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가 집착하는 악당이 되었다-222화 (222/328)

그렇게 좀 걷고 원형의 문을 지나자, 바로 나온 뻥 뚫린 공간.

양옆 벽에 스테인글라스가 가득하고, 거대한 샹들리에 있는 이 곳. 카테달 본회의실에 나는 도착했다.

"음...."

좀 일찍 왔는지, 아직 다 차진 않은 모습. 아틀라스와, 회의의 주체자인 셀레스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모습이다. 곧 다들 오겠지 뭐.

적당한데 자리나 잡고 앉아있자.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대충 양옆자리 비어있는 곳 아무데나 털썩 앉았다.

...조금 있으면 시작하겠네.

쓰읍, 잠깐. 근데 여기 막상 오고나니까 뭘 까먹은 기분이 드는데.

의자에 앉고보니 떠오른 생각에, 나는 곰곰히 생각을 복기해봤다. 가면도 썼고, 정보도 챙겼고. 뭐 잊은게 있나?

아, 맞다. 생각해보니까 오늘은 그 빨간 모히칸 머리가 안오겠구나?

나는 그제서야 놈을 기억해냈다.

하이킥인가 하이킨인가, 그 독일의 양아치같던 S급 빌런 놈. 저번에 나보고 A급이라고 시비걸길레 그냥 내 정보푸는 타이밍에 걔 보면서 독일에 뭔 일 생길테니 몸 조심해라? 이랬던 기억이 난다. 걔가 어차피 원작에서 이번 회의 전에 죽는 놈이었거든.

...지금쯤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겠구만.

불쌍한놈. 막상 죽게될 때 내가 한말 떠올리고 나때문에 죽는거라고 생각한건 아니겠지. 아니야, 너 그냥 원작에서 죽는 캐릭터야...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러고있자 마침 하얀 사제복을 입은 사람이 나한테 컵에 담긴 차를 내어주는 모습. ...이거 마셔도 되는거겠지? 셀레스트가 여기다 뭐 약같은거 넣어논거 아니야?

내가 그렇게 미심쩍어 하며 찻잔을 바라보던 그때, 한쪽편에 원형의 문이 열리며 새로운 빌런 수장이 들어왔다. 아틀라스 아재인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들었고.

엥?

빨간 모히칸 머리를 한 그놈을 보고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아니, 너 왜 살아있냐?

그리고 그놈을 본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걔또한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살짝 눈이 커지는 모습.

그러더니 그놈은 곧바로 발걸음을 옮겨, 나에게 다가왔다.

저벅저벅.

내 의자 앞에 바로 선 그놈.

그러더니 그는, 허리를 그대로 90도로 숙이며 내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형님!!!"

"..."

이건 또 뭔 상황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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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차 카테달 회의.

하이킨.

독일에서 S급 빌런으로 살던 그는, 셀레스트가 주최한 카데달 회의에 와서 살짝 긴장하고 있었다.

"......."

'...뭔가, 다들 강해보이는군.'

그도 그럴게, 그가 보기에 주위의 모든 빌런이 다 한능력 해보였기 때문.

거기에 그 유명한 셀레스트도 직접 만나고, 다른 빌런들의 자기소개도 듣고 난 뒤 그는 깨달았다.

...이러다가는, 묻힌다!

그런 경각심을 가지고 주위를 둘러보던 그때, 그는 어떤 한 사람을 보고는 멈칫했다.

'...에고스틱?'

검은 모자에 검은 망토를 한 남성, 에고스틱.

그는 저 빌런을 알았다. 언젠가 인터넷을 뒤적이다가 본 적 있는 생김세였기 때문.

'...자세히는 기억 안나지만, 그는 A급 빌런 아니였나?'

어째서 A급 빌런이 여기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이킨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그래, 쟤한테 왜 A급이 여기있냐고 시비를 걸어서 내 존재감을 밝혀야겠다. S급 밑에 A급이 있는건 당연한거잖아...?

그래서 그는, 에고스틱이 자기소개를 하는 타이밍을 타 철저히 계획하에 시비를 걸었다.

"네이놈!!!!!"

...물론 그는, 그 유명한 빌런인 아틀라스가 에고스틱과 친한거까지는 몰랐었다.

"뚫린 입이라고 아주 아무말이나 지껄이는구나! 감히 이 아틀라스의 친우한테 그따위 망발을 지껄여? 네이놈!!!"

"...아니, 거 참. 내가 뭐 틀린말 했습니까?"

물론 그에 굴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빈정거려는 봤으나, 속으로 매우 당황한 하이킨이었다. ...아니, 어떻게 에고스틱, 이놈은 A급 주제에 저런 거물과 친분이 있는거지.

하여튼 결국 셀레스트의 제지로 그 소동도 끝났으니, 나름 평온하게 끝났다고 할 수도 있겠다. 자신의 시비에도 별로 동요하지 않고 의뭉스러운 미소만을 지은 에고스틱이 좀 묘하기는 했지만... 그뿐.

물론 그건 정보 공유 시간이 찾아오고, 에고스틱의 입이 열림으로써 산산히 깨졌다.

"...특히, 독일 사시는 분은 조심해주세요. 3개월안에, 어떤 비극적인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요?"

그를 보고 웃는 낯으로, 대놓고 그렇게 말한 에고스틱.

"이자식! 감히 나를 위협하는거냐!"

일단 그렇게 역정을 내고 본 하이킨이었으나, 바로 아틀라스의 맞불과 셀레스트에 의해 묻혔다.

그리고.

'....쯧. 그냥 A급의 헛소리 도발이겠지.'

그냥 그렇게 넘기려던 하이킨은, 뭔가 불길함을 느꼈다.

...과연 저게, 그냥 헛소리일까?

회의가 끝난 이후, 다시 독일로 돌아온 하이킨.

그는 그날 이후 계속 느껴지는 무언가의 찜찜함에 몸을 떨었다. 에고스틱, 만약 저놈이 진짜 뭔가를 알고 한소리라면...?

"보스, 뭐해?"

"쉿."

그렇게 일단 에고스틱에 대해 인터넷의 번역기까지 돌려가며 인터넷에서 정보를 검색한 후.

그의 안색은, 파렇게 질렸다.

"제기랄..."

...이게, A급이라고? 누가봐도 S급 그 이상인데?

아니. 애초에 에고스틱 밑에있는 S급 빌런만 몇명이다. 거기에 대한민국에 미치는 그의 영향력과, 그가 지금까지 해온 일들을 알면 알수록 더욱 불안감에 질린 하이킨.

거기에, 자신이 본 북대서양 전체를 지배하는 5대 빌런 중 한명인 아틀라스가 전적으로 에고스틱을 지지하는 모습까지...

하이킨의 본능은 직감적으로 경종을 올렸다.

S급 빌런 하이킨, 그가 누구인가. 독일에서 어엿한 빌런연합 하나를 아직까지 협회에 안잡히고 운영하고 있는 만큼, 눈치 하나는 있는 남자.

'....특히, 독일 사시는 분은 조심해주세요. 3개월안에, 어떤 비극적인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요?'

".....쉣."

만약 에고스틱이 A급인척 코스프레한 S급을 넘어서는 막강한 빌런이라면? 만약 진짜 무언가를 알고 그에게 경고한거라면?

그렇게 하이킨은, 잠잘때도 침대에 무기를 놓고 자는등 장장 3개월을 공포에 떨며 낙엽소리 하나에도 흠칫하며 지냈고.

그렇게해서 그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와.. 시발."

콰아아아아아앙.

방금까지만 해도 자신이 앉아있던 장소가, 그야말로 산산조각이 나있는 모습.

움푹 파인 땅과, 붉게 물든 흙토. 무슨 용암같은게 그곳에 흐르는 상태.

자신에게 느껴지는 뜨거운 열기를 느끼며.

그는, 결심했다.

...앞으로 에고스틱은 형님으로 모시자.

***

"어... 살아계셨네요?"

나는 나를 향해 허리를 꺾어 인사하는 하이킨의 모습을 보고는, 나도 모르게 그렇게 말했다. ...아니, 얘 어떻게 안죽었지? 분명 습격당해서 죽었던걸로 기억하는데?

그런 내 말에 흠칫하는 그.

이내 그러더니, 갑자기 나를 보고는 빠르게 말하기 시작했다.

"넵! 형님께서 저에게 해주신 진심어린 조언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다 형님 덕분입니다. 앞으로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나를 향해 투명한 눈으로 그렇게 말하더니 고개를 숙이는 빨간 모히칸 머리.

...아니, 그러니까 그때 내 말을 듣고 살아남았다는 소리인가?

'이게 나비효과인가 뭔간가.'

나는 황당함을 느끼면서도, 일단 아직도 내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하이킨에게 손짓부터 했다.

"알았어요 알았어. 일단 앉으시죠?"

지금 근처 빌런들이 다 무슨 일인가 하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고. 어그로가 말이 안돼.

그런 내 손짓에, 잽싸게 바로 내 옆자리에 앉는 하이킨이었다. 말은 잘듣네.

"음..."

나는 잠시 그를 바라보며 침묵했다.

...아마 원작에서는 죽었을 놈이 나때문에 살아난 모양. 거기에 그 습격을 내가 지시한건줄 아는건지, 갑자기 나한테 형님이라고 부르며 사리는 모습이다.

'...잘된건가?'

뭐, 나쁘지않다. 예기치않게 일어난 일이기는 하지만, 이 카테달에서 내편이 하나라도 더 생기면 좋은 일 아닐까? 아님말고.

그렇게 생각을 포기한 나는, 이내 옆에 앉아있는 하이킨에게 물었다.

"...그래서, 날 형님이라고 부르겠다고요?"

"옙!!!"

"그러면 뭐, 잘해봐요 아우님."

"넵!!! 감사합니다 형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하자, 그런 내 말에 감격했다는 듯 진심을 담아 고개를 꾸벅 숙이는 하이킨이었다.

...S급 빌런이 A급 빌런한테 고개를 숙이는 광경, 과연 이게 맞는가? 아니, 얘는 대체 나를 혼자 머릿속에서 뭐라고 착각하길레 이러는거야. 하이킨 얘도 나름 독일에서 이름 좀 날리는 빌런으로 알고있는데.

하여튼 그렇게 빨간 모히칸머리와 좌충우돌도 끝나고, 다른 빌런들도 속속히 마저 다 도착할때.

우리 아틀라스 아재도 마침내 왔다.

"하하! 에고스틱, 오랜만일세... 근데 잠깐, 옆에 저놈은 왜 자네 옆에있는건가? 설마 우리 에고스틱을 괴롭히는겐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오다, 내 옆에 앉아있는 빨간 모히칸 머리를 보더니 표정을 구기고 주먹을 쥔 채 다가오는 그.

그렇게 아틀라스가 하이킨의 머리를 한방 때리기 전에, 하이킨은 갑자기 황급히 나서서 해명했다. 자신은 뭐 나를 형님으로 모시기로 했다 어쩌구 저쩌구.

그렇게 한대 맞는건 간신히 피한 하이킨이 한숨을 내뱉는 동안, 자연스럽게 내 옆에 앉은 아틀라스는 이내 언제 표정을 구겼냐는 듯 흡족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그래. 우리 에고스틱 정도면 충분히 형님으로 모시기에 알맞지. 에고스틱, 자네는 또 언제 저자와 그런 관계가 된건가. 역시 자네의 포용력 알아줘야하네!"

"하하하..."

...방금됐는데요.

역시 단순한 아틀라스 아재답게, 그냥 혼자 알아서 납득하더니 웃으며 내 등을 두들기는 그였다. ...뭔가 착각하고 있는거 같긴 했지만.

하여튼, 아틀라스도 오고 몇분 안돼서 다른 빌런들도 속속들이 도착했고.

"다들 오셨군요."

이내 하얀 성녀복을 입은, 이번 회의의 주체자인 셀레스트가 마지막으로 도착하며.

드디어, 회의가 시작되었다.

"최근들어 협회의 공세가 더욱 심해졌습니다. 새로운 능력자들 또한 갈수록 많아지며..."

눈을 감은채, 아름다운 목소리로 모두에게 최근 정세를 다시한번 상기시켜주는 셀레스트의 말을 들으며.

나는 잠시 눈을 힐끔거려 원탁 주위를 봤다.

"....."

내가 주목한 대상은, 일본 삼협파의 수장 카타나.

검은색 묶은머리를 한 채, 일본식 야쿠자 복장을 하고 앉아있는 그녀.

뭔가 피곤해보이는 기색으로 앉아있는 카타나, 그녀를 보며 나는 조용히 생각했다.

...오늘 오긴 왔네?

요즘 삼협파가 하도 정부에 두들겨맞고 있어서, 올 틈이 있나 했는데 그래도 오긴 온 모양세다. 운이 좋군. 오늘 이 회의 끝날때쯤에 슬쩍 알려주면 되겠지.

내가 그런 생각을 할때쯤, 셀레스트의 말도 끝이났다.

"그럼 이제, 제 2회 카테달 회의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거대한 샹들리에 아래, 원탁앞에 앉아 그렇게 말한 그녀.

그래. 드디어 카테달의 메인, 정보 공유의 시간이다.

이내 그녀는, 뭔가 성스러운 목소리로 정보를 풀기 시작했다.

"...이번에 히어로 협회에서 결정났기를..."

그렇게 중요한, 아무도 알 수 없던 정보를 푸는 그녀.

다들 집중해서 듣는 모양세였지만, 나는 애초에 별 관심이 없었다. ...저정도야 당연히 원작을 통해 아는 내용이기도 하고, 나랑 상관 없기도 하고.

그렇게 그녀의 차례가 끝나고.

다시 오른쪽에서부터, 각자 차례로 하나씩 자기가 알고있는 고급 정보를 풀기 시작했다.

"내가 전해 듣기로는..."

"서아프리카 지하 아래 히어로들의 비밀 기지가..."

"유럽쪽에 S급 히어로 아테나의 약점은..."

저번과는 다르게 확실히 준비기간이 있어서인지, 셀레스트가 알려준거에 비해 임팩트는 없어도 다들 정보를 하나씩 들고온 그들.

역시나 각국에서 다들 한가닥하는 빌런연합을 운영하는 이들이라 그런지, 나름 고급정보들이 많았다. 몇개는 나조차도 귀 기울여 들었을 정도로.

참고로 카타나도 얘기를 하긴 했다. 다만 뭔가 급하게 준비해온건지 좀 부실한 정보였을 뿐. 차라리 저쪽편에 앉아있던 중국의 S급 빌런, 리 샤오펑의 정보가 더 인상깊었다. ...중국정부가 그런걸 개발하고 있었을 줄이야, 나도 처음 듣는 얘기였다. 아니, 완전 또라이들 아니야.

그렇게 일렬의 순서가 흐르고.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

다들 날 바라보는 모습.

...A급 빌런이 푸는 정보라 그런지 왠지모르게 다들 별 기대가 없어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평온해보이는 원탁에서.

나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을 충격적인 정보를 하나 풀었다.

"미국 협회가 의도적으로 숨기고 있는 S급 히어로, 일명 서열 0위라 불리는 엑스 마키나라고 아십니까?"

"...?"

다들 처음듣는다는 표정.

그런 그들에게, 나는 툭 던지듯 말했다.

"그의 능력은."

"시간을, 되돌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그 말을 내뱉은 순간.

원탁이, 잠시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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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는 숨겨진 S급 히어로가 있고.

그의 능력은, 시간을 되돌리는 거다.

내가 그 말을 뱉은 직후, 원탁의 분위기는 살짝 얼어붙었다.

"....."

다들 뭔가 나를 바라보는 표정이, '쟤는 뭔데 저런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는거지?' 라는 얼굴.

하긴, 여기있는 대다수의 빌런들은 그런 히어로의 존재도, 그리고 그런 능력이 실존한다는 것도 몰랐었을테니까.

갑자기 이런 폭탄 정보를 고작 A급 빌런인 내가 던지니, 더욱 황당해할게 당연.

그렇게, 내 말이 끝나자 잠시 얼어붙은 원탁. 직접적으로 나한테 뭔 개소리야?라고 말 한 사람은 없었지만, 거의 그에 준하는 분위기.

그리고 몇몇은, 셀레스트를 힐끔힐끔 바라보기도 했다. 이런 이상한 거짓 정보 푸는 애 제지 안하냐고.

그리고 셀레스트는.

"...."

아무런 말 없이, 평소와 똑같이 눈을 감고 침묵하고 있었다.

당연하지, 왜냐하면 그녀는 이미 알고있었을 정보니까.

S급 히어로 엑스 마키나.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가진 남자.

이미 강한 능력자가 넘쳐나는 미국이지만, 그의 능력은 그중에서 듣기만 해도 엄청난 능력인만큼 독보적. 당연히, 그의 존재가 외부로 알려지지 않도록 협회에서 아주 똘똘 감싸고 있다.

주로 미국 협회내 지하 벙커에 있는 그는, 미국 협회장, 미국 정부, 국제협회 총장 모두와 즉석에서 연결할 수 있는 핫라인을 가지고 있을 정도.

그리고 사실... 방금 전에는 굉장히 기세좋게 그가 시간을 되돌립니다!라고 말했지만, 당연히 그 능력은 엄청나게 패널티가 크다.

돌릴 수 있는 시간도 몇시간이 아닌 고작 몇분이고, 그조차도 한번 쓰면 패널티가 엄청나서 다시 쓰기도 쉽지 않은 능력.

그러나 이렇게 온갖 하자가 있어도, 그의 능력은 그야말로 이 세계에서 독보적이었다. 다른건 몰라도, 멸망을 막는데에 한해서.

협회 내에서 그를 부르는 명칭은, 일명 '인류 최후의 보루'. 세계의 멸망을 막을 수 있는건, 그가 유일하다는 거다.

원작에서 나오기를 지금까지 그가 막은 핵전쟁만 수차례, 나라 하나를 붕괴시키는 테러를 막은 횟수도 몇십번.

한마디로 원작에서 그의 의의는, 세계를 더 이롭게 한다긴 보다 최악의 상황만은 일어나지 않게 막아주는데에 있다. 아무리 미치도록 강한 능력자들이 깽판을 치고 다녀도, 적어도 세계가 멸망하는 일은 없을거라는.

그리고 그런 그는.

몇달 있다 죽는다.

...물론 그거까지 얘기했다가는 진짜 점쟁이로 오해받을 수 있으니, 적당히 그의 능력이나 설명해야지.

나는 그렇게 혼란스러워진 원탁에서, 혼자 여전히 살짝 웃는 채로 담담히 설명을 이어나갔다.

"네. 시간을 돌릴 수 있다고 합니다. 다만 돌릴 수 있는 시간이 굉장히 한정적이라, 인류의 멸망만을 막는 용도로 협회에서 관리하고 있다고 하네요."

"....."

여전히 차갑게 굳어있는 원탁.

물론 여전히 못믿는 눈치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몇명은 혹시?하며 살짝 반신반의하는 눈치였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자리에서 설마 뻥을 칠까 뭐 그런거겠지.

...근데 어째 딴지거는 사람이 없다? 지금쯤이면 한명은 '개소리!'라고 나설 때도 됐는데. 그래, 저번에 그 빨간 모히칸머리 걔처럼.

참고로 걔는 지금 내 옆에서 눈을 빛내며 '역시 형님...! 이런 기밀까지 알고 계시다니...!' 이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넌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됐니.

...뭐, 물론 안믿어도 상관없다.

어차피 지금 안믿어도 바로 몇달 뒤, 엑스 마키나의 죽음을 통해 카테달의 세번째 회의가 열리기 전에 그의 존재가 만천하에 공개될테니까.

내가 그런 생각을 하며, 말을 마칠 때쯤.

"...저도, 그런 비슷한 소문을 들어본 적 있는거 같네요."

"?!"

원탁 한쪽편에서 들려오는 미성의 목소리에, 모두의 이목이 그쪽으로 쏠렸다.

바로 계속 가만히 듣기만 하던 셀레스트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기 때문.

"....허."

그 셀레스트가, 저 말에 동조를 해줬다.

즉. 방금 나온 말이 정말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소리.

그렇게 뭔가 웅성거림이 생긴 원탁 위에서, 나는 내색은 안하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 나도 좀 당황하고 있었다.

...아니, 너가 왜 여기서 입을 열어?

그런 생각을 숨긴채, 나는 고개를 슬쩍 돌려 셀레스트 쪽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하얀 성녀복과 면사포로 얼굴을 살짝 가린 채, 언제 입을 열었냐는 듯 조용히 눈을 감고 앉아있는 그녀.

"...."

...대체 무슨 생각인건지 모르겠네.

물론 나한테 있어서는 좋은 일이긴 하다. 순식간에 내 말에 신뢰도가 생긴거니까.

원래 폭탄 정보를 계속 던져, 다른 이들이 나한테 무언가 있다고, 위험한 놈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게 목적이었던만큼 나쁘진 않지만... 어차피 저 엑스 마키나라는 놈은 바로 몇개월뒤에 모두에게 존재가 알려질거라 딱히 상관 없기도 했다.

'...셀레스트의 주목을 받게 될거라 생각은 했지만.'

이런 식으로 나설줄은 몰랐다. 근데 뭐, 워낙 속을 알 수 없는 여자니.

그렇게 셀레스트와 나도 다시 입을 다물고, 원탁 위도 어수선한 상태에서.

바로 다음 차례인, 아틀라스 아재가 정보를 풀 순간이 됐고.

"허허, 이거 분위기가 왜 이러지? 자, 이제 내가 정보를 풀도록 하지. 잘 듣게."

그렇게 아틀라스가 자연스럽게 자신에게 이목을 돌리며, 다시 정보 공유의 장이 이어졌다.

다만.

"....."

어째 가만히 앉아있는 나에게 느껴지는, 의문의 시선들.

대체 A급이 어떻게 저런 정보를 알고 있는거지?라는 의심이 섞인, 경계어린 시선이 몇몇 느껴졌다.

그러더니 가끔 속닥이는 나와 아틀라스를 바라보는 그들. 정보와 더붙어, 거기에 내가 어떻게 아무와도 안친한 거물급의 아틀라스와 저렇게 친밀해보이는 지도 궁금하겠지.

그래. 계속 경계하고 의심해라.

너희들이 나를 실제보다 더 높게, 위험하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나를 건들이면 안되겠다는 판단을 할 그날까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느껴지는 시선들을 유유히 넘겼고.

그렇게 어느덧 시간이 흘러.

길었던 회의도 마침내 끝나게 되었다.

몇개월 뒤에 또 모이자는 셀레스트의 말을 마지막으로, 자리에서 하나 둘 일어나는 이들.

"하하! 에고스틱, 자네는 어떻게 그런 정보를 알고 있었던건가? 시간을 돌리는 능력자가 있다니, 이거 놀랄 노자구만. 물론 그놈도 이 아틀라스는 막지 못했지만 말이지, 하하하!"

갑자기 뭐에 꽂힌건지 그리 말하며 너털웃음을 짓는 그.

그러던 와중, 우리 빨강 머리는 '형님!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러더니 언제든 필요할때 연락 달라며 자기 직통연결 연락처를 남기고 떠났다. ...이걸 쓸 날이 올려나?

그렇게 아틀라스와 함께 일어나 돌아가는 복도로 향하던 그때.

"잠시만요, 아틀라스씨. 잠깐 만날 사람이 있어서 뵙고 오겠습니다."

"음? 그러게."

그렇게 아틀라스한테 양해를 구한 뒤, 나는 아까부터 내가 조용히 시선을 둔 여성에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활동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인지 뒤로 묶은 검은 머리와, 입고있는 회색빛 사무라이 복장, 그리고 피곤해보이는 눈매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있는 그녀.

일본 최대 빌런조직의 수장, 카타나.

그런 그녀에게 내가 다가가자, 내가 오는걸 눈치챈 그녀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의아하다는 듯 내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나는 웃으며, 카타나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카타나씨."

"....무슨 일이지?"

피곤이 가득한 얼굴로 내게 묻는 그녀.

"전 한국에서 활동하는 에고스틱이라고 합니다. 서로 바로 옆동네에서 활동하는 만큼, 겸사겸사 인사드릴 겸 찾아왔습니다."

"...그렇군. 반갑네. 근데 내가 지금 바빠서."

그렇게 대충 답하고 가려하는 그녀였다. 그래, 바쁘겠지. 지금 자기 연합군이 정부와 협회에 계속 패하고만 있을 테니.

그렇게 고민이 많은 그녀한테.

나는 살짝 웃으며, 그녀에게 말을 건냈다.

"아 그리고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는 뜻에서, 제가 카타나씨에게 따로 드릴 정보가 있습니다."

"....정보?"

정보라는 말에, 살짝 관심을 표하는 그녀.

피곤한 기색으로도 그말에는 약간 관심을 가지고 나를 바라보는 그녀에게.

"네. 제가 당신께 특별히, 하나 알려드리죠."

그리 말한 나는 고개를 살짝 숙여, 그녀에 귀에 대고 조용히. 속삭이듯 말했다.

"히시모토 나츠하."

"그녀가, 배신자입니다."

"....!"

그런 내 말에, 당황한 듯 고개를 빼고 살짝 뒷걸음치는 그녀.

당혹감, 그리고 얼핏 보이는 분노의 시선을 느끼며, 나는 어깨를 으쓱이곤 말을 했다.

"뭐, 친하게 지내자는 뜻에서 말씀드렸습니다. 부디 제 정보가 도움이 됐으면 좋겠네요."

"그럼, 이만."

나는 그말을 끝으로, 뒤를 돌아 다시 아틀라스 쪽으로 돌아갔다.

...자, 난 말해줬다.

이제 믿지 말지, 어떻게 행동할 지는 다, 그녀의 선택이다.

"일 다 봤나?"

"네. 이만 가죠."

할 일을 한 나는 그렇게, 다시 아틀라스와 함께 돌아갔다.

뒤에 느껴지는, 카타나. 그녀의 시선을 느끼며.

***

'뭐지... 대체?'

일본의 S급 빌런, 카타나.

그녀는 방금 자신에게,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고 지나간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히시모토 나츠하. 그녀가, 배신자입니다.

'말도 안되는 소리를... 아니 애초에, 나츠하를 어떻게 안거지?'

카타나.

그녀는, 썩어빠진 지금의 일본을 바로잡기 위해 나섰었다. 빌런이라는 말을 들어도, 공적으로 여겨져도 그녀는 감내했다. 이 나라를 바꿀수만 있다면, 악의 길을 걸어도 상관 없다고 생각했기에.

운 좋게도, 그녀의 주위에는 뜻이 맞는 친구들이 함께 해주었고.

그런 그들과 함께, 삼협파라는. 지금의 일본 최대 빌런 조직을 만든게 벌써 수년전.

그러나 지금은, 어째서인지 언제부턴가 계속 정부군과 협회에 밀리는 실정이었다. 마치 자신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안다는 듯, 신출귀몰하게 움직이는 녀석들.

그렇게 패전에 패전을 거하며 그녀가 근심어려할 그때. 저 남자가 갑자기 다가와 말한 것이다. 히시모토 나츠하. 그녀가 배신자라고.

'...나츠하는 분명, 신분이 노출되지 않아 아무도 모를텐데...'

나츠하.

카타나 그녀와 초기부터 함께했던 친구이자, 자신의 든든한 참모.

어떻게 그녀를 저 남자가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츠하는 결코 그럴리없다. 분명.

'...분명, 그럴리가 없을텐데...'

그러나 그 말을 들은 순간.

이미 그녀는, 그 말을 듣기 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었다.

의심- 그 무서운 것이, 그녀의 가슴 한켠에 싹티었기에.

"....."

거기에 아까 회의에서 보여준, 그의 파격 발언.

비록 그녀와는 큰 상관없는 말이었지만, 미국이 시간을 조작할 수 있는 능력자를 숨기고 있다는 아무도 몰랐던것 같은 그의 말과, 그 셀레스트의 동의까지.

'...만약, 정말 저 에고스틱이라는 자가 무엇을 알고 말한거라면?'

카타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자기도 모르게 에고스틱의 말을 계속 곱씹게 되었다.

그리고, 에고스틱과 카타나가 함께한 일렬의 그 광경을.

"...."

원탁 한쪽편에 계속 남아있던 셀레스트가 조용히, 그 모든걸 지켜보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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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달에 갔다온 이후.

특급 정보도 푸랴, 일본 빌런 보스와도 접촉하랴 나름 바빴던 나는 집에서 힐링을 좀 하고있었다.

[현재 서울 영등포구에 나타난 S급 빌런 세븐헌을 히어로 스타더스가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현장영상, 이재현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캬. 이게 히어로지."

한 손에는 팝콘을, 다른 손에는 컴퓨터를.

요즘음은 하도 바빠져서 마음편히 쉴 시간도 드물었지만, 그래도 스타더스의 라이브 영상은 꼬박꼬박 본방 사수를 하고 있었다. 주로, 스타더스가 얼마나 강해졌는지를 보는 재미로.

"...야, 이제는 진짜 저 스타 펀치를 자유자재로 다루네."

나는 노란 빛을 내는 주먹으로 빌런을 패고있는 스타더스를 보며 감탄했다.

스타펀치. 원작 팬들이 애칭으로 부르던 스타더스의 기술 중 하나로, 주먹에 별의 힘이 담겨서인지 빛이 난다는게 특징. 당연히 그냥 공격보다 훨씬 쎈 위력을 보여준다.

...원작에서는 극한상황에 이르렀을때 필살기로 쓰이다가, 경지에 오른 순간부터 자유자재로 쓸 수 있게된다. 내 기억엔 그게 월광게이트 사건 이후로 기억하는데, 벌써 쓸 수 있다는건 그야말로 엄청난 성장.

저번 마왕과의 싸움이후 각성한걸로 보이는데, 그야말로 대단한 일이었다. 아마 본인 스스로가 제일 잘 알지 않을까. 저 스타펀치를 쓰면 그냥 빌런들이 픽픽 쓰러진다는 걸.

하여튼 그래서 좀 더 안심할 수 있었다.

앞으로 일어날 재앙들을, 지금의 스타더스라면. 여기서 더 성장만 한다면, 충분히 막아낼 수 있을거 같아서.

'....벌써 원작으로 따져도 꽤 많이 진행됐네.'

나는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긴, 뉴스만 틀면 알 수 있다. 빌런은 매일 나타나지, 세계는 박살나고 있지.

다들 아직 깨닫지는 못했지만, 슬슬 자기들도 모르게 느끼고는 있을거다. 뭔가 세상이 점점 더 이상해진다는 것을.

브라질이라는 나라는 아예 망했다.

일본은 타락한 정부와 빌런들의 싸움이 점점 심화되고 있다.

S급 빌런들끼리 모여 카테달이라는 연합을 구성했다.

우리 대한민국은 무슨 마왕같은게 나오고 앉아있고...

'거기에 몇개월 있으면, 인류가 한번 멸망하지.'

물론 말이 멸망한다는거지, 결국 그 시간능력자가 자기 몸 하나 불살라서 '없던 일' 취급 되긴 할거다. 그러나 대신 그 인류의 최후의 보루인 사람이 죽으니, 상황은 당연히 악화된다고 할 수 있고.

거기에 이제 우리 월광교가 대한민국을 넘어 전세계를 상대로 괴물까지 쏟아부어주면 금상첨화. 아무튼 개판이 펼쳐질거다.

즉, 그전에 미리 나도 어느정도 다른 능력자들을 키워 대비를 할 필요가 있다는거. 스타더스가 몸이 여러개가 아닌만큼, 원작을 봤을때 앞으로를 생각하면 미리 다른 영웅들을 육성해놓을 필요가 있다.

그렇게 시작된게 이설아와 내가 합쳐서 만든 영웅육성학원... 이 아닌 PMC. 능력자들을 모아 유성그룹 이름으로 키운뒤, 나중에 재앙이 터졌을때 걔들을 굴려서 막는다.

그리고 시간이 남은 지금, 그걸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가 되었다. 이미 모집은 끝났으니까.

"흐음...."

그런고로 스타더스 라이브 이벤트를 본 이후, 나는 서류를 들고 PMC의 최종 컨펌을 하고 있었다.

예상도 못했지만, 은근 지원이 많이왔다. 원작에서 봤던 이름들부터 생전 처음듣는 이름들까지.

그렇게 원작에서 본 애들 중 점찍어놓은 애들은 승인하고, 원작에서 본적 없는 애들은 서은이와 유성그룹의 힘으로 철저히 조사한 뒤에 컨트롤 될거같은 애들만 승인했다.

그렇게 이리 거르고 저리 거르다보니, 결국 남은건 단 4명.

'....좀 적은거 같긴 한데 ... 뭐, 어차피.'

얘들은 내가 직접 가르칠거라 이 정도만 뽑은거고, 앞으로 이 애들 다 키우고 2차 모집할 땐 몇십명씩 뽑을거니 큰 문제는 아니다. 나중에는 거대한 에고스트림 사단이 되어 대한민국을 종횡무진...

그렇게 최종 승인을 내고 이설아한테 연락을 한 나는, 이내 한숨과 함께 노트북을 닫았다.

그때 시야의 한쪽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서은이와 은월이.

"오빠, 다 끝냈어요?"

"어으으... 응? 어, 이제 다했어."

내가 그렇게 대답하자, 서은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뭔가 불안한 표정으로 서류를 힐끔힐끔 봤다.

"....오빠, 그게 뭐에요?"

"응? 말하지 않았어? 그 PMC 애들 꾸리는거. 방금 막 최종 컨펌 냈어."

"음...."

뭔가 석연치않은 듯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서은이.

그러더니 그녀는, 내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오빠...  설마 저희 에고스트림을 버리고 다른 팀으로 가려는거 아니죠?"

"응?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다른 팀으로 왜가?"

잠시 멍하니있던 나는, 그 소리를 듣고는 화들짝 놀라서 그렇게 말했다. 이게 무슨 뜬금없는 말이야?

그러자 입을 꼭 닫고 불안하게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있는 서은이 대신 은월이가 말했다.

"...다인오빠가 자꾸 저희말고 다른 능력자들을 모아서 뭐 만들고, 요즘 걔들한테만 신경쓰니까 서은이가 수상하대요."

"....! 내가 언제! 전 그 뜻이 아니라..."

그 말에 얼굴이 붉어진 서은이가 손을 흔들며 부정했지만, 아무래도 정곡을 찔린 모양.

대체 왜 서은이가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최선을 다해서 그게 아니라고 설명했다. 애초에 메인이 에고스트림이고, PMC는 그냥 서브다 어쩌구 저쩌구...

그렇게 장시간에 걸친 내 진심어린 설득 끝에, 서은이는 그제서야 불안을 풀고 납득한 모양새였다.

"그래. 애초에 거기 애들은 다 B급, C급 이런 애들이야. 우리 에고스트림 멤버들은 다들 A급 이상이잖아?"

"흐응... 그렇긴 하죠."

"그리고 우리 천재 해커 서은이에 비하면, 어떤 기술 능력자가 오더라도 다 꿇리지 않겠어?"

"에잇, 오빠. 농담은 그만해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누가봐도 다시 기분이 좋아진지 살짝 웃는 서은이.

그런 서은이를 보며, 나는 걔들이 오히려 능력이 안좋은 만큼 내가 한동안은 집중적으로 달라붙어 케어를 해줘야 한다는 말은 안하기로 했다. 왠지 하면 안될거같은 기분이야...

그렇게 잠시 급한불을 끄고 한동안 시간이 나는동안, 나는 집에서 쉬기로 했다. 물론 말이 쉰다는거지 재택근무긴 한데, 설렁설렁하니 아무튼 쉬는거다.

...근데 나는 분명 빌런인데, 왜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거지? 원래 빌런은 놀고먹고 테러하고 그러는 이미지 아니였나.

물론 생각해보니까 이 원작부터 대다수의 고위 빌런들은 성실했으니, 어쩌면 내가 평범한 걸 수도 있다.  각박한 현대사회, 어설픈 빌런은 살아남지 못한다...

그렇게 PMC마저 검토하고, 다음에 영입할 새로운 에고스트림 멤버 고민하고, 수빈씨랑 차한잔 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다 됐다.

PMC 정식 창설을 할 시간이.

***

유성기업의 PMC, 일명 '유성스쿼드'.

대외적으로는 회장 이설아가 능력자들을 영입해 만든 사조직으로, 회사의 경호를 위해 만든다는 명분으로 창설되었다.

그러나, 실상은 정반대.

이는 A급 빌런 에고스틱인 나와, A급 히어로이자 대한민국의 흑막 이설아 둘이 손을 합치고 만든 한반도 방위용 군사조직.

원작을 통해 미래에 능력자가 많이 생겨나고, 그들의 대다수가 빌런으로 전직하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고, 나중에 들끓 괴물들과 빌런들을 막기 위해 사비로 능력자들을 고용하는 것. 당연하게도 거의 대부분 전투경험이나 마인드 부족하기 때문에, 어느정도 가르치기도 해야하고.

그렇게 히어로와 달리 신분 100프로 보장과, 돈을 퍼준다는 명목하에 모집한 PMC 인원들.

그런 그들을 수용하기위한 곳에, 내가 도착했다.

근데...

"와...."

"어때, 멋지죠? 제가 힘 좀 썼어요."

이설아의 리무진에서 내리자 펼쳐진 높은 빌딩.

꽤 높은 층수에 겉이 전부 하늘색의 유리로 이루어져 번쩍거리며, '유성 PMC' 라는 글자가 맨 위에 번떡였다.

"이야... 뭘 이리 힘줬어?"

"후후, 저랑 다인씨랑 최초로 합작한 프로젝트 아니에요? 당연히 힘 좀 썼죠."

이설아는 그렇게 말하며, 하늘색 머리카락을 찰랑인 채 앞으로 또각또각 걸었다.

이내 나도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일렬로 늘어선 경호원들.

그들의 호위를 받으며 건물 내부로 들어서자, 으리으리한 시설들이 날 반겼다.

"자, 여기는 숙식실이고... 여기는 식당... 여기는 여가생활..."

그렇게 나한테 층을 돌며 가이드를 해준 그녀.

PMC 애들 지낼 기숙사같은걸 만들어 달라 했더니, 무슨 협회보다 좋은 시설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지하가 핵심이에요."

지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서 날 보고 웃으며 그렇게 말한 그녀는, 문이 열리자 짜잔 하고 내게 만든걸 소개했다.

지하 밑에 있는건, 그야말로 거대한 공간.

무슨 야구장 비스무리한 크기의 공간이 나를 반겼다.

"능력자들끼리 훈련하면, 주로 전투말고 뭘 더하겠어요?"

한은그룹으로부터 빼돌린 첨단 기술로 만들었다는 절대 안부서지는 외벽을 자랑하는 이설아를 보며, 나는 작게 감탄했다. 확실히, 이정도면 에고스트림이 주로 훈련하는 뻥 뚫린 숲 정도의 효과를 낼 수 있겠다.

"야, 이렇게까지 해줄 줄은 몰랐는데, 정말 고맙다."

"훗. 제가 당신한테 받은게 있는데, 이정도야 쉽죠. 그리고 어차피..."

그렇게 말한 이설아는 새초롬하게 웃더니, 내 옷깃을 부여잡은 채 나와 마주 서, 입을 열고 말했다.

"사실 당신이 이거 하는게, 다 여기 모두를 구하려고 그러는거라면서요."

"뭐... 따지자면 그렇지."

"그럼 제가 당연히 도와야죠. 대한민국이랑 유성은 한몸인데."

"하하... 그게 비유가 아니라는게 무섭네."

"뭐 어쨌든,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아 그리고..."

"응?"

"요즘 스타더스가 말인데, 좀..."

거기까지 말하더니 살짝 머리를 갸웃한 이설아는, 이내 다시 살짝 웃으며 말했다.

"아니, 뭐 별 일 아닌거같기도 하고. 아무것도 아니에요."

싱겁긴.

피식 웃은 나는, 다시 이설아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그럼 이제.'

새로운 애들을 만날 차례인가.

내 오랜 숙원, 에고스쿼드...가 아닌 유성스쿼드의 일원들을.

...제발 말만 잘들어줬으면 소원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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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설아에게 완공된 PMC 훈련 건물을 양도받은 이후.

나는 며칠간 서은이와 은월이와 함께 기구들을 다 갖다놓고 단장을 한 뒤, 드디어 다른 이들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오빠, 진짜 그냥 실명을 까고 할거에요?"

물론 내가 아예 얼굴도 까고 이름도 까고 이 모든 일을 벌인다는거에 서은이가 걱정을 하긴 했지만, 나는 별 생각 없었다.

애초에 이미 스타더스도 내 이름과 얼굴을 아는 마당에... 오히려 당당하게 나가는게 전략. 거기에 어지간하면 이 유성건물 내부에서만 있을 예정이라 별 상관도 없었다. 이설아가 언론도 먹은 상황에서 외부에 노출될 리도 없고.

그렇게 나는 유성그룹 PMC 총괄담당으로 공식적인 직위를 획득했다. 이미 뒤에선 A급 빌런인 상황에서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은...

하여튼 그렇게 서은이도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건물에는 나와 은월이만이 남았다.

"은월아... 알지?"

"네 다인오빠!"

"그래. 너만 믿는다."

그렇게 은월이를 벽 뒤로 보낸 이후.

나는 한번 헛기침을 한 뒤,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을 우리 PMC 일원들을 만나러 갔다.

자, 어디 에고스쿼드 멤버들 한번 실물을 봐볼까.

***

원작 후반, 세계가 거의 멸망 직전까지 다다르며 빌런들은 날뛰고 괴물들이 튀어나올 무렵.

이미 망해가는 나라를 스타더스가 홀로 지키며, 그녀는 그야말로 눈물없이 볼수는 없는 피폐한 일대기를 그려나간다.

특히 히어로들은 거진 다 탈주해 사실상 협회 쪽 전력은 스타더스 혼자인데, 빌런들은 들끓는 상황. 물론 이것도 그나마 이설아가 치안을 어느정도 통제한건데도 불구하고 감당할 수 없었는지 나라가 그냥 개판이 된다.

그리고 그 사태를 막기위해 내가 생각한 것이, 다른 능력자들을 고용하자. 미리미리 얘들을 키워놔서, 나중에 종말이 찾아올때 스타더스를 도울 수 있도록 하자는 것. 그녀가 혼자서 자잘한 것까지 전부 모든걸 할 필요는 없도록.

그런고로, 지금 내가 하는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어린새싹들. 나중에 스타더스를 도와 세계를 지키게 될 애들이 마인드가 똑바로 박혀있어야 되지 않겠어? 비록 능력 자체는 우리 에고스트림 정예들에 비하면 떨어지지만... 그건 애초에 내 주위들은 전부 원작에서 몇손가락 안에 드는 인물들인거라 그런거고, 이 애들 정도만 해도 나름 강한편인거다.

하여튼 결국은 나의 역할이 꽤나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내 목표는 얘들의 능력을 지금보다 성장시키고 밥값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그렇게 나는 현재, 4명의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안녕. 너네들이 이번 유성 PMC에 뽑힌 애들인가? 난 너희들의 담당이 될 다인이라고 한다. 잘부탁한다."

"넵!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

난 나에게 인사하는 4명의 애들을 바라봤다.

내 에고스쿼드... 유성스쿼드의 초창기 멤버들이자, 제일 정예가 될 이들.

난 일단 간단한 통성명을 한 뒤, 얘네들을 지하의 뻥 뚫린 대련실로 대리고 내려왔다. 아직 낯설어서인지 서로 쭈뼛쭈뼛한 애들의 모습.

그렇게 애들을 대리고 밑으로 온 나는, 대충 포즈를 잡고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곳에 온 이상, 너네들의 이전의 신분은 다 버린다고 생각해라."

"이제부터 너희들은 개개인의 존재가 아닌, 우리 유성스쿼드의 멤버들이다. 알겠나?"

"자. 앞으로 너희들을 부르는 호칭은... 1호, 2호, 3호, 4호다!"

"....엄, 네."

내 갑작스러운 말에도 다들 살짝 당황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는 애들.

...음, 역시 다들 착한거같다. 물론 내가 원작과 사적감찰을 통해 성품이 착한 애들만 골라왔으니 당연한 거겠지만. 물론 그러다보니 PMC에 지원한 이들이 엄청 많았는데도 그중에 단 4명만 선별되긴 했지만... 후회는 없다.

그런 생각을 속으로 하며 헛기침을 한 나는, 제일 앞에있는 남자아이한테 말했다.

"자 그럼, 1호 앞으로! 너의 실력을 한번 보여줘봐라!"

"....알겠습니다."

내 말을 끝으로, 1호가 앞으로 나왔다.

회색빛 머리카락을 묶은머리로 하고있는, 날렵하게 생긴 검을 허리에 찬 남자애. 뭔가 사연 있어보이는 어두운 표정과, 조용하게 말 수 없는 성격이 특징.

원작에서 '조용한 무사'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그. 어디 범죄조직의 사냥개로 살다가 거길 도망친 이후, 몸을 의탁할 곳을 찾다보니 우리 PMC에 지원하게 된 모양.

원작에서는 그런거 없이 그냥 떠돌다가 나중에 월광교가 괴물들이 대한민국을 집어삼킨 이후 사람들을 구하는 모습으로 처음 등장한다. 그냥 엑스트라에 능력 자체도 평범했던걸로 기억하지만... 몇 안되는 성격 좋은 이였으니 바로 캐스팅.

"자, 네가 싸워야할건 이거란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버튼을 눌러 대기하고 있던 서은이가 만든 실력 테스트용 기계를 출격시켰다.

거대한 모습의 무슨 공룡처럼 생긴 로봇이 벽에서 튀어나오자 살짝 당황하는 나머지 3명.

그러나 우리의 하얀머리 칼잡이는 그런 동요 없이 조용히 검을 빼들더니, 이내 내 테스트병기를 향해 달려들었다.

[크롸롸롸롸롸롸!]

그렇게 그는 빼어든 검을 들고, 그냥 공룡을 향해 점프해 버렸다. 그러더니 슥삭슥삭 하며 싸우기 시작한 녀석.

쟤 능력이 뭐였더라... 바람의 힘을 쓸 수 있다나 뭐라나.

그 덕에 빠르게 이동할 수 있고, 검도 바람과 함께 휘둘러서인지 일반인보다 더 파괴적인 능력을 낸다고 한다.

하여튼 그렇게 투닥투닥 거리더니, 끝내 공룡로봇을 쓰러트린 1호.

그렇게 걔를 바라보며 조용히 실력체크를 하고 있던 나는, 고개를 끄덕인 뒤 2호를 불렀다.

"자, 2호. 다음은 너다!"

"에... 바로 저요? 뭐, 알겠습니다."

그렇게 뭔가 건성으로 말하더니, 읏차하고 활을 들고일어난 여자애.

그렇게 내가 다른 공룡로봇을 출격시키자, 그녀는 활을 들고 먼거리에서 조용히 그것을 향해 겨누기 시작했다.

분명 활사위가 없었는데도, 시위를 당기자 이상한 빛의 화살이 생성되는 모습.

그렇게 핑하고 놓자, 빛의 화살은 빠른 속도로 달려들어 놈에게 꽂혔다. 위력은 그렇게 강해 보이진 않았지만.

나는 그렇게 먼거리에서 도망치며 입으로 '얍, 얍.' 거리며 활을 쏘고있는 여자아이를 바라보았다.

...사실 쟤는 원작에서는 못봤던 애다. 다만 저런 식의 능력은 들어보지도 못했고, 포텐셜도 있어보여서 영입 했을뿐. 아니, 화살이 없는데 활을 쏴? 이게 로망이지...

물론 이설아의 철저한 뒷조사에 의해 애가 나쁜 애가 아니라는 판단이 서서긴 한데, 하여튼.

그렇게 좀 시간이 걸려 2호도 그것을 쓰러트린 뒤, 나는 자연스럽게 3호를 불렀다.

"넵! 드디어 제 차례군요! 제 실력을 보여드리죠!"

빨간색 머리카락을 한 채, 자신있다는 듯 웃음을 터트리는 여자아이.

뭔가 운동을 좋아하게 생긴듯, 활발해 보이는 그녀는 곧바로 손에서 불을 뿜더니 테스트 로봇에 달려들었다.

3호. 원작 최후반에 나오던 애. 얘도 괴물들의 잔해에 깔린 사람들을 구하는 모습으로 처음 등장한다. 그러자마자 바로 다음에 죽어버려서 그렇지...

하여튼, 포텐셜을 있어보이는 애였다. 제대로 키우기만 한다면.

그렇게 무식하게 괴물을 주먹으로 쥐어패는 그녀.

나름 힘겨운? 사태끝에 겨우 겨우 놈을 무찌른 모습을 본 뒤, 나는 마지막으로 4호를 불렀다.

"자, 출격!"

"으음..."

파란 단발머리를 한 여자아이.

그녀는 살짝 머뭇거리더니, 에잇하고 무슨 비눗방울같은걸 날렸다.

...그만 알아보자.

어쨌든 그렇게 좌충우돌 4인방의 실력테스트가 마무리되고.

나는 조용히, 걔네들을 불러모은뒤 말했다.

"너네는 너무 약하다."

그런 내 말에 살짝 충격받은 듯 당황한듯한 애들의 모습.

어찌보면 당연하다. 뭐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결국 저 공룡닮은 병기를 물리치긴 했으니까. 심지어 저건 불도 뿜는데!

그러나 분명 약했다. 물론 염동력이랑 순간이동 두개 달랑있는 나보다는 강하겠지만, 우리 에고스트림 멤버들과 비교하면 민망할정도로 약한 수준.

즉 지금은 충격요법을 줄 때.

그러나 나는 말했다시피 몇번 쓰면 끝인 나약한 내 염동력으로는 뭘 보여줄 수가 없다.

그런만큼, 저기 벽 뒤쪽에 숨어 나를 지켜보고 있을 은월이가 중요할 때.

자, 내가 제일 잘하는거. 쇼를 한번 해볼까.

그렇게 너희들은 너무 약하다! 선언에 뭔가 '그럼 넌 얼마나 강한데?'라는 불퉁어린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애들의 시선을 받으며, 나는 큰 소리로 외쳤다.

"자, 테스트 기체 하나 더!"

내가 그렇게 외치자 열리는 대련실의 벽.

그곳에서 또 아까와같은 나름 큰 공룡로봇이 크롸롸롸롸 울부짖으며 튀어나왔고.

나는 아까부터 손에 낀 장갑을 매만지며, 조용히 앞으로 걸어갔다.

'은월아, 준비됐지?'

너만 믿는다.

그렇게 애들을 지나쳐 그 큰 로봇앞에 선 나는.

활짝 핀 손을 높게 하늘로 펼친 뒤.

꾹, 하고 그대로 주먹을 강하게 쥠과 동시에.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내 앞에 있던 로봇이, 그대로 찌그리듯 짓눌리더니 굉음과 함께 폭발했다.

그야말로 누가 보더라도 내가 주먹을 움켜쥐며 무언가의 능력으로 저 로봇을 박살낸 듯한 모습.

그러나 실상은...

'고맙다, 은월아!'

나는 저 벽 어딘가 있을 은월이한테 속으로 감사의 인사를 건냈다.

당연히 이는 은월이랑 짜고 친 고스톱. 내가 주먹을 쥔 그 순간, 숨어서 대기하고 있던 은월이가 나대신 저걸 공격해 마치 내가 쓰러트린 것처럼 꾸민다.

그야말로 기만술 그 자체이지만... 그걸 저 애들이 알 방법은 없지.

그렇게 나는 뒤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열기와 튀어오는 파편을 느끼며.

그 폭발의 현장으로부터 뒤를 돌아서, 자기들은 몇십분만에 겨우겨우 쓰러트린 병기를 단 몇초만에 쓰러트린 날 멍하니 바라보는 애들의 시선을 보며.

씨익 웃은채, 선언하듯 말했다.

"너희들은 앞으로, 이렇게 할 수 있을만큼 강해져야한다."

그래야 스타더스를 도울 수 있겠지.

그러니 그럴려면, 당연히.

굴러야겠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사악한 웃음을 흘렸다.

자, 착한 모두의 에고스틱에서 공포의 훈련소 조교가 될 순간이다.

***

'....강하다.'

회색 빛 묶은머리를 하고 있는 남자, 이세검... 아니, 이제 1호인 그는. 자신의 앞에 있는 다인이라는 남자를 보며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다른 이들은 몰랐겠지만, 감각이 예민한 그는 느낄 수 있었다. 저 남자가 주먹을 쥔 순간, 저 병기의 가운데서 에너지가 응축되더니 그대로 터지는 그 모습을. 심지어, 저 다인이라는 사람은 의도적으로 능력을 제한하기도 했다.

...사실 이건 백은월의 능력이었으나, 그는 거기까진 몰랐다.

'...우리 조직에 있던 그들보다도, 훨씬 강해.'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며, 자신의 검을 부여잡았다.

저 남자를 따라 노력하다보면, 자신도 그만큼 강해질 수 있을까?

그러면. 이 과거의 주박도 끊을 수 있을까.

1호는 그런 다짐을 하며, 자신의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래, 여기서 노력하자. 그리고, 조직을 박살내는거다.

...그런 그는, 자신이 앞으로 생각보다도 더 빡세게 굴러야한다는 것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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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만화 [스타더스트!]의 세계관은 굉장히 어둡다.

능력자들은 거의 다 빌런이 되며, 나라 하나가 기업가의 손에 반쯤 먹히는 등 개판.

파워밸런스도 안맞아서 아무리 주인공이 조금씩 더 강해진다해도 빌런들은 그보다 더 빠르게 강해져 독자들에게 무한한 고통만 안겨주었다.

그럼에도 이 지랄맞은 만화를 나를 포함한 애독자들이 계속해서 읽어준 이유가 무엇인가. 언젠가는 스타더스가 행복해지지 않을까-라는 희망고문을 계속 하게돼서이다. 솔직히, 세계관이 이보다 더 어두워질 것 같지도 않았고. 이미 초능력으로 민간인을 학살하는 빌런들이 넘치는 세계관이, 여기서 어두워져봤자 얼마나 더 어두워진단 말인가.

그리고 그런 순진한 독자들의 예상을 뒤엎듯, 역대급으로 지랄맞은 사건이 터진다.

일명 2페이즈의 끝이라 불리는, 월광게이트 사건.

월광교, 이들이 누구인가.

원작에서 월광무녀를 대동해 서울을 반쯤 파괴한 빌런단체. 달의 신을 이 세계에 다시 강림시키겠다는 일념 하에 다른 차원과 이 세계를 연결하려 하는 이들이다.

그리고 2페이즈의 끝에, 놈들은 기어코 성공한다. 대한민국과 이 세계에 일렁이는 차원의 문, 일명 포탈을 여는데.

와. 벌써부터 그 차원문을 실물로 볼 생각하니 신이 나는걸?

"시발...."

나는 낮게 중얼거렸다. 하아... 생각만해도 또 골때리네.

"...저, 다인 선생님?"

"응?"

"저희 훈련, 하아 하아, 다 끝냈어요."

"아, 그래?"

앞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상념에서 빠져나온 나는, 턱을 괴고있던 팔을 치우고 고개를 들어보았다.

그러자 내 앞에 보이는, 땀을 뻘뻘 흘리는 붉은 머리카락의 여자의 모습.

3호, 일명 빨강이.

그리고 그녀의 뒤로 주저앉은 채 숨을 헉헉대고 있는 2호와 4호의 모습이 보였다. 1호도 벽에 기대 폼은 잡고 있지만, 어째 숨을 거칠게 휘몰아쉬는게 지쳐보이는 모습.

그렇게 나를 향해 '이제 쉴수 있죠?'라고 말하듯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는 빨강이한테, 나는 싱긋 웃으며 말해주었다.

"응. 100세트만 더하자."

"아, 안돼요...."

"돼."

그렇게 이후로 열심히 훈련했다고 한다.

그래, 나중의 미래를 생각하면 벌써부터 어지럽다.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얘들 키워서 대비를 해놔야지.

나는 그렇게, 일대일 피드백을 해주기 위해 따라갔다.

***

내가 누구인가.

우리 에고스트림 멤버들을 지금까지 코칭해오고, S급 빌런들의 능력을 훈련시킨 경험이 다수 있는 숙련된 코치.

나는 그렇게 손에 익은 노하우로, 지난 일주일동안 우리 PMC 멤버들을 훈련시켰다. 그것도 아주 빡세게 굴려서.

내가 이렇게 일대일로 하루종일 봐줄 수 있는 날이 얼마 없다. PMC 애들 집중과외 해준다고 집을 비우자 리더가 사라지면 어떡하냐고 에고스트림 멤버들의 분노가 슬슬 차오르고 있기 때문.

즉, 지금이 어렵게 마련된 황금같은 시간.

그런만큼 우리 PMC 애들은 실전압축 훈련을 견뎌내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우리 3호, 빨강이한테 다가갔다.

붉은 머리카락을 한 채, 열심히 대검을 휘두르고 있는 그녀.

사실 원래 원작에서 보면 주먹쥐고 싸웠던 그녀지만, 내 추천으로 서은이가 만든 특제 대검을 들고 있다.

우리 에고스트림 멤버처럼 능력 자체가 압도적으로 강하면 그냥 공격해도 강하지만, 어중간하다면 도구의 힘을 빌리는게 더 낫기 때문.

그렇게 불타는 대검을 휘두르며 더미 몬스터들을 처치하고 있는 허다희...  아니, 3호.

내가 슬며시 그녀 옆에 다가가자, 그녀는 내게 시선을 돌렸다.

"자, 집중해서 앞에보고. 동시에 5마리만 상대해보자."

"...넵! 알겠습니다!"

나름 파이팅 넘치게 대답하는 그녀.

PMC 일원 4명중 제일 힘이 넘치는 그녀는, 운동을 좋아한다고 한게 틀린말은 아닌지 제일 열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애가 씩씩하기도 했고.

다만 실력이 열정에 못따라가는 느낌이라, 내가 어느정도 방향성을 계속 잡아줘야 하긴 했지만.

"자. 그렇게 휘두르지 말고, 팔을 이렇게 잡고 하는거야. 봐."

"읏... 네."

보다 답답해진 내가 그녀의 뒤에 서 팔을 잡고 검을 휘두르는 모션을 잡아주자, 살짝 귀를 붉히더니 그렇게 답하는 그녀.

"이렇게 하면 됩니까?"

"오, 좋아! 이대로만 가자!"

"넵!"

"이야, 우리 3호가 성장세가 제일 빠른거 같은데? 조금만 더 있으면 막 날아다니겠어!"

"하하, 그렇습니까?"

내가 그렇게 말해주자 신이 난듯 더욱 열성적으로 검을 휘두르는 그녀.

채찍과 당근 전략으로, 피드백을 가득 한 후에는 이렇게 칭찬을 해주는게 중요하다.

그렇게 빨강이를 봐준 나는, 노랑이를 보러 갔다.

탁한, 약간 짙은 베이지색에 가까운 노란 머리를 한 채, 활을 쏘고 있는 그녀.

"잘하고있어?"

"...네, 전보다는 기록이 더 좋아진거 같네요."

휴하고 한숨을 내뱉으며, 활시위를 다시 집중시키는 그녀.

2호. 노랑이. 나름 까칠한 성격을 가진 그녀다.

...물론 일주일이나 붙어다니고, 이미 까칠한걸 넘어 남성 공포증까지 있던 서은이와 마저 친해진 나이기에 노랑이와도 친해지는건 어렵지 않았다.

"어. 쏠때는 대부분 머리를 맞춘다는 느낌으로... 그래, 그러면 돼."

"훗. 나쁘지 않죠? 전보다."

"어. 일주일 사이 훨씬 늘었는걸?"

뭔가 비슷한 말을 해주며, 또 우리 활쏘는 능력을 가진 노랑이도 살살 달래준 이후.

제일 약한 4호도 손봐주고, 바로 1호. 우리 칼잡이에게로 향했다.

"...그래. 그러면 된다."

"넵."

첫날부터 은근 내 말을 열심히 들으며 배운 우리 1호. 회색빛 머리칼을 가진 그.

막 바람처럼 날아가 칼을 휘두르는데, 나름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몇시간동안 서은이가 만든 대련용 로봇 수백개를 해치운 뒤, 드디어 훈련을 끝낸 후 애들 씻긴뒤 식당에 모였다.

"으아...  배고파."

"나도."

일주일이나 지나 어색함도 풀렸는지, 떠들며 걷는 아이들.

탁 트인 하얀 식당에는, 쉐프들이 나와 요리를 미리 해놓고 있었다.

하루종일 훈련만 하는데, 먹는거라도 맛있는거 먹어야지 힘이 나지.

"잘먹겠습니다~."

"오, 이거 맛있다."

"흠..."

그렇게 감탄하며 입에 밥을 집어넣는 애들을 보며, 나도 함께 떠들며 밥을 먹었다.

...이런식으로, 최근에는 이 4명과 모든걸 어울리며 지내고 있다. 이유는 당연히 훈련으로 빠르게 강해지게 하기 위해서도, 있지만... 서로 친해지게 하기 위해서도 있다.

친분. 이것은 조직을 유지하는데 있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함께 정붙이면, 그때부터는 떨어지기가 어려운게 대부분. 내가 에고스트림 멤버들과 한집에 살며 서로 가족처럼 친해져 강한 결집력을 가진 조직을 만들었듯, 이 4명도 그렇게 만들 필요가 있다.

그리고 물론 쟤네 4명만 친해졌다가는 다같이 마음맞춰 탈주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으니, 당연히 나랑도 친해지는게 굉장히 중요했다. 나를 믿고 따라야, 이 에고스쿼드... 유성 PMC가 유지되지.

그래서 나는 일부러 한명한명 담당하고, 고민 상담도 해주고, 인생의 조언과 격려도 해주며 그렇게 지냈다. 훈련도 좋지만 제일 1순위는 친해지는 것.  나를 믿고 따르게 한다!

"자, 밥 다먹었으면 훈련 마저 하러 가자!"

"에에에... 조금만 더 쉬어요."

"흠, 그럼 5분만 더 쉴까?"

"예에~."

그렇게 밥을 먹고 훈련을 마저 하고 난 저녁, 나는 애들을 불러모아 작은 강단에서 말을 해줬다. 앞으로 세계는 더욱 혼란스러워질거고, 그 사단을 막으려면 너희들의 힘이 필요하다고.

유성그룹의 회장이 이 PMC를 만들고 막대한 자본을 들여 너희를 키우는 이유. 그건 바로 히어로들로는 부족하다, 너희가 자경단이 되어 이 세계를 다함께 지키는거다. 그걸 바래서라고.

물론 적당히 약을 친 내용이었지만, 애들은 다들 진지하게 받아들여줬다. 그래, 조직을 지탱하는데에 있어서는 이렇게 목표를 확실히 세워주는게 중요하지.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대부분 갓 성인이 돼서인지 아직 미성숙한 부분이 있어 슬퍼하기도 하고, 사소한걸로 싸우고 그런일도 있었지만... 내 격려와 응원등으로 다들 많이 나아지고, 때론 성장했다.

사실 이 PMC에 지원한 것만으로도 예상할 수 있지만, 다들 부모님도 없고 자기편 하나 없이 지내던 애들. 특히 다들 겉으로는 괜찮은척 하지만, 심리적으로 불안한 애들이다.

그래서 나는 그점을 보듬어 주었다, 틈틈히. 예전에 이전 세계에서 교사가 되겠다고 공부한 내용을 떠올리며.

당연히 시간이 좀 걸렸다. 애들과 완전히 친해져야하고, 마음 속 깊이있는 얘기를 나한테 털어놓아야 하니까.

그렇게 훈련도 하며 능력도 성장시키고, 애들 4명끼리 서로 친해지게 하며, 난 애들의 정서불안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그랬구나. 많이 힘들었겠네."

어두운 밤.

나에게 숨을 토해내듯, 조직의 사냥개로 사람들을 제거해온 삶을 고백해온 1호.

학창시절 자신을 향해 괴롭히던 여자애를 능력으로 다치게 한 뒤, 괴물이라고 손가락질 당하던 탓에 매사에 까칠하고 방어적이 된 2호.

평소처럼 웃는 낯빛으로, 부모님이 죽는 모습을 눈앞에서 본 기억을 씁쓸히 전해준 3호.

그리고 돈이 없어 하루하루 근근히 살던 과거의 얘기를 전한 4호까지.

그렇게 힘겹게 자신의 과거를 내게 전해준 그들에게 나는, 손을 붙잡고 이제 괜찮다고, 우리들이 함께이지 않냐고 그렇게 얘기해주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무려 거의 2달을 우리 PMC애들을 키우는데 온전히 바쳤다. 다행히 그런 내 노력 덕분인지 애들은 짧은 새에 처음보다 괜찮아졌고, 서로 서로 많이 친해졌다. 주말 같은때에 능손실을 감안하고 다같이 영화관이나 놀이공원 이런 곳들을 다닌 보람이 있었다. 거기에 다들 나를 많이 믿고 의지하게 됐기도 하고.

그렇게 두달이 다 지날 무렵.

전보다 훨씬 강해지고 돈독해진 그들을 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정도면 내 할 일을 다했다. 이제 다들 알아서도 잘 할 수 있겠지. 한달에 몇번씩만 와도 되지 않을까?

그런 의미로, 금요일 저녁.

나는 애들을 다시 방으로 불려들었다.

"쌤~ 이번 주말에는 다같이 이 영화보러 가요! 마지막 춤이라는 영화가 개봉했다던데!"

"오, 재밌겠다. 그게 뭐야?"

"...흠, 그것보다는 훈련을 하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으, 이세검... 너는 너무 훈련만 좋아한다니까. 차리리 다인 오빠... 쌤, 이번에 불꽃놀이 한다는데 한강가는건 어때요?"

내가 부른 이유가 주말에 어디로 놀러갈 건지를 말하려고인줄 아는지, 신나서 떠드는 애들.

...음, 아니야 애들아. 이제 나 떠날거라는 얘기 하려고 온건데.

뭐, 어차피 나빼고 놀러가면 되니 큰상관 없나?

나는 그렇게 기대감에 찬 아이들의 앞에서, 준비해온 말을 해줬다.

"근 두달 사이, 너희들은 많이 성장했어. 내가 없어도 될 정도로."

"그래서 나는 이만 떠나려고해. 내일부터."

"이제 앞으로 여기서 지내지는 않을거고... 나보다 훨씬 뛰어나신 담당자들이 대신 들어올거니까 걱정 안해도 돼. 나도 한번씩은 너네 잘 있나 보러올거고."

"지금까지 내 말 잘 따라줘서 고마웠다 애들아."

나는 그렇게 웃으며 마지막 인사를 해줬다.

무려 두달간 함께한 PMC 아이들. 실제로 재밌기는 했다. 애들이 다 약해서 성장시키는 재미가 쏠쏠하더라고.

그래도 내 근본은 역시 빌런 에고스틱 아니겠는가. 슬슬 스타더스와 다음 테러도 해야하고, 집에 하도 안들어가 삐진 우리 에고스트림 멤버들도 달래야하고, 할게많다.

그렇게 나중을 생각하느라, 나는 눈치채지 못했다.

내가 작별을 뱉은 순간, 애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충격으로 물들었다는 걸.

그렇게 작별인사를 한 내게, 들려오는 무언가의 중얼거림.

"....다인 쌤, 저흴 버린다는건가요?"

"...응? 아니, 그게 아니라..."

어느순간 고개를 숙이고, 긴 노랑빛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감춘 2호.

그녀는 이내 눈에서 안광을 뿜더니, 내게 달려들었다.

"어딜가요! 못가! 선생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야!"

"맞아요... 다인쌤 집은 여기에요..."

그렇게 날 보며 눈을 번득이는 애들과, 내 다리를 쥐어잡은 2호를 보며.

나는 조용히, 속으로 생각했다.

...음, 뭔가 잘못됐을지도?

***

그시각, 에고스트림 본부 큰집.

그곳에서 식탁에 앉아 시계를 바라보고 있던 서은이는 살짝 불안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오빠, 오늘 온다더니. 왜 연락도 없지?"

"그러게..."

그렇게 에고스트림 멤버들이 걱정하던 그시각.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다인이 우는 애들을 달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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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다인이 떠난 이후, 그날 밤.

PMC의 4인방은 방안에 모여, 침울하게 가라앉아있었다.

"....다인쌤은, 진짜 간걸려나...."

무릎에 얼굴을 파묻은채, 그렇게 중얼거린 2호.

베이지색 머리카락으로 자기의 얼굴을 가린채, 그렇게 중얼거리는 2호를 향해.

아빠다리로 앉아있던 붉은 단발머리의 3호는, 이내 애써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주에 몇번씩은 우릴 봐줄려고 온다고 하셨잖아. 너무 상심해있지 말자!"

"싫어... 난 매일 보고싶다고요... 다인쌤..."

그러나 그런 3호의 말은, 바닥에 축 쳐져서 찡찡거리는 작은 몸집의 4호의 말에 의해 막혔다.

"...사실, 나도 보고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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