮겼고.
그 결과.
"안녕하십니까, 협회장님."
"...흠? 누구인가."
"처음 뵙겠습니다. 에고스틱입니다."
"......"
서울 한복판 중심부, 철통같은 보안을 자랑하는 대한민국 협회.
그곳 최상층에 있는 협회장실에 당당하게 순간이동한 나랑 눈이 딱 마주친 협회장 박준호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
약간 얼굴이 창백해진게, 소리없는 비명이라도 지르는 듯한 모습. 하긴, 갑자기 자기 사무실에 쳐들어온 빌런과 마주할 줄 그가 상상이나 했겠나.
그렇게 잠시 얼어붙은 그는.
이내 땅이 꺼져라 짙은 한숨을 쉬더니, 다시 고개를 원래 보고있던 서류로 돌린 후 내게 중얼거리듯 말했다.
"....에휴. 그래, 자네는 왜 왔는가."
"어라? 별로 놀라시지 않네요. 뭐 히어로들은 안부르시나요?"
내가 의뭉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소파쪽으로 걸어가는 동안, 책상 앞에 앉아있던 협회장은 순식간에 10년은 더 먹은듯 지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자네가 이미 이곳에 들어왔다는게 협회의 보안을 다 뚫었단 소리인데, 이제와서 뭘 해봐야 무엇하겠는가. 하아."
이미 반쯤 포기한 듯 그렇게 중얼거리는 협회장.
...하긴, 내가 이미 들어오는데 성공한 이상 뭘하던 의미 없겠지. 이미 내가 연락망을 다 끊은 것도 사실이고.
즉, 빠르게 포기해버렸단 소리다.
...역시 협회장답달까. 늘 판단과 행동 하나는 빠른 그 다웠다.
"그래서, 여기는 왜 온거지? 날 처리하러 온건가?"
"하하하, 아니요. 제가 왜 그러겠습니까? 일 잘하고 계신 협회장님한테 굳이 그럴 필요가 없죠."
나는 앞의 소파에 앉으며, 웃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래. 일단 내 목표는 협회장 설득.
그러기 위해서는, 나도 내 패를 까야한다.
즉 입을 털어야한다는 소리.
"...협회장님, 저는 당신과 척을 질 생각이 없습니다. 오히려 같은 편이라면 모를까."
"....흐음?"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죠."
나는 거기까지만 말한다음, 웃는걸 멈추고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와 말했다.
"대한민국이, 위험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그걸 막기 위해선, 협회장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
조용히 내 말을 듣고있는 그.
그래.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협회장이 완전히 날 믿게 만드는 것. 그러기 위해선 스토리를 풀 필요가 있다. 이야기에서 오는 설득력이 있거든.
그래서 난, 여기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었다.
"일단 제 얘기부터 하죠."
"일단 전 딱히 빌런이 되고싶지 않았었습니다."
"...?"
내 말에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거냐는듯 얼굴을 찌푸리는 협회장.
나는 그런 그의 반응을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 본격적으로 한번 입을 털어보자.
***
협회장과 진득한 대화를 나눈 이후.
"그러니까... 사실 자네는 빌런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나라를 구하고 싶은게 본심이다?"
협회장은 내 말을 듣곤,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말했다.
내가 한 말은 사실 난 나라를 지키고 싶었으며, 빌런이 활동하는데 더 이점이 있어서 빌런으로 활동했다는거. 테러는 스타더스를 강화시키기 위해 했다 그정도.
"네. 믿지 않으셔도 이해합니다만..."
"아니, 믿네."
"...네?"
너무나도 빠른 답에 내가 순간 벙찌자,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하는 협회장.
"...자네가 그렇게 다 말했는데, 어떻게 안믿겠나. 솔직히 지금까지 한 일들만 봐도 알겠는데. 뭐, 큰 한방을 위한 기만책이 아닐까 하고 경계할 순 있겠지만. 애초에 자네가 날 이곳에서 건들지 않는 것만 봐도 대충은 알겠네."
마치 처음부터 알고있었다는 듯,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그.
그리고 그런 말에, 나는 오히려 더 벙쪄졌다.
...아니, 빌런을 이렇게 쉽게 믿으면 어떡하는데?
협회장이라면, 그 의심 그런걸 해야하는게 아닌가? 내가 신뢰를 쌓는 척 하다가 곧바로 배신때리면 어떡할려고 날 믿는데. 내가 여기서 통수치면 상황이 답도 없어질텐데.
...음. 근데, 뭐. 또 생각해보면.
'하긴, 협회장이니까.'
이 아재는 늘 이런식이긴 했다. 무슨 일에 대한 판단을 거의 뇌도 안거치고 순식간에 내리고, 무조건 그 판단대로 행동한다. 그리고 그게 운좋게도 늘 어지간하면 맞었었고. 그덕에 협회장까지 됐으니.
하여튼 내 말을 믿어준다는건 나쁜일이 아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협회장은 내게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에고스틱 자네가 빌런이든 뭐든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 자네가 처음에 말한 그 커다란 위험이란데 더 관심이 가는군. 대체 뭐길래 자네가 나한테 숨겨오던 정체까지 밝히며 그러는건지."
그런 그의 물음에.
나는 자세히 답해주기로 했다.
"월광교 아십니까?"
"당연히 알지. 그놈들이 지랄한게 벌써 몇번째인데."
"놈들이 이세계에서 포탈을 이어, 지구상에 괴물들을 풀어놓으려 하고 있습니다."
"...."
나는 거기서 더 자세히 알려주었다.
이 괴수들의 양이 얼마나 많을건지. 지금의 히어로들 수로는 막기에 턱없이 부족할 것이라는 것과, 나라가 혼란에 빠질거라는 내용."
"월광교, 결국 그놈들인가. 요즘 좀 조용하길레 집에 쉬러간줄 알았더니 그런 짓을 준비해 놓았을 줄이야. 전국의 괴수 영토화라 참..."
그렇게 한숨만 내뱉던 그는, 이내 내게 물었다.
"그래서. 뭘 하면 되는건가?"
"일단 방어시설을 구축해 놔야겠죠. 쉘터나 대피소같은거, 어차피 능력자들 쓰면 몇달이면 만드니까 더 늘리고...등등 있습니다. 총기류도 있으면 좋고요. 효과는 별로지만 어쨌든 어느정도는 통하니까요. 그외에도 여러가지 있습니다만, 이건 따로 자료를 보내 더 자세히 얘기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알겠네. 하아, 하루만에 너무 많은걸 알게됐군. 솔직히 좀 어지럽지만... 애초에 자네가 테러를 한 이유가 스타더스를 위해서라니, 이건 좀 놀랍긴 했다네. 대체 왜 테러를 하나 했더니 그런 이유였을 줄이야."
다른건 예상했지만 그건 예상하지 못했다는 협회장.
나는 그런 그에게, 은근슬쩍 내가 한 일을 협회와 엮에 포장해 말했다.
"어찌됐건 스타더스의 능력이 강해지는게 대한민국이 안전해지는 길 아니겠습니까? 그래야 협회의 명성도 높아지고요. 협회가 잘되는게 대한민국이 잘되는게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맞네 그려. 자네, 대화를 나눠보니 뭘 좀 아는 친구구만?"
역시나 협회쪽을 건드라자 바로 좋아하는 그.
그렇게 협회장의 수협제협 치국평화론을 들어주며, 우리는 좀 더 심도깊은 논의를 나눴다.
"...그런데."
"예?"
그때 마침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연 협회장.
그는 이내,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자네 그래서, 내 본명은 어떻게 아는건가?"
"예?"
"내 본명말일세. 박막춘. 그건 분명 아는 사람이 한명도 없을텐데. 애초에 내가 다 기록삭제까지 했는데, 어떻게 아는건가."
"...?"
진지한 얼굴로 영 쌩뚱맞은걸 묻는 그.
대체 뭔 소리를 하는건가 생각해보다가, 그제서야 내가 예전에 호텔 놀러갔을때가 가면쓰고 뻥치면서 협회장이랑 친구라며 박막춘 이름을 깐게 기억났다.
"아 그거. 그냥 어쩌다보니 알게 됐는데요."
"..."
뭐. 왜.
***
"아무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알겠네."
그렇게 협회장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눈 이후.
나는 이제 슬슬 갈 준비를 했다
...협회장을 설득하는게 은근 힘들줄 알고, 다양한 상황을 다 준비해 왔는데 너무 쉽게 풀리니 좀 당황스러울 지경.
어쨌든 좋은게 좋은거지 뭐.
내가 그렇게 가려할때.
마지막 순간, 협회장이 내게 물었다.
"잠깐... 그래서. 이때까지 우리가 나눈 이야기는 비밀인건가?"
"네? 아, 네. 그렇습니다. 직원들은 당연하고, 히어로중에선 스타더스에겐 절대 말하지 말아주세요."
"알겠네. 음...? 잠깐."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그는, 문득 알아챘다는 듯 내게 물었다.
"스타더스에게만 말하지 말고, 다른 히어로들에겐 괜찮단 소린가?"
"음..."
그게 그렇게 되나?
...늘 쓸데없이 이상한데서 캐치를 잘하는 협회장이었다.
어차피 뭐, 이설아와 다같이 협력해야되니 말해도 상관 없으려나.
그래서 나는, 그냥 대놓고 말했다.
"아... 네. 어차피 아이시클은 제 정체를 알거든요. 섀도우워커도... 어, 생각해보니까 알고."
"...."
내 말에 그는, 자신의 텅 빈 머리를 쓰다듬으며 배신감에 젖은채 중얼거렸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 히어로들이 다들 빌런이랑 이미 붙어있었구만 그려."
"...하하."
"....알겠네. 이만 가보게."
"알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시길."
그렇게 어지러운 듯 머릴 붙잡고 있는 협회장을 뒤로하고, 나는 떠났다.
나중에 또 만나기로 했으니 그때 계획이 더 구체화되면 연락하면 되겠지. 일단은 쉘터 증건이나 PMC 규제완화등 이제부터 빨리빨리 준비해야되는 것들에 대한 대화만 나눴으니까.
그렇게 앞으로 할일이 많아졌다며 탄식하는 협회장의 중얼거림을 들으며, 나는 순간이동했다.
좋아, 협회장 설득에도 성공했다.
...그런데 어쩐지 이설아에 섀도우워커에 이번 협회장에, 갈수록 빌런인 내 적이여야 할 히어로 협회 이들이 하나 둘 내 정체를 알고 내 편이 되니 좀 묘한 기분. 이게 맞나..?란 생각이 계속 들긴 한다.
그래도 뭐.
'스타더스만 계속 나를 적대한다면, 다른 사람들은 별 상관없지 뭐.'
그래.
난 그런 생각을 하며,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스타더스는 날 싫어할테니 상관없을거다. 아마도.
***
그리고 그날 밤.
[For you Stardus.]
[당신을 신경쓰이게 하는 빌런은 저면 충분하지, 다른 이들한테 집중하게 하고 싶지 않네요. 그리고 요즘 기분이 좀 안좋아보이셔서 무슨 일 있으신가 걱정되는데, 얼른 다시 웃기를 바랍니다.]
"흠, 흠."
스타더스는 집의 침대에 누워, 에고스틱이 쓴 편지를 또 읽고 또 읽고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입꼬리를 계속해서 올린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