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잇!"
"하, 이걸 피해? 이것도 피해 보시지!"
"세희언니, 자영언니. 옆에 조심해요!"
...음, 물론 스케일이 크다는 차이가 있겠지만은.
나는 그렇게 목도리를 하고 날아디니며 눈을 대포알처럼 서로에게 쏘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구경하였다. 물론 그사이에서 이상한 로봇 타고 와서 눈대포를 쏘고있는 서은이까지.
...분명 눈싸움으로 시작했는데 왜 불꽃이 튀고 번개가 번쩍이는진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다들 그러고 놀고 있었다. 이런걸보면 역시 산속에 집을 짓길 잘했단 말이지.
"음..."
그러면 나는 뭐했냐고?
나는 은월이랑 같이 눈굴리고 있었다. 저 험악한 곳에 끼지말고, 우린 조용히 눈사람이나 만들자...
장갑낀 손으로 눈을 뭉쳐 굴리는 은월이. 나도 옆에서 같이 굴렸다. 뭔가 이러니까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 대체 눈사람은 몇년만에 만들어보는거지? 어렸을적 친구랑 같이 제일 커다란 눈사람 만들겠다고 주차장에서 눈 굴리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다인오빠. 이정도면 될거 같아요."
"그래? 그럼 이제 우리 머리 놓을까?"
그렇게 머리도 굴려서 나랑 은월이는 아담한 눈사람 하나를 만들었다. 대략 내 허리까지 오는 눈사람. 심심해보여서 나뭇가지도 주워와 양 옆에 손처럼 꽂아주니 나름 그럴듯했다.
눈사람, 완성!
뿌듯해진 우리는 기념의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리고나서 배시시 웃는 은월이. 그리곤 눈사람을 요리조리 훑어보는걸 보니, 여간 마음에 들었나보다.
"하아, 이제 좀 쉴까?"
"네. 다인오빠."
그렇게 나는 숲 사이에 굴러다니는 통나무를 하나 끌고와서 염동력으로 쌓인 눈을 털었고, 그 위에 은월이가 마법을 읊자 가로로 길쭉한 보송보송한 통나무 의자가 어느새 완성되었다.
코 끝이 약간 빨개진 채, 하얀 입김을 내며 의자에 앉은 은월이. 약간 추워보이는 모습.
"은월아, 잠깐 기다려?"
"네? 네."
그걸 본 나는 옷 위에 얹힌 눈을 슥슥 턴 뒤, 집 안으로 순간이동했다.
그렇게 몇분 뒤, 나는 따뜻한 코코아 두잔을 들고 다시 눈내리는 통나무 의자 앞으로 날아왔다.
"자, 은월아. 마셔."
"아, 오빠. 감사합니다."
활짝 웃으며 컵을 받는 은월이.
눈 내리는 숲을 배경으로 긴 검은색 머리카락에, 붉은 눈. 그리고 평소에 입는 무녀복 대신 따뜻해보이는 옷을 입고 붉은 목도리를 한 채 코코아를 호호 불어마시는 그녀는, 딱 나이대에 맞는 소녀로 보였다. 원작의 중간보스격 빌런인 월광교의 병기 월광무녀가 아니라.
"언니....! 이렇게 치사하게 나오겠다 이거죠?"
"응 어쩔 불꽃 어쩔 방패~"
"진짜... 저도 그럼 생각이 있어요!"
한편 우리가 그렇게 평화롭게 눈싸움을 하며 쉬고있던 동안, 저쪽편에서는 거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온몸에 불꽃을 둘러 눈이 날아오기도 전에 녹이고 있는 서자영과, 그런 그녀를 보고 응징을 다짐했는지 어디서 대포같은걸 개조하고 있는 서은이, 그리고 이제는 날아다니는 자영이한테 번개같은 속도로 번개랑 눈을 동시에 던지고있는 최세희까지...
"...우린 그냥 여기서 코코아나 마실까?"
"...네, 오빠."
안그래도 추운데 별로 거기 끼고싶지 않던 우리는, 조용히 통나무에 앉아 구경이나 하기로 했다. 함께만든 눈사람을 딱 옆에 세워놓고, 따뜻한 코코아나 마시며.
"....."
내 옆에서 따뜻한 컵을 난로처럼 손으로 감싼채 ,조용히 미소지으며 다른 이들이 놀고있는걸 지켜보고 있는 은월이. 나는 그런 그녀를 힐끔 보고는, 코코아나 한모금 홀짝였다.
...백은월.
월광교의 무녀이자, 달의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그녀. 그리고 따지고보면, 전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달의 마법을 모두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내가 그런 은월이를 에고스트림에 영입한건, 순전히 능력때문만은 아니었다.
저를, 그냥 죽여주세요.
...원작에서 월광교주에 의해 조종당하며, 자신이 원하지도 않는 테러를 일으켜야만 했던 그녀.
그렇게 매일밤 죄책감에 시달리던 그녀는, 끝내 스타더스에게 죽여달라 부탁하기까지 이른다. 자신의 힘을 최대한 억제해가며.
그렇게 결국 스타더스에 의해 목숨을 잃게 된 그녀는, 이제야 다 끝났다는 듯한 마지막 미소와 함께 숨을 거둔다.
...이 에피소드가 연재될 때, 독자들 커뮤니티에서는 아주 눈물바다였다. 특히 원작 스타더스에서 인물들중에 정상이 거의 없던 시기에, 이렇게 착하면서도 비극적이게 주인공의 손에 끝나는 캐릭은 그야말로 눈물샘 자극. 특히 안그래도 귀엽게 생겼는데 이토록 허무히 가는 모습에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했다.
물론 나도 그런 이들중 한명이었고.
그렇기에, 난 처음부터 은월이를 구할 생각이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던 그때.
"다인오빠..."
"응?"
"고마워요."
"뭐가?"
뜬금없이 옆에서 그렇게 말하는 은월이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눈내리는 숲속.
여전히 멤버들이 뛰노는 모습에 시선을 때지 않은채 살짝 미소지으며 말을 잇는 그녀.
"그냥... 오빠가 없었으면, 제가 이런 광경을 평생 볼 수 있었을까 싶어서요. 서은이랑... 수빈언니랑... 하율언니도. 모두, 저 처음 왔을때 따뜻하게 맞아주셔서..."
"당연하지. 우린 이제 가족인데."
"가족..."
그런 내 말을 혀에 잠시 굴리던 은월이는, 잠시 저 먼 숲을 바라보듯 하더니 약간 조용해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다인오빠. 예전에, 월광교에서 말이죠..."
그렇게 이곳에 온 이후 처음으로.
눈내리는 숲 속 저택 앞에서, 은월이는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꺼냈다.
"눈을 떴을때, 저한테는 기억이 없었어요."
다만 교주의 말로 추정하기에, 무녀복을 입은 채 그녀는 봉인에 갇혀있었다고 한다.
월광교를 만난 그게, 그녀의 첫 기억. 유년기의 기억도, 추억도 그 무엇도 없이.
그녀는, 월광교의 생체병기가 되었다.
그렇게 명목상 월광교의 무녀가 된 그녀는, 교주에 의해 월광교의 상징이 되었다. 처음부터 스스로의 자유도 없이 억압되고 통제되며, 마법을 배웠다.
그리고 교주의 꼭두각시가 된 그녀에게 다가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친구도, 가족도 없이. 오직 다른 이를 해치는 법만 배웠다.
"그래서, 전 다인 오빠한테 정말 늘, 매번 감사하고 있어요. 오빠가 없었으면 저는..."
그렇게 말하며 살짝 떨리는 은월이의 몸.
나는 그런 그녀를 아무말없이 조용히 쓰다듬어주었다. 안심하라고, 이제 괜찮다고.
이내 다시 떠는걸 멈춘 그녀는, 이내 우물쭈물하다 배시시 웃더니 내게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그래서 전, 다인 오빠를 위해선 뭐든지 할 수 있어요. 세상 모두가 오빠를 배신해도, 저만은 늘 오빠 곁에 있을게요."
"...그래. 고마워, 은월아."
"헤헤."
갑작스러운 은월이의 고백에, 나는 고맙다는 말을 하며 그녀를 쓰다듬는거 말곤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은월이는 눈이 오면 감성적이 되는거 같다.
"앗! 오빠, 은월이 둘만 뭐하는 거에요? 저도 눈사람 같이 만들레요!"
때마침 우리를 발견하고 달려오는 서은이.
그런 그녀를 향해 우리는 미소지어주었다.
...가족이라. 가족.
좋은 울림이네.
그렇게 그날은 하루종일 눈사람도 만들고, 나랑 은월이도 기어코 같이 눈싸움도 하며 지냈다.
그리고.
어느덧, 새해의 첫번째 카테달 회의의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벌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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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이 찾아온 뒤 얼마뒤.
나는 카테달에 갈 준비를 하고있었다.
"아니, 무슨 벌써 열려."
다들 할거 없나?
나는 대충 준비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사실 나야 뭐 풀 정보도 많고, 가서 아틀라스 아재도 오랜만에 보고 하니 좋긴한데... 다른 사람들도 그럴지 모르겠다.
아니면 자주자주봐서 그만큼 친해지자는 셀레스트의 큰 뜻인가? 저번에 보니까 옆자리 앉은 이들끼리는 은근 서로 인사한다음에 속닥속닥 한걸 보면 그렇게 친해지는거 같기도 하고. 원작에서도 자주 열렸다고 나오긴 했었으니.
물론 나는 처음부터 아틀라스 아재 옆에 앉아있었고, 그 다음번에는 우리 빨간 모히칸 머리 옆에 껴있어서 다른 이들을 만날 시간이 딱히 없었다. 아, 한명 있기는 했네. 일본의 S급 빌런인 카타나, 그 여자.
"....."
...음, 근데 그때 그걸 대화라 볼 수 있나? 나를 은근 경계하던 기색인 그녀한테 일방적인 정보 전달을 했을 뿐인데. 하여튼, 그래도 내 조언덕에 한순간에 전세가 역전돼 승승장구하고 있는 그녀였다. 얼마전 뉴스에서는 이제 사실상 일본 협회의 항복 선언만이 남았다고 하나? 이미 민심마저 카타나에게 있다고 했으니 말 다했다.
...근데, 카타나. 막상 나 보면 모른척하는거 아니야? 약간 토사구팽이라고 해야할까. 이제 정보를 얻었으니 입을 싹 씻는거지. 아닌가, 그래도 원작에서는 분명 은원은 확실히 갚는다고 나왔었으니 적어도 아는척은 하겠지...? 카타나에 대해선 정확히 모름으로 나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뭐. 어쨌든 조금있다가 거기 도착하면 알게 되겠지.
그래서 나는 옷을 챙겨입은 뒤, 슬슬 셀레스트가 보낸 편지를 찢고 회의장으로 이동할 생각이었다.
"갔다오겠습니다 수빈씨."
"네 다녀오세요... 아, 잠시만요."
따뜻한 햇볕이 비춰오는 거실.
떠나기 직전 인사를 하는 나에게, 수빈씨가 웃으며 대답해주다 말고 내 앞으로 잠시 걸어왔다.
그러더니 내 코 앞에 서서 시선을 잠시 내린 뒤, 내 목 아래 옷깃을 매만지는 그녀.
"이쪽이 약간 삐뚤어졌어요..."
사락, 사락.
내 몸에 닿는 그녀의 손가락 감촉을 느끼며, 나는 잠시 조용히 서있었다. 그녀가 정리를 다 끝낼때까지.
그렇게, 잠시 거실에 우리 둘의 숨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고.
"자, 다 됐어요."
수빈씨는 그렇게 미소지으며, 내 옷깃을 마지막으로 쭉 핀뒤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거리가 가까웠다.
"감사합니다. 이제 갔다올게요."
"네."
수빈씨는 싱긋 웃으며 그렇게 대답해줬다.
...힘내서 갔다오자.
나는 그렇게 피식 웃은 뒤, 손에 든 편지를 찢었고.
그렇게, 눈앞이 다시 출렁였다.
***
"으음..."
"안녕하십니까, 에고스틱님."
피부에 느껴지는 서늘한 공기.
아까까지만 해도 따뜻했던 거실의 공기와 상반되는 약간 차가운 기운 속에서, 나는 눈을 떴다.
하얀 사제복을 입고 내게 고개를 숙이는 셀레스티아의 사제에게 고개를 작게 끄덕여준 후, 나는 긴 복도를 걸었다.
하얗고 하늘빛으로 물든 대리석 바닥에 울려퍼지는 내 발소리. 벽에 하나씩 걸려져있는 촛불은, 이곳이 일종의 성당이라는 느낌을 더욱 재현했다.
그리고.
'.....음.'
복도를 걸으며 회의장 쪽으로 갈수록 느껴지는 따뜻한 기운에, 나는 눈가를 갸웃했다.
그리고 이내 회의장 바로 앞에 도착해, 문에 건너 들어가보니.
"....오."
커다란 샹들리에 아래 탁 트여진 회의장에서는, 아래 복도와 다르게 확연히 따뜻한 공기가 느껴졌다. 전보다 샹들리에도 더 주홍빛으로 밝고, 주위에 촛대들도 전보다 많아진 느낌. 아무래도 날이 추운만큼 셀레스트가 난방에 신경을 썼나보다.
나는 그렇게 커다란 원탁에 빈 자리를 찾아 앉았다. 앉기전에 다른 빌런들 몇몇에게 살짝 미소지은채 인사를 하기도 했다. 나를보고 흠칫하고 놀라더니, 인사를 하는거였다는걸 깨닫고 그제서야 자기들도 살짝 고개를 끄덕여주는 그들.
...아니, 왜 S급들이 A급을 보고 흠칫하고 그러는거야. 내가 여기서 무력은 제일 약할걸? 해치지 않아요.
그렇게 자리에 앉고보니, 은근 여기저기서 힐끔대는 시선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저번에 엑스 마키나의 정체를 유출하고, 내가 말하고 나서 몇달뒤 그의 정체가 공개돼서 그런가보다. 아마 저 시선은 대체 쟤는 뭐하는 놈이길래 그런 1급 기밀을 알고있느냐, 뭐 그런거겠지. 상상력이 풍부한 친구라면 내가 그의 정보를 대외적으로 공개한 이후 그가 사망한 것을 두고 모종의 연결고리를 추측할 수도 있고.
뭐, 다 의도된 것이다. 어찌됐던 내 존재감을 높이는게 목적이니.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자리에 앉아있었다.
일찍 온 모양인지 여전히 좀 텅텅 비어있는 좌석들. 아직 아틀라스나 그 빨간 모히칸머리도 오지 않은 모습이다. 그런고로 난 이 회의장 주위나 구경하며 생각에 잠겨있었다. 이번 회의 끝나고 슬슬 스타더스 상대로 테러도 한번 해야되는데, 뭐하지...
거대한 샹들리에 아래, 넓은 원탁 주위를 둘러싼 하얀색 벽들. 그리고 벽에 은은하게 알록달록하게 있는 스태인 글래스들.
저 한쪽편에 거대한 태양의 모습이 새겨진 그것을 내가 잠시 지켜보고 있던 그때.
".....음?"
그쪽편에서, 카타나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검은색의 묶은머리에 하얗고 검은 천으로 이루어진 일본식 무사복을 입고, 일본도를 찬 그녀.
그리고 그런 카타나는, 누군가를 찾듯 고개를 두리번거리더니.
그녀를 지켜보던 나와 눈을 딱 마주치고는, 눈을 커다랗게 떴다.
그러더니, 내쪽으로 다가오는 그녀.
이내 내 앞으로 다가온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에고스틱씨."
"아, 네. 안녕하세요?"
그런 내 대답에, 설핏 미소짓는 그녀.
평소에 워낙 무표정한 얼굴이었어서인지, 그렇게 웃는 모습은 굉장히 색달랐다.
그렇게 내게 인사를 하더니, 자연스럽게 내 옆에 의자에 앉는 그녀.
음...?
그렇게 내 옆에 앉아, 나와 시선을 마주친 그녀는 이내 고개를 숙이며 내게 감사인사를 건냈다.
"그때, 에고스틱님의 도움으로 위기를 해쳐나갈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하고 있습니다."
진지한 표정으로 내 눈을 마주치며 그렇게 말하는 카타나. 눈빛이 아주 진심이었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이고, 아닙니다. 바로 옆나라에서 활동하는 동료인데, 서로 당연히 돕고 살아야죠."
"아닙니다. 도와주시지 않았으면... 저희는 아마 전멸했을겁니다. 정말 뭐라 해아릴 수 없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진지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는 그녀.
...음, 뭔가 이정도로까지 생각할 줄은 전혀 몰랐는데. 좀 부담스럽다.
난 그래서 헛기침을 하고, 일부러 분위기를 환기하듯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 생각해주니 감사하네요. 전 그저 카타나씨, 당신과 친구가 되고싶어서 그랬을 뿐이니까요."
"친구라..."
오랜만에 들은 낯선 단어인양, 잠시 그 말을 중얼거린 그녀는 이내 아주 살짝 미소지으며 내게 답했다.
"좋습니다. 그럼 저희 오늘부터 친구인건가요?"
"네."
난 그렇게 카테달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다.
한국-일본 빌런 합작, 이제 이거 아무도 못막거든요... 물론 그 합작과정이 어째 학창시절 새학기에 친구사귀는 것처럼 간질간질한 분위기가 되기는 했는데 말이지. 이게 나라를 휘어잡는 두 빌런의 대화...?
하여튼 아직 회의 시작하기 전까지도 시간이 좀 남았으므로, 우리는 이런저런 대화를 했다. 그중에 주목할만했던건.
"이미 이기셨다고요?"
"네. 언론에는 알리지 않았지만, 이미 다 끝났습니다."
바로 카타나가, 이미 일본 협회를 정복한 뒤라는 것.
국제사회의 개입이 있을까봐 정보를 통제하고는 있지만, 이미 장악이 거의 끝났다고 한다. 이전까지 있던 썩어빠진 정치인들과 관료들은 다 처리하고, 아예 갈아치운다는 모양.
대충 계획을 들어보니, 협회는 대외적으로 그대로 존속시키면서 카타나의 삼협파는 비선실세로 있으려고 한다고 한다. ...뭔가 우리나라랑 좀 비슷한 느낌인거 같기도 하고.
이제 듣고보니 왜 나한테 그리 고마워했는지도 이해가 된다. 사실상 나덕분에 나라를 구했다고, 그러니까 나덕에 그녀가 협회를 먹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나보지. 평생의 목표가 그거였으니 그럴 수 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던 그때, 내 옆에 앉은 카타나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즉, 그러니 제가 에고스틱 당신에게 얻은 은혜는 이렇게 넘어갈만한게 아닌거 같습니다. 그러니, 원하시는거 있으면 아무거나 말씀해주세요."
"음..."
그렇게 말해도, 난 딱히 부탁할만한게 없는데.
"제가 할 수 있는게 있다면, 뭐든지 해드리겠습니다."
뭐든지?
그 말을 듣자 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래, 뭐든지라고 했지...?
그렇게 내가 입을 열려고 할때.
"여, 에고스틱!"
그순간, 저쪽편에서 큰 목소리로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하고 보니 역시나, 커다란 덩치를 한채 오고있는 아틀라스 아재.
이내 허허 웃으며 나랑 인사를 한 그는, 내 옆에 앉으며 나랑 대화하느라 나랑 살짝 붙어 앉아있던 카타나를 보더니 내게 물었다. 누구냐고.
"아, 이번에 저랑 새로 친분을 쌓게된 일본의 카타나입니다."
"안녕하세요, 카타나입니다."
"하하! 그래, 에고스틱의 동료라고? 그럼 내 동료기도 하지!"
크하하! 호쾌하게 웃으며 말하는 그.
그렇게 웃은 그는 내 등을 팡팡치며 능력도 좋다고 칭찬했다. ...이건 무슨 칭찬이야?
하여튼 그렇게 내 왼편에는 카타나, 오른편에는 아틀라스가 앉았다. 아까 하던말은 끝나고 해야겠네.
그리고 잠시후.
마침내, 셀레스트가 도착하며.
회의가 시작되었다.
"...어... 거기 제자리..."
"...."
"아, 아닙니다..."
물론 조금있다가 온 우리 빨간 모히칸 머리가 소심하게 카타나에게 그렇게 말했다가, 그녀의 째릿한 눈초리 한번에 쭈구리가 되어 아틀라스 옆에 앉는 사소한 해프닝이 있었긴 했지만.
어쨌든, 그렇게 정말로 회의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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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의 S급 빌런 연맹의 리더들이 전부 모이는 회의, 카테달.
"다들 오셨군요."
각양각새의 인종들과 복장을 한 이들의 중심에.
눈을 감고, 하얀 성녀복을 입은 랭킹 1위의 빌런 셀레스트가 입을 열고 있었다.
마치 귓가에 천공의 찬송가처럼 나긋나긋하고 성스럽게까지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나는 그러는동안, 내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여전히 참신하고 다양한 옷차림으로 앉아있는 우리 빌런들. 저번 회의에서 온 사람들은 거의 다 온 모습이다. 아무도 안죽었다는게 신기하네. 다들 전보다 따뜻한 복장으로 왔다는게 그나마 볼만한점이다. 요즘 춥긴하지.
"......."
물론 난 다른 이들보다, 저쪽편에 뭔가 변발 비슷한 헤어스타일을 하고있는 남자에 시선이 갔다.
바로 중국의 S급 빌런, 리 샤오펑.
"....?"
주위를 힐끔보다 눈이 마주친, 내 바로 옆에 앉아있던 카타나가 왜그러냐는 듯한 표정을 하면서도 호의가 가득한 눈으로 날 보는걸 보며. 난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중국쪽도, 리샤오펑과 정부가 대립하고 있다고 했지. 흠... 이거, 이쪽도 잘하면....
물론, 아직까지는 그냥 망상일 뿐이지만. 그래도 카타나의 경우도 이렇게 친해질줄 알았겠는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 내가 동아시아 빌런연합을 떠올리고 있을때, 때마침 셀레스트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럼 이제, 회의를 시작해보도록 하죠."
드디어 시작인가.
나는 저쪽편에 가있던 시선을 거두고, 다시 셀레스트를 바라봤다.
성녀복을 입고있는 그녀와, 옆에 회색 기사 갑옷을 입고 앉아있는 셀레스트의 측근 아서.
그리고 역시나 첫 발언의 대상은 여느때처럼 셀레스트였고.
이중에서 아마 나를 제외하고는 제일 정보력이 높을 그녀는, 입을 열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국제 협회의 영향력이 갈수록 약해지고 있습니다."
그 말을 시작으로 그녀는 저번에 이어 다시 능력자들에 관한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갈수록 기존보다 훨씬 강력한 능력자들이 다수 생기고 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협회가 컨트롤하지 못하며, 점점 분위기가 이상해진다는 것이다.
뭐, 나야 이미 알고있던 내용이라 큰 관심이 가지는 않았다. 이미 파워인플레가 진행될건 처음부터 알고있지 않았는가. 그래서 PMC를 비롯해 범람할 능력자들을 컨트롤할 수단을 여러방면으로 연구한거고.
어쨌든 그렇게 셀레스트는 이어서 협회 내부 사정에 관한 기밀 몇개와, 그들이 현재 신경쓰지 못하는 대표적인 지역을 말해줬다. 특히 엑스 마키나의 사망으로 협회 내부에서 혼란이 생겼다는 말을 할때는, 당연하게도 내게 시선이 쏠렸고.
그렇게 셀레스트의 말이 끝나고.
이제 본격적으로 반시계방향으로 서로 정보공유의 장이 열렸다.
뭐 역시나 듣는데 재미는 있지만 별 도움이 안되는 얘기들.
사실 셀레스트가 이 회의의 주체자이자 빌런의 정점을 찍은 인물인만큼 정보량이 대단한거지, 다른 이들은 딱히. 그래도 참신한 얘기가 많이 나왔다. 무슨 어디 화산이 곧 폭발할거라는 얘기부터 어떤 히어로가 숨기고있는 제 2의 능력이라던가, 무슨 박사같이 생긴 녹색 고글을 쓴 폭탄머리의 남자는 아예 무기 설계도를 배포했다. 서은이한테 보여줘야지.
하여튼 그렇게 모두가 하나씩 정보를 풀었고.
일본 협회를 먹어치운 덕인지 은근 협회정보를 알고있는 카타나의 정보공유를 끝으로.
비로서, 거의 끝차례가 되서야. 내 순서가 왔다.
"......."
전에 다른 사람들이 말할때보다 나에게 훨씬 더 집중되는 수많은 시선들.
애초에 회의 시작부터 날 계속 아닌척 힐끔힐끔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았다는걸 생각하면 당연한걸까.
나는 그렇게 살짝 미소지으며, 그 모든 시선들을 다 받아냈다.
저번 회의에서 제일 파격적인, 거의 0급 기밀인 시간을 돌리는 히어로를 유출한 나. 이름부터 능력까지 정확히 맞춘 것과 더붙어, 하필 내가 말하고 나서 얼마후에 그가 죽음으로써 세상에 그의 정체가 공개된걸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즉, 지금 저들은 내가 하는 말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는 것. 내가 뭐하는 놈인지부터, 과연 이번에도 저번처럼 파격적인 정보를 풀지. 저번은 그냥 우연인지 아닌지에 관해 모든 관심이 쏠릴거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들의 기대를 배신할 생각이 없었다.
그래. 이번엔 이걸 풀자.
나는 그렇게 입을 열고 말했다.
"여러분, 다들 이 우주가 하나가 아니라는걸 알고 계십니까?"
그렇게, 조용한 윈탁에 던져진 내 말.
"....?"
그 말에, 일단은 다들 이해하지 못하는 모양세였다.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지 당황스럽겠지.
나는 거기서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정확히는 차원은 하나가 아닙니다. 이 우주는 여러 차원으로 이루어져있죠. 다중우주이론이라고 할까요. 일반적으로는 절대 닿을 수 없는, 다른 세계가 있다고 보면 됩니다."
뭐, 여기서 차원에 관해 깊은 얘기를 할 생각은 없다. 내가 하려는 말은 따로있거든.
"어쨌든, 제가 하고싶은말은... 듣기론, 요즘들어 각 차원을 가로막는 벽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즉, 다른 차원의 무언가들. 이차원의 존재들이 우리가 사는 세계로 넘어올 수도 있다... 그런 소문이 들리네요."
"아무쪼록 염두에 두시길."
"....."
나는 거기까지 말하고 정보를 마쳤다. 이정도면 되겠지. 더 길고 자세히 말하면 오히려 마이너스다.
그리고, 내 말이 끝난 이후.
뭔가 조용해진 원탁.
정확히는, 좀 혼란스러워졌다고 해야할까.
'...뭐, 당연하겠지.'
뭔가 듣기에는 그냥 어린아이의 망상같은, 말도 안되는 소리지만. 헛소리라고 무시하기에는 내 전적이 있다. 저번에 아무도 모르던 엑스 마키나를 정확히 맞춘 사람이 나 아니였겠는가.
그렇다고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에도 그렇다. 애초에 다른 차원이나, 이계의 괴물들이라는 말을 오늘 처음 들어봤을텐데 어떻게 믿겠어. 현실감도 없어보이는 소린데. 뭐, 갑자기 있는지도 몰랐던 다른 차원에서 괴물들이 쳐들어온다고? 듣기에도 그냥 개소리같다.
근데 또 무시하기에는 내 전적이 있다. 근데 그거 하나로 믿기에는 엑스 마키나랑 이계의 괴물들이랑은 또 차원이 다른 문제다. 그 혼란함의 결과가 지금 좀 조용했다가 소란스러워진 원탁인거고.
"....."
물론 난 부연설명 없이 가만히 앉아있었다.
이차원의 괴수들이 때거지로 밀려오는 원작의 메인이벤트, 월광게이트. 이게 일어날려면 아직 시간이 좀 남긴 했지만... 어차피 놈들과 상관없이 조만간 하나의 포탈이 열린다.
원작에선 그냥 누군가의 능력인가 하고 지나간 사건이였지만, 여기 있는 이들은 이제 알겠지. 저게 내가 말한 이차원의 통로라는걸.
"...이거, 내가 늘 에고스틱의 옆이다보니 분위기가 이상할때만 말하게 되는구만. 어허! 다들 집중하게나. 내 아주 기막힌 얘기를 들고왔다네."
그렇게 계속된 수근거림은 우리 아틀라스 아재의 호통으로 사그라들었다.
하여튼 얼마안가 아틀라스 아재의 말도 끝났고, 모히칸과 몇몇을 끝으로 회의도 끝났다.
"...더 대화할게 남은 분들은 얼마든지 남아서 얘기하시길."
그렇게 파한 회의.
일부는 떠났지만, 몇몇은 남아 자기들끼리 무슨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렇게 서로 다른 국가에 살며 멀리 떨어져있다보니, 이렇게 한번 만날 일이 있을때 좀 더 대화하다 간다는 거겠지.
그리고, 그건 우리도 다를게 없었다.
"하하! 에고스틱, 자네가 푸는 정보는 언제 들어도 역시 색다르군. 내가 자네를 인정한 이유가 있다니까, 크하하! 그래서, 아까 자네가 한 그말이 정말 사실인가?"
"...하하, 네. 저도 들은 얘기기는 하지만, 아마 유력하다고 생각합니다."
"음. 뭐, 누가 오던간에 다 물리치면 그만이지. 크하하!"
역시나 아무 생각 없는 아틀라스다운 대답이었다.
하긴, 본인부터가 물고기 인간들 수만명을 이끄는 지도자인데 이계의 생명체가 겁날리가 없지. 실제로 원작에서도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괴수들을 제일 많이 무찌른게 아틀라스의 군단이었고.
"....그 말이 사실이라면, 저희도 어느정도 염두에 둬야겠네요."
내 옆에있던 카타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뭐, 아직까지는 다들 별 생각이 없는듯한 느낌. 이계의 침략자라는 존재 자체가 두리뭉술하게 들리기도 하고, 아직 그들이 적대적이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뭐. 나중되면 다들 더 자세히 알게 될테니 그때가서 얘기하면 된다.
그렇게 우리는 몇마디 더하다가, 슬슬 헤어질 준비를 했다. 아무래도 여기는 듣는 귀도 많으니까.
"형님, 살펴가십쇼!"
"...어, 그래 그래."
그렇게 우리 모히칸의 인사도 받고, 아틀라스와도 인사를 하며 슬슬 돌아갈 준비를 했다. 이제 집에 가야지.
그리고 그때.
"잠시만요, 에고스틱씨."
"네?"
나를 붙잡는 카타나.
내가 웃으며 고개를 갸웃하자, 그녀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아까 끊겨서 말을 다 못했는데, 당신에게 정말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런만큼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하고싶네요. 혹시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내 눈을 마주보며 그렇게 진지하게 말하는 그녀.
나는 그런 그녀를 잠시 응시하다... 이내 입을 열었다.
"뭐든지요?"
"....네. 제가 할 수 있는일이라면, 뭐든지."
비장한 각오로 그렇게 말하는 그녀에게, 나는 그럼 아까부터 생각하던걸 말했다.
"그럼, 부탁드리고 싶은게 하나 있긴 합니다."
"네. 뭐든지 말해주시죠."
"카타나씨... 저랑 함께-"
나는 잠시 말을 고르다, 웃으며 말했다.
"-테러하지 않으실래요?"
"....네?"
비장한 각오를 해보이던 카타나는, 순간 내 그런말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내가 그럼 무슨 부탁을 할 줄 알았던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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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나씨. 저와 함께 테러하지 않으실래요?'
내 조언 덕에 일본을 반쯤 먹은 그녀가 말한, 무슨 부탁이던지 하나는 들어주겠다는 말에 내가 한 말.
카테달의 끝자락에서, 그 말을 한 이후.
"""こんばんは, Egostic-san."""
"어... 다들 안녕하세요. 곰방와."
나는 지금, 일본에 와있었다.
...음, 어쩌다 이렇게 된거지.
***
삼협파 조직원들의 인사를 받은 이후.
"편하신데 앉으세요."
일본 최대 빌런 조직이자, 협회가 사실상 기능을 잃은 지금 일본 전체의 실세. 삼협파.
그 삼협파의 수장, 카타나의 집무실에 나는 와있었다.
약간 목재로 만든 느낌을 주는 정갈하고 깔끔한 방. 한쪽에는 무슨 병서같은 것들이 벽 책장에 꽂혀있었고, 다른쪽에는 벽에 옛 일본지도 같은게 붙어져있었다. 여러모로 엔티크한 느낌.
"드세요."
"아, 감사합니다."
나에게 다기에다 차를 한잔 따라준 카타나는, 이내 내 앞에 탁자를 사이에 두고 앉았다.
따뜻한 차를 받은만큼 한모금 마셔봤다.
뭔가 깊으면서도 뒷맛이 없는 시원한 느낌.
그렇게 찻잔을 내려놓은 나는, 미소지으며 카타나에게 말했다.
"차가 아주 좋네요. 깊은 풍미가 있는게.... 직접 우리신건가요?"
"네.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이네요."
내 말에 무덤덤한 표정으로 답하는 그녀.
그러나 왠지 약간 좀 기뻐보이기도 하는 모습이였다. 표정은 큰 변화가 없지만, 뭔가 분위기가.
하여튼 우리는 그렇게 차를 가지고 짧은 대화를 했고.
이내 어느정도 분위기가 풀어진 뒤, 카타나는 다시 본격적인 얘기를 꺼냈다.
"...제가 테러를 같이 했으면 하신다는거죠? 한국에서."
그렇게 내 앞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차 감상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내가 아까 말했던 테러를 언급하는 카타나.
...그래. 이게 바로 내가 일본에 오게 된 경위다. 카테달 끝나고 테러 제안만 하고 집에 오려했는데, 갑자기 끌려와버렸다.
...금방 끝날 얘기가 아닌거같으니 좀 더 개인적인 공간에서 논의해보자, 나중에 또 언제 다시 만날줄 모른다, 은혜를 갚고싶다 기타등등... 으로 말하니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만 것.
카타나랑 손잡고 편지 찢으니, 그냥 슉하고 눈뜨니까 일본이더라.
하여튼, 나는 내 앞에있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저와 함께 한국에서 테러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그게 제 부탁입니다."
"음...."
그런 내 말에 잠시 무표정으로 고민하는 그녀.
언뜻 보기에 차가워보이기도 하지만, 그건 그냥 얼굴만 그런거고 실제로 그런거같지는 않다. 표정변화가 거의 없는거 같달까.
실제로 카테달에서 내 손을 잡고 내가 지금 일본에 따라와야 하는 이유를 설명할때는 무표정인데도 그 속에 다급함이 드러났었다. 원작에서도 뭐, 감정표현을 잘 안하는 성격이라고 나왔었으니까.
하여튼, 일단은 눈앞의 카타나에 집중할때.
검은 묶은 머리카락을 하고, 도복을 입은 채 내가 한 테러제의, 나와 함께 한국에서 테러를 해주는게 내 부탁이라고 한 말을 생각하는 그녀.
그렇게 짧은 생각을 마쳤는지, 그녀는 다시 고개를 들어 내 눈을 보더니 말했다.
"그건 아닌거 같습니다."
...어라.
음, 이건 예상하지 못했는데.
그리고 내가 그렇게 미소는 짓고 있으나 살짝 멈칫한 뒤, 머리를 핑핑 굴리고 있을때.
내 표정을 보고 뭔가 오해를 있다는 듯, 살짝 빠르게 말을 덧붙이는 그녀.
"아니, 테러를 같이 안하겠다는게 아닙니다."
"...네?"
"제 말은 다만..."
살짝 헛기침을 하더니, 약간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그녀.
"저희 이제부터 친구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렇죠?"
"이건 그냥 친구 사이에 들어줄 수 있는 사사로운 일일 뿐이지, 하나뿐인 부탁으로 들어줄건 아닌거 같네요.
살짝 미소지은 채, 진지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는 카카나.
...원래 친구 사이에는 다른나라 가서 테러도 같이하고 그러나? 생각해보면 빌런사이에서는 그럴지도?
내가 그런 생각을 하던 사이, 그녀는 이 일을 여기서 끝내겠다는 듯 단호하게 말했다.
"그럼 함께 테러하는건 그냥 친구사이에 들어주는 걸로 하고, 부탁... 그래, 소원권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건 나중에 필요하실 때 또 말해주세요. 그때가서 들어드리겠습니다."
반론의 여지를 줄 틈도없이 그렇게 말하는 카타나.
그러니까 그녀의 말을 정리하자면, 무엇이든 하나 들어주겠다고 했는데 내가 테러 협력을 제안하자 이거는 그냥 친구사이에 당연히 해주는 거니까 부탁이 아니다. 진짜 부탁할게 있으면 나중에 말해달라, 그뜻이다.
...근데 지금 분위기 봐서는 나중에도 뭐 부탁하면 '이건 친구사이에 그냥 해주는 일이죠.' 라고 하면서 또 들어줄거 같은데? 이거 약간 아낌없이 주는 나무....
어쨌든 일단 나는 그런 그녀의 말에 고맙다고 말하는거 말고는 따로 할말이 없었다. 그런 내 대답에 무표정하면서도 약간 미소짓는 그녀.
...우리 이제 두번 만난 사이인데, 나한테 뭔가 너무 호의적인 느낌이었다. 원작으로 카타나의 성격을 알지 않았다면,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게 아닐까 의심했을 정도.
물론 내가 조언 하나 해줘서 다 망해가던 삼협파가 단숨에 전세를 역전해 일본을 그냥 먹어버리긴 했다지만... 그걸 감안해도 좀 그랬다. 아닌가? 그럴만한가? 근데 카타나 성격에 그거 하나가지고 나한테 이렇게 친밀하게 나올거같진 않은데.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때.
잠시 자기 옆쪽의 창문을 바라보던 카타나는, 이내 입을 열어 내게 말했다.
"....사실, 에고스틱씨. 당신에 대해 제가 어느정도 찾아봤습니다."
"저요?"
"네. 지금까지의 행적이나, 그런 것들을 말이요."
거기까지 말한 그녀는 자신의 찻잔을 매만지더니, 다시 약간의 희미한 미소를 띄우며 내게 말했다.
"거기서 깨달았습니다. 당신 또한 저와 같은 부류라는걸요."
....같은 부류?
"같은 부류요?"
"네."
거기까지 말한 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이내 시선을 하늘에 둔 채, 내게 말을 하는 그녀.
"에고스틱씨. 당신도... 당신의 나라를. 한국을 지키기 위해 테러를 하는게 아닙니까? 빌런으로써."
"네...?"
"...부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도 에고스틱씨와 비슷한만큼, 어느정도 이해가는 부분이 있으니까요. 당신도... 나라를 위해, 빌런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들고 일어나야 겠다고 생각한거죠?"
이제는 내 눈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하는 그녀.
그러더니 그녀는 여러 증거를 지나가듯 말했다. 희생자 없다, 국민들도 좋아한다, 나라를 지킨 적이 많다등...
...음. 뭔가 단단히 착각하시는거 같은데. 난 그냥 스타더스 피폐물 찍는거 막으려고 한거지, 썩어빠진 나라를 뒤집겠다고 빌런이 된게 아니다.
...아니지. 근데 사실상 나라를 몇번 지키긴 했으니 맞는 말은 맞는 말인가? 아닌거 같은데.
뭔가 좀 이상하긴 했지만.
어차피, 그러던 말던 내가 할 말은 정해져있었다.
"...네, 맞습니다. 빌런일도 테러일도 사실 제 나라 제 조국을 지키기 위해서 나섰던겁니다. 크흑, 알아봐주는 사람을 만날 줄은 몰랐군요."
"....역시, 그런건 줄 알았어요. "
아까의 무뚝뚝한 얼굴보다 한층 더 풀어진 얼굴로 내게 대답하는 그녀.
...음, 이래도 되나 싶긴 한데. 어쨌든 여기서는 호감도를 얻어 나쁠게 없으니 그냥 막나가기로 했다.
사실 뭐, 따지고보면 나라 구하려고 그랬던 것도 맞고.
물론 처음부터 막나가는 나라 지키겠다는 이유 하나로 들고 일어난 카타나랑 나랑은 큰 차이가 있긴 했지만, 굳이 그 오해를 깨려고 하진 않았다. 좋게 생각해주면 좋지 뭐. 오늘부터 난 애국열사 애국스틱이다.
그렇게 그 이후로 우린 쭉 대화를 나눴다.
평소처럼 무덤덤해 보이긴 하는데, 처음으로 자신과 뜻이 일치하는 사람 을 만났다는 생각 때문인지 약간 눈빛이 빛나는 느낌. 말도 뭔가 살짝 더 신난 느낌이고. 말투도 좀 더 격식없어진거 같기도 하고.
나또한 카타나의 얘기를 경청하고, 반응하며 때때로 내 얘기를 해주기도 했다.
그 이후로 드디어 다시 돌아온 테러얘기.
"테러는 구체적으로 언제 무엇을 하면 될까요?"
"음... 히어로 한명이랑 싸우는걸 부탁드리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스타더스 말씀하시는거죠? 알겠습니다. 어차피 저도 다양한 상대랑 대련하는걸 좋아하니까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그녀.
...근데 스타더스라는 말은 한적이 없는데 어떻게 안거지?
하여튼 그렇게 카타나가 대한민국에 오겠다는 약속과, 대략적인 테러 내용을 논의한 뒤 우리는 헤어졌다.
...물론 그 과정에서 서은이한테 왜 안오냐고 연락도 받고, 카타나의 초대로 그녀랑 같이 저녁도 먹고,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보니 카타나가 표현을 잘 못할뿐 굉장히 착하다는 것도 알게되고.
뭐 그런 뒤, 저녁.
나는 일본 삼협파 기지 근처, 어디 언덕 위 신사 같은 곳 근처에서 집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대충 이 카타달 복귀 편지지 뜯으면 다시 내 집에 가겠지. 이또한 셀레스티아의 이능인가.
"하여튼... 잘됐네."
그렇게 바람을 맞으며, 나는 약간 미소를 한 채 생각했다.
....아마 다음 테러는 카타나와 함께하는 콜라보겠지.
사실, 내가 우리 에고스트림 멤버들 대신 카타나를 섭외한 이유가 있다.
'...저번 드래곤-테러와, 멸망때 봤으나 기억 잊어먹은거 빼고는 스타더스를 해바뀌고 처음 보는거지.'
거기까진 좋은데, 난 뭔가 불길한 기분에 사로잡혔었다.
뭔가... 뭔가 이번에 스타더스 앞에 다른 여성 멤버랑 같이 가면 큰일이 날거같은 느낌.
"...."
그래. 내 본능적인 생존 경보가 스타더스 앞에 다른 에고스트림 여성과 함께 가지 말라했다. 진짜 큰일이 날 수도 있다는 직감.
그래서 난 결정한 것이다.
그래, 이번에 카타나랑 같이 가자!
카타나는 우리 에고스트림 소속 여자가 아닌 일본 삼협파 소속 여자다. 문제 해결! 직감의 경고를 잘 들었다고 할 수 있다.
'거기에 당연히 강하기도 하니... 스타더스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되겠지.'
난 멋진 아이디어를 떠올린 스스로를 칭찬했다.
완벽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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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나한테서 테러 협력 약속을 받아낸 이후.
나는 오랜만에 서은이와 함께 지하실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빠. 곧 카타나라는 여자가 우리나라에 온다는거예요?"
"어. 전용기로 오기로 했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말했다.
당연히 전용기는 우리 이설아가 대주기로 했다. 든든한 유성기업만 믿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돼요. 고마워요 설아에몽...!
하여튼, 내 그런 말에 한숨을 한번 푹 쉬더니 어이없다는 듯 미소지으며 고개를 젓는 서은이.
"그래요... 오빠는 뭐 늘 그랬으니까. 뭐 어쨌든. 그러니까 테러 위치를 산정하면 된다는거죠?"
"어. 좀 넓직한 공터에, 사람들도 빨리 빠져나갈 수 있는 곳으로..."
"그리고 그게 서울 도심 근처여야 한다는거죠. 알았어요."
거기까지 말한 서은이는 뭔가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원래는 그냥 대충 정했는데, 이번 카타나는 능력이 상당히 강력해서 좀 더 신경써서 정해야했다.
그렇게 지하기지, 그곳 중심에 위치한 서은이의 작업공간인 이곳.
수십대의 모니터들이 벽면에 붙어 무언가 이해할 수 없는 코드들을 출력중인 와중에, 몇개의 모니터들이 서울 지도로 바뀌었다.
이내 알아서 혼자 뭔가 조작되더니, 갑자기 이동거리랑 인구밀도랑 등등이 한쪽에서 계산되기 시작했다.
"자, 이제 조금있으면 후보들이 나올거예요."
밀크티를 한잔 마시더니, 빨대를 입에 문 상태로 뭔가를 두들기며 그렇게 말하는 서은이.
서은이가 자동화시키겠다고 만든, 에고스트림 테러 계획 메이커 2.0이 열심히 작업중에 있었다. 제작자는 당연히 서은이와 수빈씨.
...근데 생각해보니까 빌런의 테러 계획 생성기가 어떻게하면 테러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지를 계산하고 있는게 좀 웃기긴 하네.
하여튼 나도 그렇게 서은이가 건내준 밀크티를 마시며, 장치가 굴러가는걸 지켜봤다.
대충 우리 에고스트림의 모든게 여기서 다 진행되는 만큼, 오늘도 열일하는 서은이.
이내 테러 후보지가 몇군데 나왔고.
우리를 도와주기 위해 수빈씨도 내려오셨다.
"아 수빈씨. 오셨어요?"
"네. 다인씨도 먼저 와계셨네요."
내게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는 그녀.
이내 자리에 자연스럽게 앉은 수빈씨는, 역시나 무언가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모니터에 뜨는 여러가지 팝업창.
...하긴, 수빈씨도 컴퓨터학과 출신이었지. 가끔 잊고 있었다. 평소에는 우리 에고스트림 멤버들을 뒤에서 받쳐주는 총괄느낌이라 그렇지. 사실 해킹 실력도 서은이를 보조해줄 정도는 되는 그녀.
그렇게 우리는 이후로도 회의를 계속 진행했고.
이내 최종적으로 서울 한쪽이 선정되었다. 대충 여기서 진행하면 되겠구만.
"슬슬 방송도 준비하고... 바쁘겠네."
나는 의자에 기대서 말했다.
곧있으면 카타나도 올거고, 같이 테러도 하고, 스타더스도 오랜만에 보고...
뭔가 다시 할게 많은 느낌.
그렇게 내가 앞으로를 생각하고 있을때, 문득 생각났다는 듯 서은이가 내게 말했다.
"그런데 오빠."
"응?"
"이렇게 언니랑 오빠랑 지하실에서 같이 있으니까, 옛날 생각나네요. 지하기지에서 살던 시절.
웃으며 말하는 그녀.
...옛날이라. 벌써 그게 옛날이구나.
"네가 나한테 형이라 부르던 그때 말하는거지?"
"...윽. 제가 언제요. 전 그런적 없어요. 잘못된 기억이니 빨리 잊으세요."
밀크티를 마시다 내 놀림에 볼을 부풀리더니, 시선을 확 피하는 서은이. 그 탓에 귀끝이 약간 붉어진게 눈에 보였다.
"후후...."
그런 우리를 보며 자상하게 웃는 수빈씨였다.
...하긴 처음 한동안은 나랑 서은이, 그리고 수빈씨 셋이서 거의 모든걸 다 했었지. 이후로 하율이를 시작으로 하나 둘 멤버가 추가되며, 집도 산 위에 대저택으로 옮겨가고. 에고스트림도 세우고. 서은이 키 큰것만 봐도 시간이 꽤 지났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하는건 딱히 변하지 않았지만.스타더스 상대로 테러.
다만 이번에는 글로벌 콜라보로 진행되는. 우리 에고스트림은... 진화한다!
하여튼 그렇게 잠시 지하실에서 노닥거리고.
"와. 이 카타나 언니도 이쁜거 봐."
갑자기 인터넷에 카타나를 검색해보더니 투지를 태우는 서은이를 달래 다시 일들을 준비한 뒤.
PMC도 가서 추가훈련 시키고, 뭐도 하다보니.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카타나."
"오랜만이네요 에고스틱씨."
마침내 카타나가 왔다.
***
온다고 한지 한시간만에 슝하고 날아온 카타나.
테러도 식후경이라고 한국에서 그녀한테 밥 한끼 대접한 뒤, 나는 테러 계획을 최종적으로 설명했다.
"알았습니다. 싸우다가 너무 격해지거나 승패가 결정날거 같으면 빠진다."
"네 맞습니다. 애초에 테러 자체가 쉽지 않은만큼, 너무 무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는 카타나에게 그렇게 설명했다.
특히 혹시나 좀 밀린다 싶으면 적당히 신호주면 내가 끊겠다고. 여기서 갑자기 생사결을 할 수는 없잖아.
그런 내 걱정을 읽었는지, 카타나는 드물게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제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저도 제 실력을 증진시킬 겸, 대련은 언제나 환영이니까요. 오랜만에 검을 다시 강적에 맞서 휘두를 수 있겠네요."
허리춤에 찬 일본도를 슥 천으로 닦으며 그렇게 말하는 그녀.
하긴, 검술 하나로 일본 최대 빌런조직인 삼협파를 세우고 협회도 무찌른 그녀인만큼, 실력 하나는 보장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럼 이제 슬슬 출발할까요?"
그런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나는 떠나기전 마지막으로 가면과 옷매무새를 확인하고 카메라도 다시한번 챙겼다.
카타나또한 도복을 정갈하게 갖춰입고, 늘 그랬듯 검은 머리를 깔끔히 뒤로 묶은 모습.
좋아, 이제 가자.
나는 그렇게 그녀의 손을 잡고 테러 장소로 향했다.
대한민국 1위 빌런과 일본 1위 빌런의 테러 콜라보, 드디어 시작되다.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하구만.
...스타더스 반응은 좀 무섭긴 한데, 하여튼.
그렇게 나는, 방송을 킬 준비를 했다.
오랜만에 테러 한번 달려봐야지.
***
A급 히어로 스타더스, 신하루.
그녀는 최근들어 약간의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
갈수록 늘어나는 빌런들.
특히 뭔가 이들의 방향성이, 어느 한쪽을 가르킨다는 방향이 들었다. 지금까지는 다 상대가능 했지만, 과연 나중에도? 무언가 큰게 올 것만 같은 느낌.
근데 그보다도.
그녀가 불안감을 느끼는 따로 있었다.
'...에고스틱, 얘는 대체 언제오는거야..."
바로 해가 바꾸었는데도, 아직도 에고스틱이 오고있지 않다는 것.
"...금방 온다며."
'...뭐, 다음번에는 금방 다시 볼 수 있을겁니다.'
그래.
그는 분명 그렇게 말했었다.
자신을 향해 웃으며, 마치 당연하다는 듯. 곧 다시 볼게 확실하다는 듯.
그렇게 그는 떠났고.
수개월이 지나고 해가 바뀌었지만, 그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
최근들어 에고스틱에 대해 떠올릴 때마다 드는, 흐릿한 감정과 두통.
대체 왜 이런 감정이 드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에 대해 생각할때면 가슴 한구석이 답답했다.
특히 혼자 갑자기 눈물을 흘린 몇달 전 이후로. 계속.
뭔가 놓친, 잊어버린 기분.
어딘가 아련하게 심장이 두근거리는 느낌.
당장이라도 그를 눈앞에서 보면 깨달을 것 같은 이상한 감정.
결국 그 모든 것들은, 에고스틱을 보고 싶다는 단 하나의 생각으로 귀결되었다.
그녀는 몰랐지만, 오직 감정만은 남았기에.
"음...."
...사실 늘어나는 빌런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역설적으로 빌런을 보고 싶어하는게 이상하긴 했지만. 그녀는 에고스틱은 특별하다는 말로 스스로를 정당화했다.
하여튼 결론은, 최근들어 에고스틱 생각이 전보다 자주 난다는 것.
이제는 자신도 모르게 집 벽 한쪽에 증거용으로 걸어놓았던 에고스틱의 망토를 서서 만지작거리며 대체 언제 오나...라고 한숨 쉴 정도까지 되었다. 물론 다시 정신차리고 나서 그러고있는 자신을 발견한 뒤 황급히 스스로 떨어지기는 했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스스로를 볼때마다 에고스틱은 빌런인데... 라는 생각에 자꾸 멈칫하게 되긴 했지만. 그녀는 애써 무시했다. 자신은 그냥 담당 빌런한테 관심을 가지는 것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거라고. 아마도.
'정말?'
"......"
...마음의 소리가 때때로 반문할 때도 있었지만, 어쨌든 그건 그거고. 그녀는 한편으론 주어진 일들은 또 완벽하게 다 처리하고 있었다. 빌런이란 빌런은 싸그리 다 무력화시킨 후 수용소로 보내버리고, 일도 철저히 하고. 협회장이 그녀덕에 협회가 굴러간다고 칭찬할 정도로.
...물론 짬짬히 에고스틱 팬카페에 들어가 그의 동향을 알아보는 시간이 전보다 늘기는 했지만. 그녀는 이것도 업무의 한종류라고 애써 정당화했다.
그렇게 팬카페에서 그의 팬이 쓴 예측글도 읽어보고, 일렉망고니 보라망고니 드래곤망고니 별 웃기지도 않는 글에는 비추를 꾹 눌러주면서.
하루하루 달력만 보며 살아가던 어느날.
[안녕하세요 여러분. 에고스틱입니다!]
드디어, 마침내 그날이 왔다.
"스타더스씨!"
"네. 알고있습니다."
그녀는 다급히 소식을 전하는 협회 직원 앞에서 간신히 표정관리를 하며, 출격할 준비를 했다.
드디어. 드디어 그를 볼 수 있구나.
마지막으로 본 게...
"....."
순간 그녀의 앞에 노을과 옥상, 탁 트인 하늘이 떠올랐으나. 이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미처 그녀가 인지하기도 전에.
마지막으로 본 게... 공원. 그래, 마지막으로 본 건 공원이었지. 용을 탄 그가 내린 공원. 그곳에서 마지막으로 본 이후로 보는거겠네...
자기도 모르게 어째서인지 가슴이 아리긴 했지만, 그녀는 애써 떨쳐냈다. 그래. 하여튼 드디어 에고스틱을 보는구나.
'....'
거기에 방송을 살짝 봤을때 그의 근처엔 아무도 없어보여 신하루는 자기도 모르게 가슴이 약간 뛰었다. 이번에는 드디어, 그가 혼자 온거같다. 다른 여... 빌런들 없이.
그렇게 신하루는 약간의 희망과 기대를 품고 날아갔다.
...그때까지는 그녀는 기분이 좋았었다.
그때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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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어느 도심.
높은 건물들이 드문드문 서있고, 차들이 바쁘게 도로를 지나치는 그곳에서.
한 남자가, 그 풍경을 탁 트인 하늘 위에 서서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이 화면을 통해 나오고있었다.
바람에 펄럭이는 검은색의 망토, 머리에 씌워진 마술사 모자, 그리고 표정을 반쯤 가리는 하얀 가면까지.
현재 대한민국에서 제일 인기있고, 한번 나왔다하면 화제의 중심인 그.
바로 에고스틱이, 오랜만에 방송을 켰다.
"해가 바뀌고 찾아뵙는군요. 안녕하셨습니까 여러분. 에고스틱입니다!"
카메라를 향해 씨익, 특유의 웃음을 지어보이는 그.
저번 방송 이후 무려 수개월간 사라졌다가 드디어 오늘에서야 갑자기 틀어진 방송인만큼, 사람들의 열기는 그야말로 뜨거웠다.
그의 방송이 진행되고 있는 에고스트림 페이지의 채팅창이, 눈으로 읽기 힘들정도로 빠르게 채워질만큼.
*
[텐련 드디어왔네 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시즌 524번만에 망고스틱 개같이 등장ㅋㅋㅋㅋㅋㅋㅋㅋㅋ]
[드디어 시발!!! 믿고 있었다고 망끼얏호우~~~~!!!]
[아ㅋㅋㅋㅋㅋ 오늘 다 뒤졌다 치킨 딱대ㅋㅋㅋㅋㅋㅋㅋ]
[아니 망고야 이제 에고스트림 멤버가 몇명인데 왜 테러를 안해!!! 형 나 미치는거 보고싶어?]
[에고스틱 방송을 경건하게 맞는법 1)티비를 튼다 2)맥주를 딴다 3)치킨을 시킨다 이게 야스지ㅋㅋㅋㅋㅋㅋ]
[자택근무라 바로 방송 볼 수 있는 승리의 자택충은 개추ㅋㅋㅋㅋㅋ]
[망고방송=보고있으면 그냥 시간 녹음ㅋㅋㅋㅋ]
[올해들어 처음으로 가슴이 뛰네 아ㅋㅋㅋㅋ 이게... 사랑?]
[이 방송을 도입부만을 보고 병이 나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방송을 켜 에고스틱의 얼굴을 본 그시각, 비로소 내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
그런 사람들의 뜨거운 반응을 아는지 모르는지.
에고스틱은 여전히 의뭉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하늘에 떠서 망토를 펄럭이며 말을 이을 뿐이었다.
"네! 여러분, 다들 격한 환영 감사드립니다. 아무래도 상당히 오랜만에 하는 테러인만큼, 이번에는 정말로 큰걸 준비해 왔습니다!"
짜잔.
팔을 벌리고는 그렇게 말하는 그.
당연히 채팅창은 그의 말에 더욱 바쁘게 올라왔다. 다들 당장이라도 그가 무엇을 할지, 누구를 데리고 오는건지 궁금해하는 분위기.
그러나 에고스틱은 당장 보여주지 않았다.
단지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지은채, 당연하다는 듯 이렇게 말할뿐.
"그러나 역시, 좋은 테러에는 좋은 상대가 있어야 비로소 빛나는거겠죠?"
"그러니 기다리겠습니다. 저의 히어로, 스타더스. 그녀가 오기까지."
"자. 빨리 와주시길."
그는 씨익 웃으며 말을 마쳤고.
그 시각.
한 쪽 하늘에서, 누군가 날아오고 있었다.
금빛으로 반짝이는 노란 머리를 휘날리며 날아오는 스타더스, 그녀가.
***
그가 드디어 왔다.
그 소식은, 신하루 그녀가 곧바로 날아가게 하기에 충분했다.
빌런이 나타났다는 소식에 히어로로서 바로 뛰쳐나간걸까.
아니면 에고스틱, 그였기에 누구보다 빠르게 날아간걸까.
그녀로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두근. 두근.
그의 저번 테러 이후, 자유의 여신상이 나오던 티비 프로를 보다 느꼈던 이상한 감정.
그만 생각하면 뛰는 가슴, 무언가를 잊은듯한. 그 느낌.
그 이상한 감정이 왜 생기는지, 대체 이것의 정체가 뭔지.
그를 만나면, 깨닫게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
그렇기에 신하루는 날았다.
에고스틱, 그를 보기 위해서.
찬 바람을 가르고,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협회 건물에서 한참을 떨어져있는 에고스틱이 등장했다는 그곳으로.
그렇게 해서 그녀는, 드디어 만날 수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스타더스씨."
"...에고스틱."
찬 바람이 휘몰아치는 허공.
그곳에서, 두 사람은 만났다.
*
[드디어 스타더스도 왔네 캬ㅋㅋㅋㅋㅋㅋ]
[에고스타! 에고스타! 에고스타! 에고스타! 에고스타! 에고스타!에고스타! 에고스타! 에고스타! 에고스타! 에고스타! 에고스타!에고스타! 에고스타! 에고스타! 에고스타! 에고스타! 에고스타!에고스타!]
[그냥 에고스틱이랑 스타더스 둘이 같이 있으면 그날 방송 끝임ㅋㅋㅋㅋ 미친 케미]
[정실은 스타더스라는건 고구려의 수박도에도 기록된 사실]
[헉 지금 스타더스 찬양하는 채팅 계속 지워지는데 뭐임? ㄷㄷㄷㄷㄷㄷ 모두 숨어!]
[이 채팅창 그 해커 여자애가 관리하지 않음?ㅋㅋㅋㅋㅋ]
[아 그래도 스타더스는 정실읍읍]
*
그렇게 채팅창에서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무슨 대화를 나누던 말건.
스타더스는, 조용히 자신 앞에 그를 응시했다.
"에고스틱...."
"네 접니다. 계속 부르시네요. 그렇게 애타게 안부르셔도 어디 도망 안갑니다. 하하!"
그렇게 농담을 던지며 웃는 그.
그러나 스타더스는. 신하루는, 웃을 수 없었다.
"....."
그의 앞에 서서.
비로서. 그의 웃는 얼굴을 보자.
휘몰아치는, 어떤 감정들.
여러 시간이 흐르고. 네가 나를 위해주던 그때, 있지. 그때 순간 순간들이 모여서.
난, 네가.....
그녀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나.
...끝이 아닐겁니다.
시간이 되돌아가도. 결국 우리 둘이니까.
언젠가 다시, 이렇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날이 올겁니다.
그러니까
울지 마세요.
어째서인지.
지금 그녀의 앞에 있는 에고스틱, 그의 웃는 모습을 보자 어째서인지 드는 벅차오르는 애틋한 감정.
왜인지, 대체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신하루는, 그의 앞에서 심장이 뛰는걸 느꼈다.
그의 옆에 서고 싶다.
그와 함께하고 싶다.
그가 나만 바라보게 하고 싶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감정들.
그러나 분명하게.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런 감정들.
그러나 그녀는 일단은 꾹 눌러담았다.
...그래. 지금은 히어로와 빌런으로써 만난거니까. 다른 생각은 하면 안된다. 이 이상한 감정은, 일이 다 끝나고서 말하면 되겠지.
그러나.
그녀를 향해, 나는 이렇게 마음이 복잡한데. 혼란스러운 감정에 너의 눈을 마주치는 것도 힘든데. 자신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그저 웃고있는 그의 얼굴에.
신하루는, 서운한 마음에.
자기도 모르게 그에게 톡 쏘듯 묻고 말았다.
"...왜 안왔어?"
"네?"
"금방 온다더니, 왜 이제야 왔어?"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애써 서운한 마음을 눌러담아. 그걸 날카로운 추궁인척. 그에게 그렇게 톡쏘듯 말할 수밖에 없었다.
"...하하, 제가 그랬었나요?"
...그리고 그런 자신의 말에,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는 듯 웃으면서도.
그녀만이 눈치챌 수 있게, 당황한듯 말을 돌리며 슬쩍 눈치를 보는 그를 보며.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살짝 웃었다.
***
해가 바뀌고, 처음으로 일으킨 테러.
하늘 위에서 방송을 키고 스타더스를 부를때만 해도.
나는 상황이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금방 온다더니, 왜 이제야 왔어?"
"...하하, 제가 그랬었나요?"
나를 향해 차가운 눈길로 그렇게 쏘아붙이는 스타더스.
그런 그녀에게, 나는 일단 웃으며 그렇게 답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땐 정말 금방 만날 줄 알았지. 실제로 만나기도 했을거다. 종말 이후로 다 없던 일이 돼서 기억에 날아가서 그렇지.
그러나 그런 말을 할 수 있을리 만무. 별 수 없이 이렇게 얼무버릴수밖에 없던 것이다. ...아니, 그리고 이걸 진짜 꼬집을 줄을 몰랐네. ...화난건 아니겠지?
일단 나는 그렇게 화제를 바꾸며, 슬쩍 채팅창을 봐봤다.
*
[금방 온다더니 왜 이제야 와? 헉... 이거 연인 사이에 하는 대사 아닌가요?]
[헉 둘이 사이 뭐야뭐야]
[벌써 들린다 쏟아져나올 열애설들이... ㅋㅋㅋㅋ]
[스타더스X에고스틱 조합은 ㄹㅇ 인정이지ㅋㅋㅋㅋ 둘이 사이 발표하면 대한민국 전국민은 무수한 축하를 날려줄 것]
[A급 히어로 스타더스 S급 히어로 애플망고 히어로커플 탄생ㄷㄷㄷ 대한민국 안전지대화 캬ㅋㅋ]
[안된다 이놈아! 에고스틱은 달빛망고가 국룰이라고 ....!!!]
[아닌데? 일렉망고인데? 개소리ㄴㄴㄴ]
[아니 왜 또 싸움나는데 아ㅋㅋㅋ 근데 누가봐도 망고스타가 맞는데 왜자꾸? 이상한 말들을?]
[팩트)저건 걍 누가봐도 히어로가 빌런이 테러예고해서 미리 대비해놨는데 안나타나서 상대하려고 준비해뒀던게 다 물거품되서 화난거잖아 연애는 무슨 과몰입ㄴㄴㄴ]
[그런?가?]
*
....다행히 자기들이 알아서 북치고 장구치며 납득하는 모습이었다.
하여튼 이게 중요한건 아니지.
나는 다시 스타더스를 바라봤다.
"....푸흡."
그때, 살짝 얼타는 나를 보더니 약간 웃는 그녀.
"...아니, 왜 웃으십니까?"
"그냥. 웃겨서."
"....참 나. 빌런을 보고 웃다니. 당황스럽네요. 하."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피식 웃었다.
...다행히 아까 그건 장난이었나보다. 아니, 히어로가 빌런한테 장난을 친다는건 말이 안되니까 도발이라고 해야할까. 하여튼.
나는 그렇게 미소짓는 그녀를 보며, 나도 모르게 똑같이 미소지어 보인 것이다.
오늘따라 웃는 그녀의 얼굴에, 시선을 뗄 수 없기도 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