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기묘한 곳에서, 울려퍼지는 목소리.
아이야... 너만이... 할 수...
부탁한다.
부디... 이 세계를..
...미안하다.
그리고, 희미하게 들려온 마지막 말과 함께.
다시, 시야가 바뀌었다.
붉게 물든 하늘.
황폐해진 거리.
쓰러져있는 건물들.
'....빠....오빠!... 일어나...니!...빨리... 언니... 해봐...'
'...못해 ...못해요...아무것도...제...힘으론....'
그리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음들.
그리고.
'쿨럭...죄...합니다....'
'...랍....세..째줄....꼭.... 제가 없이도... 부디...'
중얼거림과, 다시 들려오는 흐느낌.
'지...마...죽는거....니지?...흐...흐윽....'
'.......'
'....미안...'
'안돼....포기...못해....못보..내....'
귀를 매우듯 사방에서 들려오는 찢어지는 소음.
무언가가 울부짖는 소리, 그와 동시에 밝아지는 하늘, 어두워지는 주위.
그리고.
끼이이이이이이이이이익.
"허억! 헉, 헉."
마지막에 그 찢어지는 소음과 함께, 나는 잠에서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느껴지는건, 땀으로 젖은 몸.
하 시발, 또 개꿈 꾼거 같은데.
그렇게 내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있을때, 어디서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윽."
갑자기 내 옆에서 느껴지는 무게감.
나는 머리를 부여잡은 채 겨우겨우 눈을 떴다.
"하아... 하아. 다인오빠, 드디어 일어나셨군요."
그리고 그 맞은편에는, 내 배 위에 손을 올리고 애써 미소짓는 하율이가 보였다.
"흐윽... 오빠..."
"아이고 서은아, 이제 오빠 괜찮아. 왜 또 울고그래."
"흑, 제, 제가 조금 더 잘 만들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텐데..."
갑자기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는 서은이.
거기에 내가 깨어났다는 소식에 저쪽편에 있던 모두들 다 모여서, 또 방안이 금새 북적북적해졌다.
그렇게 내가 깨어난걸 확인한 후에야 다들 안심했고.어느정도 진정되고 겨우겨우 서은이도 달랜 뒤.
일어나보니 좀 배고픈거 빼고는 몸이 멀쩡하다는걸 깨달은 나는, 수빈씨의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네? 제가 쓰러진지 벌써 5일이나 지났다고요?"
"맞아요. 다인씨, 다들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세요?"
약간 붉어진 눈으로, 수빈씨는 이례적으로 언성을 높인 채 지난 일들을 설명했다.
스타더스와 내가 치열하게 싸우는중, 나로부터 특별한 지시가 없어 계속 싸우는걸 걱정스럽게 지켜봤다고 했다. 그러다 불의의 순간에 내가 갑자기 스타더스의 필살기를 맞고 박살나니까 너무 놀라서 곧바로 달려온 것.
은월이가 빛의 속도로 날아가 바로 구해내서 겨우 산것이지, 아니였으면 정말 큰일날뻔했다고 수빈씨는 설명했다. 피투성이가 된 채로 기절해서 왔는데, 막 뼈 박살나고 내장 파열되고 그랬대나. 하율이가 안간힘을 써서 겨우 치유해냈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치료한 것까지는 좋은데, 문제는 내가 또 일어나지 못한 것. 그렇게 다들 뜬눈으로 나를 지켰다고 그녀는 말했다.
"...오빠, 앞으로는 이제 어디든 혼자 못가요. 갈거면 앞으로 우리랑 가요. 알았죠?"
나를 붙잡고 부은 눈으로 그렇게 얘기하는 서은이.
그리고 드물게도, 옆에 멍하니 앉아있던 서자영도 거들었다.
"그래... 서은이 말이 맞아. 넌 너무 몸을 막 굴려."
내 팔을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며 그렇게 말하는 그녀. 옆에 앉아있던 최세희도 동의한다는 듯,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나는 앞으로는 몸을 함부로 안 굴리겠다는 약속을 병상에서 할 수밖에 없었다. 뭔가 벌써 몇번이나 한 약속같기도 한데...
하여튼 다시 얼마간 몸 좀 추스르고, 죽도 먹고. 다들 돌려보내고 좀 쉰 이후, 내 깜짝 서프라이즈 테러의 반응이 어땠는지 수빈씨에게 물었다. 마지막에 좀 처참히 깨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스타더스랑 용호상박으로 싸웠는데, 긍정적인 반응이 있지 않을까..?
그렇게 은근슬쩍 수빈씨한테 물었고.
그런 내 질문에 대한 그녀의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네? 에고스틱 사망설이 돈다고요?"
나는 황당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물었다.
아니, 왜 그런 개똥같은 낭설이...
내 그런 반응에, 옆에 앉아있던 서은이가 눈을 샐쭉하게 뜨더니 휴대폰을 두들기며 말했다.
"당연하죠 오빠. 오빠 다친게 방송국 카메라에 그대로 찍혔는데,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어요? 봐봐요."
서은이는 그렇게 말하며 내 앞에 자신의 휴대폰 화면을 보여줬다. 그곳에 실린건 한 기사.
[A급 빌런 에고스틱 중상... 에고스트림은 '노코멘트'. 네티즌들 사이에서 사망 의혹 잇따라...]
그 자극적인 제목 밑에 있는건, 한장의 사진.
멀리서 찍은걸 확대했는지 화질이 좀 구렸지만, 그래도 대충 내 모습과 흥건한 피는 아주 잘 보였다.
"지금 난리났어요 오빠. 사람들 막 다 오빠 죽은거 아니냐고."
"아니... 내가 그렇게 쉽게 죽겠어? 다들 왜 그런데."
"이번에는 진짜 죽을뻔 했다고요! 하아... 하여튼, 그래서 막 뉴스에도 나오고 난리에요."
"...그래?"
그렇게 서은이는 나한테 다른 것들도 몇개 더 보여주었다. 실시간 트렌드에 에고스틱 사망이 올라와 있다던지, 국내 유튜브 실시간 인기영상 1위를 아직도스타더스와 로봇탄 내 영상이 차지하고 있다던지 뭐 그런것들. 그냥 어이가 없을 지경.
....큰일인데.
나는 그걸보고 당황했다. 아니, 빌런이 뭐 테러하다 보면 다칠수도 있지. 그게 왜 죽었을 수도 있다는 식으로 논리가 비약하는거야. 빌런은 아무리 심하게 다쳐도 도망친 뒤에 다시 등장하면 말끔히 치료되어있는게 상식이잖아? 적어도 내가 본 히어로물에서는 다 그랬다.
하여튼 나도 내 폰을 찾은후 급히 여론을 검색해봤다. 실제로 에고스틱이 죽었다는 썰이 꽤 돌아다니는 모습. 심지어 에고스틱 팬카페는 막 활활 불타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 사안을, 꽤나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빌런이 부캐파서 놀다가 쳐맞고 죽었다? 이건 너무 이미지 실추잖아...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내가 죽었다고 진지하게 믿기 시작하면 또 새로운 빌런들이 등장할 수도 있다. 제 2의 에고스틱이 되겠다고. 원래 이 빌런판도 다 인지도 싸움이다. 인기끌기 어려운데, 내가 죽었다는 소문이 도는 이때가 어그로끌기 최적의 기회. 내 공백기에 무슨 일이 알 수가 없다. 특히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빌런이 나라는걸 생각하면 더더욱.
...그리고 당연히 아닐거라 생각하지만, 스타더스가 저걸 믿으면 좀 곤란해지기도 하고. 충분히 강해지기 전까지는 나를 주적으로, 그녀가 강해져야할 목표로 삼아야하는데 그런 내가 뜬금없이 죽으면 뭐가 되겠는가.
그렇게 대한민국 1위 빌런의 사망 의혹에 단체로 이상증세를 보이는 대한민국 국민들을 보며, 나는 결단을 내렸다.
"안되겠다. 바로 방송 하자."
"...방송이요? 지금?"
"그래. 그냥 나 살아있다는 것만 알리는 방송. 하도 난리나서 안되겠어."
나는 결단을 내렸다.
뜬금없이 터진 이 논란을 빠르게 끝내기로.
아니, 이번일은 그냥 뭐 별것도 아니고. 다음에 일어날 메인이벤트 맛보기 하나였는데 왜 이 난리가 난거야.
...물론 몸 상태가 이런데 무슨 방송이냐고 도끼눈을 뜨는 수빈씨한테, 의자에 앉아 말만 하는거라고 설득을 한 다음.
나는 카메라를 켜, 방송을 시작했다.
자, 장난도 여기까지다.
나 멀쩡하다고 이것들아.
***
에고스틱 사망의혹 첫 보도 이후.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일개 빌런의 사망 의혹 하나에 활활 불타고 있었다.
커뮤니티쪽은 에고스틱 팬카페 망고단과 스타더스 팬카페에 대치도 일어나며, 그야말로 난장판.
거기에 전문가들 또한 만약 에고스틱의 사망이 사실이라면 그에 의해 억제된 다른 빌런들의 범람과 해외 빌런들이 대한민국으로 침입해 올 수도 있다고 경고해, 일반인들도 이 일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거기에 리더를 잃은 에고스트림이 폭주하면 어떡하냐는 우려까지.
그리고 그렇게 무언가 폭발할 것만 같았던 그때.
그냥 갑자기, 뜬금없이 에고스틱의 방송이 켜졌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에고스틱입니다!]
정말 뜬금없이 켜진 방송.
그곳의 화면에는 멀쩡해보이는 에고스틱이 의자에 나른히 앉아, 말을 하는게 나왔다.
뭐 장난좀 쳐봤는데 실패했고, 앞으로는 이런 일 없이 꼭 이기겠다는 내용.
그리고 그 말만 하더니, 테러는 계속됩니다!라는 마지막 말을 끝으로 그냥 방송이 꺼졌다.
갑자기 켜져 갑자기 꺼진, 몇분 되지도 않은 방송.
그러나, 그 파급력은 어마무시했다.
[[속보]에고스틱 생존 보고... 건강에 이상 없어보여]
[에고스틱의 죽음, 낭설로 밝혀져...]
[에고스틱, '앞으로 테러 더 열심히 할 것.' 누리꾼들, 안심.]
그야말로 방송이 끝난지 몇분만에, 수없이 쏟아지기 시작한 기사들.
그렇게 단 몇시간만에, 에고스틱 사망 의혹 사건은 해프닝으로 깔끔하게 끝났다.
*
[자기가 에고스틱 죽었을거라고 한번도 생각도 한적 없으면 개추ㅋㅋㅋㅋㅋ]
그래 ㅅㅂ 우리 망고스틱이 그렇게 허무하게 쓰러질리가 없지ㅋㅋㅋㅋㅋㅋㅋ
의심 한번도 안했으면 개추ㅋㅋㅋㅋㅋㅋ
[좋아요]3884
=[댓글]=
[개추ㅋㅋㅋㅋㅋㅋㅋ]
[좋아요 올라가는 속도봐라 ㅅㅂㅋㅋㅋ 여기가 어제까지 망고 진짜 죽은거면 어캄? 올라오던데 맞냐? 가슴이 옹졸해진다...]
ㄴ[아ㅋㅋ 그건 걍 해본 말이었다고ㅋㅋㅋ]
[솔직히 이번 방송보고ㅈㄴ안심했으면 개추ㅋㅋㅋㅋㅋ]
ㄴ[ㄹㅇㅋㅋ]
ㄴ[망고스틱 얼굴보자마자 걍 미소지어짐ㅋㅋ]
ㄴ[진짜 망고 없으면 인생이 재미없어 절대안됨 ㄹㅇ... 삶의 의미가 반이 없어진다]
[빌런이 죽었다고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살았다고 좋아하는건 대체 뭐냐고ㅋㅋㅋㅋ]
ㄴ[? 이번 사건은 A급 히어로가 S급 히어로한테 하극상 일으킨 사건인데 무슨 소리?????]
ㄴ[이녀석 별먼지카페 분탕종자 아님??]
ㄴ[갈!!!!!!! 자고로 신앙이란!!!]
*
그렇게 대한민국이 언제 난리 났냐는듯 다시 빠르게 안정을 되찾던 그때.
"....아."
어두운 방 안, 침대에 홀로 앉아있던 신하루는, 뉴스 기사를 보고 자기도 모르게 휴대폰을 떨어트렸다.
...다행.
"다행, 다행이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약간 젖은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히어로가 빌런이 살아있다고 안심하는건, 평소에 그녀에게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지만.
지금의 그녀는. 그런걸 생각할 정신이 없었다.
...그가 쓰러지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녀는. 오직 그 생각만을 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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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더스 모르게 다른 빌런인척 덤볐다가 박살이 난 이후.
나는 집안의 한 방의 침대에 기대고 앉아, 계속 요양중이었다.
"음... 다네."
나름 밖의 숲이 촥 펼쳐져 보이는 뻥 뚫린 창가 앞.
그곳의 침대에서 블랙펄 밀크티를 마시던 나는, 가볍게 컵을 한번 흔들어 보았다.
달그락거리며 부딪히는 얼음들.
손끝에 닿는 차가운 얼음을 느끼며, 나는 빨대로 밀크티를 한잔 더 마셔보았다.
입안에 사악 퍼지는 달달한 맛.
"어때, 맛있지 않냐?"
"어. 오랜만에 단거 먹으니까 좋네."
빨대를 내 앞에서 물고 내게 묻는 최세희한테, 나는 그렇게 답해주었다.
그런 내 대답에 피식 웃는 최세희.
의자에 거꾸로 앉아 등받이에 팔을 올려 턱을 기댄채 내쪽을 보고있던 최세희는, 이내 시선을 살짝 돌리더니 눈을 살짝 찌푸린 채 입을 열었다.
"...아니 근데 서자영, 너는 왜 여기 누워있냐?"
"으응... 여기가 편하고 좋아."
침대 옆에서 내 이불을 안고 뒹굴거리고 있는 보라색의 무언가.
여기가 거실보다 더 편하다고 눌러앉아버린 내 말동무 서자영이다.
현재 내가 누워있는 침대는, 서은이와 수빈씨, 은월이까지 합세해 방 하나를 개조해서 만들어버린 치료실.
내가 자꾸 다쳐서 오니까 더이상 참을 수 없다며, 아예 방 하나를 공사해 만들어버렸다. 지하실에서 피로유지 장치 꺼내다 여기 이식하고, 볕 잘들라고 방에 창문 뚫어버리고, 등등.
그 결과 그게 마음에 든 서자영이 나보다 더 이곳을 잘 써먹고 있었다. 침대가 커서 2명이서 눕기도 충분하니 뭐. 나무늘보 키우는 기분으로 보고 있었다.
그렇게 뒹굴거리는 서자영을 슬쩍 보다가, 나는 최세희한테 슬쩍 찔러보았다.
"암만 생각해도 이제 난 괜찮은거 같은데..."
"안돼. 이번주까지는 쉬어."
그러자 단호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는 최세희.
아니, 나 일해야 하는데...
그래도 워낙 저렇게 강경하게 나와, 어쩔 수 없이 쉬기로 했다. ...사실 내가 쓰러진동안 최세희가 울고 난리쳤다는 얘기를 서자영한테 들은 뒤로는, 양심이 쿡쿡 찔리기도 했고.
하여튼 요즈음은 그렇게 평온하게 쉬면서 보내고 있었다.
계속 걱정했다며 내게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조만간 찾아갈거라며 역정을 내던 이설아를 달래주고, 날 대신해 충격을 흡수하느라 반쯤 망가져 서은이에 의해 실험관 액체속에서 수복되고 있는 베히모스도 관찰하며, 그렇게 잘 쉬었다.
내 자의가 섞인건 아니긴 한데... 어쨌든.
"으음... 파인애플이 먹고싶다아..."
"파인애플?"
"파인애플 피자..."
"..."
옆에서 자꾸 이불에 입을 대고 이상한 말을 중얼거리는 서자영의 말을 라디오 삼아, 나는 생각에 잠겼다.
다름이 아니라 이제 슬슬 건강도 회복하고 나니, 보이는 것들이 있어서.
"...."
그래. 스타더스.
내가 이지경이 되면서까지 파악하려고 애쓴 스타더스의 능력에 관해서 생각해 볼 때다.
나는 밀크티를 한입 더 마시며 저번에 있었던 전투를 평가했다.
...일단 스타더스는 확실히 강해졌다. 심지어 내 예상보다 더.
원래 스타더스가 위기상황일수록 강해지는건 익히 알던 사실이지만, 그걸 감안하고도 꽤나 강했다. 애초에 나를 결국 쓰러트리기까지 했으니.
그래서 결론은?
바로 다음에 일어날 메인이벤트, 팬들 사이에서 일명 악마성 사건이라고 불리던 일이 그냥 일어나도록 내버려 둘거다. 원작의 스타더스는 못버텼어서 그냥 내가 미리 사전에 그냥 처리해서 테러 자체가 안일어나게 하려 했는데, 스타더스랑 직접 부딪혀 보니까 할 수 있겠더라고.
아마 이번 일을 겪고나면, 스타더스가 꽤나 강해질거라고 살짝 기대한다. 특히 다수전에서 강해질거라고.
...물론 원작에서 또 피폐를 찍던 스타더스의 모습이 뇌리에 박혀 살짝 불안하기는 한데, 그래도 지금의 스타더스는 다르니까 괜찮겠지.
하여튼, 그거는 뭐. 이제 가만히 기다리면 됐고.
나는 그보다, 더 중요한걸 떠올려보기로 했다.
바로 내가 스타더스한테 맞고 쓰러진 그날의, 스타더스의 반응을.
"....."
"오, 갑자기 진지한 표정."
옆에서 서자영이 웅얼거리는걸 들으며, 나는 그날의 스타더스를 떠올려봤다.
'....아니야, 이럴, 이럴수가...'
그래.
내가 쓰러진 날 보였던 스타더스의 반응이, 뭔가 조금 이상했다.
난 나 보자마자 스타더스가 기뻐하면서 더 공격하던가, 아니면 바로 달려들어 잡아가던가 둘 중 하나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날 보자 굉장히 당황한 것 같은 그녀.
왜 당황한거지? 기뻐한 것도 아니고?
뭐, 빌런인 날 걱정했을리는 없고. 그냥 막 눈앞에서 숨넘어가게 생겼으니까 당황한건가? 정보를 더 캐네야하는데 먼저 죽으려해서?
이게 제일 그럴듯 한거같다.
...아니, 뭐 물론 이런 이유가 얘여도 당황할 수도 있기는 하다고 생각한다. 갑자기 테러만 몇십번 일으키고 한번도 안잡힌 빌런이 뿅하고 눈앞에 피철철 흘리며 튀어나왔으니까 당황할 수 있지.
뭐, 별로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닐거다.
그렇게 나는 가볍게 생각하고 넘겼다.
그나저나, 지금쯤 스타더스는 뭐하고 있으려나. 눈앞에서 날 놓친걸 땅을차며 아쉽게 생각하고 있으려나?
아니지. 오히려 날 한방 먹였다고 꿀잠자고 있을수도?
나는 그런 생각을 할 뿐이었다.
***
에고스틱이 자신의 손에 의해 사방에 피를 흘린 채 쓰러져 힘 없이 웃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본 뒤.
신하루는, 한동안 악몽에 시달렸다.
...물론 사실 말이 악몽이지, 그렇게 막 잔인하고 끔찍한 꿈은 아니었다.
꿈의 내용은 대부분, 자신과 에고스틱의 예전 일들이었을 뿐이니까.
[스타더스씨.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일어나세요.]
포기한 자신을 진지하게 응원해주던 에고스틱.
[저한테 하나, 빚지신 겁니다.]
자신을 대신해 공격을 맞은 채 피흘리며 웃던 에고스틱.
[고생하셨습니다. 나머지는, 제가 맡도록 하죠.]
[...제 아치에너미를 위해서라면, 이정도는 해줘야되지 않겠습니까?]
이길 수 없는 적 앞에서 자신이 절망하고 있을 때, 뒤에서 다가와 쓰다듬으며 대신 나서던 에고스틱.
그렇게 꿈은, 그냥 지금까지 에고스틱과 함께한 장면들을 다시한번 보여줬을 뿐이다.
다만.
[....]
그 끝이 늘, 자신에 의해 배가 뚫린채 피를 가득 흘리며 아무말없이 싸늘히 쓰러져있는 에고스틱을 보여주며 끝났을 뿐이지.
그 꿈을 꾼 날이면, 신하루는 늘 전신이 땀으로 젖어 헉헉대며 깨고는 했다. 심장이 강하게 뛰는 채로.
그래도 다행히, 그 꿈은 에고스틱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전한 뒤로는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녀의 컨디션도 완벽히 회복되었고.
"으으음..."
오랜만에 찾은 자신의 사무실.
그곳에서 신하루는, 따스한 햇볕을 맞아가며 기지개를 폈다.
...에고스틱도 지금 어딘가 있겠지.
걔도 나처럼 이렇게 같은 해 아래에서 햇볕을 받고 쉬고 있으려나.
무의식적으로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하던 신하루는, 스스로가 한 생각에 또 움찔 놀랐다.
...내가 왜 또 걔 생각을 하고 있지.
미쳤나봐.
에고스틱의 생존 방송을 본 이후,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 신하루는 요즘따라 기분이 오락가락 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지난 5일간의 자신이 보여준 추태 때문에.
"...으. 그때 내가 왜 그랬지."
자신도 모르게 볼을 붉힌 채, 햇볕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나는 금발의 머리카락을 한손으로 꼬며, 신하루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니, 에고스틱이 그런 일로 막 죽...고. 그럴리가 없잖아.
예전에 그 한은그룹 지하실에서 거의 심장까지 꿰뚫리고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살아난 애인데. 당연히 자기 기지에 모종의 치료시설이 있겠지.
에고스틱이 살아있다는 얘기를 듣자, 드디어 다시 이성적으로 돌아온 그녀.
그런 그녀는, 바로 며칠전의 자신을 기억할때마다 막 이불을 차게 되었다.
자신의 손에 의해 피를 흘리며 쓰러진 에고스틱을 본 이후, 그녀는 한동안 자기가 생각해도 좀 이상했었다.
에고스틱의 예전 영상들을 찾아 멍하니 보지를 않나.
'...아니겠지. 괜찮을거야.' 막 이런 말을 혼자 집에서 중얼거리고.
어느날은 막 이유없이 자신도 모르게 눈물 한방울이 떨어지고.
협회도 그냥 출근 안해버리고.
"으으..."
부끄러움에 머리를 쥐어잡던 그녀는,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 뭐 그나마 다행이다.
협회장이나 직원들은 자신이 에고스틱이랑 싸우느라 너무 피곤해지고 따로 요양해서 출근 안한줄 알고 있으니까.
...에고스틱 생각하느라 안나갔다는건, 무덤까지 가져갈 고민이다.
"....."
물론 지금도... 자신에 의해 피를 흘린채 쓰러져있던 에고스틱 생각만 하면 순간 숨이 멎고 머리가 어지럽긴 했다.
그냥 테러를 하는 빌런을 쓰러트린거니, 문제없다... 라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에고스틱이, 그냥 빌런은 아니지...'
막 이런 생각이 들며, 침울해지는 그녀.
빌런한테 미안하고, 뭐 그런건 아니지만. 아니긴 하지만...
그녀는, 그런 생각을 하며 오늘도 여전히 여전히 자신도 모르게 땅을 팠을 뿐이었다.
그렇게 비틀비틀 집에 돌아간 그날 저녁.
그녀는 또, 꿈을 꿨다.
[당신만이, 저를 완성시킵니다.]
자신한테 그렇게 말하던 에고스틱의 모습.
[제 아치에너미를 위해서라면...]
웃으며 그녀가 그의 아치에너미라 말하던 에고스틱의 모습.
[제 히어로, 스타더스보다 약하시네요.]
방송에서 그렇게 당당하게 스타더스를 그의 히어로라고 말하던 에고스틱의 모습.
그리고, 장면이 바뀌고.
어느새 에고스틱은, 하늘색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의 품에 안겨, 자신을 향해 비웃고 있었다.
[하. 그 빌런이 저인지도 모르고 막 죽이려고 했던게 무슨 제 아치에너미인가요.]
[스타더스, 당신은 이제 제 주적이 아닙니다. 제 히어로는... 이제 이, 아이시클이죠.]
[흐응. 미안해 하루야. 그렇게 됐어. 앞으로 에고스틱 관련된 테러는 다 내가 상대할게. 알겠지?]
하하하하하. 호호호호호.
그렇게 에고스틱과 그를 껴안은 이설아의 웃음소리가 사방에 울려퍼지면서.
신하루는, 잠에서 깼다.
"히익. 헉, 헉."
...아니. 이게 무슨 개꿈이야.
신하루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쥐어잡으며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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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하하! 그래. 나야 당연히 자네가 그렇게 쉽게 쓰러질리가 없으니 연출이라 생각했는데, 아리엘이 하도 난리쳐서 혹시나 한 바람에 내 한국으로 쳐들어가 자네의 복수를 해야하나 그런 생각까지 했지뭔가!]
"아이고, 아사장님. 제가 그렇게 쉽게 죽을 사람입니까? 하하하하! 말씀만으로도 고맙습니다만, 굳이 그러시지 않아도 됩니다. 언론은 늘 과장하고 부풀리니까요."
[그런거같네. 근데 참, 자네소식 어디서 보고 내 딸아이가 어찌나 놀랬는지 막 펑펑 울고 그랬지 뭔가. 자네를 보고싶어하는 눈치던데...]
"하하. 아리엘이요? 이거 제가 나중에 한번 찾아가봐야겠네요."
[그래, 언제든 놀러오게. 라티스시티는 늘 자네에게 열려있으니 말일세. 아 그리고, 듣기로는 곧 그 카테달인가 뭔가 하는 회의가 2번째로 열린다더군. 그때 보세 그려.]
-크하하하하!
그렇게 아틀라스의 호탕한 웃음을 끝으로, 전화는 끝이 났다.
"휴우..."
북대서양의 지배자 아틀라스와도 전화를 마친 나는,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한국에는 왜 쳐들어와. 복수는 무슨 복수.
앞으로는 수빈씨를 핫라인으로 지정해 나 유사시에 대신 연락받으라 해야겠다. 쓰읍.
근데 아리엘이라, 그녀가 나를 걱정해줬다는 말을 들은 이후, 나는 계속 무슨 생각이 들고 있었다.
흠. ...아리엘 에고스트림 영입, 진짜 잘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물론 아틀라스의 허락이 있어야 겠지만...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때쯤, 내 입에 뭐가 닿았다. 뭔가 하고 보니, 노란색 귤 한조각.
"으음?"
내가 아무 생각없이 입을 열자, 그 사이에 입 안으로 쏙 들어왔다. 씹어보니 새콤하니 맛있었다.
뭔가 하고 내려다보니, 침대에 엎드린 채 만화책을 읽고있는 서자영이 보였다. 한손으로는 귤 까먹으면서.
아마 자기 먹는사이 내 입에도 하나 넣어준 모양.
작은 손으로 꼼지락거리며 귤을 까는데, 그렇게 자기 먹으면서 하나씩 내 입에 넣어주었다. 후드소매가 너무 크니 손이 더 작아보이는거 같기도.
그렇게 나는 입에 들어온 귤을 우물거리며 생각했다.
...아니 근데, 얘 언제들어온거야?
"야. 너 언제부터 여기있었냐?"
"...너 전화하고 있을때 들어왔지. 눈치도 못채던데?"
서자영은 입에 귤을 우물거리며 그렇게 말했다.
...이상한데서 신출귀몰하네.
"알았어. 이제 나가자."
"으응? 나 이제 막 왔는데에..."
"아침 먹어야지."
"내 아침은 귤... 으아아..."
나는 그렇게 서자영을 염동력으로 들고 밖으로 나갔다. 참고로 처음에는 뒤척이더니 이제는 허공에서 엎드린채 만화책을 읽는 그녀.
...저러다 눈 나빠지지.
하여튼, 그렇게 나는 거실로 나왔다.
이제는 몸이 많이 괜찮아져서, 능력을 마음껏 써도 문제없다. 아마. 그리고 이렇게 가끔은 조금씩 써줘야 감도 안잃고.
...물론 당분간은 절대 밖에 나가서 막 테러하거나 몸쓰는 일 하지 말라고 수빈씨를 필두로 모두가 한 말이 있어 몸을 사리고 있기는 한데... 이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다.
"으음..."
거실로 나와보니 마침 소파에 기대 졸고있는 서은이가 보였다. 그리고 그런 서은이 어깨에 기대 같이 졸고있는 은월이까지.
"으음.. 오빠. 이상한거 타면 안되요... 지지."
...대체 무슨 꿈을 꾸는거야?
내가 서자영을 바닥에 내려놓은 후 옆에 털썩 앉자, 그제서야 부스스하게 눈을 뜨는 서은이.
"오빠... 하암... 잘잤어요?"
"으응.."
눈을 비비면서 일어나는 서은이와, 그에 맞추어 같이 깨는 은월이었다.
으으응...
그렇게 기지개를 피기 시작하는 서은이 옆에서, 나는 티비를 틀었다.
여전히 별 특별할거 없는 소식만 전하는 뉴스.
...그래. 아마 오늘까지가 이렇게 별일없이 대한민국이 평화로운 날이겠구만.
내일부터는, 난리가 날테니.
내일은 드디어, 드디어 메인이벤트가 시작되는 날.
아마 하룻밤 더 자고나면 시작할거다.
그 기묘하고도 거대한 테러가.
"으음..?"
비장하게 그런 생각을 하던 나는, 여전히 정신 못차리고 고개를 앞 뒤로 흔들며 졸고있는 서은이를 보며, 잠시 생각을 바꿨다.
...일단 다들 아침이나 먹고, 생각하자.
수빈씨는 주방에 있으려나.
나는 자리에 일어나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대충, 평화로운 하루를 보냈고.
다음날, 잠을 자고 일어나니.
드디어 사건이 터져있었다.
***
[여러분! 속보입니다! 현재 한국 종합무역센터가 의문의 빌런에 의해 새벽사이 점령되었다고 합니다! 협회는 현재 이곳 주변에 민간인들의 출입을 금하고 있습니다. 아... 보시다시피, 현재 건물의 상태가 좋지 못한 모습입니다!]
가로로 길게 세워진, 길다란 건물.
평상시에는 사람들로 가득한 그곳 주변의 거리가, 언제 그랬냐는 듯 텅 비어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놓여진 건물.
평소에는 그냥 가로로 길게 놓여진, 평범한 건물이었지만.
지금은, 굉장히 상황이 달랐다.
그으으으으으-
건물 주변에서 들려오는, 기묘한 귀곡성.
유리가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나던 건물은, 어느새 시컴한 어둠에 물들어 본래의 모습을 잃었다.
건물의 왼쪽부터 오른쪽까지 전부, 시커멓고 끈적한 어둠에 물든 모습.
그리고 마치 거대한 성인양, 그 끈적한 어둠들은 건물 위에 첨탑과 지붕을 꾸며 건물이 마치 어두운 성처럼 보이게 둔갑하고 있었다. 실상은 1층짜리에 지하가 넓은 건물이지만, 적어도 얼핏보면 겉보기에는 중세시대 성처럼 보이는 모습.
그래.
서울의 중심에 있던 복합쇼핑몰은, 새벽 사이에 순식간에 검게 물든 유사 악마의 성으로 변해버렸다.
"와... 오빠. 이게 뭐에요?"
티비로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내게 묻는 서은이.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나는 짧게 대답해주었다.
"저게 악마성이야."
"...악마성?"
그래. 악마성.
[시커먼 어둠이 이곳을 잠식한 가운데, 협회는 사태를 파악하는데 모든 힘을 쏟고있다고 밝혔습니다. 아마 S급 빌런, 그 이상이 일으킨 테러로 추정되며...]
나는 그걸보며 혀를 찼다.
쓰읍. 결국 내가 미리 안 막았더니 원작과 똑같이 그대로 시작되는구만.
이번 분기의 메인 테러, 일명 악마성 사건이.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현실로 닥친 이 사태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낮인데도 불구하고 그곳의 주위만 마치 저녁인것처럼 우중충한 가운데, 검은색의 아우라만 주위에 음을하게 퍼져있는 모습.
아마 저 안쪽에, 놈이 앉아있겠지. 이 사건을 일으킨 악마화 능력자, 그놈이.
놈을 생각한 나는, 다시한번 원작의 내용을 떠올려보았다.
...악마성 테러.
서울의 복합쇼핑몰 한곳을 완전히 점령한 빌런, 일명 데몬즈라는 놈이 일으킨 테러다.
정확히는 저곳을 거점으로 삼고 안에서 자신의 능력으로 유사 악마의 생김새를 닮은 검은색 크리쳐들을 생성한 뒤, 그것들로 서울 정복을 노리는 녀석이 일으킨 일. 이제부터 저곳에 있는 검은색의 물질들로부터 유사 악마들이 깨어나기 시작할거다.
그리고 어느정도 숙성된 뒤, 다들 일제히 튀어나와 서울을 공격할테고. 물론 아직은 그러기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있긴 하겠지만...
이번 테러의 특징은 일으킨 놈이 이전까지의 다른 빌런들과는 달리, 머리가 좀 돌아가는 놈이라는거. 물론 뒤에서 조용히 안하고 저렇게 동네방네 광고하면서 테러를 일으키는거 부터가 좀 마이너스기는 했지만, 쟤는 실제로 자신의 능력에 자신이 있으니까 그러는거다. 그리고 그 말대로 원작에서도 스타더스던 누구던 다 막아내는 모습을 보여줬고.
근데 뭐, 이런 얘기는 다 필요없고.
중요한건 이거다.
'...스타더스가 또 피폐물을 찍었었지."
놈을 잡으려면, 결국 악마성 안쪽 지하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제일 안쪽에 놈이 떡하니 위치하고 있어서.
근데 이 테러를 일으킨 놈이, 자기 잡으러 오는 길을 편하게 깔아놨겠어? 당연히 지가 만든 모든 악마 크리쳐들을 도처에 깔아놨다. 거기에 미로처럼 길도 좀 꼬고. 함정도 설치하고.
즉, 마치 게임으로 따지자면 저곳은 일종의 거대한 던전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가는 길이 지랄맞게 어려운.
'.....'
그리고 이건, 월광교 전에 처음으로 나오는 군단형 빌런이기도 하다. 상대하려면 다수를 상대해야하는. 저 안쪽에 끈적한 어둠으로 만들어진 괴물들이 얼마나 돌아다니는데. 거기에 양도 많으면서 괴물들 하나하나가 강하기까지 하다. 여러모로 골때리는 설정.
그래서 나는 처음에, 걍 이런 일이 일어나기도 전에 이거 일으킨 빌런을 미리 처리하려고 했었다. 원작에서 스타더스가 이번 일로 하도 구르기도 하니까. 원작 스타더스는 워낙 약하기도 했고.
다만, 저번에 내가 로봇슈트 입고 나서서 스타더스와 직접 싸운 뒤에는, 생각이 바뀌었었다.
...이거, 지금의 스타더스 보면 가능할거 같기도 한데? 능력이 훨씬 강해져서?
당연하게도 스타더스가 이런 테러를 경험해보는건 그녀의 능력 향상 면에서 좋다. 히어로만화 주인공인만큼 그녀는 역경이 겪을수록 강해지니까. 그리고 내가 봤을때... 지금의 스타더스 정도면 충분히 가능할거 같기도 하고.
그래서 그냥 내버려뒀고.
결국 예정대로 테러가 일어났다.
그렇게 화면에는 음울한 악마성의 모습이 나오는동안.
그 으시시한 모습을 보던 서은이는, 나한테 걱정된다는듯 물었다.
"오빠, 우리가 뭐 할거 있어요? 저기 안에 엄청 위험해보이는데..."
"응. 아무것도 없어."
"네?"
"우리는 그냥 스타더스만 믿으면 돼."
의아한 시선을 보내는 서은이한테, 나는 그렇게 답해줬다.
나는 우리 스타더스 믿는다. 이제 충분히 강해졌으니, 저정도는 충분히 격파할 수 있을거야.
...있겠지?
"...."
아니 근데, 왜 이렇게 계속 걱정이 되지.
***
[속보입니다! 히어로 스타더스가 현재 검게 물든 종합무역센터, 통칭 '악마성' 내부로 진입했다고 합니다! 현재 동행없이 단독으로 들어갔다고 협회는 보도했으며...]
"쓰읍..."
"오빠. 왜 이렇게 다리를 떨어요?"
그로부터 몇시간 뒤.
나는 앵커의 말을 들으며, 계속 초조하게 소파에서 발을 까딱까딱 거렸다.
...아니, 뭔가 가면 갈수록 계속 더 불안해져서 그러지.
우리 여린 스타더스가 저 안에서 잘 해낼 수 있을까? 원작에서는 그렇게 개고생을 했었는데. 내가 잘못된 판단을 내린거 아닐까?
불안해, 너무 불안해.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이내 결심을 새우고, 자리에서 주먹을 쥔 채 벌떡 일어났다.
"그래. 안되겠어. 나도 저 안에 들어가야겠다."
"...뭐라고요? 오빠 미쳤어요?"
나 말리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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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히어로란, 시민들을 지키고 사회의 정의를 수호하는 존재.
그들에게 다른 이들과 다른 강력한 능력은, 전부 사람들을 지키고 악을 처단하기 위해 주어진거다. 라고 신하루는 생각했다.
즉 그런만큼, 히어로는 스스로한테 공정해야하고, 그 누구보다 악에대해 엄격해야한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빌런에게 매력을 느껴도, 히어로만은 그 빌런을 공정한 잣대로 처단할 의무가 있다.
히어로에게 있어서 빌런은, 처리해야 하는 대상일 뿐이니까.
그러니.
지금 그녀의 생각은, 잘못된거다.
"....."
에고스틱.
신하루는 오늘도 평소와 다름없이, 그에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에고스틱은 나쁜놈인가?
그걸 묻는다면, 그녀는 그렇다고 답할 수 있었다.
그가 사람 수백명의 목숨을 저울에 놓고 벌였던 수많은 테러부터.
재판도 받지 않은 빌런들을 자기 멋대로 살인, 다른 빌런들을 모아 팀을 만들기까지.
나쁜놈이 맞다, 맞는데...
"하아..."
...왜 그가, 나쁜놈처럼 느껴지지 않는걸까.
히어로인 자신이, 이렇게 특정 빌런에게만 이런 생각을 가져도 되는건가.
물론 당연히 그녀가 그렇게 혼란스러운건 다 이유가 있었다. 에고스틱이 나쁜놈이지만, 나쁜짓만 한건 아니기때문. 사실 따지고보면 에고스틱이 죽인 민간인은 아직까지 없지만, 베히모스나 한은그룹, 월광교의 일을 따지면 오히려 구한 사람이 더 많다고 볼 수도 있는거 아닐까...?
"아니야, 내가 또 무슨 생각을..."
신하루는 이마를 짚으며 중얼거렸다.
그래, 그만 생각하자. 요즘 자꾸 꿈에 에고스틱이 나오는 바람에 머리가 이상해진거다.
에고스틱은 빌런이다. 자신이 잡아야하는 빌런.
오직 그것일 뿐이다.
그리고, 어차피.
'...그도 나를, 이제 적대할 수도 있으니까.'
신하루는 씁쓸히 웃으며 그렇게 속으로 생각했다.
...그렇지 않은가. 에고스틱을 보고 아치에너미라고 해놓고서는, 못알아본채 거의 그를 죽일뻔 했는데.
물론 시작은 뜬금없이 속이고 테러한 에고스틱이기는 하지만... 피투성이가 된 채 누워있던 그의 모습을 보면, 그런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신하루. 그녀는 에고스틱을 잡고 싶었던거지, 거의 반 죽여놓으려 한건 아니였으니.
"...."
다음에 볼때, 에고스틱이 자신을 이전보다 더 적대하더라도, 그녀는 감내할 것이다. 빌런이 히어로를 적대하는건 그야말로 당연한 일이니까. 오히려 지금까지 '그의 히어로'라며 적인 자신을 응원해주고, 자신 대신 칼빵을 맞아주고, 자신이 힘들때 대신 나서주던 에고스틱이 이상한거다.
다만.
그가 자신을 경멸하는 표정으로 볼거라고 생각하니까.
왠지, 마음이 아프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씁쓸하게 생각했다.
그래. 더이상 에고스틱 생각은 하지말자. 나는 히어로니까. 다른 빌런들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키는 것. 그것만 생각하자.
"스타더스씨. 여기 저번에 테러를 일으켰던 월광교에 대한 추가 조사결과가 나왔습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확인해보죠."
그래, 이렇게 일이나 하자, 일.
그렇게 그녀는 마음을 다잡았고.
[속보, 한국 종합무역센터 빌런한테 점거... 악마의 성같은 외견으로 변해.]
마침내, 다른 테러가 찾아왔다.
좀 큰게.
***
한국 히어로 협회.
늘 잦은 테러로 인해 이제 어지간한 빌런들에게는 눈하나 꿈뻑도 안하는 이들이었지만.
지금의 그곳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이런 젠장! 사람들은 다들 대피했나?"
"네! 새벽사이 조금씩 조금씩 침식되었던 일이라 애초에 민간인들이 테러현장에 별로 없었던것으로 파악됩니다."
"휴, 그나마 다행이군... 이게 뭔일인가 그려."
이른 아침.
새벽사이 들려온 갑작스러운 소식에 헐레벌떡 출근한 협회장은, 한숨을 푹 쉬며 땀을 닦았다. 안그래도 요즘 더 빠질 머리카락도 없는 마당에, 얼마 남지않은 머리칼마저 다 빠질 기분.
그렇게 겨우 컨트롤센터의 자리에 앉은 그는, 이내 번뜩이고 생각났다는 듯 옆의 직원에게 약간의 희망을 가지고 물었다.
"그런데 말이다... 이 테러, 혹시 에고스틱이 일으킨거 일수도 있지 않은가?"
"이미 조사결과, 자칭 '데몬즈'라고 불리는 빌런의 단독 소행으로 보이고, 에고스트림이랑은 아무 관련이 없어보입니다."
"에휴, 젠장. 역시 내 인생이 그리 잘 풀릴리가 없지. 망했군, 이건 또 어찌해야하나."
협회장은 탄식을 하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십년은 더 늙어진 얼굴로 보고를 받을 때, 스타더스가 마침 도착했다.
"...."
어제도 이설아가 에고스틱을 껴안고 하하하하 호호호 웃는 꿈을 꿔서 별로 기분이 좋지 않던 스타더스.
협회장에게 인사한 후 자리를 잡은 그녀에 이어, 새벽에 호출되어 이것저것 하다가 협회 휴개실에서 눈을 붙이고있던 섀도우워커 또한 방금 자다 깬듯한 눈으로 흐느적거리며 도착했다.
그렇게 서울에서 활동하는 히어로들이 전부 도착한 후, 이어진 브리핑.
그곳에서 설명 담당을 맡은 안경 낀 프로페셔널해 보이는 직원이, 커다란 스크린을 가르키며 침착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일단, 자신을 데몬즈라고 밝힌 빌런은 20-30대로 추정되며, 남성으로 추정됩니다. 남아있는 영상기록물들을 복원해봤을때 잘 보이지는 않지만, 철저히 계획된 일인 것 같고요."
그렇게 말하며 그는 그 빌런이 앞에 돌에다가 검은색의 끈적이는 무언가로 휘갈기듯 세겨놓은, '데몬즈 캐슬' 이라는 문구를 띄웠다.
"그가 통칭 악마성이라고 붙인거에서서 보이듯, 종합무역센터 지상의 건물 전체와 지하 시설들까지 전부 그가 생성한 검은색의 액체에 의해 침식당했습니다. 또한 마치 환영으로 만든 것같이 건물이 악마의 성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의 말이 끝나고 다시 바뀐 화면.
거기에는, 어두운 무언가에 잡아먹힌 길다란, 넓은 건물이 보였다. 그리고 그 위에 어둠으로 그려진 검은색의 뾰족한 첨탑을 가진 성의 모습.
번떡거리는 고층 빌딩 사이에서 혼자 이질적이게 놓여진 새까만 중세시대 성은, 그야말로 기괴하면서도 소름이 돋는 풍경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모두가 얼굴을 굳힐때.
직원은, 딱딱한 얼굴로 계속 설명을 이어갔다.
"현재 저 검은색의 끈적거리는 물질이 건물 내부와 지하 모든것에 있으나, 그것 자체는 인체에 닿는다고 해서 해를 끼치는건 아닌거같다고 합니다만... 문제는 저희 탐사팀이 파악한 바에 의하면, 그 검은색 액체에서 괴물들이 탄생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 스크린이 바뀌어 보이는 것은, 하나의 영상.
그곳에서는 악마성 아래 지하에 풍경을 담고있었다.
바닥에 쫙 깔린 검은색의 촉수들과, 어두운 분위기의 텅빈 그곳.
그리고 깜깜한 곳 한쪽편에서, 검은색 엑체로부터 무언가 기괴한 형상의 생명체들이 하나 둘 올라오며 형체를 갖추고 만들어지는 모습이였다.
다들 그 기묘한 광경에 사태의 심각함을 깨닫고 있을때.
협회 직원의 설명이 이어졌다.
종합무역센터 지상층이 악마의 성처럼 위협적인 생김새를 하고있기는 하지만, 실상은 환상이고 진짜는 구불구불 개미굴처럼 이어진 지하다.
굉장히 넓고 큰데다가 복잡하게 얽힌 저 지하에서 수많은 괴물들이 배양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그것을 행하는 주체는 데몬즈라는 빌런인 것 같다.
그러니, 아마 저 빌런만 처리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거다. 그게 협회가 내린 결론이었다.
"쓰읍... 쯧. 하필 서울의 도시 한가운데서 일어난 일이라 미사일을 쏠 수도 없고 거기에 지하니... 곤란해졌구만."
협회장은 혀를 차며 중얼거렸고, 요원은 이에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했다.
"네. 아마 현재로써 사건을 해결하는 제일 적합한 방법은 이 모든 사건을 일으키고 있는 빌런을 제거하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저 지하 어딘가에 있는건 확실한데, 그게 어딘지는 직접 찾아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는 곤란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해가 뜨기전 틈을 타 새벽사이 조사해본 결과로는,저 빌런의 검은색 물질이 섀도우워커씨의 능력을 방해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풀어말하면 나는 또 쓸모가 없다는거지. 하하하..."
퀭한 얼굴로 그렇게 자조적으로 중얼거린 그는, 이내 다크서클 가득한 눈으로 흐느적거리더니 등받이에 털썩 기댄채 고개를 숙였다.
한때 밤의 패황이라 불렸던 섀도우워커, 3연패.
그렇게 좌절한 그는 내버려두고.
결국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히어로는, 단 한명이었다.
"스타더스씨."
"알겠습니다."
스타더스, 신하루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게도. 그녀가 나설 차례였기에.
그렇게 세부 일정이 조율되었다.
데몬즈는 곧바로 S급 빌런으로 공표됐고, 악마성이 된 무역센터 근처는 전부 일반인 출입금지가 되었다.
그렇게 몇시간 후, 을씨년스럽게 사람하나 없는 텅빈 거리에서.
그곳에 도착한 신하루는, 조용히 발을 내딛었다.
그녀의 목표는 악마성 지하에서 증식하는 괴물들을 보이는대로 처치하며, 제일 심층에 있을걸로 추정되는 데몬즈라는 놈을 제거하는 것.
한 심호흡한 그녀는, 이내 어두운 그곳으로 찬찬히 발걸음을 옮겼다.
자신과 괴물들, 그리고 데몬즈라는 빌런만이 있을 그 곳으로.
***
한편 그시각.
에고스트림 본부, 큰집.
"쟤 잡아!!!"
"오빠, 가만히 있어요!"
"....미안해요, 다인오빠."
"잠깐, 잠깐! 내 말 좀 들어봐. 그리고 은월아? 우리 그 마법진 그리는건 잠깐 멈추고 대화로 해결할까?"
내가 저 악마성 지하로 들어가겠다는걸 밝힌 직후, 우리 에고스트림 본부는 조금 떠들석해진 모습이었다.
...살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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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축하고 어두운 건물의 내부.
그곳을, 신하루는 조용히 걷고있었다.
"...."
바닥에 깔린 끈적한 검은색의 무언가를 밟으며, 그녀는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본래 에스컬레이터였을 곳을 지나 그녀는 지하로 내려갔고.
본래 사람들로 북적였을, 넓고 뻥 뚫린 그곳의 공간은.
"...하아."
그야말로, 마치 지옥처럼 변해버렸다.
전기가 반쯤 나가 희미하게 깜빡깜빡하는 그곳.
늘 사람들로 북적북적 가득 차있는게 익숙한 장소가, 단 한명의 사람도 없이 텅 비어있는 모습은 그 자체로도 을씨년스러운 모습이였지만, 이번엔 그보다 더했다.
바닥에 쫙 깔린, 꿈틀거리는 검은색의 무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이것들은 바닥뿐만이 아니라 벽면, 그리고 천장까지 전부 차지하고 있었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도 보이는 모습.
이 넓은 공간이 저 검은색 촉수같은 것에 잠식당한 모습은, 일반인이라면 보는 것만으로도 공포에 질려 벌벌 떨 광경이었지만.
신하루는, 그저 얼굴을 잠시 찡그리고 말뿐이었다.
'...검은색 촉수하니, 에고스틱과 함께했던 그날이 생각나네. 베히... 뭐였던거 같은데.'
심지어 잠시 예전 일도 떠올리며 옛생각에 잠긴 그녀.
물론 이곳은 적진 한복판이었던만큼, 그런 생각은 빠르게 털어버리고 다시 임무에 임했다.
이번 탐사의 목적은, 이곳에서 증식하고 있다는 괴물들을 최대한 제거하고 이 모든걸 일으킨 빌런을 사살하는 것.
물론 생포가 제일 좋겠지만, 상대가 너무 위험해보이는 관계로 그렇게 결정되었다.
'...이 빌런은, 넓은 영역 전체를 침식시키고 스스로 다른 생명체를 창조할 수 있어보인다는 점에서 이전의 다른 빌런들과는 궤도가 다릅니다. 외국의 비슷한 사례를 보면, 이런류의 빌런은 이 침식이 일주일 이상이 지난 다음에는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전문가의 말을 곱씹던 그녀는, 이내 계속해서 더 안쪽으로 발걺음을 옮겼다.
그리고 점점 더 깊숙히 들어갈 수록 보이는, 소름끼치는 광경들.
개미굴처럼 여러갈래로 뻗어진 지하의 백화점같은 공간또한, 전부 끈적한 검은색 무언가로 뒤덮여있는 상태.
보면 볼수록 무슨 공포영화와도 같은 광경에, 신하루의 표정은 갈수록 안좋아졌다. 특히 분명 무슨 괴생물체가 있다고 들었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텅 비어있으니 오히려 무서울 지경.
슬슬 뭔가 이상한 기분을 느낀 그녀는, 조금 더 속도를 높여,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차라리, 무엇이든 일단 살아있는 것과 차라리 싸우는게 더 나을거같은 기분이다.
그렇게 신하루는, 점점 더 아래로 향했고.
그리고 그럴수록, 보이는 광경들은 점점 더 괴상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
본래 지도랑은 다르게, 아예 변질된 공간들.
이제는 단 한점의 틈도 남기지 않고, 모든 걸 다 먹어치워버린 검은색 물질들 사이에.
마치 중세시대에서나 쓰일법한, 이질적인 물건들이 하나 둘 나타나있었다.
고풍스러워보이는 거울, 촛대, 기괴하게 생긴 초상화까지.
드문드문 이질적이게 걸려있는 그것들은, 슬슬 분위기를 심상치 않게 하였고.
이내 얼굴을 굳힌채 아예 복도사이를 날아가던 신하루는 마침내, 보고말았다.
크르르-
검은색 액체 사이에서 솟아오르는, '그것'들을.
그것들은 마치, 작은 악마같이 생긴 모습이었다. 작은 머리, 달려있는 두 뿔, 그리고 날개까지. 다만 차이점이라면, 끈적하고 검은 것들로 몸 전체가 이루어져 있어서인지 얼굴같은 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 심지어 눈조차도 없었다.
마치 작은 사람들처럼 생긴 그것들은, 어느 공간 한곳을 빙빙둘며 배회하고 있었다. 검고 끈적이는 것들이 공간을 다 먹어치워, 빛조차도 희미한 그곳 속에서만.
그리고 그 한편에서 수상하게 부글거리는, 검은색 액체의 모습.
이상한 검은색의 돌기같은 무언가가 솟아올라와있는 그곳 앞에서, 부글거리는 액체 안에서 검은 촉수로 이루어진 팔이 튀어나왔다.
그로테스크한 광경 속.
그녀가 한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가자.
휘익-.
그순간, 소름끼치게도.
일제히 그 악마형상의 촉수덩어리들의 얼굴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
그리고, 바로 그순간.
-끼에에에에에에엑!
그 방안에 있던 모든 악마들이, 그녀에게 달려들었고.
"쓰읍..."
그와 동시에 스타더스또한, 주먹을 쥐고 앞발을 내딛었다.
그래, 차라리 이렇게 싸우는게 낫다.
불명확한 공포보다는, 실제된 적이 더 나으니까.
그렇게, 그녀의 주먹이 악마의 머리통을 날렸다.
***
"허억... 허억..."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숨을 헐떡인 신하루는, 이내 고개를 들어 주위를 돌아봤다.
...더이상 보이지 않는 적들.
그리고, 난장판이 된 주변.
이내 한숨을 돌린 그녀는, 한숨과 함께 손에 묻어있는 검은색 물질들을 털어냈다.
...생각보다 강했지만, 그녀는 버텨냈다.
생긴게 귀신마냥 끔찍해서 그렇지, 유기체 비슷한 것마냥 당연히 주먹에 맞으면 쓰러지던 그것들.
물론 촉수같은 것들로 이루어진 주제에 생각보다 튼튼하고, 많은 개체가 함꺼번에 달려들어 동시에 처리하는게 어렵긴 했지만, 그래도 이전과는 다르게 많이 강해진 그녀는 상대할만 했다.
다만, 문제는 이러한 것들이 얼마나 더 있는지 모른다는 점.
"...."
그런생각을 하며 신하루는, 다시 주위를 둘러봤다.
아까 쓰러진 그 검은 악마들은, 다시 그 액체 속으로 마치 흡수되듯 사라진 모습.
그걸 확인한 그녀는 대신, 아까부터 저쪽에서 부글거리던 검은색 액체가 있던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 보인건 검은색 종양같은 무언가. 그리고 그 아래 까만 웅덩이에서 거의 반쯤 생성된 뿔달린 머리.
"쯧."
이내 그걸 차버려서 날려버린 그녀는, 잠시 그곳을 바라보며 분석했다.
...아무래도 이 불룩 솟아오른 검은색의, 마치 심장처럼 꿈틀거리는 이것 앞에서 악마들이 생겨나는 것 같다.
그런 판단을 마친 그녀는, 발에 힘을 실어 그 악마의 심장같은걸 그냥 차버렸고.
펑- 하는 소리와 함께 그대로 박살난 종양.
그리고 그 앞에 있던 웅덩이도.
-보글보글.
하는 소리와 함께, 끓어오르는걸 멈췄다.
그렇게 더이상 다른 악마가 올라오지 않는 것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신하루는 잠시 한숨을 돌렸다.
"휴우..."
...이 구역은, 대충 끝났나.
진이 빠져 어디라도 앉고 싶었던 그녀는, 당연하게도 주위가 전부 검은색 촉수로 뒤덮인 것을 확인하고는 깔끔히 포기했다.
그렇게 다시 아무도 없이 깜빡이는 빛만이 있는 어두운 텅 빈 공간에 홀로 남겨진 신하루.
그제서야 그녀는 자기가 있는 곳을 다시한번 확인했다.
무슨 분수같은게 있는, 지하의 넓은 만남의 광장.
물론 다 검은색 촉수로 뒤덮여있기는 했지만, 한때 이곳이 사람들로 북적였을걸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윗층이 뻥 뚫려, 2층까지 보이는 공간이기도 했고.
그곳에서 혹시 다른 것들이 소리를 듣고 오는건 아닌가- 라며 주위를 둘러본 그녀는, 이내 아무도 오지 않자 홀로 가만히 서서 생각에 잠겼다.
"....."
그러자, 자연스래 굳어지는 그녀의 얼굴.
...이때까지 이곳으로 오고, 저 악마와같은 것들과 싸우기까지 한 그녀가 내린 결론은.
이게, 생각보다 훨씬 큰일이라는거다.
'...이정도의 능력이라.'
지금까지 그녀가 거친 공간은, 굉장히 많았다.
그리고 그 공간들이 전부 이 검은색 무언가로 뒤덮여있었고.
이 모든게 전부 한명이, 하룻밤사이에 만든 것.
그리고 그 악마와같은 것들.
그녀야 나름 몇분안에 빠르게 해치우기는 했지만, 자신이 상대하는데 꽤나 힘이 좀 들었다는건, 꽤 강하다는거다. 애초에 스타더스 자신이, 대한민국 모든 히어로들중에 제일 강했으므로.
그런데 그런 것들이 알아서 증식까지하고.
그 증식하는 괴물들이 이 넓은 지하에, 얼마나 깔려있을지도 모른다?
스타더스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대체, 이 모든 일을 일으킨 빌런은 얼마나 강한것인가.
그와 동시에 드는, 일종의 한탄.
대체 왜, 이런 빌런은 어디서 계속 나타나는거지.
대한민국은 평화로울 수 없는 저주라도 걸렸던말인가.
"...일단은, 저 악마놈들을 만드는 것같은 곳들을 최대한 처리하고, 빌런만 처리하면... 다 끝나겠지."
그렇게 그녀는 텅 빈 공간에서 홀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스스로를 설득하듯.
당연히, 아무런 응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다만 그녀의 목소리만이, 텅 빈 공간에 메아리쳐질뿐.
...계속 가자.
그렇게 잠시 팔을 뻗어 근육을 푼 그녀는, 다시 더욱 깊숙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푸른 눈으로, 약간 불안한 표정을 한 채 깊숙히 들어가던 그녀는, 이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그녀의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있는, 한쌍의 눈동자가 있었음을.
***
...쓰읍. 잘싸우기는 하는데, 그래도 좀 불안한 이 느낌.
지금이라도 내가 대신 최종보스 잡고 이 이벤트를 강제종료 시켜버려야하나.
[...아니, 오빠. 뭐 성장시켜야한다고 아니면 세계 다 망한다고 한건 오빠였잖아요?]
머릿속에서 울려퍼지는, 황당하다는 듯한 목소리.
아니, 그건 아는데. 스타더스가 실시간으로 고생하고 있는걸 보니 마음이 아프니까 그러지.
무역센터 지하 어딘가.
그곳의 검은 기둥 뒤에 숨어서 스타더스를 지켜보던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내 옆에서 둥둥 떠다니는 이상한 기계.
서은이가 만든 에고-서쳐라는 아무리봐도 해파리처럼 생긴 감시용 기계가 나와 함께하고 있었다.
'...그래도 아까 전투 보니까.'
원작보다는 확실히 더 잘싸우는 느낌. 확실히 이번에는 승산이 조금 있을수도.
근데 그건 그거고, 아니 씨발. 무서워 죽겠다. 무슨 사방이 다 검은색 액체괴물로 가득해.
원작에서도 무슨 납량특집 에피냐고 원성을 받았던 그곳에 실제로 있으니 심약한 나로써는 좀 쫄린채였다.
[하하! 여기는 마치 고향처럼 친근한 느낌이 드는구만! 내 저승에서 탈출하기 전에 말이야...]
...물론 나와 다르게 반지안에서 신나서 웅웅거리는 데스나이트 아재. 그렇게 그가 썰푸는걸 들으며, 나는 다시 한숨을 쉬었다.
겨우 에고스트림 멤버들을 설득해 이 지하로 내려온지 벌써 몇시간.
조마조만한 심정으로 혼자 담력테스트 하듯이 이 악마성 지하에 내려온 나는, 혹여 스타더스가 비명횡사할까봐 계속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다.
근데, 뭐 나름 잘싸우는거 같다. 원작에서는 아까 그 소악마들과 싸우다가 다쳤었는데 그러지도 않았고.
그래. 그래도 다행힌건, 아마 이 페이스 대로라면 내가 뭐 혹여나 나서야 할일은 없을거같네!
나는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했었다.
그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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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렸을 적부터 공포영화를 딱히 싫어하진 않았다.
물론 갑자기 귀신이 까꿍하고 튀어나오면 좀 놀라긴 했지만, 그렇다고 벌벌 떨지는 않았다는 이야기.
특히 공포영화를 볼때는 영화보다 주위 사람들이 깜짝 놀라는게 더 재밌기도 했다. 저번에 다같이 공포영화를 밤에 거실에 불끄고 봤는데, 서은이가 깜짝 놀라서 거의 천장까지 점프하는게 영화보다 더 재밌었다.
하여튼, 결론은 내가 공포영화를 보고 딱히 쫄지는 않는다는거. 거기에 저번 한은그룹 지하에서 괴물들 틈바구니에서 걸으며, 더더욱 단련된 멘탈.
그리고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왜냐고?
그야 여기가 그냥 공포영화 세트장 같거든...
어두운 지하.
무슨 끈적끈적한 검은 젤리같은게 온 사방 벽면에 붙어있는 곳 한가운데에서, 나는 혼자 서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혼자는 아니지.
"...."
내 옆에서 혼자 공중에 붕붕 떠 따라오는 이 해파리같은 기계랑 같이 있으니.
이 위험한 악마성 아래에 갈거면 이거는 꼭 같이 갖고 가달라는 서은이의 부탁... 과 안 가져가면 울거같아보이는 반 협박에 같이 오게된 로봇이다.
특징은 카메라가 달려 이쪽의 상황을 우리 에고스트림 멤버들이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정도..? 물론 무슨 무기도 달려 호신용도 된다는데, 잘 모르겠다.
...참고로, 이곳까지 오기도 정말 쉽지 않았다.
아직 몸도 다 안나았는데 대체 어딜가냐고, 혼자 갔다가 또 다쳐서 돌아오는거 아니냐고 다들 걱정을 해가지고.
물론 걱정이 나를 집안에 감금시키겠다는 이상한 방향성으로 변하길래, 서둘러 설득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니, 애초에 내가 저 빌런을 먼저 죽이려고 했었는데 설마 약점도 모르겠냐고.
물론 이 악마성이 외관 하나만큼은 무슨 게임으로 치면 최종보스가 있을 것만같은 무시무시한 비쥬얼이라 걱정하는건 이해는 하지만...
특히 수빈씨와 서은이가 보기에는 내가 무슨 호랑이굴로 혼자 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나보다. 하긴, 내 말에는 늘 웃으며 고개만 끄덕이던 은월이와 하율이마저 반대했으니...
그래도 여러차례 설득한 끝에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데식이 아재도 챙기고, 베히모스도 챙기고, 이 해파리달린 로봇도 챙겨간다는 조건으로.
"쓰읍... 그래서, 여기가 어디지."
[오빠. 일단 오른쪽으로 꺾어봐요.]
"그래?"
그렇게 나는 결국, 이 악마성 아래를 걸을 수 있었다.
...바닥이 찐득찐득하고 어두침침한게, 굉장히 마음에 안든다. 아니, 막 무서운건 아닌데... 좀 그래.
[...아니, 오빠. 근데 여기 왜 이렇게 귀신 나오게 생겼어요? 화면으로 봐도 무서운데요.]
두리번 두리번 거리는 서은이의 해파리 로봇과 함께 들리는 서은이의 말.
아니, 서은아. 귀신은 안나온단다. 악마가 나오지.
...뭐, 말이 악마지 그냥 생체조직이 엮인거니.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점차 안으로 들어갔고.
기괴하게 뒤틀린 지형들을 건너, 끝내 스타더스를 발견할 수 있었다.
"....."
음. 아직 무사하군.
그렇게 나는 스타더스를 직접 본 이후에야, 비로서 한숨 덜 수 있었다. 하. 원작에서 여기서 막 죽을 위기 몇십번씩 겪은거 생각하니까 불안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있어야지. 이렇게 눈으로 직접 보니 훨 났네.
그렇게 나는 몸을 숨긴채 먼저 2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역시나 원작대로, 1층에서는 악마들이 등장했고.
이내 뒤늦게 스타더스가 도착해.
드디어 처음으로 전투가 벌어졌다.
"...흐음."
가운데가 뻥 뚫려있던 덕분에,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볼 수 있었던 나.
그렇게 몇분간 꽤나 치열했던 전투가, 끝내 스타더스의 승리로 끝이 났다.
조용히 몸을 털고 나가는 그녀.
원작보다 확실히 잘 싸우던 스타더스의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나는, 그제서야 긴장을 어느정도 풀었다. 그래, 그래도 이정도면 무난히 최종보스 전까지는 가겠네.